‘사진예술’ 발행인 이, 취임식이 있었던 지난 2일, 많은 사진가들을 만났다.
행사장인 코리아나호텔에서 한정식, 육명심, 전민조, 최경자선생과 같이 나왔으나
이내 뿔뿔이 헤어졌다.

육명심선생만 인사동까지 함께 하셨는데, "가까운 곳에서 차 한 잔 하자"며
박대조씨의 'Where do we go now'전이 열리는 ‘나우갤러리’로 올라 가셨다.

그 곳에는 행사장에서 만났던 이순심관장을 비롯하여 사진가 박하선, 박종우,
김현숙, 정면주 교수 등이 먼저 와 환담을 나누고 있었고, 나중에는 곽명우씨도 왔다.

때 만난, 육명심선생의 강의가 발동되었다.
내조를 잘 해주시는 사모님 이야기에서부터 근대사진사까지 거침없었다.
일전에 들었던 말씀이거나 아는 내용도 있었지만, 사진가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강의였다.

‘다큐멘터리사진은 무엇보다 설득력이 필요하다며 말씀을 끝내셨다.
사진가보다 사진교육자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사진,글 / 조문호

 

 

 

 

 

 

 

 

 



 

'연락 좀 하고 삽시다'

 

요즘 사진가들을 만나면 자주 듣는 말이다.

지난 번 두 차례나 전시회를 가졌지만, 연락처를 몰라 사우들에게 알리지 못했는데,

모두들 만나기만 하면 ‘왜 연락하지 않았냐’는 추궁을 받는다.

 

사실 10여년 동안 사진계와 담을 쌓고 지냈다.

연락처를 아는 분으로는 이명동, 한정식, 육명심선생, 그리고 엄상빈, 조성제, 김상현, 이수만,

곽명우씨 등 열 손가락 안 밖이다.

사진 찍느라 장에 쫓아다니기도 바빴지만, 틈만 나면 인사동 가느라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주소나 전화번호가 모두 바뀌었으니 전시안내를 받을 수도 없지만,

신문이나 잡지 한 권 사보지 않았으니 누가 어디에서 무슨 전시를 하는지 도통 모르고 지낸 것이다.

그러니 사우들의 연락처를 알아낸다 해도, 남의 전시는 가지 않으며 초대하기가 그래 생략했다.

그러나 장터작업을 마무리하고 나니, 앞만 보고 달린 게 후회스럽기도 하다.

그 오래된 인연들을 칼 같이 끊고 내 일에만 메 달렸으니, 이 또한 전형적인 개인주의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요즘은 사진전이나 사진 모임에 부지런히 다니며, 사진인들과 연락처 주고 받는게 일이다.
뒤늦게 사진잡지도 사보며 아는 분들의 전람회를 찾아다니는데, 모두들 죽은 사람 만난듯 반가워한다.

아! 이게 사는 재미 아닌가...

 

사진,글 / 조문호

 

 

 

 

 

 

 

 

 

 




1980년대 중반 이태원의 밤 문화를 기록한 사진가 김남진(58)씨의 “이태원의 밤” 사진집이 눈빛사진가선 12집으로 출간됐다.

사진집 출판을 기념하는 사진전은 4월 3일부터 14일까지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02-2269-2613)에서 열린다.


 

 

28년이란 시간을 간직한 빛바랜 사진들이 눈빛출판사의 열정어린 집념으로 세상에 공개되었다.

이 사진들은 87년도 ‘파인힐 화랑’에서 전시를 했지만, 그 이후 안타깝게도 필름을 몽땅 잃어버렸다고 한다.

사진집 “이태원의 밤“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87년 전시회 때 인화해 두었던 사진을 스캔해서 만든 것이란다.

이번 전시회에 내놓은 작품은 지구상에서 단 한 장뿐인 오리지널 프린트라 그 가치가 더욱 소중하다.

지난 3일 개최된 사진전 개막식에는 김남진씨를 비롯하여 윤주영, 주명덕, 구자호, 이규상, 이갑철, 엄상빈, 김보섭,

안미숙, 제이 안, 이규철, 남 준, 이광수, 곽윤섭, 곽명우, 박중하, 강재욱, 양시영, 나떠구, 윤은숙, 서지영, 박신흥,

안해룡, 이한구, 장 숙, 최재균씨 등 많은 사진인들이 참석해 전시를 축하했다.

 

사진,글 / 조문호

 

 

 

 

 

 

 

 

 

 

 

 

 

 

 

 

 

 

 

 

 

 

 

 

 

 

 

 

 

 

 

 

 

 

 

 

 

 

 

 

 

 

 

 

 

 

 

 

 

 




 

 

1980년대 중반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밤 문화를 기록한 사진가 김남진(58)씨가 『이태원의 밤』(눈빛출판사)이란 제목의 사진집을 출간했다.

당시 27세였던 김씨는 서울 최고의 유흥가였던 이태원을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지금의 이태원은 누구나 즐겨 찾는 ‘핫 플레이스’지만 80년대의 이태원은 평범한 젊은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니었다. 외국인과 혼혈인, 성 소수자들의 놀이터였고 나이트·디스코클럽, 게이바가 즐비했던 유흥가였다. 서울사람조차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야 했던 낯선 공간이자, 우리 땅이면서 미국 땅 같은, 그야말로 ‘포토제닉’한 공간이었다.

김씨는 84년부터 86년까지 일주일에 2~3번씩 이태원의 길거리와 업소를 찾아다녔다. 처음에는 이곳 이미지에 휩쓸려 환락의 거리를 찍었다. 뱀쇼·봉쇼·스트립쇼부터 번쩍이는 불빛 아래 춤추는 무희들, 술에 취한 여장남자, 불나방 같은 하룻밤의 쾌락을 카메라에 담았다.

하지만 이내 “이곳 역시 평범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업소에서 ‘영계’라 불리는 젊은 여자들과 웨이터들은 대부분 가난을 물리치고자 시골에서 상경한 사람들이었고 이들에게 이태원은 단지 치열한 일터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또 “잠시나마 지루한 일상에서 일탈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눈요기와 말초신경을 위한 감정의 해방구일 수 있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새로움에 대한 기대도 격양된 흥분도 찾기 힘든 황폐한 땅이었다”고 고백했다. 이곳 사람들은 어느덧 익숙해진 김씨와 그의 카메라에 경계심과 거부감을 풀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드러냈다.

함부로 카메라를 꺼낼 수 없는 곳에서 용기 내 찍었던 이 사진들은 당시엔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쉽게 발표할 수 없었다. 일부 사진들이 87년 4월에 열린 전시에서 빛을 봤지만 이후 안타깝게도 김씨는 필름을 몽땅 잃어버렸다. 사진집『이태원의 밤』은 전시를 위해 인화했던 사진을 스캔해서 만든 것이다. 28년의 시간을 간직한 빛바랜 사진들은 3일부터 열리는 출판기념전을 통해 소개된다. [사진 김남진]


◇김남진 사진전 ‘이태원의 밤’. 4월 3일부터 4월 14일까지.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 B1. 02-2269-2613



중앙일보 /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다큐사진가 이갑철씨 '제주 1980’

한국인의 역동적인 신명과 삶의 기운을 포착해온 다큐사진가 이갑철(56)씨가 1980년대초 찍었던 제주 작업을 처음 대중 앞에 내놓았다. 서울 강남의 사진대안공간 스페이 22에서 1일 막을 올린 <바람의 풍경, 제주 천구백팔십>이란 제목의 개인전이다.

84년 첫 개인전 <거리의 양키들>로 데뷔하기 전인 79~84년 그가 제주에서 찍은 사진 48장을 선보인다. 뭍의 관광객들이 막 몰려들던 그 시절 제주의 여러 빛바랜 풍광들이 눈에 감기는 작품들이다. 작가는 섬의 풍광과 사람들 틈새로 스며드는 바람의 흔적들까지 포착했다. 언덕에 서서 수평선을 향해 옷을 휘날리며 기원하는 중년 남자의 모습과 잔디밭을 걷는 아녀자의 너풀거리는 옷자락 등이 바람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2002년 사진계를 뒤흔든 전시 <충돌과 반동> 이래 작가의 등록상표가 된 흔들리는 화면과 기울어진 사선 구도, 초점 없이 흩어지는 대상 등의 특징이 초창기 사진 속에 이미 엿보인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씨는 “제주에서 마음을 강하게 끌었던 게 바람”이라며 작가노트에 썼다. “바람은 끌고 당기는 힘의 역항을 이루며 제주섬 어디에나 내재되어 있었다. 그 긴장감이 좋았다…이 사진들은 삼십여년 전 내가 바라본 바람의 풍경들이다.”


서울 청량리 588 사창가의 80년대 풍경과 삶을 담은 조문호씨, 84~86년 찍었던 이태원 유흥가 작업을 풀어낸 김남진씨의 전시에 이은 80년대 재조명 흐름의 하나다. 이씨는 지난달부터 부산 고은사진미술관에서 1년간의 부산 작업을 모은 <침묵과 낭만> 전시도 하고 있다. 열화당에서 이번 전시와 같은 제목의 사진집(80쪽)도 나왔다. 전시는 24일까지. (02)3469-0822.

[한겨레]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지난 4월2일 정오무렵, 월간 '사진예술' 발행인 이, 취임식이 코리아나호텔 7층에서 열렸다.

 

 '사진예술'은 1989년 5월, 원로사진가 이명동선생께서 창간한 전통 있는 사진 잡지다.
지난 2001년 후배 사진가 김녕만씨에게 물려주어 올해로 26년(통권312호)째 발행되어왔다.

그동안 사진예술'을 운영해 온 김녕만씨가 매너리즘에 빠진 잡지를 새롭게 발전시키기 위해

후배 사진가인 이기명씨에게 다시 넘겨줌으로서, 아름다운 대물림이 이어지는 의미 있는 자리가 만들어 진 것이다.

사진가 이기명씨는 '유로크레온'과 '한국매그넘에이전트'를 운영하며 굵직한 전람회를

여러차례 기획해 사진도 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능력 있는 기획전문가다.

'오래된 것은 새롭다'라는 의미 있는 캐치프레이드를 내 걸며 펴낸 '사진예술' 4월호에는

그동안 '사진예술'에 게재되었던 중요 내용들을 특집으로 요약했는데,

그것은 한국사진의 흐름과 변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사진사였다.

봄기운이 물씬 느껴지는 녹색 넥타이로 단장한 창간인 이명동선생께서 제일 먼저 단상에 오르셨다.

올 해로 아흔 여섯을 맞은 연세지만, 아직 짱짱하시다. 아름다운 인연에 대한 말씀도 주셨고,

평소 주장과 배치되어 마음에 없던 '사진예술'이란 제호를 붙였던 그 뒷이야기도 들려주셨다.

이. 취임을 축하하는 원로사진인 한정식선생과 이재구교수의 축사도 이어졌다.

2대 편집인 김녕만씨는 “물려주신 분, 물려받으신 분 모두 귀한 인연이라 나는 참 복 많은 사람”이라고 자랑하기도 했고,

이기명 신임 편집인은 “두 분의 뜻을 받들어 지역 간 편차를 줄이는 전국적인 잡지, 세계 사진문화 교류에 앞장서는 잡지,

사진계의 건전한 비판과 소통에 힘쓰는 잡지로 만들겠다”며 야심찬 다짐을 했다.

소리꾼 장사익씨는 “사진예술’을 이끌어온 김녕만씨의 아내 윤세영씨의 고운 마음에 바친다”며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불러 박수갈채를 받았고, 그의 애창곡 '봄날은 간다'를 간드러지게 부르기도 했다.  

 

사진가 윤주영선생의 건배사로 시작된 오찬 분위기는 봄날처럼 따사로웠다.

이 날 이, 취임식에는 창간인 이명동선생을 비롯하여 김녕만, 이기명, 윤세영, 윤주영, 한정식, 육명심, 황규태, 전민조, 장사익, 김달진, 예진수, 정재숙, 김정은, 최경자, 제이 안, 양성철, 구자호, 엄상빈, 최광호, 김승곤, 이갑철, 이주용, 양재문, 이순심, 이규상, 안미숙, 임향자, 심상만, 양재헌, 손영자, 김영수, 양종훈, 박종우, 박하선, 곽명우씨 등 200여명이 참석해 이,취임식을 축하하며 '사진예술'의 발전을 기원했다.

사진,글 / 조문호


 

 

 

 

 

 

 

 

 

 

 

 

 

 

 

 

 

 

 

 

 

 

 

 

 

 

 

 

 

 

 

 

 

 

 

 

 

 

 

 

 

 

 

 

 

 

 

 

 

 


아래 사진은 제9회 동강할미꽃 축제에 초대된 김정명씨 사진이다.

우측에 인공조명을 비춘 자욱이 뚜렷하다.

 

몇일 전 동강변에서 동강할미꽃에 물을 뿌리는 아마추어 사진인을 발견해 나무란 적이 있었다.

 

물을 뿌리면 꽃도 시들지만, 야생화 사진으로서의 가치가 사라진다는 것을 누차 강조했으나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모르겠다. 해마다 겪는 일이지만 손이 안 닿는 높은 곳의 할미꽃들은 아름다운 보라 빛을 머금고 있지만, 낮은 곳의 할미꽃들은 대개 누렇게 변색되다 말라 죽는다.

일부 몰지각한 아마추어 사진인들이 이슬 맺힌 것처럼 보이기 위해 꽃에 물을 뿌리는데, 동강할미꽃은 해가 떠올라 날씨가 따뜻해져야 꽃이 피기 때문에, 핀 꽃은 이슬이 맺힐 수 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화면을 단순화하려 꽃을 감싼 마른풀을 뜯어내어 동강할미꽃을 더 힘들게 한다. 생태사진으로서의 야생화촬영은 꽃도 꽃이지만, 꽃의 습성이나 자연적인 주변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왜 모를까?

 

이처럼 사진이기를 포기하는 아마추어적 풍조가 아직까지 만연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사협에서 실시하는 사진공모전 때문이다. 문제는 대개의 공모전 심사위원에 생태사진 전문가가 포함되지 않는데다, 심지어 야생화를 전문으로 찍는 중견작가까지 잘못된 습관을 버리지 못하였거나, 아직까지도 생태사진의 가치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햇볕이 나와 꽃이 피었건만, 꽆잎에 물방울이 묻어 있다.

 

 

지난 27일에는 동강할미꽃 축제를 기록하기 위해 행사장에 들렸다. 마침 귤암리 지역화가 김정숙씨로 부터 김정명씨의 동강할미꽃 초대작이 너무 좋다는 말을 들었으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란 것이다.

 

16X20인치 사이즈의 동강할미꽃사진 7-8점이 이젤 위에 걸려 있었는데, 동강할미꽃에 물을 뿌려 활짝 핀 꽃에 물방울이 맺혀있었고, 마른풀도 전혀 없었다. 돌 틈의 꽃은 마른 풀이 있는 것도 간혹 있지만, 사진처럼 다 말끔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 어떤 사진은 꽃망울에 강한 인공조명을 비추기도 했다초보자가 출품한 공모전에서는 쉽게 보아왔던 사진이지만, 이 건 30여년을 야생화만 찍어 온 중견작가의 사진이다. 한 때 한국식물사진작가협회 회장도 역임한 사람이 아니던가?

 

김정명씨는 97년 동강할미꽃을 처음 찍어 꽃 달력을 만들었는데, 그 사진을 '한국식물연구원' 이영노박사가 2000년 동강할미꽃이란 이름을 붙여 세계유일종으로 발표하여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김정명씨의 위치라면 공모전에서 야생화사진들을 심사해야 할 사람이다그런 사람이 자신의 사진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버젓이 내 걸고 있으니, 결국 생태사진의 기본조차 모른다는 말이다.

 

야생화 전문가로서 작가의식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는 것은그에게 지도받는 초보자들도 결국은 비슷한 사진을 계속 찍어 내게 된다는 말이다.

 

사진에서 프로와 아마츄어를 구분하는 기준은 직업이냐 취미냐로 구분하는 것만 아니다. 프로지만 작가의식에 문제가 있는, 이런 사진인을 영원한 아마추어라 부른다.

 

 

: 조문호 / 사진 : 김정명

 

'

 

아내는 한정식선생 생신 날에 식사 한 끼 대접하겠다는 약속을 작년부터 했다.

 

지난 18일 정오 무렵, 한정식선생을 비롯하여 김보섭, 이규상, 정영신, 안미숙씨 등

여섯 명이 추억이 많았던 ‘한일관’에 모여  축하 자리를 가졌다.

모두들 선생님의 건강하심을 바라는 축배를 들며, 웃는 시간을 가졌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친구'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 곳에 주명덕선생과 최재균씨가 있었다.

주명덕선생의 단골집이라 행여 뵙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정말 뵙게 된 것이다.

만나자 마자 “전시하며 왜 연락도 안 했냐?”며 나무라셨다.

 

할 말이 없었다.

장돌뱅이 노릇하며 정신없이 살다보니, 그동안 사진가들과 교류가 뜸했다.

전화번호도 없어 가끔 만나는 몇 몇 분을 제외하고는 알리지 못했는데, 너무 송구스러웠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한 해만에 없어 진 ‘최민식사진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주명덕선생께서 말씀을 꺼내셨다.

 

아무리 어려워도 아마추어가 주는 상을 프로가 받는 것은 스스로의 자존심을 다치게 한

일이라며 작년 수상자 이갑철씨를 나무랐다.

 

프로와 아마추어, 그 차이에 대한 많은 생각들로 머리가 아픈 하루였다.

 

사진, 글 / 조문호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한일옥

 

 

 

 

 

 

 

 

 

 

 

 

 

 

찡하다. 알듯 모를듯...

 

 

 

 

누가 더 편할까?

 

눈빛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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