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었다.

이건 한 참 잘 못된 말이다. 오직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자고로, 없는 자보다 가진 자들의 편에서 정치를 해왔기에, 요 모양 요 꼴이 된 것이다.

 

정치인들이여!

오 갈 때 없는 노숙자나 빈민들의 한 숨 소리에 과연 귀 한번 기울여 보았는가?

 

올 여름 무더위를 누가 가장 힘들어했겠나?

바로, 뜨거운 아스팔트를 헤맨 노숙자나 바람 한 점 들 수 없는 쪽방과 고시원에서 살았던 빈민들이다.

 

그들도 사람이다. 빵 한 조각 던져주면 다 한 것이 아니다.

쓸데없이 탕진한 나랏돈 귀퉁이만 떼 내어도 다 해결할 수 있었다.

 

이제 천벌 받을 짓을 더 이상 하지말자.

 

UN이 정한 세계빈곤퇴치의 날을 맞은 지난 토요일, 가난한 약자들의 모임인

‘1017 빈곤철폐의 날 조직위원회에서 주최한 ‘1017 빈곤철폐퍼레이드가 동대문에서 열렸다.

천 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하여 빈곤철폐를 외치며,

동대문에서 종로, 종각, 청계천 영풍문고에 이르기까지 시가행진을 벌였다.

광교에 도착하여 살인정권을 규탄하는 백남기농민 추모대회로 막을 내렸다.

 

그런데, 썩어빠진 정치판에는 개 떼 처럼 몰리는 기자들이, 가난한 빈민들의 목소리엔 귀를 막더라.

그들이 가난을 맛보지 못해서 일까? 말로만 평등사회를 외쳤지, 생각 따로, 행동 따로였다.

 

그 날 빈곤사회연대 정성철, 김윤영씨를 비롯한 수 많은 단체에서 나와 빈민들의 원성을 전했지만,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전한 김혜진씨의 호소가 귀에 박혔다.

 “어떻게 물건이 아닌 사람에게 등급을 매깁니까?”

 

쪽방촌사람으로는 동자동 사랑방우건일씨를 씨를 비롯한 주민10여명을 만났고,

빈민 운동하는 사진가 최인기씨도 만났다.

 

그 날 외친 구호들이다.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민중복지 쟁취하자!" 
"노점 단속 강제집행 중단용역깡패 해체하라!" 
"허울뿐인 홈리스 복지 개선공공주택 공급하라!" 
"조물주 위에 건물주맘편히 장사하자!" 
"줬다뺏는 기초연금약속대로 이행하라"! 
"복지는 국가책임사회공공성 강화하라!" 
"세월호 진상규명진실을 인양하라!"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책임자를 처벌하라!" 

 

사진, / 조문호

























































 

 





사랑의 빵 나눔 행사를 여는 한강교회 ‘브레드 미니스트리스’에서 지난 15일 동자동 쪽방 촌을 찾았다.

빵을 기다리던 주민들의 행렬은 길게 이어졌다. 평소 방문을 걸어놓고 출입을 삼가 하는 분들도 대부분 나왔다.

아예 깔고 앉을 것 까지 준비해 순번을 지키고 앉았는데, 나처럼 사진 찍으려 어슬렁거리다 보면 국물도 없다.

사진 찍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매번 모자라는 빵을 나까지 축낼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난 거지다. 동자동 쪽방촌에 들어온 후로 한 번도 밥을 해 먹지 않고 얻어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제일 필요한 게 빵이더라. 밥을 얻으면 당장 먹어치워야 하지만, 빵은 두고두고 먹을 수 있고,

반찬이 필요 없으니 어디서나 먹을 수 있다.

그래서 빵 주는 날이면, 다들 한 시간 전에 나와 저렇게 줄지어 기다리는 것이다.

자리 비우면 그만이고, 새치기도 통하지 않는다. 질서 하나는 끝내준다.

그런데, 빵 받는 차례가 적힌 인쇄물 한 장 씩을 나누어주었는데, 거기엔 그 날 부를 찬송가 악보가 인쇄되어 있었다.

선교를 염두에 둔 행사인 건 틀림없지만, 꼭 그렇게 표를 내야 하나?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 듯이, 조용히 자선을 베풀면 더 빛날 걸 왜 모를까.

찬송가 소리가 공원에 울려 퍼졌다.
모두들 입은 흥얼거렸지만, 빵 생각뿐이었다.

“주여! 이 가난한 빈민들을 어찌해야 하나요?”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사진, 글 / 조문호











































지난14일은 ‘동자동 사랑방’에 갔다.
나도 ‘사랑방마을공제협동조합’에 조합원이 되기 위해서다.
가입비 천원과 이 달 출자금 만원을 냈더니, 통장 하나 만들어 주었다.
신용불량자라 통장도 없는데, 입출금이 자유롭진 않지만, 기분 좋더라.






서울 중심의 사각지대에 있는 ‘동자동사랑방’은 쪽방 촌 빈민들의 자립을 돕는 공동체다. 

단발성에 그치거나 명분 내세우기에 급급한 구호의 손길보다, 진정으로 주민들을 도우며 함께 어울리는 곳이다.

조그만 사무실이지만, 주민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는 사랑방 역할도 톡톡히 한다,

비좁은 쪽방에 선반을 만들어 주거나, 물품의 공동구매로 비용을 절감시키는 등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또한 ‘사랑방 식도락’에서는 천 원에 식사를 제공하고, 무료로 책을 빌려주기도 한다.






5년 전, 빈민들이 조금씩 아낀 돈을 출자해 공제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의료비와 주거비 등 긴급한 생활자금이 필요한 조합원들에게 빌려주는 소액대출을 비롯해,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공동사업과 다양한 마을공동체 행사를 벌여, 벼랑에 선 주민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동물원에 먹이 주듯, 밥과 빵이나 던져주는 봉사단체, 조그만 돈으로 안주하게 하는 정부의 빈민정책에 비해서는 훨씬 모범적이다.






그 날은 녹색당 홍보팀장인 한진희씨를 비롯한 여러 명이 ‘동자동사랑방’을 방문하여

우건일 조합장으로부터 쪽방촌의 현안과 문제점을 듣고 있었다.

방문한 젊은이들이야 빈민들의 실태에 당혹스러웠을지 모르지만,

정치하는 인간들은 하나의 도구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 걱정스러웠다.











아무튼 그들과 함께 ‘사랑방 식도락’에서 천 원짜리 식사를 했는데,

소 뼈 목욕한 국물이긴 하지만, 그 날의 메뉴는 곰탕이었다.

젊은이들 입맛에는 맞지 않을텐데, 맛있게 먹어주니 고맙더라.






그런데, 빈민들이 사는 촌방 촌 골목에 어울리지 않는 게스트하우스가 있어 외국인들도 자주 만날 수 있다.



이웃의 한 분은 119요원들에 의해, 병원에 실려 가는 모습도 보았다.

부축하여 간신히 걸음을 옮기는 것으로 보아, 겉 모양은 괜찮으나, 속병이 심각한 것 같더라.

부디 별 탈 없이, 다시 돌아 오길 빌었다.










씁쓸한 마음으로 공원 주변을 한 바퀴 돌았는데,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거나 쓰러져 자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남의 일 같지 않더라. 나도 요즘 밥은 먹기 싫고, 술 생각이 간절한 때가 많으니까...

다행스럽지만, 아무리 술 생각이 나도 혼자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다짐은 한 번도 깨트린 적 없었다.


길거리에 나가면 쪽방촌 사람이나 노숙자들의 술자리가 곳곳에 있지만,

그들을 만나기 위해서 술을 마시지만, 술을 마시기 위해 그들을 만나지는 않는다.

술에 끌려 다니지 않고, 내가 술을 끌고 다니기 위한 나의 철칙이 잘 지켜지길 바랄 뿐이다.









가난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슬픔이 술을 찾게하고, 외로움에 또 한 잔한다.

그들의 고민을 잊게하고 위안해 주는 것은 술 밖에 없다.


세상이 알콜 중독자를 양산 하는 것 같다.



사진, 글 / 조문호
















추교부(52)



동네를 한 바퀴 휘~ 도는 것이 하루의 일과처럼 되어버렸다.
어제는 공원에서 큰 길로 내려가니, 길가 한 쪽에 추교부, 김영훈, 김태식이가 술자리를 만들어 놓았더라.
한 잔 얻어먹으려 끼어 앉았으나, 술이 떨어졌다.
얼른 가서 막걸리 두 병을 사왔더니, 모두 입이 벌어졌다.

“형님이 엿 같은 내 기분을 알아주네!”라며 추교부가 더 좋아했다.
이 친구는 일찍이 광운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그런대로 잘 살았다.
그러나 직장에서 잘려나며 인생막장에 들어 선 것이다.
요즘은 쪽방 얻을 형편도 되지 않아, 친구 쪽방에 끼어 자거나 아무데서나 잔다.

지난밤에는 교회에서 잤는데, 일어나보니 신발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먼저 일어 난 놈이 바꿔 신고 간 모양인데, 헌 운동화 한 컬레만 달랑 남았더란다.
“모처럼 괜찮은 신발 하나 장만했는데, 복도 지지리도 없다”며 투덜댔다.
날씨도 쌀쌀해 지는데다, 돌아다니며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신이라도 편해야 하는데,
큼직한 운동화를 질질 끌고 다닐 일이 보통 일은 아니듯 싶다.

하기야! 남의 신발 바꾸어 신고 간 놈의 사정도 보나마나다.

다들 없이 사는 죄 뿐인데, 교회서 신발을 잃어버렸다기에 피식 웃음이 났다.
어릴 적 동네 꼬마들이 찬송가 곡에다 가사를 바꿔 불렀던 노래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예수 사랑 할라고 예배당에 갔더니, 눈 감아라 해놓고 신발 훔쳐가더라.
내 신 내놔~ 내 신내놔~”

사진, 글 / 조문호

























힘없는 자들이여!
갈 곳 없고 배고픈 자들이여!
우리 다 같이 일어서자.


이번 토요일 오후1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 모이자....
그동안 맺힌 서러움 거리에 나와 풀자.
그리고, 좋은 세상으로 바꾸자.







지난11일 정오 무렵, 밥 얻어먹으려 나갔더니, “형! 술 한잔해요”라며 정대경씨가 손을 끈다.
소주 한 병과 우유 한 팩을 사들고는 구석진 놀이터로 끌고 갔다.
그 때까지 이불을 감고 벤취에 자는 사람도 있었고,
한 쪽에선 열심히 운동 하는 사람도 있었다.

정대경씨는 이미 취기가 돌았고, 난 빈속이라 짜리리리 한 기분이 좋았다.
이 맛 좋아하다간 알중 되기 십상이지만, 좋은 것은 좋은 것이다.

“니는 어디서 자노?”라고 물었더니 손을 내저었다.

그는 여지 것 장가도 못 갔다고 했으나, 안 가길 잘했다 싶다.

혼자만 고생하지 가족까지 개고생시킬 필요는 없지 않은가?


오 갈 때 없는 따라지신세라 방세라도 만들려면 기초생활수급 혜택을 받아야 하는데,

그게 간단치않다. 그래서 병원 다닌 진료기록까지 받아왔다며 보여주었다,

고향은 어디냐고 물었더니, 갑자기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의 감정이 격해졌고, 나도 마음이 아파 잠시 자리를 피했다.

소주 한 병과 육포를 사왔더니, 감정을 삭이고 있었다.


보성에서 자라며 집에 불이 났던 일, 광주5,18때, 복날 개 맞듯, 죽을 뻔 했던 일,
서울 올라와 노가다로 전전하며 어렵게 살아 온 사연 사연을 줄줄이 풀어갔다.
그런데, 아픈 데가 생겨 일용직마저 쫓겨났다는 것이다.
받을 돈이 칠십 만원 남았으나, 이 핑계 저 핑계 둘러대며 오십 만원만 주었는데,
그 마저 술 마시다 어느 놈한테 털려 빈털터리가 되어버렸단다.

대부분의 노숙자들이 정대경씨 처럼 기초생활수급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고, 가슴 아픈 사연도 다 있다.
몸만 움직이면 굶어 죽을 일은 없으나, 날씨마저 추워지니 걱정인 것이다.

정치인들이여! 제발 정신 좀 차리자. 당쟁보다 빈민부터 구제하자.
사대강을 파헤쳐 자연과 함께 수많은 돈을 수장시키지 않았나?
쓸데없는 일에 국고를 탕진하면서 왜 빈민들의 삶은 외면하는가?


그 낭비한 돈의 몇 억분의 일이라도 빈민복지에 보태었다면, 이런 사람 다 구제할 수 있다.
당장 살길이 급한데, 무슨 형식이나 절차가 그렇게도 복잡한가?
더 날씨 추워지기 전에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방부터 마련해 주자.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나?

사진, 글 / 조문호




















코구멍만한 쪽방에도 손님이 찾아온다.
이주용교수와 최건모, 김시우씨는 프린트기 때문에 도와주려 왔었지만,

얼마 되지 않는 기간에 조성기, 최영문, 정중근, 조수빈, 김보섭씨가 다녀갔다.







지난 9일에는 무의도를 예술의 섬으로 만들기 위해 전 재산을 꼴아 바친 정중근씨와

인천의 소리꾼 조수빈씨가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일단, 만나기 쉬운 서울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여성을 고려해 입맛대로 골라 먹을 수 있는 서울역 그릴이 좋을 것 같았다.

쇠고기 전골인지 뭔지 음식은 별로였지만, 식당 분위기는 좋았다.

막걸리도 조그만 유리병에 담겨 나왔는데, 공기 잔에 한 잔씩 마시니 없어졌다.

내가 밥값을 내진 않았지만, 계산은 만만찮을 것이다.






쪽방 지척에 이토록 근사한 곳이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 날은 번잡한 서울역 시설 곳곳을 둘러보느라 눈병 날 번했으나,

사람들이 몰리는 서울역 변두리에는 어김없이 노숙자들이 있었다.





두 분을 쪽방으로 모셔와 겨우 믹스커피 한 잔 대접했다.

두 분 모두 공연이나 축제촬영을 부탁하러 온 고객인데, 이 따위로 처신해 사업이 제대로 돌아갈지 모르겠다.





그 이튿날인 10일엔 사진가 김보섭씨가 찾아왔다.
충무로 ‘브레송’에서 최광호씨 전시 보러 온 김에 들린다고 했다. 전시장에서 먹다 남은 와인을 가져왔는데, 맛이 꽤 괜찮더라.

김보섭씨는 아직 양동 사창가가 남아 있는지 궁금해 하여 양동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돌아 본 것이다.

빌딩 숲 속에 끼어 있는 낡은 골목 곳곳에, 이불 아닌 가난한 사람들의 한숨이 널려있었다.

사진, 글 / 조문호






























나이가 들어가면 짐을 하나씩 버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내짐은 정선 움막에 있고, 작은 짐은 정영신에게 두고, 몸뚱이와 필요한 물건만 챙겨왔으니 너무 홀가분해 좋다.

쪽방 공간이 좁아, 크게 운신할 필요조차 없으니, 몸도 마음도 편한 것이다.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운영하는 ‘해 뜨는 집’ 105호에 살던 김영희씨 방은 짐으로 가득했다.

어디서 버려진 물건들을 주워왔는지, 쓸 만한 물건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석 달 동안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아무튼, 별 탈은 없어야 할텐데...

지난 8일, 그 쪽 방향으로 나갔더니 쪽방상담소 직원들이 그녀의 짐을 끌어내고 있었다.

밀린 방세 때문에 짐을 폐기처분할 모양인데, 좁은 방안에 짐이 얼마나 많은지, 수레로 두 차례나 실어 버리고도 남았다.





쪽방촌 사람들은 늘어나는 짐 때문에 대개 골머리를 앓는다. 심지어는 이웃 짐까지 맡아 곤혹스러워하는 경우도 더러있다.

갔다 올 때 까지 잠시만 맡아 달라했으나,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버리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인 것이다.

신변에 큰 문제만 없다면, 어디선가 또 짐을 모울 것이다. 아니면 짐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던지...

그런데, 짐을 빼낸 ‘해 뜨는 집’ 1층의 방세를 물었더니, 한 달에 16만원이라 했다.

난, 4층인데도 23만원이나 주는데, 귀가 솔깃해 당장 짐을 옮기고 싶었다.

쪽방상담소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싼 모양인데, 한 달 방세 손해 볼 것도 아깝지만, 있는 곳에 정이들어 생각을 접었다.






이제 먹는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지난 7일은 공원에서 빵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민간 봉사단체에서 나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러나 너무 늦어 빵이 모자랐다.  돌아서려는데, 강완우씨가 걸어 와 내 손에 자기 빵 봉지를 슬그머니 쥐어 주었다.

“왜 니 모가치를 내 한테 주노?”했더니, ‘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비시시 웃는다. 빵을 안 좋아하는 놈이 줄은 왜 설까...

이런 인정스러움 때문에 쪽방사람들을 좋아하는 지도 모른다.




그 날은 먹을 복이 많은지, '새꿈나눔터'에서 특별한 무료 급식도 하고 있었다.

‘연세의료원노동조합 행복 나눔 봉사회’에서 나왔는데, 닭다리를 하나씩 준 것이다.

비록 조그만 닭다리가 죽에 꽂혀 있었으나, 닭죽이라 술술 넘어갔다.

어찌 술 마시고 속 쓰린 것 까지 헤아려주니, 고맙기 그지없었다.




지난 8일의 식사는 ‘동자동 사랑방’에서 운영하는 ‘사랑방 식도락’에서 해결했다.

한 끼 천 원씩 받아, 별 반찬은 없으나 씨락국이 시원해 좋다. 내가 앞으로 많이 활용할 식당이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이 운영하는 곳이라 무료배식에서는 맛 볼 수 없는 인정스러움이 있다.





제일 힘든 끼니 때우기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맛나샘’ 무료급식이었다.
일단, 한 끼 얻어먹으려면 한 시간 전에 가서 신청명부에 적고 앉아야한다.

자리가 없으면 복도 계단에 줄지어 쪼그려 앉아,

예수를 믿던 안 믿던 한 시간 넘게 설교를 듣고 기도를 해야한다.

난, 굶어 죽었으면 죽었지 그렇게 못하지만, 갑자기 궁금증이 발동했다.

대관절 얼마나 맛있는 음식을 주 길래 저렇게 까지하며 얻어먹을까? 란 생각이 든것이다.





그래서 지난 11일, 한 번 체험해 보았다.
신청서에 올리고 복도계단에 쪼그려 앉아 내키지 않는 설교와 기도를 들은 것이다.

일단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일하는 사람들의 자세부터 고압적이고 거만했다.

밥 얻어먹으러 온 사람들도 외지에서 왔는지 낮선 사람이 더 많았다.

반찬은 된장국과 돈가스 세 조각, 당면무침 정도였으나, 먹을 만 했다.



교회에서 하는 급식 보다는 카톨릭 단체에서 하는 봉사가 훨씬 신사적이다. 

"카톨릭 평화의 집’에선 월요일과 목요일에 도시락 배달을 하는데, 200여 가구에 한정되어 있다.

 골고루 혜택 받을 수 없는 게 아쉽지만, 봉사란 그렇게 하는 것이다.


좀 귀찮지만, 밥은 얻어 먹는 것 보다 내 손으로 해 먹는 것이 상책인 것 같더라.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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