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남영동노인복지후원회’가 마련한 “2016 효 실천 경노잔치”가 서울시교육시설관리사업소 체육관에서 열렸다.

동자동과 남영동 노인들을 초대한 오찬회였으나, 경노잔치에는 난생 처음 가보았다.

가고 싶은 생각이야 한 번도 없었지만, 동자동에 온 후로 사정이 좀 달라졌다.

사진도 사진이지만, 외출을 꺼리는 동네 분들을 한 자리에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기 때문이다.

위치를 몰라 좀 헤맸으나, 300여명의 노인들이 실내체육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나도 드디어 노인대열에 합류 했구나! 하는 생각이더니 좀 서글퍼지더라.

마냥, 청춘처럼 살아 온 스스로를 되돌아 본 것이다.

곳곳에 낮 익은 분들의 모습이 보였으나, 모두들 음식 대에 길게 늘어 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 역시 맨 뒷자리에 붙어 음식을 챙겨왔으나, 너무 시끄러워 음식이 입에 들어가는지, 코에 들어가는지 정신이 없었다.

무명가수의 뽕짝노래와 각설이패들의 풍물소리가 귀에 쩌렁쩌렁 울렸다.

체육관에 울려 퍼지는 시끄러운 앰프소리로 귀를 막는 분도 계셨다.

추첨해 상품을 주기로 했으나, 식사를 마친 대개의 남자들은 추첨권을 이웃에 넘기고 나가버렸다.

나 역시 나오고 싶었으나 진행과정을 좀 더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낮 뜨거운 추태를 벌였다.

옷을 벗어 어쩌겠다는 건지, 남자 각설이가 무대에 올라 치마를 벗기 시작한 것이다,

얇은 치마를 얼마나 많이 껴입었던지, 열 차례 이상 벗어던졌다, 이번엔 팬티를 벗기 시작했다.

팬티 역시, 수도 없이 벗어 던지더니, 팔뚝만한 가짜 거시기를 꺼냈다.

그리고는 객석으로 내려와 할머니들의 덩어리에다 사타구니를 비벼댔다. 모두들 기겁하였으나, 웃고 넘겼다.

이 건 분명 공공의 장소에서 저 지른 성추행이다. 만약 젊은이였다면 난리났을 일이다.

그리고는 요강단지를 목에 걸고 다니며, 팁도 받아 챙겼다.

어르신께서 식사하는 자리에 어떻게 이런 저질의 공연 패를 불러들였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다른 경노잔치에도 다녀 본 경험이 있는 이웃 이야기로는 대개의 경노잔치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요즘은 각설이패들이 대부분의 경노잔치를 휩쓴다고 했다.

어르신들에게 밥 한 끼 대접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게 하려는 주최 측의 취지야 고맙기 그지없어나,

이제 진행방법 자체를 바꾸었으면 한다. 왜, 가난한 노인들은 고급문화를 누릴 자격이 없는가?

조용한 기악 연주라도 들려 줄 수 없다면 녹음된 음악이라도 틀어, 좋은 분위기에서 식사하게 하자.

모처럼 이웃과 한 자리에 모였으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더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노인들의 성향도 점차 바뀌고 있다. 

그만, 저질스러운 경노잔치는 걷어치우라.

사진,글 / 조문호








































동자동 쪽방촌 사람들은 낮술에 취한다.
일찍부터 마시기 시작해 초저녁만 되면 모두 쪽방으로 들어가는데,
대신 직장인들이 밤거리를 메운다.







나 역시 낮에만 마셨으면 좋겠으나, 밤까지 끌려 다닐 때가 많다.
밤술까지 마시는 날은 온 종일 더러누워 곤욕을 치루지만, 조절이 잘 안 된다.

이 날도 오후7시경, 초상집에 들릴 약속으로 피하기가 어려웠다. 







지난 20일은 공원 귀퉁이에 자리 잡은 여러 사람들과 어울렸다.

정재헌씨와 마시다 안쪽으로 옮겼더니,

교부씨를 비롯해 김진호, 신영진, 이상용씨가 술자리를 깔았더라.







뒤늦게, 처음 보는 김상권씨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노숙자들의 인사법은 특이했다.

명함 건네듯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며 안면을 텄다. 생년월일 따라 형이 되고 아우가 되었다.

쉽게 만나고 기약 없이 헤어지는 방랑자의 삶이지만, 인정은 살아 있었다.

그 자리엔 쪽방 얻을 처지가 못 되는 친구가 둘이나 있어, 막걸리 두 병 사주고 일어섰다.






기초생활수급자도 있었으나, 다들 일할 생각을 안 한다.

            조그만 수입만 생겨도 수급자에서 잘려나니 안 한다. 아니 못하게 한다.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정부가 막는 것이다.








그 날은 또 다른 술자리를 찾았다.

처음 만난 김새길, 한세창씨를 만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씹었다.

동자동 본거지에서는 좀 떨어졌으나, 그들이 사는 모습도 똑 같았다.











돌아오니, 이기영, 강완우, 전 설씨가 어울려 있었는데, 갑자기 구급차 사이렌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병인지 모르지만, 옆 건물에 사는 중늙은이가 병원에 실려 가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천국 갈지도 모른다. 그의 목에 십자가가 걸려 있었거든...































쪽방촌이 저승 가는 길목이던가?

그걸 보니, 갑자기 전인경씨 모친의 부음이 생각났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까지 가야하는데, 술이 취해 걱정되었다.
술김에 택시를 잡아탔으나, 퇴근시간이라 차가 밀려 가슴 조렸다.
다행히 가진 돈을 초과하지 않아, 중간에 내리는 일은 없었다.

이처럼, 사는 게 곡예 하듯, 늘 아슬아슬하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5일 오후3시부터 동자동 ‘새꿈어린이공원’에 아름다운 노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더힘합창단’이 베푼, 쪽방 주민들과 함께한 ‘사랑 믿음 행복의 노래’ 음악회가 열린 것이다.

노수영씨의 지휘와 박수연씨 반주로 진행된 합창은 “온 땅아 주를 경배하라”, “주와 함께 걸어가라” 등

여러 곡을 불렀지만, 주민들이 좋아한 곡은 단 한 곡뿐이었다. 바로 “ 내 나이가 어때서”였다.

사실, 많은 주민들이 모인 것도 참석자에게 나누어 주기로 한 선물 때문이지만,

음악회를 통한 문화의 향기를 누릴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음악회가 끝난 후에는 선물을 받기 위한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선물봉투에는 부탄가스, 고추장, 커피믹스, 김, 물티슈, 떡 등이 골고루 담겨 있었다.

선물을 받은 싱글벙글한 표정들을 보니, 그들에겐 노래보다 선물이 더 행복을 주는 것 같더라.
행복한 노래잔치가 자주 열렸으면 좋겠다.

사진, 글 / 조문호


















































옛말에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었다.

이건 한 참 잘 못된 말이다. 오직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자고로, 없는 자보다 가진 자들의 편에서 정치를 해왔기에, 요 모양 요 꼴이 된 것이다.

 

정치인들이여!

오 갈 때 없는 노숙자나 빈민들의 한 숨 소리에 과연 귀 한번 기울여 보았는가?

 

올 여름 무더위를 누가 가장 힘들어했겠나?

바로, 뜨거운 아스팔트를 헤맨 노숙자나 바람 한 점 들 수 없는 쪽방과 고시원에서 살았던 빈민들이다.

 

그들도 사람이다. 빵 한 조각 던져주면 다 한 것이 아니다.

쓸데없이 탕진한 나랏돈 귀퉁이만 떼 내어도 다 해결할 수 있었다.

 

이제 천벌 받을 짓을 더 이상 하지말자.

 

UN이 정한 세계빈곤퇴치의 날을 맞은 지난 토요일, 가난한 약자들의 모임인

‘1017 빈곤철폐의 날 조직위원회에서 주최한 ‘1017 빈곤철폐퍼레이드가 동대문에서 열렸다.

천 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하여 빈곤철폐를 외치며,

동대문에서 종로, 종각, 청계천 영풍문고에 이르기까지 시가행진을 벌였다.

광교에 도착하여 살인정권을 규탄하는 백남기농민 추모대회로 막을 내렸다.

 

그런데, 썩어빠진 정치판에는 개 떼 처럼 몰리는 기자들이, 가난한 빈민들의 목소리엔 귀를 막더라.

그들이 가난을 맛보지 못해서 일까? 말로만 평등사회를 외쳤지, 생각 따로, 행동 따로였다.

 

그 날 빈곤사회연대 정성철, 김윤영씨를 비롯한 수 많은 단체에서 나와 빈민들의 원성을 전했지만,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전한 김혜진씨의 호소가 귀에 박혔다.

 “어떻게 물건이 아닌 사람에게 등급을 매깁니까?”

 

쪽방촌사람으로는 동자동 사랑방우건일씨를 씨를 비롯한 주민10여명을 만났고,

빈민 운동하는 사진가 최인기씨도 만났다.

 

그 날 외친 구호들이다.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민중복지 쟁취하자!" 
"노점 단속 강제집행 중단용역깡패 해체하라!" 
"허울뿐인 홈리스 복지 개선공공주택 공급하라!" 
"조물주 위에 건물주맘편히 장사하자!" 
"줬다뺏는 기초연금약속대로 이행하라"! 
"복지는 국가책임사회공공성 강화하라!" 
"세월호 진상규명진실을 인양하라!"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책임자를 처벌하라!" 

 

사진, / 조문호

























































 

 





사랑의 빵 나눔 행사를 여는 한강교회 ‘브레드 미니스트리스’에서 지난 15일 동자동 쪽방 촌을 찾았다.

빵을 기다리던 주민들의 행렬은 길게 이어졌다. 평소 방문을 걸어놓고 출입을 삼가 하는 분들도 대부분 나왔다.

아예 깔고 앉을 것 까지 준비해 순번을 지키고 앉았는데, 나처럼 사진 찍으려 어슬렁거리다 보면 국물도 없다.

사진 찍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매번 모자라는 빵을 나까지 축낼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난 거지다. 동자동 쪽방촌에 들어온 후로 한 번도 밥을 해 먹지 않고 얻어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제일 필요한 게 빵이더라. 밥을 얻으면 당장 먹어치워야 하지만, 빵은 두고두고 먹을 수 있고,

반찬이 필요 없으니 어디서나 먹을 수 있다.

그래서 빵 주는 날이면, 다들 한 시간 전에 나와 저렇게 줄지어 기다리는 것이다.

자리 비우면 그만이고, 새치기도 통하지 않는다. 질서 하나는 끝내준다.

그런데, 빵 받는 차례가 적힌 인쇄물 한 장 씩을 나누어주었는데, 거기엔 그 날 부를 찬송가 악보가 인쇄되어 있었다.

선교를 염두에 둔 행사인 건 틀림없지만, 꼭 그렇게 표를 내야 하나?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 듯이, 조용히 자선을 베풀면 더 빛날 걸 왜 모를까.

찬송가 소리가 공원에 울려 퍼졌다.
모두들 입은 흥얼거렸지만, 빵 생각뿐이었다.

“주여! 이 가난한 빈민들을 어찌해야 하나요?”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사진, 글 / 조문호











































지난14일은 ‘동자동 사랑방’에 갔다.
나도 ‘사랑방마을공제협동조합’에 조합원이 되기 위해서다.
가입비 천원과 이 달 출자금 만원을 냈더니, 통장 하나 만들어 주었다.
신용불량자라 통장도 없는데, 입출금이 자유롭진 않지만, 기분 좋더라.






서울 중심의 사각지대에 있는 ‘동자동사랑방’은 쪽방 촌 빈민들의 자립을 돕는 공동체다. 

단발성에 그치거나 명분 내세우기에 급급한 구호의 손길보다, 진정으로 주민들을 도우며 함께 어울리는 곳이다.

조그만 사무실이지만, 주민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는 사랑방 역할도 톡톡히 한다,

비좁은 쪽방에 선반을 만들어 주거나, 물품의 공동구매로 비용을 절감시키는 등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또한 ‘사랑방 식도락’에서는 천 원에 식사를 제공하고, 무료로 책을 빌려주기도 한다.






5년 전, 빈민들이 조금씩 아낀 돈을 출자해 공제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의료비와 주거비 등 긴급한 생활자금이 필요한 조합원들에게 빌려주는 소액대출을 비롯해,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공동사업과 다양한 마을공동체 행사를 벌여, 벼랑에 선 주민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동물원에 먹이 주듯, 밥과 빵이나 던져주는 봉사단체, 조그만 돈으로 안주하게 하는 정부의 빈민정책에 비해서는 훨씬 모범적이다.






그 날은 녹색당 홍보팀장인 한진희씨를 비롯한 여러 명이 ‘동자동사랑방’을 방문하여

우건일 조합장으로부터 쪽방촌의 현안과 문제점을 듣고 있었다.

방문한 젊은이들이야 빈민들의 실태에 당혹스러웠을지 모르지만,

정치하는 인간들은 하나의 도구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 걱정스러웠다.











아무튼 그들과 함께 ‘사랑방 식도락’에서 천 원짜리 식사를 했는데,

소 뼈 목욕한 국물이긴 하지만, 그 날의 메뉴는 곰탕이었다.

젊은이들 입맛에는 맞지 않을텐데, 맛있게 먹어주니 고맙더라.






그런데, 빈민들이 사는 촌방 촌 골목에 어울리지 않는 게스트하우스가 있어 외국인들도 자주 만날 수 있다.



이웃의 한 분은 119요원들에 의해, 병원에 실려 가는 모습도 보았다.

부축하여 간신히 걸음을 옮기는 것으로 보아, 겉 모양은 괜찮으나, 속병이 심각한 것 같더라.

부디 별 탈 없이, 다시 돌아 오길 빌었다.










씁쓸한 마음으로 공원 주변을 한 바퀴 돌았는데,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거나 쓰러져 자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남의 일 같지 않더라. 나도 요즘 밥은 먹기 싫고, 술 생각이 간절한 때가 많으니까...

다행스럽지만, 아무리 술 생각이 나도 혼자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다짐은 한 번도 깨트린 적 없었다.


길거리에 나가면 쪽방촌 사람이나 노숙자들의 술자리가 곳곳에 있지만,

그들을 만나기 위해서 술을 마시지만, 술을 마시기 위해 그들을 만나지는 않는다.

술에 끌려 다니지 않고, 내가 술을 끌고 다니기 위한 나의 철칙이 잘 지켜지길 바랄 뿐이다.









가난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슬픔이 술을 찾게하고, 외로움에 또 한 잔한다.

그들의 고민을 잊게하고 위안해 주는 것은 술 밖에 없다.


세상이 알콜 중독자를 양산 하는 것 같다.



사진, 글 / 조문호
















추교부(52)



동네를 한 바퀴 휘~ 도는 것이 하루의 일과처럼 되어버렸다.
어제는 공원에서 큰 길로 내려가니, 길가 한 쪽에 추교부, 김영훈, 김태식이가 술자리를 만들어 놓았더라.
한 잔 얻어먹으려 끼어 앉았으나, 술이 떨어졌다.
얼른 가서 막걸리 두 병을 사왔더니, 모두 입이 벌어졌다.

“형님이 엿 같은 내 기분을 알아주네!”라며 추교부가 더 좋아했다.
이 친구는 일찍이 광운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그런대로 잘 살았다.
그러나 직장에서 잘려나며 인생막장에 들어 선 것이다.
요즘은 쪽방 얻을 형편도 되지 않아, 친구 쪽방에 끼어 자거나 아무데서나 잔다.

지난밤에는 교회에서 잤는데, 일어나보니 신발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먼저 일어 난 놈이 바꿔 신고 간 모양인데, 헌 운동화 한 컬레만 달랑 남았더란다.
“모처럼 괜찮은 신발 하나 장만했는데, 복도 지지리도 없다”며 투덜댔다.
날씨도 쌀쌀해 지는데다, 돌아다니며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신이라도 편해야 하는데,
큼직한 운동화를 질질 끌고 다닐 일이 보통 일은 아니듯 싶다.

하기야! 남의 신발 바꾸어 신고 간 놈의 사정도 보나마나다.

다들 없이 사는 죄 뿐인데, 교회서 신발을 잃어버렸다기에 피식 웃음이 났다.
어릴 적 동네 꼬마들이 찬송가 곡에다 가사를 바꿔 불렀던 노래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예수 사랑 할라고 예배당에 갔더니, 눈 감아라 해놓고 신발 훔쳐가더라.
내 신 내놔~ 내 신내놔~”

사진, 글 / 조문호

























힘없는 자들이여!
갈 곳 없고 배고픈 자들이여!
우리 다 같이 일어서자.


이번 토요일 오후1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 모이자....
그동안 맺힌 서러움 거리에 나와 풀자.
그리고, 좋은 세상으로 바꾸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