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house

션팍展 / Sean Park / potography

 2013_0710 ▶ 2013_0722

 

션팍 sean park_Healing house 1_피그먼트 프린트_2013

초대일시 / 2013_0710_수요일_05:3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요일_12:00pm~06:30pm


갤러리 그림손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경운동 64-17번지

Tel. +82.2.733.1045~6

www.grimson.co.kr


변방풍경, 달콤하고 우울한 감성이 흐르는 ● Healing house. Sean Park이 자신의 근작에 부친 주제다. 힐링을 주제로 내세운 미디어의 영향이 없지 않지만, 여하튼 힐링이 현대인의 화두로 등극한 개념인 것만큼은 누구도 부인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미디어의 영향을 꼭 부정적으로 볼 일은 아니라고 본다. 여하튼 미디어가 무의식을 파고드는 현대인의 생활필수품목으로 자리를 잡은 한 이를 인정하고 더불어 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힐링이 이처럼 부각되고 있는가. 힐링 신드롬의 사회학적 의미는 무엇인가. 힐링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힐링이란 말 속엔 잘 사는 삶과 행복한 삶에 대한 열망이 들어 있고, 치유가 그 열망을 지지한다. 열망을 뒤집으면 결여가 보이고 치유가 보인다. 치유? 현대인이 병이라도 들었단 말인가. 어떤 병을 어떻게 치유한단 말인가. 여기에 뒤르켐의 문화지체현상에 대해 곱씹어볼 일이다. 현대인의 삶의 질이 문명화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인데, 물질문명(문명)이 내달리는 것에 비해 정신문명(문화)은 미처 이를 따라잡지 못한 채 뒤처지는 현상이다. 그리고 그 벌어진 사이와 차이만큼의 공허감이, 정신적인 패닉상태며 공황상태가 몰려온다. 바로 아노미 현상이다. 여기에 중심의 상실과 신의 상실, 고향의 상실(지정학적 지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실존적인 자의식의 문제?), 그리고 자존감의 상실과 정체성의 상실과 같은, 현대인은 온통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다. 요셉 보이스는 자신을 공공연하게 무당에다 비유했다. 육체적인 질병을 치유하는 의사가 따로 있듯 정신적인 질병을 치유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데, 그가 다름 아닌 무당이고 예술가들이다. 적어도 한 장의 그림이, 한 장의 사진이, 한 장의 이미지가 여전히 감동을 줄 수 있는 한 이 비유는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덩달아 치유를 주제화한 Sean Park의 근작도 이로써 의미를 가질 수가 있을 것이다. ● 작가도 밝히고 있듯 원래 Healing house는 Unknown USA의 두 번째 시리즈로 구상된 것으로서 먼저 선보인 Unknown USA 시리즈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상호 보충적이고 대리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말이다. 그런 만큼 먼저 Unknown USA 시리즈를 살피는 것이 Healing house 시리즈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다. Unknown USA 시리즈는 2012년 2월 미국 도시외곽을 횡단하면서 주로 고속도로 주변의 편의시설이며 소도시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이를테면 모텔과 편의점, 창고와 주유소, 그리고 먼발치에 보이는 담장 뒤편의 주택과 같은. 어떤 사진들은 작가와 마찬가지의 변방풍경을 통해 현대인의 고독과 쓸쓸한 정감을 자아낸 에드워드 호퍼의 풍경화를 떠올리게 한다(특히 호퍼의 풍경화에서 예각과 부감법의 구도가 심리적 긴장감과 함께 공허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하튼). 이처럼 이 일련의 사진들이 기록해 보여주고 있는 도시외곽의 정경들은 흔히 미국과 관련해 알려진 선입견과는 사뭇 다른 지점을 짚어낸다. 말하자면 소위 아메리칸드림으로 꿈꿔지는 소비지상주의나 팍스아메리카나로 대변되는 미국 주도의 세계평화 내지는 미국식 패권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경제 강국의 이미지와는 차별화된다. 어쩌면 작가는 경제 강국의 이미지에 가린 미국의 그림자를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Unknown USA라는 주제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익명의, 무명의 미국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이방인의 눈에 비친 미국 내지는 미국의 실재가 그 하나이고, 미국인의 눈에 비친 미국 내지는 미국의 실재가 그 다른 의미이다. 이방인의 눈에 미국이 익명으로 무명으로 와 닿았듯 미국인의 눈에 미국이 익명으로 무명으로 비친다? 바로 미국 속의 또 다른 미국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외곽풍경이며 변방풍경을 떠올릴 일이다. 미국의 가장자리에 해당하는 삶의 풍경들이다. 어쩌면 치열한 삶이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잠깐 들렀다 가는, 현실에 정박되기보다는 부유하는 삶의 풍경들이다. 그렇게 부유하는 변방풍경 위로 우수가 위안처럼 내려앉는다.

 


션팍 sean park_Healing house 2_피그먼트 프린트_2013

 

 

 

션팍 sean park_Healing house 3_피그먼트 프린트_2013

Healing house 시리즈는 2013년 2월 촬영한, 역시 도시 외곽의 소시민들의 가정집을 소재로 한 사진이다. 마찬가지로 변방풍경을 소재로 한 것이란 점에서 Unknown USA 시리즈와 통하고, 소시민의 가정집을 소재로 한 것이란 점에서 모텔과 편의점, 창고와 주유소 등 고속도로변 근린시설을 소재로 한 Unknown USA 시리즈와 다르다. Unknown USA 시리즈가 지나가면서 봤다면, Healing house 시리즈는 그렇게 지나쳐본 풍경의 속살이며 실체 속으로 파고든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자본주의의 꽃(?)이랄 수 있는 도시로부터 멀찌감치 동떨어진 도시외곽의 속살을 파고들면 무엇이 보이는가. 그곳엔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 정적이고 고즈넉한 삶의 풍경이 있었다. 도시와 외곽은 시간과 속도에서 차이가 난다. 도심에 가까울수록 시간도 속도도 빨리 흐른다. 반면 외곽에 가까울수록 시간도 속도도 느리게 흐른다. 그렇게 느리게 흐르다가 종래에는 정지된 듯 보이고 정적으로 보인다. 그렇게 시간도 속도도 멈춘 정경이 비현실적으로 보이고,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벌어진 틈 사이로 정적이 감돌고 정서가 파고든다. ● 작가의 사진을 보면서 불현듯 그림 같은 풍경이라고 생각했다. 풍부한 중간계조와 색감이 가옥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는 사진이 감각적 쾌감을 자아낸다. 어떤 인공적인 조명도, 색 보정과 같은 디지털 과정도 거치지 않은 사진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로댕은 조각가가 할 일은 다만 자연을 충실하게 옮기는 일이라고 했다. 자연 속에 이미 다 들어있다고 했다. 아마도 작가는 감각이 정점을 찍는 시간에 바로 그곳에 있었을 것이다. 감각이 정점을 찍는 시간? 색감과 질감과 분위기가 어우러져서 감각적 쾌감이 고조되는 시간? 사실 그 시간에 대한 감지 중 반쯤은 자연으로부터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작가로부터 건너가고 건너온 것으로 보아야 한다. 자연도 자연이지만, 자연현상에 대한 감지는 작가의 몫이다. 여기에 사진의 본질은 마법이라고 생각을 했다. 사진은 번듯한 것보다는 남루한 것들에, 번쩍거리는 것보다는 쇄락한 것들에, 시간을 지배하는 것보다는 시간에 침식당한 것들에 더 호의적인 것 같다. 그렇게 도심으로부터, 자본주의로부터 멀찌감치 동떨어진 외곽풍경이며 변방풍경 위로, 소박한 삶의 정경 위로 자연은 자신의 색감이며 질감을 내어주고 있었다. 그림 같은 풍경이란 말은 원래 낭만주의 풍경화에서 유래한 것이다.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 정적이 감도는, 폐허 이미지가 향수를 자극하는, 쇄락해가는 것들이 쓸쓸하고 우울한 감성을 자아내는 풍경들이다. 시대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고 배경도 다르지만, 작가의 사진 속엔 이런 낭만주의 유전자가 흐른다. 달콤한 우울이랄지 아님 우수 같은. 투명하고 맑은 하늘색이 이런 감성에 깊이를 더한다.

 


션팍 sean park_Healing house 4_피그먼트 프린트_2013

 

 

션팍 sean park_Healing house 5_피그먼트 프린트_2013

사진에는 여러 질이 있다. 도큐멘터와 르포르타주 같은 현실을 기록하고 증언하는 사진이 있는가 하면, 감각적 쾌감에 초점을 맞춘 정서적인 사진도 있다. 이 가운데 작가의 사진은 외관상 현실을 기록하고 증언하는(이를테면 미국 외곽도시의 면면들을 통해 미국의 그림자를 기록하고 증언한다는) 유형학적 사진의 범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흔히 유형학적 사진이 간과하고 있는 정서적 환기를 취하고 있는 점이 다르다. 표면이 유형학이라면 그 속살은 정서다. 작가는 색감이며 질감이 사진의 표면 위로 밀어올린 반쯤은 우울하고 반쯤은 달콤한 그 감성으로 하여금 삭막한 도시인들에게 치유가 되고 싶고 위안이 되고 싶다. ■ 고충환

 


션팍 sean park_Healing house 6_피그먼트 프린트_2013

Healing house ● 이번 작품은 "Unknown USA"의 두 번째 작품 시리즈 중 "Healing house" 작업들이다. 2013년 2월 촬영한 이번 작품들은 급변해 가는 대도시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마치 시간이 정지되어 버린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예전과 지금 무엇 하나 현대적으로 변화하지 못한 소시민들의 가정집이 이번 "Healing house"의 소재가 되었다. 웅장한 콘크리트 구조 위에 대형 유리 그리고 화려한 네온사인 사이에 살고 있는 도시 속에 현대인들. 그들은 자본주의가 만들어 준 엄청난 편리함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대도시가 한눈에 들어오는 화려한 풍경, 그 앞에서 그들은 또 다른 성공을 꿈꾸고 또한 막대한 스트레스를 견뎌내며 살아가고 있다. 과연 현대인들은 이러한 딱딱한 CUBIC 공간에서 마음에 안정과 휴식을 느낄 수 있을까? 대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고층 건물보다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땅과 가깝고 자연에 가깝게 살아가고 있는 소시민들의 집에서 작가는 좀 더 진정한 휴식과 안정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이번 "Healing houses"작업들이 어쩔 수 없이 대도시에 삭막함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을 Healing 해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작업이라고 작가는 말 할 수 있다. ■ 션팍

 


션팍 sean park_Healing house 7_피그먼트 프린트_2013


Can you hear me?

성정원展 / SUNGJUNGWON / 成政原 / installation

2013_0710 ▶ 2013_0719

 


성정원_can you hear me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10413g | 성정원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공휴일_11:00am~07:00pm


갤러리 룩스GALLERY LUX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5번지 인덕빌딩 3층

Tel. +82.2.720.8488

www.gallerylux.net


성정원-귀가 된 몸, 컵에 담긴 귀 ● 편지와 전보가 사라진 자리에 전화기와 인터넷, 그리고 스마트폰이 사람과 사람사이의 말을 전한다. 오늘날 종이위에 자신의 필치로 문자를 써내려간 편지를 남기는 이는 거의 없어졌다. 포스트잇에 쓴 간단한 메모라면 모를까 필적을 가늠할 편지는 더 이상 구경하기 힘들어졌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던 시대에 사람들은 편지와 전보를 통해 구구절절한 사연을 남기며 먼 곳의 그 누군가와 간절한 소통을 갈망했었다. 오히려 당시의 문장들이 여전히 가슴을 저미게 하는 힘이 있다. 문자들의 진정성이 살아있다. 이제는 스마트폰의 자판에 닭이 모이를 쪼듯이, 손가락을 찍어가면서 단축된 대화를 이어가거나 압축된 말을 전한다. 상대방의 음성도 사라지고 그 자리에 즉물적인 문자만이 줄을 잇는다. 자신의 복잡한 내면이나 굴곡 심한 감정의 상태를 울려주는 목소리를 지우는 한편 상대방의 성대에서 번져 나오는 소리에 일일이 응답하거나 반응하기에 피곤해하며 건조한 문자, 혹은 무의미한 단어들만을 던진다. 소통의 수단과 그 편리성은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그것이 진정한 소통으로 기능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소통이 흘러넘치는 시대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 소통의 불확실성 때문에, 불통때문에 힘들어하고 상처를 받는다. 너무 많은 말들이, 말도 되지 않는 말들이, 거짓된 말들이 진실을 뒤덮고 있다.

 


성정원_can you hear me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3

 

 

성정원_can you hear me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3

성정원은 모르스부호이미지와 컵을 이용한 작업을 통해 '소통'에 대해 질문한다. 그녀는 디지털프린트된 모르스부호를 벽면에 가설하고 천장에는 컵을 뒤집어서 매달았다. 그것은 마치 갓을 쓴 알전구처럼 늘어져있다. 벽면에는 그림을 그리고(벽에 부착한 프린트) 종이컵은 바닥을 향해 내려져있다. 컵의 내부, 바닥은 하나의 점이고 원이다. 아랫면보다 넓고 큰 컵의 윗면(원형)을 귀에 갖다 대면 모르스부호음이 울린다. "뚜우-뚜-뚜우-뚜뚜뚜뚜뚜" ● 그 소리는 추억과 향수를 아련하게 떠올려주는 신호음이다. 모르스부호음을 듣게 된 것이 얼마만일까? 가끔 항해중인 선박에서 아직도 저 작은 쇳덩어리를 통신장의 손가락으로 눌러가며 길고 짧은 소리를 내기도 하겠지만 지금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통신수단이고 소통의 도구였다. 화가이자 뉴욕대학의 교수였던 사무엘 모르스는 1844년 자신이 발명한 전신기과 모르스부호를 사용해 처음으로 타전에 성공한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긴급전문을 보낼 때 사용하던 통신방식이기도 했던 모르스부호는 상대에게 내 메시지를 전달 할 수 있는 가장 간편하고 또 가장 강력한 방식이었다. 길고 짧은 음을 반복하고 선과 점으로만 이루어진 이미지를 지닌 이 모르스부호는 그 시절 세계인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용언어였다. 쉿덩어리를 손가락으로 눌러 전기를 보내고 이를 눈으로 볼 수 있게 바꾼 모르스부호는 장음과 단음으로 통신을 하는 1차원적인 통신방식이었다. 또한 그 부호이미지는 완전한 추상언어다. 점(원)과 선(직선, 사각형)으로 모든 것을 환원한 모습은 그대로 모더니즘의 조형언어이기도 하다.

 


성정원_can you hear me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3

 

 

성정원_can you hear me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3

성정원은 그 모르스부호를 벽면에 횡으로 부착하는 한편 그 소리를 컵을 통해 은밀하게 들려주는 공간을 가설했다. 벽에 그려진 그림(벽화)과 일상용 오브제인 컵, 그리고 소리가 모두 모여 있다. 회화와 조각, 음향이 어우러진 설치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음향으로 들리는 모르스부호가 이미지화되는 순간 특정한 의미체계를 지닌 문자가 된다. 이미지가 문자로 탈바꿈하고 변이를 일으킨다. 그 이미지는 점과 선으로만 형성되었고 점과 선의 교차와 배열의 변수들이 모여 가장 단순하면서도 선명한 소통기호, 그림을 만들어준다. 전시장의 흰 벽을 배경으로 점과 선들이 벽에 일렬로 배열되어 퍼져나간다. 마치 소리가 울리듯이, 파장을 일으키듯이 이어진다. 그것이 그친 자리에 작게 쓰여진 문장이 그 모르스부호가 무슨 뜻인지를 지시한다. "조용히 해주세요", "당신을 사랑합니다". "엄마 아빠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오래사세요" 등의 문장이다. 어딘지 간절하고 슬프고 아련하다. ● 벽으로부터 일정한 거리에 걸려있는 종이컵을 집어 들고 귀에 갖다 대면 그 모르스부호음이 들린다. 컵은 스피커가 되어 소리를 증폭시켜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집중시킨다. 물을 담아먹거나 음료수를 마시기 위해 사용하는 일회용 종이컵이 순간 미지의 신호음을 발산하고 아득한 시간의 추억을 상기시켜주면서 청자의 귀를 독점한다. 오로지 컵과 그 컵에 귀를 맡긴 누군가의 고막만이 독대하는 순간이다. 컵의 윗부분은 온전히 귀를 감싸고 그 귀를 소리에 집중시킨다. 그는 자신의 온 몸이 하나의 귀가 되어 그 컵 안으로 빨려들어간다. 한 개인의 몸이 컵에 담긴 형국이다. 청자는 단순한 신호음을 주의 깊게 경청하며 그 미지의 신호음이 발산하는 의미체계를 막연하게 추측할 것이고 그러다 문득 벽면에 쓰여져 있는 문자를 보면서 비로소 모르스부호음이 무슨 내용인지를 파악하게 될 것이다. 작가는 이제는 잊혀지고 사라지는 모르스부호라는 소통의 체계를 끌어들여 아득한 먼 곳의 누군가와 전기신호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소통하려 했던 당시의 간절한 욕망을 문득 상기시켜준다.

 


성정원_can you hear me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3

 

 

성정원_can you hear me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3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와 소통을 해야 살며 살기위해서 무수한 소통은 또한 요구된다. 그러나 우리는 매순간 그 소통의 불통과 불확실성에 대해, 그리고 소통의 좌절에 따른 절망감과 오독에 대해 상처를 받거나 곤혹스러워한다. 인간과 인간이 이룬 문자와 다양한 기호체계들이 과연 인간의 진정한 소통을 어디까지 가능하게 할 수 있을 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소유하며 그것을 갖고 수시로 문자를 주고받으며 또한 그것 없는 삶을 상상하기 어려워하는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사회는 여전히 소통되지 못하는 단절과 소외 속에서 고독하다. 우리는 누군가의 말을 좀 더 경청하고 주의 깊게 들어야 하며 더불어 진실된 말과 소통 가능한 언어의 사용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말이 왜곡되고 일방적인 소통이 강제되는 시대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소통'인 셈이다. 성정원의 이 매력적인 설치작업은 우리로 하여금 새삼 소통의 진정성과 그 간절함을 생각해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준다. 문득 내 몸이 하나의 귀가 되어 컵 안에 마치 태아처럼 잠기는 꿈을 꾼다. 양수 속에서 듣던 어머니의 내부와 그 밖의 세계에 귀 기울이며 웅크려있던 그 시절을 상상한다. ■ 박영택

Vol.20130710d | 성정원展 / SUNGJUNGWON / 成政原 / installation


사람의 집_proxemics : 근접 공간 학 / 생존의 건축 '부산'

강홍구展 / KANGHONGGOO / 姜洪求 / photography

2013_0704 ▶ 2013_0730 / 일요일 휴관

 

강홍구_매축지 25_피그먼트 프린트_100×200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30704a | 강홍구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요일 휴관


트렁크갤러리TRUNK GALLERY

서울 종로구 소격동 128-3번지

Tel. +82.2.3210.1233www.trunkgallery.com


강홍구는 "집"을 소재로 한 작업이 많다. 그 중 "풍경과 놀다(Play with Landscape)의 미키네 집"에서 미키네 집은 구름과 가까운 언덕 위에 전망이 좋은 곳에 미키네 집이 올라 앉혀 있다. 그런데 그 집이 철거당해 갈 곳 없는 미키네 집은 철근더미에 얹혀있게 된다. 전망 좋은 달동네에서 밀려나게 되는 저 소득자들의 형편이 읽혀져 있다. 그리고 집(The House)"작업에서는 자신의 집에 대한 꿈 이야기를 말했다. 자신이 세 들어 살 집을 찾는 꿈과 세든 집에서 생긴 문제해결을 위해 애쓰는 이야기를, 세든 집의 벽지에 빗물로 얼룩져 핀 곰팡이, 비틀린 문, 습기 찬 바닥, 구멍 뚫린 장판들에 대처하는 안타까운 이야기들을 보여 주었다. 작가가 "집" 작업을 하면서 일종의 "업(業)"이라고 까지 말 하니 안타까움의 연장선이 아닐까 싶다. 누구에게나 "집"에 대한 욕망이 있다. 그러나 현실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을 때는 마음의 안타까움이 큰 것 같다. 그래서 개념의 차원이 매번 다르게 발표되는 강홍구의 「집」작업에서는 집에 대한 생각의 변화를 읽게 한다. 올 초 부산 고은사진미술관에서 발표된 연례기획 「부산참견록」의 작품들을 7월 같은 시기에 갤러리 원 앤 제이와 트렁크갤러리에 나누어 전시하기로 했다. 실재하는 산동네의 공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곳에서 "숨겨진 차원"을 발견한 작업들이라 생각된다.

 


강홍구_영도 08_피그먼트 프린트_100×120cm_2012

 

 

강홍구_우암 03_피그먼트 프린트_100×120cm_2012

...처음 부산 산동네 사진을 찍으려고 갔을 때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 마을 집들의 다양성과 비좁은 공간을 탁월하게 이용하는 효율성이었다. 예를 들면 어떻게든 주거면적을 넓히기 위해 일층 보다 이층을 조금 더 넓게 지은 <한 뼘 이층>이라고 부르는 집들이 그런 예의 하나가 될 것이다. 산동네를 구성하고 있는 집들은 생존의 건축, 집 짓기의 밑바닥, 건축가 없는 건축, 원초적 건축, 따위로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좀 더 전문적인 용어로 토속적 건축을 의미하는 "버네큘러 건축 vernacular architecture"의 전형을 본 것 이었다. 하지만 내 작업은 산동네의 골목골목 길, 그 공간에 있는 가지각색의 집들, 이곳 저곳의 계단들, 시선을 높여야 되는 옥상들이 보여주는 경이로운 경관을 표현하는 데는 턱도 없이 모자란다 싶다. 아니 애초부터 말로 이를 수 없는 곳에 그 집과 마을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았다.

 


강홍구_서동 07 09 08_피그먼트 프린트_200×70cm_2012

나는 건축가들이 지은 건물들에 대해 거부감이 좀 있다. 아니 거부감이라기보다는 심리적 거리감이라고 할까, 정서적인 불편함이라고 해야 할까. 유명한 건물들, 현대식 건물들에 대해서는 머리로는 이해를 하겠지만 공감이 가지는 않는다. 그것은 건물들이 공장에서 생산된 물건들과 비슷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좀 더 그럴듯하게 지으려 한 건물들일수록 그런 기분은 심해진다. 예를 들면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서울 동대문 운동장 자리에 들어선 건물이 짜증이 난다. 자의식이 너무 강하게 들어나, 모든 것을 다 무시하겠다는 오만한 태도가 곳곳에 붙어 있어서다. 공격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방어적이다. 내 작품을 몰라주면 안 되는 데 하는 불안감이 너무 싫다. 건물 전체에 자신감이 없다. 산동네의 집들은 그런 자의식이 없다. 계단과 난간과 지붕과, 옥상과 이층 모두 다 솔직하다. 물론 살기는 불편할 것이다. 좁고, 통풍도 잘 안되고 화장실도 없는 집이 많으며, 사생활의 비밀 보장도 거의 불가능하다. 대신에 거기에는 일종의 자신감과 사람이 꼭 필요해서 지었다는 느낌이 있다. 절실함이 건물, 길, 골목, 계단 곳곳에 스며있다. 그렇다고 그 절실함이 공격적이지는 않다. 아마도 그것은 주거지를 마련하는 게 우선이었던 집과 마을에 축적된 시간과 역사 때문인지도 모른다... ■ 강홍구

 


강홍구_안창15_피그먼트 프린트_90×225cm_2012

 

 

강홍구_안창17_피그먼트 프린트_80×240cm_2012

강홍구 작가의 부산 산동네 작업에서 그는 그곳의 집들이 사는 사람들에 맞춰 지어진 "집"이라서 그 집사람을 닮은, 그 사람을 보듬어 주는, 그 사람들에 어울리는 "집"을 발견했던 것 같다. 실제면적의 공간으로 본 것이 아닌, 인간을 배려한 공간, 그래서 눈에는 보이지는 않으나 따뜻하고, 친밀하고, 감미로운 공간들로 읽혀짐을 발견한 것이다. 작가는 "토속적 건축 버네큘러 건축(Vernacuiar architecture) 美 를 발견했고, 토속적 건축미를 찬양하고 싶어 졌다. 그래서 "Proxemics 근접 공간 학" 개념을 실재로 보여주는 작업으로, 좁은 공간의 美, 생존의 공간 美를 보여 주겠다는 작업을 한 것이다. 강홍구는 "프로세믹스 Proxemics" 개념으로 부산의 산동네를 읽어 내었기에 우리들이 사람과 사람이 거리를 유지 하는 방식을, 인간이 어떻게 공간을 생산하고 조직하고 소비하는지를 거쳐, 문화에 따라 공간에 대한 인식과 사용방식이 다양하게 다르다는 것을 이해 할 수있게 한다. 그런가 하면 이 작업들은 '에드워드 홀'의 "숨겨진 차원을 발견하는 미학", "근접 공간 학의 美"를 읽어내게 하는 작업임이 분명하다. 아마도 이번 강홍구 작가의 작업은 그래서 강홍구의 "집에 대한 미", 그 것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집"개념이 형성되지 않을까 싶다. ■ 박영숙

Vol.20130704e | 강홍구展 / KANGHONGGOO / 姜洪求 / photography


Mystical Light(신비한 빛) : Light & Revelation(빛과 현시)

이정록展 / LEEJEONGLOK / 李正錄 / photography

2013_0704 ▶ 2013_0727 / 일요일 휴관

 

 

이정록_사적성소 p#10_피그먼트 프린트_120×90cm_2010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21203l | 이정록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 휴관


빛갤러리VIT GALLERY

서울 종로구 소격동 76번지 인곡빌딩 B1

Tel. +82.2.720.2250Vitgallery.com


자연은 복합적인 장소다. 친근하다가도 생소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두렵고, 모두가 공유하는 사회적 장소이면서도 지극히 개인적인 장소이다. 자연은 특정한 시. 공간 속에서 매번 다르게 이해되어왔으며, 역사적, 문화적 해석에 의해 새롭게 환생해 왔다. 자연은 거대한 텍스트며, 실존의 장이자 심미적 공간이다. 동일 문화권 내의 구성원들에게 유토피아 像을 심어준다. 무엇보다도 하늘과 바다, 숲과 나무는 원초적으로 신화의 배경 무대이다. 우리는 그 자연으로 부터 태어나 이곳까지 왔을 것이다. 그래서 새삼 자연 앞에 서면 자신의 근원에 대해 불현듯 생각에 잠기는 지도 모르겠다. 아득한 시간의 지층과 결을 간직하면서 지금의 나를 부풀어 올려낸 존재에 대해 말이다.

 


이정록_Decoding Scape01_C 타입 프린트_120×160cm_2011

 

 

이정록_Decoding Scape22_C 타입 프린트_120×160cm_2011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한 유년시절의 추억과 경험, 이정록 사진의 근원이다. 그동안 정신적 토양으로 자리 한 자연/땅의 힘과 경이, 그에 대해 집단 무의식적으로 내려온 한국인들이 지닌 하나의 '아키타입화 된 풍경'을 찍어온 그는 특히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남녘땅을 소재로 삼아왔다. 그 사진들은 우리민족의 고유한 풍경에 대한 질문이자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한국적인 미의식의 일단을 재현하는 작업이고, 전통적인 풍수에 기인한 가장 한국적인 풍경을 표상화 하는 작업인 셈이다. 그의 작업들은 그 얼마의 시간이 흐르며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전 사진에서는 흔하게 보았던 한국의 자연을 단순하고 아름답게 펼쳐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납작하게 엎드려 누운 땅(밭), 갯벌, 고인돌이 놓인 대지, 대나무 숲, 그리고 커다란 나무 한 그루 놓인 강가 등이 적막하고 다소 숭고하게 자리했는데 그 안에 원구들이 배치되었거나 불빛 등이 반짝인다.

 


이종록_Tree of life #2-6_피그먼트 프린트_120×160cm_2009

 

 

이정록_사적성소 p#7-1_C 타입 프린트_120×160cm_2008

좋은 사진, 의미 있는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난 편안한 놀이로 사진을 대하고 있고, 그렇게 해서 만난 자연풍경에서 날것으로 만나는 감흥과 직관적인 느낌을 건져 올리고자 한 것이다. 그는 이 사진에 '신화적 풍경' 이란 제목을 달아주었다. 이 시리즈는 단순히 자신이 본 특정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기 보다는 풍경을 매개로 특정 장소나 사물에 대한 정신적이고 영적인 느낌이나 상상들을 가시적인 실재로 만드는 것이다. 그는 특정 장소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것을 시각적 대상으로 다시 재현한다. 그것은 이미 있는 것을 토대로 그 위에, 그 안에, 다시 자신이 보고 싶고 보았다고 여겨지는 것을 배치하는 방식이다. 작가는 풍경작업을 하면서 절대적이고 근원적인 자연의 힘을 더욱 느꼈다며, 보이지 않는 실재에 의해 움직이는 자연 세계에 대해 겸허한 자세를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특정 풍경과 마주치게 되면 마치 자신이 현실세계를 넘어선 피안의 세계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받는 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자연으로부터 받은 감응을 전하는 도구가 되고, 사람들이 받는 감동 역시 자신이 느낀 감정과 일치하기를 원한다고도 말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정록이 보여주는 이 '신화적 풍경'은 단지 보는 이의 눈을 자극하거나 감성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어루만지는 치유의 풍경이고자 하는 것 같다. ■ 박영택

 


이정록_Mythic Scape24 생명나무#4_C 타입 라이트젯 프린트_90×120cm_2007

 

 

이정록_Mythic Scape23 호수#5_C 타입 라이트젯 프린트_60×140cm_2007

하이데거에 따르면 언어는 존재론적이지 인간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발명된 도구가 아니다. 다시 말해 말과 언어란 의사소통을 위하여 인간이 고안해 내고 약속한 기호 체계가 아니라 사물이 그 안에서 존재를 드러내고 존재하는 존재의 집인 것이다. ● 또한 발터 벤야민은 언어는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사물(존재)이 언어를 갖고 있으며, '말함'으로써 사물이 창조되고 인식된다고 보았다. 언어의 본질을 발견하여 그것을 '이름' 했기 때문에 이름 자체가 본질을 드러내고 사물, 자연과 인간은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한글 자음만 가지고 진리를 이야기하는데, 대표적인 예가 ㅁ ㅂ ㅍ ㅅ(물, 불, 풀, 생명)이다. 땅에서 올라오는 물과 하늘에서 내려오는 불이 합쳐져서 생명(ㅅ)인 풀이 된다는 것. 곧 하늘과 땅이 만나 생명을 키워 낸다는 뜻이다. 천지인 삼재사상이다. ● 나는 이번 작업을 통해 소리 문자인 한글을 뜻 글자로 읽어 내고 상형문자로 봄으로써 그 속에서 자연의 의미를 풀어내고 소통을 시도하고자 한다. 자연을 관찰하고 더 나아가 자연과 공명하며 그 언어의 본질을 읽어 내서 한글 기호로 가시화하는 것이다. 음성, 파동, 형상 등의 요소를 복합적으로 내포한 언어성을 표현할 때는 '빛'을 끌어 왔다. 장노출 상태에서 스트로보를 사용하여 특정 형상을 빛으로 뿜어내고 숨, 아우라, 파동 등의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빛의 번짐 효과를 이용했다. ● 벤야민은 살아 있는 자연에서든 살아 있지 않는 자연에서든 언어에 참여하지 않은 사건이나 사물이란 없다고 한다. 모든 사건이나 사물은 본질적으로 그 자체의 정신적 내용을 전달하게끔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어가 한갓 자의적 기호나 전달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개별적 고유성이 무시되고 사물의 정신적 언어적 본질이 부정된다. 즉 자연은 인간의 도구,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목소리를 가지지 않는 사물들에게 인간의 언어로 그 언어의 본질에 맞는 음성을 부여할 때 자연은 더 이상 단순한 인식의 대상이 아닌 소통의 상대가 될 것이다. ● 바람과 태양에 의해 순간에 드러나는 주관적 아름다움을 가리키는 '풍경'이라는 언어보다, 균일성과 등가성이라는 세계 공통의 해석을 적용한 객관적 형상을 의미하는 '경관'이라는 언어가 득세했다고 말한다. 자연을 소통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인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풍경이란 눈에 보이는 대지의 모습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계기로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이미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바라본 풍경이 말 걸어 주기를 기다리며 그 풍경을 한글에 기초한 나의 언어로 해석하여 필름에 기록함으로써 소통을 시도한다. ■ 이정록

Vol.20130626c | 이정록展 / LEEJEONGLOK / 李正錄 / photography

별을 이야기 하다

이효문展 / LEEHYOMOON / 李孝文 / sculpture

2013_0710 ▶ 2013_0716

 초대일시 / 2013_0710_수요일_06:30pm_인사아트센터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이효문-별을 이야기하다

 

인사아트센터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JEONBUK PROVINCE ART MUSEUM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인사아트센터 제1전시실

Tel. +82.2.720.4354

www.jbartmuse.go.kr



큐브와 픽셀로 이루어진 순환적 질서 ● 조각은 어떠한 재료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재료 선택이 중요하다. 이는 조각만이 갖고 있는 물성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다. 이효문은 목재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갖고 있으며 재료의 속성 자체를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론으로 나무를 응용하고 있다. 나무를 소재로 나타난 조형은 순수성을 메시지로 재발견하여 나타내고 형태는 또 하나의 상징적 기호를 갖는다. 형태를 기호와 단순한 의미전달체로 본다는 것은 형태에 압축된 다양한 의미의 미니멀리즘적인 가치를 뜻한다. 이러한 형태는 상상의 세계에서 연장되고 퍼져 나가는데, 이효문은 내면의 세계를 시각적 형태로 또 다른 조형으로 표현하여 나타낸다.


이효문_별을 이야기 하다_참죽나무, 느티나무_2013_부분

인체를 변형한 이전의 작품에서도 보듯이, 그는 처음부터 사실성과의 대결을 포기한다. 이번 작업에서는 거대한 원통형 통나무 덩어리를 전기톱으로 일정한 크기로 자르고 다듬고 블록을 만든다. 이를 다시 수많은 큐브와 입방체, 곡선으로 휘어진 나무 띠 형태로 잘게 나눈다. 그러고 나서 그 조각들을 우주의 별과 같은 형상처럼 마치 수백만 년 전에 융기와 침식을 통해 독특한 지형으로 형성되었을 미세한 자연의 주름을 더듬어 가듯이 하나하나 재조립해 나간다. 이처럼 불규칙적 형상은 각각의 개별성으로 인해 보는 사람에 따라 이미지가 다를 수가 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 입력되거나 무의식 속에 저장된 별의 이미지는 일종의 이상향으로 특정한 별의 재현이기보다는 우주 전체에 존재하는 별의 은유적 닮음 꼴로 작용한다. ● 하나하나 작은 픽셀이 모여서 탄생한 덩어리는 지난하고 고된 노동이 수반된 마치 벌이 집을 짓는 듯한, 방식으로 더욱 견고한 형태를 만든다. 그것이 주는 것은 치밀한 계산에서 비롯된 차가움이 아닌 고된 노동의 과정에서 느껴지는 편안함과 고요함이다. 아마 모르긴 해도 지루하게 반복되는 과정과 지난한 노동과정 속에서 작가는 자신의 존재를 반쯤은 무의식적인 상태로 방기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고서는 엄정한 반복패턴을 보여주고 있는 화면이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을 것 같고 최소한의 우연한 계기마저도 들어설 자리가 없을 것 같다. ● 이런 과정들을 통해 얻어진 큐브와 픽셀은 여전히 수고로운 과정을 거친 작가만의 시간성과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게 된다. 작가에게 있어서 작품의 제작과정은 그것에 대한 결과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기교보다는 감동을 표현하려고 의도하는 작가에게 있어 더욱 중요한 것은 외형적인 표피가 아닌 그 속에 내재된 정신성이기 때문이다.

 


이효문_별을 이야기 하다_참죽나무, 느티나무에 아크릴채색_33×98×97cm_2012

또한 작업에선 반복된 패턴이 두드러져 보이는데, 여기서 패턴은 리듬과 운율과 서로 통한다. 오밀조밀한 큐브는 마치 옵아트에서처럼 미세하게 여울지거나 일렁이는 것 같고 돌출돼 보이는 큐브들의 각 면에 부딪쳐 빛이 섬세하게 산란하는 것도 같다. 화면 자체는 비록 정지된 것이지만 착시효과로 인해 큐브는 미세한 생명체가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이고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져 각각의 큐브와 픽셀이 도드라져 보인다. ● 이와 같이 별의 형태로 구축된 덩어리는 무수히 작은 사각형 큐브와 곡선으로 가득히 채워져 있는 이 모든 형상들이 서로 순간적으로 이루는 인연의 띠처럼 씨줄과 날줄로 연결되어 있다. 작은 조각이 빼곡히 모여 덩어리를 이루는 것은 태고의 시원으로부터 꼭꼭 간직한 내밀한 이야기를 외부에 펼쳐서 오롯이 전달하고자 하는 우주적 고리와 소통의 의미이기도 하며, 새로운 미래의 어떤 순간을 위한 기억공작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각각의 조각은 일정한 크기의 면적 단위로 그룹을 이루며 관람객의 시선을 끄는 화면 혹은 공간 차원으로 존재하며, 전체적 인상은 별과 우주 탄생의 비밀을 집적한 거대한 기록 보관소의 단면 같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에는 새로운 별이 탄생하고 소멸하는 끊임없이 유동하고 순환한다는 이치를 보여주고자 함이다. ● 작가가 말하기를 "나뭇결의 측면 부는 수많은 실핏줄로 섞여있는 생명의 모태인 자궁처럼 대지를 상징하는 음으로, 세로로 세워지는 많은 나무 단면은 남성을 상징하는 양으로,별 형태의 5각형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기운을 상징하고자" 했다고 한다. ● 그렇다면 그는 지극히 깊고도 커다란 눈을 가진 전지자의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집적된 덩어리 안에는 별을 통해 우주의 모든 생장 정보를 응축하고 동시에 미래의 커다란 성장을 함축하고 미시적이며 거시적인 우주에의 경배를 생명의 탄생인 자궁을 소우주로 인식하여 고스란히 작품에 농축시키고자하는 그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별의 형상을 통해 바라보고자 하는 시간성, 물질성, 질료의 개념은 시대적, 문화적, 개념적 측면을 강하게 제시하는 순환론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렇듯 이효문이 제시하는 별은 천문학적 측면에서 보자면 소우주가 있고 이를 빅뱅으로 합쳐진 커다란 생명공간으로 작용한다. ● 결국 그가 다루는 나무와 석고 같은 소재들로 탄생한 별은 우리가 그동안 듣지 못했던, 인간 본연의 삶의 모습에 대한 그리움의 신호일 수도 있다. 그의 별은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나무의 원초적 촉각과 안온한 시각을 선사하는 원초적 그리움을 품고 있는 대상이다. 그러니 작가의 별은 고유한 한 생명체가 지닌 모든 것들이 자기 내부에서 발아하는 온갖 것들과 닮아있다.

 


이효문_별을 이야기 하다_참죽나무, 느티나무_60×142×140cm_2013

우주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이 인간에게 주어진 것들은 비록 한정된 것일지라도 거기에는 무수한 겹과 주름을 부여할 수 있다. 자연 및 시간의 시험대에 놓인 인간 역사가 낱낱이 남겨놓은 흔적을 따라 작가 또한 작품을 통해서 그러한 무수한 시공간을 압축 재생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만들어내는 별을 통한 공간의 확장은 결과적으로 진정 여행할만한 다원적 세계를 만든다. 오히려 이것을 구체적인 이야기와 형상으로 풀어내지 않음으로써 보는 이들에게 더 크고 보편적인 의미로 다가갈 수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통해 각자의 인생에서 무의식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심연의 깊이를 마주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거울처럼 마음을 반영하는 이미지로 투영되어 다양한 해석으로 발화되는 것이다. 우주의 순환적 질서와 그 순환적 궤도에 남겨지는 흔적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연작은 우주의 움직임이자 우리의 생명과 삶, 그리고 작가 이효문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인 것이다. (2013. 7.) ■ 김선태

 


이효문_별을 이야기 하다_참죽나무, 느티나무_55×140×135cm_2013

별은 우리에게 친숙하면서도 무한한 가능성과 꿈, 그리고 희망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별이 되기를 꿈꾸고 그것을 실현하기위해 많은 노력들을 한다. 이번작품은 별의 형태를 모티브로 양감을 극대화하여 표현한 것으로서 투박한 형상의 작은 나무토막들로 이루어진 형상이다. 작지만 각기 다른 나무토막들이 모여 큰 별이 만들어지듯, 우리의 작은 소망과 열정이 모여 큰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적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 투박한 질감이나 나무토막 사이의 틈은, 도심의 정교한 이음새나 마감에서는 볼 수 없는 자연적 소재를 이용해 만들어진 돌담이나 나무울타리에서 느끼는 시골의 정겨운 풍경처럼 포근하다. ● 기존의 원목을 깎아서 표현하려 했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고 있는 작업으로서, 그동안은 원목을 깎아서 만들어지는 덩어리나 재료의 속성에 의미를 두었지만 그것이 가시적으로 보여 지는 시각적 형상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느끼게 되었다. 따라서 보다 자유로운 표현을 위해 판재를 직접 깎아 접목하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것은 원목을 거칠게 판재처럼 오려내어 각각 재단해 가며 형상을 찾아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했을 때 재료가 갖는 일반적인 상식의 틀에서 해방된 느낌이 들고 재료 안에 내가 구상하는 작업을 끼워 넣는 게 아닌, 내 생각 내 사고에 재료가 따라와 주게 되며 표현이 훨씬 자유로워짐과 함께 화폭이 넓어진 느낌이 든다. (2013. 6.) ■ 이효문

 


이효문_별을 이야기 하다_참죽나무, 느티나무_152×160×53cm_2013

인체비례와 맞지 않는 두 손과 발의 형상은 연약한 신체와 일그러진 두상과 대비를 이루면서 기형적인 제스춰로 인해 우리의 시선을 낯설고 생경하게 만든다. 그로 인해 다양한 동세에 따라 인체를 변형, 왜곡하여 비균제성 속에서 매너리즘적 징후를 담지하고 있는 그의 인체조각상은 단순히 인물의 외형을 재현함이 아닌 주관적 감성이 농후하게 배어든 표현주의적 성향을 발현하고 있다. ...그의 인체조각상은 적당한 묘사와 생략, 단순하면서도 고졸한 미감이 살아 숨 쉬며 나름의 비균제성에서 발아하는 '깎되 깎지 않는다'는 불각(不刻)의 미 혹은 무위(無爲)의 정신을 담보로 하고 있다. 이를테면 작가는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기법의 구사보다는 소재 특히 나무의 천연성과 투박함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균형을 깨뜨리고 있다. (7회 개인전 서문 중) ■ 손청문

 


이효문_별을 꿈꾸며..._참죽나무_39×20×18cm, 50×21×20cm_2009


뉴욕 증후군 New York syndrome

이여운展 / LEEYUWOON / 李汝云 / painting

2013_0703 ▶ 2013_0716 / 월요일 휴관

 

이여운_Flatiron Building_천에 수묵_162.2×97cm_201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여운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13_0703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수요일_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시작Gallery Si:Ja

서울 종로구 인사동 39번지 2층Tel. +82.2.735.6266

www.artandsmart-gallery.co.krwww.sijac.kr


6년 전쯤인가, 동양인의 유럽여행이 일반화 된 그 즈음에 해마다 10여명의 일본인 관광객이 '파리 증후군'으로 불리는 문화적 충격에 빠져 의료진의 보호를 받으며 본국으로 송환되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예의바르고 공손한 일본인 관광객들은 파리 시민들의 거친 대응과 파리에 대해 가졌던 환상이 자신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일부 관광객은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아 정신의학적 좌절을 겪는다. 파리를 방문하는 일본인 관광객은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서 본 자갈 포장 거리와 아름다운 프랑스 여성, 수준 높은 문화, 루브르박물관의 미술품 등 대단히 낭만적인 환상을 갖고 파리를 찾는다. 그러나 파리의 실상인 거친 택시 운전사, 불친절한 웨이터 등은 다른 서구 국가 사람들이라면 웃어넘길 일이다. 하지만 예의 바르고 공손하며 좀처럼 화난 목소리를 내지 않는 일본인에게 꿈의 도시인 파리가 악몽으로 변하는 그러한 경험은 너무 심각한 것이라고 한다.

 


이여운_Chrysler Building_천에 수묵_162.2×97cm_2013

 

 

이여운_Empire State Building_천에 수묵_162.2×97cm_2013

'파리 증후군'은 프랑스에서 근무하던 일본인 정신과의사 오타 히로아키(太田博昭) 교수가 20년 전에 처음 밝혀냈다. 이 증후군은 원래 패션과 예술 분야를 공부하거나 취업하려는 꿈을 안고 파리에 왔다가 현실이 너무나 달라 생기는 망상, 환각, 환청, 자율신경 실조 등 각종 정신장애를 일컫는 말이다. 이러한 내용의 기사를 읽으며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지만, 사실 이러한 현상은 같은 동양권 문화에 있는 우리나라와도 관계없다고 할 수 없다. 근대 이후에 유럽의 문화를 흡수한 일본인들의 환상이 '파리'라면, 그보다 훨씬 많은 미국의 문화적 지배를 받은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뉴욕'이 그 대표적인 도시일 것이다. 어릴 때부터 미국의 아이들이 읽는 동화책을 보며, 디즈니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학용품을 써온 지금의 세대들은 뉴욕에 대한 환상이 있다. 이는 현 시대에도 세계를 지배하는 뉴욕의 경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뉴욕에 갖는 기대감은 일본인들의 그것을 넘어선다고 보여 진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 선풍적 인기를 몰았던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라는 미국 드라마는 그러한 뉴욕의 환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그 드라마로 인해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하게 된 새로운 패션 아이템, 직업관, 섹스관, 그리고 그들의 취향을 따라하려는 여성들을 꼬집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비단 젊은 여성들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뉴욕이란 도시에 가지는 문화적, 사회적 사대주의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현시대를 사는 사람들 사고 저변의 많은 부분을 잠식하고 있다.

 


이여운_Woolworth Building_천에 수묵_162×130cm_2013

 

 

이여운_Old Police Department_천에 수묵_162×130cm_2013

도시를 주된 테마로 그려온 본인에게 아주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뉴욕을 그리라는 주문을 해왔었다. 물론 여기서의 주문은 그림을 사려고 하는 목적이 아니라, 본인의 정서로 그리는 뉴욕의 느낌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뉴욕에 어울리는 감성이라든지, 색감이라든지, 사실은 나를 통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뉴욕에 대한 이미지를 투영하려고 한다. 사실 아직까지 본인은 뉴욕은 불구하고 미국에도 가 본 적이 없다. 그리하여 이 전시를 통해, 한 번도 가 본적 없는 뉴욕에 대한 이미지를 순전히 정보 수집과 문헌조사, 그리고 매체를 통한 표면적 이미지만을 가지고 진행해 나갈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근세기 이전 교통의 발달이 안 되어 나라간의 소통이 어려웠던 때 세계의 각 나라에서 지도를 만들던 방식이다. 원시적인 방법인 답습과 모험의 단계를 거쳐서, 문헌과 정보의 수집으로 각국의 이미지를 수집했던 것이다. 이것은 도시와 주위환경과의 연계를 추구하여 왔던 기존의 작업에서 나아가 개인의 이상적 풍경에 대한 미술적 접근을 시도해보고, 한 공간에서 관객의 참여와 함께 이루어지는 미술의 형태가 어떻게 될지 실험해보고자 한다. 이는 본인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온 도시, 공간, 개인의 관계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이미지의 환상에 대한 오래된 흔적,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사람들의 각막에 아로새겨져 박제가 되어버린 환상의 형태와 구조를 양식화된 이미지로 표현해보고자 한다. 이는 뉴욕에 가보지 않고 그 문화를 동경하는 이 시대의 보통 사람들의 감성을 대변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내면을 보여주지 않고 표면적인 껍데기만을 이미지화하는 본인의 불친절한 감성과도 일맥상통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 이여운


이여운_Galleria Vittorio Emanuele Ⅱ_천에 수묵_116.8×91cm_2013

 

이여운_St. Patrick's Cathedral_천에 수묵_2013

 

 

 

 

(8) 31갤러리 T 322-1290
이영미전 6.26-7.2 / 드로잉필전 7.10-7.16 / 소사벌전 7.17-7.23 / 은목회전 7.24-7.30 / 이천전 7.31-8.6

(69) 57th갤러리 T 733-2657 

주혜윤 회화전 7.10-7.16
 
(41) 가가갤러리 T 725-3546
김연옥전 6.26-7.2 / 홍성용전 7.3-7.9 / 가가특별전 7.10-7.30

(2) 가나아트스페이스 T 734-1333
(1층전시장) 김지혜전 6.26-7.2 / 박성원전 7.3-7.9 / 심채연전 7.10-7.16 / 김명진전 7.17-7.23 /  김계영전 7.24-7.30
(2층전시장) 조우전 6.26-7.2 / 3인3색전 7.3-7.9
(3층전시장) 오로빈전 6.26-7.2 / 이현주전 7.3-7.9

(10) 가람화랑 T 732-6170
상설전

(59) 갤러리가이아 T 733-3373
임영화전 6.26-7.2 / 정경수전 7.3-7.9 / 2013 컬러 오브 뉴욕전 7.17-7.23

(22) 갤러리 각 T 737-9963  
 박보경전 6.26-7.2 / 김미롱전 7.3-7.9 / 강민주전 7.10-7.16 / 챙킴전 7.17-7.23 / 지형민전 7.24-7.30

(15) 갤러리 그림손 T 733-1045
장성재전 6.19-7.2 / 송윤주전 7.3-7.9 / 윤기언전 7.3-7.9 / 박성욱전 7.10-7.22

(49) 갤러리 나우 T 725-2930
문형태전 6.12-7.2

(47) 갤러리 대아 T 725-2550
상설전

(57) 갤러리 더케이 T 764-1389
(1전시실) 고아빈전 6.26-7.2 / 박기종전 7.3-7.9 / 이다나전 7.10-7.16 / 임시호전 7.17-7.23 / 양영은전 7.24-7.30
(2전시실) 최혜란전 6.26-7.2 / 김고은전 7.3-7.9 / 최말애전 7.10-7.16 / 임초인전 7.17-7.23 / 그로아웃 어워즈전 7.24-7.30

(44) 갤러리 라메르 T 730-5454
(제1전시실) 홍대 건축과 모임전 6.26-7.2 / 박진우전 7.3-7.16 / 청원스님전 7.24-7.30
(제1-2전시실) 정운영전 7.3-7.9
(제2전시실) 송영한전 6.26-7.2 / 김영자전 7.10-7.16 / 김석곤전 7.17-7.23
(제1,3-5전시실) 아트뉴스 부스전 7.17-7.23
(제3-4전시실) 국내예술협회 부채전 7.10-7.16

(제3-5전시실) 부채대전 6.26-7.2 / 창작미술협회전 7.3-7.9 / 현대여성미술대전전 7.24-7.30

(제5전시실) 아인수 채화전 7.10-7.16


(54) 갤러리 룩스 T 720-8488

정지현 사진전 6.26-7.2 / 성정원 설치전  7.10-7.19 / 이은종 사진전 7.24-8.5

(40) 갤러리 메쉬 T 730-5321
중앙대 실내환경디자인과 졸업전 6.26-7.2

(71) 갤러리 바움 T 720-4237
상설전

(38) 갤러리 바이올렛 T 722-9655 
김영근전 6.26-7.9 / 박영숙전 7.17-7.23 / 작은 그림전 7.24-8.20

(72) 갤러리 베아르떼 T739-4333 

멕시칸 화인아트 쇼 2013전 7.15-8.15
 
(25) 갤러리 서호 T 723-1864 

(37) 갤러리 수 T 733-5454
김성식전 6.26-7.2 / 강경숙전 7.3-7.9 / 안명규전 7.10-7.16 / 기운생동전 7.17-7.23 / 황춘자전 7.24-7.30 / 나진기전 7.31-8.6

(30) 갤러리 시작 T 735-6266-7
몬타나대 단편영상 및 애니매이션 상영회전 6.19-7.2 / 이여운전 7.3-7.16

(34) 갤러리 신상 T 730-6540
코리아 환타지 자유전 6.26-7.2 / 썸머 타임 페스티발전 7.3-7.9 / 썸머 페스티발 한국화전 7.10-7.16 / 썸머 페스티발 러브전 7.17-7.23 /

썸머 페스티발 바람전  7.24-7.30 / 썸머 페스티발 자연전 7.31-8.6

(12) 갤러리 아트뱅크 T 737-0321
상설전

(28) 갤러리 아트플러스 T 732-7710
원로작가 소장전

(1) 갤러리 예당 T 732-5364

손유영전 6.12-7.9

(21) 갤러리 올 T 720-0054 
서울대58 동문회전 6.26-7.2 / 한국전업미술가협회 여성작가전 7.3-7.9 / 원우회전 7.10-7.16 / 한국전업미술가협회 청년작가초대전 7.31-8.6

(16) 갤러리 우림 T 733-3738
상설전

(6) 갤러리 이즈 T 736-6669
(제1전시장) (사)전국교원미술협회전 6.26-7.2 / 양페이장 옻칠인물화전 7.3-7.9 / 박정희전 7.10-7.16
(제1,2전시장) 이모션전 7.17-7.30

(제2전시실) 베리어스12전 6.26-7.2
(제3전시장) 유우선전 7.17-7.23 / 강지음전 7.24-7.30
(제4전시장) 정희옥전 7.17-7.23 / 정소원 조각전 7.24-7.30

(73) 갤러리 일호 T 6014-6677
김일해전 6.20-7.3 / 민성식전 7.4-7.17

(71) 갤러리 타블로 T 723-6081

(55) 갤러리 토포하우스 T 722-9883, 738-7555
(1전시실) 붓 끝에 행복을 담아전 6.26-7.2 / 2013 풀사모 사진전 7.3-7.9 / 끈전 7.24-7.30
(2전시실) 김아영 조각전 6.26-7.2 / 민태연 조각전 7.3-7.9 / 김영란전 7.17-7.23 / 김미혜 한국화전 7.24-7.30
(3전시실) 김민선 설치.조각전 6.26-7.2 / 요원 한국화전 7.3-7.9 / 유정근 수채화전 7.24-7.30

(전관)  SPC서울사진클럽 제8기 수료전 7.10-7.16 / 우창헌전 7.17-7.23

(39) 갤러리 환 T 735-7047
전종범전 6.26-7.2 / 김난희전 7.3-7.9 / 신명선전 7.17-7.23


(27) 갤러리M T 735-9500
금속공예 3인전 6.26-7.2 / 박목수전 7.3-7.16 / 신구회전 7.17-7.23 / 김치원전 7.24-7.30

(9) 경인미술관 T 733-4448(ARS9)
(제1전시관) 동지 목연회전 6.26-7.2 / 그림나루전 7.3-7.9 / 2013 제11회 도예마을전 7.10-7.16
(제2전시관)  제5회 규방아띠 보자기전 6.26-7.2 / 제2회 민화 사랑전  7.3-7.9 / 제2회 HWD 패션전 7.10-7.16 / 어울림전 7.17-7.23 
(제3전시관) 김조묘전 6.26-7.2 / '예'에서 노닐다전 7.3-7.9 / 이명숙, 김외자, 백경애 3인전 7.10-7.16 / 안성남전 7.17-7.23 / 이영숙전 7.24-7.30
(아틀리에) 인 프레이즈 오브 슬로우니스전 6.26-7.2 / 제3회 한지로 담는 그림전 7.3-7.9 / 클레이 샤인전 7.10-7.16 / 모콤 아트전 7.17-7.23 / 박붕식전 7.24-7.30
(제5전시관) 우리땅 이야기전 6.26-7.2 / 제6회 오색 가을 향기전 7.3-7.9 / 김재경 사진전 7.10-7.16
(제6전시관) 이향란전 6.26-7.2 / 소통전 7.3-7.9 / 이지화전 7.10-7.16

(43) 공아트스페이스 T 730-1144 

여름 생색전 7.3-7.16
 
(68) 공평아트센터 공평갤러리 T 3210-0071
야외 스케치전 7.3-7.9 / 김경환전 7.10-7.16

(51) 관훈갤러리 T 733-6469
(1,2,3층) 동방의 요괴들전 7.3-7.15
(2층) 전진표, 오택관 2인전 7.17-7.29
(2, 3층) 아한수 설치.조각전 7.31-8.12

(3층) 문주연 회화전 6.26-7.2 / 정희정 사진전 7.17-7.29

(61) 나무갤러리 T 2011-1995

(32) 노암갤러리 T 720-2235-6
장창익전 7.3-7.9 / 전수경전 7.10-7.16

(5) 노화랑 T 732-3558

박성민전 6.19-7.5

(26) 덕원갤러리 T 723-7771

블루 클레이전 7.12-7.21 / 비트윈 줄라이 앤 어거스트전 7.31-8.6

(60) 동덕아트갤러리 T 732-6458 
동덕여대 회화전 6.19-7.2 / 호서대 시각디자인과 졸업전 7.3-7.9

(65) 동산방화랑 T 733-5877

(46) 동호갤러리 T 722-3665
상설전

(29) 리서울 갤러리 T 720-0319
홍세연전 6.19-7.2 / 조은령전 7.3-7.9 / 이광수전 7.10-7.16 / 전은희전 7.17-7.23 / 박영익전 7.24-7.30

(20) 모던화랑 T 732-6261
원로중진소장품전

(11) 모인화랑 T 739-9292
상설전


(58) 목인 갤러리 T 722-5055

걱정! 목인에게 맡기세요전 7.3-8.18


(67) 물파스페이스 T 739-1997-8
김승근 동양화전 6.19-7.2 / 이현영전 7.3-7.9 / 2013 국제서체추상전 7.10-7.30 / 달마전 7.31-8.13

(47) 백송갤러리 T 730-5824 

김효정전 7.1-7.14 / 김민주전 7.17-7.23

(52) 백악미술관 T 734-4205
(1,2층) 청화대종사추모전 6.27-7.3

(1층) 베이징옥션전 7.4-7.10

(50) 보나장신구박물관 T 732-6621
찬란한 빛, 장신구전 5.29-8.4

 

(74) 브릿지갤러리 T 722-5127

(70) 사비나미술관 T 736-4371
조던매터 사진전 7.24-9.21

(31) 서울미술관 T 732-3314 
 내가 그린 다른 그림전 6.26-7.2(2부) / 현대미술 신기회전 7.3-7.9 / 7번방의 선물전 7.10-7.16 / 한지붕 한그림전 7.17-7.23 / 호성미술제전 7.24-7.30

(42) 선화랑 T 734-5839 
이종혁전 6.20-7.3 / 제15회 아트 미션전 7.10-7.16

(48) 성보갤러리 T 730-8478
상설전

(62) 아라아트 T 743-1643 

 

(76) 에이피갤러리 T.2269-5061-2

단미회전 7.10-7.16 / 신광호전 7.17-7.30 / 송승호전 7.31-8.6


(3) 영아트갤러리 T 733-3410 
박능생전 7.3-7.16 / 햄튼 & 서울전 7.17-7.23 / 일청회전 7.24-7.30

(66) 예성화랑 T 738-3630
상설전

(13) 유니아트갤러리 T 723-7170
백남준외 4인 상설전 

(18) 인사갤러리 T 735-2655-6 

(53) 인사아트센터 T 736-1020
(JMA스페이스 B1F) 신세자전 6.26-7.1 / 강승완전 7.3-7.8 / 이효문전 7.10-7.15 / 김병철전 7.17-7.22 / 양순실전 7.24-7.29 / 임대준전 7.31-8.5
(제3 특별관 B1F) 엘리스 마케팅전 7.10-7.15(1부) 7.17-7.22 (2부) / 지경희전 7.24-7.29
(본 전시장 1F) ) 김정숙전 7.3-7.8 / 김경아전 7.10-7.15 / 김두성전 7.17-7.22 / 한국 바로 알리기 10주년 성과와 부전전 7.31-8.5
(제2전시장 2F) 주혜령전 6.26-7.1 / 최정부전 7.3-7.8 / 허국중전 7.10-7.15
(제3전시장 3F) 금영보전 6.26-7.1 / 안혜성전 7.3-7.8 / 영담한지미술관전 7.17-7.22
(제1특별관 3F) 박필교전 6.26-7.1 / 윤향남전 7.3-7.8 / 유민정전 7.10-7.15 / 현원진전 7.17-7.22 / 이동용전 7.24-7.29 / 김지원전 7.31-8.5
(제4전시장 4F) 경기여류화가회전 7.10-7.15 / 2013 한국화 오늘회전 7.24-7.29
(제2특별관 4F) 이화가염전 7.10-7.15 / 송승호전 7.24-7.29 / 윤병렬,임하나 2인전 7.31-8.5

(제4전시장, 제2특별관 4F) 제5회 한국 퀼트공예협회전 7.17-7.22
(제4,5,6 전시장, 제2특별관 4-6F) 정유정전 6.26-7.1 / 춘추회전 7.3-7.8 
(제5 전시장 5F) 이소전 7.10-7.15 / 한국디지털아트전 7.31-8.5

(제6전시장 6F) 상미술회전 7.10-7.15 /조원전 7.31-8.5

(제5,6 전시장 5-6F) 트윈 크로스전 7.17-7.22

(14) 장은선갤러리 T 730-3533
롱아일랜드대 총동문전 7.3-7.13

(36) 조형갤러리 T 736-4804
채묵회전 6.26-7.2 / 은명주 수채화전 7.3-7.9 / 마들화우회전 7.10-7.16 / 이옥자 한국화전 7.17-7.23 / 감한연 유화전 7.24-7.30

(75) 탑골미술관 T 6911-9651 
공간+공감전 7.10-7.23 / 종이놀이터전 7.27-8.25

(23) 통인가게 T 733-4867
(통인화랑 B1F) 찻 그릇전 6.19-7.2 / 미치코 다카다 도자전 7.3-7.9 / 이꽃담 도자전 7.10-7.16 / 이용순 도자전 7.17-7.30
(통인옥션갤러리 5F) 류재헌 회화전 6.26-7.21 / 흐린그림 진한그림전 7.24-8.25

(35) 하나로갤러리 T 720-4646
한국미협 서각 임원전 6.19-7.9 / 한국 기독교 서예 협회전 7.10-7.16 / 김명석전 7.17-7.23 / 선흔 10주년전 7.24-7.30 / 선면전 7.31-8.27

(56)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T 733-9041  

(제1전시장 B1F) 김보연전 7.3-7.9 / 양웅걸전 7.10-7.16 / 김경주 종이전 7.24-7.30
(제2전시장 2F) 오영주 종이전 7.17-7.23

(제3전시장 2F) 정재원 섬유전 7.24-7.30 / 이수정전 7.31-8.6

(제2,3전시장 2F) 제2회 김은영 전승매듭연구회전 7.3-7-9 / 이지영 도자전 7.10-7.16

(45) 화봉갤러리 T 737-0057 
고문서 이야기(1)전 7.1-7.31

(17) JH갤러리 T 730-4854

이승진전 7.3-7.16 / 평면의 사건들전 7.17-7.23 / 김선영전 7.24-7.30 / 이명주전 7.31-8.6

(63) OCI미술관 T 734-0440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전 7.5-7.28

(64) space99 T 735-5811-2
강정전 6.28-7.26





2013 OCI YOUNG CREATIVES

이우성_이주리展

2013_0605 ▶ 2013_0626 / 월요일 휴관

 

 

 

                                 이우성_돌아가다 들어가다 내려오다 잡아먹다_캔버스에 과슈_50×65.1cm×15_2013

초대일시 / 2013_0605_수요일_05:00pm

이우성展 /『돌아가다 들어가다 내려오다 잡아먹다』이주리展 /『Lucid Drea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OCI 미술관OCI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수송동 46-15번지

Tel. +82.2.734.0440www.ocimuseum.org

이우성의『돌아가다 들어가다 내려오다 잡아먹다』 ● 2012년 이우성은 세로 3미터, 가로 6미터에 달하는 대형 회화인「정면을 응시하는 사람들(People who are staring straight ahead)」을 제작해 『불 불 불』이라는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세 개의 캔버스를 붙여 제작한 삼단 제단화 형식은 작가가 제목에서 표현한대로 정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남자들로 구성된 집단 초상화이자 군상이다. 비슷한 듯 서로 다른 인물들은 거리에서 익숙하게 볼 수 있는 20대의 '남자'들로 보인다. 정장을 입은 모습부터 캐주얼한 복장을 한 사람, 체육복을 입거나 잠바를 걸친 사람 등 집단적이면서도 개별적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의 초상이다. 등장인물들은 각기 다른 계절에 어울리는 옷을 입고 있으며, 작가는 이들 개별 인물들을 전체 캔버스에 적절하게 배치하여 얼굴과 응시의 파노라마를 완성하고 있다. 높이가 3미터가 되는 이 작품 앞에 관람자가 선다면, 정면을 바라보는 그림 속 인물들은 관람자들을 뚫어지게 다소 위협적으로 쳐다본다. 관람자들은 이 작품에서 이미지의 현전(現前, presence), 그 자체를 경험하게 하며, 스틸 이미지의 살아있는 응시를 역설적으로 경험한다. ● 대형 캔버스에 빼곡하게 배치된 두상들은 살아있는 배우들처럼 우리를 향해 뭔가를 이야기하는 것 같은 궁금증을 유발한다. 침묵, 부동의 정면 자세, 손짓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집단적 행위를 표시한다. 2012년 개인전에 포함된 이 작품은 20대가 느끼는 갈등, 고민, 열정, 공유, 에너지 등을 '불'이라는 직설화법을 통해 보여주었다. 즉, 이 작품은 2013년 OCI 미술관 신진작가 창작 지원 프로그램(OCI YOUNG CREATIVES)의 작가로 선정된 이우성의 개인전에 대한 하나의 무대를 마련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2012년 전시가 젊은 작가 이우성에게 작업의 무대이자 일종의 프롤로그였다면, 2013년 개인전은 그로부터 더욱 심화되거나 발전한, 혹은 자기모순과 타협을 발견하는 과정을 보인다. 또한 전자가 '우리'의 생각을 읽어내는 무대였다면, 올해의 전시는 무대 안에 놓이는 디테일이 만나고, 충돌·중재되며 새로운 회화적 변화를 보여주는 자기 변화, 변신의 무대이다. 작가는 우리를 벗어나 나를 담아내는 생각의 공간, '매개', 혹은 중재(mediation)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이우성_나의 소원팔찌는 언제 끊어질까_캔버스에 과슈_230×315cm_2013

 

회화를 공부한 이우성은 회화제작과 제목 붙이기에 일종의 위트와 유머를 선사한다. 유화가 아닌 구아슈를 사용한 그의 작업은 20대의 젊은이가 느끼는 불안감이나 혹은 시대의 갈등과 우울을 연상시킨다.「도망」(2012),「아무도 내 슬픔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2011),「무너진 가슴」(2013),「자폭」(2013) 등은 작가가 미술가이기 이전에 사회의 일원으로 느끼는 세대적 모순과 좌절감을 표현한다. 그러나 '그림 그리기'는 일종의 예술적 매개체이자 치유이며, 아슬아슬하게 현실을 살아나가며 리얼리티를 구축하는 작가 개인의 일기이자 사회적 초상이다. 일기가 일상적인 내용을 거르지 않고 써 내려나가는 진솔한 자기 문투의 글인 것처럼, 이우성의 작업은 일상적 삶과 경험에서 일차적으로 출발한다. 그러나 그는 회화적 충동과 장치, 전략을 위해서 그림을 눈속임(trompe l'oeil)으로 포장하거나 적절한 구성을 이용하여 관람자들을 현혹시키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예를 들면,「괜찮아. 어차피 난 그림에 불과하니까」(2012)에는 악기를 든 남성과 죽어가는 남성, 그리고 이 남자의 몸을 받치며 곁눈질로 관람자들을 의식하는 세 남자가 등장한다. 관람자가 이 그림의 내러티브에 몰입하고 자기화가 되는 순간, 제목은 연극적인 몰입 속으로 빠져드는 우리를 현실적으로 일깨운다. "어차피 그림이니까"라는 저자/화가의 지적에 독자/관람자는 "괜찮아... 죽지 않았어. 어차피 그림 속에서 죽은 것이니까"로 대답하는 역설적인 대화를 이끌어낸다. ● 이번 OCI미술관 전시제목인 『돌아가다 들어가다 내려오다 잡아먹다』는 네 음절로 이뤄진 시나 노래를 연상시킨다. '가다, 오다, 먹다'로 이어지는 구절들은 뭔가 시어가 맞아떨어질 때 느낄 수 있는 리듬감과 운율을 느끼게 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관람자는 15개의 패널로 이뤄진 전시 제목의 작품들을 발견하게 된다. 신체기관들이 파편적으로 여기저기 흩어져있고, 눈과 귀는 쌍을 이루며 책상 위에 배치되어 있다. 한쪽에는 치아가 부서진 그릇과 함께 병치되어 있으며, 흘러내리는 부드러운 액체는 내장 혹은 배설물을 연상시킨다. 집 모양으로 불규칙적으로 배치된 것은 작가의 작업실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메모지'이다. 15개의 패널에는 신체의 일부가 파편화된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고, 칼과 메모지, 화장지 박스 등은 모두 작가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들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2012년 개인이 속할 수 있는 세대를 아우르는 주제에서 벗어나 2013년에는 작가 자신의 몸과 정신(마음), 그리고 공간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우성_길_캔버스 위에 과슈_162.1×227.3cm_2013

책상 위에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듯이, 이우성은 상징적인 제스처로 신체의 모든 기관들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잠시 자리를 비우고, 일종의 '휴식기' 혹은 '휴면기(休眠期)'에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씨앗이 일정한 휴면기를 거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고 배가 발아할 수 없듯이, 작가가 휴식을 취한다고 해서 성장하지 않거나 에너지가 사라졌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정지된 이미지의 배열을 통해 암시된 작가의 회화적 에너지는 성숙한 자기 훈련과 명상을 요구한다. 이는 한국의 미술계가 작가들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결과물, 작품을 생산해낼 것을 요구하는 시스템에서 작가 스스로 '비평적 거리두기'를 두는 일종의 자기 브레이크처럼 보인다. 깊은 숨을 내리쉬는 순간, 더 긴 숨을 내쉴 수 있는 것처럼 이우성의 이번 전시는 '느린 숨쉬기'에 해당하는 작업들이다. 이는 작가가 자신과 자의식을 벗어나려는 행위처럼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자신을 더욱 잡아당기고 생각해보려는 이중적인 행위처럼 보인다. ● 이러한 묘한 이중성은 OCI전시 곳곳에서 엿보인다. 전시 공간은 두 개의 공간으로 구분되었는데, 두 공간을 서로 구분해주고 또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작품이「나의 소원팔찌는 언제 끊어질까」(2013)라는 작업이다. 관람객은 천막같이 걸린 이 작품(스크린)을 지나야만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결코 지나칠 수 없는 그림이다. 구아슈로 제작된 작업이지만, 2012년의 작업들과 달리 밝은 색채로 제작되었고, 진한 주홍색의 배경에는 보슈의 그림에서처럼 초현실주의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일부 인물들은 2012년「여름휴가」의 무빙이미지를 스틸 이미지로 바꾼 것이며, 인물들은 정면을 쳐다보거나 아예 몸을 돌리고 뒷모습만을 보여준다. 원근법 등을 무시한 공간에서 산발적으로 존재하는 이미지는 카무플라주(위장)를 한 군인의 모습, 촛불,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인간, '나를 사랑해줘요'라고 쓰인 문구를 집어든 남성에 이르기까지 삶의 '만화경'을 구축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우성_끝_캔버스에 과슈_130.3×193.9cm_2013
 
 
                                               이우성_무너진 가슴_캔버스에 과슈_65.1×50cm×3_2013

「나의 소원팔찌는 언제 끊어질까」에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파편화된 '남자'의 신체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15개의 패널로 구성된 작품에서와 같은 이미지의 배열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인간의 두상과 엄지 손가락을 든 제스처 등은 단순하게 잘려진 이미지의 조합이 아니라 통일된 내러티브가 만들어지는 스토리 구조에 일종의 브레이크를 거는 행위이다. 이것은 짜임새 있게 흘러가는 이야기 구조를 작가 스스로 이질화시키고 무력화시키는 회화적 충동이기도 하다. 2012년 현실발언적이었던 이우성의 작업은 OCI전시에서는 분절적인 시어의 조합을 제시하듯 파편화된 신체와 이미지를 구축하여, 통일감있는 이야기구조를 탈피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이 장치는 『돌아가다 들어가다 내려오다 잡아먹다』에서 시도한 것처럼, 작가가 천착하던 이슈들을 이미지를 빌어 재배치하는 방식을 따른다. ● 이우성은 초창기에는 유화를 많이 사용했지만, 작년 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올해 전시에서도 구아슈를 많이 사용하였다. 구아슈는 유화에 비해 광택이 없어 매트한 느낌을 주고 색감이 깊지 않아 더욱 평면적인 느낌을 전달한다. 이러한 매체적 특성 때문에, 그의 그림은 유화보다는 조금 더 가벼운 느낌을 주며 생각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건조 속도가 아주 빠른 구아슈의 특징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이는 만화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고 드라마틱한 효과를 낸다. 이러한 매체적 특징에 따라「자는 사람」,「낮게 나는 꿈」,「가장 빛나는 별」등은 스냅사진처럼 우연적이며 캐주얼한 느낌을 전달한다. 소녀시대와 같은 걸 그룹들의 다리를 연상시키는「나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다리」와「사랑의 매」와 같은 입체작업 또한 이우성 작가의 문화비평가다운 젊은 작가의 반응과 위트를 보여준다. ● 책상 위에 작가의 생각과 고민, 미학적 선택 등을 내려놓기를 원하지만, 실제로 이우성은 끊임없이 생각하는 치열한 작가이다. 본래 작가는 '내가 갑이다'라는 전시제목을 달고 싶었지만, 최근 갑과 을의 관계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작가는 선회하여 지금의 제목에 이르렀다. '언제 소원팔찌가 끊어질지'를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끊어지지 않기를' 원하는 묘한 자기모순성과 이중성을 찾아볼 수 있듯이, '내가 갑이다'는 현실에서 '을'인 역설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88만원 세대라는 20대의 시대적 초상에서 거리를 두고, 2013년 이우성은 결국 자기 자신과의 타협과 중재를 파편화된 이미지를 통해 '마음'의 공간으로 회귀하고 있다.『돌아가다 들어가다 내려오다 잡아먹다』는 역설적으로 돌아가지 말고, 들어가지 말고 내려오지 말고, 잡아먹히지 말라는 모순성도 깔고 있는지 모른다. 이 역설적인 순간, 이우성은 더욱 역동적이고 생산적이다. ■ 정연심

 
 
                                           이주리_마지막 도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펜_227×362cm_2013
 
 
                                        이주리_위기에 빠진 공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펜_112×162cm_2013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이분법적 사회구조에 대한 성찰 ● 이주리의 작품을 관류하는 기본 컨셉은 비합리적 세계, 다시 말해서 몽환적인 세계에 대한 관심이다. 꿈을 꾸는 것과도 같은 부유하는 이미지들, 지극히 파편화된 그것들은 각기 분절을 이루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어디론가 중심을 향해 이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일견 구획되어진, 따라서 영토화된 기존의 권위나 가치, 위치에 대한 반란처럼 읽힌다. 이처럼 기성의 것들에 대한 이주리의 '탈영토화'(들뢰즈의 잘 알려진 표현을 빌리면) 작업은 무한한 상상력을 통해 발현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이주리의 작품을 현실을 떠난 비합리적 세계에 대한 묘사로 간주할 수 있는 비평적 근거이다. ● 그렇다면 이주리는 왜 이처럼 전복적인 작업을 수행해야만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상상의 세계 속에 깊이 빠져 들어가면 끊임없이 줄을 잇는 이미지의 사슬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의 작품 속에는 그것이 회화건, 드로잉이건, 설치작업이건 간에 홍수처럼 쏟아지는 이미지들이 담겨있다. 충혈된 눈알을 비롯하여 깃발, 목이 잘린 인체, 정충, 공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들이 이루어내는 비논리적인 풍경이 바로 이주리가 그려내는 세계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지배적인 느낌은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반란이랄 수 있다. 그렇다면 그의 그림은 과연 추한가? 아름다움에 대한 반대의 미적 가치로서의 추는 현대미술의 지배적인 경향이랄 수 있는데, 이주리 또한 이러한 트렌드에 편승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의 신세대 작가들 사이에서 지배적인 담론으로 부상하고 있는 자아의 탐닉을 통한 내러티브적 경향은 분명 기존의 전통적인 미의 개념에 접근하고 있다기보다는 이에 대한 거부가 이루어내는 일종의 가역적 풍경이랄 수 있다. 그것은 일견 질서가 잡혀있고 잘 짜인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는 강고한 현실에 대한 반역처럼 보인다.

 
 
                                                   이주리_항해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펜_145×97cm_2013

기존의 주름에 대한 변혁의 의지, 그러나 현실적인 수행의 의지가 결여된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파고드는 초현실의 세계가 바로 신세대 작가들이 그려내는 심리적 내러티브인 것이다. 큰 범주에서 볼 때 이주리가 그려내는 세계 역시 여기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주리의 작품은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에 대한 지속적인관심을 통해 자신의 서사를 매우 독자적인 것으로 채색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성(城)의 이미지는 수성(守城)과 공성(攻城)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을 통해 나타난다. 그의 작품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중심을 향한 이미지들의 이동은 바로 이러한 도식과 관련이 깊다. 무엇을 향한 이동 즉, 현상학적 용어를 빌면 지향성의 개념이 이러한 이동을 추동하는 요인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중심에는 그의 몸에 대한 관심이 자리 잡고 있다. 그의 작업은 결국 몸 담론인 셈이다.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이야기하는 애브젝션, 즉 천한 것들에 대한 관심이 일견 그의 작품을 추하고 때로는 엽기적인 것으로 인상짓게 하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그림에 빈번히 등장하는 목이 잘린 인체들, 중심을 향해 몰려드는 정충들, 충혈된 눈알들은 착취와 억압, 고문, 감금, 사형, 강간, 살해, 약탈 등 비정한 인간사회의 상징으로 도입된다. 이른바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의 이분법적 도식으로 요약할 수 있는 이러한 스키마는 흑기(黑旗)와 백기(白旗)의 도입을 통해 재차 상징화되기에 이른다. 그는 "세상이 비정하다"고 말한다.

 
 
                                                이주리_잊혀진 것들의 구역_종이에 아크릴채색_75×105cm_2013

이주리가 바라보는 이러한 세계관은 비정함이 극단에 이른 상태, 즉 엽기적 장면을 통해 구체화된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작가 이주리의 탁월한 상상력의 세계가 버티고 있다. 이처럼 잔혹하고 때로는 엽기적이기조차 한 초현실의 세계는 거대한 생선의 살을 바르는 장치를 비롯하여 많은 눈알들을 처리하는 작은 인간들, 해안에 몰려든 수많은 배 등으로 묘사되는데 정작 작가는 그러한 이미지들이 과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예술의 신비가 아닐까? 이주리의 탁월한 상상력은 이미지의 내러티브를 통해 견고한 피안의 세계에 정박한다. 그의 상상은 수성과 공성이라는 인간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스키마를 주제로 설정한다. 그의 작품에는 유독 기계가 많이 등장한다. 공사장에 관심이 많은 그는 공사장에 널려있는 기계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는 인체의 부분을 기계로 치환한다.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눈알이 시한폭탄이나 포탄을 닮았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목이 잘린 인간들은 어디를 향해 유랑의 발길을 옮기고 있는가? 이 부유하는 풍경은 결코 비현실적이거나 초현실적인 풍경이 아니라 현실의 복제판이다. 그의 그림은 자본주의 사회와 체제에 대한 통렬한 풍자로 읽힌다. 요즘 유행하는 용어를 빌리면 갑과 을의 사회적 관계에서 파생되는 인간성의 상실, 기계에 대한 인간들의 절대적인 신봉, 컴퓨터화된 정보사회에 대한 우려, 스펙타클 사회(기 드보르)에 대한 경종의 의미가 그의 작품 속에서 파편화된, 따라서 길을 잃은 미아의 상태로 상징적으로 표현돼 있다.

 
                                             이주리_욕망에 불타는 성냥개비들_혼합재료_35×83×60cm_2013

이주리의 작품은 우리에게 인간의 본질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그것은 사회에 대한 본질적 질문이다. 소문만 무성하고 팩트는 없는 사건, 조작된 사건,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가상의 세계(시뮬라크라), SNS와 언론에 의해 진실의 전복이 가능한, 한 마디로 위조된 세계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담겨 있다. 그것은 하이데거 식으로 표현하면 염려(Sorge)에 가깝다. 현대문명에 대한 깊은 우려가 기계에 의해 몸이 포획된 상태로 상징적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현실에서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공격적인 모습으로 화면 곳곳에서 분출하고 있다. ● 이주리의 회화 작품에는 구체적인 사건들이 등장하는 드로잉과는 달리 마치 번개를 연상시키는 불규칙한 선들이 등장한다. 붉거나 푸른 그 선들은 그 밑에 가라앉은 사건을 뒤덮고 있다. 그것은 마치 탈영토화를 통한 영토의 재편처럼 읽혀진다. 새로운 땅에 대한 동경과 기존 가치나 질서에 대한 전복, 그것이야말로 작가인 이주리가 그리는 새로운 이상향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번 전시회에 설치작업으로 제시하게 될 종이배의 존재는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과연 그 배의 정박지는 어디가 될 것인가? ■ 윤진섭

 

                                                       Vol.20130604f | 2013 OCI YOUNG CREATIVES-이우성_이주리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