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아트'1층 전시실에서 '서울숲에서 부는 꽃그림 바람'이란 제목의

신혜우 식물채집전이 7월 17일부터 30일까지 열린다.


 

 

 

 

 

'아라아트' 4-5층 전시실에서는 "다크둠" 이란 도심형 극한 공포체험관이 7월2일부터 9월30일까지 이어진다.

엘리베이트를 타고 4층에 도착하면 갑자기 괴기스러운 분장의 사람이 나타나 비수를 들이대어 깜짝 놀라게 한다.

입장료는 대인15,000원, 소인은 10,000원이라 좀 부담스럽지만

더위를 식혀줄 수 있는 다양한 공포가 곳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홍콩을 만나다 - Colours of Hong Kong

2013_0724 ▶ 2013_0730

 

 

 

김성호_Hong Kong 1_캔버스에 유채_120×400cm_2013

초대일시 / 2013_0724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 김성호_두민_신건우_원성원_장승효

주최 / 홍콩경제무역대표부(
www.hketotyo.gov.hk/korea)

홍콩관광진흥청(www.discoverhongkong.com/kr)

기획 / 서울옥션(www.seoulauction.co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아시아 최고의 미술시장을 넘어, 전 세계 미술시장의 중심지로 급부상한 홍콩은 이제 더 이상 예전의 홍콩이 아니다. 세계적인 주요 화랑들이 앞다투어 지사를 내고 최고 수준의 동서양 작품을 선보이는 홍콩, 지난 5월에는 『아트 바젤 홍콩』 행사로 동서양의 주요 컬렉터, 화랑, 작가와 미술애호가들이 모여들어 대 성황을 이루었다. 홍콩은 이제 명실공히 아시아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우뚝 섰다.

 

 


두민_Enjoyable_캔버스에 유채_130.3×80.3cm_2013

 

 

신건우_Redressment_알루미늄에 레진, 아크릴채색_122×180cm_2013

영국으로부터 1997년 중국에 반환된 이후 동양과 서양 두 문화가 융합되어 홍콩만의 독특하고 개성 있는 문화를 만들어 내었고, 이제 이를 기반으로 전 세계에 영향력을 끼치는 문화예술 허브가 되었다. 1년 내내 다양한 문화, 예술 활동이 진행되는 홍콩은 특히 정부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최근 더욱 활기를 띄고 있다. 홍콩아트바젤, 홍콩국제영화제, 르프렌치메이, 국제 아트 카니발, 뉴 비전 아트페스티벌, 세계문화 예술 페스티벌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통해 오감을 만족시킬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 이에 홍콩경제무역대표부와 홍콩관광진흥청 공동 주최로 한국-홍콩간의 문화 예술 교류 증진을 위해 활발하게 활동 중인 한국 작가 5명과 함께 홍콩을 5박 6일 동안 여행한 후, 보고 느끼고 체험한 다양한 홍콩의 모습을 그들의 감각을 통해 표현하는 전시회를 기획하게 되었다.

 

 


원성원_Happy Resource HK_종이에 색연필, 아크릴채색_2013

 

 

 

장승효_Fantastic Eye of Hong Kong - day_

3D 이미지 콜라주 피그먼트 프린트_120×120×5cm_2013

이번 전시에는 회화, 사진, 조각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이 함께 했는데, 작가 김성호는 새벽이나 늦은 밤, 밝음과 어둠의 경계에 있는 아스라한 빛을 통해 일상적인 풍경을 그려내었다. 일명 이미지 수집가, 이미지 여행가라는 수식어로 불리는 장승효 작가는 여행 동안 홍콩의 구름과 야경들을 찍은 사진을 자르고 붙이는 작업을 통해 홍콩의 모습을 재창조했고, 그림 같은 사진, 환상 같은 현실의 작품을 진행하는 원성원 작가는 특유의 드로잉 기법으로 홍콩 여행 동안의 에피소드를 40개의 미니 캔버스 위에 펼쳐낼 예정이다. 주사위 작가로 잘 알려진 두민 작가는 행운의 메시지를 담은 새로운 작업을 시도했으며, 신건우 작가는 조소와 회화를 하나의 평면에 결합하여. 초현실적이면서도 다층적인 홍콩의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 이번 전시는 홍콩경제무역대표부, 홍콩관광진흥청이 공동 주최하였고, 2013년 7월 24일(수)부터 30일(화)까지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 1층 본 전시장에서 진행되며, 총 20여점의 작품이 전시될 예정이다. ■

Vol.20130719g | 홍콩을 만나다 - Colours of Hong Kong展


살풍경 Prosaic Landscape

노충현展 / ROHCHOONGHYUN / 盧忠鉉 / painting

2013_0613 ▶ 2013_0731

 

노충현_산책 a walk_캔버스에 유채_162×227cm_201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노충현 블로그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3_0613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공휴일_10:00am~05:00pm


국제갤러리 K1KUKJE GALLERY K1

서울 종로구 삼청로 54Tel. +82.2.735.8449

                                                                             www.kukjegallery.com


노충현 : 회화의 대위법 ● 이번 국제갤러리의 개인전에서 노충현은 2013년에 그린 두 개의 시리즈를 전시했다. 이 두 개의 시리즈는 한강 시민공원과 고수부지 주변을 무대로 하여 그 전 해 여름 장마 기간 의 풍경과 같은 해 겨울의 폭설에 덮인 풍경을 다루고 있다. 그는 이번 전시의 제목을 지난 2005년 3월 관훈갤러리에서의 전시와 2011년 6월의 조현화랑에서의 전시를 위해 사용했던 것과 마찬가지로『살-풍경』이라고 붙였다.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는 기간 동안 작가가 고수하고 있는 이 주제 속에는 대상에 대해 느끼는 혹은 작가가 그것에 부여하는 '거리감'이 자리잡고 있다. 그것을 극적 소격(疏隔)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도시와 세계로부터 스스로 이격(離隔)된 상태로 볼 것인지는 해석에 따라 다를 것이다. 둘 다 아니라면 그것은 회화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거리', 다시 말해 그리는 행위의 흔적으로 남겨진 물질적 표면이라는 낯선 결과에 의해 생겨난 거리감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 번의 전시를 하는 동안 노충현은 몇 번인가 이 '거리감'의 회화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것처럼 보인다. 그 동안『살-풍경』역시 도시의 가라앉은 자리들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회화가 만들어내는 고유한 감정의 공간으로, 그리고 다시 계절과 사건들의 흐름에 의해 쓸려가고 다시 쌓이는 시간의 경험에 이르기까지 매번 그 풍경이 가리키는 감정의 주조(主調)를 조금씩 바꾸어 왔다. 『살-풍경』은 을씨년스럽고 스산한 풍경을 의미하지만, 여기서의 접두어인 '살'은 노충현의 회화 안에서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그것이 '삶'이나 '살'(flesh)처럼 진한 감정이나 두터운 기억이 충전되어 있는 대상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탄식이나 외침처럼 들린다. 오히려, 그것은 화살의 '살'처럼 어디론가 빠르게 소멸되어 버릴 것 같은 풍경의 수식어다. 전혀 움직일 것 같지 않은 '현재'이지만 그것은 빠르게 어디론가 소멸되어 간다. 노충현의 회화는 느리고, 고요하며, 텅 비어있지만, 그것은 동시에 덧없고, 투명하며, 잡을 수 없는 순간을 가리키고 있다.

 


                                                            노충현_유수지의 밤 a night in the reservoir_캔버스에 유채_182×259cm_2013

화폭에 그려진 장소들은 사람이 거의 없는 한강의 고수부지와 그 주변의 풍경들이다. 이 장소들에 이르기 위해서는 삶과 현실의 밀도와 중압감을 피할 수 없는 도시를 지나쳐와야 한다.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은 거대한 도시로부터 방금 걸어 나온(혹은 그 중심으로 걸어 들어간) 사람이다. 이곳은 도시의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변방이자 '설명하기 힘들만큼' 탈-맥락화된 공간이다. 이 장소들은 여전히 이 도시가 원래 어떤 곳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원시적 조건들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이 공간에는 항상 많은 물이 흐르고, 겨울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사라진 텅 빈 공간에 눈이 쌓인다. 게다가 폭설이나 장마의 계절에 이 공간들은 더 더욱 무의미한 영역, 영점의 장소, 혹은 도시의 바깥(혹은 '자연')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무의식의 공간이 된다. 작가가 2005년부터 전시를 통해 보여준 한강 시민공원의 다양한 사물들, 예컨대 테니스 코트, 수영장, 고수부지 위의 가건물들, 제방 같은 대상들이 무의미하면서도 이입을 일으키는 한적하고 고립된 풍경을 만들어냈다면, 그리고 2006년의「자리」라는 제목의 전시에서 망원렌즈로 끌어당긴 듯한 특정한 실내공간의 클로즈-업 화면들이 소외와 고립의 감정을 더욱 강하게 부각시켰다면, 2011년 이후 다시 한강으로 돌아온 작가의 시점은 대상으로부터 한층 더 뒤로 물러서 있다. '뒤로 물러섰다'고는 하지만, 이 작품들에는 대상의 클로즈-업이 아닌 작가 자신의 마음을 응시하는, 오히려 더 집요하게 풍경을 바라보는 태도가 강조되어 있다. 이 '응시'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충현은 사진을 사용한다. 그는 자신이 본 것을 사진으로 기록한 뒤 다시 그것을 자신이 본 혹은 보았다고 믿는 것에 가까워질 때까지 수정한다. 페인팅의 과정에서 이러한 사진적 기억의 참조는 직접적 응시를 왜곡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페인팅은 눈에 의존하는 대신 어떤 기억, 대상에 대한 반복적 경험과 수정의 기억에 대해 반응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변형된 것은 응시가 아니라 응시하고 있는 우리 자신인 것이다. 그는 2011년경부터 한강 주변의 계절적 변화를 관찰해 왔다. 그리고 십여 년 가까이 그가 보아 온 동일한 장소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장마와 폭설, 이 두 개의 테마들은 이때부터 그가 다루어 온 특별한 기후적 현상이다. 그리고 그는 예의 이것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은 뒤, 작업실로 돌아와 자신이 본 것과 사진에 나와 있는 이미지들을 비교하며 캔버스에 그려왔다. 사진의 참조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 번째로 그것은 기억의 보완이며, 두 번째로는, 이것이 더욱 중요한 이유인데, 사진 자체가 우리의 시선의 일부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노충현_저너머 over there_캔버스에 유채_91×116.5cm_2013

한강 고수부지에 내리는 폭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그것은 공간의 깊이를 갑자기 평면화 한다. 사람들은 폭설이 내리는 강을 보면서 안도와 불안감을 느낀다. 그것은 뿌리 깊은 향수와 같다. 폭설이 여전히 이 거대한 공간을 채워주는데서 오는 안도감과 그것이 여전히 그 공간을 이해할 수 없는, 오래 전부터 기억하고 있던 공간으로 되돌려 놓는데 대한 불안감이 그것이다. 노충현의 그림 속에서 폭설은 거리감 대신 이 안도와 불안감의 평면적인 병치로 바뀐다. 이 그림들 속에서 눈은 일종의 기호로 다루어지고 있다. 하늘에서 흩뿌려져 내리는 눈발은 화면의 어두운 부분들 위에 간간히 표시되어 있을 뿐 그 외에는 거의 생략되어 있다. 2013년 작「폭설」에는 한 가운데에 거대하고 어두운 건물이 그려져 있다. 폭설이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은 그 건물 위로 떨어지는 흐릿하게 초점이 나간 듯한 회색의 반점들 때문이거나, 아니면 그것을 제외한 전면과 배경의 공간이 밝은 회색의 면들로 뒤덮여 있기 때문이다. 여기 그려진 것은 '폭설'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생략의 감정이다. 그것은 잘 환기되지 않는, 그러나 환기를 불러일으키는 기억의 대상들 가운데 하나다. 폭설은 역설적으로 거의 그려지지 않음으로써 그것을 둘러싼 다양한 판단과 참조들의 배치에 대해 우리의 응시를 이끌어낸다. 우리는 폭설에 대해 생각하고, 곧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이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노충현이 그리고 있는 것은 아주 느리고 짧은 순간이다. 누구나 그것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지만 동시에 아무도 그것을 명확히 기억해내지 못한다.

 


                                                                   노충현_편의점 convenience store_캔버스에 유채_112×145.5cm_2013

눈에 덮인 풍경은 매우 특별한 빛을 만들어낸다. 이 빛은 단순한 백색의 면이 아닌 많은 색채와 광선들의 혼재처럼 보인다. 폭설의 색은 이 풍경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소리와 마찬가지로 극도로 제한된 대역에서의 복잡한 스펙트럼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두운 푸른색이나 밝은 옥색, 혹은 검은색에 가까운 청회색 등은 모두 이 폭설이 내리는 장소의 특이성에 연관되어 있다. 특히 밤에 바라본 설경인 경우,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힘들 정도로 그 빛은 주관적 기억의 형태로 남는다. 노충현이 그린 고수부지의 밤의 설경들은 특이한 기억, 또는 기록의 과정을 담고 있다. 다른 풍경들과 마찬가지로 그것들은 일차적으로 카메라에 의해 기록된 풍경들이다. 그러나 사진으로 촬영한 낮의 이미지들과 달리, 밤의 풍경들은「밤」연작에서 보듯 플래시의 광원에 의한 대비와 생략, 노출의 부족, 인화 혹은 디스플레이의 부적정과 같은 우발적 요소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작가 자신이 풍경을 그리는데 있어 사진을 일차적 참조로 활용하고 있는데서 기인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풍경을 인지하는 이제는 고착되어 버린 태도와도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많은 경우 밤의 풍경을 사진이 기록하는 방식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사진을 통해 보아 온 대상과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본 대상을 구분하지 않을 만큼 사진적 이미지에 자연스럽게 의존한다. 특히 밤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카메라의 '야간 해상도'와 '밤눈'의 조합된 이미지로 존재한다.「유수지의 밤」이나「밤눈」은 사진 이미지를 거꾸로 유화로 옮겨놓은 것이다. 우리의 뇌리 속에 각인되어 있는 밤의 사진적 빛은 여기서 다시 회화의 색채로 재해석된다. 폭설의 밤은 마치 오래 방치되어 붉은색이 날아가 버린 사진의 잔영처럼 뒤로 끝없이 물러서는 푸른빛에 의해 지배되지만, 조금만 다가서면 그것은 물감의 흐름과 터치들로 인해 다시 시선을 사로잡는 긴장관계를 드러낸다. 회화의 시간성은 사진이나 드로잉과 달리 느리고 동시에 순간적이다. 회화의 물질성은 역설적으로 그것의 지연(delay)과 순간성에서 비롯된다. 회화는 사진이 생성해낸 기억을 물질성과 지연으로 변환한다. 회화는 사진을 (시선의) 기록이 아닌 (시선의) 생산으로 바꾼다.

 


                                                              노충현_눈위의 드로잉 drawing on the snow_캔버스에 유채_91×65cm_2013

장마는 폭설과 정반대되는 감각들을 동원한다. 그것은 물의 흔적으로 가득 찬 공간, 그리고 너른 강물 위로 떨어지는 장맛비의 낮은 소음들을 떠올린다. 노충현의 그림들에서 장마철의 대지는 아직 잠기지 않은 흙더미들과 수풀의 휘어진 움직임들 사이로, 흐릿한 수면의 반사와 그 위로 가라앉아 내리는 빛의 산란으로 인해 추상적인 밝은 면으로 그려진다. 이 밝은 면은 대기 중의 습기로 인해 산란하는 빛에 기인하기도 하고, 대지와 수면 그리고 대기를 동일한 투명성 안에 가두는 화면의 프레임에 의해 강조되기도 한다. 겨울의 설경과 달리, 장마의 풍경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 시점으로 그려져 있다. 흡사 강둑이나 그 주변의 건물 3, 4층 높이에서 클로즈업을 한 이미지들처럼 보인다. 특히「여름의 끝」연작에서 화면은 고수부지의 빗물로 채워진 수영장 공간과 직선으로 구획해 놓은 울타리에 의해 커다랗게 사선들로 나뉘어 있다. 풍경은 멀어지는 대신 망원렌즈로 본 것처럼 가파르게 들려있다. 이로 인해 화면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듯한 심리적 거리와, 그 못지않게 수면의 반사하는 빛을 수직에 가까운 화면 전체에 채우는 이중적 인지효과가 생겨난다. 장마에 의해 물에 덮인 고수부지 수영장의 바닥은 추상적인 구획선만을 남긴 채 모두 밝은 면으로 환원됨으로써 여름의 끝을 알리고 있다. 동일한 방식으로 그린「수몰」연작들 역시 마치 TV 뉴스의 헬기 촬영장면처럼 위에서 줌-인으로 본 홍수와 물 밖으로 윗부분을 드러낸 나무들을 그려놓고 있다. 이들 가운데 몇몇 작품에서는 수몰의 장면에서, 겨울의 폭설과 반대로, 푸른 톤이 날아가 버린 필름의 핑크빛 잔상만을 남기고 있다. 역시 여름의 습기와 햇빛에 의해 변색되고 노광된 낡은 필름의 잔상들처럼 보인다.

 


                                                                       노충현_장마 raniy season_캔버스에 유채_130×194cm_2008~13

노충현의 작품은 특정한 음역대의 소리를 떠올린다. 이 소리는 일종의 배경음 같은 것으로, 아주 높거나 낮은 피치의 소리의 입자들로 가득 차 있어 거의 들리지 않을 뿐 아니라, 실제로는 고요에 가깝다. 그것은 느리지만 순간적이며, 먼 곳에서 들려오는 날카롭고 조밀한 도시의 소음들이 조용한 바람소리나 강물의 흐름에 의해 뒤덮여 약간 먹먹해진, 대기의 희박함이 만들어내는 소리다. 이 소리로 인해 그의 작품 속의 풍경들에는 한적하지만 예민하고, 옅지만 강렬한 공기가 채워진다. 어쩌면 그것은 배경음이라기보다는 풍경 그 자체의 본질에 더 가까운 것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좁은 배경음의 영역은 그것이 만들어내는 세계의 독자적 배치를 통해 이 세계를 다른 세계들로부터 구분한다. 한 음계에 속한 세계는 다른 세계로 반복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온도에 속한 세계의 배치 역시 다른 온도들에 속하는 세계들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1°C의 차이로 세계는 완전히 다른 곳이 된다. 장마나 폭설과 같은 계절적 현상은 세계의 차이와 특이성을 드러내는 가장 급진적인 계기를 제공한다. 진자운동에서처럼 장마와 폭설은 이 온도 주기의 양 극단을 이룬다. 이 두 개의 끝에서 노충현은 한강 시민공원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노충현_수몰 flooded_캔버스에 유채_80×80cm_2013

풍경화는 세계의 은유로부터 시작된다. 노충현의 회화 속에는 두 개의 세계가 공존하고 있다. 그가 지난 10여 년 간 그려온 한강 주변의 풍경 속에는 동시대의 도시와 사회, 세계 안에서 발견되는 삶의 조건들에 대한 대위법적인 관념들이 함축되어 있었다. 그것은 불안과 고요, 밀도와 한적함, 의미와 무의식, 정상과 탈-맥락 같은 것들이다. 풍경화가 세계의 은유를 생산하는 과정은 관객이 그것을 자신의 세계, 혹은 자신이 예상한 (예상했다고 믿는) 세계와 동일시함으로써 완결된다. 폭설과 장마의 계절에 한강 시민공원 주변을 그린 노충현의 그림들은 이 도시에서의, 세계에서의 삶에 대한 예외적인 도상적 사유의 순간을 제시하고 있다. 세계는 완벽한 실재이면서, 동시에 관념이다. 그것은 정치적, 물질적, 의미론적 관계들로 포화되어 있지만 동시에 초월적, 무의식적, 비-유기적 관계들에 기초하고 있다. 그것들은 자연을 넘어서는 것이면서 동시에 자연의 일부를 이룬다. 노충현의 회화를 통해 한강 시민공원은 이러한 대위법의 더할 나위없는 무대가 되었다. 비록 폭설과 장마의 계절에 우리가 그곳에 있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그 시간들이 만들어내는 세계를 우리의 것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 유진상

Vol.20130630f | 노충현展 / ROHCHOONGHYUN / 盧忠鉉 / painting


Steel Drawing

김주호展 / KIMJOOHO / 金周鎬 / sculpture.drawing

2013_0713 ▶ 2013_0730

 

일요일 휴관

 

 


김주호_달리다_스틸 패널_71×30.5×15cm_201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20606d | 김주호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3_0713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pm~07:00pm / 일요일 휴관


가회동60GAHOEDONG60

서울 종로구 가회동 60번지Tel. +82.2.3673.0585

www.gahoedong60.com


인간미가 넘치는 해학적인 작업을 선보이는 작가 김주호는 드로잉을 즐겨 한다. 현재 입주해 있는 인천아트플랫폼 내 그의 작업실에는 큰 벽면 전체가 드로잉으로 빽빽하게 차 있다. 편지봉투 뒷면, 이면지 할 것 없이 작업의 발상들은 떠오를 때 마다 드로잉을 거쳐 질구이, 나무, 금속 등의 재료를 통해 입체로 다시 태어난다. ● 2010년 가회동60에서 가졌던『생생풍경』展에서도 테라코타 인물상들을 제작하게 된 과정을 여러 점의 익살맞은 드로잉으로 풀어내어 같이 전시한 바 있다. 이러한 과정은 그가 언제나 탐구하는 자세로 작업에 임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마치 그의 작업에 자주 등장하는 돋보기를 들고 관찰하는 '호기심' 캐릭터처럼 말이다. 그러나 재미있는 점은, 관찰하고 이면을 바라보며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 의심도 품어보는 그의 작품에는 상황에 대한 익살과 통쾌함은 있지만 타자를 해치려는 뾰족함이 없다는 것이다. 그가 가진 성품의 넉넉함과 어떤 어려움도 긍정적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능력 때문이 아닐까 한다.

 


김주호_호기심_스틸 패널_45×15×7.5cm_2013

오랫동안 조각의 재료로 사용되어진 금속이라는 소재는 대체로 그것이 가지는 날카롭거나 혹은 딱딱한 재질을 극대화시켜 시각화하는 방향으로 작업에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작가 김주호는 이를 평면 드로잉의 확대판으로서 보여주고 있다. 철을 녹여 새로운 형태로 다시 만들어내는 주물casting 작업이 아니라 철판 자체를 플라스마Plasma로 절단하여 엿가락처럼 휘고 알곤용접argon arc welding으로 붙여서 만들어내는 입체이다 보니 평면적 느낌이 강조 될 수 는 있겠지만 차가운 느낌이라고는 없다. 만일 이것이 도색이 되어 색깔이 입혀져 있었다면 금속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재료의 특성을 살리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라 그의 작품이 가지는 부드러움이 철판이라는 무거운 재료에서도 드로잉처럼 가볍고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말이다. ● 이번 가회동60 전시는 작가가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에서 작업한 4개월 남짓한 기간의 결실을 미리 보여주는 프리뷰preview 전시의 성격을 띤다. 레지던시 활동을 정리하며 7,8월에 열리는 백령도 프로젝트와 자체전시인 평화미술제에 출품된 작업들을 비롯, 10월에 기획된 김종영 미술관에서의 전시를 위한 대형 철판 작업등을 맛보기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이다. 이쯤 되면 작품의 재료적인 측면에서나 전시의 구성적 측면에서『Steel Drawing』이라는 전시제목이 무색하지 않다.

 


김주호_어제오늘내일_스틸 패널_41×24×13cm_2013

그간 그의 작업하면 떠오르는 질구이 작업들이 흙이라는 재료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파고들어 해학적으로 보여주는 미시적 관점을 보여주고 있었다면, 이번 전시의 주제인「금수강산 바라보기」작업들은 인간에 대한 그의 관심이 금속이라는 재료를 통해 좀 더 과감하고 폭넓은 거시적 관점으로 조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칫하면 인위적 국가 홍보용 단어의 식상함이 떠오를 수도 있는「금수강산」이라는 주제가 신나게 뻗어나가는「휘날리다」와「달리다」작업에서처럼 단순하고 신바람 나게 느껴지는 것은 김주호 작가만이 가지고 있는 소탈하고 유머러스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자세에서 자연스레 묻어나오는 한국적 삶의 정서와 여유를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는 타인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독이며 치유하고 있는 것이다. ● 레지던시의 좋은 작업환경을 기반으로 이번 기회에 그동안 계획했던 대형 금속작업들을 마치겠다고 의지를 내보이는 그의 뒤로 보이는 작업들은 그와 닮아있다. 작가 김주호의 장점이자 힘인 인간적인 정직함과 특유의 천진함이 뿜어내는 열정으로 말이다. 그런 작업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전시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풍성하다. ■ 김정민

 


김주호_휘날리다_스틸 패널_116.5×39×8cm_2013

금수강산 바라보기 ● 철판작업한지도 꽤 오래 되었다. 언젠가 서남미술관 개인전에서 철판작품을 몇 점 내보였다. 산소, LPG로 절단하고 야크 용접하는 초보적인 기법이었다. 그러다 프라즈마 절단과 알곤 용접을 이용하게 되며 형태와 크기가 많이 자유로워졌다.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철판으로 옮기는 작품을 나무화랑 개인전에서 다양하게 내 보였다. 그 때 김진하 평문에 Steel Drawing이라는 낯선 용어를 만들어 붙였다. 철판이 드로잉 같고 드로잉이 철판 같은 작품이니 딱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 입체를 다룸에 있어 재료의 특성에 맞는 형태연구는 창작의 새로운 즐거움이다. 재료와 형태가 맞아 떨어질 때의 기막힌 희열은 힘든 작업과정을 잊게 해 준다. 돌의 육중한 무게감은 침묵의 형상을 이끌어 낸다. 흙의 질구이는 따스한 체온의 인간미를 만나게 된다. 철판의 공간에 대한 과감함은 돌이나 흙, 나무가 갖지 못한 재료의 특성이다. 그래서인가 형태의 단위체로 제한되었던 형상이 철판으로 인하여 신나게 뻗어나가게 된다.

 


김주호_금수강산_스틸 패널_100×26×6cm_2013

 

 

김주호_금수강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50×300cm_2013

인체를 볼 때에 보이지 않는 뼈도 봐야한다. 인체조각의 기본이다. 입체로 보는 눈이 훈련 되었는지 어떤 사물이나 사회적 이슈를 볼 때에도 앞면만 보거나 정답식 뉴스 보도를 그대로 보지 않는다. 이게 그렇다. 남을 의심하는 못된 버릇처럼 보일런지 모르겠으나 숨은 그림 찾는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한다. 세상을 보는 즐거움으로 돌아온다 할 수 있다. 진실을 찾아보는 바른 방법이기도 하다. ● 드로잉은 힘쓰는 노동이 없어 좋다. 편하고 자유롭다. 그래서 막 그려 나간다. 다 그린 드로잉을 보면 높은데서 내려다보는 너그러움이 생긴다. 마치 도봉산 정상에서 눈 아래 펼쳐 보이는 집들, 자동차의 행렬을 보고 나의 작은 마음이 한없이 너그러워지는 여유를 갖는 것과 같다. ● 드로잉으로 이와 같이 세상사를 펼쳐보며 내 안에 금수강산의 조감도를 그려 본다. 요새 유행하는 심리치유인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철판으로 새롭게 요약된 입체를 만들어본다. 드로잉이 작은 기념비로 남게 되는 것이다. 펼쳐보이는 드로잉과 요약하는 입체를 서로 왔다갔다 하며 같이 작업한다. ■ 김주호

Vol.20130713d | 김주호展 / KIMJOOHO / 金周鎬 / sculpture.drawing

감정 잡히지 않으면 붓 잡지 않아 내 그림에 솔직한 화가 되고 싶어”

매화 그리는 동양화가 성영록


  
‘봄’ 하면 벚꽃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겨우내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처음으로 봄 소식을 알리는 꽃은 따로 있다.

바로 애잔한 향을 풍기면서도 바람에 흐드러진 자태가 고혹적인 매화다.

“천진스러운 태도에 단정한 얼굴, 하얀 치마에 깨끗한 소매, 우의(羽衣·선녀나 도사가 입는다는 옷으로, 새의 깃으로 만든 옷)와

예상(霓裳·무지개와 같이 아름다운 치마라는 뜻으로 신선의 옷)으로 눈같이 흰 고운 살결, 옥 같은 얼굴에 윤이 흘러 산뜻하다.”

삼봉 정도전(1342∼1398)이 ‘삼봉집’에서 묘사했듯, 예로부터 매화는 고전적인 아름다움으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훔쳤다.

시간이 훌쩍 흘러 세상이 많이 바뀌었건만 찰나의 순간 뭇 사람의 마음을 홀리는 매화의 아름다움은 여전하다.

성영록(33·사진) 작가는 현대적인 감각으로 매화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고 있다.

그의 그림에는 세월을 비껴가는 매화의 초월적 아름다움이 진하게 배어 있다. 그것도 아주 세련되고 고고한 자태로 말이다.

17일부터 29일까지 서울 관훈동 갤러리 이즈에서 열리는 단체전 ‘감동을 말하다’에 참여하는 그를 14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났다.

성 작가가 매화를 처음 만난 건 대학교 3학년 때. 마치 첫사랑과 맞닥뜨리듯 매화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경남 하동을 여행하던 중 평사리 최참판댁 매화밭에서 처음 매화를 만나게 됐다.

순간 머리가 멍해지면서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그때 맡았던 매화향이 아직도 머릿속에 머무르고 있다,

이후 매화꽃이 필 무렵이면 매화를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화폭에도 담기 시작했다.”

이토록 매화를 사랑하는 그에게 매화는 ‘그리움’의 또 다른 이름이다. “매화를 생각하면 늘 기다림이 떠오른다.

매화는 봄이 채 오기도 전에 3주 정도만 잠깐 폈다가 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매화가 폈다 진지 모를 때도 많다.

나는 일 년 내내 그 찰나의 순간을 기다린다.”

그토록 간절히 매화를 기다리는 이유는 무얼까. “나는 스스로 매화를 닮았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닮아가고 싶다.

이 때문에 매화에 끌리는 것 같다. 매화는 완연한 봄에 피는 것이 아니라 다른 꽃보다 한걸음 앞서 핀다.

그렇기에 늘 혼자이고 고독하지만, 그럼에도 자신만의 아름다운 향을 잃지 않는다.”


성영록의 ‘별이 내리다-하얗게 피어나다’.


언뜻 보면 서양화 같지만 그의 그림은 모두 전통적인 동양화 기법으로 그린 것이다.

“처음에 냉금지라는 종이에 풀을 직접 끓여서 세 번 배접한다.

배접은 냉금지를 평평히 핀 후에 그 뒤에 풀을 바르고 질긴 한지를 바르는 작업이다.

두꺼워진 종이에 아교를 희석해 칠하고, 색 먹과 봉채 물감 등을 이용해 염색하듯 물결작업을 한다.

그다음 산과 섬을 그리고, 세필로 매화 가지를 친다.

마지막으로 흰 꽃을 여러 번 올려 형상을 만들고 금분으로 꽃과 가지를 그려 마무리한다.”

그가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은 감정과 이야기다.

“나는 감정이 잡히지 않으면 붓을 잡지 않는다.

내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는 순간 그림을 그려야 이후에도 자꾸만 보고 싶은 그림이 탄생한다.

앞으로도 내 그림에 솔직한 아름다운 화가가 되고 싶다.”

정아람 기자 arbam@segye.com 

 



지유라 개인전 ‘집들이’, 17일 부터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개최



 

일러스트레이터 겸 설치작가 지유라가 개인전 ‘집들이’(Invite life)전을 17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 아트홀에서 선보인다.

모 리조트 기업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며 캐릭터 디자인, 일러스트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던 지유라는 우연한 기회에 나무 공방에서 나온 자투리 나무조각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유라는 작가 자신의 추억이 담긴 한국의 집은 물론 해외 여행지에서 만났던 아름다운 집들을 설치, 프로젝션 맵핑 등 다양한 매체를 동원해 재현한다.

‘살고 싶은 집, 추억의 집’을 주제로 한 나무 설치작업과 1980~1990년대 동네 골목의 가게를 배경으로 한 프로젝션 맵핑 작업들이 주는 공통된 느낌은 ‘따뜻함’이다.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누구나 꿈꾸는 파스텔톤 전원주택, 언젠가는 직잡가서 보고싶은 사진속의 집, 사람들이 꿈꾸는 살고 싶은, 상상 속에 있는 예쁘고 멋진 집을 그린과 블루, 오렌지 칼라를 이용해서 표현 했고, 기억 속 어딘가에 자리한 추억 하고 싶은 집은 삽화 형태로 표현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이발소 안에서 머리를 깎는 이발사와 손님, 쌀가게에서 봉지쌀을 사가는 동네 아줌마, 오후 6시국기 하강식이 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제자리에 서서 국기에 대해 경례를 하는 모습 등 지금은 사라진 그 시절 그 모습을 더듬어 볼 수 있다.

작가는 이번에 전시하는 살고 싶은 집, 추억의 집을 시작으로 하여 다음 작업은 ‘가보고 싶은 집’을 주제로 해서 힐링 하는 여행지를 탐구하여 작품 활동을 이어갈 계획 이라고 전했다.

전경우 기자 kwjun@sportsworldi.com






두근거리는 벽

우창헌展 / WOOCHANGHEON / 禹昌憲 / painting

2013_0717 ▶ 2013_0722

 

 

우창헌_삶에 대한 감사_캔버스에 유채_194×259cm_2013_부분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우창헌 홈페이지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토포하우스TOPOHAUS

서울 종로구 인사동11길 6(관훈동 184번지)

Tel. +82.2.734.7555/+82.2.722.9883www.topohaus.com


나는 그림에 이런 것을 요구하고 싶다. 먼저 그림이란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다' 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약속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 아름다운 멋진 인생에서 말이다. 아니라면 우리가 그림이 걸린 벽을 쳐다볼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또한 모름지기 그림이 걸린 벽이라는 것은, 설레이고 있어야 하며 가슴을 두근거리고 있어야 한다. 이 황홀한 삶과 사랑에 빠져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창헌_사람의 표상_캔버스에 유채_91×116.7cm_2013

 

 

 

우창헌_고목나무에 꽃이 핀다_캔버스에 유채_41×53cm_2011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무언가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이다. 복된 일,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일', 착한 일, 근원적으로 서로 돕고 사랑하며 행복하기 위해 온 것이다. 불행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싸우고 질시하고 긁어모으려 온 것이 아니다. 제 욕심을 채우고 남을 짓밟으려 온 것이 아니다. 그림은 언제나 곁에 있는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 더 소중하다고 말해준다. 지금 그대가 충분히 행복하며, 행복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으니 마음껏 행복하라고 말해준다.

 


우창헌_그리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_캔버스에 유채_65.2×91cm_2013

 

 

우창헌_봄이 왔습니다_캔버스에 유채_259×194cm_2013_부분

그림이란 기능적인 것이다. 이유없이 고상하고 위대하며 숭엄한 예술 따윈 없다. 인간의 가슴에 힘을 주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며, 예술이 그 이외에 위대해지는 길이란 달리 존재하지 않는다. 또 무엇 때문에 위대해야 한단 말인가? 방금 그대의 아이가 그린 그림이 그대의 영혼에 북받치는 힘을 주고 살아야 할 뜨거운 이유를 약동하게 해 준다면, 더 나아가 벼랑 끝에 선 그대에게 다시 한번 삶의 '예스'를 확인해 주고, 거친 세상에 맞서 주먹을 치켜들며 복귀를 선언하게 해 준다면, 그게 바로 그림의 위대함이다.

 


우창헌_봄이 왔습니다_캔버스에 유채_259×194cm_2013

 

 

우창헌_이 아름다운 삶을 주셔서 감사합니다_캔버스에 유채_91×91cm_2013

우리 모두는 누구나 가슴 속에 표상을 지니고 있다. 삶에 대한 표상, 인간과 세계의 의미에 대한 표상을. 표상이란 강력하다. 표상은 삶을 지시하고, 인도하며, 규정한다. 표상이야말로 운명인 것이다. 우리가 하나의 표상을 내걸 때, 우리는 어떻게 살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며, 자기 삶을 어떤 깃발 아래 세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표상을 내걸어야 한다. 더 사랑하겠다는 표상을, 더 베풀고 나누며 살겠다는 표상을, 불의와 맞서 싸우고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표상을, 약한 자들과 약한 동식물의 손을 잡아주고 지켜주리라는 표상을, 산다는 것은 황홀한 일이고 복된 일이며, 수천 번 거듭되어도 좋을 눈부신 행운이라는 것을. 이는 행복한 인간의 아름다운 약속이다. ■ 우창헌

Vol.20130717b | 우창헌展 / WOOCHANGHEON / 禹昌憲 / painting


우연한목격

이다나展 / LEEDANA / painting
2013_0710 ▶ 2013_0716

 

 

 


이다나_그녀는 모른다_캔버스에 먹, 아크릴채색, 혼합재료_97×130.3cm_2012

초대일시 / 2013_0710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더 케이 갤러리THE K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6번지
Tel. +82.2.764.1389
www.the-k-gallery.com


일상에서 거리를 걷다 우연히 보게 되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그 속의 나, 이처럼 어디선가 한번쯤은 마주쳤을 법한 순간과 상황이 있다. 뜻하지 않은 장소와 시간에서 나아닌 타인을 통해 내안의 꿈틀거리는 욕구와 본능을 발견한다.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내안에서의 가장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부분을 철저히 감추고 숨기고...

 


이다나_옥상에서_캔버스에 먹, 아크릴채색, 혼합재료_181.8×227.3cm_2013

나의 작업은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현대인들의 '자기검열'에 대한 문제제기를 시각적으로 재현한다. 위 사항에 대한 문제제기를 본인만의 감성으로 시각적으로 재현하고자 하는데, 이 행위 속에서 나타나지는 시각적 이미지들은 나 자신이기도 하면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현대사회 속, 사람 또는 풍경이기도 하다. 이 시각적 이미지들은 하나의 기호로서 시각에 대한 권력 간의 관계를 표현해 준다.

 


이다나_그 해 여름_캔버스에 먹, 아크릴채색, 혼합재료_130.3×97cm_2012

시선은 곧 권력이며, 시각의 지배자는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 푸코의 시각에 대한 권력론을 빗대어 말하자면 우리는 그저 사회문화에 흡수되어 순응하여 살아갈 것이 아니라 시선에 대해서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두 눈의 생물학적 양태만을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가리고 있는 시선을 포착할 것인가. 여기에서 시선의 지배관계가 있다. 바라보는 자는 시선이고, 바라보여지는 자는 눈이다.

 


이다나_이별의 현장_캔버스에 먹, 아크릴채색_181.8×227.3cm_2013

두 대자존재의 대결에서 시선으로 남는 자가 이기는 자이고, '눈'이라는 대상으로 전략하는 사람은 패배한 자이다. '자기검열'의 일상화 속에서, 누군가가 나를 지배하고 있는 시선을 가지고 있음을 알면서도 모른 채 살아간다. 익명의 감시자는 국가 권력, 또는 현대 사회와 일상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나의 이웃이고 나 자신이다. 현실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시, 그리고 일상 속 '자기검열', 인간의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감성과 욕구, 이런 부분들을 'negative'색채와 작가본인만의 감성이 더해진 색채를 통하여 친숙하면서도 일상적인 상황과 화면을 서정적인 감성으로 재조명하고 있다.

 


이다나_나는 당신이 지난밤 한 일을 알고 있다._캔버스에 먹, 아크릴채색, 혼합재료_130.3×162.2cm_2012

작품 속 의도된 엿보는 시선을 통해 관람자는 작품을 감상하게 되며, 이에 도처에 편재하는 눈, 감시자의 시선을 갖는다. 작품 속 확실하지 않는 상황은 의구심을 갖게 되며, 일상 속에서 흔히 보여 지고, 감춰지는 은밀한 상황들과 시선은 확실히 묘사되어지지 않은 인물을 통해 관람자는 다양한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게 된다.

 


이다나_탈의_캔버스에 먹, 아크릴채색, 혼합재료_112.1×145.5cm

이처럼 '자기검열'에 대한 문제제기를 통해 어디서나 제 3의 눈이 되어 현대인들의 모습을 은밀히 엿보는, 그리고 점점 잃어져만 가버리고 있는 우리 사회 속 완전히 해방된 자아와 진정한 자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반문을 은밀한 시선을 통해 던지고자 한다.

 


이다나_잔액조회_캔버스에 먹, 아크릴채색, 혼합재료_53×45.5cm_2012

이렇듯이 나의 작업은 이중성을 갖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양면적인 모습을 담아낸 이시대의 초상이자 현대인들의 초상인 것이다. 또한 일상과 사회 속에서 점점 잃어져 가는 나의 자아에 대한 성찰과정이며, '나'를 규정짓는 이야기이다. ■ 이다나

Vol.20130711e | 이다나展 / LEEDANA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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