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추은영展 / CHUEUNYOUNG / 秋銀榮 / video.installation 2013_0417 ▶ 2013_0422

추은영_제3의 물결 The third wave_3D 애니메이션 영상설치_350×350×350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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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417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INSA ART CENTER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Tel. +82.2.736.1020www.insaartcenter.com

 

삶의 풍경, 웃음 뒤에 숨은 냉소 ● 『인간시장』(2003). 인력시장? 제발 누가 나 좀 사가세요. 여차하면 손가락 빨게 생겼거든요. 보기엔 어떨지 모르지만 그래도 아직 이빨 하나만큼은 꽤 쓸 만하거든요. 입바른 소리가 아니라 남들 씹는 이빨이요. 게다가 말귀도 밝고 입도 싸서 남들 말을 잘도 옮기지요.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이 정도는 양반이지요. 당연, 줄 서기와 줄 대기는 기본이고요. 줄 한번 잘못 섰다가는 한 칼에 쪽박 차는 수가 있으니 조심하세요. 뭐,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알겠지만 그 와중에도 자신의 속내를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고요. 추은영은「인간시장」시리즈를 통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는 비법을 전수한다. 개구리로 희화화된 인간시장에서 인간들이 벌이는 이전투구가 비장하고 비겁하다. 냉소적이고 해학적이다. 목 조각에 결합된 키네틱을 주 무기로 한 투쟁이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형식적인 완성도를 더한다. ● 그리고『Operate me』(2007). 나를 작동시켜보라는 주문이다.『인간시장』에서 작가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주목했다면, 이번에는 제도와 개별주체와의 관계에 포커스를 맞춘다. 나는 너무 수동적이어서 누군가가 나를 작동시켜주지 않으면 작동되지가 않는다. 왜 그런가. 제도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관성에 길들여졌기 때문이고 학습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제도는 내가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분해주고,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쳐준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학습된 내용을 내재화한다. 그래서 종래에는 굳이 제도가 나를 감시하지 않아도 내가 나를 감시한다. 이로써 작가는 마침내 스스로 알아서 작동하는(능동적인?), 사실은 제도의 욕망을 대리 수행할 뿐인 기계인간이며 로봇인간 그리고 제도적 인간으로 나타난 현대인의 초상을 그려 보인다. ● 여기서 작동은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개별주체를 작동시키는 제도의 시스템을 의미하고, 관객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상호작용 시스템을 의미한다. 키네틱이 목 조각과 어울렸다면, 상호작용 시스템은 3D 애니메이션과 결합하면서 더 잘 작동된다. 그렇게 작가의 작업은 목 조각에서 3D 애니메이션으로 넘어간다. 단절되면서 넘어가기보다는, 직조와 영상과 설치를 하나로 아우르면서 넘어간다.

 

 

추은영_열쇠 Key_3D 애니메이션 영상설치_350×350×350cm_2013

 

이렇듯 추은영은『인간시장』에서 개인과 개인과의 관계에, 그리고『Operate me』에서 제도와 개별주체와의 관계에 주목한다. 사람에 관심이 있고,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흥미롭다. 그리고 근작에서 그 관심과 흥미는 상대적으로 더 디테일해지고 섬세해진다. 사람들의 세부를 파고들고 무의식을 파고든다. ● 그렇게 들고 나온 주제가『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이다. 김소월의「진달래꽃」으로 유명한 이 구절은 이중적이고 역설적이다. 사뿐히와 즈려밟고가 부닥치는 것. 사뿐히 밟고 즈려밟아 달라는 주문이 충돌하는 것. 여기서 즈려밟다는 지르밟다의 시어이고, 짓밟다는 의미의 북한말이다. 결국 사뿐히 밟아달라는 주문과 짓밟아달라는(?) 주문이 포개지는 것에서 역설이 발생한다. 기왕에 밟을 양이면 사뿐히 밟아달라는 주문이다. 기어코 밟고 싶다면 기꺼이 밟히겠지만 살살 밟아달라는 주문이다. 완전, 블랙코미디가 아닌가. 웃음과 울음이, 냉소와 해학이 그 경계를 허물고 하나로 통합되는 어떤 차원이 열리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작가는 내가 될 수도 그리고 네가 될 수도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기어코 밟고 싶은 주체에게 내어준다. 그 주체는 제도가 될 수도 네가 될 수도 그리고 내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제도의 잠재적인 주체이면서 객체인 것. 나는 너의 잠정적인 아군이면서 적군인 것.

 

추은영_보이지 않는 공격수 Invisible attacker_3D 애니메이션 영상설치_350×350×350cm_2013

 

작가의 근작에선 그런 물고 물리는 사람들의 초상이 펼쳐진다. 먼저,「제3의 물결」에서 작가는 정보의 홍수에 휩쓸린 사람들의 초상을 보여준다. 세계 도처의 주요 신문과 잡지 그리고 웹 페이지로 도배가 된 영상에서 사람들이 그 사이사이로 내다본다. 도배가 된 영상으로도 부족한지, 영상 밖에서마저 실물 신문과 잡지 그리고 웹 페이지로 접어 만든 종이비행기가 영상 안쪽으로 날아든다. 이렇게 영상 안쪽과 바깥쪽이 온통 정보 천지다. 현대인의 의식과 무의식을 무차별 공격하는 쓰레기 정보들이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거의 모든 정보는 쓰레기다. 정보가 지식을 대체하면서 지식은 깡통이 되었다. 그렇게 빈 깡통으로 전락한 지식이 도처에서 딸랑거린다. 더 이상 이면도 없고 행간도 없는, 다만 표면만 있는 시대의 거죽을 이 쓰레기 정보들이 그리고 깡통 지식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스쳐 지나간다. 작가의 작업은 이로부터 연유한 스트레스에 주목하게 한다. ● 소통을 계기로 물결의 의미를 풀어 보자면 몸을 매개로 한 소통이 제 1의 물결에 해당할 것이다. 그리고 말과 문자를 아우르는 언어를 매개로 한 소통이 제 2의 물결에 해당할 것이다. 그리고 디지털 정보를 매개로 한 소통이 제 3의 물결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제 3의 물결은 실물로부터 가장 먼, 어쩌면 아무런 실질적인 의미도 의미하지 않는, 다만 고도로 추상적인 의미만 실어 나를 뿐인 무미건조하고 중성적인 소통방식일 수 있다. 작가의 작업은 바로 그 소통방식의 비인간화 현상에 대해 곱씹게 만든다.

 

추은영_탈출 Escape_3D 애니메이션 영상설치_350×350×350cm_2012

 

그리고「열쇠」에서 작가는 마음의 문을 닫아 건 사람들을 다룬다. 사람들은 왜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그는가. 소통이 두려워서이다. 소통이 어려워서이다. 소통은 기술이다. 정보가 교환되고 의미가 전달되는 것은 소통이 아니다. 몸과 몸이 교환되고 마음과 마음이 전달되는 것이 소통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 몸이 교환되지도 마음이 전달되지도 않는 현대인의 소통은 소통이 아니다. 현대인은 소통의 기술을 잊었고 잃었다. 이처럼 소통이 불통으로 변질되면서 그 와중에서 소외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 소외가 사람들 저마다로 하여금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그게 했다. 이로써 작가의 작업은 몸과 몸이 교환되고 마음과 마음이 전달되는 구닥다리 소통방식을 복원하는 것이, 그리고 그렇게 잊었고 잃었던 소통의 기술을 복구하는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금 마음의 빗장을 열고 풀게 하는 해법임을 주지시킨다. ● 그리고 작가는「보이지 않는 공격수」에서 언어폭력을, 특히 인터넷 상에 떠도는 언어폭력을 다룬다. 영상에서 캐릭터들은 스스로 과녁이 되고, 그 과녁을 향해 화면 밖에서 날아오는 활자들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된다. 미처 피할 새도 없이 과녁을 맞히는 활자화살들에 캐릭터들이 전전긍긍해 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그러나 정작 그 이면에 탑재된 의미의 진실은 이런 웃음과는 거리가 멀다. 사람들은 쉽게 익명 뒤에 숨는다. 익명 뒤에 숨은 사람은 쉽게 사악해진다. 활자화살이 어디서 어떻게 날아오는지 모르는 것이 바로 익명 뒤에 숨은 무명인이며 보이지 않는 공격수를 암시한다. 사람들은 공공연한 폭력을 투사할 희생양을 욕망하고, 신상 털기로 까발려지고 내동댕이쳐질 마녀사냥을 욕망한다. 하루라도 누군가를 씹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친다. 그런 걸 보면 유감스럽게도 성선설보다는 성악설이 진실에 가깝다. 그래서 수신이 있고 수련이 있고 수양이 있는 거다. 그리고 작가는 영상 밖에 거울을 매달아 혹 그 공격수가 내 자신일 수도 있음을 주지시킨다.

 

추은영_레드오션 Red Ocean_혼합재료_45×45×35cm_2013

 

그리고 작가는「탈출」에서 이런 무차별 공격으로부터 자기 속에 숨어드는 자아 혹은 주체를 보여준다. 세상으로부터 도피해 거대한 물고기 속에 숨는 것인데, 여기서 물고기는 저마다의 삶을 의미 있게 해주는 의미의 산실을 의미하고, 작가 개인적으론 창조의 산실을 의미한다(작가는 창작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이 작업은 니체의 전언을 상기시킨다. 니체는 쥐가 궁지에 몰리면 자기 내면으로 숨는다고 했다. 자기 내면 말고 달리 숨을 데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니체가 그 행위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기를 궁지로 내몰아라. 그러면 내면이 열릴 것이고, 그 내면으로부터 어쩌면 삶을 의미 있게 해줄 또 다른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주문이다. 그리고 이 작업은 요나의 신화를 닮았다. 세상 끝에 가서 자기를 전도하고 전파하라는 신의 명령을 피해 요나는 고래 배 속으로 숨는다(사실은 삼켜진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요나는 신의 명령을 수행한다. 여기서 고래 배 속은 거듭나기를 상징한다. 삶은 무의미하다. 이 무의미한 삶을 의미 있게 하기 위해선 삶을 탈바꿈시켜야 하고 스스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 작가에게는 이처럼 거듭나게 해주는 계기가 창작이다. 이 작업은 너의 삶을 의미 있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거듭나게 해주는 계기는 무엇인지 저마다에게 물어온다.

 

추은영_소유에의 강박 Possessive Compulsion_혼합재료_45×45×45cm_2013

 

그리고 작가는「희망사항」에서 꿈과 현실과의 거리감을 다룬다. 정도와 경우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사람은 현실에 대한 부정의식을 내재화하고 있다. 여차하면 꿈으로 도피할 준비며 태세가 갖춰져 있다. 꿈이 크면 현실이 견디기 힘들고, 현실에 맞춰 살면 꿈이 초라해진다. 꿈은 도피고 현실은 그 도피에 대한 처벌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현실을 살면서 현실을 부정한다. 보상심리다. 보상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졸지에 현실은 붕괴되고 삶은 금이 간다. 당신은 무엇으로 현실을 보상받는가. 작가가 꿈꾸는 보상은 다시금, 창작이다. 그럼으로써 창작은 곧 꿈꾸기임을 주지시킨다. 당신은 무엇을 꿈꾸는가. 그렇게 작가의 작업은 저마다에게 되물어온다. ● 그리고 오브제 작업「레드오션」에서 작가는 종교를 다룬다. 알다시피 레드오션은 블루오션과 구별되는, 경쟁이 치열한 범주이며 영역이며 커뮤니티를 의미한다. 내세를 담보로 한 세속적인 장사와 내면의 스승을 자처하는 현대판 종교의 이전투구를 풍자한 것이다. ● 이처럼 세상을 향한 작가의 시선은 냉소적이다. 그러나 정작 작업은 냉소적이지가 않다. 3D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된 캐릭터들이 냉소를 웃음으로 희화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냉소적이라는 것은 인간적이라는 말이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여차하면 기꺼이 세상을 보듬어 안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웃음 뒤에 숨은 냉소가 보이고, 세상을 껴안는 냉소의 품이 보이는가. ■ 고충환

 

 

 

 

추은영_헤게모니 Hegemony_혼합재료_45×45×45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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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영展 / KIMSEOYOUNG / 金瑞英 / painting
2013_0410 ▶ 2013_0415

 

                                                   김서영_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5×53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20215d | 김서영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3_0410_수요일_05:00pm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석사청구展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INSA ART CENTER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6층 제6전시장Tel. +82.2.736.1020www.insaartcenter.com

본인은 외로움, 고독 그리고 상실의 경험을 토대로 한 일상을 서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부질없는 질문이라 생각하고 접어버렸을지언정 생각은 해보았을 것이다. ● 본인은 작품 속에서 마치 일어날 것만 같은 상상 속의 대상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그 안에서 위안을 찾고 한번쯤 쉬어 갈수 있는 사유의 공간을 꿈꾼다. 그 공간에서는 현실과 멀어지며 달콤한 꿈을 꾸고, 소망하는 것을 상징적인 대상을 통해 유희적으로 나타내며, 순수한 동심으로 돌아가 상상을 통해 공감하고자 한다. 기억을 시각화함으로서 섬의 형상, 식물, 동물, 주변에서 흔하게 보는 소재를 작가는 유아적 표현기법을 통해 빠르게 변화하고 현실을 즉시 해야 하는 건조한 삶 속에서 꿈과 같은 희망을 전달하고자 함이다. 

 

 

 

김서영_감정의 모튜먼트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5×53cm_2012

 

 

 

김서영_날아올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5×53cm_2012

 

 

김서영_if-Ⅲ_캔버스에 혼합재료_116.8×145.4cm_2012

 

 

 

김서영_앞만 보고도_캔버스에 혼합재료_116.8×240.9cm_2013

 

 

 

                                                      김서영_사유의 공간-우연한 기억_캔버스에 혼합재료_90.9×72.7cm_2011

홀로 있다는 것은 외로움을 느끼게 하며 위안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스스로를 다스리고 도닥일 수 있는 것도 홀로 있을 때 가능하게 된다. '속이 빈 강정'과 같은 현대인의 삶에 '쉼'을 외치고, 외로움을 극복하라고 격려하고 싶다. 현대인의 사회 속에서 느끼는 삶의 염증을 치유하기 위해 본인의 작품 속에서 동화가 펼쳐진다. 긍정적 메시지와 미래를 지향하며 공감하고, 작품을 통해 희망을 얻길 바란다. ■ 김서영

 

 

 

POISON

원재상展 / WONJAESANG / 元載翔 / sculpture 2013_0410 ▶ 2013_0416

원재상_Pharmakon Ⅱ_강화플라스틱, 우레탄 도장_215×70×80cm×4_2013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요일_12:00pm~06:30pm

갤러리 그림손GALLERY GRIMSON서울 종로구 경운동 64-17번지Tel. +82.2.733.1045~6www.grimson.co.kr

원재상의 조각-나는 너에게 가시 돋친 상처가 되고 싶고 치명적인 독이 되고 싶다 ●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침대 속에 한 마리의 커다란 해충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프란츠 카프카의『변신』은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의 예기치 못한 상황인식으로부터 시작된다.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이게 꿈이야 현실이야. 이게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건 결코 현실일 수가 없어. 그러나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등에 와 박힌 걸 보면, 그리고 파출부가 말똥벌레(거대한 말똥벌레!)라고 부르는 걸 보면 이건 분명 꿈이 아닌 현실의 일이었다. 카프카의 알레고리는 꿈을 현실처럼, 아님 부디 꿈이었으면 좋았을 현실을 정색을 하고 보여준다. 어떠한 감정도 배제하면서. 무미건조하게. 그래서 더 섬뜩하다. 그래서 더 현실 같다. ● 누가 그로 하여금 벌레로 변신하게 했을까. 그는 적들의 사회에 포위돼 있다. 인간관계가 그를 흉측한 벌레로 변신하게 했고, 짧은 호기심과 긴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벌레로 둔갑하게 만들었다. 애초에 일그러진 인간관계가 문제였다. 할 수만 있다면 일그러진 관계를 바로잡고 싶고,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벗어나고 싶다. 그래서 나는 꿈속으로 도약한다. 아니, 도약이 아닌 도피에 가깝다. 어쩌면 꿈을 꾼다는 것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욕망을 대신 충족시켜주는 과정과는 거리가 먼,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욕망에 대한 처벌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현실이 된 꿈속에서, 아님 꿈같은 현실에서, 아니 차라리 악몽 같은 현실에서 나는 벌레로 변신한 자신을 발견한다. 그 자의식은 나의 일이며 너의 일이며 우리의 일이다. 그렇게 카프카는 서로 적들에 둘러싸여 있는 현대인의 초상을 그려 보여준다.

 

 

 

원재상_Pharmakon_강화플라스틱, 우레탄 도장_200×70×70cm_2013

원재상은 스티로폼 덩어리를 조각한다. 마치 점토 소성하듯 큰 칼로 떠내기도 하고, 삐죽하게 돌출한 가시 같은 형상을 덧붙여 만들거나 한다. 그렇게 만든 형상을 모본 삼아 형태 그대로 폴리로 떠내는데, 얼핏 안으로 패이거나 밖으로 돌출한 유기적인 형태를 간직하고 있는 비정형의 추상조각 같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 추상적인 형상 속에 사람이 숨어있다. 웅크리거나 누워있는 사람들이며 서 있는 사람들이다. 눈 코 입은 물론이거니와 일체의 세부가 생략된, 정황적으로나 심정적이 아니라면 사실상 사람임을 알아 볼 수가 없는 사람들이다. 패이거나 삐죽삐죽한 이 형상들이며 그 형상들이 암시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 무엇이며 누구란 말인가. 사람임을 거의 알아볼 수가 없는, 사람임을 거의 포기한 것 같은 이 형상들은 공공연한 적의와 공격의 화신 같고 여차하면 기꺼이 공격해올 무기들 같다. 모든 세부가 생략되면서 세부를 이루던 에너지가 오로지 가시를 향해서만 집약되고 응축된 가시인간 같다. ● 이 가시인간을 보면서 불현듯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렸다.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가 아니었듯 그들도 처음부터 가시인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로 변신했듯 그들도 가시인간으로 변신했을 것이다. 우리는 항상 변신한다. 공격적이다가도 우호적인 몸짓이 보이고 날카롭다가도 부드러워진 눈빛이 보이는가. 그렇게 변신하고 둔갑한 몸짓이 보이고 눈빛이 보이는가.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심리가 밀어올린 것이고 정서가 투사된 것인 탓에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지만 잘 보면 보인다. 트랜스포머는 기계공학이 아닌 유기체공학의 일이었다. 바로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었고 네가 겪는 일이었다. 그렇게 가시는 심리가 밀어올린 것이고 정서가 투사된 것이다. 공공연한 적의와 공격의 화신이다. 작가가 인간 일반을 보는 관념이 반영된 것이다. 타자를 향한 작가의 관점이 반영된 것이며, 어느 정도는 자신에게 되돌려진 자의식이 반영된 것이다.

 

 

 

                                                    원재상_Pharmakon Ⅲ_강화플라스틱, 우레탄 도장_100×120×45cm_2013

다시,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가 되었다.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가 되고 싶어 했을 리는 없다.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은 그레고르 잠자의 욕망이 아닌 타자들의 욕망이다. 벌레 같은 놈. 벌레만도 못한 놈. 네가 벌레가 되면 내가 너를 기꺼이 밟아줄게. 그렇게 타자들의 욕망으로 그레고르 잠자는 벌레가 될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사람들로 하여금 변신하게 하는 것은 타자들이며 타자들의 욕망이다. 공격적인 몸짓에서 우호적인 몸짓으로 이행하게 해주는 것도, 부드러운 눈빛에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변신하게 해주는 것도 타자들이며 타자들의 욕망이다. 이처럼 그대들의 욕망으로 나는 가시인간이 되었다. 그레고르 잠자가 그대들의 욕망에 봉사했다면, 나는 그 욕망에 한껏 날을 세우고 각을 세워 방어기제를 강조한다는 점이 다르다. ● 가시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 덕에 아름답게 기억될 수가 있었고 전설이 될 수가 있었다. 릴케는 장미가시에 찔려 죽었다. 가시에 찔린 것이 원인일 수도, 가시에 찔려 온 몸에 퍼진 독이 원인일 수도 있다(실제로는 이로 인한 파상풍이 원인이라고도 하지만, 여하튼). 가시와 치명적인 독이 릴케를 죽인 것인데, 이 얼마나 시인에게 어울리는 죽음인가! 가시는 시인의 영민한 머리를 감싸고 보호하고 영원히 빛나게 할 화관이다. ● 그러나 작가가 제안하는 가시인간의 몸에 칼처럼 돋아난 가시는 이런 낭만적이고 시적인 가시와는 그 종류가 다르고 성분이 다르고 의미가 다르다. 그렇다면 왜 나는 너에게 칼을 겨누고 가시를 곧추 세우는가. 혹 그 칼이며 가시는 너를 향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나를 향한 것은 아닌가. 나를 향한 가시? 여기서 가시는 자기 내면에 퍼진 독으로 변질되고 공격은 트라우마로 이행한다. 나의 몸에 가시가 돋아나게 한 것은 네가 아닌 나 자신의 내면에 걷잡을 수 없이 퍼진 독이었고 내 스스로 키운 상처였다. 상처는 너무 깊어서 숨을 수가 없고 너무 커서 싸안을 수가 없다. 그렇게 가늠할 수도 측량할 수도 없는 상처가 나를 찌르고 너를 찌른다.

 

 

 

원재상_Pharmakon Ⅳ_강화플라스틱, 우레탄 도장_85×40×35cm_2013

 

 

                                                         원재상_Pharmakon Ⅴ_강화플라스틱, 우레탄 도장_70×135×58cm_2013

사실 따지고 보면 크고 작은 상처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없다. 그런데도 유독 상처를 주제의 표면 위로 부각하는 이면에는 남다른 자의식 말고는 달리 이유를 찾아볼 수가 없을 것이다. 결국 작가가 타자를 보는 관점은 공격이 아니었고 적의가 아니었다. 자기연민이었고 상처의식이었다. 상처의식을 다른 말로 하자면 결여의식이며 결핍의식이 될 것이다. 토마스 만은 예술이란 결핍 위로 샘솟는 무엇이라고 했다. 결핍이 없으면 예술도 없다는 말이다. 간절함이 없다면 존재도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상처의식 곧 결핍의식은 예술의 본질이며 존재의 본성에 맞닿아있는 경우로 봐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다. ● 작가는 이번 전시의 주제를 독(Poison)이라고 했다. 독은 양가적이다. 못 쓰면 치명적이지만, 잘만 쓰면 죽을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 바로 파르마콘이 그렇다. 잘 쓰면 묘약이 될 수도 있고 못 쓰면 독약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결국 묘약과 독약은 하나이다. 독으로 하여금 독약이 되게 할 것인가, 아님 묘약이 되게 할 것인가. 당신이 보기에 작가의 조형은 공격으로 보이는가, 아님 상처로 보이는가. 위선보다는 위악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작가는 적어도 외적으로 보기에 위선보다는 위악을 택한 것 같다. 그리고 그 악은 악이 아닌 위악이기에 어쩔 수 없이 그 이면의 자기연민이며 상처를 들키고 만다. 그리고 그렇게 저마다의 자기연민이며 상처 앞에 서게 만든다. ■ 고충환

Vol.20130410c | 원재상展 / WONJAESANG / 元載翔 / sculpture


바다의 합창 Chorus of the Sea

오동신展 / OHDONGSHIN / 吳東新 /

photography 2013_0417 ▶ 2013_0430

 

 

 

 

                                         오동신_비바체 ii Vivace ii_피그먼트 프린트_86×119cm_2012

 



초대일시 / 2013_0417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토포하우스TOPOHAUS서울 종로구 인사동11길 6(관훈동 184번지)Tel. +82.2.734.7555/+82.2.722.9883www.topohaus.com


바람과 물, 결을 읽는 시간● 단어 하나로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바다'라고 부를 때의 울림, 바다의 색깔, 소리, 냄새 등과 함께 연상되는 이미지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우선 바다를 소재로 한 많은 영화 가운데서 내게는 프랑소아 오종 Francois Ozon 감독의 영화『Time to Leave』(2005) 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먼저 떠오른다. 영화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한 어린아이의 뒷모습을 비추는 것으로 시작한다. 주인공의 어릴 때 모습이다. 순환구조처럼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도 등장하는 바다, 병에 걸린 서른한 살의 주인공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왔다. 그에게 바다는 생명을 잉태했던 '물'이었다가, 마지막에는 다시 돌아오게 되는 영혼의 안식처와 같을 것이다. ●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바다로 산으로, 잠시 여행을 가거나 혹은 삶의 자리를 옮기기 위해 떠나간다. 그곳에 무엇이 있어서, 무엇을 보고자 자연 속으로 가는 것인가. 힐링과 웰빙이 이 시대의 화두가 되면서 치유를 위하여 혹은 삶의 새로운 계기를 만들기 위하여 자연 속으로 떠나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다. 그 장소 중에서 바다는 이미 많은 예술가가 시와 음악으로, 그림으로 표현하였고, 사진으로 담아두고자 했던 동경의 대상이자 불멸의 소재였다. 시인들은 자연의 원리를 관찰하고 그것을 삶의 이치에 대입하면서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영국의 시인 캐슬린 레인은 이런 말을 하였다. "우리가 자연과 하나가 될 때, 우리는 이를 통해 무한한 자신의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결국은 그곳에 있는 무엇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나를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망망한 바다를 향해 있는 시선은 결국 자신을 향한 것이며, 바다는 자신의 내면과 마주할 수 있는 거울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진가가 자연을 대상으로 삼는 것과 자연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어떻게 다른 것인가? ● 늦게 사진 작업을 시작하신 분이 제주의 바다를 찍었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내려가 2여 년간 제주도에서 살았다고 했다. 먹고 사는 것에 구애받지 않고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부러운 일이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지 않는 날의 일상이 어떠했을까 궁금했다. 실은 그가 어떤 바람과 파도를 느끼며 제주 바다를 마주하고 왔는지, 그럼으로써 자신 안의 또 다른 어떤 세계를 발견하였는지가 먼저 궁금했던 것이다. 파도가 치게 되는 주된 원인은 바람이라고 한다. 바다 표면과 바람의 마찰로 인하여 생기는 에너지의 양에 따라, 바람이 물살을 밀어내는 세기에 따라 다양한 크기의 파도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바람 많은 제주 날씨와 바다의 상태를 관찰했을 것이다. 그러다 하나의 풍경으로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라는 실체 가까이 성큼 들어가 버린 듯하다. 그러면서 인간의 눈으로는 관찰하기 쉽지 않은 바람의 느낌과 세기, 빛의 강도, 시간과 같은 요소를 카메라의 속성을 빌어 가시화시키고자 했다. 빠른 셔터 속도, 때로는 장노출로 인하여 허공에서 물방울로 멈춰있거나 때로는 현무암 바위 사이로 휘돌아나가는 다양한 형태의 파도가 연출되었다. 실제 모습보다 더 강렬하고 격정적인 장면을 만들고자 했던 그의 욕망을 읽을 수 있다. 이 장면에서마다 그는 바다의 합창을 들었다고 했다. 눈으로 보더라도 충분히 소리의 파장을 감지할 수 있지만, 그는 좀 더 선명하게 속도로 규정함으로써 이미지를 청각화한 듯하다. 음악에서 빠르기를 뜻하는 용어를 각 사진에 이름으로 붙여준 것이다. 이로써 사진 속에 흐르던 에너지는 이제 자기만의 리듬을 가지게 되었다. 라르고(largo 아주 느리게)에서 시작하여 안단테(Andante 느리게)로, 모데라토(Moderato 보통 빠르기로)에서 점점 더 알레그로(Allegro 빠르게), 비바체(Vivace 아주 빠르게), 프레스토(Presto 매우 빠르게)로 이어진다.


             
                                                   오동신_모데라토 iv Moderato iv_피그먼트 프린트_64×88cm_2011

그동안 다양한 바다 사진을 보아왔고 여러 바다를 보러 다녔다. 소란스러운 도시생활이 어느 순간 견디기 어려울 때, 사람들과의 관계가 마치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가는 모래알처럼, 썰물처럼 빠져나간다고 느껴질 때 나는 바다에 갔었다.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수평선, 바다 표면에서 반사되는 빛을 받으며, 바람으로 바다 내음을 받아들이며, 마음이 다시 헐거워지기를 기다렸다. 누군가는 음악으로 위안을 삼고, 친구에게서 위로를 얻을 것이다. 나에게는 말이 없는 바다가 오히려 최선일 때가 있다. 그것은 시각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그 장소의 공기와 기운을 공감각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실제여야 했다. ● 오늘, 다시, 문득 영화 『Time to Leave』 두 장면에 최영미의 「속초에서」의 시구가 겹쳐진다. '바다, 일렁거림이 파도라고 배운 일곱 살이 있었다. ... (중략) .... 바다, 밀면서 밀리는 게 파도라고 배운 서른두 살이 있었다.' ● 이 우연한 연상은 묘하게도 시에서 언급하는 두 나이가 영화 초반에 등장한 주인공의 어릴 때와 다시 바다로 돌아왔을 때의 나이와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바다는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돌아와 마주 선 그는 더 이상 과거의 그가 아니었다. 단순한 '일렁거림'의 상태였던 파도에서 '밀면서 밀리는' 것이 파도라고 알게 되는 것은 연륜에 의해서만 체득될 것이기 때문이다. '밀면서 밀리는' 파도의 양가적인 면을 볼 수 있다는 건 자연의 원리를 통해 삶의 이치를 깨달은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 오동신의 사진적인 행보는 이후 어디로 이어질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가 찍은 사진이 이제 막 새로운 것을 시작한 청년다운 에너지를 담고 있는 것은 사실 의외였다. 한 책에서 성인기의 삶을 연령대로 나누면서 60대를 '인생을 재설계하는 시기'라고 한 것이 기억난다. 일흔을 앞둔 그가 지난 2여 년간 바다를 마주하면서, 인생의 남아있는 시간은 사진을 찍으면서 보내기로 정했다고 했다. 그는 육십에 진정 자신의 '바다'를 발견한 것일까? ● 그가 바다가 아닌 다른 대상을 택한다고 하더라도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인다. 이제 막 시작한 사람으로서 숨이 가빴던 첫 호흡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면, 어떤 바람과 물결 속에서도 자기만의 속도를 유지할 수 있다면… ■ 김소희


 
                                                    오동신_라르고 ii Largo ii_피그먼트 프린트_64×88cm_2011

 

 

 

(8) 31갤러리 T 322-1290

이세현전 3.27-4.2 / 이정아전 3.27-4.2 / 한성희전 4.3-4.9 / 정금옥교수와 사제동행전 4.10-4.16 / 소순희전 4.17-4.23 / 이명산전 4.24-4.30

(69) 57th갤러리 T 733-2657

조윤영 회화전 4.10-4.16

(41) 가가갤러리 T 725-3546

노춘석전 4.3-4.16 / 어포어더블 뉴욕2013앵콜전 4.17-4.30

(2) 가나아트스페이스 T 734-1333
(1층전시장) 강다영전 4.3-4.8 / 김정연전 4.10-4.15 / 김현정전 4.17-4.22 / 정상엽전 4.24-4.29
(2층전시장) 조지연전 4.3-4.8 / 장혜진전 4.10-4.15 / 성기혁전 4.17-4.22 / 지광근전 4.24-4.29
(3층전시장) 류인수전 4.3-4.8 / 김지호전 4.10-4.15 / CCA KAA 단체전 4.17-4.22 / 이영섭전 4.24-4.29

(10) 가람화랑 T 732-6170
상설전

(59) 갤러리가이아 T 733-3373

김혜진전 4.3-4.9 / 임영화전 4.17-4.23 / 김자연전 4.24-4.30

(22) 갤러리 각 T 737-9963

(15) 갤러리 그림손 T 733-1045
이상은전 3.27-4.2 / 박영하전 4.3-4.9 / 원재상전 4.10-4.16 / 성영록전 4.17-4.30

(49) 갤러리 나우 T 725-2930
안영상전 3.20-4.2 / 리강 사진전 4.3-4.23 / 정진구 사진전 4.24-4.30

(47) 갤러리 대아 T 725-2550
상설전

(57) 갤러리 더케이 T 764-1389
(1전시실) 정호진 도자전 3.27-4.2 / 남학현 서양화전 4.3-4.9 / 박천숙 동양화전 4.10-4.16 / 유경화 동양화전 4.17-4.23 / 박세현 사진전 4.24-4.30
(2전시실) 송지영 도자전 3.27-4.2 / 김선민 사진전 4.3-4.9 / 윤종 서양화전 4.10-4.16 / 이승재 사진전 4.17-4.23 / 조기주 서양화전 4.24-4.30

(44) 갤러리 라메르 T 730-5454
(제1전시실) 김순겸전 3.27-4.2 / 임희빈전 4.10-4.16 / 강혜식전 4.24-4.30
(제2전시실) 미방회전 3.27-4.2 / 김옥경전 4.10-4.16 / 예린회전 4.24-4.30

(제1-2전시실) 이규홍전 4.3-4.9 / 김정화전 4.17-4.23

(제3-4전시실) 석천도서회전 4.24-4.30
(제5전시실) 서경애전 4.24-4.30
(제3-5전시실) 한양공예예술대전 4.3-4.16 / 후소회전 4.17-4.23

(54) 갤러리 룩스 T 720-8488
최원진전 3.27-4.2 / 안성준전 4.3-4.9 / 게하르트전 4.10-4.23 / 와이포토전 4.14-4.30

(40) 갤러리 메쉬 T 730-5321

(71) 갤러리 바움 T 720-4237
상설전


(38) 갤러리 바이올렛 T 722-9655
강은희전 3.27-4.2 / 신현수전 4.3-4.16 / 산성작가회전 4.17-4.23 / 카페 파인아트전 4.24-4.30

(72) 갤러리 베아르떼 T739-4333
소장품전

(25) 갤러리 서호 T 723-1864

(37) 갤러리 수 T 733-5454
김연주전 3.27-4.2 / 고정숙전 4.3-4.9 / 신춘전 4.10-4.16 / 창미회전 4.17-4.23 / 자유회화전 4.24-4.30

(30) 갤러리 시작 T 735-6266-7
정기훈 사진전 3.28-4.13 / 일러스트 벽화전 4.16-4.29

(34) 갤러리 신상 T 730-6540
국제아트페어전 3.27-4.2 / 제3회 한류문화 예술페스티벌전 4.3-4.9 / 코리아 환타지전 4.10-4.16 / 한류문화 예술상전 4.17-4.23 / 한류문화 국제교류전 4.24-4.30

(12) 갤러리 아트뱅크 T 737-0321
상설전

(28) 갤러리 아트플러스 T 732-7710
원로작가 소장전

(1) 갤러리 예당 T 732-5364

패션 장신구전 4.24-4.30
 
(21) 갤러리 올 T 720-0054

송미란 서양화전 4.3-4.9 / 임선희전 4.10-4.16 / 김정이전 4.17-4.23 / 시정희전 4.17-4.23 / 율목회전 4.24-4.30

(16) 갤러리 우림 T 733-3738
상설전

(6) 갤러리 이즈 T 736-6669
(제1전시장) 2013 슈가크래프트 쇼전 3.27-4.2 / 차미정전 4.3-4.9 / 김혜원전 4.10-4.16 / 이정자전 4.17-4.23 / 이근택전 4.24-4.30
(제2전시장) 송재윤전 4.3-4.9 / 이두연전 4.10-4.16
(제3전시장) 함유미전 3.27-4.2 / 박근철전 4.3-4.9 / 한국도자장신구협회전 4.10-4.16 / 김연진전 4.17-4.23 / 신혜영전 4.24-4.30

(제4전시실) 임현준전 3.27-4.2 / 이정연전 4.3-4.9 / 차민지전 4.10-4.16 / 전수연전 4.17-4.23 / 황미은전 4.24-4.30

 

(73) 갤러리 일호 T 6014-6677

박선기전 3.28-4.3 / 정연연전 4.4-4.10

(71) 갤러리 타블로 T 723-6081

(55) 갤러리 토포하우스 T 722-9883, 738-7555
(1전시실) 양정미 서양화전 3.27-4.2 / 박하나 공예전 4.3-4.9 / 뢍인자 판화전 4.10-4.16 / 홍동철 서양화전 4.17-4.23 / 3인 작가전 4.24-4.30
(2전시실) 최보람 한국화전 3.27-4.2 / 김경미 서양화전 4.3-4.9 / 박혜숙 서양화전 4.10-4.16 / 황정희전 4.17-4.23 / 상상전 4.24-4.30
(3전시실) 이봉화 서양화전 3.27-4.2 / 조샘 사진전 4.3-4.9 / 양양금 사진전 4.10-4.16 / 오동신 사진전 4.17-4.30

(39) 갤러리 환 T 735-7047
아이라인 드로잉전 3.27-4.2 / 최석전 4.3-4.9 / 송인선전 4.10-4.16 / 우미경전 4.17-4.23 / 이득현전 4.24-4.30

(27) 갤러리M T 735-9500
임근우전 3.27-4.2 /한국사경연구회 뉴욕초대작품 귀국전 4.3-4.9 / 제5회 미사모전 4.10- 4.16 / 박창근전 4.17-4.23 / 고춘순전 4.24-4.30

(9) 경인미술관 T 733-4448(ARS9)
(제1전시관) 신철화 서예전 3.27-4.2 / 강금옥 한국화전 4.3-4.9 / 갈뜰회전 4.10-4.16 / 한담 한조각 보자기전 4.17-4.23 / 목연회전 4.24-4.30
(제2전시관) 박병오 서양화전 3.27-4.2 / 토루소전 4.3-4.9 / 아름다운 날개전 4.10-4.16 / 송강스님 서각 서예전 4.17-4.23
(제3전시관) 제6회 한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전 3.27-4.2 / 목이당 가구전 4.3-4.9 / 소원 유영숙 제자전 4.10-4.16 / 강인주 서양화전 4.17-4.23 / 최재훈 도예전 4.24-4.30
(아틀리에) 5인5색 세라믹 핸드페인팅전 3.27-4.2 / 도우리회전 4.3-4.9 / 황보명우. 김영미 2인전 4.10-4.16 / 김인숙 서양화전 4.17-4.23 / 사봉선 공예전 4.24-4.30
(제5전시관) 김용순 서예전 3.27-4.2 / 원색 목걸이전 4.3-4.9 / 한지그림 빛 고은전 4.10-4.16 / 이경자 서양화전 4.17-4.23 / 제2회 아미띠에전 4.24-4.30
(제6전시관) 정기봉 도자전 3.27-4.2 / 박상희 금속공예전 4.3-4.9 / 아트 그룹 파프전 4.10-4.16 / 뢰차전 4.17-4.23 / 나무회전 4.24-4.30

(43) 공아트스페이스 T 730-1144
(1F) 달리기 소년전 4.3-4.9 / 윤미영전 4.17-4.23
(2F) 602공작소전 4.1-4.9 / 터치미전 4.17-4.23

(3F) 정두환전 4.17-4.23

(1-2F) 하진전 4.10-4.16

(1.2.3F) 홍익루트전 4.24-4.30

(68) 공평아트센터 공평갤러리 T 3210-0071
2013 중앙대 미술학부 서양화.동양화 교강사전 3.27-4.2 / 3인3색전 4.3-4.9 / 최일전 4.17-4.23 / 12지상전 4.24-5.7

(51) 관훈갤러리 T 733-6469
조현익 설치.회화전 4.3-4.16 / 이후창 조각전 4.17-4.30

(61) 나무갤러리 T 2011-1995
간화선 중흥을 위한 선서화전 4.23-5.3

(32) 노암갤러리 T 720-2235-6
점프 오브 뉴 아티스트전 4.3-4.9(1부), 4.10-4.16(2부), 4.17-4.23(3부), 4.24-4.30(4부)

(5) 노화랑 T 732-3558
2013 작은그림. 큰 마음전 4.10-4.17

(19) 단성갤러리 T 735-5588
상설전

(26) 덕원갤러리 T 723-7771

(60) 동덕아트갤러리 T 732-6458

강민정전 4.3-4.9

(65) 동산방화랑 T 733-5877

(46) 동호갤러리 T 722-3665
상설전

(29) 리서울 갤러리 T 720-0319
구구김전 3.22-4.2 / 장은경전 4.3-4.16 / 4월의 그림 이야기전 4.17-4.30

(20) 모던화랑 T 732-6261
원로중진소장품전

(11) 모인화랑 T 739-9292
엄익훈 조각전 4.10-4.18

(58) 목인 갤러리 T 722-5055

김소영 섬유디자인전 4.17-4.23 / 이영조 회화전 4.24-4.30

(67) 물파스페이스 T 739-1997-8

홍화순전 4.3-4.16 / 노상동전 4.17-4.30

(4 ) 미술공간 현 T 732-5556

(47) 백송갤러리 T 730-5824

에프트 더 쇼전 3.19-4.15 / 이지호전 4.16-4.31

(52) 백악미술관 T 734-4205
(1층) 김시인전 4.4-4.10 / 제7회 산석도반전 4.18-4.24 / 모란회민화전 4.25-5.1
(1.2층) 고미술 고우회전 4.11-4.17

(50) 보나장신구박물관 T 732-6621
상설전

(70) 사비나미술관 T 736-4371
아티스트의 포트폴리오전 3.20-5.24

(31) 서울미술관 T 732-3314
창석회전 3.27-4.2 / 도문회전 4.3-4.9 / 작은작품미술제전 4.10-4.23 / 대한민국 수채화 작가협회전 4.24-4.30

(42) 선화랑 T 734-5839

최동열전 4.3-4.16 / 이인실전 4.24-4.30

(48) 성보갤러리 T 730-8478

소홍비스크 인형전 4.3-4.9 / 류제연 도예전 4.10-4.16

(62) 아라아트 T 743-1643

(B1-B4) 이호신전 4.4-4.28

(3F) 김주성전 4.11-4.17

(4F) 도시기행 사진전 4.11-4.23

(3) 영아트갤러리 T 733-3410

봄의 향기전 3.27-4.5 / 뉴욕 앤드 서울 앙코르전 4.10-4.16 / 회화 발상의 전환전 4.17-4.23 / 한국화 젊은 모색전 4.24-4.30

(66) 예성화랑 T 738-3630
현대 프랑스작가 상설전

(13) 유니아트갤러리 T 723-7170

전광영 소품 외 상설전

(7) 이음아트 인사 T 736-8811

(18) 인사갤러리 T 735-2655-6

스몰 원더스전 (3부) 3.20-4.23

(라글레르갤러리 B1) 봄의 정원전 3.20-4.23

(53) 인사아트센터 T 736-1020
(JMA스페이스 B1F) 홍현철전 4.3-4.8 / 도병락전 4.10-4.15 / 이석중전 4.17-4.22 / 김병기전 4.24-4.29
(제3 특별관 B1F) 윤고은전 4.3-4.8 / 권한나전 4.10-4.15 / 김경령전 4.17-4.22 / 류현숙전 4.24-4.29
(본 전시장 1F) ) 매과이어정숙전 4.3-4.8 / 박상덕전 4.10-4.15 / 당신이 몰랐던 마카오전 4.17-4.29  
(제2전시장 2F) 육효진전 3.27-4.1 / 김규헌전 4.3-4.8 / 추은영전 4.17-4.22 / 최영미전 4.24-4.29
(제1특별관 3F) 임명희전 3.27-4.1 / 강윤정전 4.3-4.8 / 조경훈전 4.10-4.15 / 강병호전 4.17-4.22 / 배은미전 4.24-4.29
(제4전시장 4F) 오선영전 3.27-4.1 / 돌문화보존회전 4.3-4.8 / 필생화전 4.17-4.22 / 남진현전 4.24-4.29
(제2특별관 4F) 수정전 3.27-4.1 / 이상구전 4.3-4.8 / 진홍범전 4.10-4.15 / 최지현전 4.17-4.22 / 이현주전 4.24-4.29
(제5전시장 5F) 박외영전 3.27-4.1 / 흙이 좋아요전 4.10-4.15 / 김소연전 4.17-4.22 / 손봉숙전 4.24-4.29

(제6전시장 6F) 한국 아르브뤼전 4.3-4.8 / 김서영전 4.10-4.15 / 임개화.박현아 2인전 4.17-4.22

(14) 장은선갤러리 T 730-3533
한천자 수채화전 4.3-4.13 / 김기택 서양화전 4.17-4.27

(36) 조형갤러리 T 736-4804
허벅지 크로키전 3.27-4.2 / 더 풍경전 4.3-4.9 / 김호남 서양화전 4.10-4.16 / 임조희.이건재.오순옥.최을선 4인전 4.17-4.23 / 이자회 한국화전 4.24-4.30

(23) 통인가게 T 733-4867
(통인옥션갤러리) 김구림 회화전 4.3-4.24

(35) 하나로갤러리 T 720-4646
영월 십경전 4.3-4.9 / 미래사생회전 4.10-4.16 / 고만식전 4.17-4.30

(56)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T 733-9041

(45) 화봉갤러리 T 737-0057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세계를 연 한국 고활자의 세계전 4.3-4.28

(17) JH갤러리 T 730-4854
양경희전 4.3-4.9

(63) OCI미술관 T 734-0440
권여현전 3.7-4.28

(64) space99 T 735-5811-2

2013 평화박물관 신진작가공모전 4.16-4.25(1부) . 4.30-5.10(2부)

이강용展 "처연한 화려함"

일시 : 2013.4.5-4.11
오프닝 : 4월5일 오후5시
장소 : 이강용 갤러리 (마산 창동예술촌)

 

 

 

 

빛의 사원 The Temple of Light
조현익展 / CHOHYUNIK / 趙鉉翼 / painting.installation 2013_0403 ▶ 2013_0416

조현익_King Power(Flash-I-1209119)_조각상, 향, 병, 감속모터, 타공철판, 도르레, 놋쇠,전기촛불, 케이블, 조명장치, 쇼핑백, OHP ,테이블, 사운드장치_가변설치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조현익 블로그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3_0403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관훈갤러리KWANHOON gallery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1,2,3층Tel. +82.2.733.6469www.kwanhoongallery.com

조현익 작가는 차가운 금속 표면에 시크한 여성의 이미지를 극화시키는 젊은 작가로 부각되고 있다. 작가는 회화의 정격성(authenticity)에 대한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회화의 영역확장가능성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을 한다. 작가가 나타내려고 하는 주제는 여성이다. 그것은 여성에 대한 신성(神性)의 의미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원초적인 노력과도 같다. 여성성과 대비되는 차가운 메탈의 표면에 여성의 가장 에로틱한 얼굴표정을 그려낸다. 그러나 작가의 구성에서 에로스로 일관되는 삶의 격정과 또 다르게 불길한 죽음의 분위기가 엄습해온다. 성(聖)과 속(俗)이 둘이 아니고, 삶과 죽음을 시간 속에서 구분할 수 없으며, 아름다움과 추함은 서로를 돋보이게 도와주듯이 작가의 작품 속에서는 대비되는 속성들이 서로 밀고 당기는 가운데 팽팽한 긴장을 이룬다. 노자의 '난이상성(難易相成)'이라는 말은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를 완성시킨다."는 뜻이다. 금속 표면의 차가움과 여성의 따뜻한 체온의 대비는 서로 다른듯하지만 영원히 한 몸일 수밖에 없는 죽음과 에로스의 변증적 이중주를 완성시킨다. ■ 이진명

 

조현익_King Power-sacred and secular_조각상, 향, 병, 감속모터, 도르레, 놋쇠,조명장치, 케이블, 테이블_가변설치_2012

                                    조현익_King Power-saint_쇼핑백, 타공철판, 전기촛불, 케이블, 사운드장치, 테이블_가변설치_2012

숭고함과 희망이 넘치는 '빛의 제단'을 세우다 - (중략) 상처와 두려움으로 승화한 팜므파탈 ● 사랑의 배신은 작가에게 여자라는 존재를 전혀 알 수 없는, 혼란스러움으로 인도했다. 이제 여자는 사랑과 욕망의 대상이 아닌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두려움은 경외심을 낳는다. 그리고 경외심은 신성함으로 연결되었다.「메두사」라는 팜므파탈의 존재가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수많은 갈래의 머리칼은 메두사의 얼굴을 휘감고 있던 뱀의 형상과 다름아니다. 이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신성시는 사원의 제단으로 확장되었다. 팜므파탈의 메타포인 흡혈귀가 제단 주위를 돌아다니듯, 그의 작품은 철판 회화에서 사원 공간으로 확장되어 간다. 성적 메타포로서의 촛불 그림을 그려왔지만, 이제는 실제 촛불과 철판 오브제의 구성으로 전시장은 하나의 사원이 되었다. 흡사 19세기 고딕소설 속의 배경을 보는 듯, 그의 작품 분위기는 묘한 어두움과 음습함이 휘감게 되었다. 제단과 팜므파탈의 대비는 성(聖)과 속(俗)으로 대변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블로그에는 '위딘 템테이션(within temptation)'이라는 고딕메탈 그룹의 노래가 끊임없이 무한반복된다. 제단으로 둘러싸인 '메두사의 방'을 나갈 수 있는 출입구를 찾을 수가 없듯이. 이렇듯「빛을 모으다-메두사의 방」은 성과 속이 혼재해 끊임없이 순환하는 '우로보로스'의 공간이다.

 

조현익_The Altar of Light(Flash-I-1205115)_부식된 철판, 유채, 혼합재료, 스크래치,

타공철판, 나무패널, 조광기, 전기촛불, 케이블, 쇠사슬, 갈고리_370×732×80cm_2012

 

                                  조현익_Medusa(Flash-S-1204114)_부식된 철판에 유채 및 혼합재료, 스크래치_312×244cm_2012_부분

"희망은 좋은거죠, 가장 소중한 것이죠, 좋은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영화『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 앤디가 형무소에서 레드에게 이렇게 말했다. 조현익에게 지난 작업은 점점 다크 사이드로 빠져드는 다스베이더처럼 욕망과 사랑과 배신과 슬픔, 두려움을 표출하는 해방구였다. 그러나 최근의 작업에서 좀 더 다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태국 여행 때 방콕의 어느 한 사원에서 발견한 부처와 누드여인 조각상 오브제가 시작이었다. 이를 통해 탄생한 작품이 바로「왕의 힘」. 성과 속의 충돌을 좀 더 위트있게 비튼 작품이다. 지난 작품들의 음습함이 걷힌, 좀더 밝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작가는 11월에 예정된 중국 여행에서 좀 더 발전된 모습의 설치 작품을 구상 중이다. 내밀한 개인 연애사에서 좀 더 확장된 인간상과 역사로 작업의 외연을 확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듯 나는 앞으로 보여줄 '빛의 제단'이 있는 사원이 좀 더 밝은 느낌의 사원으로 변모했으면 좋겠다. 그가 이제는 과거의 욕망과 배신과 슬픔에서 벗어나, 다양한 삶의 즐거움과 사랑의 희망을 찬양하는 그런 사원 말이다.

 

조현익_Ophelia(Flash-S-1214124)_부식된 철판에 유채 및 혼합재료, 스크래치_244×122cm 2012

공포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은 '사계'라는 연작 작품에서만 '공포'의 요소를 뺀 것으로 유명하다. 그 중 '봄'편이 앞에 이야기한「쇼생크 탈출」이다. 앤디 듀프레인이 찾았던 희망의 땅 '지후아타네호'를 찾아가면서 레드는 이렇게 말한다. "부디 국경을 무사히 넘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내 친구를 만나 따뜻한 악수를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태평양이 내 꿈에서처럼 푸르름으로 가득하기를 희망한다. 나는 희망한다." 그가 진정한 사랑에 빠져 희망이라는 사랑으로 더 나아갈 때, 그의 작업 세계는 더 광활한 제 2막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 류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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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익_Light, Cut Myself(Flash-S-1308140)_부식된 철판에 유채, 혼합재료, 스크래치_122×122cm_2013

본인에게 있어 삶이란 욕망으로서의 자아에 기인하여 그것에 반응하고 그것을 초월하려는 결연한 의지의 여정이다. 욕망하는 본인에게 있어 빛과 어둠으로 대변되는 여성의 이원성은 언제나 내면의 반성적 자아를 눈뜨게 만들었다. 이러한 빛과 여성의 상징성은 삶의 격정을 통과한 하나의 신성한 성전(聖殿)으로 다가오며 무의식 속에 언제나 존재하고 있는 심연과도 같다. 여성은 거룩한 빛의 여신이 되기도 하며 암흑과 공포의 메두사(Medusa)가 되기도 한다. 빛과 어둠, 환희와 공포, 낯섦과 신비로움, 성(聖)과 속(俗),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고 가는 빛의 양면적 속성이 그것이다. 관객의 시선에 반응하고 응시하는 여인의 제스처, 낭자하는 주체와 타자간 보이지 않는 욕망의 흔적들을 통하여 삶과 죽음의 격정을 보여준다. ● 인간이 스스로 구축해 놓은 사회적, 제도적 맥락의 거대한 성전은 인류 역사상 엄연히 존재하나 이것조차도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잉여물에 불과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예술가로서 이러한 지점을 수면 밖으로 드러내는 역할이 앞으로 본인이 지향해야 할 예술가적 태도가 될 것이다. ■ 조현익

Vol.20130403d | 조현익展 / CHOHYUNIK / 趙鉉翼 / painting.installation


                      이청운 "봄이오는 길목展

                                                   일시 : 2013년 3월 13일-3월 26일

                                     장소 : 아라아트센터 1-2층 전시실

 

 

 

 

 

 

 

 

 

 

 

 

 

 

 

 

 

이청운의 초기작을 보는 기회 - 최석태

 

이청운의 남다른 점

 

화가 이청운이 그림을 그리기 비롯한 역사가 40년을 훌쩍 넘었다. 그의 나이도 회갑 나이를 넘었다. 이번 전시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모든 출품작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출품작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이청운의 초기작이므로 초기작 전시라는 것이다. 발표작을 포함해 미발표작도 적지 않다. 이청운의 초기 면모를 총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 동안 이청운이 해오던 개인전을 두어 개 합친 규모다.

이청운이 화가로 등장한 것은 1971년 구상회 공모에 응하여 금상을 얻으면서 라고 할 수 있다. 꽤 화려한 등장이었다. 그 후 꽤 오래 수면 아래 잠긴 것처럼 보였다. 더 화려한 재등장을 위한 것이었을까? 그 사이 그는 애써 들어간 대학을 잠깐 다니다 그만 두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길지 않은 시간 교수로 일하고 있었던 정건모를 만나 그가 세상을 떠나는 때까지 이어지는 사제관계를 이룬다. 정건모가 보여주는 그림의 세계는 마치 점묘파이되 역사적 점묘파와는 다른 평면화를 이룬 화가였고, 더욱 그는 시를 빼곡하다시피 화면에 적어넣는 특이한 화가였다. 그를 남다른 그림쟁이로 만든 요인은 청년시절에 공주사범학교에 다니면서 만난 시인 신동엽과의 교우였다. 신동엽은 저항, 민족 시인의 면모를 지녔던 까닭에 공공연히 떠벌릴 수 없는 인사였지만 그와의 교우는 정건모의 그림에 빈번히 등장하는 시 적어넣기로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또한 이청운은 정건모의 권유로 화가단체 제작전에 속해 활동한다. 제작전에서 알게 된 박창돈, 김충선, 김영덕 등 선배 세대의 활동을 곁에서 보게 된 것도 부산에서 뼈가 굵었던 탓에 좁았다고 할 수 있는 참조 범위를 더 넓힐 수 있었으므로 그에게 분명 행운이었다. 매듭짓자면 이청운이 문인을 비롯한 광범위한 예술 분야 인사들과 낯설지 않은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도 정건모의 취향과 주변은 크게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림의 선배들 그리고 형제 예술들에 대한 친근감은 여느 화가들과 이청운을 구별하게 해주는 하나의 표지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초기작의 면면들

 

다시 말하지만 이번 전시는 이청운의 초기작이 중심이 된 전시다. 길게는 그려진 지 4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것도 출품된다. 이런 시간의 격절에 과연 얼마나 많은 작품이 견딜까? 드높은 성취라고 여겨졌다가 무상하게 무가치하다고 여겨지게 된 이름 높던 화가들의 그림들이 우리의 뇌리를 스쳐간다. 이번 출품작들을 여러 차례 살펴본 나는 그의 작업들이 전혀 그 빛을 잃지 않고 있는 것에 놀랐다. 그럴 뿐아니라 그가 현재 보여주고 있는 건강한 낙관성, 빛과 어둠의 대조를 통해 궁극적으로 낙관하게 하고, 긍정하게 하는 성질이 그의 초기작에도 존재하였음을 깨닫게 하였다. 이는 흔치 않은 경지다.

출품작 중 가장 이른 시기에 그려진 그림에서 그가 보여주는 광경은 이채롭다. 그늘진 집의 한 모퉁이와 집의 그림자가 다른 집의 지붕에 드리워진 느낌을 전경에 두고 화면의 중앙, 주요부는 돌연 밝게 처리하는 과감한 연출을 보여준다. 화면을 가로지르며 펼쳐진 구릉을 온통 차지한 판자집 마을을 이루는 집들 하나하나에 당연히 드리워졌어야 할 어두운 부분이나 그림자를 모조리 소거하여 밝게 나타낸 것이다. 그 배후의 하늘 조차 어둡다. 하늘이 이 정도로 어둡다면 전경을 이루는 집의 모퉁이나 집의 그림자는 존재할 수 없다. 실제로는 전혀 일어날 수 없는 이런 설정은 강한 확신감을 지녀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전혀 모순을 느끼지 못할 정도이다. 이 그림이 그려질 무렵의 이청운은 30살 무렵이다. 1970년대의 마지막 해에 어느 누가 이런 확신에 찬 화면을 보여주는가? 식민지 이래 ‘도화’시간의 도학적인 투시도법, 뜨거운 각인처럼 우리를 눌렀던 명암법과 원근법의 억압이 서슬 퍼렇던 시기에. 아울러 이런 면은 정건모의 화면을 연상해보면 그다지 낯설지 않고, 이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청운이 만난 적도 없었겠지만 그의 화면과 소재를 다루는 태도는 마치 박수근의 대담함을 연상케 한다. 왕대밭에서 왕대가 난다는 속담처럼, 좋은 선배 예술가를 배운 자만이 좋은 예술가일 수 있다는 확신을 더욱 굳게 하는 사례라 여겨진다. 빛과 어둠을 대조시키는 그의 자세는 그의 그림세계에 지금도 관통하는 기본적인 성격이다.

 

크게 빛났던 이청운의 1980년대

 

구상전 금상 수상 거의 10년 후에 그는 단연 재부상한다. 세 번째로 열린 중앙미전 공모에 응하여 특선을 획득한 것이다. 이로부터 그는 여러 공모전에서 주목을 모으거나 상을 받는다.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되어 1980년대 내내 이어진 말 그대로 역동하는 한국 사회의 한 특징을 만끽한다. 1980년대는 이청운의 화력에서 두 번째 연대이기도 하지만 최고의 성과를 보인 시기로써 그를 1980년대의 화가로 꼽기에 모자람이 없는 맹활약을 나타냈다. 도드라진 현상중 하나를 꼽아보자. 스포츠 일간지의 미술 담당 기자였던 이성부 시인이 국전(현 미술대전)의 전시작 중에서 최고작으로 이청운의 그림을 뽑은 것이다. 한마디로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이는 물론 국전이 실시된 초창기부터인 즉 이승만 정권 때부터 몇몇 월간지에서 시도한 별도의 추천이 전통이 되다시피 한 것의 연장선 위에서 시도한 것이다.

이런 와중에 첫 개인전이 1981년에 치루어졌다. 이청운 자신 자신에게 유리한 분위기에서 최대의 힘을 발휘하게 되었겠지만, 첫 개인전 이듬해 그는 중앙미전 최고상인 대상을 받음으로써 절정의 기세를 나타내 보인다. 이런 움직임에 대하여 미술사회는 대단히 호의를 드러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전시행사도 초창기에 심사위원들의 나눠먹기식 행태로 인해 답보에 머물렀던 것이 심사진을 대폭 갈아치우면서 일어났던 것이다. 새로운 기운으로 오르막을 이루는 시대의 흐름에서 이청운이 도드라지는 형국이었다. 이 후 중앙미전 대상으로 정점을 찍는가 싶었던 이런 기운은 수년 뒤인 1985년 미술기자상, 프랑스로 건너간 직후인 1987년 살롱도톤느 전에서 1등상을 받으면서 국내에 그치지 않고 국외로까지 뻗어 그야말로 경이로운 결과를 만들었다.

 

현실과 발언 그리고 불법 감금

 

한편 이 시기 이청운에게 행운만 줄을 이었던 것은 아니다. 폭압적인 박정희 정권 말기인 1970년대 말에 우리 미술의 답답함에 견디지 못하던 일군의 엘리트 미술평론가와 작가군이 미술단체 현실과 발언을 만들었다. 박정희 사거 직후 열렸던 창립전이 금지되어 다른 장소에서 뒤에 열렸던 사정은 가까운 시기의 미술사에 기록되었다. 이청운이 서울로 활동무대를 옮긴 뒤 문제의 미술단체 현실과 발언의 회원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멀리는 정건모가 있었다. 정건모의 제자였던 손장섭도, 또한 그 직전까지 드물던 미술잡지 기자로 이청운의 활약상을 눈여겨 보던 고향 선배 김용태도 그를 현실과 발언으로 적극 이끌었다. 그는 이청운이 결혼 전 자신의 집에 수년 동안 살게 하기도 했다. 그가 가입한 미술단체 현실과 발언은 반드시 특기할 미술가단체이다. 각기 성격 있는 미술가 회원 말고도 이 단체에는 최민, 성완경 등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미술평론가 다수가 회원으로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모임은 여느 미술가 단체와는 다른 진지함과 공부하는 분위기, 주제를 탐구하기 위한 답사가 잦았다. 이런 분위기 또한 이 땅의 어느 미술단체는 물론 대학에서조차도 맛보기 힘든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돌연 깨지고 만다. 그의 불운이라고 앞에서 말한 사정이 발생한 것이다. 현실과 발언의 다른 회원들이 교수, 이름만 말하면 다 알만한 명문인 고교와 대학 출신이거나, 비상한 역사과정 때문에 잘 뭉쳤던 지역 출신이었던 데 대하여 이청운은 그런 배경이 없었다. 그를 만만하게 본 정보당국은 이청운을 납치하여 무려 50일 가량이나 감금한 일이 생기고 말았다. 풀어주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강요하여 지금껏 그의 이런 사정을 아는 이가 드물 정도이니, 그의 공포심이 얼마나 심각했을 지 짐작할 따름이다. 그가 각광받는 속에서 이를 즐길 수 있었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를 택해 낯설고 먼 길을 떠난 이유에는 이런 까닭이 있었기 때문이다.

 

 

건강한 구석의 힘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거머쥐고, 당시 신망 높은 사립 미술관이던 서울미술관이 선정한 문제작가에도 선정되면서 용기 백배한 이청운의 1982년 전시작은 그가 유년과 청년 시절을 보낸 부산의 항구 풍경을 보여준다. 항구하면 거개의 화가들이 감상적이고 애수적인 면모를 보여주므로 상투성마저 느끼게 되지만, 그가 부여한 그림의 제목 ‘구석’과 달리 구석진 느낌은 전혀 없고 화면에서 느껴지는 것은 강건한 힘이다. 그래서 보여주는 것이 ‘구석의 힘’인가? 힘이 느껴지는 항구 그림이다. 그의 젊음과 그 시절 우리 사회의 진전하고자 하는 힘이 얼마나 드셌던가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그런데 마지 못해 선택한 외유에서 그는 또 대단한 성과를 거둔다. 그것이 앞서 말했던 살롱도톤느 전에서의 1등상 수상이었다.

그러나 새옹지마의 인생살이런가? 이런 수상의 영예도 지금 그의 삶과 그가 속했던 우리 사회의 변화에 비추면 이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다. 이른바 민주화를 성취하고, 비록 군사정권에 이어 학살로 집권한 세력과 타협하여 만들어진 사이비 민간정권이었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민주화를 쟁취하여 힘을 얻은 한국 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자아낸다. 특히 전후세대인 이청운을 둘러싼 변화도 그 이전의 열강의 침략과 식민지였던 시대조차 상대적 안정기로 여겨질 상전벽해의 변화였다. 이에 따라서 선량한 화가들의 변화도 강요되다시피 한 세월이었다. 이청운 보다 좀 앞선 세대이긴 하지만 이전 세대로 박고석, 김서봉, 박서보 등의 이름만 떠올려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변모 무쌍함은 우리를 당황하게 할 정도다. 우리가 거쳐 온 지난 100년 남짓의 시간이 얼마나 역동과 혼동 그 자체였던 지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그가 결혼하고 수배를 피해 숨어다니다 결국 잡혀가는 시기인 1982년 후반기와 이듬해에 그는 지난 삶을 드러내는 그림을 그렸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K씨의 회상>과 <광대>가 그것이다. 자전적이거나 자화상의 면모를 가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전의 그림이 그림으로서의 성격에 충실하여 성공적인 데 대해 이 그림들의 속 내용을 이루는 체험은 극적이었으나 이를 형상화하는 데서는 그다지 성공하지는 못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독재 정권의 앞잡이들에게 잡혀가서 되풀이 받은 협박성 질문에는 왜 ‘구석’을 내내 그리냐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 체험으로 자신이 광대가 아닌가 하는 상념을 지울 수 없었다. 어린 시절을 포함해, 아무리 해도 잊지 못할 쓰라린 체험들이었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는 도저히 없는 것이었지만 그림으로 다룰 성격의 소재로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고 여기고 싶다.

 

마치면서 그리고 그의 오늘

 

1980년대 후반부터 그는 훨씬 접사된 광경을 그린다. 멀리서 조망하는 듯 한 초기작과 달리 대상에 접근함으로써 그는 점경으로 처리된 인물이라도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물씬 느끼게 한다. 화면은 훨씬 넉넉해지고, 자유로운 붓질과 색감이 초기의 딱딱하고 엄격함을 넘는다.

최근에 그린 그림에서 그는 전과 달리 화면 전체가 두터워졌다. 특히 밝은 부분에 그런 질감을 더욱 형성하여 따스하고 아늑한 느낌을 더하고 있다. 그리하여 도달한 그림의 제목 붙이기는 ‘삶의 힘’이고, ‘위대한 삶의 이야기’이다. 이청운의 편력은 ‘구석’에서 ‘위대한’이라는 형용사가 붙은 사는 이야기로 펼쳐지고 있다. 이청운이라는 화가의 자아가 긍정적임을 보여주는 조용한 증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 전시는 화가 이청운을 오래전부터 알고 사랑해 오던 아라아트 김명성 대표의 후의로 마련된 것이다. 아주 활발했다고 평할 수 있는 활약상을 보였던 이청운이었지만, 그의 초기작을 망라하다시피 한 자리에 모을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가 자랐던 부산에서 개인전이 한 번도 열리지 않은 것은 나로서도 섭섭한 일이다. 앞으로를 기대한다. 아울러 초기와 별도로 높은 성취를 보인 그의 근작 전시도 따로 멀지 않은 어느 날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다시 한 번 이런 기회를 만든 김명성 대표께 늘 좋은 구경거리를 기대하는 직업 구경꾼으로서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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