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잡히지 않으면 붓 잡지 않아 내 그림에 솔직한 화가 되고 싶어”
매화 그리는 동양화가 성영록
‘봄’ 하면 벚꽃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겨우내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처음으로 봄 소식을 알리는 꽃은 따로 있다.
바로 애잔한 향을 풍기면서도 바람에 흐드러진 자태가 고혹적인 매화다.
“천진스러운 태도에 단정한 얼굴, 하얀 치마에 깨끗한 소매, 우의(羽衣·선녀나 도사가 입는다는 옷으로, 새의 깃으로 만든 옷)와
예상(霓裳·무지개와 같이 아름다운 치마라는 뜻으로 신선의 옷)으로 눈같이 흰 고운 살결, 옥 같은 얼굴에 윤이 흘러 산뜻하다.”
삼봉 정도전(1342∼1398)이 ‘삼봉집’에서 묘사했듯, 예로부터 매화는 고전적인 아름다움으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훔쳤다.
시간이 훌쩍 흘러 세상이 많이 바뀌었건만 찰나의 순간 뭇 사람의 마음을 홀리는 매화의 아름다움은 여전하다.
성영록(33·사진) 작가는 현대적인 감각으로 매화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고 있다.
그의 그림에는 세월을 비껴가는 매화의 초월적 아름다움이 진하게 배어 있다. 그것도 아주 세련되고 고고한 자태로 말이다.
17일부터 29일까지 서울 관훈동 갤러리 이즈에서 열리는 단체전 ‘감동을 말하다’에 참여하는 그를 14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났다.
성 작가가 매화를 처음 만난 건 대학교 3학년 때. 마치 첫사랑과 맞닥뜨리듯 매화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경남 하동을 여행하던 중 평사리 최참판댁 매화밭에서 처음 매화를 만나게 됐다.
순간 머리가 멍해지면서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그때 맡았던 매화향이 아직도 머릿속에 머무르고 있다,
이후 매화꽃이 필 무렵이면 매화를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화폭에도 담기 시작했다.”
이토록 매화를 사랑하는 그에게 매화는 ‘그리움’의 또 다른 이름이다. “매화를 생각하면 늘 기다림이 떠오른다.
매화는 봄이 채 오기도 전에 3주 정도만 잠깐 폈다가 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매화가 폈다 진지 모를 때도 많다.
나는 일 년 내내 그 찰나의 순간을 기다린다.”
그토록 간절히 매화를 기다리는 이유는 무얼까. “나는 스스로 매화를 닮았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닮아가고 싶다.
이 때문에 매화에 끌리는 것 같다. 매화는 완연한 봄에 피는 것이 아니라 다른 꽃보다 한걸음 앞서 핀다.
그렇기에 늘 혼자이고 고독하지만, 그럼에도 자신만의 아름다운 향을 잃지 않는다.”
성영록의 ‘별이 내리다-하얗게 피어나다’.
언뜻 보면 서양화 같지만 그의 그림은 모두 전통적인 동양화 기법으로 그린 것이다.
“처음에 냉금지라는 종이에 풀을 직접 끓여서 세 번 배접한다.
배접은 냉금지를 평평히 핀 후에 그 뒤에 풀을 바르고 질긴 한지를 바르는 작업이다.
두꺼워진 종이에 아교를 희석해 칠하고, 색 먹과 봉채 물감 등을 이용해 염색하듯 물결작업을 한다.
그다음 산과 섬을 그리고, 세필로 매화 가지를 친다.
마지막으로 흰 꽃을 여러 번 올려 형상을 만들고 금분으로 꽃과 가지를 그려 마무리한다.”
그가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은 감정과 이야기다.
“나는 감정이 잡히지 않으면 붓을 잡지 않는다.
내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는 순간 그림을 그려야 이후에도 자꾸만 보고 싶은 그림이 탄생한다.
앞으로도 내 그림에 솔직한 아름다운 화가가 되고 싶다.”
정아람 기자 arb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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