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impression 추상적인 인상

이상선展 / LEESANGSUN / 李尙宣 / installation.painting

2013_0814 ▶ 2013_0826

 

 


이상선_인상-날으는 들꽃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00×100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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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814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갤러리 그림손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경운동 64-17번지Tel. +82.2.733.1045~6

www.grimson.co.kr


침묵이야말로 정확한 것이다. (130804) / 인간의 눈으로 보는 것 이상으로 추상적이고 초현실적인 것은 없다. 물질은 존재하나 자체의 고유한 의미는 없다. (130802) / 가짜가 아닌 진짜 작업은 작업이 가져다 줄 결과가 아니라 동기 그 자체였다. (130317) / 실타래가 꼬이고 꼬였지만 결국은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숙명적인 느낌의 작업. (130316) / 불편한 진실과 엄숙함의 영역. 젠체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예술적일 필요도 없다. 나의 시각을 인위적으로 들이대지 않는다. 그림이 구조를 색상을 결정하게 내버려두면 된다. (130310) / 세상의 모든 것들은 고스란히 나의 필터를 통해서 그림이 된다. 사물을 감각으로 표현한다. 내가 느끼는 추상적 세계를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그것은 구상이던 비구상이던 구체적이다. 의도되지 않은 것은 없다. (130308)

 

 


이상선_abstractly-날으는 들꽃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30×162cm_2013


...내 요사이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알았소. 실체하지 않는 대상을 캔버스에 붙잡아 놓으려 하였소. 그건 두려움이오. 실체하는 것과 실체하지 않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없소. 다만 표현 방법의 차이일 뿐이오. 그건 구상이나 비구상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는 것과 같소. 동일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무엇이 아니라 표현된 것의 나타남이라는 것이오... 실체가 우리에게 강력한 영향으로 나타남을 보여주듯이... 그로인해 모든 것을 비우고 익숙하지 않은 그림이 그리고 싶어질 때까지... (130307) / 나의 모든 것들이 나 스스로 가둬 놓았던 것임을 알았다. 직관과 사유라는 이름의 망각 속에. 내 작품들의 대부분은 가짜였다. 내 그림을 찾아 그려야 한다. 나의생각, 나의말, 나의행동, 나의얼굴. 어느 것이 진짜 나의 것인가? 이 모두가 가짜라면.. 생각이나 행동, 말 등은 외부로 부터 영향을 받아 어느 순간 자기에게 어울리는 얼굴을 가지게 된다. 그렇다면 어느 것이 진짜 나의 것인가? 진짜 나의 것은 원래부터 없었다. / (130217) 단순함의 아름다움. 절대적인 단순함이란 지극히 단순함이다. (130207) / 난 무엇으로 사는가? 곰곰이 생각하다 마치 계시처럼 떠올랐다. 작업에 대한 열정과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산다고.. 너무 거창한가요?.. 아니겠지요... (130127)

 

 


이상선_추상적인 인상-날으는 들꽃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00×100cm_2013

 

 

 

이상선_인상-날으는 들꽃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00×100cm_2013


빈둥거림의 미덕. 무위도식. 행복을 만들어 내는 재능을 가지고. 아름다운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끼리 만나는 법이니까. 유유자적하는 날들로 채우고. (121228) / 억지로 설명 할 수 없다. 그건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림이 막 그려지는 거랑 같다. (121209) / 절대적인 의미 혹은 가치는 절대로 없는가? 그렇다면 내가 찾고자 하는 절대적인 단순함이란 명제는 절대적으로 단순하지 않은 것들인가? 아니면 이중구속 double bind-에피메니데스-에 의한 역설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은 직관과 감성으로 설명 될 수 있는가? (121114) / 실 한 가닥. 깡통 한개. 나무 한 토막.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저 그렇게 할 수 있을 뿐이다. 어떤 계획도 없으니, 그저 자연스럽게 표류하는 가운데 생겨난다. 진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전혀 모른다. 자신의 경로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것들과 결합함으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간다. 여행자. 출발지나 도착지에 연연하면 과거나 미래에 사로잡혀 현재를 긍정할 수 없다. (121112) / 절대적으로 단순함이란 직관적 인식 즉 경험으로부터 오는 어떠한 편견도 버려야 된다는 것이다. (121102)

 

 


이상선_추상적인 인상-날으는 들꽃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00×100cm_2013

 

 

 

이상선_인상-날으는 들꽃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00×100cm_2013


진보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시각을 점점 더 협소한 전문화로 만든다. 그로인해 제시되는 천편일률적인 대안들은 문화적으로 무감각해 진다. 다양성과 이면을 못 보게 한다. 획일화야 말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열등의식을 갖게 한다. (121019) / 각각의 존재는 절대 분리될 수 없다. 또 그 본질은 결코 같은 상태로 머물지 않고 매순간 변화하고 있다. 그렇기에 각각의 사물은 결코 독립적으로 존재 할 수 없다.-공의 의미 무지함이란 감각과 선입관에 의존하는 세상의 경험이다. 그 너머의 세계를 인지해야 한다. 자아 또한 독립적이고 유일한 것이 아니라고 깨달은 때 욕망과 고통, 좌절이 사라질 것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섬세한 가치관과 삶의 태도들이다. 유일한 것이라는 관념은 없다. 하나의 탄생에서 다음의 탄생으로 옮겨가는 것이고 최종적인 해체는 없다. (121018) / 죽을 것이 확실하다. 그래서 잃을 것도 없다. 그래서 두려움도 버린다. 옳고 그름의 절대적인 기준이 실제로는 그렇게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121017) / 나이를 먹는다는 것. 그건 지혜로워 진다는 것. 추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다는 것. 다양한 경험으로 다양한 방식의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나이를 먹는 것도 썩 나쁘지는 않다는 것. 더 단순해지기. 확실하고 필연적인 구성의 논리를 약화시키면 모호라고 기능적인 것이 강화된다. 완결된 구성보다 미완의 시간들로 편성된 작업들... (121015) / 언제나 초점은 미래이다. 미래를 향하는 길은 꼭 하나가 아니다. (120928) ■ 이상선

Vol.20130814d | 이상선展 / LEESANGSUN / 李尙宣 / installation.painting


Somnium

주도양展 / ZUDOYANG / 朱道陽 / painting

2013_0814 ▶ 2013_0820

 

 


주도양_Hexascape39_Canson ARCHES에 수채_158×220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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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814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이즈GALLERY IS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인사동길 52-1)Tel. +82.2.736.6669

www.galleryis.com


빛과 손으로 옮겨 지은 풍경 ● 주도양은 사진매체가 지닌 고유한 성질에 대해 물음을 던지면서, 세상 속 풍경이 하나의 시각 이미지로 구현되었을 때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탐구해 왔다. 그에게 사진이란 타 예술의 형식과 구별되는 하나의 장르이기보다 그것의 기계적 속성이 어떻게 외부세계의 형상을 평면 위로 옮겨 오는지, 또한 그렇게 옮겨진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어떻게 대상을 바라보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유도하는 일종의 회화적 표현수단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유독 사진기에 의한 재현효과보다 사진 자체가 지닌 메커니즘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이를 해체하고 재구성한 결과로 산출되는 이미지에 더 집중해 온 것으로 보인다. 화가에게 붓과 안료를 이용해 회화적 표현기법을 완벽하게 터득하여 자유로운 표현에 이르는 과정이 있다면, 주도양에게는 그 연구대상이 사진이자 사진을 통해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얻어내기 위해 연구한 여러 방법들이 그만의 화법을 완성해가는 일련의 과정인 셈이다. ● 최근에 들어 그는 기존에 사진기와 디지털편집방식을 이용해 이미지를 담아냈던 것에서 더 나아가, 직접 카메라를 제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사진을 인화하여 패널로 제작하는 전 과정을 일체의 수작업으로 진행해나가고 있다. 이는 본인의 작업에서 사진이 회화적 표현의 수단으로써 활용되고 있음을 자체적으로 강조하는 과정인 동시에, 사진이미지의 기계적 생산과정에서 외부의 개입으로 작품의 진정성이 희석되는 것에 대한 작가적 사유의 결과로 보인다.

 


주도양_Hexascape39_Canson ARCHES에 수채_158×220cm_2013

 

 

 

주도양_Hexascape38_Fabriano Artistico에 수채_158×220cm_2013


전시의 대표작인 「Hexascape」는 바로 이러한 작가의 고민이 시각적으로 잘 드러난 작업이다. 커다란 원형의 이미지 속에 세상의 모습을 담아냈던 기존 작업들을 떠올려 봤을 때 「Hexascape」는 구슬 형태의 견고한 구조 속에 압축되어 있던 세상의 이미지가 밖으로 자유롭게 풀어져 나온 듯한 인상을 준다. 여러 시점에서 동시에 촬영된 이미지가 하나의 화면에 담겨 있지만, 각각의 이미지가 중첩된 부분은 흐릿한 잔상처럼 표면 위에 머물고 있다. 아울러 최종적으로 이미지가 안착된 표면의 특성과 대상이 재현되는 방식도 변화했다. 가까이에서 바라보니 모노톤의 안료가 미세한 요철을 지닌 종이 위에 살포시 얹혀 있는 형상이다. 사진을 이용한 디지털콜라주 방식으로 눈으로 볼 수 없는 세밀한 부분까지 모두 담아내려 했던 과거의 작업을 떠올려보면 그 차이를 더 극명하게 느낄 수 있다. 공간의 세부 모습이 매끈한 종이 위에 선명한 색채로 인화되었던 과거의 작품과 달리, 전시에 소개된 작품은 화면 전반에 걸쳐 일정한 밀도로 유지되고 있는 명암의 정도와 종이 표면에 색이 올라간 양상에서 일종의 석판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는 빛으로 기억된 외부세계의 이미지가 수채물감과 천연재료를 혼합, 이용한 수차례의 인화과정을 거쳐 종이 위에 재현된 것이다. ● 작품 속에서 도시공간이 재현된 모습에서도 이전과 차이를 보인다. 360도의 시점에서 촬영하여 하나의 공간을 온전하게 한 화면에 담아냈던 것과 달리, 이제 도시 공간은 여러 시점에서 단편적으로 채집된 이미지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에는 작가가 손수 제작한 사진기로 이미지를 채집하고 이를 인화하는 과정에서 발현되는 우연적 효과가 커다란 동인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작가는 금속재질의 저금통에 여섯 개의 작은 구멍을 뚫고, 그 안에 필름을 말아 넣어 한 장소에서 우연히 채집된 이미지들을 직접 인화하여 패널로 제작하는데, 여기서 3차원의 대상을 2차원의 평면으로 옮기는 사진의 감광원리만이 기본적으로 작용할 뿐이다. 작가는 빛이 필름 위에 새긴 이미지에 전적으로 의지하기 때문에 인화하는 과정에서 필름 속에 담긴 이미지를 최초로 확인하게 된다. 우연적 효과에 의해 이미지를 얻는 과정에서 작가는 개인의 조형감각에 의지하여 이미지를 취사선택하고, 관객은 그 결과를 최종적으로 감상하게 된다.

 

 


주도양_Hexascape5_Fabriano Artistico에 수채_110×158cm_2013

 

 

 

주도양_Celestial9_Fabriano Artistico에 수채_180×90cm_2013

주도양_Celestial10_Fabriano Artistico에 수채_180×90cm_2013

주도양_Celestial8_Fabriano Artistico에 수채_180×90cm_2013

이전에 보여준 작업이 수십 장의 사진을 그래픽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정교하게 이어 붙여 인간의 시야 너머에 있는 시점의 표현까지 하나의 완벽한 구조 안에 담아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를 이야기한 것이라면 이번 작업을 통해 작가는 그와 정반대로 우연적 효과를 작품에 적극 끌어들이고, 이미지를 이어 붙이는 방식에 있어서도 작품을 촬영할 때 필연적으로 생성되는 여백을 의도적으로 남겨두어 시점에 관한 이야기를 새롭게 이끌어내고 있다. ● 여기서 발견되는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서로 다른 시점에서 동시에 촬영된 이미지들이 하나의 평면 위에 모습을 드러낼 때 이미지 사이의 여백에서 장소가 지닌 시간성이 감지된다는 것이다. 분명 동시적 시점에서 필름에 새겨진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이미지가 서로 중첩된 부분과 이미지가 잔상처럼 사라지는 효과로 인해 오히려 기존의 작업에서 느낄 수 없었던 공간의 시간성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대상의 구체적인 모습까지 빠짐없이 묘사될 수밖에 없었던 이전의 작업방식은 이미지의 공간성이 화면의 전면에 드러나 감상의 일차적 대상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의 작업은 이미지의 우연적 효과를 동반한 아날로그적 제작방식으로 인해 도시의 공간성을 담은 이미지에 시각적으로 시간성이 가미된 결과를 낳았다.

 


주도양_Omniscape01_Somerset Textured에 수채_100×100cm_2012

 

 

 

주도양_Hexascape14_Canson ARCHES에 청사진_79×110cm_2013

즉, 하나의 사진작업이 완성되기까지 거치는 일반적인 제작과정에서 벗어나 수작업의 형태로 작업을 전환한 결과, 작가는 이미지를 '만드는' 혹은 '짓는' 전 과정을 책임지는 주체로서의 역할을 재확인하고, 대상의 이미지를 우연적으로 채집하여 예기치 못한 효과들을 허용함으로써,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획득해나간다. 사진의 완벽한 재현논리로 탄생한 이전의 작품들에서 화면 속 대상의 피상적 아름다움이 감상의 주요 대상이었던 것과 달리, 도시 공간에서 관찰되는 인공과 자연의 대립구조, 도시의 공간성과 시간성 등의 주제가 감상과 해석의 대상으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도 이러한 시각적 효과에서 기인한 결과다. ● 이처럼 그가 만든 세상의 이미지는 인간의 눈에서 시작하여 바라보는 대상과 보는 주체의 관계, 나아가 대상에 대한 관심으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주도양의 작업이 복합적인 시공간의 흐름 속에 머무는 세상의 모습을 어떻게 시지각의 문제 안에서 회화적 이미지로 복원시키느냐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고 할 때, 그에게 사진은 하나의 흥미로운 시표현의 가능성을 열어준 매체임은 분명하다. 그는 사진과 영상매체에 의한 기술적 형상을 이해하는 기술적 상상력이 더욱 요구되는 시점에서, 그러한 인식의 방법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시각적 이미지의 생산원리와 과정을 해체, 재구성하면서 이를 차근차근 확인시켜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가 빛과 손으로 옮겨 지은 풍경은 작가가 세상을 인식하고 이해해나가는 하나의 방법이며, 그것이 곧 예술을 이해하는 시작점이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일깨운다. ■ 황정인

                  갤러리 팔레 드 서울, 파리에서 온 북대황판화 展 : Our Melancholic Wild  

 

 

 

 

[팔레 드 서울]에서는 파리의 [갤러리 89(Gallerie 89)]가 소장하고 있는 중국 북대황 판화 50여점을 소개한다. 북대황(北大荒) 이란 중국 흑룡강성의 비옥한 평야 지대를 말한다. 오늘날은 중국의 곡식창고라는 뜻에서 북대창(北大倉)이라고 불리지만 60년대 이전만 해도 황무지였던 곳이었다. 이 곳에 1958년 10만의 개척민들이 이주하였고, 그 안에는 판화가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개척민들의 삶과 황야의 야생적인 아름다움을 목판화로 옮겼다. 오늘날 북대황 판화는 중국 현대판화의 대표적 기법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파리 [갤러리 89]의 안은희 관장의 개인 소장품으로, 북대황 판화의 창시자인 차오 메이(晁 楣)를 비롯한 7명 작가의 작품이다. 북대황의 거친 대자연과 속에서 살아가는 개척민들의 삶을 그대로 담은 아름다운 판화의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1. 晁 楣 CHAO MEI _Red dune, a man and his horse_72x51_5/50_1986 사진: Tchoe L'Hys   소장: 파리 89 Galerie 안은희
2. 张祯麒 ZHANG ZHENQI_Forest, stream and doves; blown and golden_43x60_56/100 1978
3. 张洪驯 ZHANG HONGXUN 5/8 1998 Red birds triangle 59x46,5

 

갤러리 팔레 드 서울
T. 02-730-7707

 

 

 

 

 

 

 

 


 
 
 
   



길위의 풍경

이소 문연남展 / MOONYEONNAM / 以笑 文連男 / painting

2013_0807 ▶ 2013_0813

 

이소 문연남_겨울여행 trip to winter mountain_수묵담채_130.3×193.9cm_2012

초대일시 / 2013_0807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경인미술관Kyung-In Museum of Fine Art

서울 종로구 인사동 10길 11-4(관훈동 30-1번지) 제1전시실Tel. +82.2.733.4448

www.kyunginart.co.kr


작가 문연남의 작업은 서예와 문인화로부터 비롯되고 있다. 이는 선에 의한 조형이라는 동양회화 특유의 조형체계에 접근하는 가장 원칙적인 덕목이다. 전통 화론에서 강조하는 서화동원은 바로 이러한 가치에 대한 개괄에 다름 아닌 것이다. 작가는 서예의 학습 과정을 통해 확보된 필에 대한 장악력과 문인화를 통해 다져진 조형의 묘를 확장시켜 회화의 영역으로 수렴해 내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작가의 작업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내용으로 자리할 뿐 아니라 필묵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과 발휘에 있어 커다란 도움이 되고 있음이 여실하다.

 


이소 문연남_바닷가 풍경 seaside view_수묵담채_25×92cm_2013

 

 

이소 문연남_가을동화 a story of autumn_수묵담채_47×88.5cm_2012

 

 

이소 문연남_봄바람에 꽃비 날리고 windblown flowers by a spring breeze_수묵채색_109×191cm_2012

산수화는 작가가 취한 새로운 영역이다. 실경을 기본으로 한 그의 산수화는 엄격한 필도와 유리한 수묵의 기운이 두드러진다. 그것은 서예나 문인화에서 드러나는 운필의 묘와는 또 다른 깊이와 풍부한 표정을 지니고 있다. 필이 방만하게 흐름을 경계하며 대상에 육박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는 화면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반복적인 운필을 통해 수묵을 축적함으로써 깊이를 구축하고, 수묵에 대한 섬세한 경영을 통해 그윽한 공간의 깊이를 드러내는 작가의 화면은 견실하고 건강한 것이다. 집요하리만치 대상에 몰입하는 집중력과 이를 무수한 운필로 수렴하여 표출해내는 산수의 견고함은 단연 두드러진다. 이는 작가의 천성과 서예와 문인화를 통해 확보된 수묵에 대한 이해가 융합된 결과일 것이다.

 


이소 문연남_굽이굽이 고갯길 meandering uphill path_수묵담채_130×191cm_2013

 

 

이소 문연남_나의 살던 고향은 hometown where I've lived_수묵담채_57.5×94cm_2013

 

 

이소 문연남_운무-구이저수지에서 cloud mountain_수묵담채_67×207cm_2013

작가의 작업은 이제 비로소 일정한 지향을 확보한 것이라 여겨진다. 서예화 문인화를 통해 확보된 운필과 수묵, 그리고 공간 경영의 묘는 분명 작가의 작업에 확고한 지지체가 될 것이다. 작품 전반에 걸쳐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작업에 진지함과 수묵에 대한 이해, 그리고 풍부한 문학적 서정성과 안정된 화면의 운용은 작가의 작업이 지니고 있는 큰 장점일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최근 천착하고 있는 실경의 작업들은 특유의 건강한 조형의지를 바탕으로 일정한 성과를 일궈 낼 것이라고 기대된다. 이에 더하여 대상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과 표현을 강화할 수 있다면 작가의 작업은 또 다른 단계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 김상철





(8) 31갤러리 T 322-1290
이천전 7.31-8.6 / 동덕여대 금속공예동아리 제11회 벼리전 8.7-8.13 / 전춘이전 8.21-8.27 / 대한민국 시서문학 19호 출간 및 시와 서화전 8.28-9.3

(69) 57th갤러리 T 733-2657

무한급수전 7.17-8.6 / 김종정 회화전 8.7-8.20 / 이영미회화전 8.21-8.27 / 이상준 회화전 8.28-9.3

(41) 가가갤러리 T 725-3546

현대미술작가전 7.31-8.6 / 가가전 8.7-8.13(1부). 8.14-8.27(2부) / 가가아트비전 2013선정작가전 8.28-9.3

(2) 가나아트스페이스 T 734-1333
(1층전시장) 이주연전 7.31-8.6 / 꿈에햇살 예술공방전 8.7-8.13 / 이경희전 8.14-8.20 / 신경남전 8.21-8.27 / 조윤전 8.28-9.3
(2층전시장) 한지민전 7.31-8.5 / 로데 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전 8.7-8.13 / 김도명전 8.14-8.27 / 김철홍전 8.28-9.3
(3층전시장) 젊은 그대전 7.24-8.6 / 정용진전 8.7-8.13 / 엔젤스전 8.14-8.20 / 유수연전 8.21-8.27 / 진정식전 8.28-9.3

(53) 가나인사아트센타 T 736-1020
(JMA스페이스 B1F) 임대준전 7.31-8.5 / 이일순전 8.7-8.12 / 오중석전 8.14-8.19 / 이주리전 8.21-8.26 / 원광서주동인전 8.28-9.2
(제3 특별관 B1F) 이정수전 8.7-8.12 / 박선지전 8.21-8.26 / 문정선외 다수전 8.28-9.2
(본 전시장 1F) ) 한국 바로 알리기 10주년 성과와 부전전 7.31-8.5 /  2013 카본 풋프린트 갤러리 인 서울전 8.7-8.12 / 권지은전 8.21-8.26 / 하철경전 8.28-9.2
(제2전시장 2F) 정황래전 8.21-8.26 / 김천정전 8.28-9.2
(제3전시장 3F) 김생화전 8.28-9.2

(본 전시장 1층. 제2전시장 2층, 제3전시장 3층) 인사동 전통공예업체 페스티벌전 8.14-8.19

(제2전시장 2층, 제3전시장 3층) 제4회 국제 에니메이션 페스티벌전 7.31-8.6
 (제1특별관 3F) 김지원전 7.31-8.5 / 이미화전 8.7-8.12 / 박성민전 8.14-8.19 / 김필순전 8.21-8.26 / 정인수전 8.28-9.2
(제4전시장 4F) 하이 리틀 아티스트전 8.7-8.12 / 대한민국 현대인물화가회전 8.28-9.2  
(제2특별관 4F) 윤병렬. 임하나 2인전 7.31-8.5 / 중원조각회전 8.7-8.12 / 유창현전 8.28-9.2
(제4전시장 제2특별관 4F) 일레븐전 8.14-8.19
(제5전시장, 제2특별관 4-6F) 정유정전 6.26-7.1 / 춘추회전 7.3-7.8
(제5 전시장 5F) 한국디지털아트전 7.31-8.5 / 박소형전 8.7-8.12 / 그룹 터(TER)전 8.14-8.19 / 박향순전 8.28-9.2
(제4전시장 제2특별관 4F, 제5전시장 5층) 윤퀼트 페스티벌전 8.12-8.26

(제6전시장 6층) 조원전 7.31-8.5 / 쌈지사랑 규방공예전 8.7-8.12 / 한울전 8.14-8.19 / 황효실전 8.21-8.26 /최병화. 최일호.이은정 3인전 8.28-9.2

(10) 가람화랑 T 732-6170
소장전

(59) 갤러리가이아 T 733-3373
컬러 오브 뉴욕전 7.24-8.6 /소중애전 8.7-8.13

(22) 갤러리 각 T 737-9963
 파랑전 7.31-8.6 / 100인 100색 베스트 쥬얼리전 8.7-8.20 / 남정우전 8.14-8.20 / 공구전 8.21-8.27 / 신진숙전 8.28-9.3

(15) 갤러리 그림손 T 733-1045
김주희전 8.7-8.13 / 이상선전 8.14-8.26 / 여소현전 8.28-9.3

(49) 갤러리 나우 T 725-2930
2012경주현대사진캠프 최우수 포트폴리오 선정작전 8.14-8.20 / 낯선 공간전 8.21-9.3

(47) 갤러리 대아 T 725-2550
상설전

(57) 갤러리 더케이 T 764-1389
(1전시실) 조지연전 7.31-8.6 / 이지연전 8.7-8.13 / 김태희전 8.14-8.20 / 한광우전 8.21-8.27 / 심은솔전 8.28-9.3
(2전시실) 나현신전 7.31-8.6 / 허길은전 8.7-8.13 / 김현수전 8.14-8.20 / 임완수전 8.21-8.27 / 손민광전 8.28-9.3

(44) 갤러리 라메르 T 730-5454
(제1전시실) 지정옥전 7.31-8.6 / 장입규전 8.7-8.13 / 차명순전 8.28-9.3
(제1-2전시실) 김숙희전 8.14-8.20
(제2전시실) 최영수전 7.31-8.6 / 이윤지전 8.7-8.13 / 안효숙전 8.28-9.3
(제3-4전시실) 한일 창작교류전 8.7-8.13 / 협성대 가구디자인과 졸업전 8.14-8.20 
(제3-5전시실) 여명회전 8.28-9.3
(제5전시실) 아동미술협회전 8.7-8.13 / 김두녀전 8.14-8.20
(제1-5전시실) 그랑프리 미술대전 8.21-8.27

(54) 갤러리 룩스 T 720-8488
이은종 사진전 7.24-8.5 / 양호상사진전 8.7-8.19 / 원범식사진전 8.21-9.2

(40) 갤러리 메쉬 T 730-5321
 
(71) 갤러리 바움 T 720-4237
상설전

(38) 갤러리 바이올렛 T 722-9655
 그림아 놀자! 100인100색전 7.24-8.20 / 해피 작은 그림전 8.21--9.3

(72) 갤러리 베아르떼 T739-4333

홀로라 휭 외 5인전  7.15-8.30

(25) 갤러리 서호 T 723-1864

청도천연염색전 8.14-8.20 / 제주천연염색전 8.28-9.3
 
(37) 갤러리 수 T 733-5454
나진기전 7.31-8.6 / 도둠회전 8.7-8.13 / 도구치 쓰토무 판화전 8.14-8.20 / 조미희전 8.21-8.27

(30) 갤러리 시작 T 735-6266-7
또 다른 시작전 8.14-8.27 / 윤경혜 도예전 8.28-9.3

(34) 갤러리 신상 T 730-6540
여름+자연+사랑전 7.31-8.6 / 한여름 밤의 꿈전 8.7-8.13 / 코리아 앙데팡당전 8.14-8.20 / 코리아 환타지전 8.21-8.27 / 한중교류:타이페이전 8.28-9.3

(12) 갤러리 아트뱅크 T 737-0321
상설전

(28) 갤러리 아트플러스 T 732-7710
원로작가 소장전

(1) 갤러리 예당 T 732-5364

상설전

(21) 갤러리 올 T 720-0054
 한국전업미술가협회 청년작가조망전 7.31-8.6 / 눈사진학원 사진전 8.14-8.20 / 세종대 동문전 8.21-8.27 / 이지현전 8.28-9.3

(16) 갤러리 우림 T 733-3738

박현주전 8.14-8.20 / 나인투식스전 8.21-8.27

(6) 갤러리 이즈 T 736-6669
(제1전시장) 십자군이야기 판화전 8.21-8.27 / 이소희전 8.28-9.3
(제1,2전시장) 주도양전 8.14-8.20
(제2,3전시실) 금속 제3그룹전 8.28-9.3
(제3전시장) 강인우 조각전 8.14-8.20 / 그림사랑전 8.21-8.27
(제4전시장) 이동혁 조각전 8.7-8.13 / 이강희전 8.14- 8.20 / 제4회 파람회전 8.21-8.27 / 문유미 조각전 8.28-9.3

(73) 갤러리 일호 T 6014-6677
이승하전 8.15-8.28

(71) 갤러리 타블로 T 723-6081

(55) 갤러리 토포하우스 T 722-9883, 738-7555
(1전시실) 제8회 인체평전 7.31-8.6 / 시선전 8.7-8.13 / 네이브 미술치료 동호회 셀프 스토리전 8.14-8.20 / 김은영전 8.21-8.27 / 서상호사진전 8.28-9.3
(2전시실) 이화 글로벌 탑5 프로젝트 이그지비션 2 웰컴 투 이화전 7.31-8.6 / 3인3색전 8.7-8.13 / 정수현 한국화전 8.14-8.20 / 중예원전 8.21-8.27 /

             황윤경 한국화전 8.28-9.3
(3전시실) 리페어전 7.31-8.6 / 콤패스전 8.7-8.13 / 6인의 특별전 8.14-8.20 / 홍익대학원 회화전공 동문전 아트메트로전 8.21-8.27 / 이미숙서양화전 8.28-9.3

(39) 갤러리 환 T 735-7047

홍정윤전 8.7-8.13 / 서울대 사진동아리전 8.14-8.20 / 유금화.김희정 2인전 8.21-8.27 / 카우스전 8.28-9.3

(27) 갤러리M T 735-9500
나래전 7.31-8.6 / 손일정전 8.7-8.13 / 양종석전 8.14-8.20 / 중국미술학원 동문전 8.21-8.27

(9) 경인미술관 T 733-4448(ARS9)
(제1전시관) 길위의 풍경전 8.7-8.13 / 강명천 한국화전 8.14-8.20 / 동심화 서예전 8.21-8.27
(제2전시관)  상명 세라믹 디자이너회전 8.21-8.27 
(제3전시관) 양혜수 서양화전 8.7-8.13 / 정광다완전 8.14-8.20 / 귀목회전 8.21-8.27 / 소통의 조건: 듣다전 8.28-9.3(1부)
(아틀리에) 박숙영전 7.31-8.6 / 이혜경 서양화전 8.7-8.13 / 박효선 한국화전 8.14-8.20 / 조복순 수채화전 8.21-8.27
(제5전시관) 아트 폼 컴퍼니전 7.31-8.6 / 가쓰야 가또 도예전 8.7-8.13 / 임순희 수채화전 8,14-8.20 / 삼청규방전 8.21-8.27
(제6전시관) 제5회 태화전 8.14-8.20 / 나닮전 8.21-8.27

(43) 공아트스페이스 T 730-1144

고미술전 8.14-9.7

(68) 공평아트센터 공평갤러리 T 3210-0071
(제1전시실) 윤주일전 7.31-8.6 / 한양대 섬유디자인과 졸업전 8.7-8.13 / 신진식전 8.21-8.27

(제2전시실) 제36회 SMA 브랜드런칭전 8.8-8.12 / 제16회 대한민국 관광기념품 공모전 본선심사전 8.21-8.27

(51) 관훈갤러리 T 733-6469
(2층) 윤하민전 8.14-8.26
(2, 3층) 아한수 설치.조각전 7.31-8.12 / 고승욱전 8.28-9.16

(32) 노암갤러리 T 720-2235-6
소장전

(5) 노화랑 T 732-3558

상설전

(26) 덕원갤러리 T 723-7771
비트윈 줄라이 앤 어거스트전 7.31-8.6

(60) 동덕아트갤러리 T 732-6458

(65) 동산방화랑 T 733-5877

(46) 동호갤러리 T 722-3665
상설전

(29) 리서울 갤러리 T 720-0319
인순 펠쳐전 8.5-8.11 / 류성림전 8,14-8.20 / 홍익대 64동기전 8.21-9.3

(20) 모던화랑 T 732-6261
원로중진소장품전

(11) 모인화랑 T 739-9292
김정은 회화전 8.28-9.6

(58) 목인 갤러리 T 722-5055
걱정! 목인에게 맡기세요전 7.3-8.18

(67) 물파스페이스 T 739-1997-8
국제서체추상전 7.10-8.6 / 2013 달마전 8.7-8.13 / 원주대학6인전 8.14-8.20 / 양종석전 8.21-9.3

(47) 백송갤러리 T 730-5824
최경돈전 8.21-8.27

(52) 백악미술관 T 734-4205
(1,2층) 제11회 금화묵림전 8.22-8.28

(50) 보나장신구박물관 T 732-6621
찬란한 빛, 장신구전 5.29-8.4

(74) 브릿지갤러리 T 722-5127

(70) 사비나미술관 T 736-4371
조던매터 사진전 7.24-9.22

(31) 서울미술관 T 732-3314
 (B관) 홍유회전 8.28-9.3

(전관) 현대미술작가 연합회전 7.31-8.6 / 한국전통미술활성화전 8.7-8.13 / 김단.노숙경.이금자.이종승 4인전 8.14-8.20 / 산채수묵회전 8.21-8.27

(42) 선화랑 T 734-5839
 한국의 추상전 7.24-8.31

(48) 성보갤러리 T 730-8478
상설전

(62) 아라아트 T 743-1643
(지하1층.1.2.3층) ECM(독일음반사)전 8.31-11.3
(4.5층) 다크둠 (도심형 극한공포체험관) 7.2 -9.30

 

(76) 에이피갤러리 T.2269-5061-2
송승호전 7.31-8.13 / 강규성전 8.14-8.20 / 처음처럼전 8.21-8.27 / 박희유전 8.28-9.10

(3) 영아트갤러리 T 733-3410
 일청회전 7.31-8.6 / 여름 이야기전 8.14-8.20 / 이필연전 8.21-8.27 / 노원희전 8.28-9.3

(66) 예성화랑 T 738-3630
상설전

(13) 유니아트갤러리 T 723-7170
백남준외 4인 상설전

(18) 인사갤러리 T 735-2655-6
(1.2F) 김성일 조각전 8.28-9.10

(2F) 정재영 조각전 8.14-8.20

(14) 장은선갤러리 T 730-3533  

(36) 조형갤러리 T 736-4804
현대여성작가전 8.7-8.13 / 청남회전 8.14-8.20 / 한기은 수채화전 8.21-8.27 / 임창순 유화전 8.29-9.3

(75) 탑골미술관 T 6911-9651
 종이놀이터전 7.27-8.25

(23) 통인가게 T 733-4867
(통인화랑 B1F) 이용순 도자전 7.24-8.20 / 최재훈 도자전 8.21-9.3
(통인옥션갤러리 5F) 흐린그림 진한그림전 8.4-8.26 / 허유진 회화전 8.28-9.29

(35) 하나로갤러리 T 720-4646
선면전 7.31-8.20 / 이상설전 8.21-8.27 / 이미지 창작회전 8.28-9.3

(56)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T 733-9041
이수정전 7.31-8.6

(45) 화봉갤러리 T 737-0057
 한국 민족신앙의 원형 무속과 점술의 세계전 8.3-8.31

(17) JH갤러리 T 730-4854
이명주전 7.31-8.6 / 파르마콘전 8.7-8.20 / 정미영전 8.28-9.3

(63) OCI미술관 T 734-0440
강동주전 8.16-9.5 / 이미정전 8.16-9.5

(64) space99 T 735-5811-2

제주해전 6.28-8.14





구름의 질량을 빚다

조지연展 / CHOCHIYUN / 趙智衍 / painting

 2013_0731 ▶ 2013_0806

 

 


조지연_구름의 질량을 빚다_유채_91×72.7cm_201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30403a | 조지연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_12:00pm~06:00pm


더 케이 갤러리THE K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6번지Tel. +82.2.764.1389

www.the-k-gallery.com


조지연의 회화-구름에 접촉하고 접신하고 전율하다 ● 작가는 자신이 그냥 편히 느낄 수 있는 조용한 소재들이 좋다고 했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딱 그만큼만 살다가 스윽 하고 그냥 그렇게 가버리는 것이 좋고, 흐르면서 고요히 사라지는 것이 참 예쁘다고도 했다. 그래서 구름을 그린다. 구름은 무상하고 무심하다. 형태가 없고 자기가 없다. 정해진 형태가 따로 없고 스스로 내세울 만한 에고가 없다. 에고가 없으니 형태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고, 형태에 자신을 가두지 않으니 스스로도 자유로울 수가 있다. 그렇게 흐르면서 사라질 수가 있다. ● 사실 구름에 형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관념이든 감각이든 만약 형태가 없다면 작가의 그림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구름에는 형태가 없기는커녕 지나치게 많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고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할 만큼 많다. 구름이 만들어 보이는 형태 중에는 지각은 모르되 인식의 영역을 넘어서는 형태들이 많다. 생판 처음 보는 것 같은 형태들이면서도 왠지 친근한 느낌을 자아내는 형태들이다. 그렇게 구름은 형태에 대한 선입견을 재확인시켜줄 뿐만 아니라, 선입견을 넘어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형태를 싸안는다. 세상의 모든 형태들을 그려 보이면서 지각의 깊이를 더하고 인식의 폭을 넓혀준다. 그러므로 구름에 형태가 없다는 말은 사실은 정해진 형태가 따로 없다는 말로 고쳐 읽어야 하고, 특정의 형태로 붙잡을 수 없을 만큼 시도 때도 없이 변하는 형태로 고쳐 읽어야 한다. 변화무상한 형태며 움직이는 형태, 정처 없는 형태며 항상적으로 이행중인 형태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조지연_구름의 질량을 빚다_유채_100×80.3cm_2013


항상적으로 이행중인 형태? 스스로를 지우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를 자기 위로 밀어 올리는 형태? 자기를 부정하면서 자기를 생성시키는 형태? 그래서 구름이 무상하다고 했고, 무상하게 흐른다고 했다. 그렇게 무상한 구름이 무상한 삶의 유비가 된다. 알다시피 삶은 영원하지도 영속적이지도 않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적어도 심정적으로는 삶이 영원하다고 믿고 싶고 영속적이라고 믿고 싶다(실제로 한때 예술은 자기를, 존재를 대신 영속시켜주는 매개체로 여겨지기도 했다). 믿고 싶다? 현실인식보다는 욕망이 삶을 견인하는 계기가 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여기서 무상한 구름이 주지시키는 무상한 삶은 바로 그 욕망의 부질없음과 덧없음을 일깨워준다. ● 존재의 유비와 관련해볼 때 구름은 양가적이다. 구름이 그려 보이는 덧없는 형태만큼이나 존재의 삶은 순간적이고 찰나적이다. 그리고 구름이 그려 보이는 끝도 없이 연이어지는 변화무상한 형태처럼 존재의 삶은 계속 태를 바꾸는 거듭나는 과정 속에서 영원하고 영속적일 수 있다. 순간적으로만 존재했다가 찰나적으로 사라지는 덧없는 형태를 붙잡을 것인가, 아님 끊임없이 자기를 부정하면서 새로운 자기를 생성시키는 덧없지만 영속적인 형태 위에 올라탈 것인가. 존재를 구름의 어디에 어떻게 붙들어 맬 것인가. 이처럼 구름의 양가성은 비록 덧없는 삶이지만 영속적일 수 있는(거듭되는 자기부정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는) 삶의 양가성을 드러낸다. 작가가 구름에 매료되고 매력을 느끼는 이유일 것이다.

 


조지연_구름의 질량을 빚다_유채_91×72.7cm_2013


조지연이 처음 구름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2012년 전시부터였고 그때의 전시제목이 『유랑』이었다. 아마도 어떤 우연한 계기에 구름에서 정처 없는 삶이며 부유하는 삶, 떠도는 삶이며 유랑하는 삶의 비유를 보았을 것이다. 아님 그렇게 살고 싶은 욕망을 구름에 투사했을 수도 있겠다. 유목적인 삶의 태도를 은연중 내비친 것인데, 여기서 유목적인 삶은 말할 것도 없이 의식의 유목을 말할 것이다. 앉은 자리에서 천리를 내다본다는 천리안처럼 거침이 없고 막힘이 없는, 그렇게 저 가고 싶은 대로 가고 흐르고 싶은 대로 흐르는 의식의 유목을 지향하면서 아마도 그 지향을 먼저 실현하고 있는 구름이 부럽고, 그 구름이 떠올려주는 존재의 양태를 삶의 태도로 취하고 싶었을 것이다. ● 그리고 연이은 전시제목이 『구름에서, 구름』이다. 아마도 이 제목은 구름에서 구름으로, 라고 고쳐 읽을 수가 있고 또한 실제로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이 제목은 구름에서 구름으로, 형태에서 형태로, 자기에서 자기에게로 밑도 끝도 없이 이행하는 구름의 양태며 존재의 양태를 떠올려준다. 자기에서 자기에게로 이행한다? 자기에서 자기에게로 확장된다? 자기에서 자기에게로 환원되면서 확장된다? 그 메커니즘 속엔 동어반복의 문법이 탑재돼 있고, 매번 같으면서 다른 것으로의 이행이 수행되고 있고, 자기부정을 통해서 자기를 생성시키는 존재의 운동성이 가동되고 있다. 여전히 자기이면서 매번 자기 아닌 것으로의 이행이 실천되고 있는 것인데, 이는 말할 것도 없이 거듭나기를 전제로 한 통과의례를 비유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비유는 전작에서의 유랑이며 유목의 개념과도 통한다. 그 개념의 실체 아님 실천논리를 해명하고 부연하는 경우로서, 전작에 대한 일종의 주석으로 봐도 되겠다. ● 그리고 근작에서 작가는 자신의 그림에 『구름의 질량을 빚다』는 제목을 부쳤다. 이 제목이 의미하는 것은 전작에서의 의미와는 사뭇 다르다. 지금까지는 구름의 변하는 양태며 생리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구름 자체(구름의 본질?)를 그리고 싶다. 외적으로 드러나 보이는 형태가 아무리 변해도 여전히 구름일 수 있게 해주는 국면을 그리고 싶고, 구름의 변하지 않는 국면을 그리고 싶고, 구름의 항상적인 국면을 그리고 싶다. 그런데 그 기획은 반어적이고 역설적이다. 무슨 말이냐면 적어도 외적으로 보기에 구름은 변하는 형태를 통해서만 자기를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변하는 형태 자체 곧 변태 자체가 이미 구름의 본질이며 본성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여하튼 형태가 변한다면 그렇게 형태를 변하게 만들어주는 어떤 계기가 있을 것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운동성이 작용하리라고 추정해볼 수는 있다. 여기서 작가는 바로 그 운동성의 계기(그 자체 피직스에 대한 나투라, 자연에 대한 자연성에 그 초점이 맞춰진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법과도 통하는)를 그리고 싶다. 아마도 질량이란 그 운동성의 계기를 이르는 다른 이름일 것이다.

 

 


조지연_구름의 질량을 빚다_유채_91×72.7cm_2013


흥미로운 것은 작가가 이처럼 구름을 그리지만, 사실 처음부터 구름의 감각적 닮은꼴 그대로를 재현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저 구름이라는 관념을 옮겨 그리는 것에 관심이 있었고, 그 관념을 상기시켜줄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구름에 정해진 형태가 따로 없고, 변화무상하고 천변만화한,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형태를 내보이는 구름의 본성을 생각하면 이처럼 감각적 재현보다는 관념에 초점이 맞춰진 구름에 대한 작가의 태도 내지 접근방법에는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는 생각이다. ● 이렇게 작가는 흔히 운문으로 알려진 구름문양으로 그 감각적 형태를 대신한다. 솜뭉치 같기도 하고 추상적 기호로 환원된 깃털 같기도 한 낱낱의 구름형상들이 텅 빈 대기 속을 표표히 부유하기도 하고, 흡사 원자와도 같고 소립자와도 같은 구름문양들이 하나로 모여 커다랗고 유기적인 형상의 구름 덩어리를 상형하기도 하고, 그 입자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일정한 패턴을 만들어내면서 거대한 흐름을 연출해보이거나 한다. 그 형상은 어디서 어디로 흐르는가. 구름에서 구름으로 흐르고, 구름에서 대기로 흐르고, 구름에서 물로 흐른다. 바로 순환이다. 시도 때도 없이 자기형태를 바꾸는 변태와 더불어, 거듭되는 자기부정을 통해서만 새로운 형상을 빚을 수 있는 생성과 소멸의 경계 넘나들기로 나타난 존재의 운동성(기의 운동성?)을 실현해 보인다. 그렇게 구름 속엔 대기가 들어있고, 물속에 구름이 들어있다. 그렇게 작가가 그린 구름은 대기 같고 물 같다.

 

 


조지연_구름의 질량을 빚다_유채_145.5×112cm_2013


이처럼 지금까지 작가는 구름에서 대기로, 대기에서 구름으로, 그리고 재차 구름에서 물로 순환하고 변태하는 구름의 형상을 그렸다면, 근작에선 구름의 핵(?)을 그린다. 아마도 구름의 질량을 빚는다는 제목에서 질량이란 바로 그 핵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여하튼 형상이 있다면 핵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구름은 그 형상도 종잡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핵을 그릴 것인가. 그럼에도 여하튼 구름의 핵이란 구름의 원형에 해당할 것이고, 따라서 작가의 근작은 그 원형을 그린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림에는 원형이 많다. 구름의 원형을 원형으로 옮겨 그린 것이다. 그 원형은 그 속에 물을 머금은 물 알갱이 같고, 습기를 머금은 대기 같고, 존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고, 존재를 뱉어내는 화이트홀 같다. 물이 생명의 근원임을 생각하면 그 속에 물을 머금은 곧 생명을 머금은 존재의 자궁으로 볼 수도 있겠다. ● 이렇게 작가의 그림은 그저 구름을 그린 것이지만 실상은 단순한 구름의 경계를 넘어선다. 말하자면 구름에서 대기로, 대기에서 물로, 물에서 생명으로, 생명에서 원형으로, 원형에서 존재로 끝도 없이 이어지는 순환과 변태와 자기부정을 통한 생성의 원리를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조지연_구름에서, 구름展_2013

 

 

조지연_구름에서, 구름展_2013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은 특이한데, 붓 대신 손가락으로 그리고 손바닥으로 그린다. 캔버스의 표면질감과 물감의 진득한 느낌 그리고 손의 감촉이 하나로 합치되는 어떤 감각적 쾌감에 의해 견인되는 경우로 볼 수가 있겠고, 대상과 내가, 세계와 존재가 거리감 없이 일체화되고 있다는 어떤 느낌에 의해 추동된다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그 작화방식은 정치한 묘사보다는 정서적이고 유기적인 감정과 느낌 그대로를 오롯이 전달하는 그림에 어울리고, 그 자체가 작가가 그리고 싶은 구름에도 합치된다. 그렇게 손가락으로 때론 손바닥으로 화면을 문지르면서 구름의 질량을 빚다보면 어떤 접신의 경지를 느낀다. 접신의 경지? 주지하다시피 접신이란 알 수 없는 어떤 실체와 합치 내지는 합체되고 있다는 경험이며 느낌에 연유한 카타르시스를 말한다. 알 수 없는 실체? 그에게 구름은 바로 이처럼 처음부터 알 수 없는 실체였다. 작가는 그렇게 진즉에 아님 구름을 그리는 내내 구름의 감각적 닮은꼴이 아니라 구름이 자기의 형상 위로 밀어올린 관념을 그리고 싶었고, 그 관념의 실체에 이르고 싶었고, 그 관념의 몸체를 더듬어 만지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 고충환


혼몽 hybrid dream

이한수展 / LEEHANSU / 李漢洙 / photography.painting.installation

2013_0801 ▶ 2013_0812

 

이한수_무제(tattoo)130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한수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3_0801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관훈갤러리KWANHOON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2,3층Tel. +82.2.733.6469

www.kwanhoongallery.com


문신, 각인, 체험, 공간적 소통 ● 최근 그의 전시를 돌아보면 꾸준히 지속되는 몇 개의 키워드를 찾아낼 수 있는 것 처럼 보인다. 키치적인 것, 외계인과 SF적 가상의 공간, 문신, 심지어 라일리언이라는 사이비 종교단체까지. 그의 관심은 우리 사회가 키치적인 것을 그 태생적 자연적 환경으로 가지고 있다는데 대한 첨예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키치적인 것을 가치평가 절하하기 이전에 있는 그자체로 제시하는 것과 전적으로 상업화된 지상의 논리로부터 벗어나는 것으로서의 SF적인 요소의 도입과 외계적인 것에 대한 즉 전적으로 이질적인 타자로서의 포스트 휴머니즘적인 외부성에 대한 관심이 키치적 문화의 긍정을 통한 도약으로 연결된 것이다. ● 가나아트 스페이스에서 열린 2007년 전시 『씨 플러스 스윙바이 C+swingby』(2007)는 『플래시백Flashback』(2006),『우로보로스의 꿈』(2006)의 연장이다. 『씨 플러스 스윙바이 C+swingby』(2007~2011)에서 은빛 구두를 신고 흰 원피스를 입고 별밤의 성좌 속에 서있는 사진작품속의 여성은 SF영화에서 봄직한 외계인과 함께 신적 영역을 상징하는 후광을 간직한 여인으로 존재한다. 자화상인 우주모를 착용한 자신과 크리스탈구를 든 외계인이 나란히 서서 변주되는 사진작업 연작 외에 상업적 문신 패턴에서 차용한 용, 국화, 선녀, 연꽃, 달과 포효하는 호랑이, 인도풍 비천상, 메두사 유형의 거미여인과 같은 팬시하고 장식적인 아이콘들을 사용한다. 이런 아이콘들은 더 이상 탈주의 여지 없이 완전히 상업화된 문화라는, 어떤 보이지 않는 신체 표면에 균열을 내는 금과도 같은 꿈의 '표시mark'이다. ● 『LED Painting 시리즈』(2006~7)에서 이한수는 현란한 형광색의 둥근 바탕에 LED소자로 큐티한 형상이 반짝이는 자그마한 일련의 작업들과 함께 보여주었다. 이 화폭에 LED소자로 수놓인 문신 문양으로는 목련, 국화, 장미, 큐피트, 용, 천녀, 불상, 호랑이 등이 사용되었다. 서곡Prelude과도 같이 시작되는 1층에서는 이같은 모티프를 LED소자로 작업한 둥근 캔버스 열점과 외계인과 인물들을 우주공간에 병치한 이심적 구성을 보여주는 큰 규모의 사진작업 수점이 전시되었다. 두 명의 인물을 병치시킨 유형화된 사진작업은 동아시아적 정체성에 대한 질문과 함께 문신으로부터 느껴지는 인간의 욕망, 각각 개인의 휴머니티에 대한 실체에 대한 타자화된 성찰을 느끼게 한다. 또한 그의 레이저 설치작업들은 다양하게 설치된 조형물을 연속적으로 통과해 나가는 공간적 경험을 통해 미적 체험이 얻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작가들과 구별되는 특이성을 가진다.

 


이한수_무제(봉황)1301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25×100cm_2013

『씨 플러스 스윙바이C+swingby』(2007)에서 가나아트 스페이스의 이층 구석엔 역시 망막을 자극하는 안료를 그대로 사용한듯 빨갛고 파란 형광성의 색채로 구성된 도막도막 잘려져나간 플라스틱 용의 설치가 있다. 구석에 쌓여진 현란한 색채의 한 무더기의 용의 사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자크 라캉 (Jacques Marie Emile Lacan)이 말하는 거울상 자아의 직면일까? 그의 작업이 보다 깊은 신화적 맥락에 닿아있다는 점에서, 나는 무엇보다 세계가 그의 눈 앞에서 산산조각나는 것을 본, 그리하여 그자신의 자아selfhood가 완전히 조각나는 것을 경험한 파트모스섬 Island of Patmos의 요한의 비전vision을 떠올리게 된다. 묵시록에서 기술되는 바 그것은 어떤 심리적인 것과 우주적인 것이 맞물리는 절대적 경계에 대한 하나의 시각이자 비전이다. ● 「미지의 역습Unknown strikes back」(2005) 여기저기 꽂힌 형광등, 도막도막 잘린 용의 컬러플한 사체corpses. 이것은 라캉이 말하는 상상계 거울상의 가차없는 부서짐인가? 혹은 용처럼 리드미컬하게 꿈틀대는 어떤 시간적 지속들의 절단인가? 이것을 전통적인 제례적인 의미에서의 일종의 괴물 살해로 간주할 수 있을까? 괴물은 무엇이며 부수고 태어나는 것은 무엇일까? 이한수의 작업에 있어 괴물은 무엇보다 문화적인 혼종적 실체이며, 문화 자체이다. 이 괴물은 그의 작업에 있어 주체와 대상 사이에 있는 감각지각의 형상화로서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것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의 도래로서, 마치 SF 영화나 공상과학 소설에서 나오는 외계인의 방문처럼 묘연하게 탄생한다. 괴물적인 것, 그것은 괴물monster이 나타내는 바 문자그대로 어떤 것을 보여주는monstrous 것인데, 또한 「달리에 대한 오마주」에서 보이듯 초현실적인 기괴한 모습의 괴물-천사이기도 하다. ● 그러나 이한수의 작업에서 과거에 도래했던 인간 속에 깃든 신성, "괴물적인 인간" 초인으로서 부처, 예수, 성모, 천사 등은 혼종성의 실례로서 라일리언 등의 뉴에이지적 종교제례와 구별되지 않는 하나의 평면, 혼효면plan of consistency에 섞여 위치한다. 그것은 생각할 수 없는 것, 중력이 무한대에 가까운 지점에 이르는, 블랙홀에 이르는 사건의 지평 너머의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환기하려는 시도이며 컬러플한 빛이라든지 관객의 눈 안쪽에 맺히는 빛의 잔상으로서만, 불가해한 것을 마주하는 효과로서만, 규정할 수 없는 짧은 시간의 찰나로서만 존재한다. ● 『씨 플러스 스윙바이C+swingby』그의 사고의 궤적을 보여주는, 단정하게 잘 차려진 맛깔스러운 뷔페같은 느낌을 주는 전시이다. 이제 그의 관심사는 시종일관 어떤 '표면에 새김'이라는 의미로서의 문신에 있는듯 하다. 이한수는 문신을 특별히 비주류 대중문화의 특별하고도 팬시한 '아이콘icon'으로서 사용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불상이 나타내는 부처 등 동서양의 여러 종교에서 차용한 '성상'에 조응하는, 현대적인 상업적 저급문화의 아이콘, 비주류적이며 키치적이고 하위문화적인 그러면서도 철저히 상업적인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서 과거 신성神聖의 아이콘의 이미지에 반대급부적으로 조응한다. ● 문신은 신체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각인하여 새기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문신이라든지 피어싱과 같은 젊은 층에서 신체를 관통하는 표식의 유행에 대해 레나타 살레클 Renata Salecl 은 『사랑과 증오의 도착들』에서 이러한 열망이 모든 것이 부박浮薄하고 상업적인 것일 뿐인 세계에서 지울 수 없는 가치를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을 반영하는 "실재의 회귀"라고 말한바 있다. 현대사회에서 매체들은 아름다움의 이미지들로 젊은이들을 쉴 새 없이 폭격하며, 이렇듯 강제된 동일화에 대항하기 위한 방법들 가운데 하나는 실재적 행동을 수행하는 것, 즉 신체를 변화될 수 없는 방법으로 표식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한수_무제(여신)1303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73×91cm_2013


흔적trace 내지 각인에 대한 관심은 단지 쓰기에서의 기록이나 새김뿐 아니라 비물질적인 차원에서의 순수 사건의 새겨짐 내지 흔적을 중시하는 현대 사상가들의 특별한 관심사이기도 한데, 이것은 '각인' 혹은 '표시'에 대한 서구적 태도에 조응한다. 예컨대 천사는 '신의 인장'으로서 이해되었고, 그리스도 성상은 베로니카가 자신의 수건에 고통받는 그리스도의 얼굴의 각인을 찍어내듯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 신성한 힘의 각인으로서 처음 시작된다. 애초에 성상은 성서가 복음사가들이 임의대로 기술한 것이 아니라 천사의 말을 먼저 '듣고' 받아 적는 것이듯 인간의 능력으로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인장을 찍듯 찍어내는 것이었다. ● 이러한 종교적 의미에서의 신체에 대한 각인이란 대단히 강력한 것으로, 현대 철학자들의 언어로 번안하자면 사실상 의식으로는 잘 포착되지 않으면서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것, 잊어버릴래야 잊을 수 없는 것, 말하자면 트라우마와도 같은, 결코 지울 수 없는 몸의 기억에 가깝다. 천사가 지닌 의미인 '신의 인장'이란 결코 지울 수 없는 외상적 상처와도 같은 흔적으로서만 기억된다. 트라우마는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일상에서의 반복을 만들어내며 이렇게 반복으로 되풀이된 것이 충동과 습관을 이루며, 습관은 관습의 형태로 고착화되어 사회적 정체성 형성에 관여한다. ● 문신은 무엇보다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신체에 각인하는 것으로, 새기는데 격심한 고통을 수반한다. 또한 미국 감옥에서라든지 죄수를 신대륙으로 이주시킨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초기 이민자 사회에서는 범법자 혹은 죄수를 명시하는 낙인의 의미가 강했다. 국가발생 이전 부족사회 단계의 대부분의 문화에서 문신은 통과의례의 성격을 지닌다. 신체에 새기는 주변부 하위 문화의 각인으로서, 예술의 어법으로서 사용되는 문신은 마치 통과의례와도 같이 한 사회가 잊지 말아야 할 윤리적 책무를 일깨운다. 이것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재는 말해질 수 없는 것 혹은 표상불가능한 것으로 외상적인 상처의 형태로서만 상징계에 출몰한다는 라캉 Jacques Marie Emile Lacan 이나 제임슨 Fredric Jameson과 같은 현대 이론가들의 견해를 환기시킨다. ● 문신은 동시대 대중영화에서 비주류 하위문화의 혹은 문화적 경계선상에서의 어떤 임시적인 이행의 공간에서 고통받는 자아에 대한 아이콘icon으로서 사용된다. 예컨대 남아프리카의 정치적 경제적 갈등을 다룬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에서 반군에 포획당한 무장 소년병들은 면도칼로 문신한 후 마약을 지급받는다. 동시대 한국의 세태를 보여주는, 조기 유학생들의 애환과 방황을 다룬 김소영 감독의 한국 독립영화 『방황의 날들In-between』에서도 미국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조기 유학한 청소년들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서로에게 문신을 해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상호 이질적인 문화적 경계에서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채 겪는 정체성의 위기를 적극적인 형태로 말로 표현하지 못하며 다만 감내하는 가운데 자학적으로 몸에 새기고자 하는 것이다.

 

 


이한수_혼성열반 Hybrid nirvana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1


디디에 앙지외Angieu는 문신에 대해 논하는 가운데 '스킨 에고'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데, 여기서 외부 세계로부터 받은 강렬한 인상과 심리적인 변화는 모든 점에 있어 신체적 존재 속에, 몸의 구조 속에 근거지워진다고 한다. 앙죄가 말하는 피부는 경계boundary의 장소로서, 내외부를 직면케 하는 표면으로서 피부의 특수성이다. 피부는 자아의 내외부 양쪽을 면하는 하나의 '에고'로서 간주되며, 프로이트가 '이드'라 부른 것과 외부적 의미 복합체의 사이에 있다는 것이다. ● 이한수의 경우 문신에 대한 이같은 관심은 하위 주변부 문화subculture의 상위문화적인 예술적 어법으로의 적극적인 포용 외에도, 순수사건에 해당되는 무엇인가를 새기고 표시하며 기록한다는 의미에서의 신체에 대한 보다 환유적인 관심에 뿌리내리고 있는듯 하다. 이같은 사고에는 서구에서는 오랜 근원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 서양 중세에 천사는 신의 '인장'으로 간주되었으며 따라서 성상은 베로니카가 그리스도 얼굴을 수건에 찍어내듯 혹은 복음사가가 천사의 말을 듣고 나서 받아적듯 작자 자신의 힘이 아니라 전적인 외부로부터 오는 것, '각인하여 찍혀지는' 것이었다. 이한수는 주변부 하위문화와 마찬가지로 코스모폴리탄적 도시문화의 한 측면으로서 종교성을 제시한다. 그 자체 문화의 경계부에서 근원이 다른 문화들간의 혼종성 가운데 태어나는 것이다. ● 「백호를 가진 흑두」에서도 전지전능한 보는 힘을 나타내는듯 천 개의 눈을 상징하는 레이저는 일정한 간격으로 점멸하며 그 레이저가 투사되는 지점에 이미지로 맺힌다. 미간 사이에 설치된 것은 웹캠이다. 웹켐은 관객의 모습을 포착하여 자동적으로 디지털 만다라 형식으로 변형한다. 이렇게 '보여진' 관객의 모습은 실시간으로 맞은편 벽에 비춰지는데, 세 번째 눈 백호를 통해 작품 편에서 관객을 '응시gaze'하며 관객의 이미지를 디지털 만다라 속에 변형하는 형식으로 상호작용성이 구현된다. 검은 두상 전면에는 거리측정 센서가 설치되어 관객의 모습이 끊임없이 자동적으로 확대되거나 축소되며 마치 고치 속의 애벌레의 변태처럼 변이되도록 조작되며 이러한 변이는 문신 문양과 겹쳐져 흐른다.

 

 


이한수_혼성열반 Hybrid nirvana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1

즉 디지털 만다라가 되는 관객의 이미지는 여기서 마치 흐르는대로 형태가 바뀌는 유동체처럼 형태가 가변적이고, 쉴 새 없이 춤추듯 변화하며 동시에 투사된 빛으로서 화려한 영상과는 대조적으로 스크린이라는 차갑고 중성적인 매체의 무미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미지는 한 줄기 빛 속에 잠재되어 있으며, 프로젝터를 통해 투사되어 무감각한 매체 위에서 구현되는 가운데에서만 오직 순간적으로 구현된다. 이렇게 마치 현란한 디스코텍의 리듬처럼 나부끼고 펄럭이고 요동치는 영상과 무겁기 이를데 없는 매체적 존재감의 대비는, 순간적이고 찰나적인 시간성 속에서 변화무쌍하게 증식되기도 하고 변화하기도 하는 시뮬라크르로서 이미지의 본성을 말해준다. ● 이후 작업에서도 변주되는 "눈깜박임ougenblick"과 같은 극히 찰나적 순간성을 하나의 감각적 질료로서 끌어들이고 있는 이같은 이한수의 작업은 붙잡을 수 없는 찰나처럼 순간과도 같은 매질로 사용되는 빛이라든지 내외부가 만나는 경계부이자 표면으로서 피부 내지 어떤 평면에 대한 최근의 지속적인 철학적 관심을 환기한다. 이같은 시간적 순간성이 조형해내는 공간성을 인류학자 빅터 터너 Victor Turner가 말하는 경계부이자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의 이행과 통과의 공간으로서 리미널리티liminality라는 측면에서 볼 수도 있겠고, 혹은 들뢰즈가 말하는 '일관성의 지평plan of consistence''혼효면'을 상기시킨다고도 볼 수 있다. 의미있는 사건이란 포착할 수 없으며 찰나적 순간성에 지나지 않는 차이로서 발표되는 특이성의 응축으로서, 그러한 가벼운 휘황함을 지닌, 두께없는 투사된 스크린의 막처럼 기능하며 작업으로서의 몸체에 각인되어 새겨진다. ● 별이 총총히 빛나는 밤이라는 의미의 성좌constellation는 이한수 작업에서 반복되는 주요 모티프이다. 별이 빛나는 밤은 사진작업에서 배경으로 사용되거나, 둥근 캔버스 안 아크릴 하늘 안에서 LED소자들이 그려내는 문신문양으로 빛나기도 한다. 이같은 이한수의 독특한 '의미의 성좌'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90년대 후반 유학 시기 쌀그림의 오랜 기간에 걸친 발전된 형태이다. 이 계열의 작업들은 호랑이와 같은 상징물을 차용하는 가운데 천구 혹은 망막처럼 캔버스 형태 자체가 둥글어진다. 가회동 갤러리 마노에서 열렸던 「우로보로스의 꿈」(2006-2007)은 영화 「수면의 과학」의 자막이라든지 데미안 허스트의 원형 그림에서처럼 마치 꿈을 꿀 때 어둠속에 감은 눈으로도 꿈의 영상을 볼 수 있는 것처럼 특수한 신경학적인 것을 연상시키는 센세이셔널한 감각지각을 표현하고 있다. ■ 최정은


Unfamiliar Corner

기슬기展 / KISEULKI / 奇슬기 / photography

 

2013_0727 ▶ 2013_0810 / 월요일 휴관

 

기슬기_Unfamiliar Corner 01_디지털 프린트_90×90cm_2012

초대일시 / 2013_0727_토요일_05:00pm

본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중인「Emerging Artists: 신진작가 전시지원 프로그램」의 선정작가 전시입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조선GALLERYCHOSUN

서울 종로구 소격동 125번지Tel. +82.2.723.7133~4

www.gallerychosun.com


'Unfamiliar Corner', 단순한 공간에 담긴 끝 없는 질문 ● 가장 발전된 현대 물리학의 이론에 따르면 우주 즉 '존재하는 모든 것'은 우주 가장자리 어딘가의 표면에 기록된 2차원 정보의 3차원적 투영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이른바 블랙홀의 성질에 내한 연구가 발전되면서 블랙홀 안의 상대에 대한 모든 정보는 'event horizon'이라고 불리는 블랙홀의 경계에 해당하는 2차원 표면에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3차원에 관한 정보가 어떻게 모두 2차원 평면에 있다는 것인지 우리로서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들은 정확하고도 탄탄한 수학적 근거를 가지고 이론을 펼치고 있고 따라서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3차원 세상은 허상((虛像)일 뿐 오히려 평면이 근본적 실상(實像)인 것이다. 그러니 이를 놓고 보면 평면의 예술인 사진은 어떤 의미에서 허상을 다시 사실(寫實)로 옮기는 작업일지도 모르겠다. ● 기슬기의「Unfamiliar Corner」는 사진이라는 이미 2차원적인 특성을 빼놓도라도 그 모습이 매우 평면적이다. 그 납작한 무기질 표면들 안 어딘가에 한 조각의 신체가 놓여 있음으로 인해 마치 아코디언 주름상자가 부풀듯 깊이가 살아나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공간을 상상하게 하고 사각형 속에 한 장의 슬라이스로 갇힌 틀을 넘어서 의미의 맥락을 확장하게 한다. 하지만 되살아난 공간은 여전히 우리가 그것을 너무나 태연히 여길수 있을 만큼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묘한 긴장과 못내 편치 않은 비일상적인 분위기를 매력적으로 간직하고 있다.

 


기슬기_Unfamiliar Corner 02_디지털 프린트_70×70cm_2012

 

 

 

기슬기_Unfamiliar Corner 04_디지털 프린트_90×90cm_2012

 


우리는 맥락 즉 상황이라는 구조 안에서의 비교 해석을 통해 의미를 주고받는다. 말하거나 보여주는 그것 자체에 더해서 그 전후의 직간접적인 요소들과의 관계 안에서만 더욱 풍부하고도 정확한 의미가 전달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나 그것을 원하는 것 같지는 않다. 예컨대 우리가 어떤 영화를 볼때 화면으로 갇힌 공간을 확장해 봄으로써 그 주위에 있는 온갖 스탭들과 조명 긱기와 감독의 모습이 눈에 보이듯 상상된다면 그 영화가 전달하려는 느낌이나 의미는 고스란히 사라질 것이다. 따라서 재능 있는 감독이라면 그 묘한 낯섦을 여전히 간직할 수 있도록 모든 요소들을 섬세하게 만져내야 한다. 이 점에서 작가는 과연 낯선 공간의 단면을 솜씨 있게 잘라내 보여주면서 자신의 작가적 감성을 전혀 손해보지 않고 간직함으로써 '내노라'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이렇게 기슬기의 이미지들은 단순한 평면의 틀 안에서 평면과 공간, 허상과 실상, 낯섦과 친숙함, 전체와 일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느껴봄 직한 새삼스런 '꺼리'를 던지고 있다. 어디까지 확장되고 어디 사이를 오가면 어디에서 생각이 멈추는지는 오직 보는 이의 이로 남아있다. ■ 최창호

 

 


기슬기_Unfamiliar Corner 08_디지털 프린트_90×90cm_2013

 

 

 

기슬기_Unfamiliar Corner 11_디지털 프린트_90×112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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