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OCI YOUNG CREATIVES
이우성_이주리展
2013_0605 ▶ 2013_0626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3_0605_수요일_05:00pm
이우성展 /『돌아가다 들어가다 내려오다 잡아먹다』이주리展 /『Lucid Drea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OCI 미술관OCI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수송동 46-15번지
Tel. +82.2.734.0440www.ocimuseum.org
이우성의『돌아가다 들어가다 내려오다 잡아먹다』 ● 2012년 이우성은 세로 3미터, 가로 6미터에 달하는 대형 회화인「정면을 응시하는 사람들(People who are staring straight ahead)」을 제작해 『불 불 불』이라는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세 개의 캔버스를 붙여 제작한 삼단 제단화 형식은 작가가 제목에서 표현한대로 정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남자들로 구성된 집단 초상화이자 군상이다. 비슷한 듯 서로 다른 인물들은 거리에서 익숙하게 볼 수 있는 20대의 '남자'들로 보인다. 정장을 입은 모습부터 캐주얼한 복장을 한 사람, 체육복을 입거나 잠바를 걸친 사람 등 집단적이면서도 개별적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의 초상이다. 등장인물들은 각기 다른 계절에 어울리는 옷을 입고 있으며, 작가는 이들 개별 인물들을 전체 캔버스에 적절하게 배치하여 얼굴과 응시의 파노라마를 완성하고 있다. 높이가 3미터가 되는 이 작품 앞에 관람자가 선다면, 정면을 바라보는 그림 속 인물들은 관람자들을 뚫어지게 다소 위협적으로 쳐다본다. 관람자들은 이 작품에서 이미지의 현전(現前, presence), 그 자체를 경험하게 하며, 스틸 이미지의 살아있는 응시를 역설적으로 경험한다. ● 대형 캔버스에 빼곡하게 배치된 두상들은 살아있는 배우들처럼 우리를 향해 뭔가를 이야기하는 것 같은 궁금증을 유발한다. 침묵, 부동의 정면 자세, 손짓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집단적 행위를 표시한다. 2012년 개인전에 포함된 이 작품은 20대가 느끼는 갈등, 고민, 열정, 공유, 에너지 등을 '불'이라는 직설화법을 통해 보여주었다. 즉, 이 작품은 2013년 OCI 미술관 신진작가 창작 지원 프로그램(OCI YOUNG CREATIVES)의 작가로 선정된 이우성의 개인전에 대한 하나의 무대를 마련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2012년 전시가 젊은 작가 이우성에게 작업의 무대이자 일종의 프롤로그였다면, 2013년 개인전은 그로부터 더욱 심화되거나 발전한, 혹은 자기모순과 타협을 발견하는 과정을 보인다. 또한 전자가 '우리'의 생각을 읽어내는 무대였다면, 올해의 전시는 무대 안에 놓이는 디테일이 만나고, 충돌·중재되며 새로운 회화적 변화를 보여주는 자기 변화, 변신의 무대이다. 작가는 우리를 벗어나 나를 담아내는 생각의 공간, '매개', 혹은 중재(mediation)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 이우성_나의 소원팔찌는 언제 끊어질까_캔버스에 과슈_230×315cm_2013
회화를 공부한 이우성은 회화제작과 제목 붙이기에 일종의 위트와 유머를 선사한다. 유화가 아닌 구아슈를 사용한 그의 작업은 20대의 젊은이가 느끼는 불안감이나 혹은 시대의 갈등과 우울을 연상시킨다.「도망」(2012),「아무도 내 슬픔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2011),「무너진 가슴」(2013),「자폭」(2013) 등은 작가가 미술가이기 이전에 사회의 일원으로 느끼는 세대적 모순과 좌절감을 표현한다. 그러나 '그림 그리기'는 일종의 예술적 매개체이자 치유이며, 아슬아슬하게 현실을 살아나가며 리얼리티를 구축하는 작가 개인의 일기이자 사회적 초상이다. 일기가 일상적인 내용을 거르지 않고 써 내려나가는 진솔한 자기 문투의 글인 것처럼, 이우성의 작업은 일상적 삶과 경험에서 일차적으로 출발한다. 그러나 그는 회화적 충동과 장치, 전략을 위해서 그림을 눈속임(trompe l'oeil)으로 포장하거나 적절한 구성을 이용하여 관람자들을 현혹시키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예를 들면,「괜찮아. 어차피 난 그림에 불과하니까」(2012)에는 악기를 든 남성과 죽어가는 남성, 그리고 이 남자의 몸을 받치며 곁눈질로 관람자들을 의식하는 세 남자가 등장한다. 관람자가 이 그림의 내러티브에 몰입하고 자기화가 되는 순간, 제목은 연극적인 몰입 속으로 빠져드는 우리를 현실적으로 일깨운다. "어차피 그림이니까"라는 저자/화가의 지적에 독자/관람자는 "괜찮아... 죽지 않았어. 어차피 그림 속에서 죽은 것이니까"로 대답하는 역설적인 대화를 이끌어낸다. ● 이번 OCI미술관 전시제목인 『돌아가다 들어가다 내려오다 잡아먹다』는 네 음절로 이뤄진 시나 노래를 연상시킨다. '가다, 오다, 먹다'로 이어지는 구절들은 뭔가 시어가 맞아떨어질 때 느낄 수 있는 리듬감과 운율을 느끼게 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관람자는 15개의 패널로 이뤄진 전시 제목의 작품들을 발견하게 된다. 신체기관들이 파편적으로 여기저기 흩어져있고, 눈과 귀는 쌍을 이루며 책상 위에 배치되어 있다. 한쪽에는 치아가 부서진 그릇과 함께 병치되어 있으며, 흘러내리는 부드러운 액체는 내장 혹은 배설물을 연상시킨다. 집 모양으로 불규칙적으로 배치된 것은 작가의 작업실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메모지'이다. 15개의 패널에는 신체의 일부가 파편화된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고, 칼과 메모지, 화장지 박스 등은 모두 작가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들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2012년 개인이 속할 수 있는 세대를 아우르는 주제에서 벗어나 2013년에는 작가 자신의 몸과 정신(마음), 그리고 공간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 이우성_길_캔버스 위에 과슈_162.1×227.3cm_2013
책상 위에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듯이, 이우성은 상징적인 제스처로 신체의 모든 기관들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잠시 자리를 비우고, 일종의 '휴식기' 혹은 '휴면기(休眠期)'에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씨앗이 일정한 휴면기를 거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고 배가 발아할 수 없듯이, 작가가 휴식을 취한다고 해서 성장하지 않거나 에너지가 사라졌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정지된 이미지의 배열을 통해 암시된 작가의 회화적 에너지는 성숙한 자기 훈련과 명상을 요구한다. 이는 한국의 미술계가 작가들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결과물, 작품을 생산해낼 것을 요구하는 시스템에서 작가 스스로 '비평적 거리두기'를 두는 일종의 자기 브레이크처럼 보인다. 깊은 숨을 내리쉬는 순간, 더 긴 숨을 내쉴 수 있는 것처럼 이우성의 이번 전시는 '느린 숨쉬기'에 해당하는 작업들이다. 이는 작가가 자신과 자의식을 벗어나려는 행위처럼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자신을 더욱 잡아당기고 생각해보려는 이중적인 행위처럼 보인다. ● 이러한 묘한 이중성은 OCI전시 곳곳에서 엿보인다. 전시 공간은 두 개의 공간으로 구분되었는데, 두 공간을 서로 구분해주고 또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작품이「나의 소원팔찌는 언제 끊어질까」(2013)라는 작업이다. 관람객은 천막같이 걸린 이 작품(스크린)을 지나야만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결코 지나칠 수 없는 그림이다. 구아슈로 제작된 작업이지만, 2012년의 작업들과 달리 밝은 색채로 제작되었고, 진한 주홍색의 배경에는 보슈의 그림에서처럼 초현실주의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일부 인물들은 2012년「여름휴가」의 무빙이미지를 스틸 이미지로 바꾼 것이며, 인물들은 정면을 쳐다보거나 아예 몸을 돌리고 뒷모습만을 보여준다. 원근법 등을 무시한 공간에서 산발적으로 존재하는 이미지는 카무플라주(위장)를 한 군인의 모습, 촛불,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인간, '나를 사랑해줘요'라고 쓰인 문구를 집어든 남성에 이르기까지 삶의 '만화경'을 구축하고 있는 작품이다.
- 이우성_끝_캔버스에 과슈_130.3×193.9cm_2013
- 이우성_무너진 가슴_캔버스에 과슈_65.1×50cm×3_2013
「나의 소원팔찌는 언제 끊어질까」에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파편화된 '남자'의 신체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15개의 패널로 구성된 작품에서와 같은 이미지의 배열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인간의 두상과 엄지 손가락을 든 제스처 등은 단순하게 잘려진 이미지의 조합이 아니라 통일된 내러티브가 만들어지는 스토리 구조에 일종의 브레이크를 거는 행위이다. 이것은 짜임새 있게 흘러가는 이야기 구조를 작가 스스로 이질화시키고 무력화시키는 회화적 충동이기도 하다. 2012년 현실발언적이었던 이우성의 작업은 OCI전시에서는 분절적인 시어의 조합을 제시하듯 파편화된 신체와 이미지를 구축하여, 통일감있는 이야기구조를 탈피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이 장치는 『돌아가다 들어가다 내려오다 잡아먹다』에서 시도한 것처럼, 작가가 천착하던 이슈들을 이미지를 빌어 재배치하는 방식을 따른다. ● 이우성은 초창기에는 유화를 많이 사용했지만, 작년 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올해 전시에서도 구아슈를 많이 사용하였다. 구아슈는 유화에 비해 광택이 없어 매트한 느낌을 주고 색감이 깊지 않아 더욱 평면적인 느낌을 전달한다. 이러한 매체적 특성 때문에, 그의 그림은 유화보다는 조금 더 가벼운 느낌을 주며 생각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건조 속도가 아주 빠른 구아슈의 특징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이는 만화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고 드라마틱한 효과를 낸다. 이러한 매체적 특징에 따라「자는 사람」,「낮게 나는 꿈」,「가장 빛나는 별」등은 스냅사진처럼 우연적이며 캐주얼한 느낌을 전달한다. 소녀시대와 같은 걸 그룹들의 다리를 연상시키는「나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다리」와「사랑의 매」와 같은 입체작업 또한 이우성 작가의 문화비평가다운 젊은 작가의 반응과 위트를 보여준다. ● 책상 위에 작가의 생각과 고민, 미학적 선택 등을 내려놓기를 원하지만, 실제로 이우성은 끊임없이 생각하는 치열한 작가이다. 본래 작가는 '내가 갑이다'라는 전시제목을 달고 싶었지만, 최근 갑과 을의 관계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작가는 선회하여 지금의 제목에 이르렀다. '언제 소원팔찌가 끊어질지'를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끊어지지 않기를' 원하는 묘한 자기모순성과 이중성을 찾아볼 수 있듯이, '내가 갑이다'는 현실에서 '을'인 역설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88만원 세대라는 20대의 시대적 초상에서 거리를 두고, 2013년 이우성은 결국 자기 자신과의 타협과 중재를 파편화된 이미지를 통해 '마음'의 공간으로 회귀하고 있다.『돌아가다 들어가다 내려오다 잡아먹다』는 역설적으로 돌아가지 말고, 들어가지 말고 내려오지 말고, 잡아먹히지 말라는 모순성도 깔고 있는지 모른다. 이 역설적인 순간, 이우성은 더욱 역동적이고 생산적이다. ■ 정연심
- 이주리_마지막 도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펜_227×362cm_2013
- 이주리_위기에 빠진 공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펜_112×162cm_2013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이분법적 사회구조에 대한 성찰 ● 이주리의 작품을 관류하는 기본 컨셉은 비합리적 세계, 다시 말해서 몽환적인 세계에 대한 관심이다. 꿈을 꾸는 것과도 같은 부유하는 이미지들, 지극히 파편화된 그것들은 각기 분절을 이루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어디론가 중심을 향해 이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일견 구획되어진, 따라서 영토화된 기존의 권위나 가치, 위치에 대한 반란처럼 읽힌다. 이처럼 기성의 것들에 대한 이주리의 '탈영토화'(들뢰즈의 잘 알려진 표현을 빌리면) 작업은 무한한 상상력을 통해 발현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이주리의 작품을 현실을 떠난 비합리적 세계에 대한 묘사로 간주할 수 있는 비평적 근거이다. ● 그렇다면 이주리는 왜 이처럼 전복적인 작업을 수행해야만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상상의 세계 속에 깊이 빠져 들어가면 끊임없이 줄을 잇는 이미지의 사슬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의 작품 속에는 그것이 회화건, 드로잉이건, 설치작업이건 간에 홍수처럼 쏟아지는 이미지들이 담겨있다. 충혈된 눈알을 비롯하여 깃발, 목이 잘린 인체, 정충, 공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들이 이루어내는 비논리적인 풍경이 바로 이주리가 그려내는 세계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지배적인 느낌은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반란이랄 수 있다. 그렇다면 그의 그림은 과연 추한가? 아름다움에 대한 반대의 미적 가치로서의 추는 현대미술의 지배적인 경향이랄 수 있는데, 이주리 또한 이러한 트렌드에 편승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의 신세대 작가들 사이에서 지배적인 담론으로 부상하고 있는 자아의 탐닉을 통한 내러티브적 경향은 분명 기존의 전통적인 미의 개념에 접근하고 있다기보다는 이에 대한 거부가 이루어내는 일종의 가역적 풍경이랄 수 있다. 그것은 일견 질서가 잡혀있고 잘 짜인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는 강고한 현실에 대한 반역처럼 보인다.
- 이주리_항해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펜_145×97cm_2013
기존의 주름에 대한 변혁의 의지, 그러나 현실적인 수행의 의지가 결여된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파고드는 초현실의 세계가 바로 신세대 작가들이 그려내는 심리적 내러티브인 것이다. 큰 범주에서 볼 때 이주리가 그려내는 세계 역시 여기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주리의 작품은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에 대한 지속적인관심을 통해 자신의 서사를 매우 독자적인 것으로 채색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성(城)의 이미지는 수성(守城)과 공성(攻城)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을 통해 나타난다. 그의 작품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중심을 향한 이미지들의 이동은 바로 이러한 도식과 관련이 깊다. 무엇을 향한 이동 즉, 현상학적 용어를 빌면 지향성의 개념이 이러한 이동을 추동하는 요인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중심에는 그의 몸에 대한 관심이 자리 잡고 있다. 그의 작업은 결국 몸 담론인 셈이다.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이야기하는 애브젝션, 즉 천한 것들에 대한 관심이 일견 그의 작품을 추하고 때로는 엽기적인 것으로 인상짓게 하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그림에 빈번히 등장하는 목이 잘린 인체들, 중심을 향해 몰려드는 정충들, 충혈된 눈알들은 착취와 억압, 고문, 감금, 사형, 강간, 살해, 약탈 등 비정한 인간사회의 상징으로 도입된다. 이른바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의 이분법적 도식으로 요약할 수 있는 이러한 스키마는 흑기(黑旗)와 백기(白旗)의 도입을 통해 재차 상징화되기에 이른다. 그는 "세상이 비정하다"고 말한다.
- 이주리_잊혀진 것들의 구역_종이에 아크릴채색_75×105cm_2013
이주리가 바라보는 이러한 세계관은 비정함이 극단에 이른 상태, 즉 엽기적 장면을 통해 구체화된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작가 이주리의 탁월한 상상력의 세계가 버티고 있다. 이처럼 잔혹하고 때로는 엽기적이기조차 한 초현실의 세계는 거대한 생선의 살을 바르는 장치를 비롯하여 많은 눈알들을 처리하는 작은 인간들, 해안에 몰려든 수많은 배 등으로 묘사되는데 정작 작가는 그러한 이미지들이 과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예술의 신비가 아닐까? 이주리의 탁월한 상상력은 이미지의 내러티브를 통해 견고한 피안의 세계에 정박한다. 그의 상상은 수성과 공성이라는 인간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스키마를 주제로 설정한다. 그의 작품에는 유독 기계가 많이 등장한다. 공사장에 관심이 많은 그는 공사장에 널려있는 기계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는 인체의 부분을 기계로 치환한다.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눈알이 시한폭탄이나 포탄을 닮았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목이 잘린 인간들은 어디를 향해 유랑의 발길을 옮기고 있는가? 이 부유하는 풍경은 결코 비현실적이거나 초현실적인 풍경이 아니라 현실의 복제판이다. 그의 그림은 자본주의 사회와 체제에 대한 통렬한 풍자로 읽힌다. 요즘 유행하는 용어를 빌리면 갑과 을의 사회적 관계에서 파생되는 인간성의 상실, 기계에 대한 인간들의 절대적인 신봉, 컴퓨터화된 정보사회에 대한 우려, 스펙타클 사회(기 드보르)에 대한 경종의 의미가 그의 작품 속에서 파편화된, 따라서 길을 잃은 미아의 상태로 상징적으로 표현돼 있다.
- 이주리_욕망에 불타는 성냥개비들_혼합재료_35×83×60cm_2013
이주리의 작품은 우리에게 인간의 본질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그것은 사회에 대한 본질적 질문이다. 소문만 무성하고 팩트는 없는 사건, 조작된 사건,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가상의 세계(시뮬라크라), SNS와 언론에 의해 진실의 전복이 가능한, 한 마디로 위조된 세계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담겨 있다. 그것은 하이데거 식으로 표현하면 염려(Sorge)에 가깝다. 현대문명에 대한 깊은 우려가 기계에 의해 몸이 포획된 상태로 상징적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현실에서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공격적인 모습으로 화면 곳곳에서 분출하고 있다. ● 이주리의 회화 작품에는 구체적인 사건들이 등장하는 드로잉과는 달리 마치 번개를 연상시키는 불규칙한 선들이 등장한다. 붉거나 푸른 그 선들은 그 밑에 가라앉은 사건을 뒤덮고 있다. 그것은 마치 탈영토화를 통한 영토의 재편처럼 읽혀진다. 새로운 땅에 대한 동경과 기존 가치나 질서에 대한 전복, 그것이야말로 작가인 이주리가 그리는 새로운 이상향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번 전시회에 설치작업으로 제시하게 될 종이배의 존재는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과연 그 배의 정박지는 어디가 될 것인가? ■ 윤진섭
Vol.20130604f | 2013 OCI YOUNG CREATIVES-이우성_이주리展
'인사동 정보 > 인사동 전시가이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여운展 '뉴욕 증후군 New York syndrome' (0) | 2013.07.02 |
---|---|
인사동지역 갤러리 7월 전시일정 안내 (0) | 2013.07.01 |
강영길 사진展 '바다 보다' (0) | 2013.06.24 |
류재현展 FOREST, 멈춰선 시간 (0) | 2013.06.24 |
주혜령展 '거북이, 물고기 그리고 나' (0) | 2013.0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