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m 천지 사진 등 140여점… ‘불멸’展 개최 안승일 작가

정말로 백두산이 인사동에 옮겨져 있었다.

백두산의 16개 봉우리가 천지 물빛에 모습을 비치는 것은 1년에 스무 날이 채 되지 않는다. 그래서 백두산을 다녀온 이들도 눈에 말간 천지를 담아 오기란 쉽지 않은 일. 

 


 ▲ 20년째 백두산만 찍어 온 사진작가 안승일씨가 20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백두산 사진전 ‘불멸 또는 황홀’에 전시된 천지 작품 앞에서 “통일의 길이 백두산 사랑에 있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그런데 서울 종로구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의 가운데 뜰이 확 뚫린 5개 층 9개 전시실에 내걸린 백두산 사진들은 그 산을 다녀온 이들의 갈급증마저 해소할 만하다. 20년째 백두산 사진만 찍어 온 안승일(68)작가의 백두산 사진전 ‘불멸 또는 황홀’이 20일부터 다음 달 18일까지 열린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천지를 항공촬영한 사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높이 16m, 너비 4.5m나 되는 엄청난 대작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천지를 제각기 다른 높이에서 조망하는 맛이 이채롭다.

초대형 풍광 사진 60여점, 자생식물 사진 70여점, 백두산에 서식하는 곤충들의 짝짓기 사진 10여점이 내걸렸다. 안 작가는 지난 16일부터 작품들을 내거느라 밤을 지새우곤 했다. 워낙 대작들이어서 천장에 자일을 걸고 장비를 동원하느라 적잖은 비용이 들었다.

안 작가는 1년의 절반 이상을 백두산에서 지낸다. 영하 50도의 혹한에서 얼음집을 지어 놓고 단군신화의 웅녀처럼 백두와 아침 인사를 나눴다. 그렇게 백두산에 렌즈를 향하다 보니 절로 사랑에 빠졌고 통일의 길이 보였다고 했다. 웅걸한 천지를 내려다보는 순간, 한민족 정체성의 벼락 세례가 이뤄졌다고 했다.

안 작가는 “처음 백두산에 갔을 때만 해도 민족이니 그런 거 잘 몰랐다. 백두산은 나라와 민족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민족사적 시공간으로 빠져들어 애국자로 거듭나게 한다”고 말한다. 이어 “한민족이면 피를 나눈 사이이니 통일의 길도, 대화의 길도 백두산 사랑에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서라벌예대(현 중앙대) 사진학과를 중퇴한 그는 10대 후반부터 하루도 산에 가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러다 1994년 백두산에 처음 다녀온 뒤 생의 절정 20년을 오롯이 바쳤다. 2007년 1월 백두산 용문봉에서 찍힌 그의 얼굴 사진을 보라. 곤두박질친 수은주를 형상하듯 그의 머리에 서리꽃이 피어 있다. 간첩으로 오인돼 중국 공안에 끌려갔는가 하면 죽을 고비도 서너 차례 넘겼다.

그런데도 “백두산에만 가면 좋아하는 일이라 즐겁기만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사람들은 내게 ‘어떻게 그런 사진들을 찍었느냐’고 묻곤 하는데 그보다 ‘왜 찍었느냐’고 물어야 한다”며 “이 사진들을 보면 내가 그랬듯 답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1994년 일본 작가 이와하시 다카시, 1998년 북한 작가 김용남과 각각 ‘백두산 2인전’을 열었던 안 작가는 “나의 20년 백두산 사랑이 통일을 이끌 젊은 세대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면서 “전국 순회 전시와 아울러 북녘에서도 이런 기획이 성사됐으면 하는 게 소박한 꿈”이라며 웃었다.

정식 개막식은 오는 24일 오후 5시에 열린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산사진가 안승일님의 "불멸 또는 황홀" 전이
2014년 1월 20일부터 2월 18일까지 아라아트 1층부터 지하4층까지 열립니다.
소설가인 박인식씨의 기획으로 초대형 백두산 풍광사진등이 전시되는
이번 전시는 백두산 속으로 들어온 듯한 감격을 맛볼수 있는
한국 미술 전시 사상 유래가 없는 이벤트를 벌인다고 합니다.
개막식은 2014년 1월 24일(금요일) 5시에서 8시까지 입니다.
많이 참석하시어 山만한 사진으로, 山만큼 큰 감동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안승일 백두산 사진전이 제시하는 통일 노하우

                                                                                                                       

                                                                                박인식(소설가)

 통일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는 성장 동력은 통일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느닷없는 통일은 자칫 재앙을 부를 수 있다. 분단 60년동안 북한 인민들은 3대에 걸친 김씨 왕조의 독재 정치에 세뇌되어 남쪽 한국인들과는 쉽사리 함께 살 수 없을 만큼 의식이 바뀌어 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 제제의 통일은 경제 통일을 전제해야 하고 경제 통일은 정서 통일을 필수적 전제 조건으로 요구한다.
북한 왕조 권력의 붕괴로 인한 갑작스런 통일이 축복이 아니라 민족의 비극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면 지금부터 라도 정서 통일을 이끌어 낼 한민족 동질성 회복이 절실하다.
어떻게 하면 민족 동질성 회복이 가능할까?
안승일은 백두산 사랑에 그 답이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남쪽과 북쪽에서 다 함께 “민족의 성산”으로 떠 받드는 백두산이라는 한민족 정체성을 갖고 있다. 백두산 앞에서는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남과 북이 따로 없이 하나로 통일 되어 있는 것이다. (전시도록 20쪽과 21쪽을 보라 . 천지 속의 한반도는 이미 통일이다.)
한민족의 백두산 사랑은 거의 믿음에 가깝다.
배달겨레 누구든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내려다 보는 순간, 이 땅의 사람들을 오천년 넘게 보살펴온 절대자의 눈길을 느끼고 하늘 목소리를 듣고 흐느끼게 된다.한민족 정체성의 벼락세례가 거기서 이뤄진다. 그 세례로 그는 나라와 민족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말하자면 민족사적 시공간 속으로 빠져들어 애국자로 거듭난다.
백두산은 애국가 속에서도 동해와 더불어 우리 민족을 보살펴 온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으로 솟아 있지 않은가.
그렇게 백두산은 만주벌 지평선 위에 불멸로 솟아 났다.
천지 수평선 속으로는 물구나무 선채 황홀하다.
끝내 백두산은 한민족 역사에 불멸이다 .
통일의 그 날이 어서오기를 비는 배달겨레 영혼 속에 황홀하다.
와서 안승일의 백두산 사진을 보라. 백두산에서 무르익는 통일의 꿈이 얼마나 황홀한지.

산악 사진가 안승일은 1994년 처음 백두산을 만나 산으로 향한 자신의 운명과 마주쳤다. 그 운명 속에는 백두산의 황홀한 아름다움을 영상화 하여 칠천만 배달겨레의 통일 기원 제단에 바치자는 소명 의식이 용솟음 쳤다. 그렇게 하여 그는 생의 절정기 20년을 백두산 사진 작업에 송두리째 바쳐 오늘에 이른다.
수은주가 예사로 영하 삼사십도로 곤두 박는 백두산정 눈 구덩이에서 사진 작업 하느라 한 겨울 서너달 씩 버틴다는게 과연 가능한가 말이다. 그것도 20년 씩이나, 그건 신화 시대 곰이 아니고서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그 사이 간첩 질로 오해 받아 중국 공안에 체포 되는가 하면 죽을 고비를 서너 차례 맞았지만 백두산에서 발원하는 민족사적 열정을 식히지는 못했다.

기적에 다름없는 그의 20년 예술혼에 감동받은 아라아트 센터의 김명성 대표는 전시 면적이 1000평에 달하는 5개층의 전시장을 선뜻 내 주었다. 그 덕에 지난 20년간 지속된 안승일의 예술혼이 얼마나 황홀한지를 확인케 되어 백두산에 직접 오른 것 이상으로 감동을 즐 수 있는 전시가 가능해 졌다. 실제 천지 물 속으로 백두산정의 16봉우리들이 제 얼굴을 비춰보는 맑은 날은 1년에 스무 날이 채 못 된다. 백두산에 가서도 백두산의 황홀한 아름다움을 맛 볼 기회가 여의치 않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실제 백두 산행에서 보다 이 전시장 사진 작품들이 더욱 황홀한 감동을 선사 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이 사진들로 안승일이 백두산에서 산 지난 20년사이 백두산 풍광이 가장 황홀했던 순간과 그 풍경속에서 언뜻 언뜻 내비치는 산의 순백한 영혼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시작품들은 스케일 면에서도 그 불멸의 황홀을 담아 내기에 모자람이 없다. 가로 15m x 세로 2.3m, 가로 10m x 세로 5m의 작품이 있으며 나머지 50여점도 그 크기가 가로 4m X세로 1.5m이상의 규모다

아라아트 센터의 지하 1층에서 지하 4층까지는 중정이 뚫린 건축구조여서 그 속에 전시되는 대형 작품을 시각을 바꿔가며 감상 할 수 있다. 산행 때 걷는 위치에 때라 조망이 달라지듯 여러층을 오르내리며 아주 특별한 관람 체험을 즐기게 될 것이다.
그는 20년 집념으로 백두산을 아라아트 전시 공간으로 옮겨왔다.

신화시대의 백두산 곰은 백일동안 마늘만 먹은 끝에 웅녀로 변해 환웅을 배필로 맡아 여기서 단군을 낳았다.
통일시대를 앞두고 우리의 백두산 곰은 백두산을 배필로 맞아 이십년을 함께 산 끝에 여기 전시되는 사진들을 낳았다. 우리는 이 사진들로 “한국인에게 백두산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민족혼의 영역이다”. 라고 선언하게 된다.
아울러 이 전시회는 정서적 통일 물꼬를 틀어 통일의 전제조건인 민족 동질성 회복에 자신감을 심게 될 것이다.
이 작품들을 보다 많은 국민들이 보고 즐길 수 있도록 이번 아라아트 전시회를 전국 순회 전시로 연결 시켜야 하며, 끝내 북녘 땅에서도 전시회가 열려야만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젊은 세대들은 통일 대해 시큰둥하다. 이런 세대에게 이번 전시로 백두산의 황홀한 아름다움을 제대로 전해 줄 수 있다면 그들도 통일에 관심을 갖게 되리라.
뿐만 아니라 애국가를 부를 때 마다 떠올리게 되는 백두산의 숨결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어 백두산의 존재감에 보다 짙게 육화될 것 이다. 청소년 학생들에게 관람을 적극 권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통일 시대를 살아갈 주역들은 바로 그들이니까.

그는 20년동안 백두산만 찍었다. 자신의 사진에서 “우리는 원래 하나였다.” 는 하늘 목소리가 울려 날 때 까지. 그래서 이 사진 작업에 강산이 두 번 바뀌는 20년 세월이 필요했던 것이다.

안승일의 백두산 속으로 들어가보자.
그 백두산을 다함께 오르내려보자.
이 순백의 영혼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도록 백두산으로 난 통일의 길을 함께 걷자.


아라아트 기획 전시팀 (02)733-1981
기획홍보담당 도서출판 숨은길
대표 전사현 010-5337-7999

 
통일의 아이콘 - 백두산만 20년 찍다


1994 - 2013년까지
산사진가 안승일
백두산 촬영 20년 결산 사진전

山만한 사진이 山만큼 큰 감동을 안긴다!

 

 

 

 

            위와 같은 초대형 백두산 사진 60여점을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5개층 9개 전시실에 전시하여  
            백두산 속으로 들어온 듯한 감격을 안기는  
                한국 미술 전시 사상 유래가 없는  
              이벤트를 벌인다 



주 최: 대한산악연맹 (회장: 이인정)
주 관: 아라아트센터 (대표: 김명성)

               도서출판 숨은길(대표 전사현)
        후 원: 한국사진작가협회 (이사장 유경선)

 

기 획: 박인식 (소설가)

전시기간: 2014년 1월 20일부터 2월 18일까지
개 막 식: 2014년 1월 24일(금요일) 5:00~8:00PM 
전시장소: 아라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인사동 9길 26)

관람티켓: 일반: 5,000원, 학생.단체: 3000원
전시개요: 1층, 지하 1층~4층; 5개층 9개 전시실(3,300여m2)

▪ 초대형 백두산 풍광사진 60여점
▪ 백두산 자생식물 사진 70여점
▪ 백두산 서식 곤충 짝짓기 사진 10여점

전시문의: 아라아트 info@araart.co.kr 02)733-1981









                  

















All things shining

이진원展 / YIJINWON / 李眞元 / painting

2014_0115 ▶ 2014_0129

 

이진원_untitled_리넨에 혼합재료_38×45.5cm_201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80609b | 이진원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4_0115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일요일_12:00pm~05:00pm


갤러리 담GALLERY DAM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72(안국동 7-2번지)Tel. +82.2.738.2745

www.gallerydam.comcafe.daum.net/galleryda


이진원 작가의 작품 속의 예술, 정신성과 자연 (부분발췌) Art, Spirituality and Nature in Yi Jinwon's Works ● 한국 화가 이진원 최근 작품은 모두 예술과 정신성, 자연 상호간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작가가 그려낸 정적과 절대적 고요함에는 다분한 의도가 내제 되어있다. 작가가 그려낸 '잔잔함'과 '고요함'의 느낌은 靜 이라는 한자로 표현할 수 있다. 이진원 작가의 이 그림은, 바로 잔잔함과 고요함의 마음, 즉 합일(合一)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인 靜을 드러내는 매우 정신적인 작품이다. 이것은 장자가 齊物論이라고 이르는 것, 즉 바로 "하나도 아니면서도 둘도 아니라"고 의미하는 불교의 관념인 不一不二이다. 다시 말해, 천지만물은 상호의존적이고 서로 두루 관통한다; 장자의 나비의 꿈처럼 나비 같은 벌레조차 장자 같은 사람과 어떤 본질적인 연관이 있다. 어쩌면 이진원 작가는 온 몸으로 자연과의 밀접하고 완전한 관계를 맺으며, 이런 관계에서 앞서 말한 '잔잔하게' 고요하고 더할 수 없이 평화로운 그림들이 흘러 나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그림들은 작가의 눈이라는 하나뿐인 기관을 통한 자연의 시각의 지각적인 경험이 아니라 작가와 자연(또는 기(氣))의 상호적 존재론적 관통에서 비롯된다. 이진원 작가가 그리는 그림은 시각의 지각만으로 표현할 수 없다. 작가는 자연과의 명상적인 관계에 빠져들어 靜을 찾아내며, 이러한 풍경 속에 靜의 마음이나 상태를 드러낸다.

 


이진원_The Forest_리넨에 혼합재료_90.9×72.7cm_2013

 

이진원_untitled_리넨에 혼합재료_90.9×72.7cm_2013

 

이진원_untitled_리넨에 혼합재료_90.9×72.7cm_2013

이진원 작가는 작품 속에서 이렇게 동양의 정신적 주제를 다루면서 동양의 전통적인 필법과 한지의 독특한 물성, 동양화 안료같이 두꺼운 종이에 스며드는 먹물 등을 이용한다. . 식물들은 사이 좋은 조화 속에서, 장자의 齊物論의 뜻으로 서로 얽히거나 관통한 것이다. 이것은 혼란한 얽힘은 아니고 상호간에 공명되고 서로 호흡이 맞추어진 관통이기 때문에 식물과 길게 늘어뜨린 뿌리 주변의 물방울 조차 식물과 윗부분처럼의 끝없는 얽힘과 율동적인 춤의 결과물처럼 보이는, 길게 늘어뜨린 뿌리 주변의 작은 물방울을 둘러싸는 쾌적한 기운이 난다. 그림의 윗부분이 어떤 힘찬 상호간의 공명을 지적하는 것 같지 않는가? 이것도 역시 각종 명상이 추구하는 기운생동(氣韻生動), 자연과의 합일(合一), 어떤 완전한 연관성 등을 드러낸다. 이진원 작가는 그러한 정신적 지복을 소박하게, 우아하게, 그리고 진정성 있게 표현한다 더없이 행복한 합일감이 화면을 지배하면서 화면 사각의 가장자리를 넘쳐 우주 속으로 번져 나간다. 인류의 정신적 탐구의 진수를 이렇게 소박하게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니. 이것은 우리가 충분히 대응하지 못한, 자연 속에 존재하는 정신적 아름다움에 부치는 송가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과학기술을 위주로 하는 현대 문명에서는 자연이 우리에게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인간이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마음껏 이용하는 물건이나 되어 버린 것이다.

 


이진원_untitled_리넨에 혼합재료_72.7×90.9cm_2013

 

이진원_The forest_리넨에 혼합재료_144×111cm_2013

 

이진원_landscape_장지에 채색_162.2×130.3cm_2012

정신 세계의 위기는 인문주의를 압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서양 지식층의 정신적 갈망의 현상; 즉 함부르크나 파리, 베를린, 보스턴, 뉴욕 등 서양의 주요 도시에 스타벅스보다 명상원, 선 수련원 등이 더 많은 현상을 어떻게 설명 할 것인가) 서양 사회의 5% 내외의 소수의 사람들만 일요일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이 잘 보여 주듯이 개신교나 천주교 등 서양의 전통적인 종교는 서양인들의 정신적 갈증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서양의 현대 미술도 역시 근대 인류에게 아무런 정신적인 도움이 안 된다. 그래도 칸트가 생전의 마지막 대표작에서 말했듯이 예술은 인류의 정신적 탐구와 무관하지는 않다. "예술은 완전한 공동체을 향한 매우 기본적인 인간의 열망의 표현이다. 바로 이런 열망은 인간의 정신성을 가능하게 만드는 바탕이다." 서양의 현대 미술과 아방가르드 미술, (아서 단토가 말한) 탈역사적 미술 등은 (인간이라고 불릴 만한) 인간마다 속에 영원히 존재하는 정신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교육을 받은 서양인들이 교회는 물론, 미술관이나 비엔날레도 안 가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서양의 미술계는 완전히 자립적이고 독재적이며 주변 사회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서양 미술계의 하나인 존재 이유는 탈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업적인 책동을 하기 위해서다. 이진원 작가 같은 작가는 부패한 파리, 뉴욕, 베를린 등 이른바 국제적 미술의 중심지에 신경을 쓰지 않고, 그런 중심들의 최신 유행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자기만의 일에 몰두해 왔다. 서양의 헛된 화려함의 그림자 속에서 작가들의 꾸준한 노력은 가까운 미래에 보상을 거두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작가들의 (동양식 회화를 통한) 정신적 탐구를 담은 작품은 바로 전세계의 교양 있는 사람들이 찾는 것이다. ■ 홍가이

Vol.20140115b | 이진원展 / YIJINWON / 李眞元 / painting

 

 

 

 

희망찬 새해 벽두, 문화의 거리 서울 인사동에서 정겨운 우리 그림 ‘민화’를 주제로 한 문화잔치인 ‘제1회 대갈문화축제’가 펼쳐진다.
대갈문화축제는 평생을 민족문화 연구에 헌신하면서 특히 잠자고 있던 우리 그림 민화의 가치와 의의를 새롭게 조명한 대갈 조자용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문화축제다.

옛 민화와 현대 민화를 한 자리에서 감상하는 민화 전시회와 학술세미나, 그리고 농악과 풍물놀이 등 전통문화예술의 중요 레퍼토리로 이뤄진 다양한 부대행사가 마련됐다.

가나인사아트센터(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에서 3일 개막해 12일까지 열린다.

1층 조자용 수집 민화전, 2층 현대민화공모전 수상작 전시회, 3~4층 파인 송규태와 우리민화전, 5층 가나인사아트센터 ‘부적 특별전’과 혁필화 체험하기, 6층 한국 채색자료 전시, 전통 민화붓 전시, 민화관련 도서 전시, 민화 공예품 및 문화상품전시, 어린이민화대회 수상작 전시, 기증 민화 판매전, 영어로 민화그리기 체험 특별행사 등이 각각 열린다.


온라인 중앙일보

 

 

 

1) 전 시 명 : 김혜연 개인전 《Illusionary World In the shoes》
2) 전시 장소 : 화봉갤러리
3) 전시 기간 : 2014년 01월 22일(수) - 02월 04일(화) *01월 31일 구정 당일만 휴관

인사동 화봉갤러리(관장: 여승구)는 2014년 1월 22일(수)부터 2월 4일(화)까지 제1전시실에서 김혜연 작가의 개인전 《Illusionary World In the shoes》를 개최한다. 2007년 첫 개인전에서 구두를 모티브로 한 상상과 현실의 조형언어로 깊은 인상을 주었던 김혜연 작가는 금번 여덟 번째 개인전에서 더욱더 신비로운 내러티브와 기이한 상상력의 세계를 보여줄 것이다. 본 전시에서는 김혜연작가의 대표작인 <유리구두 시리즈>, <신데렐라 시리즈>, <일루젼 시리즈>를 비롯하여 2014년 신작 <Tears in heaven> 등 총 30여점의 작품들이 전시된다.



김혜연 작가는 10년 전부터 ‘구두’라는 상징적인 오브제로 인간의 욕망과 꿈을 표현해왔습니다. 초기 <유리구두 시리즈>에서 소녀적 감성의 장식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 속에 비밀스런 내면의 꿈을 은유해왔다면, <신데렐라 시리즈> 이후부터는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내러티브를 통해 숨겨진 욕망의 이야기를 드러내며 에칭 판화기법, 가죽위에 펜 작업, 크리스탈 오브제를 병행하면서 재료와 제작기법에 있어 다양한 표현을 시도하였다.

특히, <하비샴의 왈츠>(2009)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 『위대한 유산』에 등장하는 하비샴을 주제로 만든 곡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업으로, 결혼식에 버림받고 세상과 단절한 채 살아가는 하비샴을 유영하는 구두들로 은유하여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폼페이 유적의 벽화처럼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 my story_130x130cm_Acrylic and crystal on canvas_2013 © 강새별 


김혜연 작가는 최근의 <일루젼 시리즈>에서 구두를 중심으로 한층 더 강렬한 초현실적인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구두라는 가시적 오브제와 몽환적 색채는 공간성, 내용성, 다양성 그리고 역동성을 담아낸다. <불면 날아갈까>(2013)에서는 두 마리의 달마시안과 푸른색의 나비로 거리감을 확보하며 시각적 깊이와 가볍고 세련된 운동감으로 인해 관람자로 하여금 신비스런 구두를 더욱더 갈망하게 만든다.

이처럼 구두를 통해 보이지 않는 인간 내면의 욕망을 탐구하는 김혜연의 작업은 현실과 가상, 실재와 구의 애매모호함을 담으면서도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김혜연 작가에게 ‘구두’는 몽테뉴의 고양이처럼 사물과 관계하고 세계를 성찰하는 흥미로운 존재일지도 모른다.
 



▲ 누가 구두속 즐거움을 훔쳤을까 1-1 41x41cm Acrylic and crystal on canvas 2013 © 강새별


작가 경력
김혜연 (Kim-hye youn, b. 1981)
덕원 예술고등학교 졸업
대진대학교 미술학부 서양화전공 졸업 및 동대학원 졸업

「개인전」
2013 페이지 갤러리 초대전(더페이지갤러리, 서울)
2012 화봉갤러리 초대전(화봉갤러리, 서울)
2011 포트폴리오 공모 개인전(The K 갤러리, 서울)
2010 新데렐라와의 인터뷰 개인전 (비스트로 미오, 성남)
2009 기획공모 개인전 (대안공간도어, 서울)
2008 기획초대 개인전 (서호 갤러리, 서울)
2007 개인전 (AKA 갤러리, 서울)

「아트페어」
2013 서울 오픈 아트페어‘SOAF’-코엑스, 서울
남송 국제 아트페어 - 성남아트센터, 성남
2011 한국현대미술제-KCAF, 예술의 전당, 서울
2010 한국미술, 그 힘과 아름다움, 코엑스, 서울
2008 한국 현대미술제 -KCAF, 예술의 전당, 서울
2007 한국미술 현장과 검증 SFAS,예술의 전당 , 서울
2006 한국 현대미술제 - KCAF, 예술의 전당, 서울
2005 MINI ART FAIR - AKA 갤러리, 서울

「수상」
2011 오센스 향수그림 공모전 금상
2007 바스키아 캔버스 공모전 동상
2006 평화통일 미술대전 특선, 경기 미술대전 특선
2005 The 11th Contemporary expressions Korea young artist 입선
2004 제6회 한국미술대전 우수상
단원 미술대전 특선
경기 미술대전 특선
2003 소사벌 미술대전 우수상

[시사코리아=강새별 기자] green@sisakorea.kr , green@lullu.net

조환展 / CHOHWAN / 趙桓 / sculpture

 

 2014_0108 ▶ 2014_0209 / 월요일 휴관

 

 

조환_Untitled_스틸, 폴리우레탄_311×452×10cm_201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10612a | 조환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4_0108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학고재Hakgojae

서울 종로구 삼청로 50(소격동 70번지)Tel. +82.720.1524~6

hakgojae.com

 

 

 

自序 ●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컴프레서에 고였던 물을 빼지 않아 전기 절단기 공기 호스가 얼어붙은 핑계로 엊저녁부터 밤늦게까지 마신 술은 깨지 않고 아침부터 눈보라가 치니 당최 작업장을 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게으른 농사꾼 밭고랑만 센다더니 내가 아예 그 짝이다. 전시는 코앞으로 다가와 있고 마무리해야 할 일은 산더미 같은데 또 술을 마셨으니 후회가 막심하다. 이게 어디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쉰여섯 해를 이렇게 살아왔는데 새삼스레 반성한다고 무엇이 달라질까보냐. 그나마 이런 뻔뻔함에도 믿는 구석이 아예 없지는 않다. ● 노자가 말했다. '회오리바람은 아침나절 잠깐이요 飄風不終朝, 소나기는 하루 내내 내리지 않는다 驟雨不終日'. 노자의 말은 그 둘레가 넓다. 내 편한 대로 억지를 부려 견강부회하자면 이렇다. '의도적인 조작을 삼가자. 자연 그대로의 변화를 받아들이자. 무위 본성에 따라 만물이 운동하고 변화할진데 그것의 자기 전개에 공감하지 않고 어찌 배길 것이냐. 세상에 고착화된 불변이란 없다.' ● 알코올 분해 능력이 예전보다 떨어져 주량이 점점 줄고 숙취가 길어지는 것도 내 몸 안에서 일어난 자연스러운 변화다. 알고도 마시는 것을 두고 습習이라 할망정 '습' 또한 내 몸에 종자種子에서 싹을 틔운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게다가 나의 빈둥거림은 시간을 지우는 일만은 아니다. 무기력한 가운데 어쩌다 손에 잡히는 이런저런 책들이 뜻밖에도 예사롭지 않다. 그러다가 아무 서첩이나 펴서 임서를 해본다. 쓰고 또 썼던 것인데 어찌 그리도 새롭게 다가오는지 쓸 때마다 놀란다. 혼자 중얼거려 본다. 익숙한 것들은 덜 깨달은 새로움을 숨기고 있었구나... 새로움이란 새것이 아니라, 묵은 것에 대한 재발견이 아닐까... 깨달음의 미묘한 차이가 곧 나의 사유이자 나의 안목을 지탱하고 있구나...

 

 

 

조환_Untitled_스틸, 폴리우레탄_56×131×78cm_2013

 

조환_Untitled_스틸, 폴리우레탄_185×97×11cm_2013
 

 

그리 오래되지 않은 몇 년 전 어느 미술잡지에서 작가들에게 '내 인생에 오십 대는 무엇인가'를 물었다. 내 대답은 아마 '아직도 기다림' 아니면 '지금도 기다림'이라고 하며, 옛 그림이나 글씨를 베끼다 보면 굳이 겸손해서가 아니라 내 솜씨가 조금씩 늘고 있으며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며 언젠가 예측 못할 방법이 있을 거라 주절거린 기억이 난다. 이는 내 시야가 경직되지 않고 유연할 수 있으며 또한 내 작업이 포용하는 경계 또한 넓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이전의 작업은 민중을 축에 놓고 역사와 사회가 만든 역학 속에서 그들 삶의 양태를 종이에 모필과 수묵으로 특정한 상황이나 구체적 사건 또는 유의미한 풍경을 표출하려고 노력했다. 허나 우리의 삶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았고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말초의 감각과 표피의 실촉성實觸性이 정직하기는 했으되, 그것은 본질이 아니었다. 인간과 사회의 관계에서 구조적 모순을 환기해보려 했던 내 노력은 왠지 겉돌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면 그릴수록 갈급하기만 했던 내 몸부림은 허망한 몸짓에 머물고 있었고, 게다가 내 작업은 기능적 한계까지 드러내고 있었다. 더는 내 그림 속의 주인공을 불러낼 수 없었다. 삶은 상관相關이다. 어쨌거나 살아보는 것을 통해 삶을 이해하고 그 이해의 근거를 다시 삶에 반영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 아니던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궁극적인 물음이 내 작업의 총체적이며 전면적인 재고를 요구하게 되었다.        

 

 

조환_Untitled_스틸, 폴리우레탄_111×72×7cm_2013
 

 

뉴욕에서 5년 동안, 그림그리기와 사이를 두었다. 대신 조소에 힘을 기울였다. 어쩌면 그리기의 도피로서 만들기에 집중했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막연하게 시작했던 조소지만, 그것은 습관적으로 또는 맹목적으로 써왔던 먹의 개념을 다시 일깨워주었다. 공간에 대한 인식도 새로워졌다. 그것이 자연스레 회화에 영향을 주어 정형화된 사각이라는 틀을 깰 수 있었다. 그렇다고 서예와 옛 그림 등 고전의 세계가 어디로 가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것에 대한 나의 오랜 경도傾倒는 의식의 변방을 확장시켰다. 내용과 형식이 상호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듯이 작업의 표현 방식이 점차 달라진다는 것은 내가 삶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 그리고 미적인 직관과 감수성이 달라졌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한편으로, 지루했던 임모臨模 과정이지만 덜 깨달았던 의미를 찾아내는 즐거움도 있었다. 다만 형상의 이루어짐에 현혹되지는 않았다. 그 형상의 태동인 획劃을 보고 점點을 발견하는 일은 곧 '성불 여장(成不如將, 이루어짐은 이루어지는 것만 못하다)' 의 묘체를 체득하는 과정이었다. 본래의 지필묵이 갖고 있는 문화적 개별성을 더욱 심화시키려는 나의 내성은 내 작업의 전 과정을 명료하고 구체적으로 밝히는 실마리가 되었다.

 

 

 

조환_Untitled_스틸, LED_325×732×338cm_2013

 

 

화선지에 한 점을 찍어본다, 어릴 때 흙바닥에서 하고 놀던 땅 따먹기다. 세력이 팽팽하게 느껴진다. 연결한다. 땅을 넓혀나간다. 언뜻 바둑판이 연상된다. 검은 점과 흰 화면은 계백당흑計白當黑이다. 대립, 충돌, 만남, 화해하는 환영幻影이 보인다. 철판을 놓고 구멍을 뚫는 순간, 구멍 크기만 한 공간이 나타난다. 철판은 그냥 오브제일 뿐이다. 구멍 안의 풍경과 오브제가 만난다. 어느덧 활연관통豁然貫通 한다. 철판으로 대나무 잎을 무수히 자른다. 모양새가 제각각이다. 바야흐로 손을 예찬한다. 이는 흉죽지죽胸竹之竹이 아니다. 완성의 전체를 고려하지 않으려 한다는 게 옳은 말일 게다. 작업하는 자의 주관적인 의식이 고집부리지 않는다. 단순하고 즐거운 노동이다. 붙였다 떼었다를 반복한다. 작업이 얼추 된 것 같다. 상처투성이인 물건을 작업장 구석에 던져놓는다. 자연스레 비를 맞고 이슬을 맞으며 부식되어간다. 나는 가끔 가서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세월의 흔적이 더께처럼 쌓인다. 어느 날 먼지와 오물을 털어내고 투명 우레탄 칠을 해 더 이상의 부식을 막는다. 아니면 흔적을 지우려 검은 칠을 한다. 하지만 깊은 상처의 흔적은 감출 수가 없다. 흡사 인생의 마지막 과정을 치러내는 것 같다. 조금은 허망하다. 아니다! 허망은 허상에 집착할 뿐이다. 철이라는 물질이 얼기설기 엮어졌을 뿐이다. 훗날 그 보잘 것 없는 물건을 벽에 걸고 빛을 비추면 벽과 물건 사이의 공간에서 그림자가 생긴다. 그 그림자와 물건은 중첩되는 또 다른 선들을 만들어 내면서 서걱거리는 바람 소리를 들려준다. 한 폭의 수묵화같이 보인다. 아니, 그 물건이 오롯이 실체의 모습을 드러내었다, 나의 작업이 비로소 생성되었다. ● 그 기다림의 과정은 존재의 가치에 대한 질문인 동시에 본래의 모습(本源)인 큰 지혜의 저편 언덕으로 향하는 나룻배를 타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 말은 어렵고 글은 희미할 뿐이니 무엇으로 내 손을 대신할꼬. ■ 조환

 

 

Vol.20140103e | 조환展 / CHOHWAN / 趙桓 / sculpture

종부 宗婦 Jongbu_First daughter in law in head lineage family

백지순展 / BEKJISOON / 白智舜 / photography


2014_0114 ▶ 2014_0126

 

 

 백지순_지촌종택이순희종부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00×150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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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4_0114_화요일_05:00pm

후원 / 한국예술인복지재단

관람시간 / 10:30am~06:30pm

 

류가헌ryugaheon

서울 종로구 통의동 7-10번지Tel. +82.2.720.2010

www.ryugaheon.com

 

 

성불평등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사진 작업을 해 온 사진가 백지순의 세번째 주제인 '종부' 전이 2014년 1월 14일~26일까지 갤러리 류가헌에서 열린다. 2003년 '아시아의 모계사회'展에서 여자로서의 이상사회에 관한 기록을 보여주었고 2008년에는 한국에서의 독립적 감성을 가진 싱글우먼의 생활기록부를 보여주었다. 이번 2014년에 새롭게 보여줄 대상은 종가집 맏며느리인 종부에 관한 사진과 동영상이다. 이 전시에서는 인고의 세월 속에서도 나눔의 미학을 실천하며 전통의 줄기를 잊지 않는, 부계사회 속에서도 주체적으로 실천적 삶을 살아온 종부를 들여다 본다. ● 백지순은 마음 한켠에 넘어서야 할 것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 가정에 여전히 저며 있는 남존여비 사상으로 인한 딸과 아들의 차별, 며느리와 아들의 불평등 대우 등에 대한 문제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가정문제를 미시적 세계문제라는 관점에서 모계사회를 그 대안으로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2003년에 '아시아의 모계사회'로 개인전을 열었다. 주요 일간지에 기사가 났고 유수의 주간지와 월간지에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이후 한국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여자들에 주목하여 2008년에는 '싱글우먼_Woman in the Big League'라는 제목의 개인전을 가졌다. 싱글 우먼은 자아실현을 위해 공부나 일을 선택한 여자들이다. 인생이 매 순간의 크고 작은 선택으로 이어져 있다면 그녀들은 결혼을 위한 결혼을 선택하지 않았을 뿐이다. 결국 사회적 결혼 적령기에 자아를 구현하는 방법을 선택한 셈이다. '아시아의 모계사회'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사진계의 주목을 받았다. 기록 위주의 다큐멘타리 작업을 하는 동료 사진가들은 나의 작업을 두고 화인다큐라 불렀다. '싱글우먼'에 관한 작업을 하면서 한편 결혼에 의해서만 사회적 존립이 가능했던 시대의 여자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 때는 봉건 시대였고 사회구성체인 가정은 종부에 의해 통솔되었다. 그러자 사라져가는 종부를 기록해야겠다는 의무감이 찾아왔다. 부계사회에서 맏며느리로, 수십 년을 자신을 이루기보다는 한 가정과 가문의 그늘막이 되어준 존재가 종부가 아닌가. 요즘 대부분 종손은 집안의 얼굴로 잘 교육받고, 잘 교육된 여자를 만나, 괜찮은 연봉의 직업을 얻어 도시에서 거주한다. 그러니 젊은 종부는 그 명맥은 잇겠지만 그 역할에 있어서 어머니 대의 것과는 같을 수 없다. ● 종부란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하는 전통적인 대가족제도에서 종손을 기반으로 하는 문중의 대표적인 대가족인 종가의 안주인을 의미한다. 종부의 덕목은 봉제사접빈객으로 4대조의 기제사와 불천위제사를 모시며 불시에 찾아온 친인척에게 밥상을 차려내는 것이다. 비단 친인척뿐만이 아니라 먹고 살길이 없는 걸인에게까지 밥한술 봉양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종부는 하루가 빠듯한 현대사회에서 제례로써 조상을 받드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실천하는 살아있는 무형문화재이기도 하다. 종부로 인하여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는 살아 숨쉬고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백지순은 전통의 맥의 한 축을 현대사회에서도 꿋꿋하게 지켜나가고 있는 이러한 종부의 모습을 지난 2007부터 2013년에 걸쳐 심도 있게 담아내고 있다. 밀도 있고 신중한 그녀의 작업은 이미 2008년에 강원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으며, 이번 전시에서는 비디오작업으로까지 작업의 영역을 확대시켜나갔다. 스틸사진에서는 종부와 종택인 공간의 조화롭고 적절한 배치를 통하여 종부의 삶을 은유적진 표현을 추구하였으며, 동영상작업에서는 종부의 의연한 모습과 고된 일상을 생생하게 담아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

 

 

 

백지순_학봉종택이점숙종부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00×150cm_2012

 

 

백지순_석계종택조귀분종부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00×150cm_2013

 

                                                            백지순_갈암종택김호진종부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52×78cm_2013
 

종부(宗婦): 우리시대 마지막 숭고한 초상 ● 백지순 작가는 현대 여성들의 당당한 삶과 정체성을 다큐멘터리로 작업해 왔다. 『아시아의 모계사회』(2003)는 순수하지만 강인한 모계사회의 부족을, 『싱글 우먼』(2008)에서는 성공한 '골드 미스'들의 삶에 내면화된 사회적인 편견과 잠재적으로 지속되는 가부장적 질서를 독신녀들의 애매한 표정과 불안한 시선으로 포착하였다. 반면에 무형문화재 기록화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작가의 우리시대의 『종부』연작은 부계중심의 전통적인 대가족 공동체의 유대와 친화를 위해 중추적인 역할을 해온 여러 문중의 종부들을 기념사진의 맥락으로 기록한 것이다. 작가는 종부들을 페미니스트의 저항적인 시선으로 남녀 성(性)차로 차별 받은 가부장제의 희생양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점점 사라져가는 전통적인 미풍양속을 지키며 종손과는 또 다른 문중의 중심축으로서 박식한 생활지식, 당당한 리더십, 후덕한 포용력을 겸비한 전문직을 실천하는 종부의 '경계지울 수 없는 또 다른 모습'을 기록한 것이다. ● 이상사회 구현을 위해 조선왕조의 통치체제였던 유교의 조상숭배, 남녀유별, 장유유서와 같은 도덕규범들은 한국 근대사회의 가부장제 원리가 되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와 산업구조의 변화, 부부중심의 핵가족 이념의 수용, 페미니즘 운동에 따라 남성 중심의 부계가족 원리가 약화되고 가부장적 성별 분업의 명확한 경계도 해체되었다. 탈근대사회에서 '가족'이란 핵가족, 일인가족, 다민족가족처럼 점차 다원화, 다양화되어 가고 있어 더 이상 획일적으로 규정될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가사와 자녀 교육은 여성의 책임 비율이 높다. 특히 유교를 이념으로 한 가부장적 대가족 제도에서 종부는 숙명적으로 조상 제례를 비롯한 문중의 접객처럼 가족 공동체를 위한 의무와 책임을 갖는다. 그렇지만 작가는 종부들의 책임감 있는 행동이 '단순한 가사 노동 너머 하나의 '직업'이 될 수 있음을 발견하였다. 즉 아내, 며느리, 어머니와 같은 다중적인 모습으로 구조화 되어가는 종부의 정체성 외에 문중을 위한 과중한 업무가 단순한 가사노동이 아니라 가족공동체 간의 화목을 위한 사회적 행위로 기록한 것이다. 작가는 엄정한 기념사진의 방식으로 사라져가는 전통문화의 미풍양속을 적극적으로 실천해 온 종부의 무형문화재적 가치를 種宅의 안채, 사당채, 안마당, 뒷마당을 배경으로 카리스마 넘치는 기품으로 가시화 하였다. ● 우리사회에서 근대가족의 형상은 서구와는 달리 근대적 요소와 전통적 요소가 공존하기 때문에 핵가족화의 이상화보다는 가부장적 전통이 잔존한다. 종부는 전통적인 미덕을 살려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재생산되는 성별 위계를 간과하거나 은폐하는 것을 지연시킨다. 근대사회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여성의 가사노동을 무가치하고 사적인 것으로 치부하여 왔기 때문에 여성운동가들은 헌신적인 모성신화를 상품화한 이미지의 허구성을 해체하고 여성들의 주체적 경험을 강조해 왔다. 그런데 작가가 더 나아가 종부들이 실천하는 기제사, 봉제사(奉祭祀)를 자기희생적인 가사노동으로 보지 않고, 자기주도적인 또 다른 사회활동임에 주목하게 해준다. ● 가계의 혈통만큼이나 오래된 역사를 입증하는 고색창연한 種宅에서 정갈하게 정돈된 가재도구, 식재료와 함께 당당하고 여유 있는 모습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종부들의 모습에서 남성적인 기백과 단호함은 물론 여성적인 단아함이 잘 조화되어 경계지울 수 없는 초상과 마주하게 된다. 다시 말해 백지순은 종부들에게서 남성의 사회적인 노동에 비해 차별받았던 여성의 주변적인 역할 넘어 전통적인 대가족제도의 사회적 가치를 발견하게 해준다. 따라서 우리시대의 『종부』는 유교의 가부장적 규율로 구조화된 모습이라기보다는 '우리시대 마지막 숭고한 초상'이라 할 수 있다. 강인하고 당당한 풍채에 내재화된 '명확히 규정하고 한계지울 수 없는 힘'은 오랜 시간 기제사의 책임에 따른 노고, 대가족과의 갈등과 긴장을 지혜롭게 극복해온 결과물일 것이다. ● 작가는 우리시대의 『종부』 작업을 통해 탈근대사회가 주장해 온 다원주의의 외침 속에서 점점 해체되어 가는 가족 공동체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현대 사회에서 가족의 의미와 기능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해준다. 아울러 조상숭배, 대가족의 연대와 화목을 위해 부단히 실천해 온 '종부'의 대내외적인 활동이 지닌 미풍양속의 의미를 되새기며 새롭게 인식되고 보존해야 할 전통문화의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하게 해준다. ■ 김화자

 

 

백지순_춘우재종택조동임종부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52×78cm_2013

 

백지순_김윤기가옥심순옥종부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52×78cm_2008

 

                                                      백지순_병곡종택박규임종부_아카이벌피 그먼트 프린트_52×78cm_2012
 

 

나는 왜 종부를 기록하게 되었는가? 어렸을 적 외할머니께서는 식구들의 밥을 다 푸시고는 한 켠에 또 한 무리의 밥을 재워두셨다. 그것은 언제 찾아올지 모를 손님과 걸인에게 줄 밥이었다. 어렸을 적엔 집집마다 할머니들은 다 그렇게 하시는 줄로 알았는데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외할머니는 소종가의 종부셨기 때문에 그리하셨던 것이다. ● 종부의 덕목 중의 하나가 접빈객 接賓客으로 일가친척이 언제 어느 때 예고없이 찾아와도 기쁜 마음으로 따뜻한 밥상을 차려내어야 했으며 거기서 더 나아가 연고도 없는 걸인이 걸식을 원할 때도 밥과 반찬을 내어 주었다. 그러면 종부는 부잣집 맏며느리라서 그리한 것인가? 물론 부잣집도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중류층 정도의 외갓집에 시집오신 외할머니는 "먹을 것 다 먹고 언제 남을 도와주겠느냐?" 하시며 항상 밥을 한 쪽에 남겨 두셨다. ● 종부의 덕목 중의 또 다른 하나는 봉제사 奉祭祀 이다.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우리 집에는 항상 약과나 강정과 같은 전통과자 등이 끊이질 않았다. 우리집엔 기제사만 일년에 아홉번이었다. 그런데 안동을 중심으로 경북지역의 종부들을 만나보았더니 기제사만 열두번 이상이다. 이쯤되면 종부는 직업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 같다. ● 종부는 산업자본주의시대의 해체된 가족제도 속에서도 여전히 신앙처럼 받들어지고 있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제례로써 조상을 받드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실천하는 살아있는 무형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가족 공동화 속에서도 우리가 지니고 있는 아름다운 전통을 잘 가꾸며 꿋꿋하게 종부의 덕목을 실천해 나가는 강인한 여성의 또 다른 이름, 종부를 소중히 기록하여 후손이 본받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 백지순 

 

     

Vol.20140114a | 백지순展 / BEKJISOON / 白智舜 / photography


 

한국 아날로그의 현재

한국근대사진과 현대사진의 만남 Ⅱ展

2014_0110 ▶ 2014_0304 / 월요일 휴관


 

정해창_뒷모습여인_젤라틴 실버 프린트_1995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2014_0110 ▶ 2014_0128

참여작가 / 정해창_구본창

 

2014_0206 ▶ 2014_0304

참여작가 / 서순삼_민병헌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트렁크갤러리

TRUNK GALLERY

서울 종로구 소격동 128-3번지Tel. +82.2.3210.1233

www.trunkgallery.com

 

2014년 트렁크갤러리는 이제 7주년을 맞는다. 앞만 바라보며 Contemporary Art 만으로 사진의 현재를 대변하겠다는 트렁크갤러리의 의지가, 오늘 여기에 이렇게 이르게 되었습니다. 지난 7년을 뒤돌아보면서 미술시장이 갖는 사진에 대한 편견과 몰이해에 도전하겠다는 그 의지의 미숙함에 스스로 부끄럽지만, 그 겁 없음으로서 오늘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아직 할 일들이 많아 기쁘게 생각한다. 2013년에 이어『한국 근대사진과 현대사진의 만남』展, 그 두 번째 전시를 또 진행하게 되었다.『한국 아날로그사진의 현재』라는 소주제로 사진 3세대, 구본창과 민병헌의 아날로그 프린트 사진전을 기획하였다. 한국미술시장에서 아날로그사진의 컬렉션문화, 그 싸늘함의 원인을 잘 모르지만 그래도 그 이유를 찾아내 보려 한다. 그 간 "Contemporary Art"로의 사진과 우리시대의 PhotoArtist들에 대한 지지와 지원만이 관심이었던 트렁크갤러리가 아날로그 프린트의 소중함을 호소하고 새롭게 관심을 모아보기 위해서다. 급속한 사진산업의 디지털 프로세스화된 오늘, 아날로그로 프린트된 여러 작가들의 작품들에 대한 소중함을 새롭게 일깨워 내는 것도 트렁크갤러리의 할 일 같아서다. 사진선배들의 Photo Art Work을 재조명 한다는 것, 우리시대의 아날로그 PhotoArt Work들을 선보인다는 것, 다시 말해 우리의 사진1세대와 사진2세대를 거처 사진3세대로 불리는 작가 두 분의 작품, 아직도 아날로그작업을 꾸준히 해 온 바로 사진3세대 두 분의 Art Work을 자랑하며 1세대와 3세대의 만남 전을 하려 한다. ● 어제는 오늘의 표본이다. 어제 없이 오늘을 이루어 낼 수 없었다는 것 그 것은 너무 당연한 생각이다. 그 것은 1세대사진가들이 당대에 어떠한 상황에서 작업해 왔는가를 살피며, 이제 3세대는 그들과 어떻게 다른 사유체계 갖고 있는지를 살피며 그 차이들을 비교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할 것 같아서 이다. 이 차이의 비교는 오늘의 과제를 새롭게 받아들이는데 또 다른 창의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들의 선배인 1세대들은 오늘에 비해 모든 것이 풍부하지 못하였지만 당대에 최대의 창의력 주체들 이였다. 부단한 노력으로 풍성하지는 못하나 극한 의 노력으로 해 낸 작업들일 것이다. 그런데 그 작품들이 제대로 보존되어지지 못해 겨우 일부만의 유작이 보존되어 있다는 것만을 다행으로 감사 할 뿐이며, 또 그 시대 창작활동이 어떠했나를 감지 해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도 미처 인식하지 못해 오늘의 컬렉션문화에서 소외 되어지고 있는 아날로그사진 그 Photo Art Work들을 자랑하고 싶다. 우리의 근대사가 복잡했었기에 1세대의 작업이 잘 보존되지 못 했음을 반성하며 아날로그사진들을 위한 보존의 소중함을 더더욱 강조하며 컬렉션문화에 새로운 과제, 바로 "한국 아날로그사진의 현재"가 바르게 소통되어지기를 희망 한다. ● 오늘 사진산업은 아날로그사진을 위한 모든 미디어들이 완벽하게 무너져 가고 있다. 필름도, 인화지도 그리고 약품들까지 그 생산이 미미하다. 우리들에게 오늘의 디지털이미지시대를 가능하게 한 바로 그 아날로그이미지로의 미디어들에 대해 감사와 예찬을 말 해 보지도 못한 체 묻혀버릴 것만 같아 트렁크갤러리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할 생각이다. 한국의 모던한 Photo Artwork들이 아직도 각 작가들의 Photo Box에서 깊은 잠을 자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다. 세계적 옥션들에서는 아날로그사진의 컬렉션이 활발하다. 그런데 우리 미술시장의 컬렉터들은 잠잠하다. 이해가 부족해서 인지 반응이 너무 냉랭하다. 수공이미지로의 회화에 대응해 발명된 화학이미지로의 아날로그사진, 그에 대한 예찬이 있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갈 길, 그 앞이 안보인다. "한국 아날로그사진의 현재"라는 전시는 그래서 또 다른 도전이 된다. ● 트렁크갤러리는 2013년 1월에 민충식과 현일영에 강운구와 주명덕을 조우 시켜내었다. 한국사진 1세대가 어떤 2세대를 배출 해 냈었나를 살폈던 것 이다. 이제 2014년 1월은 정해창과 구본창의 "정물"에 대한 사유의 비교와 작업의 형식차이를 살펴볼 수 있고, 2월은 서순삼과 민병헌의 '누드'에서도 역시 서로 다른 두 세대가 여성의 몸에 대하는 사유와 작업의 형식의 비교는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사진작품을 아직도 아날로그프린트를 고수하는 작가 구본창과 민병헌은 작업의 본질, 내용과 이미지로의 효과를 위해서 아날로그 인화지가 주는 그 깊은 맛을 포기할 수 없다고 고집한다. 이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 져 하는 '멋'을 그래서 더 자랑하고 싶다. 지금 오늘의 현실에서 너무나 귀한 아날로그사진. 그 컬렉션에 대한 바른 질문을 유도하려는 의도에서 이기도 하다. ■ 박영숙

 

 

구본창_Breath 01_젤라틴 실버 프린트_1995

 

 

구본창_Object 07-1-C_젤라틴 실버 프린트_2004

 

2014 / 01. 정해창 : 구본창의 '정물'사진 조우 ● 트렁크갤러리에서 2014년 1월전으로는 정해창의「인형의꿈 (1),(2)」그리고「정물 (1),(2)」를, 구본창의「정물」시리즈를 조우시켜 내려 한다. 정물이란 본래 한 개인이 한 사물에 대한 사유에서 시작된다. 작가가 그 오브제에서 느끼게 되는 어떤 상징적 너레이티브를 읽어 내어, 그 이야기를 이미지로 표현 해 내고 싶은 충동이 곧 '정물'작업이다. 그 대상과의 사유에서 말 하지 않는 대상의 이야기를 들여다 보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또 다르게는 작가의 정신세계나 은밀한 내면세계를 반영하듯 그 작가와 작품이 등가적으로 느껴지는 은밀함이 정물사진의 큰 묘미로 흥미로운 지점이다. 우리민화들에서 활용되는 오브제들은 기원의 상징체계로 이미 깊게 자리 맥임 하고 있음도 미학적 관점에서 받아드릴 수 있어 '정물'작업의 본질을 읽게 한다. "...예술사진 운동시대(1920~1940)의 작가 정해창의 작업은 "우리문화가 온통 외래문화홍수에 허우적 거릴 때 사진을 통해서 진정 우리체질에 맞는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실험하고 표현하려 애썼다..." (박주석, 새롭게 태어난 근대작가 5인의 사진세계 한미출판 글에서) ● 정해창의 "인형의 꿈"은 그 시대의 불가능을 가능으로 읽어내려 한 정해창의 꿈, 그 것 이었다 싶다. 반면 구본창의 '정물' 시리즈는 그가 유럽유학시절 만났던 벼룩시장의 오브제들로 작가의 정서, 또는 그 감각반응을 읽어내게 한다. 작가 만의 내면세계, 그 비밀스러운 세계를 캐어 내 볼 수 있어 더욱 흥미로울 수 있어 즐겁다. "죽음 앞에 힘겨워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며 '숨'이라는 단어를 떠 올렸다. 나는 사멸 될 수 밖에 없는 모든 것들을 기리며, 이 시리즈를 제작했다. 스페인 여행 중 벼룩시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시계, 망가진 시계이지만 그 가냘픈 시계바늘이 내 시선을 끌었다." (구본창)

 

서순삼_누드_젤라틴 실버 프린트_1950년대

 

2014 / 02. 서순삼 : 민병헌의 '누드'사진 조우 ● 서순삼 선생님은 1903년 생으로 1928년 평양사진조합을 창설하고 서울에 결성된 경성사지협회의 회원들과 교류를 활발히 했었다. 1930년에 평양에서 개인전을 한, 그는 정해창 다음으로 그 시대에 개인전을 한 작가였다. "많은 작품이 지금 보존 되어지지 못해,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없어 안타깝다. 릴리프기법 또는 고무인화기법, 브롬오일 인화들 다양한 사진기법적 실험을 많이 한 작가로 직업적으로는 저널리즘을 추구하였지만 예술사진에 많은 실험들을 한 기록이 남아있고, 그의 작품세계를 대변하는 이곳 저곳에서 발견되어 서순삼의 작품세계를 대변하고 있다..." (박주석, 새롭게 태어난 근대작가 5인의 사진세계 한미출판 글에서) ● 서순삼의 '누드'와 민병헌의 '누드' 그 조우는 또 다른 차원, 사진예술에 대한 그 맥락은 다양하다. '누드'란 남성사진가들이 제일 좋아하는 작품 소제이다. 여성을 대상화 한 오브제로의 전통 또한 회화에서나 사진에서 그 양상은 다양 하다. 여성의 몸이 벗겨진다는 것은 남성들에게는 섹스에 대한 호기심에 기초하여 발생하기에 그 형식도 서로 차이가 많다.

 

민병헌_74MG187 BHM_젤라틴 실버 프린트_2010

 

민병헌_MG247 BHM_젤라틴 실버 프린트_2010

 

그런데 오늘날에는 여성의 몸, 그 것, 몸이라고 하는 대상은 같지만 'Nude' 와 'Naked'의 언어적 개념은 미학적 차이를 크게 다른 맥락으로 읽게 한다. "누드(Nude)"가 여성의 몸을 대상화 한, Sexuality와 관계 맺고 있다면. 옷을 벗은 '여체' "Naked Bod"는 Sexuality 와 관계 맺기 보다는, 몸을 통한 성 정체성이거나 정신에 대한 육체를 말하려 하는 몸, 그 몸 담론의 장 으로의 기능하는 미학적 태도로 읽히게 하는 그 차이가 크다. 두 사진가 '서순삼'의 '누드'는 다분히 여체를 탐하는 남성의 시각이 분명한데 비해, '민병헌'의 '누드'는 여체의 조형성과 그 몸에서 묻어나는 표현의 수단, 몸을 통한 감성적 표현에 호소함이 더 강하다. "...민병헌의 '누드'는 신체가 아니라 피부가 중요하다. 피부가 대지처럼 펼처져 있거나 공기처럼 흐르고 있는 사이사이에 체모나 유두가 자리하고 있다. 섬세한 피부의 질감이 더 잘 보이도록 톤을 조율했다..." (박영택, 열화당 출간 민병헌 책 글에서) ● 두 작가의 삶의 시대가 다르므로 여체에 대한 관심과 여체를 통해 표현되어짐의 그 차이가 우리들의 사유체계와 사유의 실체로 들어나, 그 다른 지점을 만날 수 있어 참 좋은 조우의 표본이었다. 두 작가 모두가 여성을 생각하는 방식, 그 여성의 몸을 다르게 읽는 차이에서 'Nude' 와 'Naked'의 그 차이를 밝힐 수 있는 이 기회 또한 좋았다. ■

      

Vol.20140110e | 한국 아날로그의 현재-한국근대사진과 현대사진의 만남 Ⅱ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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