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환展 / CHOHWAN / 趙桓 / sculpture

 

 2014_0108 ▶ 2014_0209 / 월요일 휴관

 

 

조환_Untitled_스틸, 폴리우레탄_311×452×10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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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4_0108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학고재Hakgojae

서울 종로구 삼청로 50(소격동 70번지)Tel. +82.720.1524~6

hakgojae.com

 

 

 

自序 ●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컴프레서에 고였던 물을 빼지 않아 전기 절단기 공기 호스가 얼어붙은 핑계로 엊저녁부터 밤늦게까지 마신 술은 깨지 않고 아침부터 눈보라가 치니 당최 작업장을 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게으른 농사꾼 밭고랑만 센다더니 내가 아예 그 짝이다. 전시는 코앞으로 다가와 있고 마무리해야 할 일은 산더미 같은데 또 술을 마셨으니 후회가 막심하다. 이게 어디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쉰여섯 해를 이렇게 살아왔는데 새삼스레 반성한다고 무엇이 달라질까보냐. 그나마 이런 뻔뻔함에도 믿는 구석이 아예 없지는 않다. ● 노자가 말했다. '회오리바람은 아침나절 잠깐이요 飄風不終朝, 소나기는 하루 내내 내리지 않는다 驟雨不終日'. 노자의 말은 그 둘레가 넓다. 내 편한 대로 억지를 부려 견강부회하자면 이렇다. '의도적인 조작을 삼가자. 자연 그대로의 변화를 받아들이자. 무위 본성에 따라 만물이 운동하고 변화할진데 그것의 자기 전개에 공감하지 않고 어찌 배길 것이냐. 세상에 고착화된 불변이란 없다.' ● 알코올 분해 능력이 예전보다 떨어져 주량이 점점 줄고 숙취가 길어지는 것도 내 몸 안에서 일어난 자연스러운 변화다. 알고도 마시는 것을 두고 습習이라 할망정 '습' 또한 내 몸에 종자種子에서 싹을 틔운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게다가 나의 빈둥거림은 시간을 지우는 일만은 아니다. 무기력한 가운데 어쩌다 손에 잡히는 이런저런 책들이 뜻밖에도 예사롭지 않다. 그러다가 아무 서첩이나 펴서 임서를 해본다. 쓰고 또 썼던 것인데 어찌 그리도 새롭게 다가오는지 쓸 때마다 놀란다. 혼자 중얼거려 본다. 익숙한 것들은 덜 깨달은 새로움을 숨기고 있었구나... 새로움이란 새것이 아니라, 묵은 것에 대한 재발견이 아닐까... 깨달음의 미묘한 차이가 곧 나의 사유이자 나의 안목을 지탱하고 있구나...

 

 

 

조환_Untitled_스틸, 폴리우레탄_56×131×78cm_2013

 

조환_Untitled_스틸, 폴리우레탄_185×97×11cm_2013
 

 

그리 오래되지 않은 몇 년 전 어느 미술잡지에서 작가들에게 '내 인생에 오십 대는 무엇인가'를 물었다. 내 대답은 아마 '아직도 기다림' 아니면 '지금도 기다림'이라고 하며, 옛 그림이나 글씨를 베끼다 보면 굳이 겸손해서가 아니라 내 솜씨가 조금씩 늘고 있으며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며 언젠가 예측 못할 방법이 있을 거라 주절거린 기억이 난다. 이는 내 시야가 경직되지 않고 유연할 수 있으며 또한 내 작업이 포용하는 경계 또한 넓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이전의 작업은 민중을 축에 놓고 역사와 사회가 만든 역학 속에서 그들 삶의 양태를 종이에 모필과 수묵으로 특정한 상황이나 구체적 사건 또는 유의미한 풍경을 표출하려고 노력했다. 허나 우리의 삶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았고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말초의 감각과 표피의 실촉성實觸性이 정직하기는 했으되, 그것은 본질이 아니었다. 인간과 사회의 관계에서 구조적 모순을 환기해보려 했던 내 노력은 왠지 겉돌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면 그릴수록 갈급하기만 했던 내 몸부림은 허망한 몸짓에 머물고 있었고, 게다가 내 작업은 기능적 한계까지 드러내고 있었다. 더는 내 그림 속의 주인공을 불러낼 수 없었다. 삶은 상관相關이다. 어쨌거나 살아보는 것을 통해 삶을 이해하고 그 이해의 근거를 다시 삶에 반영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 아니던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궁극적인 물음이 내 작업의 총체적이며 전면적인 재고를 요구하게 되었다.        

 

 

조환_Untitled_스틸, 폴리우레탄_111×72×7cm_2013
 

 

뉴욕에서 5년 동안, 그림그리기와 사이를 두었다. 대신 조소에 힘을 기울였다. 어쩌면 그리기의 도피로서 만들기에 집중했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막연하게 시작했던 조소지만, 그것은 습관적으로 또는 맹목적으로 써왔던 먹의 개념을 다시 일깨워주었다. 공간에 대한 인식도 새로워졌다. 그것이 자연스레 회화에 영향을 주어 정형화된 사각이라는 틀을 깰 수 있었다. 그렇다고 서예와 옛 그림 등 고전의 세계가 어디로 가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것에 대한 나의 오랜 경도傾倒는 의식의 변방을 확장시켰다. 내용과 형식이 상호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듯이 작업의 표현 방식이 점차 달라진다는 것은 내가 삶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 그리고 미적인 직관과 감수성이 달라졌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한편으로, 지루했던 임모臨模 과정이지만 덜 깨달았던 의미를 찾아내는 즐거움도 있었다. 다만 형상의 이루어짐에 현혹되지는 않았다. 그 형상의 태동인 획劃을 보고 점點을 발견하는 일은 곧 '성불 여장(成不如將, 이루어짐은 이루어지는 것만 못하다)' 의 묘체를 체득하는 과정이었다. 본래의 지필묵이 갖고 있는 문화적 개별성을 더욱 심화시키려는 나의 내성은 내 작업의 전 과정을 명료하고 구체적으로 밝히는 실마리가 되었다.

 

 

 

조환_Untitled_스틸, LED_325×732×338cm_2013

 

 

화선지에 한 점을 찍어본다, 어릴 때 흙바닥에서 하고 놀던 땅 따먹기다. 세력이 팽팽하게 느껴진다. 연결한다. 땅을 넓혀나간다. 언뜻 바둑판이 연상된다. 검은 점과 흰 화면은 계백당흑計白當黑이다. 대립, 충돌, 만남, 화해하는 환영幻影이 보인다. 철판을 놓고 구멍을 뚫는 순간, 구멍 크기만 한 공간이 나타난다. 철판은 그냥 오브제일 뿐이다. 구멍 안의 풍경과 오브제가 만난다. 어느덧 활연관통豁然貫通 한다. 철판으로 대나무 잎을 무수히 자른다. 모양새가 제각각이다. 바야흐로 손을 예찬한다. 이는 흉죽지죽胸竹之竹이 아니다. 완성의 전체를 고려하지 않으려 한다는 게 옳은 말일 게다. 작업하는 자의 주관적인 의식이 고집부리지 않는다. 단순하고 즐거운 노동이다. 붙였다 떼었다를 반복한다. 작업이 얼추 된 것 같다. 상처투성이인 물건을 작업장 구석에 던져놓는다. 자연스레 비를 맞고 이슬을 맞으며 부식되어간다. 나는 가끔 가서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세월의 흔적이 더께처럼 쌓인다. 어느 날 먼지와 오물을 털어내고 투명 우레탄 칠을 해 더 이상의 부식을 막는다. 아니면 흔적을 지우려 검은 칠을 한다. 하지만 깊은 상처의 흔적은 감출 수가 없다. 흡사 인생의 마지막 과정을 치러내는 것 같다. 조금은 허망하다. 아니다! 허망은 허상에 집착할 뿐이다. 철이라는 물질이 얼기설기 엮어졌을 뿐이다. 훗날 그 보잘 것 없는 물건을 벽에 걸고 빛을 비추면 벽과 물건 사이의 공간에서 그림자가 생긴다. 그 그림자와 물건은 중첩되는 또 다른 선들을 만들어 내면서 서걱거리는 바람 소리를 들려준다. 한 폭의 수묵화같이 보인다. 아니, 그 물건이 오롯이 실체의 모습을 드러내었다, 나의 작업이 비로소 생성되었다. ● 그 기다림의 과정은 존재의 가치에 대한 질문인 동시에 본래의 모습(本源)인 큰 지혜의 저편 언덕으로 향하는 나룻배를 타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 말은 어렵고 글은 희미할 뿐이니 무엇으로 내 손을 대신할꼬. ■ 조환

 

 

Vol.20140103e | 조환展 / CHOHWAN / 趙桓 / sculp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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