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영섭, '장안산'

호남정맥의 비경을 찾고자 7년 동안 지리산, 덕유산, 내장산, 변산 등 4곳과 도립공원과 군립공원을 찾아 집중 촬영하여 자연의 아름다움을 재조명하는 산악사진가 엄영섭의 사진전이 4월 23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제1전시장에 마련된다.

작가는 현대적인 장비가 아닌 필름을 이용하는 아날로그 카메라를 고집스럽게 사용하여 촬영을 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인해 초월적 빛이 감각에 들어와 자연의 빛을 어떻게 읽어내야 할지 정체성도 찾지 못하고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경우가 나타나기도 한다.

엄 작가는 "그저 절기와 기후에 따라 산의 모습이 미묘할 때 사진이라는 언어로 산을 촬영했고, 기를 찍어 내고 싶었지만 어려운 과제로 남게됐다"며 같은 산을 50여 차례 올랐지만 찾고자 하는 장면을 발견하지 못해 미완성작이 남은 것에 대한 아쉬움도 전했다.

▲ 엄영섭, '만덕산'.

 


 

엄영섭이 촬영한 호남정맥은 백두대간인 함양 백운산 아래 영취산(靈璻山 해발1,076m)에서 금남정맥과 함께 출발하여 장안산(長安山 해발1,237m)을 발원지로 장수를 지나 진안·완주 주화산에서 금남정맥과 나뉘어 임실, 정읍, 장성, 담양, 순창을 들러 곡성, 광주, 화순, 순천, 장흥, 보성, 광양 백운산에서 호남정맥이 마무리된다.


 

이번 전시에는 장안산, 팔공산, 천상데미, 삿갓봉, 마이산, 부귀산, 주화산, 만덕산, 오봉산, 고당산, 내장산, 강천산 등이 집중적으로 카메라에 담겼다.


 

한편, 엄영섭 사진가는 서울에서 전시를 29일까지 진행하고, 5월 1일부터 8일까지 전주시 덕진구 전북교육문화회관 1층 전시실에서 전시를 이어간다. 또 전시기간  산 사진집 '산에서 사노라네'를 함께 발간해 7년간의 고행의 흔적을 선보인다.

 

 


▲ CNB뉴스 왕진오 기자

김성로 개인전(아리수갤러리 개관 특별초대전)

전시기간 : 2014. 4. 23 – 4. 29
초대일시 : 2014. 4. 23 pm 5:00

(한국영상문학협회 시낭송)

찬조출품 / 권효정, 김교선, 김미희, 문효정, 박병훈,
               변은아, 이재필, 이희돈, 정영모, 최찬식,


 여인, 130.3×97cm, Cardboard, acrylic on canvas. 2014

 

  나의 작업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은 수많은 그림 조각들이 모자이크로 나열되어 있다. 그것은 나의 작업에 보이는 형상뿐 아니라 여러 가지 느낌과 사유, 꿈이나 추억, 감정 등을 모두 담아내고 싶기 때문이다.

하나의 주제를 정하면 그에 따른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들을 마인드맵(mind map)으로 정리하여 각각 작은 조각에 그린 후 전체를 조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작은 부분들은 큰 주제와 어울리지 않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전체로 조합하면 그 다양성이 통일된 조화로 보인다 

  세상은 작은 부분들이 서로 연결된 하나이다. 하나의 나무, 하나의 인간, 하나의 꽃, 하나의 풀잎, 하나의 세상……. 그 하나하나가 모여 이루어진 세상은 내부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집합체다. 따라서 나의 그림도 작은 세포들처럼 작은 형상들이 모여 하나의 주제를 형상화하고 있다 

  작업의 출발은 나의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다. 그림 그리는 행위를 통하여 존재의 의미를 추구한다.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사유와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 내 작업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나의 작품이 행복한 삶을 위한 치유로서의 미술이 되기를 항상 바라고 있다. - 작가 노트

 

인생, 130.3×97cm, Cardboard, acrylic on canvas. 2014

 

 

영원한 시 (Poetry)를 쓰는 화가 김성로

 

미술평론 / 손소운孫素雲

 

  지금까지 김성로 작가는 평면분할구도라는 연상기법에서 주로 일관된 작업을 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만난 그의 작품은 새로운 입체분활구도의 그림이라는 데서 그의 의식의 변화, 즉 새로운 조형적 언어의 함축성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림이란 세상과 인간을 관류하고 있는 상관관계를 정립하고 모색하는 작가의 의식과 시대의 환경을 반영하고 있는 작가의 삶과 정신을 담고 있다. 그런 면에서 상하, 좌우로 수평과 수직적 개념에서의 분할구도의 입체화는 등분화되어 안정감을 주는 한편 긴장감을 느끼게 하여 작품에서 반드시 표출해야 하는 분명한 에너지의 발산을 읽을 수 있어 갈채를 드리고 싶다. 그림에서의 모양, 색깔, 요소의 위치 모두 깔끔하고 섬세한 감정과 사유가 잘 나타나 있다. 여기서 작가는 무엇을 그린 것일까? 라는 개체적 상상력은 보는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두기까지 하고 있다. 이러한 상상력을 보는 사람들에게 남긴다는 것은 작가와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사이에 가로 놓인 친숙한 참여적 의미며 예술적 상관관계다.

 

존재의 의미 Meaning of existence, 121.2×72.7cm. Cardboard, acrylic on canvas. 2014

 

  특히 김성로 화백의 그림을 일관되게 관류하고 있는 것은 사물에 반응하는 회화적 상상과 인간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은유적 감성들이 섬세하게 분할되고 있는 다양한 그림 장면들이다. 잘게 모자이크되고 있는 그 많은 그림 장면들 속에는 자신의 어린 시절로부터 그가 꿈꾸어 오던 영원에 이르고 싶었던 사랑과 행복을 포함한 마음과 생각들이 한 편 한 편의 동화와 같은 아름다운 시적 사유로 조형화되고 있다.

  김성로 화백의 그림이 갈수록 조형의 실험성에 새로운 변모를 실현하려는 의지 그리고 바탕의 조형성에 스며드는 시적인 뉘앙스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그가 시적인 우화적인 이야기들을 조형화하려는 문학적이고 시적인 요소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그의 전 생애를 관통하고 있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흐릿하지만 너무나 또렷하게 다가오는 시적 꿈과 이상의 이원적인 가시적 색채감과 가지적인 생각과 정신 또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Steven Jobs, 150×110cm, Cardboard, acrylic on canvas. 2014

 

  사람들은 눈과 마음으로 세상의 사물을 바라보면서 은유와 직유 또는 수사적 아름다움을 경탄하고 찬미하고 감상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사고와 의식과 예술적 생각을 통해서 자연과 사물이 서로 관계되고 있는 조형적 이미지를 구현해 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인들과 다른 작가만의 의식은 인간의 삶을 통해서 의식화되고 있는 조형의 구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동시에 해 본다. 작가의 특징적 구도의 시각화를 통해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살아있는 생명력을 표현하고자 한 것인 만큼 이에 상응하고 있는 인간의 내면세계에 잠재하고 있는 시대의 배경적 문화의 모습과도 직결되고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이 공유해야 할 원초적 인간성은 과연 어떤 것일까? 그 절실한 문제를 작가는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도근점(圖根占)의 변환적 모티브가 바로 김성로의 치열한 작가 정신이다.

 

 

웃는 얼굴, 116.8×91cm, Cardboard, acrylic on canvas. 2013

 

  작가 김성로의 그림에는 늘 일관된 명상적이며 사색적인 분위기가 잘 나타나고 있다. 이번 전시는 동양의 아날로그적 사유와 이 시대의 문명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심리적 차원의 의식이 표출되고 있다. 장자는 유한한 것으로부터 무한한 것을 재는 일은 아주 위험한 것이라고 말한바 있지만 김성로는 무한한 것에서 유한한 것으로 압축될 수 있는 자연의 인위적 카테고리 속에서 기존문명에 친숙해지려는 의식의 지향성을 변환적 모색으로 작업하고 있다고 하겠다.

 

소녀의 꿈, 175×145cm, Cardboard, acrylic on canvas. 2012

 

  차분하고 냉철한 김성로의 문화의 수용성, 그것은 도전적 의미에서의 희망이 완성으로 가는 공유적 상생의 원리며 또한 예술가의 사명이다. 굴절이 없는 그의 그림 세계에서 우리는 미술적 리얼리즘을 찾고자 한다. 미술적 리얼리즘은 무엇일까? 인간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해방하고자 하는 그리고 그 해방감이라는 구원적 의미에서의 포만감을 새로운 모색으로 풀어내려는 작가의 힘이다. 조용한 성찰을 통해서 김성로 그림의 또 다른 측면을 관찰하면 김성로 그림 세계의 배경적 주체는 자연에 순응하는 정서적 태도이며 그의 그림 혼에서 발견되는 우주관이다. 그가 화가가 아닌 인간으로 느끼고 있는 의식 그것은 바로 인간 사이에 서로 흐르고 있는 따뜻한 사람에 대한 인격적 존경심이며 화해와 용서를 행동하는 순수한 양심이다.

 

  작가 김성로에게 작용하고 있는 모든 영감(Inspiration)의 경험은 바로 살아 숨 쉬고 있는 거룩한 생명의 개체들이다. 꽃과 나무, 바람과 구름, 달과 별, 사람과 동물, 새와 산, 그리고 고이지 않고 늘 흐르고 있는 물의 유속이다.

바람직한 그림 좋은 그림이란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와 기법 그 양식이 서로 절반의 비율 정도의 비슷한 비중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림에서의 조형성이 너무 지나치게 기법을 압도하거나 기법이 조형적 의식을 뛰어넘어서도 안 된다. 적당하게 비슷한 비중으로 나타나고 있는 김성로의 그림은 그래서 문화적이며 예술적이다. 작가 김성로에서 나타나는 명상적이며 사색적인 분위기가 그런 것을 잘 이해시키고 있다. 미묘한 대칭의 무게가 아닌 치밀한 친숙성, 충돌이 아닌 안정성의 바탕 위에 구현되고 있는 조화로운 상생의 원리, 그것은 김성로의 그림을 바라보면서 느끼게 되는 공통적인 심리적 안정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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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소운孫素雲

, 방송 프로듀서 / 대표작 MBC-TV 창사특집 다큐멘타리 '대관령 2부작' / '뽀뽀뽀 우리는 친구' 50부작 /EBS-TV 다큐멘타리 '하나뿐인 지구'10부작, / FBS-R '세계명작시리즈 연속방송극 1년 연작,/ DBS, CBS,KBS 특집방송 등 600여 작품 집필 및 연출, / 20회 대한민국장애인 문학상 시부문 우수상 수상, 저서 시집 '요즘 거울을 자주 보네'11

 

 소녀의 마음, 72.7×60.6cm,2014        

               

               존재의 의미, 120.4×72.7cm. 2014    

 여자, 130.3×97cm, Cardboard, acrylic on canvas. 2014      

 

남자, 130.3×97cm, Cardboard, acrylic on canvas. 2014

 

    김성로홍익대학교 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공주사범대학 미술교육학과 졸업

 개인전 12아트페어 2014 경향하우징페어(킨텍스), 아트쇼부산(벡스코),S OAF(코엑스), 홍콩컨템포러리아트페어(홍콩)2013 AsiaGalleryArtFair(상해), 'K-아트 프로젝트' (한가람미술관), HongKong Contemporary Budget ArtFair(홍콩), 남송국제아트페어(성남), 첸나이쳄버 비엔날레(인도), 아트 이탈리아-대한민국 미술전(이탈리아) 2012 MANIF(서울), 터키 이스탄블 코리아아트엑스포(터키), CIGE(북경), 교토2012(일본), 아시아화랑예술전람회(상해), 남송국제아트쇼(성남), 고양국제호수만화축제(일산), 컨템포러리 아트스타전 (서울) 2011 KIAF(서울), 상하이아트페어(상해), 서울아트바젤(스위스)2010 KIAF(서울), SOAF(서울), CIGE(북경), LA아트쇼(미국), 남송국제아트쇼(성남)2009 CIGE(중국), 남송국제아트페어(성남)2008 남송국제아트페어(성남) 2004 고양국제아트페어(일산) 체전 2014 갤러리 일호 작가지원전(서울), 갤러리 자인제노 특별전(서울) 2013 ’5월의 향기(경민미술관, 의정부), 아트리에갤러리 소속작가전(안양), 남송의 봄전(남송미술관, 가평), 중견작가 초대전 '한 지붕 한 그림'(서울미술관), 5회 경기현대미술협회전(이형갤러리,서울) 이하생략

작품소장 아르헨티나 한국대사관, 대우건설, 율곡연수원, 오사카 영사관, 경기도 교육연수원, 갤러리SPACE-DA(베이징), 서산갤러리, 유나이티드갤러리, 갤러리 각 등

[] 한국미술협회 회원, NOON 회장, 경기현대작가회 회원, 한국영상문학협회 이사, 서정중학교 교장.

 

 


서울 종로구 인사동 1113

02-723-1661/010-3231-8088

 

 

                                       ▲ ‘빛의 씨앗’인 ‘옴’을 표현한 동휘 스님의 ‘옴 만다라’.

행복을 머금은 만다라 ‘해피만다라’로 널리 알려진 동휘 스님(해피만다라 문화원장)이 4월16~22일까지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옴’ 그림전시회를 개최한다.

‘빛나는 해피불’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번 전시회에서는 소리와 빛의 근원이라는 ‘옴’자를 주제로 한 작품 108점이 선보인다.

동휘 스님 ‘빛나는 해피불’ 전시
4월16일,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서
깨달음의 빛 ‘옴’ 주제 108작품

2010년 깨달음과 빛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 저서 ‘빛을 먹다’를 출간한바 있는 동휘 스님은 머금은 빛을 대중들에게 나눠주고자 ‘빛을 쏘다’라는 부제의 전시회를 준비한 것. 동휘 스님은 “모든 사람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행복한 불성’이 곧 ‘해피불’이 갖고 있는 메시지”라며 “그 빛의 씨앗을 ‘옴’이라는 상징으로 표현해 냈다”고 이번 작품들의 의미를 설명했다. 사람을 움직이는 신(身), 구(口), 의(意)가 자성을 깨달아 빛나는 생각, 빛나는 말, 빛나는 행동이 되었을 때 자신은 물론 주변도 빛나고 행복하게 만든다는 동휘 스님은 자성의 빛을 사람들이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이번 전시를 통해 세상에 꺼내 보이겠다는 구상이다. 작품 속의 ‘옴’은 바로 그 빛이 시작되는 씨앗이며 동시에 빛이 세상으로 나오는 문이기도 하다.

“낮 동안 충분한 햇빛을 받아 몸속에 멜라토닌이 충분히 생성된 사람은 활기차게 생활하는 것처럼 사람이 갖는 생각과 말, 행동에서 빛이 난다면 힘들고 지친 삶 속에서 용기를 얻을 것입니다.”

불교에서 모든 진언의 시작을 여는 글자 ‘옴’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자 하는 동휘 스님은 “한 작품 한 작품마다 빛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어 보는 이들에게 긍정의 에너지가 전달되기 염원한다”고 전했다.

이번 전시의 개막식이 열리는 16일에는 빛을 세상에 뿌리는 의미가 담긴 퍼포먼스도 진행될 예정이다. 오후 2시부터 인사동 문화거리에서 열리는 퍼포먼스에서는 길을 따라 108미터의 긴 천을 차례로 펼치며 천 위에 옴 만다라를 직접 그려나갈 계획이다. 이 퍼포먼스를 통해 동휘 스님은 빛의 씨앗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심는다는 의미를 전달할 예정이다. 또한 전시기간 동안 전시장에서는 수시로 스님의 법문과 이벤트도 진행 될 예정이다. 02)736-0108

법보신문 /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노사나 상묵 스님 4월 23일~29일 회화·목어 전시
경남 하동 지통사서 작업한 다양한 목어 작품 전시
산사 풍경 점으로 표현한 회화 작품도 30여 점도


 

▲ 경남 하동군 화개면 지통사에서 목어를 만들며 그림을 그리는 노사나 상묵 스님은 4월 23일~29일 인사동에서

 ‘산사에 눈이 내리면’(갤러리 이즈)과 ‘천년의 소리 목어’(경인미술관)전을 각각 연다.

 

수행자가 공부를 목적으로 삼아야지 다른 걸 하면 불법에 어긋나요. 취미라면 모를까. 부처님한테도 미안한 일이죠. 그래서 난 실패작이야. 이번 생은 이미 늦었고 다음 생에는 미얀마 같은 곳에서 수행만 하는 스님으로 태어나고 싶어.”

 

경남 하동군 화개면 지통사에서 목어를 만들며 그림을 그리는 노사나 상묵 스님의 솔직한 이야기는 듣는 이를 웃음 짓게 한다. 40여년 수행자로 살아온 당신의 삶이 실패했다고 말하는 상묵 스님이 수행하며 완성시킨 작품은 적어도 성공작으로 보인다. 그래서 스님의 말은 맞는듯하면서도 아닌듯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10여년 만에 서울 전시를 여는 스님은 4월 23일~29일 인사동에서 ‘산사에 눈이 내리면’(갤러리 이즈)과 ‘천년의 소리 목어’(경인미술관) 두 개의 전시를 열며 대중들을 찾아간다. ‘산사에 눈이 내리면’이 미술학도로 출가해 50여년 그림을 그려온 작가의 시선으로 완성해낸 회화 작품이라면 ‘천년의 소리 목어’는 매일 매일 수행하듯 나무를 깎으며 생명의 소리를 찾는 구도의 결과물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점으로 부피감을 살린듯한 ‘산사에 눈이 내리면’ ‘산사의 기도’ ‘나를 찾아’ 등 30여 작품을 선보여 산사의 겨울 정취와 오롯이 수행을 향해 걸어가는 스님들의 모습을 그려냈다.

 

▲ 점을 찍어서 완성한 산사의 풍경을 소재로 한 회화 작품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산사에 눈이 내리면’

 

12년전 갤러리가 불이 나 작품 2000점을 다 태운 적이 있어요. 건물이야 다시 지으면 되지만 작품이 다 사라져버리니 허탈감에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때 캔버스에 계속 점을 찍으며 그 마음을 달랬는데 나중에는 그것이 그림이 되더라고요. 출가 전부터 치면 한 50년 그림을 그렸어요. 그림은 일상이자 놀이죠. 이번 전시에서는 산사의 풍경과 바랑을 짊어진 스님들의 모습을 표현해 봤습니다.”

 

스님에게 이번 서울 전시가 의미 있는 이유는 스님이 거주하는 지통사에서 볼 수 있던 목어를 처음으로 서울 인사동에서 선보인다는 것이다. 26년째 목어를 깎고 있는 스님의 작품은 전국 사찰 곳곳에 걸릴 만큼 알려져 있다. 스님은 매일 매일 목어를 깎으며 번뇌 망상을 버리고 삼매의 경지에 이른다고 말한다.

 

“통도사에서 참선을 하는데 목어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 깜짝 놀랐어요. 목어가 항상 깨어 있으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뜻이 깊잖아요. 해제를 하고 혼자 목어를 만들어 봤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그때부터 전국 사찰을 돌며 모양도 연구하고 제작 방법도 구하면서 목어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스님에게 있어 그림은 일기이고 생활이자 습관이라면 목어는 노동이자 하나의 도전이며 구도의 길과 그 맥을 같이한다.

 

“목어 만드는 나무는 3년전부터 준비를 해야해요. 겨울 소나무를 골라 제재소에서 다듬어 잘 말리고 건조해 3년을 묵혀 놓아야만 쓸 수 있죠. 처음에는 둔탁한 소리가 나지만 목어의 배를 파면 팔수록 소리가 좋아져요. 이렇게 목어를 완성해나가면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목어의 소리는 생명의 소리죠. 새벽에 일어나 망치로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가 공간으로 퍼져나가면 마음이 시원해지고 기분도 좋아요.”

 

그래서 스님에게 있어 목어를 만드는 과정은 즐거운 창작이자 도전이다. 최소 50cm에서 최대 3m까지 다양한 크기의 목어를 수십년 만들다 보면 이제는 나무만 봐도 어떤 모양으로 목어를 깎아야 될지가 이제는 가늠이 된다는 스님.

 

휘어지면 휘어진 대로 꼬부라지면 꼬부라진 대로 그 나무에 맞는 모양이 스님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이다. 최소 보름에서 최대 5개월까지 나무를 깎고 깎아 나가면 어느새 수행자의 정진을 일깨우는 목어가 완성된다고 한다.

 

40여년 전 사바세계 이외의 또다른 세계를 찾기 위해 출가했다는 스님. 연화세계를 뜻하는 노사나불의 노사나를 따와 법호로 하는 스님은 그렇게 자신의 작품을 통해 연화의 세계를 향해가며 대중들과 소통하고 있다. (010)3573-3751

 

                                         ▲ ‘고향의 아침’

                                                       ▲ ‘나를 찾아’

 

현대불교신문/정혜숙기자

군산대 실내디자인 전공교수인 서연 유옥순씨가 문인화 작가로 새롭게 거듭났다.

 직장과 가정 일에 이끌려 살아온 30여 년, 좀 더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유 교수는 남은 생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여기고 정년을 앞둔 어느 날 붓을 들었다. 그리고 조금 더 여물기를 기다렸던 그는 용기를 내 문인화 작가로서 생애 첫 전시를 펼쳐보인다.

 유 작가는 16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개인전 ‘숲+여유’를 펼쳐보인다. 초대는 16일 오후 5시 30분.

 그를 지도한 벽경 송계일 교수는 “초기에는 수묵 중심의 사군자를 비롯해 일반적인 문인화를 연마해 왔으나 해를 거듭하는 동안 그는 문인화를 넘어, 자신만의 독특한 회화적인 표현기법과 그가 갖고 있는 내부적인 감성을 표현하는 수준에까지 도달하고 있다”면서 “치밀한 조형적 구성과 풍부한 색상의 정감과 화면에 전개되고 있는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은 분명 서연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라 할 수 있다”고 평했다.

 작가는 밀도 있는 화면의 구성과 숲의 확대 표현으로 무한한 숲의 공간감을 더욱 효과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밀집된 나무들의 작은 공간들이 좌, 우, 상, 하로 확대됨으로써 펼쳐보이는 조형적 언어들이 조금 더 사색적일 수 있도록 관람객을 인도하고 있는 것. 평생을 공간에 대해 연구했던 작가는 평면과 공간이라는 상대성적인 자연의 존재 질서의 미학을 심도깊게 표현하면서, 총체적인 삶의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유 작가는 “아직은 걸음마 수준으로 여물지 않았지만 ‘성숙의 한 과정’으로 생각하고 짬짬이 준비한 것을 용기 내어 선보이게 되었다”면서 “시간이 흐르면서 미술의 ‘술(術)’이 의미하는 ‘행할 행, 그 안에 구할 구’의 모양처럼 ‘무수히 행해야 구할 수 있다’는 사부의 말씀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연세대 주거환경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이학박사)하고, 군산대 주거 및 실내계획학과 교수로 재직, 현재 명예교수로 있다. 선묵회전 등에 참여하고 있다.

전북도민일보 / 김미진 기자

 

 이완정 작가의 작품 Nature ©

(동두천=뉴스1) 이상휼 기자

 

서양화가 이완정 작가의 5번째 개인전이 14일까지 서울 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다.
경기 동두천시에서 작업활동 중인 이 작가는 중앙대학교와 대학원 서양화학과를 졸업했으며 1997년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 작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자연에 대한 기억을 화폭에 담아 따뜻하고 깊이 있는 색감으로 다양한 자연의 모습을 형상화한다는 평가다.

 

'NATURE'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서 작가는 빠르게 변하는 문명의 번잡함 속에서 그리움의 대상인 자연을 통해 끊임없이 생성되고 사라지는 자연의 생명력에 집중한다.

 

 


이완정 작가

 

작가는 캔버스에 수없이 중첩되는 색과 나뭇가지를 통해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표현하고 있다.

동두천미술협회 회원이기도 한 이 작가는 지역사회에서 개인전과 그룹전 등으로 다양한 예술활동을 펼쳐왔다.

포천반월아트홀에서 '자연+사람+미술의 어울림', 조선일보미술관에서 'Degree Show', 홍연경민현대미술관에서 '경기북부 작가회원', 경기지방경찰청 제2청에서 '경기북부 현대미술의 장' 등의 활동을 진행해 호평 받았다.

이완정 작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자연을 통해 바쁜 일상에서 잠깐이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daidaloz@news1.kr









웃음, 말 없는 말
오진령展 / OHJHINRYUNG / 吳眞鈴 / photography
2014_0415 ▶ 2014_0427 / 월요일 휴관


 

 오진령_웃음 시리즈 Laugh Series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50×40inch_2014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60611b | 오진령展으로 갑니다.

오진령 홈페이지_www.jhinoh.com

 

 

초대일시 / 2014_0415_화요일_06:00pm

 

출판기념회 / 2014_0415_화요일_06:00pm

『몸짓 Zi-it』IANN

 

사진가의 서재 / 2014_0325 ▶ 2014_0525

장소 / 류가헌 사진책도서관

 

작가와의 만남

어릿광대와 사랑에 빠지다 / 2014_0426_토요일_04:00pm

곡마단 사람들에서 매달린 사람들까지 / 2014_0517_토요일_04: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월요일 휴관

 

 

 

류가헌ryugaheon

서울 종로구 통의동 7-10번지Tel. +82.2.720.2010

www.ryugaheon.comblog.naver.com/noongamgo

 

 

 

오진령이『곡마단 사람들』을 전시와 책으로 엮어낸 지 10년이 흘렀다. 서커스를 촬영하기 시작한 나이가 열일곱 살이었고 그 결과물을 모아 스물세 살에 첫 번째 개인전을 치른 후「거미여인의 꿈」과「몸짓」, 그리고 신작인「웃음」까지 사진이력으로 삶의 절반을 채웠다. 대개의 작가들에게 첫 번째 작업은 이후 성장과정에 아리아드네의 실이자 자양분이 되는데, 오진령에게 사진의 첫 만남인 '곡마단 사람들'이야말로 직접적이고 확실하게 그 위력이 발휘됨을 알 수 있다. 걱정스러울 정도로 재능을 보였던 이 무서운 신인이 이번엔 명쾌하고 성숙한 '웃음'을 선보인다. 지난 십 칠년 동안 잘 훈련되고 정련된 테크닉과 깊은 사유가 명징하게 빛나는 작품이다. 처음부터 그녀의 사진 속엔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람들의 몸짓이 있었다. 무엇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이 몸짓은 비동질적인 실연(實演)의 세계이고, 꼭 한 번만 일어나는 사건이기에 카메라가 담아내기엔 더 없는 소재(주제)이다. 삶의 다채로운 무대에서 펼쳐지는 사람의 공연(행위)들은 기계적인 반복운동 같지만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떠한 몸짓도 무엇으로 일반화 할 수 없는 고유함으로, 사진인화지의 표면위에서 반짝거리게 되나보다. 오진령이 주객의 자리를 와해시키며 존재의 부름에 계속해서 응답해온 이유가 한 순간 반짝이며 튀어 오르는 저 사랑스러운 몸짓들 때문이 아닐까. ● 이번엔 그 몸짓의 주인인 얼굴들이 웃고 있다? 한 겨울, 한 낮의 태양아래 차갑게 빛나는 얼굴들은 내가 바라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를 쳐다보는 듯하다. 사진 속의 인물들은 오직 얼굴과 손만을 내놓으며 수동적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관객이 해독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젊거나 주름진 피부, 머리카락의 컬러와 얼굴의 조형적인 윤곽 혹은 표정뿐이다. 외모에 사로잡혀 계속 얼굴을 살펴보지만, 얼굴을 증명할 수 있는 형식과 서술의 무력함을 깨달으며 이내 탐색을 멈추게 된다. 이처럼 보는 이를 무장해제 시키고 비공격적으로 만드는 이 얼굴은 그저 드러나 있을 뿐 아무런 말없이, 하지만 아주 '시끄럽게' 웃고 있다! 사진 속의 얼굴은 사진이 표상하고자 하는 바를 피하고, 오히려 관객이 그에게 부여하는 시선에 대해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고 있다. 얼굴의 철학자 레비나스는 '내 안에 있는 타자의 관념'을 뛰어넘어 타자가 나타나는 방식, 그것을 얼굴이라고 불렀다. 레비나스라면, 흔히 주체인 사진가의 위치에서 대상을 찍어 왔던 기존의 포트레이트의 범주로 결코 귀속될 수 없는 것이 '얼굴'일 것이다. ● 그래서 이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드러날 수 없는 것이 드러남과 동시에 나를 타자에게 노출하는 일이기에 약간의 고통과 난해함이 따른다. 즉 타자를 대상화하지 않고 어떠한 비전도 지식도 없이 그저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오진령의 다만 웃는 것처럼 보이는 얼굴사진의 함정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제껏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몸통은 사회적, 미적, 정치적 코드들을 박탈당한 채 커튼 뒤로 물러나 있고, (화장을 하였어도)살갗이 헐벗은 채로 숨김없이 드러난 얼굴은 웃고 있는 것이 아닌 생생한 뉘앙스로 상황만을 전달한다. 다만 '본다'는 개념을 거부하며 바라볼 때, 비로소 보인다는 역설을 오진령의「웃음」사진이 시끄럽게 말하려는 것이다. '말없는 말*'의 강력함을 오진령의 소리 없는「웃음」사진에서 보게 된다.

 

 

                                                오진령_웃음 시리즈 Laugh Series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50×40inch_2014
 

 

오진령의 사진-몸짓의 세계 ● 2003년에 첫 개인전,『어릿광대와 사랑에 빠지다』로 등장한 오진령이 그 이듬해『곡마단 사람들』을 책으로 엮어낸 일은 우리 사진계에 뜨거운 돌발사건이었다. 열일곱 살 오진령이 한물 간 서커스단을 6년간 쫓아다니며 촬영한 결과물들은 반향을 일으켰고 많은 관객 혹은 독자들의 주의력을 이끌어낸다. 작가스타일이 뚜렷한 것도 아니고, 대중적 취향에 영합하거나 다큐멘터리의 형식에 경도된 사진도 아니었는데 놀라운 점은 보편성을 획득하며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 이후에도 수많은 (다큐멘터리)사진들이 형식과 내용을 변주하며 탄생했을 것이고, 무수한 사진들 속에서 오진령의『곡마단 사람들』이 아직도 주목받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특별한 무엇인가 계속 생성되어 나오기 때문이 아닌가. 뉴밀레니엄을 전후로 많은 사진들이 점점 모호해지고 불투명해진 반면, 오진령은 명쾌한 의미와 함께 사진의 존재론적인 층위를 살펴왔다. 자칫 소재주의에 빠질 수도 있었을 '서커스'를 깊은 향수와 놀라운 가벼움으로 끌어올렸고, 존재론적 자아와 사진의 본질을 합치시켜가며 부유와 정주를 변주하는 이동 속에서 자기에게로 향한 비밀스러운 탐색을 멈추지 않았다.

 

 

 오진령_웃음 시리즈 Laugh Series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50×40inch_2014

 

 

몸짓-새로운 길트기 ● 오진령은 흑백필름으로 처음 사진을 시작하여 필름이 담길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카메라를 섭렵한 '격동의 장비변천사'의 마지막 세대쯤에 해당 될 것이다. 작업의 베이스는 거의 필름이되, 프린팅과정에서 디지털 프로세스를 병행하기도 했는데,「곡마단 사람들」시리즈에서는 빠른 움직임을 포착하기 위해 35mm소형카메라가 필요했다면,「거미여인의 꿈」에서는 색감과 디테일의 묘사를 위해 중형카메라를, 그리고「몸짓」에서는 4☓5인치 대형카메라로 작업하며 대상과의 보다 명징하고 내밀한 긴장을 이끌어낸다. 오진령이 사진을 시작한 90년대 후반은 일종의 우연한 해방구처럼 사진형식과 주제에서 다양한 욕망들이 분출되었던 시기였다. 새로운 기법들이 수용되었고 위안과 도피를 제공하는 환각적이고 이국적인 이미지들이 소비되었다. 그 시기에 '서커스'는 진실의 깊이를 파고들어가는 다소 무거운 소재였기에 단편과 표층적인 촬영이 대부분이었다면, 오진령의 천진한 카메라아이는 인간조건의 숙명적 세계라 할 서커스단원들의 몸짓을 실날처럼 가볍게 날아올라 잡아냈다. 서커스로부터 탄생된 오진령의 일련의 사진들은, 스스로 서커스단원들을 이끄는 '거미 여인'이 되어서 구체적인 곡예들을 이뤄낸다. 내 안의 자아를 들여다보는 방식도 존재와 사진이 별개의 요소가 아니며, 사진의 깊은 곳에 얼마나 많은 비밀들이 있을 지 좀 더 커진 120mm필름으로 접근하게 된다. 이후「몸짓」작업에 이르러서는 대형카메라로 생에의 아포리아적 국면을 드넓은 자연 속에서 세세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카메라포맷은 사진가의 자세(대상을 바라보는 시각 및 거리)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많은 사진가들이 다시 대형카메라로 회귀하는 이유가 관습적 리듬에서 벗어나 대상의 새로운 국면을 마주하기 위함일 것이다. 오진령의 카메라도 존재의 복합성에 대한 다면적인 탐구를 위해 본능과 인식사이에서 새로운 길트기를 하고 있었다.

 

 

                                               오진령_웃음 시리즈 Laugh Series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50×40inch_2014
 

 

몸짓-범속한 각성1) ● 1997년, 고교생이었던 오진령에게 '동춘서커스'와의 조우는 우연이 만들어낸 필연이라 할 만하다. 그녀의 이름자인 '진령'2) 처럼, 마음속에서 진짜 방울소리가 들려오는 귀한 음악적 경험에 비유될 만큼 그것은 지고의 우연성이었을 것 같다. 오로지 몸뚱이와 최소한의 장비만 허용되는 서커스공간은 인간에게 허여된 한계지평을 계속해서 탄로시키는 타나토스와 에로스가 한 몸인 세계이다. 오진령이 꿈꾸듯 다가간 그곳에서 방향도 안내자도 없이 최소한의 장비만으로 더듬어가며 촉각적으로 찍어내고, 후에 그녀 스스로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출렁거리는 검은 죽음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은 우연으로 밀고나가는 몸의 본능을 따라갔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 자동기술법으로 쓰여 진 이 몸의 다양한 행동(언어)은「곡마단 사람들」로부터「거미여인의 꿈」과「몸짓」으로 이어지며 언어와 이미지, 현실과 꿈처럼 이중으로 휘어진 공간을 아슬하게 줄타기하고 있다. 서커스도 그렇지만, 삶도 동일하게 반복되는 듯하여도 조금씩 차이를 발생한다. 그것은 매 순간 생의 저쪽에서 이쪽으로 새로운 길들을 트는 일이기에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것 같지만, 단 한 번만 이뤄지는 일회적이고 비동질적인 실연(實演)의 세계이다. 이는 분명 사진촬영이라는 '사건'과 닮았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틈 혹은 passage)은 생성이면서 죽음의 순간이다. 즉 생생하게 살아있는 존재는 셔터가 닫히면서 이미지로 굳어지고 빛의 흔적으로서 필름에 기입되는 것이다. 나로서는 사진의 가장 놀라운 힘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된다.

 

                                                    오진령_웃음 시리즈 Laugh Series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50×40inch_2014
 

 

사진이 재현시키는 무수한 것들은 단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았던 현상이다. 즉 사진은 실존적으로 다시는 되풀이될 수 없는 것을 기계적으로 재생시킨다. 사진에 찍혀 있는 사건은 결코 그 이외의 것을 향해 자신을 넘어서지 않는다. 사진은(...)절대적인 '특수성', 불투명한 최고의 '우연성'이며, 곤란하게도 '그런 것', 간단히 말해서, 그 끈질긴 표현 속에 나타나는 '투케' '기회' '만남' '현실'인 것이다.3) ● 바르트가 말한 절대적인 특수성, 불투명한 최고의 우연성이야말로 사람의 '몸짓'과 '사진'의 공통된 본질이 아닐까. 서커스 단원들이 거대한 타자의 힘에 조종되지 않기 위해 유연하게 휘어지는 일이 단일자로서 인간이 부릴 수 있는 최고의 묘기이듯이. 그런 의미에서 엘레지차원으로서의 서커스가 아닌, 멜랑콜리커4) 의 몸짓으로서 서커스는 귀중하다. 모던과 탈 모던, 아날로그와 디지털, 삶과 죽음, 사진과 드로잉, 프레임의 안과 밖, 문자와 이미지의 견고한 이분법이 아니라 '부초'처럼 전 영토를 산보객으로 떠돌며 현재의 시간들에 틈을 드러내는 멜랑콜리커의 몸짓이야말로 상호 소통을 불가능하게 한 로고스를 해체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나로서는 이 몸짓, 누추하고 고단한 육체노동자로서의 서커스단원들이 펼치는 새로운 날개 '짓' 이야말로 인간학적인 영감이라고 불리는 '범속한 각성'의 초상이기에 아주 중요해진다. '낡아버린 것에서 나타나는 혁명적 에너지(...)즉 최초의 사진들, 사멸하기 시작하는 대상들, 5년 전의 의상들, 유행이 물러가기 시작할 때의 상류층 스탠드바들(...)'5) 에서 벤야민이 발견해 낸 변증법적 이미지는, 바로 몰락하기 시작한 것들 속에 이미 내재된 희미한 마술적 힘이었다고 한다. 각성하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 수 있기에 "지금시간"(Jetztzeit)6) 에 활짝 깨어 신체가 누릴 수 있는 경험들을 최대치로 끌어 올리는 것이 바로 사진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거미여인의 '꿈'이 아니었을까. 15년 전, 서커스단원들과 생활하며 차마 말할 수 없었던 것들, 어찌해볼 도리가 없이 그냥 촬영해야만 했던 시간이 있었다면, 거미여인이 되어 과거의 시간대로 싱크로나이즈하면서 상처의 환부들과 합일을 꿈꾼 공감각이미지는 깊고 고요하고 아름답다.

 

 

                                                  오진령_웃음 시리즈 Laugh Series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50×40inch_2014
 

 

몸짓-미메시스, 태고의 언어 ● 오진령이『곡마단 사람들』을 전시와 책으로 엮어낸 지 10년이 흘렀다. 초기의 흑백사진들에서는 다이안 아버스와 사라 문의 시선들이 발랄하게 교차한다. 10대에서 20대로 넘어오는 6년 동안을 그녀는 서커스 사람들과 함께 했다. 이미 쇠락의 길에 접어든 동춘서커스를 촬영하며 '과거가 아닌 오늘의 것으로서 바라보면 좋겠다.'고 쓴 어린 오진령의 노트는 이 후의 작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듯하다. 타자의 간절한 목소리와 몸짓을 응대하는 오진령의 태도는 공감과 공통을 성실하게 수행해낸다. 그녀의 인물사진들이 마스크를 벗어던진 채로 생생하게 와 닿는 이유일 것이다. 사진 속의 인물들이 그저 '드러나는' 방식대로 바라보다보면 가녀린 목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손을 내밀어 잡아보면 겹쳐지는 공간이 생기고, 계속 바라보면 안과 밖, 나와 타인의 경계가 모호해지기도 한다. 정지 된 사진 속에서도 묘기를 부리고 있는 곡마단 사람들의 열기가 전해지는 것은, 관습적인 사진 규칙을 넘어서서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들의 프레임을 무화시켜낸 작가의 마법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거미여인의 꿈」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그 힘이 발휘되는데, 바로 몸의 단편들이 자연 속에서 재구성되며 새로운 몸-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사진 속에서 작가의 몸은 각 부위가 자유롭게 놓여 있어 에로틱한 본능을 발산하다가 가볍게 공중으로 치솟는가하면, 그로테스크한 인형들이 등장해 불가능한 것들을 탐사하게 한다. 도시의 외곽 벽돌공장7) 이나 숲의 은밀한 공터에서 기이하게 펼쳐지는 인형이 있는 광경들은 동화적으로 뒤섞이며 언캐니한 놀람을 일으킨다. 마치 어린아이가 하루사이에 어른이 된 것처럼 붉은 열매와 창백한 하늘사이로 인형들이 걸어 다닌다. 순수하면서 거칠고 평화와 불길함이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우발적인 풍경들 속에서 거미여인과 인형들은 서로에게 이끌림과 동시에 두려워하고 있는 듯하다. 이율배반 혹은 모순으로 성립되는 꿈의 세계처럼, 거미여인의 세계는 현실과 상상, 의식과 무의식의 다리에 그물을 치며 비상과 낙하를 반복하는 다양한 형태의 몸을 선보이고 있다.

 

 

                                               오진령_웃음 시리즈 Laugh Series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50×40inch_2014
 

 

「거미여인의 꿈」으로부터 깨어나 드넓은 대지로 나아간 오진령은 나무였다가, 기둥이 되고, 덩어리로 뭉치며 태고의「몸짓」을 보여준다. 말과 문자가 없어도 소통이 가능한 마법의 세계가 있었을 것이다. 오진령은「몸짓」시리즈에서 자연 속으로 한없이 스며들어가 잃어버린 낙원을 찾아가고 있는 듯 대형카메라의 여러 효과들과 자기존재형상들을 결합하여 아담의 언어를 회복하려는 한 과정을 보여준다. 자연에 투사된 자아, 혹은 자연과 같아지려는 오진령의 미메시스적 욕망은 점이었다가 선으로, 꽃향기로, 바람으로, 나무로 종국에는 나무와 평행을 이루다가 석양의 바위와 동그란 점으로 일체가 되며 궁극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마치 가부좌한 불상이 시원의 세계를 바라보는 듯 이 사진에서 자연과 합일을 이뤄낸 절대적 자유를 본다. 그런 의미에서 조윤경이 제안한 '초육체성le surcorporel' 8) 이 오진령의 사진 속 퍼포먼스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끝없이 새롭게 생성되고 어떠한 것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몸을 몇 개의 포즈로 환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사진 찍는 일은 바로 모험이라 할 수 있고, 그 모험은 또한 불가능을 재현하는 일이다. 그러니 오진령이 자신의 몸의 소리, 몸의 언어, 몸짓을 통해서 자기를 응시하고, 스스로를 사진과 삶의 경계면에 부단히 위치시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오진령의 사진-몸짓의 세계에서 그동안의 관습과 진부한 도식에 구속되었던 수직적 사고가 말랑말랑한 시적 잠재성으로 변환되는 마법의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해의 불가능성과 신체의 접촉을 통해 비로소 열리는 사진-몸짓의 세계는 '지금시간'에 몸이 밀고나가 기존에 '있었던 것'을 깨워내 촬영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영육이 솟구쳐 오르는 무한한 집중과 열린 틈 사이에서 작동하는 셔터들의 단호한 선택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 최연하

 

* 말 없는 말 : 자크 랑시에르의 용어이다.

 

1. 범속한 각성(profane Erleuchtung) : 벤야민의 용어임.   '언뜻 결합될 수 없는 듯한 두 개념을 하나로 묶어서   초현실주의 변증법적 운동을 아주 적절하게 표현한 용어', 최문규,『파편과 형세』, p.361

2. 진령(참 진眞, 방울 령鈴)

3. 롤랑바르트, 조광희 역,『카메라루시다』, 열화당, 1986, p.12

4. 여기서 멜랑콜리는 심리학에서 말하듯 우울, 불안, 근심의 정서로만 다루어서는 안 되고,   계몽주의에서 빈난하듯 광기로만 보아서도 안 된다.(...)   멜랑콜리는 보들레르에게는 근대인의 고독과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의식의 산물이었으며,   벤야민에게도 역사의 폐허를 응시하는 근대적 자각의 소산이었다. (권혁웅)

5. 발터 벤야민, 최성만 옮김,『발터 벤야민 선집 5,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도서출판 길, 2012, p.150

6. 벤야민의 용어이다. 벤야민은 현재라는 개념보다 '지금시간'이라는 단위를 사용한다.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서 과거는 단순히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는 시간에 반짝 빛나는 이미지처럼, '빠른 속도와 강렬함'으로   현재 속에서 경험되는 시간이고, 그 시간을 '지금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7. 갈수록 쇠락해가는 서커스단의 가설무대는 공연장소를 구하기 마저 어려워져   변두리의 벽돌공장 부근이나 김장시장이 열리는 시장 옆 공터에 막을 올리며 천막무대는   늙은 창부처럼 몰락해 갔다고 한다. (한수산,『부초』, 1986, 민음사, pp.252~253)

8. 조윤경,『초현실주의와 몸의 상상력』, 문학과 지성사, 2008, p.9

 

 

                                                 오진령_웃음 시리즈 Laugh Series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50×40inch_2014
 

 

웃음 ● 사람들은 웃는다. 살며 웃고, 사랑하며 웃고, 감사하며 웃고, 행복하며 웃고, 기쁨에 웃고, 슬픔에 웃으며, 울다가 웃고, 헤어질 때 웃고, 머쓱해서 웃고, 주고 받고 웃으며, 절망에 웃고, 실패하여 웃고, 절규하며 웃고, 진심을 담아 웃고, 진실을 감추고 웃으며, 웃기 위해 웃고, 그렇게 너와 내가 만나 웃는다.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의 삶 속에서 그렇게 웃음짓는다. 얼굴, 그 헐벗은 곳에서, 마치 인생을 대변하듯, 주름진 굴곡들 바람을 맞아 흔들리고 날리면서, 견디고. 차갑고 강한 바람, 뜨거운 태양아래 눈물, 콧물, 그리고, 땀. 반복하여 호흡한다.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치니 너의 얼굴, 그 곳에서 나를 만난다. 너의 웃음과 나의 웃음이 만난다. 나의 얼굴과 너의 손도 만난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닌 것으로. 젊음은 젊음대로, 늙음은 늙음대로, 그대로의 흔적을 드러내고 감추며, 다시 한번, 감추고 드러나고 마는 것을. 눈빛은 끝내 진실을 감추지 못한다. 이 세상의 호흡하는 웃음이다. ● 한 사람이 웃는다.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웃음, 현재의 웃음이 아닌 웃음, 이 세상을 향하고 있지 않은 그런 웃음, 생의 터널 밖을 향한 소멸의 순간에 웃음, 시간이 멈추어 버린 호흡하지 않는 웃음을 본다. 세상의 수 많은 웃음들, 그 이유들로부터 벗어난 웃음, 어떤 것도, 그 무엇 때문도, 누구의 것도 아닌 것으로. 너의 웃음과 나의 웃음이 만날 수 없는 그 곳에서, 내려놓음, 그 마침으로부터, 그 웃음 진정한 자유로부터 왔을까. ● 사람들은 웃는다. 강렬한 태양의 눈부신 빛을 향해, 보이지 않는 어둠의 그 무언가를 향해, 저 비어있는 공간과 그 넘어 크고 작은 형체들을 향해, 끊임없이 삶의 목적을 찾아 헤매며, 대상 없는 그 무언가를 좇아가며 그렇게 웃는다. 이 웃음의 조각들, 언젠가 누군가와 조우하며, 눈을 마주치고, 만나고, 헤어지고, 친구가 되며, 격려하며, 소리 내어 웃고, 숨 죽여 속삭이면서 그렇게 웃어 줄 수 있게. 순간이 영원히 되도록. ● 그들이 누구이고 왜 웃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 웃음은 웃음으로. 영원한 순간이 되도록. 고인이 되신 아버지를 기리며. (2014년 2월 진령眞鈴) ■ 오진령

 

Vol.20140415a | 오진령展 / OHJHINRYUNG / 吳眞鈴 / photography

Crematorium-공중부양돼지

한효석展 / HANHYOSEOK / 韓効昔 / installation.painting

2014_0410 ▶ 2014_0501 / 월,공휴일 휴관

 

 

                                                        한효석_감추어져 있어야 했는데 드러나고만 어떤 것들에 대하여_2014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51023b | 한효석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4_0410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공휴일 휴관

 

 

갤러리 아트사이드GALLERY ARTSIDE

서울 종로구 통의동 33번지Tel. +82.2.725.1020

www.artside.org

 

 

 

자본론의 예언 – 그들에게 있어서 자유란 죽음뿐이다. ● 한효석 작가는 어려서부터 가업인 농장일 뿐 아니라 군 제대 후 본격적인 미술 교육 전까지 건설현장에서의 다양한 현실 경험을 바탕으로 작가정신이 형성된 작가다. 미술 대학교 시절, 그의 작품이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수업 참여를 반려하는 교수도 있었고, 일부러 학점을 낮게 주는 교수도 있었다. 이러한 미술계 안팎의 분위기는 작가로 하여금 보다 더 자기 자신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과연 예술의 영역은 어디까지 일까. 작가는 이 예술의 본질적 질문에 매달려 노동하듯이 작품을 만들고 있다. 마치 얼굴 피부를 다 벗겨낸 것처럼 고깃덩어리로 이루어진 얼굴의 회화 작품은 처음 접할 때 혐오감과 함께 잔인함도 느껴진다. 그러나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은 고깃덩어리에 불과함을 깨닫고 혐오스럽지만 그 본질을 당당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작가의 신념을 깨닫는 순간 작가의 회화 작품은 충분한 감상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한효석_감추어져 있어야 했는데 드러나고만 어떤 것들에 대하여 17_캔버스에 유채_207×146cm_2010~2

 

 

 

 

한효석_감추어져 있어야 했는데 드러나고만 어떤 것들에 대하여 19_캔버스에 유채_218×148cm_2011~3

 

 

"고깃덩어리 얼굴을 그린 회화작품을 통해 동물로서의 본질을 망각한 채 온갖 욕망에 사로 잡혀 사는 우리의 참 모습을 보여 주고자 했다.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모델의 얼굴을 조우하는 우리는 한 순간 빛이 번쩍이며 지금까지 망각에 젖어 살아 온 자신들의 오만함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또한, 한효석 작가의 돼지 입체 작품은 마찬가지로 일차적으로 동물적 존재로서 인간을 탐구하는 과정선상에서 시작되었다. 지난 20 여 년 동안 자신의 가업인 농장에서의 경험도 녹아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인간의 필요에 의해 태어나고 죽음을 당하는 돼지들을 보면서 그들의 자유란 무엇일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면서 시작된 작업이다.

 

                                                                               한효석_자본론의 예언_가변설치_2014

 

 

작가의 돼지 입체 작품의 실제 제작 의도는 여전히 인간은 죽음을 통해 자유를 얻게 되는 돼지와 같이 자본주의라는 틀 안에서 낙오되고 착취 받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시작되었다. 상당히 오랜 시간 돼지 농장에서 생활하면서 직접 돼지 입체 작품을 만들었다. 작가는 그 농장의 노동자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그들이 이 역사적 흐름의 한 과정인 자본주의의 논리 속에서 어떠한 삶의 애환과 고통을 느끼고 살아가는가. 한편, 어떠한 자유와 행복을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표현하고자 했다.

 

자본론의 예언_2014

 

                                                                                           자본론의 예언_2014_부분
 

 

작가는 말한다. "나는 이번 작업이 몇 년간의 고뇌와 동반된 고된 노동이 수반되면서 작업을 마치고 숙소로 가면서 늘 내 자신에게 되묻는 습관이 생겼다. "애덤 스미스나 칼 막스에 비교해 너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가" 라고". ■ 갤러리 아트사이드

 

Vol.20140410f | 한효석展 / HANHYOSEOK / 韓効昔 / installation.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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