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딛고 개인전 여는 안준현씨

민주화운동 아버지 연행 목격뒤
네살때 장애얻고 세상과 담쌓다
시·그림에 소질보여 전시회 열어
작품에 감동한 후원자 도움도 한몫

 



1979년 겨울 어느 날, 4살 사내아이는 한밤중에 새까만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끌려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봤다. 3살 이전부터 성경책을 보며 놀기를 좋아할 정도로 영특했던 아이는 그날 이후 말도, 표정도 잃었다. 남편의 옥바라지만으로도 벅찼던 어머니를 대신해 할머니에게 남겨진 아이는 학교에 가서도 혼자서만 지냈다. 일년 내내 공책에 점만 그리고, 또 일년은 선만 그리고, 또 한해는 원만 그리다 이내 집에서만 지냈다. 그렇게 세상과 담을 쌓았던 아이는 13살 때인 1988년 어느 날 돌연 19편의 시를 써서 가족들에게 내밀었다. ‘나무야, 나무야’ 한글로 또박또박 쓴 아름다운 시였다. 난생처음 만난 미국인 의사의 얼굴을 연필로 쓱쓱 그려서 영어로 ‘마이 티처’라는 제목까지 붙여 건넸다. 감옥에서 풀려나와서도 내내 외국으로 떠나 있던 아버지가 미국 보스턴에서 박사과정 유학을 하면서 비로소 온 가족이 한데 모여 살게 된 때였다.



그의 아버지는 안재웅 현 YMCA전국연맹 이사장

오는 16~26일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드로잉 개인전을 여는 작가 안준현(38·)씨가 ‘자폐아에서 천재 예술가’로 거듭난 이채로운 사연이다. 그의 아버지는 바로 안재웅(작은 사진) 와이엠시에이(YMCA)전국연맹 이사장으로, 74년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 간사 시절 ‘민청학련 사건’ 이래 수차례 옥고를 치른 민주화운동의 투사다.


“90년 보스턴에서 가장 먼저 아이의 재능을 발견해준 크리스틴 크리스 박사의 도움으로 첫 그림 전시회를 했고 94년엔 아버지 따라 옮겨 온 홍콩에서도 한번 했지만 시인으로 먼저 데뷔했어요. 95년 시집 <노란 풍선>(삼신각 펴냄)을 내고 2001년엔 시 전문지 <심상>의 공모에서 신인상에 당선되기도 했으니까요. 3년 전 전시 때는 별 반응이 없었는데, 이번엔 준현이도 설레는지 무척 흥분해 있네요.”


어머니 이경애씨는 2011년 서울 브레송 갤러리에서 했던 첫 개인전이 소년 시절 한때 그린 그림들을 모아 뒤늦게 소개했다면, 이번 두번째 전시회는 그가 지난해 11년 만에 다시 연필을 잡고 그린 작품들을 공개하는 ‘성인식’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작년에 가족들이 함께 유럽 여행을 갔는데, 준현이가 호텔에서 하룻밤 사이 19점의 그림을 그려냈어요.”


그의 이런 변화는 후원단체인 ‘준의 벗님들’과의 소통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준의 벗님들’ 대표인 소니아 한씨는 그 자신 재미동포 출신의 화가이자 캘리포니아에서 20여년간 갤러리를 운영한 전문가다. “3년 전 우연히 들른 갤러리에서 그림을 보고 ‘푹 빠져서’ 후원을 자청했어요. 안 작가는 미국에서도 보기 드문 ‘인간 스캐너’라 할 정도로 섬세하고 순수한 감성을 표현해요.”


한씨를 비롯한 벗님들 30여명은 성금을 내거나 운전·디자인·사진 등 저마다 재능을 기부해 이번 전시회를 꾸렸다.


“지난 2년에 걸쳐 안 작가의 모든 기록을 정리한 포트폴리오를 영문으로 완성해 곧 미국의 주요 뮤지엄에 보낼 참이에요. 분명 세계 무대에서도 천재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을 것이라고 믿어요.” 한씨는 자신했다.

한겨레 /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사진 준의 벗님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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