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식선생께서 고요의 선계에 편안히 잠드셨다.

 

부음 받은 지난 23일 장례식장을 찾아 선생의 명복을 빌었으나,

떠나시는 선생을 배웅하고 싶다는 정동지 채근에 25일 새벽을 서둘러야 했다.

장례식장 변두리를 뒤덮은 호박꽃이 선생님 가신 극락세계 연꽃인양 반기더라.

 

장례식장에는 유족들과 이일우씨만 발인을 서두르고 있었고,

조문객으로는 강용석, 곽명우씨 등 서너 명의 사진가만 보였다.

뒤이어 '사진예술' 발행인 이기명씨 등 제자 몇 명이 찾아와 운구에 힘을 실었지만,

한국 사진 교육계 거목이 떠나는 상여길 치고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타 예술단체에 비해 사진인들의 선배에 대한 존경심이나 예의가 소홀한 것은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수많은 제자를 배출한 선생의 장례식이 이럴진데,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먼 길 떠나는 원로사진가 영전에 잠시 모여 추모사로 위업을 되새기거나,

떠나시는 선생을 위해 살풀이라도 한 번 추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이번 장례식에는 제자 이일우씨가 시종 차고 앉아 사진인을 맞았지만, 가족들은 인사도 안 했다.

선생께서 그동안 말씀은 안 하셔도 마음고생 많이 했겠더라.

아들 셋보다 딸 하나가 더 좋은 세상을... 

 

요즘 사진판에 짚고 넘어가야 할 심각한  문제는 가족들의 사진에 대한 무관심이다.

돈 되지 않는 사진에 메 달려 온 선친에 대한 원망스러움은, 사진이란 말조차 듣기 싫은 것이다.

그러니 당사자가 돌아가시면 사진에 관한 모든 자료들이 쓰레기로 사라진다.

 

사진이고 뭐고 죽고 나면 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선생의 평소 말씀에 공감 하지만,

그래도 살아 남은자의 도리는 지켜야 하지 않겠나?

 

사진, / 조문호

 

이 사진은 홍순태선생 마지막 전시회에서 찍은 원로사진가들의 기념사진인데,

 이제 살아계신 분보다 돌아가신 분이 더 많군요, 

좌로부터 주명덕, 강운구. 이완교, 황규태, 홍순태, 김한용, 한정식선생

 




지난 18일 군위장에서 포항의 사진인들을 여럿 만났다.
지난 십월 "사진의 섬 송도" 호텔 아트페어 때 만난 분들이다.
‘경북 삶 사진연구회’의 정남호회장과 진영대, 박성두씨 일행이었다.
처음엔 잘 기억나지 않았으나 이야기를 해보니, 그 때 뵌 적이 있었다.





다들 카메라를 두 대식 메고 있기에, 평소의 궁금증도 물어 보았다.
“요즘은 디지털시대라 흑백과 컬러를 같이 쓸 수 있는데,
굳이 힘들게 두 대씩이나 메고 다니는 이유가 뭡니꺼?”했더니,
렌즈 갈아 끼우기 귀찮아 그런다는 것이다.






카메라 많이 메고 다니던 분이라면, 지금은 전설이 되어버린 홍순태선생이 계셨다.
필름 종류별로 대 여섯 대를 주렁주렁 훈장처럼 메 달고 다니시던 모습이 아직도 머리에 선하다.
옆 카메라와 부딪힐까 걱정도 되었는데, 좌우지간 사진도 많이 찍었고, 전시도 많이 하셨다.
역사가 된 좋은 사진도 있지만, 나머지 사진들은 다 어쨌는지 모르겠다.






선생께서는 세계각지를 열심히 돌아다녔으나, 그만 고산병에 걸려 고생하다 운명하신 것이다.
후반기에는 동영상 카메라까지 갖고 다니셨는데, 카메라 무게에 골병들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와는 반대로 육명심, 한정식선생은 한 대의 카메라로 없는 듯 작업했다.





한국 사진계를 좌지우지했던 삼 교수 중에 먼저 떠난 분도 홍교수였고,
사진 평가도 두 선생보다 덜 되었지만, 후세에는 어떻게 평가될지 모르겠다.
결국은 붓에 불과한 카메라보다 생각이 먼저라는 것이다.






나도 예전에는 일거리용 카메라와 흑백 필름 카메라를
두 대씩 갖고 다닌 적도 있었지만,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요즘이야 콤펙트 카메라 하나만 주머니에 쏙 넣고 다니니, 너무 자유롭다.
상업용만 아니라면, 사진의 질도 전지 프린트를 해도 전혀 하자가 없다.
상대에게 위화감 주는 기관총보다 손바닥에 쏙 들어가는 권총이 좋다는 생각이다.






장에서 사진인을 만났더니, 장터 이야기가 아니라 카메라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군위장과 영덕장으로 이틀 동안 싸 돌아다녔는데,
요즘 다니는 정영신씨의 장터순례는 사진 찍는 일보다 이야기 듣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날씨가 쌀쌀해지니, 군데 군데 모닥불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지역 문화유적지도 꼼꼼히 돌아보는데, 군위하면 석굴에 안치된 ‘마애삼존불’과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스님이 계셨던 ‘인각사’가 아니던가?
그리고 영덕에는 창수면에 있는 ‘장육사’가 인상 깊었다.
눈여겨 볼 곳은 대웅전과 그 안에 안치된 건칠보살좌상과 영산회상도였다.






그런데, 영덕까지 가서 영덕대게를 맛보지 못하다니...
“에라이~불쌍한 것들”

사진, 글 / 조문호















말의 발굽에다 편자를 박는 장면이다.
말이 날 뛰지 못하게 나무틀에다 쇠사슬로 묶어 놓았다.


장제사는 편자를 박기위해 말발굽을 점검하고 있고,
말 주인 같은 사람은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다.


요즘으로 치면 자동차정비소에서 타이어 바꾸는 일일게다.
세상은 엄청 살기 좋아졌으나, 예전처럼 재미가 없다.


1969년 온양에서 찍은 홍순태선생 사진으로,
“3인의 교수전”작품집에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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