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식선생의 서거 1주기를 맞은 추모 사진전 ‘북촌’이 지난 19일 ‘갤러리인덱스’에서 개막되었다.

 

‘북촌’은 선생께서 태어나고 자란 서울의 북촌 일대를 기록한, 1978년부터 1990년대 까지의 북촌 풍정이다.

 

선생께서는 생전에 기록사진이야말로 사진의 존재 이유임을 말씀하셨다.

그래서 어린 시절을 보낸 북촌을 기록했는데, 찍을 무렵부터 서울은 변하고 있었다고 한다.

 

기록사진은 된장이나 와인처럼 묵혀야 더 깊은 맛이 난다는 말씀처럼,

30년이 지나서야 ‘북촌’사진집을 펴내며 작품을 발표했다.

 

선생께서 남긴 리얼리즘 사진으로는 ‘북촌’ 외에도 ‘흔적’과 ‘마구간 옆 고속도로‘가 있다.

 

사진의 예술성에 뜻을 두신 선생께서는 '중앙대' 사진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리얼리즘 사진과 결별한다.

 

그 이후부터 법문 같은 ‘고요’라는 정적감 도는 예술사진에 천착하며 일가를 이루었다.

 

그러나 지금도 우리나라 사진사에 주명덕선생의 검은 풍경보다 ‘혼혈아’가 먼저 오르고,

한정식선생의 ‘고요’보다 ‘북촌’이 호출되는 것이 무엇을 말하겠는가?

 

사진의 기록성에 초점을 맞춘 선생의 작품들은 세월에 숙성된 사진이라

보면 볼수록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켜, 마음이 따뜻해진다.

 

전시된 ’북촌‘사진에는 근대화, 도시화 물결 속에서 차츰 변해가는 거리와 골목,

가지런한 기와, 다소곳한 처마, 고즈넉한 창살,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오롯이 담겼다.

 

“이 ‘북촌’은 내 개인 기록이다.

사진으로 엮은 나의 고향이야기로, 내가 아는 서울, 내가 느끼는 서울,

내 기억 속의 서울이 여기 담겨 있을 뿐이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서울의 북촌지역이었다.

그리하여 ‘서울’하면 내게 그것은 그대로 북촌을 뜻한다.

나의 발길이 북촌에만 머문 이유요, 북촌만으로 이 사진집을 엮은 이유이기도 하다.

하기야 서울이라고 하면, 특히 옛 서울은 대개 북촌지역이 중심이었다.

따라서 이 ‘북촌’은 북촌이로되 실은 그대로 나의 서울이야기다”고 사진집 서문에 썼다.

 

한정식 ‘북촌’ -나의 서울-128페이지 230*280mm 서적 40,000원

‘북촌’ 사진집에는 흑백사진 80여 점이 실려있다.

 

추모의 시간을 가진 사진전 개막식에는 생각보다 추모객이 적었다.

 

긴 세월 강단에서 선생의 가르침을 배운 제자들은 다 어디 갔으며,

수시로 불러 모아 인사동에서 정 나누었던 주변 사진가들은 다 어디 갔는가?

‘죽고 나면 명예도, 작품도, 인연도, 아무 소용없다’는 생전의 말씀이 생각나는 시간이었다.

 

그날 개막식에는 ‘갤러리인덱스’ 안미숙 관장을 비롯하여

전민조, 강용석, 이일우, 이기명, 최연하, 김정일, 곽명우, 정영신, 한선영, 김창주씨 등

20여명의 사진가들이 모여 조촐한 추모의 시간을 가졌는데,

공교롭게도 이 전시를 기획한 ‘눈빛’ 이규상 대표마저 늦은 코로나에 걸려 참석하지 못했다.

 

전시는 7월 31일까지 열린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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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원의 밤과 산, 사진전이 지난 823일부터

사진위주 류가헌에서 열리고 있다.

 

동물사진가 박찬원은 못 하는 게 없다.

사진가이자 수필가며 수채화가다. 모두 동물이 주제다.

동물을 찍어도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찍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동물에 매달려 심층적으로 파고든다.

동물을 통해 생명의 의미와 삶의 가치를 되새기고

동물과 인간과의 관계를 성찰하는 것이다.

 

그는 40년 가까이 대기업 임원으로 일했다.

퇴임한 후 8년 전부터 사진을 했으나

오랫동안 마케팅 전문가로 일한 덕인지 사진 접근방식이 치밀하다.

하나의 관심 가는 주제가 정해지면 2년간 100번의 촬영을 진행하여

책과 전시를 만들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는 식이다.

 

그동안 말, 돼지, 소 등 가축을 주제로 열두 차례의 전시를 열었는데,

이번에 보여 준 소 사진은, 소의 초상과 일상을 보여 준 지난 전시와 달리

소의 형상을 통해 작가의 사유가 들어간 추상이다.

 

작업도 주로 야간에 진행했다는데,

어둠 속에서 드러난 역광의 선은 산이 되고 길이 되었다.

 소 등은 산 능선이 어우러진 산수도를 연상시킨다.

 

 젓소의 태반에 나타난 실핏줄은 마치 지구본 같았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지구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또 하나의 운명인 것이다.

지구본은 소우주(小宇宙)인 셈이다.

 

무엇보다 마음을 끌어당기는 이미지는 어둠 속에 비친 소의 눈동자다.

커다란 눈망울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처럼 슬퍼 보인다.

인간을 위해 죽도록 일만 하다 몸둥이 마저 인간의 먹이가 되어야 하는

소의 짓궂은 팔자가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박찬원의 밤과 산, 은 작가의 동물에 대한 깊은 사유의 결정체이자 소우주이다.

작가의 삶과 사진, 사유가 빛나는 전시다.”는 사진비평가 최연하의 말처럼

동물 사랑에 의한 교감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박찬원은 작가노트에 사진은 기다림이다라고 적고 있다.

빛을 기다린다’. ‘어둠을 기다린다’,

사건이 벌어지길 기다린다’. ‘생각이 솟아나길 기다린다’.

이런 일련의 기다림에서 만난 소는 행운이란다.

 

소를 만난 것이 행운이다. ()에서 길()을 찾는다.

()에서 사진을 찾는다. ()에서 나를 찾는다.

 

전시는 94일 까지다.


글 / 조문호

 

고요_존재는 고요하다

 

한정식展 / HANCHUNGSHIK / 韓靜湜 / photography 

2022_0119 ▶ 2022_0303 / 일,공휴일 휴관

 

한정식_고요 I016 연천 2012_114×114cm

 

초대일시 / 2022_0119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KP 갤러리

Korea Photographers Gallery

서울 용산구 소월로2나길 12(후암동 435-1번지) B1

Tel. +82.(0)2.706.6751

www.kpgallery.co.kr

 

 

KP Gallery에서 2022년 1월 19일부터 3월 3일까지 '고요_존재는 고요하다' 한정식 사진전을 개최한다. 한국 사진예술을 대표하는 한정식은 '고요'의 미학을 완성한 사진가이다. 그는 1960년대부터 한국 고유의 미와 동양 철학을 바탕으로 '한국적 사진예술'의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2015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현대미술작가로 선정되어 그의 평생에 걸친 작업들을 소개하는 『한정식_고요』 전시를 2017년 개최하였다.

 

한정식_고요 H034 양양 2011_114×114cm

한정식은 과거 대상의 형상에 얽매이지 않고 존재 본질에 대한 질문과 철학적 탐구를 "고요" 작품들을 통해 소개하였다. 이번에 새롭게 소개되는 작품들은 사진을 통해 드러나는 작가의 내면의식을 추상의 형식으로 표현한 작품들로 그가 평생에 걸쳐 추구해온 사진미학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한정식은 그의 관념 속에 있는 세계에 대한 본질을 사진적 추상이라는 형식을 통해 소개하며 "사진의 예술성을 향해 사진이 추구하는 것은 추상의 세계이다. 이는 사진이 가지고 있는 주제(theme)라는 것 자체가 추상적 관념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진이 사진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대상의 존재성을 사진 위에서 지워 사진 그 자체를 제시하여야 한다." 라고 그가 지닌 '고요'의 세계를 이야기한다. ● KP 갤러리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의 정신미학과 고유한 문화정체성 위에서 한국사진예술의 근간이자 토대로서 의미있는 역할들을 제시하는 한정식 작가의 '고요' 작품들을 소개하고 사진예술을 통해 사진 본연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 KP 갤러리

 

한정식_고요 H034 양양 2011_114×114cm

공상(空像, 空相), 한정식 작가의 세계-내-이미지 ● 한정식 작가는 사진 자체가 진리(본질)가 아니라, 사진이 진리를 드러나게 하고, 진리에 이르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진리를 드러내는 방편으로, 사진 교육자이자 작가로서 사진을 대할 때 엄중하고 엄격한 절차를 중시하고 사진이 담아야 할 의미를 충분히 끌어올려 형식과 내용이 다툼이 없는 조화로운 세계를 견지했다. 「고요」가 전시되고 사진집으로 묶여 세상에 나올 때마다, 세계-대상-피사체의 동일성을 지향한 작가의 정교하고 빈틈없는, 의미로 꽉 찬 사진 재현은 좀체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형식처럼 생각됐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작품들은 감각과 지성이 교차하고 선명하게 흔들린 멈춤, 혹은 구체적인 상 속의 떨림 같은 비의(秘意)적인 자유가 흐른다. 무엇일까. 이 내밀한 이미지는. 무엇이라 말할 수 없고, 아무것도 볼 수 없는데, 그 무엇도 아닌 '어떤 것'이 '있는' 사진. 한정식 작가의 미발표작에는 그러한 것들이 (고요 속에서) 소란스럽게 생성하고 있었다. 필자는 그것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했는데, 바로 공(空)이었다.

 

한정식_고요 H034 양양 2011_114×114cm

한정식 작가의 사진에 들어 있는, 보이지 않는 이것은 공(空)이다! 이 텅 빈 이미지는, 놀랍게도 작가가 그동안 발표했던 '고요' 시리즈를 촬영한 필름 곳곳에, 사이에, 끝에 아무렇지 않게 그냥 있었고, 어떤 연유에선지 세상에 전시될 선택권을 놓친(받지 못한) 사진이다. 이 사진 옆과 위와 아래…에 있던 사진들은 밖으로 나와 자신이 작품임을 입증하고 있었다면 이 사진들은 오랜 시간 빛을 머금고만 있었다. 자신의 몸에 닿은 그때 그곳의 빛을 기억하며, 사진의 시공 속에 고요히 머물렀다. 한정식 작가의 기발표작이 사진의 본질에 닿으려는 욕망에 충실했다면, 선택받지 못한 이 사진들은 '고요'의 의미도 모르고 다만 정적 속에서, 아무것도 아닌 어떤 것을 찍은 채 숨 쉬고 있었다는 것. 이번 전시는 한정식 작가의 세계-내-이미지, 공상(空像, 空相)이 드러나는 전시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명명한 '세계-내-이미지'와 '공상(空像, 空相)'은 한정식 작가의 작업 세계의 근간을 이룬 불교의 연기설에서 영향을 받은 말이다. 세계 내 모든 존재는 상호 관계에 의해 의미 지어지거나 의미가 지워지고, 존재는 세계 속의 인연(因緣)에 따라 계속 변화한다는 것이 연기설의 요지이다.

 

한정식_고요 F014 홍천 2008_114×114cm

다양한 존재가 다기하고 다채롭게 움직이다 인연이 되어 만나고 흩어지는 것.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바라보는 일은 중요해진다.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즉, 학습 받은 데로 보는 것이 아닌, 대상이 드러낸 본무자성(本無自性)을 이해하는 것이고, 이것을 부처는 공(空)으로, 노자는 도(道)라고 일컬었다. 텅 비어 있는 것 같은데 무언가 드러나는 상이 '공상(空像)'이고, 모든 상(像, image)은 상호 연결 속에서 일어나고 이루어지는 것이 '공상(空相, co-existence)이다. 모두 세계 속에서 인연에 따라 현현(顯顯)하는 것이다.

 

한정식_고요 H052 하선암 2011_114×114cm

아무것도 찍혀 있지 않지만, 무엇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는 이 사진들은 카메라의 광학적 작용과 그곳에 있었던 대상, 공간의 상호침투로 만들어낸 이미지다. 미술사적으로 접근하면 추상(抽象)이라 하겠지만, 단순히 상이 있고 없고(有無)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관계에 의해 새롭게 형성되는, 노자가 이 이미지를 본다면 유무상생(有無相生) 이미지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구상과 추상을, 단어 그대로 풀이하면, 구상(具象)은 상(象)을 갖추는(具) 것이고 추상(抽象)은 여러 부분 중에 하나를 뽑아낸(抽) 낸 상(象)이다. 구상은 추상을 포함하기도 하고 때로 추상이 구상이 될 수도 있는, 둘은 사실 한 몸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대개 구체적인 상이 보이지 않거나, 구상의 반대 항에 추상을 놓지만, 이항 대립적으로 둘을 해석하려고 할 때 언어 프레임에 갇히는 형국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인식론적인 측면에서 보면 별개일 수 있으나 존재론적으로 둘은 서로 의지, 보충, 보완하며 존재한다.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말과 침묵, 양달과 응달, 빛과 그림자, 흑과 백으로 팽팽한 긴장 관계에 놓여 있는 이미지. 한정식 작가의 텅 빈 이미지는 '모든 것의 이미지'로 관객과 함께 공상(空相)하고 공생(共生)하며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는 사진이다. ■ 최연하

 

한정식_G066 화엄사 2010_114×114cm

영혼에 닿도록 '고요'한 ● '고요'한 한낮이었다. 어느 '고요'에서는 나뭇잎 하나 물에 떴다. 물 속 그림자 한 점 물고기 되어, 물 바깥 햇살 우러르며 헤엄친다. 또 다른 '고요'에서는 물이 가득 찬 하늘로 돌이 떠오른다. 그 돌은 부석사로 날아가려는 걸까? 물보다 공기보다 가벼운 돌을 본다. 물이 돌알을 낳고 있다. 난생설화는 공기 속에도 있다. 물이 사랑으로 돌을 들어 올렸고, 또 돌은 물의 영혼으로 제 마음을 비워 차츰차츰 가벼워진다. 그런 초현실을 현실로 사고 있는 사물들의 세상이 한없이 고요하다. 사물들의 영혼이 그 고요를 징검다리 삼아 이웃으로 나들이 다닌다. ● 앙리 부르통은 초현실주의를 '외과 수술대 위에서의 우산과 재봉틀의 만남'이라 했다. 한정식의 '고요' 작품을 처음 본 날, 부르통은 내 머릿속으로 들어와 초현실주의 정의를 다시 썼다. 많은 '고요'들은 순수사진이어서 형태를 알아볼 수 있지만 묘하게도 초현실로 가는 추상이다. 그는 대상의 아름다움에 관심두지 않았다. 특별히 눈길을 끄는 존재들은 그의 사진 눈빛을 받지 않게 된다. 물과 공기처럼, 자연과 일상에서 늘 함께 살아가면서도 의식하지 않았던 온갖 시시콜콜한 것들을 불러내 새롭게 볼 수 있게 한다. 그는 모든 사물에 고정된 이미지를 벗겨 내려했다. 이름을 바꿔 불러주려 했다. '고요'는 존재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다. 무기물이라 하더라도 그 존재가 품고 있는 어떤 감정 상태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뭣보다 자신이 그것을 느낄 수 있어야 했다. (인간이 아닌) 사물들이 감정을 드러내고 또 작가 자신의 마음밭이 그 감정을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떤 조건 또는 어떤 상태가 '고요'였다. 그 고요는 오직 고요만으로 소통되고 교감되었다. 자신의 내면이 대상의 내면만큼 고요해질 때, 그는 대상과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나는 너다, 너는 나다, 라고 속삭이는 그때, 바로 그때, '고요'가 태어났다. ■ 박인식

 

 

Vol.20220119b | 한정식展 / HANCHUNGSHIK / 韓靜湜 / photography




이윤기씨의 빛 그림 사진전 ‘시간을 담다’가 지난 2일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렸다. 





전시된 사진들은 그림처럼 아득한 그리움을 안고 있었다.

싱그러움이 느껴져, 젊디 젊은 사진가의 작업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사진을 찍은 이윤기씨는 칠순을 훌쩍 넘긴 노사진가라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은 유수같이 빠르다.
그의 사진에는 인생무상에 대한 안타까운 그리움이 배어있다.
이윤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흘러가는 그리움의 시간이고 세월이었다.
연분홍 빛 아름다웠던 사랑의 시간도 담겨있고, 힘겹고 암울한 고난의 시간도 담겨있다.
돌이킬 수 없는 억겁의 세월은, 장면 장면마다 그리움이 절절했다.






이윤기씨는 바람에 날려가는 시간과 세월을 붙들어 인화지에 뿌려 놓았다.
얼핏 보면 느린 셔터로 쉽게 찍을 수 있는 이미지로 볼 수도 있으나,
그의 사진에는 깊은 내공이 쌓여있다.
어쩌다 한 두 장이라면 우연성에 기대할 수도 있겠으나, 그건 아니었다.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형상화하기 위해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찾아낸 기억이다.





그리움의 시간들은 너무 아름다웠다.
불어오는 바람에 그리움이 꽃비처럼 흩날린다.
그렇게, 봄날은 가는 것이다.






사진 평론가 최연하씨는 서문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작가가 붙잡고 싶은 십 분의 일초는 그가 사진에서 되찾고 싶었던 시간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근거인 풍경-세계 속으로 들어가, 살아왔고 살아가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겹쳐 운동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특이한 것은 무엇이 어떻게 다가올지 예측할 수 없는 우발적인 풍경이지만, 시간의 눈들이 분명하게 포착되어 있다는 것이다.

매 순간 세계가 선사하는 빛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기뻐하는 작가의 눈빛도 반짝인다. 자유롭고 귀한 몸짓이다.

작가는 아마도 작가 속으로 들어 온 바람과 더불어 ‘바깥’의 바람을 사유하고 있는 것이 아닐지,

바깥(피사체)이 사진가의 내적 원리가 될 수 있음을 이윤기의 빗금 그어진 풍경을 보며 생각한다."






이 전시는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15일까지 열린다.






지난 6일 정오 무렵 ‘갤러리 브레송’을 찾았다.
누구 전시인지 어떤 사진인지도 모른 체, 김남진관장의 부름에 따른 것이다.
마침 밥 먹으러 갔는지, 김남진씨도 전시작가도 없었다.
사진을 돌아보며, 작가 이윤기씨가 누군지 궁금했다.




아름다운 풍경만 찾아다니며 복제하듯 찍어대는
아마추어 사진들에 진저리를 내 온 터라 신선하게 다가왔다.
많은 생각을 끌어내는 사진에서 어렴풋이 작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몽환적이고 추상적인 이미지에서 젊은 감성이 묻어났다.
전시장에 들어오는 작가를 만나보니, 성함만 기억 못했지, 잘 아는 분이었다.
전시 오프닝마다 숱하게 만나왔고, 술잔도 여러 차례 나누었던 분이 아니던가.
그 분의 사진도 처음 보았는데, 사진으로 이윤기씨를 확실히 알게 된 것이다.






전시를 돌아 본 후, 사무실에 들어가 김남진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사진가 박옥수씨가 들어왔다.

충무로에서 숱한 세월을 보낸 분이라, 이야기 듣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젊은 시절에는 문선호선생 스튜디오에서 일한 적도 있다며,
문선호선생의 세심한 성격과 사업적 수완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금성출판사’와 손잡고 현대미술가100인선 화집을 만들어 돈도 많이 벌었단다.
어느 날 스튜디오에서 누드 모델을 촬영하신 후, 그 이틑 날 갑자기 돌아가셔서
복상사하셨다는 풍문이 돌았는데, 사실이 아니란다.






한 때는 제일 행복한 죽음이 복상사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어차피 죽을 것, 황홀하게 마감하고 싶지만 살아남은 사람 생각에 안 될 것 같았다.
이윤기씨 사진처럼, 아름다운 꽃비를 날리고 싶었는데...



사진, 글 / 조문호





































앙드레 케르테츠展 / André Kertész / photography
2017_0609 ▶ 2017_0903 / 월요일 휴관



앙드레 케르테츠_몬드리안의 안경과 파이프 Mondrian's Glasses and Pipe_젤라틴 실버 프린트_1926

Ministère de la Culture et de la Communication-

Médiathè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Grand Palais / Donation André Kertész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주관 / 성곡미술관

협력 / 프랑스문화부_주드폼 국립미술관_디크로마 포토그라피


도슨트 / 02:00pm, 04:00pm / '문화가 있는 날'은 07:00pm 추가 진행


관람료

성인(만 19~64세) 10,000원 / 청소년(만 13~18세) 8,000원

어린이(만 4~12세),국가유공자,장애인,만 65세 이상 6,000원

단체 20인 이상 20% 할인 / 만 4세 미만 어린이 무료관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문화가 있는 날(매월 마지막주 수요일)_10:00am~08:00pm*

전시종료 30분전 매표 및 입장 마감



성곡미술관

SUNGKOK ART MUSEUM

서울 종로구 경희궁길 42(신문로 2가 1-101번지)

Tel. +82.(0)2.737.7650

www.sungkokmuseum.org



성곡미술관은 여름특별전으로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작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앙드레 케르테츠(André Kertész, 1894-1985)의 사진전을 개최한다. 케르테츠는 70여 년의 오랜 활동 기간 동안 부다페스트, 파리, 뉴욕을 옮겨다니며 작품 세계를 펼쳤다. 그는 사조나 유행에 얽매이지 않고 사진을 통해 일기를 쓰듯이 자신의 솔직한 감성을 자유롭게 담아냈다. ● 독학으로 사진을 익힌 케르테츠는 "내가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표현한다"는 자신의 작업원칙에 충실했으며, 나아가 사진매체의 잠재적 표현 가능성들에 대해 연구했다. 그는 새로운 과학 기술을 기반으로 한 신속, 정확한 카메라를 통해 일상의 풍경을 치밀한 화면 구성과 흑백의 농담으로 더 깊고, 세밀하게 담아내었다. 케르테츠는 어떤 사조나 그룹운동에도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다다, 초현실주의, 구성주의 같은 모더니즘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때로는 그들을 앞서나가는 혁신적인 작업을 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이 "우리가 해온 것들은 모두 그가 처음으로 했던 것"이라는 말로 칭송했던 케르테츠는 브라사이Brassaï, 로버트 카파Robert Capa 등 사진의 거장들을 리드하며, 향년 91세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작업을 이어갔다. ● 이번 전시는 그가 일생에 걸쳐 작업한 189점의 작품들을 헝가리(1912-1925), 파리(1925-1936), 뉴욕 시기(1936-1985)로 나누어 순차적으로 선보인다. 케르테츠는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84년 필생의 작품들을 보존하겠다는 열망으로 10만 점의 원판 필름과 1만5천 점의 컬러 슬라이드 소장본을 프랑스 문화부에 기증했다. 본 전시는 그 원판으로 프린트한 모던 프린트로 구성되었다. ● "나는 빛으로 글을 쓴다." / "나는 기록하지 않는다. 나는 해석할 따름이다." / "좋은 사진은 우리 눈에만 뭔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 깊은 곳을 건드린다. 두 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의 시각은 항상 이미지와 영혼 사이를 오간다." / "나는 오직 파리로 가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파리에 갔다. 그 이유는 모르겠다. 나는 한동안 생활할 수 있는 약간의 돈이 있었고, 그리고 내겐 창조적 힘과 꿈이 있었다." (앙드레 케르테츠)


시기별 작품세계 - Ⅰ. 헝가리 시기(1912-1925) ● 1894년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앙드레 케르테츠는 1912년 처음으로 카메라를 구입한 후 마치 일기를 쓰듯 전원의 목가적 생활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촬영했다. 특히 남동생 예뇌Jenö를 비롯한 가족들, 친구들은 작가의 모델로서 훌륭한 피사체가 되어 주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오스트리아-헝가리군으로 징집된 그는 전장에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았는데, 드마라틱한 전투 장면보다는 군인들의 소소한 삶의 모습에 더욱 관심을 보였다. ● 이 시기부터 케르테츠 사진에는 휴머니즘적 감수성과 아방가르드적 실험성의 전조가 동시에 드러난다. 사진작가로서 첫 발을 내디딘 그는 자유로운 사고와 감성에서부터 발원하는 영감을 기반으로, 자신이 애정을 두고 있는 사람들과 사물들, 풍경들을 시적이고, 서정적으로 표현하고자 다양한 방식을 모색했다.


앙드레 케르테츠_수영하는 사람 Swimmer Under Water_젤라틴 실버 프린트_1917

ⓒ Ministère de la Culture et de la Communication-

Médiathè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Grand Palais / Donation André Kertész



Ⅱ. 파리 시기(1925-1936) ● 1925년, 현대미술의 본거지인 파리의 몽파르나스 구역에 자리를 잡은 케르테츠는 다다, 초현실주의, 구성주의 등 모더니즘 예술운동의 선구자들과 활발하게 교류한다. 특히, 만 레이Man Ray, 몬드리안Mondrian, 브랑쿠시Brancusi, 샤갈Chagall, 그리고 콜레트Colette와 짜라Tzara와 같은 예술가들과 친밀하게 지내며, 파리에서 예술가로서 자리를 잡아갔다. ● 케르테츠는 파리의 수많은 신문과 잡지에 자신의 사진 작품을 출판하였고, 주요 전시에 작품을 출품하는 등 다방면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필름과 포토Film und Foto』(1929) 국제전에 만 레이와 함께 파리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작가로 참여한다. 1933년 여성의 누드를 뒤틀리게 표현한 「왜곡」 시리즈를 내놓아 보다 전위적인 시각적 실험을 전개했다. 이러한 왕성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케르테츠는 자신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특정 예술운동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대신 모더니즘의 실험적 조형 언어인 '거울 유희', '반사', '그림자와 복제', '전면 구성', 혹은 '야경과 명암의 대비' 등을 자신의 표현기법으로 소화하여 작업에 반영함으로써, 자유로운 정신과 새로운 비전을 추구하는 사진적 아방가르드의 주역이 된다.



앙드레 케르테츠_포크 The Fork_젤라틴 실버 프린트_1928

ⓒ Ministère de la Culture et de la Commun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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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케르테츠_깨진 원판 Broken Plate_젤라틴 실버 프린트_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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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 Distortions」(1933) 시리즈 ● 1930년 『뷔VU』 잡지가 카를로 림Carlo Rim 신임 편집장의 초상화를 앙드레 케르테츠에게 주문하자, 그는 편집장을 놀이동산의 '뒤틀린 거울' 앞에서 포즈를 취하게 한 후 촬영하여 괴물처럼 변형된 놀라운 이미지를 제작한다. 이어서 케르테츠는 1933년 도색 잡지 『미소Le Sourire』의 주문을 받아 한층 더 왜곡된 여성 누드 사진을 제작함으로써 자신의 예술적 실험을 한발 더 전진시킨다. 이렇게 탄생한 「왜곡」 시리즈를 케르테츠는 '파리 시기'에 본격적으로 작업하였다. 하지만 이 실험적 작업은 이미 '헝가리 시기'부터 일종의 '광학적 변형' 또는 '그림자의 투영'에 관심을 두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기하학적 구도가 돋보이며 빛을 효과적으로 다룬 「수영하는 사람」(1917)과 「포크」(1928)는 「왜곡」시리즈의 전조를 알리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기이함과 기괴함을 통해 역설적으로 여성신체의 신비로움을 깊게 탐닉한 「왜곡」 시리즈는 이미지에 대한 케르테츠의 반 사실적, 반 묘사적 개념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축 쳐진 목과 늘어난 발, 기괴하게 뒤틀린 이미지들은 곡선으로 이뤄진 루벤스Rubens의 풍만한 여성의 몸이나 앵그르Ingres의 지나치게 긴 척추를 가진 여인의 메아리로 보이기도 하고, 또는 벨머Bellmer의 절단되고 불구가 된 인형의 이미지를 상기시킨다. 한편으로 이러한 시도는 초현실주의가 추적한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실험과도 맞닿아 있는데, 당시 케르테츠를 비롯해 만 레이, 브라사이, 카르티에 브레송과 같은 작가들 역시 인간의 무의식의 세계를 이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현실을 변형, 왜곡시키는 실험적 이미지들을 다수 제작했다. 이러한 「왜곡」 시리즈는 당시에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한참 뒤에 재조명되었는데, 뉴욕 시기의 후반부인 1976년에 이르러서야 12컷의 왜곡 이미지로 구성된 책이 출판되었다


앙드레 케르테츠_샹젤리제 Champs-Elysée_젤라틴 실버 프린트_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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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뉴욕 시기(1936-1985) ● 1936년 케르테츠는 사진 대행사 키스톤Keystone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고 아내 엘리자벳과 함께 뉴욕으로 떠났다. 하지만 계약은 1년 남짓 지속된 후 파기되었다. 『보그Vogue』, 『하퍼스 바자Harper's Bazzar』 등 다수의 잡지사들이 케르테츠의 작업에 관심을 보였지만, 그의 사진은 대중적 이미지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37년 뉴욕의 PM갤러리와 1946년 시카고미술관에서의 전시회에도 불구하고 뉴욕에서의 그의 생활은 심적으로 물질적으로 어려움에 봉착했다. 적은 수익, 연이은 실패, 「왜곡」 시리즈에 대한 몰이해와 외국인으로서의 장벽 등이 결국 그에게 우울증을 안겨주었다. 1944년 미국 시민권을 얻은 케르테츠는 1947년 『하우스 앤 가든House & Garden』지와의 작업을 위해 콘데 나스트Condé Nast 그룹사와 독점 계약을 체결했지만, 주로 인테리어 사진을 제공해주던 그는 안정된 수입원을 확보할 수는 있었으나 상업적 작업을 지속하기가 힘들었고 결국 1961년 은퇴를 한다. ● 아울러 워싱턴 스퀘어가 내려다보이는 5번가 12층 아파트에 정착한 1952년 이후 다시 작업의 열정을 되찾기 시작하는데, 아파트의 테라스에 머물며 망원렌즈의 줌을 이용하여 주변의 생활을 포착하는 작업에 매진하였다. 그러나 그는 '스트리트 포토그래퍼'처럼 거리와 장소를 옮겨 다니며 시대적, 사회적 장면에 몰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광장에 머무는 사람들의 특이한 행태와 풍경을 오랜 시간 기다림 끝에 마치 '발견된 오브제'처럼 찾아내었다. 케르테츠에게 뉴욕은 자신의 다양한 생각들의 공명상자와도 같아서, 그 생각들을 사진이라는 메아리로 돌려주는 것뿐이었다. 직관적이고 암시적인 그의 스타일은 뉴욕의 황폐한 벽돌 담, 그림자나 철근, 외부 계단의 얽힘 속에 자신의 멜랑콜리를 주입하기에 충분했다. ● 케르테츠의 예술성은 삶의 후반에 들어서며 높이 평가받기 시작했다. 1959년 『인피니티Infinity』지가 게재한 케르테츠에 관한 기사는 그의 명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고, 마침내 1964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하게 된다. 이 전시를 계기로 세계 주요 도시에서 그의 작품을 소개하는 순회전이 이어졌다. 또한 이즈음 그는 뉴욕으로 건너오기 전 파리에 남겨 두었던 원판 필름 상자를 찾아왔다. 헝가리와 파리 시기의 자신의 작품들을 다시 접하게 된 케르테츠는 생기를 회복할 수 있었다. 이어서 발행한 두 권의 책 『나는 파리를 사랑한다J'aime Paris』(1974)와 『뉴욕에 대하여Of New York』(1976)는 케르테츠가 파리와 뉴욕의 서로 다른 문화 환경 속에서 겪은 갈등을 보여준다. 1977년에는 파리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에서 케르테츠의 개인전이 열렸는데, 안타깝게도 부인 엘리자벳이 전시 개막 직전에 사망한다. 이후 케르테츠는 세상을 떠난 엘리자벳에 대한 사랑을 담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다수 제작한다. 그에 따르면 폴라로이드는 "작품의 내재적 요소를 보다 더 수월하게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었다. 케츠테츠는 1985년 9월 28일 뉴욕 자신의 집에서 세상을 떠났다.



앙드레 케르테츠_길 잃은 구름 Lost Cloud_젤라틴 실버 프린트_1937

ⓒ Ministère de la Culture et de la Communication-

Médiathè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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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케르테츠_우울한 튤립 Melancholic Tulip_젤라틴 실버 프린트_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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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t. RMN-Grand Palais / Donation André Kertész



라이프Life』지 편집장은 1937년 케르테츠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 그의 작품을 게재하기를 거절했는데, 왜냐하면 그의 이미지들은 "너무나 많은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케르테츠의 사진들은 우리를 반성하게 만들고 문자 그대로의 뜻과는 다른, 어떤 의미를 암시했기 때문이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카메라 루시다Camera Lucida』 중)성곡미술관


전시연계 특별강연회 (장소 / 성곡미술관)

1. 앙드레 케르테츠와 모더니즘 예술운동 | 6월 24일 (토) 2-4PM   - 박상우 (중부대학교 사진영상학과 교수)

2. 앙드레 케르테츠의 헝가리와 파리 시기의 사진 | 7월 8일 (토) 2-4PM   - 진동선 (사진평론가, 현대사진연구소 소장)

3. 미국 현대사진에 대한 앙드레 케르테츠 | 7월 15일 (토) 2-4PM   - 박상우 (중부대학교 사진영상학과 교수)

4. 앙드레 케르테츠의 뉴욕시기의 사진 | 7월 29일 (토) 2-4PM   - 진동선 (사진평론가, 현대사진연구소 소장)

5. 포토저널리즘과 앙드레 케르테츠 | 8월 12일 (토) 2-4PM   - 이기명 (『사진예술』 발행인)

6. 스냅사진과 그 대가들 | 8월 19일 (토) 2-4PM   - 최연하 (사진평론가, 독립큐레이터)


* 당일 전시 입장권 소지자 강연회 무료 참석

* 이메일 info@sungkokmuseum.org 로 사전 신청가능

케르테츠 패스 30,000원 



Vol.20170610e | 앙드레 케르테츠展 / André Kertész / photography


다큐사진가 엄상빈 선생과 몇몇 전시를 함께 돌아보기로 약속한바 있었다.

지난 3일 오후1시무렵, 통인동 메밀꽃 필 무렵에서 엄선생을 만났다.






제일먼저 사진위주 류가헌부터 들렸다.

그 곳에는 박찬원씨의 숨 젖 잠이란 제목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장에 돼지 사진들이 걸려있고, 스피커에서 들리는 돼지들의 거친 숨소리는

마치, 돼지우리에 들어 온 느낌을 주었다.


오로지 고기로 왔다 고기로 가는 돼지를 통해, 생명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었다.

, 생명의 의미를 사람에게서 찾는 게, 더 빠르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상빈선생은 사람 찍기가 어려우니, 그 기에 이르는 과정일 것 같다고도 했다.  

그 전시 사진들은 눈과 귀는 빠져들게 하였지만,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두 번째는 창성동 온그라운드에서 열리는 차장섭씨의 한옥의 ’을 보러 갔다.

이 전시는 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보았으나, 시간에 쫓겨 꼼꼼히 살피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침 전시작가인 차장섭교수가 자리를 지키고 있어, 반가운 만남의 시간도 되었다.

건축부문, 전문 갤러리인 온그라운드는 적산가옥 골격을 그대로 살린 독특한 전시장이었다.


한옥 벽의 조형미에 빠져, 10년에 걸쳐 전국400여개 고택에서 찾아낸 한옥 이미지는 매혹적이었다,

자연스런 비대칭구도의 어울림은 마치 선사의 붓길 같기도 하고, 잘 이해되지 않는 추상화 같기도 했다.

천장 판자 사이로 비쳐내린 햇살의 그림자와 어울려, 한옥의 현장감까지 더해 주었다.

    







그 때 마침 다급한 차교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제~ 아제~”라 불렀는데, 유리창 넘어로 고향 친척 한 분이 지나가는 것을 발견한 모양이다.

전시장을 찾아 헤 메는 것을 먼저 알아차렸는데, 두 분 반가운 만남에 슬며시 빠져나왔다.





세 번째 들린 곳은 옥인동 갤러리 룩스에서 열리는 안옥현, 김병규의 넌 벽에 박혔어.

곳에서 작가인 안옥현씨와 사진평론하는 최연하씨도 만났다.


선생님은 여자 가슴사진을 춘화로 알고 오셨구나라는 농담을 받았는데,

내가 여자 밝히는 게, 동네방네 소문난 것 같았다.

”아이구! 너무 그러지마쇼. 여자 안 좋아하는 사내 있으면 한 번 나와 보라 그래요.“


그리고 전시된 사진들의 감정묘사 하나는 확실했다.

여인들의 리얼한 표정들은 마음 속에 감추어진 감정이 솔직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젖가슴을 통해 욕정의 찌꺼기까지 다 보여주었다.

 







네 번째는, 최연하씨의 안내로 일정에도 없던, 구기동 아트 스페이스 풀 퇴폐미술전에 들렸다.

전시 제목 자체가 왠지 친근감이 들었다. 내가 퇴폐적이라 그럴까? 아니면 퇴폐적인 현실 때문일까?

먼저, 퇴폐미술하면 독일 나치정당이 작품을 퇴폐미술로 규정해 문제를 일으켰던, 1937퇴폐미술전이 떠올랐다.

 

권용주, 김웅현, 안경수, 오용석, 옥인 콜렉티브, 임유리, 장파, 전소정, 정덕현 등의 작가들이 참여해

회화, 비디오, 조각. 아카이브 설치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었다.


전시기획자인 안소현은 나치의 퇴폐미술전과는 반대로, 예술이 먼저 사회의 경직성과 편견을 드러내,

사회를 규정해보고자 했다고 적어 놓았다.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바르게 살자라는 등의 문구가 적힌 돌덩이 형상에도 실소를 머금었지만,

한나라당이라 세겨진, 긴 나무 현판을 옮겨 놓은게, 더 죽였다.







 

오영석씨의 작품은 남성의 아름다운 신체와 동성애 장면을 마치 흔들린 것 처럼 보여 주었다.

한 화면에 화려한 색감으로 풀어내, 마치 금기와 환상 사이를 오가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오랜 동안 권력자들이 쳐 놓은, 금기의 울타리에 주눅 들어 살아 온 민족이다.

한 번 금기로 정해지면, 그 틀을 벗어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는 퇴폐 아닌 퇴폐도 많지만, 퇴폐로 분류되어야 할 더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들린 동아일보 일민미술관에는 포르투칼의 영화감독 페드로 코스타와, 조각가 후이 샤페즈의

멀리 있는 방이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러나 너무 불친절한 전시였다.

입장료를 받았지만, 아무런 안내조차 없었다.




처음 전시장에 들어서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둠 속의 흐릿한 형체가 떠올랐다. 소재는 강철인데, 강철 같아 보이진 않았다.

마치 먹물을 잔뜩 머금은 붓을 공중에 휘두른 듯, 흐드러진 곡선들이 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조각들도 마찬가지다. 강철 조각들은 육중함을 뽐내기는커녕 날아오를 듯 가벼워 보인다.

어떤 것은 풍선처럼 공중에 뜬 것 같았고. 어떤 것은 천으로 만든 가림막처럼 천장으로부터 늘어져 있다.


이 가벼운 강철 조각들 사이에는 과묵한 영상들이 반복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카메라는 표정 없는 인물을 관찰하였고, 모니터의 흐릿한 빛들만 전시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멀리 있는 방'이란 조각과 영상 이면의 관념이 공진하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여러 전시를 돌아보며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일민미술관'을 제외한 모든 전시가 무료였지만,

관람객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작가들의 헌신적인 노고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관심두지 않았다.

돈에 갇혀, 창살없는 감옥에 사는 많은 대중들이 불쌍하게 여겨졌다. 그들은 작가들이 불쌍하게 보이겠지만...


작가들의 예술을 향한 일방적인 짝사랑도 가슴이 미어터지지만,

무더위에 못 견뎌, 거리에 더러누운 노숙자들의 모습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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