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3일 강남사거리의 미진프라자 22층에 자리한 ‘스페이스22’(02-3469-0822)를 찾았다.

좀 늦어 열림식은 끝난 후였고, 삼삼오오 모여 음식을 먹거나 사진들을 보고 있었다.

주인공 안성용씨를 비롯하여 정진호, 이규상, 엄상빈, 김문호, 성남훈, 이갑철, 고정남, 조성기, 이 민,

곽윤섭, 신현림, 이주영, 안미숙, 정영신, 이은숙, 오윤택, 차재훈, 손진국씨 등 많은 분을 만날 수 있었다.


난 안성용씨를 잘 모른다. 단지 그 말 많던 최민식사진상 때문에 이름 석자를 알게 된 것이다,

사진도 인터넷에 뜬 두 사진가의 출품사진만 보았을 뿐이다.

수상자 최광호씨의 사진과 밀려난 안성용의 사진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흥분 했던 것은

최민식선생의 인간을 향한 철학이 상의 기준에 배제되었다는 점과 고질적인 갑질에 대한 분노였다,

여지 것 끼리끼리 나누어 먹어 온 사진판의 상이란 게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지만,

아직까지 사진계의 더러운 풍토가 변하지 않고, 젊은 사진가들의 앞길을 막는 걸, 그냥 볼 수 없었다.






나에게 카메라를 들게 했던 최민식선생을 우습게 보는 모멸감도 작용했겠지만,

사진판의 더러운 갑 질을 이번 기회에 뿌리 뽑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상이 주는 명예보다, 삼천만원이나 되는 상금에 다들 관심이 많았을 것이다.

다큐사진가들의 삶이란 하나같이 빈궁하기 그지없으니, 누군들 거금을 탐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돈을 걸고 작품 가치를 판단한다는 것도 캐캐 묵은 일이지만,

얄팍한 논리를 앞 세워 칼을 휘두르는 꼴 자체가 웃기는 짜장면이었다.

사진의 우열에서 게임이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은, 한 작가가 그 곳에 집착해 온 세월의 두께였다.

더구나 공모한 사진이 다큐멘터리사진이 아니던가. 잘 찍고 못 찍은 문제는 그 다음의 문제였다.

행사장에 몇 번 들려 찍은 사진과 4반세기를 지켜 본 사진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안성용씨는 특정지역을 찍었지만, 그 곳에 사람이 없었다면 긴 세월동안 찍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다큐멘터리사진은 사람이 우선이 아니던가?

단지 따뜻한 정감이 감도는 인간애는 배제되었지만, 사진에 드러난 사람을 통해 뒤틀린 삶의 반성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안성용씨는 산업사회에 대한 문명비판이라거나 철학적 성찰,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라는 점을 작업노트에 밝혔지만,

그 보다는 그 지역에 대한 각별한 연정을 품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한 지역에 그토록 집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찍어놓은 포항 송도 사진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 많은 사진 속에 선택된 사진들을 보면

하나같이 을씨년스러운 바다풍경이거나 아이러니하게 긴장감이 감도는 사진만 골라냈다.

마치 사실과 허구, 사진과 예술의 경계점을 보는 듯하다.






그의 사진에는 변해가는 포항 송도에 대한 깊은 연민의 정이 베어있었다.

아마 인간성 상실을 비판하는 것 같다.

이 전시는 24일까지 열리고, 10일 오후4시에는 작가와의 만남도 있다.

'눈빛출판사'에서 발행하는 눈빛사진가선 안성용의 '포항 송도'시진집도 출판되었다.
가격은 12,000원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스크랩] 서울문화투데이 2016년 9월26일

▲조문호 사진가

부정심사 의혹 매듭짓기 위한 토론회 열렸으나 사진인들 분노만 사

일 년 넘게 끌어 온 최민식사진상 부정심사 의혹 문제를 매듭 짓기 위한 “최민식사진상을 말하다”라는 토론회가 열렸으나, 매듭은커녕 사진인들의 분노만 샀다.

다큐사진가 석재현씨의 사회아래, 이상일 당시 운영위원장과 정주하 심사위원장, 그리고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싸워 온 이광수 사진비평가와 ‘눈빛출판사’이규상대표가 패널로 자리했다.

그런데 수상작에 반대의견을 낸 송수정씨는 물론 다른 심사위원들은 왜 부르지 않았을까? 특히 심사위원이었던 이갑철씨는 1회 수상자로서 2회 수상자 최광호씨와 아주 가까운 사이다. 그 심사에 관련된 모든 사람을 불러내어 의혹을 푸는 것이 당연하다.

이번 토론회를 통해 제2회 최민식사진상을 최광호씨에게 주기 위해 운영위원장인 이상일씨가 공모요강까지 변칙적으로 바꾸어가며 주도면밀하게 준비한 것이 드러났다. 공모요강에서 인본주의와 사회정의를 추구한 '최민식선생의 사진철학을 지향한다는 공모 목표를 삭제했고 '미발표작'으로 제한한 규정도 삭제했다. 이 두 가지를 삭제하고도 아무런 공지도 하지 않았다.

최광호씨 사진은 기 발표작인데다, 최민식선생의 사진철학과는 전혀 동 떨어졌으니, 어찌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 하지 않겠는가?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볼 수 없는 최광호씨의 ‘천제’라는 출품작에 대한 평가는 잘 알려진 사실처럼, 내세울 만한 사진이 아니다. 심지어 ‘천제’라는 출품작 제목의 한자까지 틀려 ‘천제’에 대한 정확한 뜻도 모른다는 의혹까지 샀다. 이처럼 문제투성이 작품을 밀어 붙인 것이 부정심사가 아니고 도대체 무어라 말인가?

당시 운영위원장인 이상일씨는 최민식상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최민식 사진 철학이나 심사 기준보다 명망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 옳다고 했다. 작품보다 출품자의 유명세가 권위를 세워준다는 이런 말도 되지 않는 논리가 어디 있나? 그래서 가난한 친구인 최광호씨를 지지했다는 이상일씨 발언 자체가 부정심사임을 스스로 밝힌 처사다. 그리고 이상일씨 스스로 독주한 사실들을 자랑처럼 늘어놓았다. 반성이나 사죄의 기색은커녕, 야유 섞인 웃음만 흘렸다.

여러 사람들이 사과를 권했으나, 끝까지 변명과 자기자랑만 하다 사과 한 마디 없이 끝냈다.

이것은 출품자는 물론 우리나라 전체 사진인을 능멸한 처사다. 오죽하면 이 사진상의 문제를 제기한 이광수교수가 사진인들에게 대신 사과했을까?

사실, ‘팔이 안으로 굽 는다’는 말처럼 이왕이면 가까운 사람에게 상을 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 문제에서는 대부분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공모전이나 각종 시상의 운영시스템 자체를 뜯어 고쳐야 한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해왔다.

훌륭한 원로나 중진에겐 돈보다 명예를, 열심히 현장에 매달리는 가난한 작가에게는 조그만 지원금이라도 나누어 주는 실질적인 사진상이 필요한 것이다. 제도적 개선이 더 시급했던 사진상이라, 이 문제의 핵심인 이상일씨의 사과로 화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했으나, 예상은 한참 빗나갔다.

먼저, 우리나라 사진판에 끼리끼리 나누어 먹는 관행은 원로사진가들이 먼저 만들었다. 지금 문제가 되는 비리들도 선생들께서 만들어 놓은 구태를 직계 제자들이 이어받아, 돌려 먹은 것이다. 이런 일이 터졌으면 진작에 제자들을 불러 타이르거나 이런 공론의 자리라도 나오시어 발전적으로 이끌 수 있는 충언을 아끼지 않아야 하는데, 아무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다. 하기야, 무슨 면목으로 나서겠냐마는, 그래도 나서야 했다. 대선배로서 사진계 발전에 앞서, 사회정의를 위해...

이제 시상주체였던 ‘협성문화재단’도 ‘얼씨구나’하며 '최민식사진상' 폐지로 막을 내렸으니, 저승에 계신 최민식 선생을 만나 뵐 면목조차 없다.






지루하게 끌어 온 제2회 최민식사진상 부정심사 의혹 문제를 매듭지으려는 자리가 ‘온빛사진가회’의 주선으로 지난 22일 오후4시부터 충무로에 있는 ‘영상미디어센터’에서 열렸다.

다큐멘터리사진가 석재현씨의 사회아래, 이 문제의 핵심이었던 이상일 당시 운영위원장과 정주하 심사위원장, 그리고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온몸을 던졌던 이광수 사진비평가와 ‘눈빛출판사’이규상대표가 패널로 자리했다,

그런데 안성용씨 작품을 지지한 송수정씨는 물론 다른 심사위원들은 왜 부르지 않았을까? 그들은 이 문제에서 아무런 관계가 없단 말인가? 특히 심사위원 이갑철씨는 1회 수상자로서 최광호씨와의 관계가 예사롭지 않다. 그 심사에 관련되었던 전원을 불러내 의혹을 푸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다 알고 있는 내용의 질의나 변명으로 일관된 토론보다 방청석에 앉은 사진인들의 질의 듣는 시간을 더 많이 할애했어야 했다

인본주의와 사회정의를 추구한 최민식선생의 사진철학을 지향한다는 1회 때의 공모 목적도 슬그머니 사라졌고, 미 발표작으로 한정된 공모요강이 한마디 언급도 없이 기 발표작도 가능하다는 등, 엿쟁이 마음대로 방향을 바꾸었다. 최광호씨의 출품작이 발표작인데다, 최민식선생의 사진철학과는 전혀 동 떨어진 작품이었으니, 어찌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 하지 않겠는가?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볼 수 없는 최광호씨의 ‘천제’라는 출품작에 대한 평가는 이미 박진호씨가 세세하게 밝힌 내용처럼, 일고의 가치 없는 사진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천제’라는 출품작 제목의 한자까지 틀려 ‘천제’에 대한 정확한 뜻도 모른다는 의혹까지 샀다. 그 외에도 의혹을 살만한 일이 한 둘이 아닌데, 이처럼 문제투성이 작품을 밀어 붙인 것이 부정심사가 아니고 도대체 무어라 말인가?

사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이왕이면 가까운 사람에게 상을 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라 그 문제에서는 대부분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공모전이나 각종 시상의 운영시스템 자체를 뜯어 고쳐야 한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해왔다. 훌륭한 원로나 중진에겐 돈보다 명예를, 열심히 현장에 매달리는 가난한 사진가에게는 조그만 지원금이라도 나누어 주는 실질적인 사진상이 필요한 것이다. 제도적 개선이 더 시급했던 사진상 문제였기에, 이 문제의 핵심인 이상일씨의 사과 한마디로 사진계의 화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했으나, 예상은 한참 빗나갔다.

“최민식사진상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는 유명 사진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가난한 친구인 최광호씨를 지지했다”는 이상일씨 발언 자체가 부정심사임을 스스로 밝힌 꼴이다. 그리고 이상일씨의 발언들을 종합해 보면, 자신이 이 상의 주체로서 마음대로 주물렀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으나 반성이나 사죄의 기색은커녕, 야유 썩힌 웃음만 흘리고 있었다.

토론의 장을 지켜보던 온빛사진가회 조대연회장과 ‘스페이스22’의 정진호 대표께서 사과를 유도하는 발언을 하였으나, 그는 변명과 자기자랑에만 치중하다 끝까지 사과 한 마디 하지 않고 끝냈다. 이 건 우리나라 전체 사진인 들을 능멸한 처사다. 오죽하면 토론자로 나선 이광수교수가 사진인들에게 대신 사과했을까?

“아! 이 사람 정말 구제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아마추어 단체인 ‘사협’에서 일어 난 문제라면 신경 쓸 일고의 가치조차 없다. 배울 만큼 배웠고, 옳고 그럼을 훤히 아는 자가 저지른 일이라 더 화가 난 것이다. 안타깝지만, 더 이상 토론할 대상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매장시켜, 그 뿌리 자체를 뽑아야한다는 판단을 했다.


먼저, 우리나라 사진판에 끼리끼리 나누어 먹는 관행은 원로사진가들이 먼저 만들었다. 지금 문제가 되는 비리들도 선생들께서 만들어 놓은 구태를 직계 제자들이 이어받아, 돌려 먹은 것이다. 이런 일이 터졌으면 진작에 제자들을 불러 타이르거나 이런 공론의 자리라도 나오시어 발전적으로 이끌 수 있는 충언을 아끼지 않아야 하는데, 아무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다. 하기야, 무슨 면목으로 나서겠냐마는, 그래도 나서야 했다. 노학자로서 사진계 발전에 앞서, 사회정의를 위해...


공론의 장에 참석한 사진가로는 엄상빈, 박진호, 정진호, 김문호, 김남진, 성남훈, 신동필, 강제욱, 이상엽, 조대연, 이기명, 천수림, 박이찬, 이규철, 박영규, 김주혁, 서준영, 윤정원, 황서진, 남 준, 곽명우, 이은숙, 이혜숙, 강홍구, 이세연씨 등 60여명이 좁은 토론장을 가득 메웠다.


공론의 자리가 파한 뒤에는 모두들 술집에 모여앉아 독주로 분노를 다독여야 했다. 그 파편이 튀어 우리 마누라의 가슴에 박혔다.

이제 내 갈 곳은 없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9일 벼루고 벼루던 이명동선생 댁을 방문키로 했다.
일주일 전부터 선생님께서 한 번 오라는 전화를 하셨으나
차일피일 미루다 뒤늦게 날짜를 잡게 된 것이다.

아침 일찍 전화를 드렸으나 핸드폰이 꺼져 있었다.
선생님 핸드폰은 잘 연결되지 않는 고물이라 내심 걱정되었다.
네 번째 전화에서 어렵사리 연결되어 아내와 함께 부랴부랴 약수동 자택으로 달려갔다.

마중 나온 선생님보다 밝게 웃으시는 사모님의 모습이 더 좋았다.
끼니마다 선생님께서 쑨 죽으로 연명해 그런지 초채한 모습이긴 하나
아픈 곳이 하나도 없다며 해맑은 웃음을 지어셨다.
“하도 죽을 많이 끓여 이젠 죽 박사가 됐다”며 선생님도 웃으셨다.

탁자 위에는 이번에 나온 “사진예술“8월호가 놓여 있었다.
최민식선생 사진상 논란을 대충 아실 것 같아 선생님 생각을 여쭈어 보았다.
"1968년3월1일,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만든 개인사진집이 최민식 휴먼1집이다"며
말문을 여셨다.

선생께서 추천해 동아일보에서 그 책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작가정신이나 사진들이 좋아 만들었는데, 그 일로 중앙정보부까지 끌려 같다고 한다.
거지일색으로 찍은 사진 책을 만든 것이 북한의 사주를 받지 않았냐는 것인데,
동아일보라는 배경만 없었다면 큰일 날 뻔 하셨단다.
요즘 젊은 사진가들이 최민식선생의 사진을 비하하는 것은 두고 꺼낸 말씀이시다.

황무지나 마찬가지였던 초창기 우리나라 사진의 시대적 배경부터 생각해야 한다며,
평생을 몸 바쳐 일군 업적을 얄팍한 논리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맥에 의한 수상자 결정은 사람들이 정에 약해 그런 것이지만,
이젠 바뀔 때도 되었다는 말씀을 끝으로 서둘러 일어 나셨다.

“요 앞에 잘 하는 도가니탕 집이 있으니 가자”
이번에는 제가 대접하러 왔으니 선생님께서 계산하면 안 된다고 했더니,
‘씰데없는 소리’라며 말을 자르신다.
가게 가서는 주인더러 ‘이 사람한테 돈 받으면 다시 안 온다’며 엄포까지 놓으신다.

자리를 끝낸 후 댁까지 모셔 드리겠다는 말도 일거에 뭉게버리고,
지하철 에리베이터까지 따라 내려 오셔서 민망스럽게 만든다.
“선생님 부디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사십시오.
저도 마누라 아프면 선생님께 죽 쑤는 거 배우러 올게요.”

사진, 글 / 조문호

 

 

 

 

 

 

 

 

 

 


 

최광호씨의 수상작 '天際, 숨의 풍경'

 

 

최민식사진상으로 시끄러운 즈음에 사진인은 물론 일반인들도 아는 현대사진의 흐름을 왜 강조하는지 의뭉스럽다.
기득권을 움켜 진 자들의 눈치보며 내 놓는 어정쩡한 논리에 귀가 막힐 뿐이다.


사진이 아무리 시대 흐름따라 유행처럼 변한다 해도 사진 본연의 기능인 기록의 가치는 영원불변의 사실이다.

그렇다고 시대적 흐름을 따르는 사진가들을 폄하하거나 새로운 사진 형식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수용하여 함께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동강사진상’이 사진 예술적 성취도에 따라 작가를 선정하는 상이라면, 최민식 사진상은 주최측의 시상 목적대로 사람을 대상으로 작업한 다큐사진가를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형식만 포토폴리오를 제출하는 공모형식을 띄었지, 작가주의 포상식 시상이라는 것이 두 차례 공모에서 밝혀진 것이다. 그럴러면 공모형식보다는 각 전문가들의 추천에 의해 합당한 사진가를 선출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웬만큼 이름있는 작가들은 상을 받으려 스스로 공모에 임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최민식 사진상 만큼은 작가주의 사진상에서 탈피해, 훌륭한 작업 자체에 주어졌으면 한다.

우리나라 사진상들이 오랜세월 잘못된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해 사진인들로 부터 많은 빈축을 사고 있다.

최민식사진상도 말은 예술적 성취도에 따라 시상한다고 하지만, 인맥에 의해 나누어먹기 식의 시상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사진상의 시상방법이나 대상을 찾는 기준이 주최 측의 목적에 따라 다양해야 하고, 제각기 상에 대한 변별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문제가 된, 발표작도 출품할 수 있다는 갑작스런 공모규정 변경도 그렇거니와 공모요강에 그 내용을 밝히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더욱이 장기 프로젝트는 이중수혜가 가능하다는 말은 특정인을 밀어주기 위한 변명같이 들릴 뿐이다.

문제를 덮으려 내놓는 입에 발린 해명들이 신물난다.

솔직히 까놓고 이야기하자.
이젠 중진작가들을 위한 포상식의 작가주의 사진상은 그만두자.
뒷자리로 물러 난 사진가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온 몸을 바치는 유능한  다큐사진가들이 너무 많다.

그들에게 시상하여 용기와 힘을 실어 주자는 것이다.
그래야 뒤쳐진 우리나라 사진의 미래가 있지 않겠는가?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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