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가야단에서 펼쳐진 신종플루 퇴치를 위한 개단제 뒷풀이 사진입니다.
비오는날 맨발로 춤을 추다 고뿔걸릴까봐 염려하여 즉흥시를 낭송해주신 황명걸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에 답해
다시 맨발로 비오는 발코니에서 춤을 추는 무나미선생님의 즉흥무는 보는이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답니다.
끝까지 마무리를 해주신 공윤희이사님 고맙습니다.


 

 

 

 

 

 

 

 

 

 

 

 

 

 

 

 

 

 

 

 


"그때 맺은 인연, 가족이 됐다" 

 


(당시 마산경찰서 부근서 음악감상실을 운영한 김의권 씨)

민병욱 기자 min@idomin.com


◇"음악감상실 DJ도 유신체제 반대" = 김의권 씨는 자칭 '히피(hippie) 1.5세대'다. 개인의 행복과 자유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

젊은 시절부터 우리 사회가 효율과 경쟁을 앞세우는 사회가 되기보다 좀 더 여유롭고, 약자에 대해 배려하는 사회가 되기를 꿈꿨다. 국민을 억압과 통제의 대상으로만 바라봤던 유신체제를 본능적으로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부산이 고향인 김 씨는 1978년 당시 마산경찰서 부근에 있던 '수림 음악감상실' 사장으로부터 DJ 제의를 받는다. 다달이 30만 원을 받는 조건이었다. 마산에서 제일 잘 나가던 DJ 월급이 8만 원이었으니, 최고의 대우였다.

"20대 초반부터 음악에 빠졌죠. DJ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사장님이 음악감상실 경영을 맡아보라고 해서 가게 세를 주면서 운영하게 됐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반전이니, 왜색이니 하면서 금지곡을 양산했어요. 문화적 통제를 아주 심하게 했는데, 그래도 '금지곡'은 다양한 경로로 구입해서 들었습니다. 아무튼, 신문과 방송이 당국의 검열을 받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방이나 음악감상실 같은 곳은 그나마 자유롭게 모여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었습니다."

김 씨는 당시 젊은이의 '정신적 스승'은 리영희, 함석헌 선생이었고,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전환시대의 논리> 등을 읽고 시국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고 말했다. 당시 DJ도 다방이나 음악감상실에서 '억압의 상징'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멘트'를 종종 날렸다고 했다.

◇부마항쟁 최고의 선물은 결혼 = 그는 부마항쟁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느냐는 질문에 '결혼'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김 씨는 음악감상실에서 자주 만나 시국을 논하던 최갑순(현재 ㈔경남여성회 부설 여성인권상담소장) 씨와 81년 결혼했다. 최 씨는 부마항쟁 관련 시위로 구속됐었다.

1978년 부마항쟁 당시 음악감상실을 운영했던 김의권 씨. 김 씨는 그 시절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김구연 기자 sajin@

"부마항쟁을 보면서 시민의 힘이라는 게 정말 대단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당시 학생지도자 그룹이 촉매제 역할을 했지만, 시민에 의한 자발적인 혁명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부마항쟁이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르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물론 드라마틱한 격렬한 싸움도 없었고, 광주 민주화 운동과는 달리 큰 희생을 치르지 않은 까닭도 작용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항쟁 덕분(?)에 우리 마누라를 만난 거나 다름없지요. 부마항쟁이 가족을 형성하는 하나의 전환점이 됐습니다. 부마항쟁으로 자유와 평등, 환경을 공통분모로 하는 수많은 사람과 맺게 된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30년 전으로 되돌아가려는 것 같아 걱정" = 김 씨는 부마항쟁으로 민주주의가 힘찬 걸음을 내디뎠지만, 우리 사회가 다시 30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했다. '안보와 조국 근대화'의 구호가 사라진 자리에 '성장 만능주의'가 똬리를 틀었기 때문이다. 30년 전에는 타도 대상이라도 분명했으나, 지금은 싸워야 할 대상이 보이지도 않는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안보에서 벗어나면 왕따를 당했는데, 요즘은 성장에 대해 조금만 이의를 제기해도 왕따를 당하지 않습니까. 부마항쟁이 일어난 지 30년이 다돼 가는데, 우리 시대가 다시 30년 전으로 되돌아갈 개연성이 갈수록 농후해지는 것 같습니다. 지금 시대는 우리의 자화상이 만든 모습입니다. 그러니 누구를 탓할 수 있습니까. 지금은 우리는 자기 자신을 깨뜨려내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사회주의'를 하면 경쟁이 좀 더 덜한 사회가 될 것 같아 여전히(?) 사회주의를 지지하고, 뒤처지거나 못난 사람을 보듬어 안고 가는 사회가 진정한 의미의 '좋은 사회'라고 말하는 김 씨. 30년 전 '그날의 히피'는 여전히 건재했다.

 


인사동에 주막"푸른별 이야기"를 차린 최일순씨가
17일부터 18일까지 신촌 "씨에트 제로"에서 공연한 일인극 사진들 입니다.

 

 

 

 

 

 

 

 


 

농심마니의 2009년 가을 산행이 지난 31일부터 11월1일 까지 정선, 만지산에서 실시되었다.
이날 산행에는 본 회의 김명성, 박인식, 조문호, 이 성, 전인경, 김정남, 강기숙씨를 비롯한 농심마니 회원 30여명이 참여하였다
정선읍 귤암리에 여장을 풀고 전야제를 치룬 농심마니 회원들은 모두들 굳은 날씨를 걱정하였으나
다행이 이튿날에는 비가 먿고 날씨가 풀려, 모두들 낙엽에 싼 산삼을 들고 산속으로 뿔뿔히 흩어졌다.
강원지회 "한국사진굿당"이 소재한 만지산의 당집 앞에서 산신제를 지내고, 4년생 산삼 200그루와 씨앗들을 심었다.

산삼을 심고난 뒤에는, 구름이 연기처럼 만지산을 휘감는 장면이 연출되어 산의 정기를 눈으로 보는듯 신비로웠다.
그 이튿 날에는 첫눈까지 내려 남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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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최종대씨 모친 장례식에서..|

 

지난 9월26일 최종대씨 모친께서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받았습니다.
서둘러 서울을 떠났으나 이미 장례행열은 끝나고 봉분을 다지는 절차가 진행되었는데,
선소리꾼의 매김소리에 상두꾼들의 '어 허 달구나'라는 뒷소리와 그들의 발질만 분주했습니다.

최종대씨 모친은 만지산에서 태어나 만지산에 뭍힌, 한 평생을 흙과 함께 살다 가신 분입니다.
오랫동안 투병하다 돌아가셨기에 대개들 호상이라고 하나 이 또한 모순입니다.
강원도 산골의 밭들은 비탈져 대개 남정네보다  여인네들이 농사의 주체가 됩니다.
평생을 비탈진 밭에서 일하며 팔 남매를 낳아 키웠으나 부양의 부담 때문에 모두들 힘들었나봅니다. 
요즈음은 집안의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급속히 가족이 해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님을 뵙기위해 가족들과 만나는 기회가 있었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기일에나 겨우 만나는 실정입니다.
그것도 기독교를 믿는 가족들이 있으면 더욱 어렵지요.

장례가 끝난 후, 고생한 동네사람들을 불러모아 저녀식사를 대접하는 자리를 만들었는데,
'사진굿당'에서는 백설기 떡을 만들어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맏 상주인 최종대씨는 장례식에서 손님치느라 고생한 부인 이선녀씨에게 하루동안 금주령을 해제해 주었습니다.
신바람난 이선녀씨의 노래소리가 오랫만에 만지산을 떠들석하게 했습니다.

 

 

 

 

 

 

 

 

 

 

 


최백호그림전 개막식이 지난 21일 오후5시30분부터 공화랑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이날 임재경, 공창호, 민 영, 무세중, 김명성, 김정남, 조준영, 공윤희,목순옥, 박인식, 조문호, 이청운, 송상욱,장경호씨 등의
본 회 회원들과 최열 환경재단이사장, 가수 장사익, 전영록, 김흥국, 김태곤, 남궁옥분씨를 비롯한 전유성, 배철수씨등 많은 연예인들이

참석하여 전시장은 대성황을 이루었다.
개막식은 최백호씨의 간단한 인사말과 김태곤씨의 단소 축하연주로 끝냈다.
전시 관람이 불가능할 정도의 많은 축하객들이 몰려, 와인파티에 와인 한 잔 들기가 힘들 지경이었지만
많은 분들이 오랫만의 만남에 반가워 서로 환담을 나누며 기념사진들을 찍었다.

 

 

 

 

 

 

 

 

 

 

 

 

 

 

 

 


최백호 작품집에서 옮긴 이두식교수의 발문과 최백호의 글과 그림

 

 

 

 

 


무세중의 도극퍼포먼스 "곡 난장굿" 네번째 공연인 통미의 쐬굿 "광란의 금도깨비들" 공연사진 입니다.

 

 

 

 

 

 

 

 

 

 

 

 



창예헌의 가을여행 "사인암 한마당 예술제"가 지난 18일 단양군 대강면 사인암리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창예헌 회원들을 주축으로 100여명이 참여한 이 행사에는 원로 작가분들이 많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 주었다.

김명성이사장의 사회로 진행된 본 예술제는 기국서 연출의 "용산, 의자들" 공연을 시작으로하여
김정남의 피리소리, 이유나의 입춤, 살풀이, 무세중의 굿 퍼포먼스 "세개의 빛", 심철종 연출의 "스페이스 제로"로 이어졌다.
이 공연들은 사인암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져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만찬이 끝난 뒤 연회장에서 펼쳐진 노래자랑에는 이지녀씨의 판소리, 대감놀이 등 신명나는 소리들로 참여자들을 이끌어 갔고,
최백호씨와 이경오씨의 열창에 모두들 기가 질려버린것 같았다.
그외에도 많은 무명가수들이 늦은 자정까지 춤추고 자신만의 색깔을 담은 노래를 불러 밤의 열기는 더해갔다.
해가 희뿌였게 밝아 오는 새벽녘까지 기타소리와 노래가 이어져 진행자의 입장에서는 퍽 곤욕스러웠겠지만, 모두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바둑대회 결승전에서 시인 강 민선생님이 우승하여 상금50만원을 탓다는 것을 마지막 뉴스로 전합니다.

준비한 음식들: 정선, 여량막걸리10말, 보은, 대추막걸리 100병, 여수, 전어 홍합 4박스, 보은, 돼지수육 50근, 단양, 머루포도 사과 각2박스, 곤드레 비빔밥, 올갱이국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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