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의 이창주 감독 만나 일찍부터 산성막걸리에 젖었다.

, 술이 취하면 왜  만나는 사람마다 정겹고 좋을까?

거리악사 음악에 맞추어 어깨춤도 추고, 예쁜 소녀에게 재롱도 떨었다.

 

취하면 집에 가야지만, 어찌 마지막 해방구를 그냥 지나칠 수 있으리!

대폿집 유목민에 들렸더니 김행수씨가 반겼다.

강충구 감독을 소개시켜주며 같은 소리 반복하는 것 보니, 그도 술이 취했더라.

주인장 전활철씨는 술시중에 바쁘고, 안에서는 김기영씨가 독배를 들었다.

감독들에게 스틸 일거리 달라고 부탁도 했다.

술 취하면 뻔뻔스럽기까지 하다.

 

모처럼 푸른 별 이야기에도 들렸다.

그곳에는 낯선 젊은이들이 왁자지껄 했다.

손님들과 어울리던 배우 최일순씨가 나를 불렀다.

그 자리에도 영화감독이 많았는데, 그날은 영화 만드는 사람이 많았다.

주인 외는 모두 처음 만났지만, 재미있게 놀았다.

노래도 부르고, 종이가 없어 내 배에다 이름까지 적어 달랬다.

 

젊은 친구들과 놀았더니, 나도 기분이 젊어졌다.

문화가족기획사 고창국씨, 영화감독 김휘근, 전기용, 이주리, 고권록, 박군범씨,

그 날, 반가웠고 잘 놀았어요.

 

사진, / 조문호






































셀프로 박은 자화상








 

 

 

 


 

 

 

 

똥차 검사받으러 ‘성산자동차검사소’에 갔다.
작년에 떨어진 경험이 있어 잔뜩 쫄았는데, 또 불합격이었다.
여기 저기 다니며 손보느라 정신없는데, 전화가 걸려 왔다.
정선서 다큐영화 만드는 이창주 감독이 서울 왔다는 것이다.

페북에 올린 베트남전 이야기를 읽었다며, 사진집 한 권 구해달랬다.
책이야 서점이나 전시장에서 구하면되겠으나, 그보다 할 말이 많다는 것이다.
간신히 검사받고, 약속장소로 갔더니, 한 시간이나 늦어버렸다.

 

낙원동 길거리에 술판을 벌여놓았는데, 요즘 어디를 가나 노상 술자리가 인기다.

답답하지 않아 좋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담배를 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전국의 좋은 막걸리만 찾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했다고 한다.
막걸리에 대한 영화를 찍기 위해 충무로에서 설명회도 두 차례 가졌는데,
반응이 좋아 곧 제작에 들어 갈 것이라고 했다.

그 날, 하고 싶은 이야기는 베트남 전쟁이라 했다.
일본작가가 펴낸 베트남전에 관한 책이 있는데, 한 번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잔혹한 학살현장 사진과 인터뷰로 엮었는데, 기가 막힌 사실이 많단다.
오래전부터 베트남 전 기록영화를 만들기 위해 자료를 수집해 왔다고 했다.
낙원동의 ‘먹고 갈래 지고갈래’란 술집에 참전했던 해병대전우들이 자주 와,
그들과 인터뷰 하려했으나, 왜 아픈 곳을 건드리냐며 거절해 다른 방법을 찾는단다.

이 친구도 꼽히면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이라, 좋은 영화를 만들 것으로 생각되었다.
자리 잡은 술집 역시 좋은 막걸리만 파는 집인데, 부산의 산성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옛날 부산 있을 때, 마셔보았던  추억의 막걸리였으나 도수가 높아 빨리 취했다.
좋은 막걸리는 누룩에 있다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완전 막걸리 박사였다.

난, 술보다 대마가 덜 해롭다며, 대마초 합법화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술만 취하면 객기가 도져 상대를 곤혹스럽게 할 때가 더러 있다.
매번 후회하지만, 그 술버릇이 잘 고쳐지지 않더라.
유일하게 넘치는 기분을 가라앉히는 게, 대마초인데 구할 길이 없네.

사진, 글 / 조문호

 

 

 

 

 

 

 

 

 

 

 

 

 

 

 

 

 

 

 

 

 

이 사람

 

한국인의 정체성을 쫓는 다큐영화감독 이창주씨

 

 

 

이창주씨는 참 재주가 많은 사람이다.
음악, 방송,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며, 그만의 역량을 펼쳐왔다.

이창주씨를 알게 된지도 어언 35년이 되었다. 
청년시절 부산에서 음악에 빠져 살 무렵, DJ와 칼럼리스트로 일하는 그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이다.

세월이 한참 흐른 20여 년 전 서울에서 그를 다시 만났을 때는 음반기획사를 하고 있었고,

세 번째 그와 재회한 것이 다큐멘터리영화를 찍던 7년 전 이었다.

당시 “한국의 맛과 멋”이란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취재차 정선에 왔었다.
그 뒤 띄엄띄엄 정선에서 만날 수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아예 정선에 눌러 앉은 것이었다.

정선읍 신월리에 있는 '추억만들기' 한 쪽에 스튜디오를 차려놓고 있었다.

연분이 닿았는지, 아름다운 풍광에 빠졌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너무 다양한 이력을 갖고 있어, 경력부터 한번 들추어 보았다.
“주간국제”, “부산일보” 팝칼럼리스트 , “기독교 부산방송” 라디오 편성국 PD, “MBC-FM” 제작부 PD, “통일일보” 한국특파원,

 “한국음반산업협회” 이사, “한국예술실연자단체연합회” 이사, “일본요코하마 TVK” 한국영상감독 등을 지냈다.

그리고 “문화관광부”가 지원한 “한류 프로젝트” 기획과 “방송통신위원회”가 지원한 “한국의 맛과 멋”을 기획하고 연출했으며,

동아일보 객원기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로 활동하고 있다.
“정선아리랑시장을 사랑하는 사람“중 한 사람인 그가 정선을 위해 한 일은 7분짜리 정선시장 홍보영상을 만들었고,

지금은 ”스마트폰 영화제“란 기획안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란다.

이러한 이력들은 좋아서 한 일이기도 하지만, 살아가는 방편일수도 있으나
그가 진짜 찾고자하는 것은 우리 것, 바로 한국인의 정체성이었다.
우리의 막걸리를 찾아 전국을 떠돌기도 했고, 우리의 민속과 풍류를 찾아 떠돌기도 했다.
지금은 정선에다 “들풀연구소”란 영화제작소를 만들어 “산들 강에”란 제목의 다큐멘터리영화를 찍고 있다.

그 것은 요양원에 버려진 노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는 다큐영화로, 점점 사회문제화 되고 있는

노령화에 카메라 앵글을 맞춘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과 연결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누군가는 해야 될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난한 예술가의 길은 고달픈 것이다.

그에게 정선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물어 보았다.


"좋은 점은 입지적인 장소가 로케이션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고, 나쁜 점은 정선사람들의 이기적인 배타심"이라고 한다.

6년 동안 정선에서 살아왔지만, 모든 일에 불이익을 당하고 항상 경계를 한다는 것이다.

하기야 정선에 정착한 지 20년차인 나도 아직까지 '데려온 서자 취급이고, 찬밥신세' 아니던가.

오래전 정선문화원장을 지낸 향토 원로 인사와의 만남에서 이 문제를 하소연 하였더니,

“긴 세월동안 구비 구비 산골짜기에 갇혀 살다보니 그러한 심성이 형성 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시대 따라 가치개념이 달라지듯 이러한 지역적 배타심은 진작 사라져야 했다.

세계화를 부르짖는 오늘에 이 무슨 말도 되지 않는 짓거리인가.

타 지역에서는 지역 발전을 위해 한 명의 예술가라도 더 유치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는데,

정선에선 들어 온 작가마저 방치해, 그 텃새에 못 견뎌 나가려 한다. 

 

지자체에서 가난한 예술가들이 지속적으로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도 시급하다. 

"그들의 재능을 적극 활용하자. 그리고 정선에 문화의 옷을 입히도록 함께 고민하자."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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