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제가 아주서화사를 열던 1970년, 근처에 현대화랑이 생겼습니다. 화랑은 쉽게 말해서 부유한 손님을 대상으로 고급 미술품을 판매하는 곳이에요. 당시 그런 고급 화랑이 많이 생겼어요. 화랑들이 생기니까 인사동에 가면 그림을 살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겨서 오가며 그림에 관심을 두는 사람도 늘었습니다. 지금은 인사동길로 알려진 인사동, 관훈동에는 음식점도 많고 술집도 많았어요. 그때는 술 한잔 드시고 점포 앞을 지나가다가 들어와서 “이 그림 얼마예요?” 이렇게 물어보는 분들이 꽤 있었어요. 그래서 얼마라고 하면, 또 “어? 술값보다 싸네. 좋은 그림 하나 주세요.” 이러면서 사가고는 했습니다. 꼭 값비싼 그림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그림을 파니 저도 기분 좋고 재미가 생기더라고요." (141쪽)

표구점에서 미술품 판매까지 하게 된 아주서화사를 운영했던 이기웅 보영학원 이사장이 뜻밖의 미술사를 전한다. 아주서화사의 경영자로서 1970~80년대 한국 표구의 전성기를 가장 가까이서 체험한 이 이사장은 전통문화의 거리를 주도하며 인사동의 르네상스를 이끈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 '표구의 사회사'(연립서가)는 이 이사장의 ‘구술’을 바탕으로 서술되어 이전의 문헌 기록에서는 담지 못했던 영역을 보여준다.

미술사학자 김경연(대전시립 이응노미술관 책임연구원)과 김미나(국립현대미술관 지류 작품 보존 담당 학예사)가 구술채록 프로젝트로 추진해 나온 책은 '표구란 무엇인가?'부터 미술사에서 배제되어온 프레임의 존재를 환기한다.

20세기 후반기 한국 표구와 표구사(表具師), 표구업의 역사는 물론 조선 후기 경제 발전과 도시문화의 발달에 따른 미술시장의 성장을 광통교 서화사까지 표구를 사회사로 다룬 첫 연구서다. "이 책이 말하는 미술이란 그려진 화면 자체만이 아니라 화면을 둘러싼 액자, 프레임, 그것이 걸리는 공간, 전람회 제도, 그리고 시장과 대중의 취향이 만들어낸 ‘문화’를 아우른다."(권행가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회장)

"1980년대 중반까지 지속되었던 표구점-화랑은 이제 대량 생산 시스템을 갖춘 공장, 화랑, 문화재 보존, 그리고 소규모 표구점 등의 영역으로 쪼개져서 각자 운영된다. 현재 표구, 표구를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는 다양하다. ‘배첩장’, ‘표구공’, ‘표구사’, ‘장황사’, ‘보존과학자’ 등 이들 각각의 이름 속에는 그 용어들이 탄생하고 사용되던 시대의 모습이 녹아 있다. 이처럼 닮은 듯, 서로 다른 얼굴과 성격을 지니고 오늘날 표구는 존재하고 있다." (267쪽)

공창호 전 한국고미술협회 회장은 "인사동에서 만나 50년 이상의 우정을 이어온 이기웅 이사장의 구술을 바탕으로 완성된 이 책은 그 어떤 연구보다 생생하게 인사동 표구화랑 업계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며 "구한말부터 이어져온 표구의 변화와 사회적 인식을 정갈하게 보여준 이 책은 모든 표구인은 물론 미래 세대의 연구자와 관계자에게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추천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



지난 28일, 오찬약속으로 일찍부터 인사동에 나갔다.


인사동만 나가면 큰 길을 훠이 한 바퀴 도는 게 습관처럼 되었다.
그 길이 그 길이고, 그 사람이 그 사람이건만, 한 바퀴 돌아야 마음이 편한 것이다.
일찍부터 마신 술에 지치기도 했지만, 더워서 걷기가 싫었다.

마침, 빈 아띠 인력거가 한 대 지나가고 있었다.
인력거를 끄는 젊은이에게 “인사동 한 바퀴 도는데 얼맘니꺼?”라고 물었더니,
‘견습으로 나왔으니, 그냥 타세요‘.라고 말했다.
‘얼씨구나’ 하고 올라탔는데, 기분이 좋았다. 무임승차니까...
처음 타보기도 했지만, 술 마시지 않았다면, 쪽팔려 못 탔을 것이다.


술 취해, 아띠 인력거를 타고 인사동을 한 바퀴 돌았는데,

재미보다는 편안하게 인사동을 돌아볼 수 있었다.

걸을 때의 인사동과는 촬영 각도도 다르지만, 빠르게 바뀌는 대상을 잡아내는 재미가 솔솔했다.

그러나 흔들림에 각별히 유의해야 했다.


지나치다 반가운 사람들과 눈 인사도 나누었다.
‘아주화랑’의 이기웅씨와 ‘아리수 갤러리’ 김준영씨는 놀란 토끼 눈으로 쳐다봤다.

순식간에 인사동을 한 바퀴 돌았는데, 시골 노인 인사동 구경 한 번 잘했다.



사진, 글 / 조문호
















몇일 전 자정 가까운 시간에 누더기를 걸친 걸인이 전신주에 달라붙어 무언가를 꺼적거리고 있었다.

그 날은 그냥  지나쳤으나, 궁금 해 들여다보았더니 알 수없는 기호의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지금부터 인력거 순찰이 시작됩니다.



















태워 줘 고맙습니다. 역시 무임 승차는 재밋어!









요즘 인사동은 불경기 탓인지 크리스마스나 년 말 분위기가 통 나지 않는다.
예년 같았으면 크리스마스 캐롤도 들리고 흥청대는 젊은이들을 볼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외국 관광객들이 여기 저기 기웃거리고 있을 뿐, 너무 쓸쓸했다.
최백호의 노래 ‘낭만’처럼 뭔가 잃어버린 듯, 헛헛함이 밀려왔다.

 

점심과 저녁모임이 있었던 26일은 세 시간 가량 인사동을 떠돌아야 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채 한과를 만드는 친절한 아주머니도 만나고,

인사동에 건물이 두채나 있어도 온 가족이 장사하느라 메달리는

옛 사무실 건물주인 이기웅씨 내외도 만났다.


마음이 텅빈 기분을 아는듯 인사동거리에 요상한 십자가가 나타났다.
두 사람이 등에 짊어진 괴상한 벽보판은 그냥 지나칠 수 있었으나,
시끄러운 확성기 소리는 심각한 소음공해를 일어키고 있었다.
누가 이런 꼴을 보고 예수를 믿고 싶겠는가?

사진,글/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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