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새해의 셋째 수요일이라, 술 한 잔 하러 인사동 나갔다.

매번 셋째 수요일마다 인사동에서 오픈하는 전람회도 돌아보고
반가운 사람 만나 술 한 잔하는 날로 정한지가 오래되었지만,
반가운 사람 만나기란 가뭄에 콩 나듯 드물다.






지난 16일은 점심때부터 강민선생님을 만나 뵙기로 약속했다.
‘나무화랑’에서 열리는 “청년 전만규 매향리 평화마을 기록전”에 들려 김진하관장을 만났다.





이 전시는 전만규씨가 주민들을 설득해 투쟁으로 일궈낸 매향리 폭격장 10년의 기록이다.
그동안의 자료를 얼마나 꼼꼼하게 챙겼으면, 격려의 글을 보낸 편지까지 모아두었더라.
투쟁에 사용되었던 깃발에서부터 시사만평에 나왔던 그림과 탄피에 이르기까지, 그 지난한 세월을 살펴보았다.
매향리에 가해진 폭력과 그 아픈 상처를 통해 평화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2월1일까지 전시되는 매향리 기록전을 놓치지 마시길...




 


전시를 돌아보고 있으니 ‘강민’선생님께서 오셨다.
이 추운 날, 먼 길을 마다않는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선생께선 한국전쟁을 직접 체험하셨으니, 그 기록의 감회도 남달랐을 것이다.
김진하관장 설명을 들으며, 지난 세월을 돌아보셨다.






선생님의 단골집 ‘나주곰탕’에 들려 소주 한 병에 곰탕 세 그릇 시켰다.
짐 때문에 차를 끌고 와 소주는 한 잔으로 끝내야 했는데,
선생님께서는 몸이 불편한지 따뜻한 물에 소주를 회석시켜 두세 잔 드셨다.
얼굴이 붉어져 낮술을 삼가한다는 김진하씨가 마실 수밖에 없었는데,
고맙게도 밥값까지 내 주셨네.






점심식사를 끝내고 커피 한 잔 하려니, 갈 만한 곳이 없다고 하셨다.
단골로 가던 ‘인사동 사람들’은 주인도 이름도 바뀐 식당이 되어버렸단다.
하는 수 없어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포도나무‘골목의 끝 집으로 향하다
길에서 안숙선 명창과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씨를 만났다.






강민선생께선 ‘창비’에서 낼 시집 원고를 다 넘겼다고 하셨다.
급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고 하셨지만, 벌써부터 시집이 기다려진다.

커피 한잔 시켜놓고 힘없이 앉아계신 선생님 모습이 오늘의 인사동 같았다.


떠나오며, 방향이 달라 신호등 따라 급히 달려간 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






‘민예총’ 사무실에 들려 짐 실어 둔 차를 끌고 녹번동으로 떠났다.
차를 놓고 와 술 한 잔 할 생각이었는데, 꾸물대다 시간이 지체되어버렸다.
‘나무화랑’부터 달려 갔으나, 이미 문이 닫혀있었다.
매향리 전만규씨를 만나 보고 싶었으나, 날 샌 것이다.






백범영씨의 ‘백두대간’전이 열리는 ‘동덕아트갤러리’로 갔더니,
미술평론가 유근오씨를 비롯한 일행들은 벌써 나오고 있었다.
전시장에서 작가 백범영씨와 미술평론가 황정수씨를 만났고,
김달진씨와 편근희씨도 만났다.






백범영씨는 '소나무 작가'라 불릴 정도로 소나무를 즐겨 그렸는데, 이번엔 ‘백두대간’이었다.
산 능선을 비롯하여 나무들과 풀꽃 등 자연을 이루는 다양한 것들을 보여주었다.
특히 백두대간의 맥을 잡아 그린 산수에서는 신비로움마저 느껴졌다.
자연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듬뿍 담긴, 이 전시는 28일까지 열린다.






전시장을 나와 ‘유목민’에서 이인섭선생을 만났다.
전활철씨와 셋이서 소주 한 잔 했는데,
앞으로는 박혜영씨에게 ‘유목민’을 맡기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했다.






이인섭선생께서 비약처럼 넣어 다니는 술 한 잔을 따라주었는데, 58도의 중국술로 이름 하여 ‘오빠’란다.
부드러운 향의 독주 한 잔에 춘삼월이 오가더라.






인사동에서 나주곰탕 한 그릇 드시고 가는 강민선생이나
‘유목민’에서 파적 한 장에 소주 한 병 드시는 이인섭선생이나
이 두 분이 인사동을 지키는 마지막 유목민이 아닌가 싶다.

인사동 풍류도 그렇게 가나보다.

사진,글 / 조문호



“청년 전만규 매향리 평화마을 기록전”










네오록에 소개된 '매향리기록전' 전시리뷰 http://blog.daum.net/mun6144/5038





백범영씨의 ‘백두대간’전





네오록에 소개된 백범영 전시리뷰 http://blog.daum.net/mun6144/5033













 

서울문화투데이신문 이름이 예술문화신문으로 바뀌고, 격 주간에서 주간으로 바뀐다.

그리고 동국대 석좌교수로 있는 윤범모 미술평론가가 전적으로 참여하게 된다는 소식이다.



 


지난 19,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시상식에서 이은영 발행인께서 전격적으로 발표한 내용이다.


시상식이 끝난 후, 프레스센터 지하에서 열린 뒤풀이에는 이은영씨를 비롯하여 문화대상 선정위원이신 안숙선, 이애주선생,

수상자 김병기화백, 유수정 명창, 문병남, 최광일씨, 그리고 윤범모교수, 화가 손연칠씨 등 여러 명이 함께했다.


  

  



그 날은 특별대상을 수상한 김병기 화백 옆에서 소곡주를 마실 수 있는 횡재도 했다.

처음엔 상 준다고 투덜댔지만, 상이 아니었다면 어디 감히 이런 자리에 앉을 수 있었겠는가?

102세이신 우리나라 최고령의 현역작가 김병기선생 말씀 들으며, 선생의 따뜻한 손을 잡아 기까지 충전시켰다.

2-3분 정도 잡았는데도, 2-3년은 더 버틸 것 같은 감이 들었다.

그동안 윤범모교수의 인터뷰 기사로 한겨레신문에 일 년 동안 연재한 한 세기를 그리다를 통해

100년간의 한국 문화사를 증언한 김 화백께서 특별대상을 수상한 것이다.



 


맞은 편에는 평소 좋아하는 안숙선명창께서 앉았는데, 예년에 비해 매우 수척해 보였다.

어디 몸이 불편한지 걱정스러웠으나, 얼쑤~라고 추임세 넣는걸 보니 아직 기가 펄펄 살아있었다.



 


춤꾼 이애주선생은 87년도 민주항쟁 때부터 여러 차례 사진도 찍었고 각종 행사장에서도 자주 만났으나,

그날은 모처럼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콧수염 김영수씨와 전국 각지를 찾아다니며 사진 찍은 이야기를 했는데.

그 사진집 제작에 사진모델이 된 이애주선생께서 삼천만원을 냈다는 뜻밖의 이야기도 들었다.

새삼 김영수씨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살아생전 성질머리도 지랄 같았지만, 마무리까지 잘 못한 것이다.

평생 작업을 아무것도 모르는 자식들에게 안겨 사장되고 있으니, 어찌 마음이 편할 수 있겠는가?

 


 

 


이은영씨를 비롯하여 윤범모교수 등 몇 분이 이차를 가자지만, 지레 겁먹고 삼십육계 줄행랑쳤다.

끝장을 보는 두 분의 주량에 두 손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신문에 대한 의견들을 많이 나누어, 한국예술문화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는 정론지로 거듭나길 바란다

 

사진, / 조문호














우리나라 유일의 문화예술전문지 ‘서울문화투데이’가 창간 된지도 벌써 7주년을 맞았다.
창간 7주년을 기념하는 일곱 번째 문화대상 시상식이 지난 15일 오후3시 서울시민청에서 열렸다.

시상식장인 바스락 홀은 올해 수상자 선정을 담당한, 이종상화백, 춤꾼 이애주씨, ‘서울문화투데이’ 발행인

이은영씨를 비롯해 수상자인 김남조, 정명숙, 정우범, 김후란, 장수동, 김혁수, 장준철, 이유라, 류영수씨와

재능기부에 나서 준 김용우, 유승현, 정옥희, 김은미, 석승권씨와 황병기씨 등 각계 알만한 문화예술인들로 가득메웠다.

그 자리에서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창간7주년을 축하하는 영상메시지를 띄우기도 했고, 축사와 인사말,

축시 낭송과 오페라 공연 등으로 시상식무대를 화려하게 펼쳐 나갔다.

‘서울문화투데이’를 발행해 온 이은영씨는 신문하나 끌고 가는 것만도 어려울 텐데,

문화예술인들을 격려하며 힘을 실어주는 이런 자리를 오랫동안 만들어 왔다. 

 얼마 전 술좌석에서 “직원들 월급 줄 때, 직원들이 부럽더라”는 그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재벌 신문사들도 손들 판국에, 돈 안 되는 문화예술에 한정된 신문사를 운영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사방팔방 쫓아다니며 문화예술인들 인터뷰하랴, 광고까지 구걸해야 하는 그의 바쁜 일상이 눈에 빤히 보인다.

그런 와중에 매년 역량 있는 예술가들을 발굴해 상을 준다는 것은 마음만으로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문화예술을 꽃 피우려는 사명감 하나로, 그 일에 미치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만약 힘없는 남자가 그런 일 벌였다간 벌써 마누라한테 쫓겨났을 것이다.

사서 고생하는 이 일이, 과연 누굴 위해 종을 울리는 일일까?
이게 척박한 문화텃밭을 꽃 피우기 위한 살신성인의 정신이 아니고 뭐겠는가?

어쩌면 국가와 국민은 물론, 우리나라 문화예술인 모두가 그에게 빚진 거나 마찬가지다.

구독층인 대부분의 문화예술인들이 가난하다보니, 독자층도 얕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몇 년동안 신문을 받았으나 우편료 한 번 보태지 못하여 늘 마음의 빚으로 남았는데,

다행스럽게도 못 쓰는 글이나마 신문에 기고할 기회를 주어, 마음의 빚을 메우고 있는 것이다.

그 날 시상식장에 모인 많은 예술가들도 그런 마음으로 재능기부를 해주었고, 격려의 힘을 주지 않았나 생각된다.

문화예술계의 마당발로 활약해 온 그는 돈은 잃었지만, 사람은 얻은 것 같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다.’ ‘문화예술이 국가 이미지를 높이고 나라의 격을 높이는 바로미터다.’는 등

모두들 문화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말들은 뻔지레하게 하지만,

대개의 정치인이나 국민들의 문화에 대한 인식은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다.

예술인복지재단과 각처의 문화재단 등 문화예술인을 위한 지원도 뒤늦게 이뤄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가난한 문화예술인들껜 남의 이야기처럼 들릴 뿐이다.


그래도 여걸 이은영씨 같은 사람이 있기에, 자부심으로 묵묵히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빠듯한 살림살이지만, 문화예술인들이 신문이라도 한 부 씩 보아주는 게 도리가 아닌가 생각된다.

'서울문화투데이'가 문화예술계의 정론지로 우뚝 서는 날을 기대하며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사진, 글 / 조문호

아래 사진은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시상식장 모습이다.



























































오늘 공연 참 좋았습니다.

안숙선선생께서 감기가 걸려, 꼼짝도 못할 지경인데도 무대에 섰습니다.
장사익선생이 안숙선선생 몫까지 감싸안아 공연을 성공리에 마쳤습니다.

12월 2일 오후7시30분부터 2시간에 걸쳐 진행된 마지막 공연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객석을 가득메웠습니다.
국악관현악단 아홉의 연주와 이용탁씨의 지휘로 시작된 관현악서곡 아시아를 위한 뱃노래가 첫무대를 장식하였습니다.

안숙선선생의 리더로 제자 이애리양이 창극"춘향"중 쑥대머리를 불러주었고
창극 "청" 중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지는 대목과 봉사잔치에 심봉사가 나타나 삼천리 봉사가 눈뜨는 대목까지 불렀습니다.

2부에서 관현악곡 "아리랑"이 연주된 후
싱글 벙글 나오시는 소리꾼 장사익선생께서 "황혼길"로 공연장을 다시 압도하였습니다.
아버지, 국밥집에서, 찔레꽃, 이게 이닌데, 님은 먼곳에를 극장이 떠나갈듯 열창 하였습니다.

마지막 이별마당에 장사익, 안숙선선생의 "봄날은 간다', "농부가를 서로 바꾸어가며 멋지게 무대를 꾸몄습니다.
그리고 장사익의 태평소와 안숙선의 꽹과리 장단으로 마무리를 하여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앵콜송으로 부른 장사익선생의"꽃구경"은 관객들의 가슴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의 기념사진 / 좌로부터 반민규, 김명성, 장사익, 조문호, 이성, 공윤희씨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