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이야기


시 : 황인철 / 사진 : 조문호


인사동 거리를 걸으면 
사랑하는 가슴 하나만으로는 다 품고 오지 못할 
하늘과 그림이 있고 
시가 있고 
산문에 피는 꽃향기가 있다 
찻집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은 떠돌다 
비밀이 되어 
인사동에 가면 
너를 생각하게 되고 너를 생각하면 
여기저기 골목마다 들려오는 
묵향 그윽한 노래가 된다 
인사동은 비밀을 감추지 않아 
스스로가 비밀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과 차 한잔 나누면 알 수 있는 
그런 이야기이다 





















‘광화문미술행동’에서는 정월대보름날의 맞은 지난 11일, 촛불 시와 사진으로 ‘Open Air 갤러리’를 장식했다. 

 “촛불의 함성은 멈추지 않는다.”, “100만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는 등

22명 시인의 시가 국민들의 탄핵 열망을 담아 깃발처럼 펄럭였다.

천만 촛불은 즐겁다!

촛불은 평화의 꽃이다.
촛불은 축제의 별이다.

촛불은 정치혁명이다.
촛불은 시민혁명이다.

촛불은 민주공화국이다.

촛불이 노래한다
전진하라 천만 촛불이여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 광화문미술행동]


참여시인은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소속으로 고 은, 공광규, 권위상, 김이하, 김정원, 김주대, 김창규, 김형효, 박노해, 박재웅,

백무산, 서안나, 신경림, 양문규, 유순예, 임성용, 정기석, 정세훈, 정수자, 정철훈, 정희성, 최종천 시인이 각각 한 점씩 내걸었다.
사진은 정영신, 권홍씨의 사진이고, 디자인은 김진하씨가 했다.


사진, 글 / 조문호


























시 : 신경림 / 사진 : 정영신



"파장"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켜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빚 얘기
약장수 기타소리에 발장단을 치다 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도 벌일까
주머니를 털어 색싯집에라도 갈까
학교마당에들 모여 소주에 오징어를 찢다
어느새 긴 여름해도 저물어
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

황락(黃落) 
                         김종길(1926∼)

 

 



추분(秋分)이 지나자,
아침 저녁은 한결
서늘해지고,

내 뜰 한 귀퉁이
자그마한 연못에서는
연밤이 두어 개 고개 숙이고,

널따란 연잎들이
누렇게 말라
쪼그라든다.

내 뜰의 황락을
눈여겨 살피면서,
나는 문득 쓸쓸해진다.

나 자신이 바로
황락의 처지에
놓여 있질 않은가!

내 뜰엔 눈 내리고
얼음이 얼어도, 다시
봄은 오련만

내 머리에 얹힌 흰 눈은
녹지도 않고, 다시 맞을
봄도 없는 것을!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그 붉은 산수유 열매//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서늘한 감각으로 그 옛날 문학청년들 가슴에 뜨거운 선망과 감탄을 불러일으킨 ‘성탄제’의 시인 김종길. 미수(米壽)에 이르신 선생이 시 전문지 ‘유심’에 최근 발표한 작품이다.

황락(黃落)은 한 해의 성장을 마친 식물이 누렇게 물든 잎을 떨어뜨린다는 뜻이다. 가을이 깊어져 황락의 풍경을 보이는 뜰을 둘러보다가 문득 ‘나 자신이 바로/황락의 처지에/놓여 있질 않은가!’, 새삼 깨닫는 화자다. 이제 곧 겨울이 오겠지. ‘내 뜰엔 눈 내리고/얼음이’ 얼겠지. 그래도 뜰엔 다시 봄이 오련만, 인생의 봄은 다시 오지 않아라. ‘내 머리에 얹힌 흰 눈은/녹지도 않고, 다시 맞을/봄도 없는 것을’…. 선생이 이 시의 시작노트에서 밝혔듯 ‘인생의 일회성이 인생 황락기의 애수의 근원’일 테다. 하지만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을 것이기에 더욱 소중한 나날들이다. 봄도 한 번이지만 가을도 한 번, 겨울도 한 번이다! 계절은 저마다 아름답다. 쓸쓸하게, 그러나 거칠지 않게 맞이하는 시인의 황락의 계절.

선생님, 몇 해 전 얼핏 뵌 선생님은 머리카락이 숱지시더군요. 제 주위에는 ‘흰머리라도 많이만 있었으면 좋겠네!’ 하는 친구가 한둘이 아니랍니다. 건강과 건필을 빕니다!

[스크랩: 동아일보]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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