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국민문화제가 열린 4월7일의 광화문광장에는 이른 시간부터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4,3깃발제작소에서는 깃발을 만들며, 춤꾼 양혜경씨의 넋전 굿이 열렸고,

또 한 켠에는 성효숙씨의 '붉은 꽃' 퍼포먼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수 많은 부스에서 4,3항쟁에 대한 다양한 행사를 벌였으나, 4,3에 관한 책을 파는 부스도 많았다. 

몇일 전 출판된 4,3의 주역 김달삼을 비롯한 학살의 실체를 엮은 소설가 강기희씨의 ’위험한 특종‘도 선보였다.



 

그런데, 그 날 제주 4,3에서 학살된 원혼을 기리는 추모장에 난데없는 태극기부대가 등장하여 주변을 소란스럽게 했다.

행사부스를 사이에 두고 판을 벌이는 형태에서 좌우의 갈등이 7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바뀌지 않은 것 같았다.

4,3의 원혼들이 얼마나 통탄했겠는가?




이날 행사장에는 배인석 민예총 사무총장을 비롯하여 유순예, 양혜경, 성효숙, 안해룡, 마문호,

양 동, 양시영, 김이하, 마기철씨 등 반가운 분들의 모습도 보였다.

사진, 글 / 조문호






아, 샛바람이여~

아, 그때 그 벅찬 해방의 감격이 막
맑고 밝은 희망으로 나부끼던 싱그러운 섬마을 마다
느닷없이 불을 싸지르고 집중사격으로
쓰러진 사람 사람들
자지러지던 어린 것은 시끄럽다고 쏴버리고
뭔짓이냐 이놈들아 뭔짓이냐 이놈들아 울부짓던
어머니는 첩자라고 갈겨버리고
그 범죄가 질서가 되고 역사가 되어 온 치욕
통곡마저 반역이 되던 세월
죽고 나서도 죽지 못한 원한이

마치 모래밭에 떠밀린 미역쪼가리마냥
몸부림쳐 일으킨 샛바람이여
이제는 몰아쳐 이제는 몰아쳐
저 반역의 역사를 발칵 뒤집어엎어라.

오늘도 흰구름이고 껌뻑이는 한라여
그때 그 찢겨진 참해방의 깃발
하늘 높이 하늘 높이 나부끼시라.
그날 그 피눈물의 싸움은
저만치 앞서가는 인류의 영원한 길라잡이라.

아, 천년만년 한결같은 변혁의 샛바람이여
이어차아 쳐라쳐라 이어차아 쳐라쳐라
이어~차 이어~차 이어~차 이어~차

제주43항쟁 70주년에 부쳐
백기완 /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지난 17일은 인사동지킴이로 불리는 공윤희씨로 부터 연락이 왔다.
예전 같으면 핸드폰을 꺼두어 대부분의 전화를 받지 않았으나,
요즘은 너무 덥고 힘들어, 도망갈 핑계부터 찾는다.
인간이 어찌 이리 간사한지 모르겠다.






인사동 큰 길로 들어가다 뜻밖의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화가 장경호씨와 민예총 사무총장 배인석씨를 만났는데,
장경호씨는 마치 죽은 여편네 돌아 온 듯 반겼다.
20여일 전 ‘유목민’에서 얼핏 보았지만, 
오월 ‘노모현 추모제’ 때 보고 못 만났으니, 두 달 가까이 되었다.






‘유목민’에서 보자며 헤어졌는데, 공윤희씨가 먼저 와 있었다.
공윤희씨는 맥주, 난 소주를 시켰는데, 하소연 할게 많은 것 같았다.
아우처럼 도왔던 후배의 배신감에 속이 상한 모양인데, "형이 참아야지 어쩌겠냐"고 했다.
나 역시 동자동에서 받은 배신감과 무례에 마음을 다쳤으나,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사람이 참고 다독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불만을 잘 털어놓지 않는 그의 성격으로 보아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다.






하소연 들으며 홀짝 홀짝 마신 술이 정량을 두 배나 초과해 버렸다.
단 둘이 앉아 대작하는 경우도 드물지만, 이렇게 많이 마신 적은 좀처럼 없었다.
그동안 술이 너무 취하면 사고를 쳐, 철저하게 조절해 왔기 때문이다.
그 무렵 임경일씨와 방인철, 김대웅, 강선화씨가 나타났는데,
오랜만에 만난 강선화씨 모습에 그만 마음이 동했다.






환갑이 다된 할머니더러 강양이라 부르며 주접을 떨어댔다.
내 딴엔 젊은 여인으로 보인다는 알랑방구였으나,

듣는 입장에서는 다방 종업원 부르는 것처럼 들렸으니, 기분 좋을 리가 없다.

매사가 이런 식이니 맞아죽지 않고 살아 남은 게 용하다. 
대개 앞에서는 웃어넘기지만, 돌아서서는 개망나니 쯤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십 오년 전, 사랑하는 여인이 생기고부터 술도 절제하고, 오버하지 않으려 무던히 노력했다.

그러나 잡놈으로 여겨 온, 오래된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렇다고 병적인 밝힘증이 고쳐진 것은 아니지만,

마음껏 마시거나 노골적인 처신은 집에서만 하니, 문제될 것은 없었다. 

어떤이는 사람이 바뀌었다며, 서운해 하는 사람도 있었다.

문제는 술이 많이 취하면 끓어오르는 욕정을 주체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내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도,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며 최고의 희열인 성을 왜 터부시하냐는 것이다.

성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다들 추하게 생각하고, 욕으로만 여기니,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냐?

물론 불륜을 저지러자는 것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인간의 성을 숨길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에 바꾸어야 할 법이나 관습이 한 둘이 아니지만, 남들이 외면하는 아래 세가지는 꼭 바꾸고 싶다. 

첫째 마약으로 잘 못 인식시켜 온  ‘대마초합법화’문제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둘째는 식물인간처럼 의식 없이 사는 이들의 ‘안락사’문제다. 가족들의 고통이나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병원업자들 손바닥에서 놀고 있다. 오죽하면 살리지는 못해도 죽이지는 않을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가? 

셋째가 인간의 아름다운 성생활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 올리자는 것이다.

전자의 두 가지는 공감하는 분들이 많지만, 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손톱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 원죄가 도대체 무엇인가?






술이 너무 취해, 담배 피우러 밖에 나왔다.
보슬비가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고 있었는데,  장경호씨도 따라 나와 3미터 간격으로 쪼그려 앉았다.

쪽방이 더워 고생한다는 것을 눈치 챈 장경호씨가 “쪽방에서 그만 나와요”라며 말을 꺼냈다.

“야! 쪽팔리잖냐.”는 한 마디로 끝냈으나,

이미 돌아 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으니,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진, 글 / 조문호












 


노동개악을 저지하고, 백남기씨 쾌유를 비는 3차 민중총궐기대회가 전국에서 동시 다발로 열렸다.

지난 19일 오후 3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소요문화제에는 약 팔천 명 정도의 시민들이 참가했다.

 

소요가 무엇인가? 사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들고 일어나 술렁거림이라고 적고 있다.

경찰이 물대포로 백남기씨를 사경에 빠트린 그 사건에, 소요죄를 적용한다는 데 따른 저항으로 '소요문화제'라 했다.

 

시민들은 지내들 입맛대로 갖다 붙이는 엉터리 법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모두들 탬버린, 부부젤라, 막대풍선, 호르라기 등을 가져와 소란을 떨어 제켰다.

심지어는 양은그릇과 숱 가락을 가져 나와 두들기기도 했다.

잘 못된 법을 조롱한 것이다.

 

그리고 복면시위법을 비웃으며 가면을 쓰고 나온 분들도 많았다.

평화롭게 진행된 소요문화제를 사법처리하겠다는 등, 정권은 선량한 국민을 범법자로 내 모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다시 유신독제로 돌아가는 것 같은 살벌한 시국이다.

 

박석운 민중의 힘대표가 단상에 올라 부마사태 소요죄를 적용한 박정희는 심복에 살해됐고,

광주시민들에게 소요죄를 적용한 전두환은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다며 분노를 터트렸다.

 

이 날의 행사에도 백기환선생과 신학철, 장경호, 하태웅씨 등 여러 명의 지인들이 끝 까지 자리를 지켰다.

비록 그 분들만이 아니지만, 왜 이 추운 날씨에 시멘트 바닥에 앉아 생고생을 해야 하는지 마음이 아팠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현실이 더 암담했다.

 

행사를 마치고, 청계로를 거쳐 백남기씨가 입원해 있는 서울대병원으로 거리행진이 시작되었다.

청계로를 막 지날 무렵, “노동악법 중단하라는 구호에 맞서 시위를 중단하라는 조그만 소리가 들려왔다.

청계천을 산책하던 70대 노인이 비아냥거리듯 한 말에, 옆에 있던 할멈이 옆구리를 찌르니 말꼬리를 감추었다.

시국을 잘 못 인식한 저런 분 때문에, 박근혜가 더 기고만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국민을 이렇게 양분시켜 놓고, 놀 것인가?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집에 갈 수가 없어, 인사동 유목민에 들렸다.

시위현장에서 만났던 장경호, 하태웅씨와 술 한 잔 했다.

뒤늦게 배인석, 이승철씨가 합류했고, 채현국선생과 정선의 전상현씨를 만나기도 했다.

술 자리에서, 소모적인 시위에서 벗어나 마지막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냥 "묵시(默示)"로 가자 

백 명이고 천명이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은 모두 모여, 식음을 전폐하자.

병원으로 실려 가던, 화장터로 실려 가던, 끝 장을 내자.



사진,/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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