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정직한 후보’ 시사회가 열리는 강남 코엑스‘ 메가박스’로 갔다. 정영신씨의 장터사진 다섯 장이 영화 스틸사진으로 사용되어 초대권이 여러 장 배정되어서다.
요즘처럼 전염병 문제로 대중이 모이는 장소에 가길 꺼리는데, 몇 명이나 갈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다행히 박찬호씨 도움으로 곽명우, 정명식, 강제욱씨 등 사진가 다섯 명에게 연락되었는데, 정영신씨가 연락한 사진가 이정환, 성유나, 미술평론가 최석태씨 등 열 명이 극장 앞에서 만난 것이다.
서인형씨는 그 곳까지 왔으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가지 않기로 한 딸과의 약속으로
밖에서 영화 끝나기를 기다려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영화가 상영되기 직전 장유정감독과 출연진 라미란, 김무열, 윤경호, 장동주, 조한철, 조수향, 온주완, 김나윤씨가 나와
영화에 대한 소신을 이야기하며, 관객에게 큰 절을 올리기도 했다.
난, 영화보다 장터 스틸사진이 정치풍자 영화에 어떻게 사용되는지가 더 궁금했는데, 영화가 상영되자 정영신씨 장터사진 다섯 장면이 나왔다. 내용인즉, 국회의원에 출마한 주인공의 할머니가 장터에서 힘들게 돈 벌어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장터 사진으로 대신한 것 같았다.
전형적인 한국 영화같았는데, 뜻밖에도 브라질 영화가 원작이란다. 브라질 상황을 국내 상황과 정서에 맞게 고쳤다는데, 코미디 영화 '부라더'를 연출했던 장유정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 '정직한 후보'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3선 국회의원 주상숙(라미란 분)이 선거를 앞둔 어느 날 갑자기 거짓말을 못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코미디물이었다.
후보가 토론회에 나가 대권 야욕을 그대로 드러내는가 하면, 출판기념회에서 대필 작가가 책을 썼다는 등 자신의 비리를 스스로 폭로한다. '서민의 일꾼'이라는 머릿속 문구가 '서민은 나의 일꾼'이라는 말로 튀어 나오기도 했다.
선거참모진은 비상이 걸렸으나, 민심 돌아가는 분위기는 심상찮았다. 이상하게 바뀌어버린 정치인 주상숙을 의외로 신선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주상숙은 마음을 바꾸어'정직한 후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유권자 환심 사기에 나선다. 국회의원을 지키는 열정 보좌관역을 맡은 배우 김무열의 활약은 반전의 재미를 보여주었다.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튀어나오는 바른말 때문에 ‘정직한 후보’로 변신한 주상숙의 웃음 폭격이지만,
오늘의 답답한 정치현실에 대리만족을 안겨 주었다. 다소 과장되긴 했지만 정경유착 등 더러운 현실정치와 맞물려, 정치 자체가 코미디란 생각도 들었다.
영화는 주인공 라미란의 '원맨 쇼'에 가까웠다. 코믹한 연기에서부터 노래와 춤까지 숨겨놓은 장기를 모두 쏟아 부었는데, 그의 연기력은 독보적이었다.
배우들의 고군분투에도 영화의 한계는 드러났다. 할머니의 거짓 죽음과 사학 비리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영화는 과부하가 걸린 듯 삐거덕거렸다.
이야기가 복잡해지니 전개는 산만하고, 펼쳐놓은 이야기를 수습하느라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 코미디라는 그릇에 담기에는 너무 많은 내용을 담은 것이다.
영화 ‘정직한 후보’는 오는 2월 12일 개봉 된다.
시사회가 끝난 후, 서인형씨를 만나 인근 '콩나물해장국'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함께 한 사진가들과 소주 한 잔 나누며, 영화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이정환씨 이야기를 들었다. ‘남산의 부장들’에 밀려 흥행에 성공하기 어렵겠단다.
사람이 죽게 되면 어떻게 될까? 과연 저승이란 신화의 세상이 있는 걸까? 한 가닥 위안일 뿐, 죽고 나면 바람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아는 분들의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어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박찬호. 2013, 제주도 남원, 동백나무가 있는 마을당,
그런데, 엊그제 뜻밖의 사진집을 전해 받았다. 박찬호씨의 ‘歸’사진집인데, 마치 귀신 사진집 같았다. 그 사진집을 볼수록 죽음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게 하였다.
ⓒ박찬호.2014. 제주도 표선면
난, 우물 안 개구리다. 사진가 박찬호씨는 알지만, 여지 것 어떤 사진을 찍는지 몰랐다. 그동안 인간의 죽음에 집착하여 오랫동안 그 현장을 찾아다닌 사진가였다. 오래전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보며 비롯된 의문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십여 년 동안 작업해 왔다고 한다.
그동안 해외 전시를 비롯하여 여러 차례의 전시를 열었는데, 작년에는 '뉴욕타임스‘에서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것을 둘러싼 제의를 촬영하다’라는 제목으로 박찬호의 전시를 소개 한 적도 있다고 한다.
ⓒ박찬호. 2017 전라북도 부안
요즘은 가능하면 전시장에 나 다니지 않으나, 사진집을 보니 궁금증이 발동했다. 전시장에서 직접 죽음의 세계에 직면하고 싶었던 것이다. 더구나 곧 끝나게 될 크리스 조던의‘아름다움 너머’도 꼭 봐야 할 숙제였지만, 어제 문을 연 안창홍씨의 작품도 볼 겸, 한나절을 전시장에 돌아다닌 것이다.
ⓒ박찬호. 2017.경기도 구리.
박찬호씨의 ‘歸’가 열리는 전시장에 들어가니 작가가 반갑게 손을 잡았는데, 마치 저승사자가 반기는 느낌이었다. 전시장은 시커먼 흑백사진들이 분위기를 압도했다. 무당의 신 칼이 번쩍였고, 마치 혼령이 떠다니는 것 같았다.
실상과 허상을 넘나들며, 보이지 않는 영혼을 추적하고 있었다. 직설적인 시신의 형상은 보이지 않았으나, 다양한 방법으로 죽음을 이야기했다. 제사, 굿당, 무당, 꽃상여, 스님 다비식 등의 흔적을 찾았더라.
ⓒ박찬호. 2013. 경북 안동시 서후면
현실 너머의 세계를 보여준 박찬호의 사진은 귀신 씌인 사진같았다. 느닷없이 화면에 빛이 새어들거나, 어떤 사진은 반사되어 뿌옇다. 비뚤어진 화면이 불안감을 일으켰다. 보이지 않는 혼령을 작위적으로 끌어 낸 것이다.
ⓒ박찬호.2013.제주도 남원읍
박찬호의 사진을 보니, 죽고 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는 기존의 생각에서 실오라기 같은 기대가 생겼다. 진짜 영혼이 떠돈다면, 나쁜 놈들은 어떻게 지낼까? 뉘우치고 있을까? 거기서도 나쁜 질하는지,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박찬호. 2014, 제주 제주시, 굿-영감놀이.
영혼이고 귀신이고, 죽고 나면 말짱 도루묵이다. 생과 사의 경계를 기록한 박찬호의 ‘귀’ 사진전을 돌아보며, 앞만 보고 살아온 스스로를 한 번 돌아보자.
ⓒ박찬호.2014, 제주도 구좌읍 월정리
이 전시는 청운동 ‘갤러리 류가헌’에서 5월 12일까지 열리고, 5월24일부터 대구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에서, 6월15일부터는 광주 ‘혜움 갤러리’에서 각각 순회전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