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이주용씨의 ‘항해1 프로젝트’가 지난 13일부터 청계천 ‘바다극장’에서 열렸다.
‘한예종’교수인 이주용씨의 일관된 주제는 시간과 기억 그리고 역사다.
사진의 근원에 대한 원형을 찾는 작업의 연속이다.
한 때는 ‘천연당사진관‘을 기억하기 위해 일본과 중국 등 동양권을 떠돌기도 했고.
이번은 두만강 접경지역에 사는 조선인들의 지나 간 시간을 기억하고 있다.



2018년부터 시작된 '항해1 프로젝트'는 동해에서 블라디보스톡, 두만강, 백두산,

압록강 접경지역을 거쳐 단둥항에서 인천항으로 이어진 항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여객선에서 시작된 전시와 설치작업은 산둔촌의 빈집, 내두산촌의 폐교, 삼봉촌집,

철원의 정미소를 거쳐 청계천 바다극장에서 마무리하는 작업이었다.

이주행로 같은 방향으로 옮겨가며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한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지난 17일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공간을 찾아나섰는데, 청계천에 ‘바다극장’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 길을 수 없이 지나쳐도 몰랐는데, 극장에서 전시를 한다는 것도 생소했다.

상인들이 내놓은 짐 꾸러미가 놓인 미로를 비집고 올라가니, 오래된 바다극장이 나왔다.



극장 입구를 비롯하여 여기 저기 걸려 있는 대형사진들이 분위기를 압도했다.

무표정한 초상사진에서 어머니를 만난 것 같은 따뜻한 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포근하면서도 얼굴에 한이 서린 친숙한 동포들의 모습이었다.



사진뿐 아니라 영상, 빛, 홀로그램, 기록 재생장치 같은 기구들도 설치되어 있었다.

사진보다 더 사실적이고 유물적인 집기들에 의해 전시는 더 빛났다.



초대 시간에 맞추어 극장을 찾아 온 분은 대략 200여명 될 것 같았다.

극장 전면에 걸렸음직한 대형 간판 위로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고,

그 아래는 음악가 두명이 첼로와 피아노를 연주했다.

흘러나오는 음률이 얼마나 애잔한지 눈이 시러웠다.



흐릿하게 간판 위로 스쳐가는 초롱초롱한 눈빛의 어린이들과 북녘 사람들 모습을 지켜보며, 

그토록 동포애를 강하게 느낀 적이 없었다.

얼마나 분위기에 빠졌으면, 사진 찍는 일도 잊어버렸을까?



연주가 끝나니, 이주용씨와 ‘바다극장’ 극장장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대형극장에 밀려 폐관된 극장을 지켜며 그 자리를 만들어 준 극장장이야 말로

이 ‘항해1 프로젝트’의 주인공이나 다름없었다.



화가가 그린 대형 간판을 비롯하여 사진과 음악, 영상, 빛, 홀로그램 등으로 시간의 기억을 끄집어 낸 종합예술이었다.

이주용씨는 사진가이기 전에 역사가이고 연출가였다.



이주용씨를 처음 만난 것이 83년도 였으니, 30년도 넘었다.

내가 ‘월간사진’에 있을 때, 그는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에 있는 브룩스대학에서 공부할 때다.

어느 날 잡지사에 찾아 와 ‘미국의 전설적인 사진가들을 찾아 인터뷰 할 테니, 연재할 수 있냐?‘는 것이다.

외국 사진 잡지나 번역해 지면을 채워야 하는 당시의 형편에서 눈이 번쩍 뜨이는 제안이었다.

그래서 안젤아담스를 비롯한 유명 작가들의 생생한 이야기나 작품들을 매달 특집으로 게재할 수 있었다.

사진 경력이 오래된 분들은 그 당시의 인터뷰기사를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그 뒤 귀국해서는 ‘포토291’을 창간하여 사진잡지에 변화를 리드했다.

그러나 초보적인 내용의 대중 잡지나 간신히 버틸 수 있었지, 전문적이고 괜찮은 사진잡지는 팔리지 않았다.

몇 년을 지탱했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그 뒤부터 이주용씨를 만나지 못했다.



‘신구전문대’를 거쳐 ‘한예종’ 교수로 있다는 소문만 들었는데, 삼년 전 우연히 다시 만난 것이다.

동자동에 살며 주민들에게 사진을 뽑아 주지 못해 안달하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사진프린트기를 구입해 동자동 쪽방을 찾아 온 것이다.



그때서야 그가 진행해 온 ‘천연당사진관’ 프로젝트도 알게 되었고, 평창동 작업실도 가보게 되었다.

그의 작업실은 마치 박물관 같았다.

숱한 년륜이 쌓인 뷰카메라에서부터 다양한 사물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내가 지켜 본 사진가 이주용씨의 치밀하고 적극적인 작업방식, 아니 삶의 방식을 재확인한 것이다.



본 ‘항해1 프로젝트’의 진행 중 우연히 발견했다는 책 ‘호랑이를 죽여라’는

70년대 미국으로 이주한 한 여성의 가족사를 바탕으로 쓴 것이라고 한다.

희생만 강요당한 이주여성의 한 개인사를 통해 근현대사를 조명한 전시의 핵이었다.




영화에서는 전쟁과 폭력, 이데올로기의 가면 속에 숨겨 진 욕망이

우리민족의 이주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추적하고 있다.



지난 13일부터 시작된 전시는,19일인 오늘이 마지막이다.

시간 되는 분들은 꼭 한번 들려보기를 추천한다.


글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