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 동포 2세인 이예식 새고려신문사진기자의

'사할린, 기록되지 않은 역사' 사진전이 인사동의 갤러리 인덱스에서 열리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된 지 78주년을 맞은 지난 15,

대통령 경축사 연설에 몸이 아파도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광복절에 일본을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라고

감싸 도는 대통령 연설에 분을 삭일 수 없었다.

 

독립을 위해 목숨을 잃은 순국 지사들이 지하에서 통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일제에 강제 징용되어 사할린섬으로 간 동포들의 생활상을 기록한

'사할린, 기록되지 않은 역사'전이 열리는 인사동 갤러리인덱스 를 찾아갔다.

 

일본은 1938년부터 해방이 될 때까지 약 6만 명의 한인들을 사할린으로 보내

탄광촌과 벌목장에서 강제노역 시켰다.

 

일본이 패망한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러시아의 강제노역에 시달렸으니,

얼마나 원통하겠는가?

 

고향이 그리워, 두고 온 자식이 보고 싶어 밤마다 저 언덕에 올라

바다를 향해 아무개야~ 아무개야~ 하고 통곡을 하니

그 소리가 밤바람을 타고 온 동네에 퍼져 이불 안에서 다들 울었다우.”

증언한 코르사코프 바자르 할머니의 증언이 떠 올라 가슴이 미어졌다.

 

이젠 대부분의 사할린 동포 1세가 세상을 떠나, 많은 사실이 묻혀가는 안타까운 실정에 있다.

뒤늦게 알려진 사할린 학살사건 역시 그 실체조차 제대로 기록되지 못하지 않았던가?

 

점차 역사를 증언해 줄 동포들도 사라지고 있다.

더구나 역사 왜곡도 모자라 역사를 부정하는 세력이 판치는 세상이다.

 

전시를 보기 위해 힘겹게 전시장을 올라가니, 이미 작가와의 만남은 진행되고 있었다.

 

내가 여기 왜 왔나. 우리 님 따라서 내 여기 왔지

사할린이 좋다고 내 여기 왔나. 일본놈들 무서워 따라왔지

따뜻한 조선을 놔두고, 사할린에는 왜 왔나, 왜 왔던가

 

임규익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장이 부르는 사할린 아리랑이 전시장을 숙연케 만들고 있었다.

 

전시장에는 소련 시절부터 한민족 풍습을 지켜 온 사할린 동포들의

생활상과 영주귀국 모습 등 여러 가지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예식 기자를 비롯하여 전시를 준비한 ‘Kin지구촌동포연대최상구 대표와 사진가 김지연씨,

 

권경석 전국사할린귀국동포연합회, 김상열 한국이민사박물관,

 

김연갑 아리랑기념사업회, ‘사할린동포후원회장인 기미양 국악신문 대표,

 

이규상 눈빛출판사대표, 사진가 김문호, 안해룡, 정영신, 곽명우씨 등

70여 명이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전시작가 이예식씨는 1949년 사할린 마카롭시에서 출생하여,

1998년부터 지금까지 새고려신문사진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사할린1세였던 부친의 애환을 바라보며 성장한 2세로서

꾸준히 사할린동포들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이예식씨는 인사말에서 두 시간이면 오는 거리를 먼 길로 우회하여 왔다는 말로

한국과 러시아 교류의 어려운 현실을 표현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사진가 김지연씨는 시대를 증언하는 이미지는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말 걸고 있다며,

광복절을 맞아 진정 해방이 되었는지 묻기 위해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이예식 사진집 ' 귀환 ' / 25,000원 / 눈빛출판사

사할린, 기록되지 않은 역사전시장에는 이예식 사진집 귀환

김지연 사진집 사할린의 한인들도 판매되고 있었다.

 

김지연 사진집 ' 사할린의 한인들 ' / 25,000 원 / 눈빛출판사

201610, 눈빛출판사에서 동시에 출간한 사진집인데,

얼마 남지 않은 이 사진집 또한 매진되고 나면 사라질 자료집이 아니겠는가?

 

사할린의 그 날을 기억하는 전시는 오는 21일까지 이어진다.

 

함께하는 기억은 역사가 된다.

역사 만드는 길에 다 같이 동참해 주길 바란다.

 

전시장에서 내려와 모처럼 사진가 김문호, 정영신, 안해룡씨와 유목민에 들렸다.

몸이 아파 술은 마시지 못하지만, 리얼포토맴버들의 만남을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

 

그 자리에서 며칠 남지 않은 안해룡씨 전시 소식도 들었다.

 

안해룡씨의 도쿄, 조선인 대 학살의 거리822일부터 93일까지 류가헌에서 열린단다.

간토 대지진 때 학살된 조선인을 기억하고 지도 만드는 프로젝트에 많은 참여 바란다.

 

그리고 인사동 나무화랑에서는 양상용의 그림책 원화전

사할린 아리랑816일부터 25일까지 열린다.

 

다들 일제의 만행을 기억하는 전시다.

 

사진, / 조문호

 

사진가 김지연씨의  따뜻한 그늘 사진전이 오는 25일까지 충무로 꽃피다갤러리에서 열린다.

이 전시는 김지연씨가 '경향신문'에 연재해 온 사진 산문에 실린 작품으로,

전시와 함께 눈빛출판사에서 펴낸 사진 산문집도 선보였다.

 

오랜만에 충무로에 나갈 일이 생겼다.

갤러리브레송에서 열리는 김은주 전시도 며칠 남지 않았지만,

갤러리 꽃피다에 정영신의 따뜻한 그늘참여 작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갤러리 부근은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차에서 기다리기로 했는데,

작품을 전달하러 간 정동지가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다.

핸드폰까지 네비로 걸어두고 가, 전화도 받을 수 없었다.

 

기다리다 지쳐 김은주 전시부터 보러갔으나, '브레송'은 문이 잠겨 있었다.

그때 사 남의 전화를 빌렸는지, 전화가 걸려왔다.

'눈빛' 이규상씨와 사진가 이한구씨도 있다며, 그곳으로 빨리 오란다.

 

전시장에는 많은 사진가가 달라붙어 디피 하느라 분주했다.

 

사진가 김지연, ‘꽃피다김유리관장, '눈빛출판사' 이규상, 안미숙 내외를 비롯하여

참여 사진가인 이한구, 고정남, 손은영, 김명점, 정윤순씨 등 여러 명이 계셨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을 돌아보니, 간혹 눈에 익은 작품도 보였으나,

이야기가 담긴 사진들이 많았다.

 

마지막에 가져 간 정영신의 장터 사진으로 디피가 마무리되고 있었는데,

눈빛출판사에서 펴낸 사진 산문집 ‘따뜻한 그늘’도 나왔더라.

 

눈빛출판사 / 165X210 / 252면 / 가격22,000원

 

 출판된 따뜻한 그늘’ 1부는 사진가 김지연의 작품으로 구성되었고,

2부는 김근원, 한영수 등 작고 작가에서부터 이한구, 박종우, 고정남, 김명점, 김영경, 엄상빈,

변순철, 정영신, 박찬원, 이재갑, 이선민, 임안나 등 40점의 사진이 글과 함께 실려 있었다.

 작품이해를 돕는 김지연씨의 산문은, 또 다른 울림을 주었다.

 

전시 디피를 끝 낸 후, 간략한 개막식도 진행되었다.

전시 디피가 끝나자마자 개막식이 진행되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었.

 

사진가 김지연씨의 인사말에 이어, 이규상대표의 사진에 관한 이야기와 축하인사도 따랐다.

 

작가와의 대화는 오는 123() 오후2시부터 열린다. 의미 있는 시간 갖기 바란다.

 

수고한 분을 위한 뒤풀이에 휩싸여, 밥값만 축내는 일도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앞자리에 앉은 김명점씨가 쏘아 덜 미안했다.

 

뒤풀이에서 돈 거두는 게 일상화되었는데, 누군가 혼자 계산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것도 여성이...

 

하기야! 여성이기에 배포 좋게 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요즘 사내들은 옛날처럼 기분좋게 쓸 경제적 여유도 없지만,

곰상스러움이 체질화되어, 있어도 쓰지 못하는 졸장부가 되어버렸다.

세상 많이 바뀌었다.

 

아무튼,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분들과 맛있는 저녁식사를 했다.

"늘 고맙습니다"

'따뜻한 그늘' 전시보러 가세요. 사진산문집을 구해 보셔도 좋습니다.

 

 

사진,  / 조문호

 

 

 

전북 진안에 있는 '공동체 박물관 계남정미소'에서 김지연의 ‘봄날은 간다’ 사진전이 열렸다.

 

사진가 김지연씨가 ‘계남정미소’를 구입하여 박물관 겸 전시관을 열었다는 소식을 접한 지가 어언 15년의 세월이 흘러버렸다. 그곳에서 수많은 전시소식들이 들렸으나 연이 닿지 않아 그런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전시는 지난 5월30일까지였지만 전시를 철수하지 않아 볼 수 있었는데, 난처한 것은 전주에서 쉬는 분을 불러내야하는 불편을 끼쳐야 했다. 이렇게라도 보지 않는다면 죽기 전에 ‘계남정미소’ 가보기란 틀린 것 같았다.

 

가는 길에 여산장 갈 계획도 세웠지만, 일요일 장터는 가나마나였다. 전 날 퍼마신 피로감에 차에서 정신없이 자고 일어나니, 여산장의 명물이라는 장터 짜장면 집으로 안내했다. 정오 무렵 진안 마령면에 있는 ‘계남정미소’로 출발했는데, 전주에서 떠난 김지연관장도 같은 시간에 도착했다.

 

고색창연한 양철지붕의 정미소를 보니 아련한 추억이 떠올랐다. 사진전 제목처럼 봄날은 무정하게 가버렸지만, 옛날 고향 정미소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시끄러운 컨베이어 벨트 소리 끊긴 정미소에 음악을 울렸던 그 청춘의 시절이...

 

문 닫은 정미소를 음악실로 개조했으나 시골에서 음악실 찾을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겠는가? 기껏해야 시골학교로 발령받은 선생들뿐이었다. 주말이면 부산을 비롯한 외지에서 찾아오는 친구들만 붐볐는데, 음악실인지 술집인지 분간 되지 않았다.

 

결국 모두가 잠든 한 밤중에 트럭을 불러 삼천장이나 되는 엘피판과 오디오를 싣고 부산 하단의 ‘에덴공원’이라는 손님 많은 낙원을 찾아 야반도주 한 것이다. 오디오 다칠까 친구와 짐칸에 웅크려 세찬 겨울바람을 맞았던 고생도 이젠 그리움으로 변해버렸다.

 

 

김지연씨가 보존해 온 ‘계남정미소’는 지역문화의 숱한 기억을 간직한 보물창고였다. 근대유산과 마을 공동체문화를 접목시켜 주민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전시장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오래된 결혼사진이나 이발관, 구멍가게, 퇴역 병을 찍은 '할아버지는 베테랑' 등 사라져가는 마을의 유산을 수집하거나 기록해 왔다. 방앗간에서 정미소로 정미소에서 도정공장으로 변해 온 시골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15년 동안 지켜 온 것이다.

 

진안 계남면에 있던 쓰러져가던 정미소가 지역에 바람을 일으키며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기까지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 가장 보람을 느낀 일이 스스로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한 개인의 인생이 소중한 작품으로 재평가 받던 기억이란다.

 

한 때 문을 닫았다 다시 열었다지만, 외진 곳이라 칠십대인 김지연관장 혼자 관리하기는 한계가 있었다. 전주에 있는 갤러리 ‘서학동사진관’까지 운영하려니 얼마나 바쁘게 살았겠는가? 거리조차 만만찮은 두 곳을 운영하기란 힘에 부치는 것 같았다.

 

자치단체마다 지역문화를 살리려는 노력과 투자가 더해지고 있는 현실에, 운영의 어려움에 처한 ‘계남정미소’를 진안군에서 왜 방관하는지 모르겠다. 성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문화유산조차 문을 닫아야 하는가? 전시 지원은 차지하고라도 최소한 상근할 수 있는 인력지원은 해 주어야 할 것 아닌가? 그 곳까지 찾아가 문이 열려 있지 않다면 누가 두 번 다시 찾겠는가?

 

고즈넉한 ‘정미소’ 분위기에 걸맞은 김지연씨의 ‘봄날은 간다’ 초상전도 일조했다. 술만 취하면 눈물콧물 짤아가며 청승스럽게 불러대던 그 노래 제목이 아니던가?

 

전시된 사진들을 살펴보니 애잔한 노인들의 초상사진에서 한 시대상을 읽을 수 있었다. 시커멓게 그슬린 피부와 거친 손 마디마디가 훈장처럼 빛났다. 단정하면서도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자세나 각자 다른 어색한 손의 위치도 흥미로웠다.

 

대개 연로하여 이제 세상을 떠난 분도 더러 있을 것이니, 마을 역사의 주역들이 박물관에 소장된 거나 다를 바 없었다. 정말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사진전이었다. 흔히들 찍어주는 노인 영정사진에서 전신을 찍은 초상 작품으로 진화한 전시였다.

 

차 한 잔 나누며 그동안의 하소연을 들었는데, 이제 김지연씨도 지친 것 같았다. 주민들조차 공간의 가치를 몰라주니, 무슨 힘이 나겠는가? 나 역시 문화의 가치를 몰라 배타적인 시골사람들을 겪어보았기에 누구보다 이해되었다. 뜨락에 열린 빨간 보리수 열매조차 애처로워 보였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전국 정미소를 기록해 둔 김지연씨의 사진을 주축으로 정미소의 모든 것을 소장한 '정미소박물관'으로 재정비하여 마이산과 연계한 관광코스를 만들었으면 좋겠더라. 주차장과 부대시설은 물론 당장 소화전부터 비치해야 할 것 같았다. 진안군에서 파견한 직원이 상근하여 월요일 휴관일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관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지연씨가 없다면 누가 관리할 것인가?

 

많은 그리움을 남겨두고 전주에 있는 갤러리 ‘서학동사진관’으로 옮겼다.

마침 그곳에서 전시 한 김학량의 ‘짱돌, 살구씨, 호미’ 전시가 끝나는 날로 작가가 작품을 철수하고 있었다.

 

그곳은 지역문화를 위해 온 힘을 쏟아 부었던 김지연씨의 애착과 한숨이 배어있는 공간이었다. 다들 돈 벌기 위해 눈이 벌겋게 설치는데, 돈 되지 않는 일에 수십 년을 바쳐 온 한 사진가의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늦게나마 뜨거운 성원을 보내며, 좋은 결실 있기를 바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김지연 사진



인사동에서 열리는 정영신의 장날 오가며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일찍부터 원로사진가 한정식선생께서 오셨습니다. 맛있는 점심 사 주겠다면서요.

아내와여자만에서 쌈밥 얻어먹고, 허리우드에서 커피도 마셨습니다.






전시장으로 돌아오니 부산에서 최혜영씨와 사진가 김지연, 시인 김생나씨가 오셨고,

사진가 양시영씨는 민속학자 심우성선생과 넋전 춤을 추는 양혜경씨를 모시고 오셨습니다.

심선생께서는 신궁장여관이 리모델링한다며 숙소를 옮긴다는 말씀을 들었으나,

어디로 옮겼는지 궁금했는데, ‘종로오피스텔로 옮겼다네요.












반가운 만남이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아래층의 공창호씨가 장구경 하러왔고, 좀 있으니, 가수 최백호씨도 왔습니다.

잇따라 강 민선생께서 시인 천성우, 이혜선, 김정남선생과 함께 다시 오셨네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강민선생의 옛 친구 박병선선생도 지나치다 올라 오셨는데,

구수한 냄새에 끌려 왔더니, 옛 친구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끝 날 시간이 가까워 오니, 곤충사진가 이수영씨가 나타났습니다.

유민목에 장경호씨가 있다는 귀뜸을 전했더니, 거기서 기다리겠다며 먼저 일어났습니다.

뒤따라 눈빛출판사의 이규상, 안미숙 내외가 오셔서 부산식당에서 생태찌개로 소주 한 잔 했습니다.

소주 딱 두병만 까고 유목민으로 옮겼더니, 이수영, 장경호, 공윤희씨가 마시고 있더군요.

막차시간 놓치지 않으려는 이수영씨 따라 일어남으로 하루를 잘 넘겼답니다.









 

그 이틑 날은 미디어아티스트인 이상만회장께서 일찍부터 오셨습니다,

연이어 연극연출가 기국서, 울산의 기와장 오세필, 건축가 임태종씨가 차례로 나타났습니다.

이 날은 장흥에서 이대흠시인과 성은정내외 분이 오셔서, 반가운 만남의 시간을 가졌답니다.

이대흠시인은 아내의 장날사진집 서문을 쓴 인연이라 더욱 기다렸는데,

첫인상처럼 무척 다정다감한 분이더군요. 시간 만들어 장흥에도 꼭 한번 들릴 작정입니다.

















전날 밤, 술이 취한 상태에서 밤을 꼬빡 새웠는데, 갑자기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한 쪽 구석에 누워 잠들어 버렸는데, 이대훈, 노인자 내외분이 오셔서 자는 모습을 찍어,

칠순의 아기천사라는 제목까지 달아 카톡으로 날렸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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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문화의 날이라 밤 열시까지 문을 열기로 했으나, 술친구 채근으로 더 기다릴 수가 없었습니다.

전 날 페북에 공지한 것이 마음에 걸렸으나, 밤 여덟시에 문을 닫는 실수를 그만 저질렀습니다.

공교롭게도 사진가 박영환씨가 뒤늦게 다녀 간 흔적이 방명록에 적혀 있더군요.

확인했을 때는 이미 때 늦은 후회였답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자책에 안절부절 하였으나, 결국 젊은 후배에게 실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튼 그 날은 유목민에서 이대훈, 노인자씨 내외와 거나하게 마셨습니다.

옆 자리에는 임태종씨가 친구들과 있었고, 김명성, 이상훈씨도 있었답니다.

좀 있으니 오세필씨가 국민은행에 있는 노처녀 지점장 최명숙씨와 김용식 부장 등 여성분들과 나타났습니다.














일행이 있어 먼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는데, 인사동 곳곳에 거리공연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한 번 버스킹에 나서자며 길모퉁이 자리잡아 퍼질러 앉았습니다.

난 모자만 내려놓은 채, 눈을 지긋이 감고 있었으나, 이대훈씨의 노래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우아한 노래에 한참 빠졌는데, 눈을 뜨보니, 모자에 천원짜리 지폐가 한 장 담겨있더군요.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때 놈이 먹는 꼴이 되었는데, 왜 그렇게 기분 좋은지 휘파람 불며 돌아왔답니다.

하하하~

 

사진 : 정영신, 조문호 글 : 조문호


























































ㆍ원로부터 신진 작가까지 주제가 있는 사진집… “사진, 편식하지 마세요”

 

이미지 가공이 범람하는 시대에 ‘기록과 재현’이라는 사진의 본질에 충실한 미공개 신작 중심의 사진집 ‘눈빛사진가선’ 1차분 10권이 출간됐다.

사진전문 출판사인 ‘눈빛’이 펴내는 ‘눈빛사진가선’은 원로부터 신진 작가까지 각자 일관된 주제 아래 작업한 작품 50여점을 싣고, 사진비평가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 필자들의 해설을 수록한다.

​1차분은 구본창의 ‘DMZ’(해설 신수진), 김금순의 ‘동해남부선’(이광수), 김문호의 ‘온 더 로드’(최옥정), 김병훈의 ‘산책이 그리운 이유·동물학’(진동선·박영택), 김지연의 ‘삼천원의 식사’(김영춘), 민병헌의 ‘잔설’(김화자), 변순철의 ‘전국노래자랑’(최범), 신은경의 ‘가마미해수욕장’(송수정), 임재천의 ‘소양호 속 품걸리’(강영숙), 임재천의 '소양호 속 품걸리'(강영숙), 전민조의 '손에 관한 명상’(미재 김원숙)이 나왔다.

눈빛의 이규상 대표는 “사진계가 디지털 사진문화의 거대 소비집단이 되고, 현대미술에 매몰돼버린 상황이지만 오늘도 사진 본질을 구현하는 열정적 작업을 하는 사진가들의 작품세계를 널리 알리고, 용기를 주고 싶다”며 “유명 사진가 몇명에게만 관심을 두는 대중의 ‘편식’을 변화시키는 데도 사진가선이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사진출판의 어려움이 가중되지만 보다 많은 이들이 즐길 수 있도록 사진집 단가는 낮추고, 사진의 질적 수준은 높이려 했다”며 “사진가선이 향후 100권, 200권을 넘어서 한국 사진사의 1차 사료이자, 사진에 대한 개념과 사진미학의 재정립에도 이바지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각권 110쪽 내외·1만2000원.

 

[경향신문]


사진가 김지연씨 여덟 번째 개인전… 15일부터 전주 ‘서학동 사진관’서

 

 

 

김지연 씨의 작품 ‘막걸리 1병 2000원. 완주’

 

 

사진가 김지연 씨(66)의 시선은 사라져가는 것이나 낡은 것들을 고집스럽게 향해 있다. 옛것들에 대한 추억이나 감상에 그치지 않고 역사의 발자취와 민중의 삶을 기록하려는 일관된 시선을 고수한다.

그의 여덟 번째 개인전 ‘삼천 원의 식사’가 15일부터 30일까지 전북 전주시 완산구 서학로 16-17 ‘서학동 사진관’에서 열린다. 3000원 안팎에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국수 국밥 두부 찐빵 막걸리를 받쳐 든 사람들의 사진 30여 점이 걸린다.

그는 “어떤 장사꾼이든 장사를 취미나 재미로 하는 사람은 없다.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걸고 매일매일 삶 속에서 투쟁한다. 서민 생활의 기본적인 물가 단위가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각인되는 숫자인지, 세월이 지나면 어떤 무게로 기억될지 알고 싶다. 그것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서민들의 삶의 무게며 단위일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김 씨는 2002년 ‘정미소전’을 시작으로 ‘근대화상회’ ‘시골 이장’ ‘이발소’ ‘묏동(무덤)’ ‘낡은 방’ 등 익숙하지만 주변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을 사진에 담아왔다.

2006년 전북 진안의 문 닫은 정미소를 사들여 꾸민 ‘공동체 박물관 계남정미소’를 2012년까지 운영했다. 할머니들의 영정사진을 찍어 주고 집집마다 안방 액자에 걸린 빛바랜 가족사진과 ‘진안군 졸업사진첩’ 등을 전시해 지역 사람들의 기억과 경험을 나누는 문화공간으로 꾸려 나갔다. 지난해 3월에는 전주교대 후문 근처 오래된 한옥을 고쳐 서학동사진관으로 개관했다. 현실에 뿌리 내린 기록성 있는 사진작품을 주로 전시하는 공간이다.

15일 오후 5시 오픈행사 때 새로 펴낸 사진집 ‘한국사진가 10선’(눈빛출판사) 출판기념회도 연다. 063-905-2366

동아일보 /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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