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전, 창원에서 활동하는 조성제씨가 인사동에 나타났다.
아내 박명숙여사와 함께, 여름휴가를 맞아 서울로 왔다는 것이다.
자녀들을 만날 일도 있지만, 여러 전시를 돌아보기 위해서란다.

아내 정영신과 함께 인사동 ‘여자만’에서 반가운 만찬의 시간을 가졌다.

그와는 40여 년 전 부산에서 사진을 시작할 무렵, 같은 동아리에서 함께했다.
그 당시 '월간사진 부산지부' 소속 회원으로 이십 여명이 있었으나,

김석중(김아타)씨와 구미의 이한석씨, 창원의 조성제씨 등 나까지 네 사람만 남았고,

대부분의 회원들은 사진판에서 소식이 끊겨버렸다.

그 뒤 내가 서울로 올라하며 조성제씨와도 10여 년 동안 소식이 끊어졌다.

십오 년 전 우연히 그를 다시 만났는데, 창원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며 ‘우포늪’을 촬영한다고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경제적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탱하기 어려웠던 사진작업의 한계를 일찍 알아차려

한동안 사업에만 전념했던 것 같다. 어느 정도 경제적 능력을 갖춘 후 계명대 사진영상디자인과와

계명대학원 사진전공 석사과정을 거치는 등 사진에 다시 전념했다고 한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습‘, ’주남판타지‘, ’람사르총회 특별전, ‘WHITE SPACE', 영국’AM갤러리 초대전’,

‘동서미술상 수상 기념전 등의 전시와 세 권의 사진집을 출판하는 왕성한 활동을 벌이며 환경사진에 올인한 것이다.

그의 마음속에 간직한 사진의 열정을 다시 불태워 자신만의 사진세계를 확고하게 구축한 것이다.

그 이후 서울과 창원을 오가며 간간히 만났는데, 이번엔 아내를 대동하고 나타났다.
일전에 그의 창원 전시에서, 한 번 뵌 적은 있으나, 왠지 낯설어 보였다.
그때는 한복 차림인데다 자세히 보지 않아 그런지, 솔직히 처음엔 새 애인이 생긴 줄 알았다.
너무 젊게 보여 실수를 범 했는데, 예쁜 것도 죄이던가?

듣자하니, 그의 아내는 새벽에 촬영 나가는 남편의 밥상까지 차리는 옛 어머니 같은 자상함이 있다고 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어디 이런 여인이 있을까? 긴 세월동안 고생해 온 어머니들의 한이야 가슴 아프지만,

어쩌면 그 때가 더 인간적이었고 행복한 시절이었는지 모른다.

박명숙여사도 예전의 어머니처럼 남편과 자식들 뒷바라지에 헌신하며 살아왔으나 이젠 자식들이 장성하였으니,

자신만의 일거리를 갖고 싶은 모양이었다. 여지 것 대부분의 부인들이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 살았지,

자신의 이름은 잊고 살지 않았던가? 그래서 별다른 직업이 없다면 주부 박명숙이라는 명함을 만들라고 충동질 했으나,

사실은 부부간의 정에 올인 하는 것이 더 낳지 않을런지...

뒤늦게 치맛바람 휘날리는 것보다, 오손도손 정 나누며 사는 것이, 여생을 즐기는 진정한 행복이라 생각된다.

그 날 또 다른 소식도 접했다.
오래 전부터 주남저수지 인근에 사진미술관을 신축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데, 시에서 허가를 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유지에 공공의 문화예술 공간을 만든다는데도, 좋은 방법은 찾지 않고 무조건 반대부터 하는 행정에 문제가 많은 것 같다.

그 날은 술이 취해 내 취부를 다 꺼내 놓으며 별의 별 이야기들을 다 했는데,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다는 생각을 한다.

무슨 말이던지 속에 감추고는 살지 못하는 천성도 그렇지만, 자신을 학대하는 처신에 문제가 더 많은 것이다.

이젠 아내를 생각해서라도 자중하려 노력은 하지만, 가끔 술이 취하면 그 버릇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도루아미타불~”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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