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연합 “약자와의 동행은 허구” 비판

 

오세훈 서울시장이 약자와의 동행을 강조하며 노숙인 쪽방촌 지원방안을 공개한 가운데 관련 시민단체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라며 서울시를 향해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사진은 2022홈리스주거팀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헤랄드경제/ 이영기 기자]

 

[헤럴드경제=김용재·이영기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이 ‘약자와의 동행’을 강조하며 노숙인 쪽방촌 지원방안을 공개한 가운데 관련 시민단체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라며 서울시를 향해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노숙인·쪽방촌 관련 시민단체 연합인 ‘2022홈리스주거팀’은 12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의 노숙인·쪽방촌 관련 현실적인 지원방안과 오 시장과의 면담을 촉구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오 시장이 취임 후 첫 행선지로 창신동 쪽방촌을 찾고 3대 지원방안을 발표했지만 현재 쪽방주민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엔 미흡하다”며 “쪽방이라는 물리적 환경의 개선이 필요하다. 약자와의 대화 없는 약자와의 동행은 허구다”라고 비판했다.

 

서울시가 발표한 3대 지원방안은 ▷쪽방주민 무료식사 지원 동행식당 운영 ▷노숙인 급식확대 ▷쪽방촌 에어컨 설치 및 여름용품 지원 등이다.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인해 폭염에 고스란히 노출된 사람들을 위한 대책이지만, 2022홈리스주거팀은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12일 오전 서울시청 정문 앞에서 열린 ‘노숙인·쪽방 주민을 위한 3대 지원방안 비판 및 오세훈 서울시장 면담 요청 기자회견’. 사진 출처 : 뉴스클레임(https://www.newsclaim.co.kr) 김동길 기자

홈리스행동은 전날 입장문을 내고 오 시장의 3대 지원방안과 관련해 “홈리스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미흡하다”라며 “폭염대책은 쪽방의 물리적 환경 개선 없이 불가능하다. 적정 면적의 임대주택 제공을 지속 요구해왔으나 이번 대책에 언급은 없었다”고 했다.

 

이들은 근본적인 주거환경 개선을 요구 중이다. 쪽방촌을 공공주택지구로 지정해 임대주택 등을 빠르게 공급하고 개발 과정에서 주거민들이 외면받지 않도록 세부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종만 양동쪽방주민회 부위원장은 “현재 1인 최소 생활 면적 기준인 14㎡는 2021년 기준”이라며 “서울시에 18㎡으로 올려달라고 여러 차례 건의했고 선거 때도 직접 말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영국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 위원장 역시 “동자동 쪽방촌은 공공주택지구로 발표는 됐지만, 실제로 지구지정은 이뤄지지 않아 거주민들이 속만 끓이고 있다”며 “정치권이 하루 빨리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의 온전하고 신속한 추진을 바라는 쪽방 주민들의 집회가 지난 13일 오전 11시부터 세종시 국토교통부 앞에서 진행되었다.

 

“내가 사는 동자동, 내가 살아갈 동자동‘이란 슬로건을 내건 이번 집회는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추진 주민모임‘, ’2021 홈리스 주거팀‘, ’1017 빈곤철폐의날 조직위원회‘, ’세종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공동 주최했다.

 

이날 동자동에서는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김정호 이사장, 동자동사랑방 윤용주 대표,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추진 주민모임 김영국 위원장을 비롯하여 선동수 간사장, 박승민 활동가, 김호태, 양정애씨 등 30여 명의 주민이 모여 오전 7시30분경 세종시로 출발했다.

 

10시 30분경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홈리스행동‘의 이동현 상임활동가를 비롯한 여럿 명이 먼저와 준비작업을 하고 있었다. 다들 서둘러 나오느라 식사를 못한 터라 준비한 도시락으로 식사부터 했다.

 

국토교통부 청사 주변에는 전국 각지에서 찿아 온 단체의 집회와 갖가지 현수막으로 어수선했다. 누군 ’저런다고 들어줄까?‘지만, 옛 말에 ’우는 아이부터 젓 물린다’란 말이 있듯이 안 하고 내버려 두는 것보다야 백배 낫다.

 

그런데 이번 집회에는 색다른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것 같더라. 여기저기 우산을 배치하는데, 우산에는 각기 다른 글자가 적혀있었다.

 

'홈리스행동'의 이동현씨 진행으로 시작된 주민 좌담회에는 동자동의 김호태, 백광현, 김영자, 앵정애씨가 나와 여러 가지 애로점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김호태씨는 비가 오면 방에 물이 흘러 방 주변으로 도랑처럼 물 고인 흔적이 남아 있다며 사는 꼴이 말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더 큰 문제점은 어느 쪽방 건물이나 비상구가 없다고 했다. 만약 불이라도 나면 다닥다닥 붙은 쪽방 건물들은 가파르고 좁은 출입 계단뿐이라 대형참사를 면키 어렵다고 말했다.

 

백광현씨는 건물주인들의 횡포를 꼬집었다. 어느 날 방문마다 안전진단을 이유로 방을 비우라는 딱지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강제퇴거 시키고는 게스트하우스로 개조해 다시 들어갈 수 없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양정애, 김영자씨는 동자동은 고향 같은 동네인데, 재개발 소식에 큰 희망을 품고 산다고 했다, 우리도 이웃과 어울려 커피라도 한 잔 나누어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생기게 되었다며 좋아했는데, 혹시라도 잘 못 될까하는 걱정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유행가 ‘안동역에서’와 ‘내 나이가 어때서’에다 ‘서울역에서’와 ‘공공개발 어때서’로 가사를 바꾸어 노래 부르는 순서가 되었는데, 대표 가수로 차출된 백광헌씨의 노래솜씨가 보통은 아니었다.

 

동자동에서

 

동자동에 갇혀버린 허무한 세월이여

동자동 공공주택 사업을 생각하며

남은 인생 희망을 품는다~

지금까지 살아 온 시간

길고도 험했는데

안 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

공공주택 사업아~

지금에야 집 같은 집 꿈을 꿔 본다.

공공개발~ 눈물이 난다

 

공공개발 어때서

 

야~야~야~ 공동개발 뿐이죠

우리는 공공개발 원해요~

마음은 하나요 공공개발 뿐이죠

건물주가 우리 집 지어 줄까요~

물이 새도 나몰라

방세만 받으면 끝

돈만 아는 집 주인들 뿐이죠~

세입자 사는 건 관심들도 없고요

오로지 방세만 받으면 끝

싫으면 나가라

우리들은 투명인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요~

 

이어 발언에 나선 주민협동회 김정호이사장은 가까이 지내던 전 이사장 유영기씨와 아끼던 후배 한정민씨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사람답게 한 번 살아보지도 못함을 안타까워하며 사람이 죽어도 금방 알 수 없는 현실을 토로했다. 건물주들은 사람이 죽어도 나몰라라 하며 오직 방세 받는 데만 혈안이 되었다며, 이젠 죽기 살기로 싸울 수밖에 없다고 결의를 다졌다.

 

‘동자동 사랑방’ 윤용주 대표는 공공주택사업의 차질 없는 추진으로 사회에서 배제된 쪽방 주민들이 안정된 주거환경 속에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했다.

 

공공주택사업 추진 주민모임 김영국 위원장은 공공주택사업추진 조직에 쪽방촌 주민대표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며 당사자 의견도 반영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주장했다.

 

‘양동쪽방 주민회’ 용명중 위원장은 충분한 물량공급으로 개발 범위에 포함되지 않은 우리도 교도소 독방 같은 쪽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연대 발언으로 나선 세종장애인차별철페연대 문경희 대표의 설움을 토해내는 울부짖음은 듣는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의 흔들림 없는 시행을 촉구하는 요구서를 김정호, 윤용주, 김영국 주민대표가 차례대로 낭독하며 국토교통부 담당자에게 전달했다.

 

이어 ”공공개발 환영한다. 적정면적 제공하라. 임대주택 확대하라“란 글이 적힌 우산을 펼쳐 들고 청사 주변을 행진하는 가두퍼레이드를 펼쳤다. 아마 청사에서 일하던 담당자들이 내려보았다면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었을 것이다.

 

행진을 마친 뒤 주민 몇 분이 차례대로 청사를 바라보며 요구 사항을 외쳤는데, 마지막 발언에 나선 김정길씨는 ‘쥐하고 바퀴벌레와 사는 열악한 삶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이젠 정부에서 개발업자나 투기꾼들 배만 불리는 민간개발보다는 서민들을 위한 공공개발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서민들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수십억의 돈이 권력자 로비 자금이나 사례비로 나가는 등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대장동 사건을 지금 겪고 있지 않는가? 동자동 공공개발을 시범으로 전국으로 확대 추진하길 촉구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요구서 전문]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흔들림 없이 신속히 추진하라

 

지난 2월5일 발표된 ‘서울역 쪽방촌 정비방안’에는 전국 최대의 쪽방촌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공공주택사업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동안 서로 이웃이 되고 가족과 같이 살아가기에 쪽방촌을 떠나지 못했던 쪽방 주민들에게는 개발로 인해 쫓겨나는 것이 아닌 보다 안정된 주거환경 속에서 이웃들과 함께 살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었기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은 쪽방촌 주민들의 주거환경 개선에 큰 의미를 두고 추진되는 사업이다. 따라서 이번 사업이 쪽방촌 주민들이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참여자로 보다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추진 과정에 쪽방 주민 당사자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사업추진 조직(TF)에 쪽방촌 주민대표의 참여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이번 공동주택사업 계획을 추진함에 있어 논의 구조에 주민(대표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반드시 보장하여 당사자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쪽방 주민들의 열악한 주거환경개선에 의미를 두고 있는 이번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쪽방 주민을 시혜와 공급의 대상으로 여기지 말고 협력 파트너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2, 공공임대주택 입주 후에도 주민 스스로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고 가꾸어 갈 수 있도록 개발계획에 동자동 주민 자치 조직의 활동 공간이 포함되어야 한다.

 

‘동자동 사랑방’과 ‘사랑방 마을 주민 협동회’는 풀뿌리 주민 자치 조직으로 2007년부터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의 인권과 권리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쪽방촌의 유일한 주민 자치 조직으로 지난 10년 이상 지역에서 주민 협동공동체 실현을 위해 힘써 온 주민조직들이 개발 완료 후에도 계속 그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공간(사무실)과 주민 스스로 다양한 마을 행사와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터, 공원)이 확보 되도록 디자인되어야 한다

 

3, 충분한 물량 공급으로 이번 개발 범위 안에 포함되지 못한 동자동 인근의 쪽방 주민들을 포함 할 수 있는 물량을 공급하여 최악의 주거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번에 발표된 임대주택 1,250가구가 충분한 공급량인지에 대해서 재고될 필요가 있다. 사업 지구의 경계나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범위 밖의 쪽방 주민들과 고시원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이번 계획에서 소외되거나 배제되지 않고 함께 입주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4, 쪽방은 사라져야 한다.

 

반지하나 고시원보다 못한 것이 쪽방이다. 지난해 1월 영등포 쪽방촌을 시작으로 대전, 부산에 이어 네 번째로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대한 공공주택사업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서울에는 남대문로5가(양동), 돈의동, 창신동, 전농동 쪽방촌이 남아 있고 대구와 인천에도 쪽방촌이 있지만, 이곳에 대한 공공주택사업 추진 계획은 없다. 쪽방 주민들은 상상할 수 없는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주거환경 속에서 건물주들의 비인간적이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쪽방은 노후하여 오래전부터 재개발 계획이 수립되었지만, 건물주들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개발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적극적으로 나서 남아 있는 쪽방촌에 대한 주거 문제를 빠른 시일안에 해결해야 한다.

 

최후의 주거 쪽방. 쪽방에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배제되고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살고 있다. 공공주택사업으로 쪽방촌 주민들이 안정된 주거환경 속에서 시혜에 의존하는 삶이 아닌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국토부는 이상의 요구를 반드시 수용하기 바란다.

 

2021년 10월 13일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의 흔들림 없는 시행 촉구 국토부앞 집회 참가자 일동

 

 

 

 




이 얼마만인가? 게임의 승부사 황배추가 연락이 되었단다.
지난 21일 밤, 김명성씨로 부터 전화가 걸려와 황배추와 술 한 잔 하자는데,
인사동이 아니라 연신내란다.
일요일은 연신내와 가까운 녹번동에서 죽치는 날인지라 총알같이 달려갔다.






연서시장의 장터국밥으로 출동했는데, 그곳에는 김명성씨와 김영국, 김상윤씨가 먼저 와 있었다.
좀 있으니, 이만주씨가 나타났고, 마지막에야 우리나라 삼대 구라 중 한 분인 방배추가 아닌, 황배추가 나타난 것이다.






그를 본적이 아마 칠 팔년은 족히 된 것 같았다.
한 때 인사동주변을 누볐으나, 김명성씨가 인사동에 ‘아라아트’를 세울 무렵 홀연히 사라졌다.
이 친구는 최고의 오르가슴은 게임의 승부에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40여 년 동안 도박이란 도박은 손대지 않은 게 없는 도박 승부사다.
그렇지만, 언제든지 그의 지갑은 50만원에서 더하지도 빠지지도 않았다.






한 때는 이런 적도 있었다고 한다.
명동의 한 파친코 업소에서 한 달 동안 틀어박혀 돈을 털어 넣었다고 한다.
전 기계의 특징과 성능을 한 달 만에 완전히 파악했던 것이다.
그러나 잃은 돈만 찾아내고는, 더 이상 욕심 부리지 않았다.






그 다음부터 매일같이 파친코장을 살피며 손님들과 인맥을 쌓아갔는데,
벼랑에 선 손님들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다.
위급할 때 한 번씩 도와주었으니, 그때부터 손님들의 불화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오히려 손님이 늘어나자 업소 주인이 더 좋아해, 그를 고용하려 했단다.






그가 돈에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은 아버지가 황부자로 불릴 만큼 재산이 많기도 했지만,
욕심이 결국은 화를 부른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동내 도박판을 기울여 투전꾼들의 심리를 파악하는 등 그 끼는 타고났다고 한다.
심지어 경마장에서도 백전백승의 승부사였는데, 딴 돈으로 잃은 사람을 도와 주기도 하고,
잃은 사람들과 어울려 한 잔 술로 시름을 풀어주어, 경마장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돈을 벌지 않으려면 무엇 때문에 게임에 모든 시간을 바치느냐고 물었더니,
게임에 적중할 때의 오르가슴은 섹스의 오르가슴보다 더 황홀하고 오래 간다는 것이다.






그 말에 김명성씨도 흔쾌히 동의했다.
김명성씨는 도박에는 손대지 않지만, 컬렉터로서 좋은 작품을 낙찰 받거나
자기 손에 넣었을 때의 오르가슴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두 사람 다 한 길에 올인 하는 승부사 기질이나 배짱도 비슷한 것 같았다.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니, 소설 한 권은 족히 될 만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만주 시인이 두번째 시집이 나왔다며 책을 한 권 가져왔는데, 제목이 ‘삽결살 애가’였다.
시집이 한 권 뿐이라 표지를 찍고 황배추를 주었으나, 누가 디자인 했는지 표지 디자인이 엉성했다.
시집은 시만 좋으면 그만이겠지만, 독자들로부터 읽고 싶은 충동을 끌어 들여야 할 것 아니겠는가?





재미있는 실화를 듣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장터국밥’의 불고기도 맛있었으나,
연신내 부근을 훤히 알고 있는 황배추가 싸고 맛있는 집이 있다며 따라오라 했다.
연서시장 안으로 들어가 “똑순네‘란 이름의 코너에 자리 잡았는데, 간장게장이 짱이었다.
그리고 주인아줌마의 서비스나 손님 기분 맞추는 넉살도 보통은 아니었다.





황배추는 주인을 잘 알았지만, 다들 가게 이름과 전화번호 적어가기 바빴다.
김영국씨가 간장게장 국물로 밥을 비벼 먹는데, 한 술 얻어 먹어보니 기가 막혔다.
이 국물만 있으면 쪽방에서도 끼니를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손님들이 먹다 남은 국물까지 모두 싸 달라고 했고, 김영국씨도 별도의 간장게장을 싸두었다.






이 날은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을 만나 기분도 좋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와 더불어 맛있는 음식까지 포식했으니, 기분 째지는 날이었다.
그러나 너무 많이 마신 것 같아, 싸두었던 간장게장 봉지를 들고 일어서야 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비닐봉지를 풀어보니, 김영국씨의 봉지와 뒤 바뀐 것이다.
난 이가 신통찮아 국물이 필요했으나, 봉지 안에는 통 게가 들어 있었다.
먹을 복이 없는 건지, 있는 건지, 결국 간장게장은 정영신씨 몫이 되어 버렸다.






난 평생 스스로 도박에 승부 걸어 본적이 한 번도 없으니, 그 게임의 오르가슴을 잘 모른다.
그러나 사진에 미쳐 한 길을 걷고 있으니, 이것 또한 도박이 아닌지 모르겠다.
어쩌면 결혼하여 직업을 선택해 사는 세상살이 자체가 도박이겠더라.

그래 “인생은 도박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야 이 개새끼야~ 우당-탕 탕술 자리에 난리가 났다.

지난 14일 새벽, 완주 한봉림씨 작업실에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술 취해 졸다 시끄러워 눈을 떠보니, 꿈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안개가 자욱한 듯 사람은 보이지 않고 고함소리만 들렸다.

소화기 포말 냄새로 보아 불이 난 걸로 착각했다

슨 일로 왜 싸울까 궁금했지만, 꿈 꾸듯 헷갈렸다.

옆 자리에는 자다 깬 송상욱, 이만주, 박인식씨가 놀란 망아지처럼

우두커니 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싸우는 사람은 바로 이상훈씨와 김명성씨였다.

도자기 깨지는 소리와 의자를 집어던져 벽의 통유리가 깨지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화가 서길헌씨는 이상훈씨를 부여 잡았고, 김영국씨는 김명성씨를 떼어놓느라 정신없었다.

그런데 작업실에 있던 한봉림씨가 방에 들어나자

이상훈씨의 화살이 그 곳으로 날아가는 걸 보니, 이상훈씨와 한봉림씨 싸움 같았다.



    


나이 많은 선배에게 행패부리는 것을 김명성씨가 그냥 두고 볼리 없기 때문이다.

힘에 부친 김영국씨가 손을 다쳐, 김각환씨가 나서서야 간신히 김명성씨를 제압했다.


결정적인 것은 한봉림씨가 2년에 걸쳐 완성했다는 100호쯤 되어보이는 그림에

술병을 날렸는데, 캠퍼스천을 뚫으며 액자가 바닥에 나 뒹군 것이다.





간신히 이상훈씨가 밖으로 밀려 나가서야 사태가 수습되기 시작했다.

김시인씨가 쓰레기를 한데 끌어 모아 대충 정리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사진 찍을 자격도 없는 것 같았다.

밤새도록 카메라를 들고 놀았으나, 왜 그 기막힌 현장을 찍지 안했을까?

무의식적으로 카메라에 눈은 갔으나, 차마 잡을 수 없었다.

벗들이 죽자 살자 싸우는 그 다급한 판에 어찌 카메라를 들이댈 수 있겠는가?

사진은 냉정함을 요하니, 차라리 사진가이기를 포기하는 게 낳겠다.



   


뒤늦게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한봉림씨의 술 취한 퍼포먼스를 이상훈씨가 과잉 대응한 것 같았다.





다들 하루종일 술을 너무 많이 퍼 마셨다.

낯부터 전주 막걸리골목에서 마시고, 한봉림씨 댁에 준비된 술은 물론 비축주마저 씨를 말리지 않았던가.

자정이 지나서는 그마저 없어져 콜택시에 연락해 전주에서 소주 한 박스와 맥주 두 박스를 사 오게 만들었다.

얼마나 기분좋게 놀았는지, 내 생애 최후의 화려한 만찬이라 했다가,

그 자리에 정영신씨가 없어 최후란 말은 거두었다.




 

술 마시며 재미있게 놀다 분위기가 식은 시간은 새벽 두시 무렵이었다.

두시부터 시작되어 새벽 네 시 무렵에야 사태가 진정 되었으니,

무려 두 시간 동안 난장을 벌인 것이다.



 


분위기가 시들해서 포커 판을 벌였는지,

포커 판 때문에 술자리 열기가 식었는지 모르겠으나,

문제는 이상훈씨등 네 사람이 벌인 포커 판이었다.



 


나 역시 포커하는 게 싫어 자리에 누웠지만, 다들 그 때부터 술자리에서 물러난 것 같았다.

그 무렵, 작업실에 있던 한봉림씨가 갑자기 소화기를 들고 나타난 것이다.

처음엔 벽난로의 불이 옮겨 붙는 착각에 소화기를 잡았는지 모르지만,

느닷없이 포커 판 쪽으로 소화기를 쏜 것이다.



 


그래서 직격탄을 맞은 이상훈씨가 난리를 친 것이다.

하나의 퍼포먼스 였으나, 이상훈씨는 그런 상황에 익숙하지 못했다.

차라리 하얀 눈가루를 맞으며 춤이라도 너울너울 추었으면 좋으련만...




 


무작정 한봉림씨에게 욕하며 달겨드니, 김명성씨가  빰을 몇 대 때렸다고 한다.

그래서 분풀이로 기물을 때려 부수며, 난장판을 벌인 것이다.



 


사태가 어느정도 수습되고 나니, 사고 친 이상훈씨를 비롯한 다섯명은 콜택시를 불러 탈출하고 없었다.

미처 차를 부르지 못한 김상현씨는 아코디온과 기타 통을 둘러메고 한 시간 반을 걸어 읍내까지 나갔다고 했다.

어두운 눈길을 걸어가며, 살아남은 유랑악단의 설움을 절절히 씹었을 것이다.





그 난장판을 피한 사람도 있었다.

일이 벌어지기 전에 숙소에 들어간 전활철씨 가족과 김혜련, 황예숙씨만

그 사실을 깜쪽같이 몰랐는데, 현장을 확인하고 아연실색했다.



 


남은 사람이라고는 김명성, 서길헌, 김영국, 송상욱씨 등 다섯 명인데,

이불은 소화기 가루가 뿌려져 버슥 버슥했지만 그 위에 쓰러져 잠시 눈을 붙여야 했다.





아침 무렵, 한 숨 자고 나온 한봉림씨가 현장을 보고 한 말이 죽인다

하하하~ 대단한 퍼포먼서였어


포말가루 자욱한 컵들을 씻어 커피 한 잔씩 마셨으나, 한봉림씨는 남은 맥주로 속을 풀어야 했다.




 

한참 후, 버스타고 올라가며 보내오는 메시지도 각양각색이었다.

화가 강찬모씨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날아가는 나비만 보았다고 적었고,

무용평론하는 이만주씨는 소화 분말을 많이 마셨더니, 속에 있는 울화가 다 사라졌다고 적었다.





 

인사동 풍각패의 유랑 길에 어찌 이 정도의 풍파를 거세다 할소냐?



 

 

전주로 유배 떠난 지가 몇 달된 음유시인 송상욱씨께 위문공연 가자는 이야기는 지난 년 말부터 나왔다.


난, 새해 첫날부터 감기에 걸려 두문불출하고 있었는데, 년초에 김명성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근일 간에 전주 가야하는데, 전주 가는 날을 형이 잡아라고 다잡았다.

일주일 후에는 감기가 나을 것 같아 토요일로 정했으나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감기도 완쾌되지 않았지만, 창원의 양철수씨가 보냈다는 택배를 받아 노숙인에게 나누어주어야 하는데,

빼도 박도 못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



 


구체적인  일정이나 누가 가는지도 모른 채강남고속터미널로 나갔더니,

이만주씨와 김상현씨가 먼저 나와 있었다.



 


주모자인 김명성씨가 무작위로 불러 모은 사람이 공교롭게도 십 팔명이었다.


십 팔년의 첫 유랑 길에 십 팔명이 떠난다는 암시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진 모르지만,

좋은 쪽으로 해석했다. 아무튼 괜찮은 년일 것 같은 예감은 들었다.





뒤이어 박인식, 김혜련, 황예숙, 김시인, 서길헌, 김각환, 이상훈, 김영국, 이만주,

강찬모, 전활철씨와 아들 시원이, 딸 예원이 까지 다양한 층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인사동 창예헌농심마니 팀으로 이루어 진 잡탕이었.



 


전주터미널에 도착하니, 송상욱선생과 한봉림씨가 나와 있었다.

첫 코스는 송상욱선생 작업실이 있는 전주 막걸리 골목이었다.

처음들린 집이 옛촌 막걸리였는데, 공교롭게도 바가지 집이었다.






술에 안주가 따라 나오는 게 아니라 안주를 시켜야 술이 한 주전자씩 나왔다.

많은 안주를 시킬 수 밖에 없어 잠깐 동안 마신 술값이 무려 40만원이나 되었다.

전주의 맹주 한봉림씨가 내려는데, 김명성씨가 먼저 내버려 구역침범했다며 화를 냈다.

그보다 엄청난 바가지 골목이 되어버린 막걸리골목의 못된 장삿속에 더 울화가 치민 것 같았다.

인터넷에 올려 아무도 가지 못하게 할 것이라며 펄펄 뛰었다.





그 자리에서 황예숙씨는 송상욱선생께 도예작품을 이주선물로  전하기도 했다.

이어 송상욱씨의 재미있는 노래와 김상현씨의 구성진 연주가 이어졌다.


“사랑이 좋으냐 친구가 좋으냐? 막걸리가 좋으냐 색시가 좋으냐?

사랑도 좋고 친구도 좋지만, 막걸리 따라 주는 색시가 더 좋더라

이어지는 열두냥짜리 인생도 들었고, 김상현씨가 부른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도 들었다.



    


지척에 있는 송상욱선생의 무대로 옮겨갔다.

입구에는 송상욱선생의 시집 제목이기도 한 무무놀랑이란 현판이 붙어 있었다.

안에는 송상욱선생께서 노래 할 수 있는 무대가 만들어 져 있었고,

부인이 춤 출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벽에다 거울을 붙여 그런지 엄청 넓어 보였는데, 더 놀라운 것은 가게 임대료였다.

한 평도 되지 않는 쪽방  임대료가 23만원인데, 그 넓은 작업실이 한 달에 20만원이라는 것이다.





그 곳에서 송상욱선생의 아내인 김미옥여사를 만날 수 있었다.

인사동 아라가야에서 처음 만난 지가 벌써 10이나 흘렀는데,

세월이 빠른 건지, 사는 게 급한 건지, 나도 모르겠.


김미옥여사가 준비한 다과에다 보드카도 한 잔 씩 마셨다.

방음된 공연장에서 듣는 아코디언 연주와 노래소리는 좀 달랐다.  

역시 뽕짝은 술집에서 젓가락 두드리며 부르는 맛이 좋더라.



    


늦을세라, 한봉림씨 아지트가 있는 완주 소양면 종남산 자락으로 옮겼는데,

그런 귀 막힌 퍼포먼스가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꿈엔들 알았으랴!





앞서 말했지만, 그 날만큼 재미있게 논적도 드물었다.

유목민주인장 전활철씨의 노래도 한 몫했다.

달래듯, 빈정대듯 하소연하듯 상대의 마음을 툭툭 건드리며 부르는

쌍팔년도 포크송에 세 여인의 입이 쩍 벌어졌다.

다양한 춤이 어우러진 가무 또한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을 듯 싶었다.



 


그런데 종남산자락의 집터가 샌 것인지, 오래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창예헌가을여행과 농심마니산행이 겹쳐진 10년 전에도

이곳에 전국각지의 명물 100여명이 모였는데, 그때도 가관이 아니었다.


영화사를 운영하던 임정하씨가 술이 취해 넘어져 구급차에 실려 가기도 했고,

관객모독의 연출가 기국서씨가 여우 공격법으로 한봉림씨를 활킨 사건은

아직까지 회자될 정도의 사건 사고였다.





그 날이 한봉림씨 모친 구순 생신이라 다들 인사를 올리기도 했는데,

이젠 백수를 넘기도록 종남산을 지키고 계시니, 보통 명당은 아닌 듯싶다.



 


한봉림씨의 안 서러운 배웅을 받으며 10시버스로 다들 전주 시내로 나왔다.

콩나물 해장국으로 속을 달랜 후, 또 다시 술집을 찿았다.

'전주한옥마을'에 있는 술집을 물어물어 갔더니, 가는 날이 공일이라 문이 잠겼다.

하나님 만나러 간다나...





닥치는 대로 찾아 들어간 집은 '구일집'이었다.

생각 밖의 맛있는 음식집이었다. 김밥도 가락국수도 나오는 음식이 모두 맛있었다.



 


오후3시 무렵에서야 서울로 올라오며, 지난 일들을 곱씹었다.


술이 취한 상태지만, 이상훈씨가 너무 무례했다. 그렇게 막 나갈 군번이 아니었다.

젊은 혈기라 그런지 모르지만 나이 많은 선배에게 너무 감정적으로 대처한 것 같았다.

좀 지혜로웠다면 소화기를 빼앗아 퍼포먼스를 대신 할수도 있잖은가?



 


그리고 이런 술자리에서 포커판을 벌여서는 안 된다,

일단 돈 냄새나면 역겹다. 꼭 해야 한다면 방을 빌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해야 한다.

어쩌면 호탕한 성격의 노장 한봉림씨의 거침없는 가르침 일 수도 있다.


어떻게 자기집에 찾아 온 손님에게 포말을 쏠수 있냐고 흥분하였지만,

남의 집이 아니고 자기가 청소할 집이니 가능한 것이다.





이번 일은 남의 기물을 망가트린 손해배상에 앞서 진정한 사과가 따라야 한다.

한 쪽 모서리가 터진 작품은, 또 하나의 훈장을 단채 의미를 더할 것이다.





아무튼, 술판의 돈 놀이를 채찍질한 훌륭한 퍼포먼스라 생각된다.

오랫동안 추억할 일이 틀림없으니, 이게 좋은 유랑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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