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말년에 동네 사람들 초상 사진 찍느라 걱정이 많다.

설득에 설득을 하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촬영하지만, 대개 반기지 않는데 있다.

인물의 정신이나 개성보다 오로지 멋지게 나오는 걸 원한다.

 

“개 같은 개성 보다 멋지게 찍어달라~“란 말도 여러 번 들었다.

하기야! 어느 누가 마지막 남을 사진, 멋지게 남기고 싶지 않겠는가?

그래서 외출 때처럼 모자를 쓰거나 수염을 깎아  찍기도 하고,

그 사람 개성과 정신이 드러난 내 꼴리는 사진도 찍는다.

 

며칠 전에는 충무로에 가서 초상사진을 몇 장 뽑았다.

전시할 때까지 빚쟁이처럼 쫓기기도 싫지만, 자기 사진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해서다.

그러나, 다들 받아 보는 표정이 신통찮았다.

말은 안 하지만, ”사진을 이 따위로 찍냐?“는 것 같았다.

내키지 않으면 다시 찍어 주겠다고 말은 했으나,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 다음 날은 정동지가 교보문고에 책 살 일이 있어 기사로 따라나섰는데,

마침 장흥의 마동욱씨가 인사동에 있으면 얼굴이나 보자는 연락을 받았다.

책 보따리를 챙겨 약속한 귀천으로 달려 갔더니, 아는 분 결혼식에 왔단.

 

동네 구장 같은 마동욱씨의 넉넉한 모습은 여전했다.

모처럼 시원텁텁한 '귀천'의 모과차 한 잔 맛보며, 마동욱씨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 드론으로 인근 지역의 땅을 찍고 있다는데, 한편으론 답답한 생각도 들었다.

 

살고 있는 장흥은 물론 강진, 영암, 고흥 등 인근 지역 곳곳을 촬영하여 사진집도 여러 권 냈는데,

그 사진들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더구나 촬영하면 찍힌 장소의 지번까지 나온다니, 사진으로 찍은 지적도나 마찬가지다.

 

나 역시 동자동에서 초상 사진 찍으며 열 받는 일들을 하소연 했더니,

자기도 마을 어르신들의 영정 사진을 많이 찍어 봐, 그 사정을 훤히 안단다.

요즘은 주름까지 안 나오게 깨끗하게 수정해 줘야 좋아하지, 그냥 주어서는 안 건다는 것이다.

아무리 말끔한 사진이 좋다지만, 사람이 사람 같지 않고 인형같은 사진을 만든다면,

사진에 쪽팔리는 일이 아니던가?

 

그것은 인간 개인의 자존감을 떠나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짓이다.

사진찍기에 앞서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자존감을 심어주는 게 더 시급할 것 같았다.

사람이 사람 대접 받으려면, 초상 사진부터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

 

귀천에서 일어 나려니, 기다렸다는 듯이 차 빼 달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요즘은 걷기가 힘들어 휠체어처럼 차를 끌고 나오지만, 매번 골목에 세워 민폐를 끼친다.

 

인사동 거리를 달려가다, 복잡한 거리에서 반가운 분도 만났다.

인사동을 자기머리처럼 반질반질하게 만들겠다는 김발렌티노 였다.

 

그가 인사동 청소부로 등장한 지도 벌써 일 년이 넘었는데,

이젠 인사동의 또 하나 명물 아닌 명사가 된 것이다.

 

정동지와 마동욱씨가 골목안 풍경전시가 열리는 인덱스갤러리에 올라간 틈에

차를 주차장에 집어 집어넣고, 모처럼 인사동 길을 걸어 보았다.

 

주말의 인사동 거리를 남인사마당에서 안국역 빙향으로 걸었는데,

남인사마당에서 인사동 사거리까지는 아직 문 닫은 업소가 많았다.

 

나들이객도 남인사마당 쪽보다 북인사마당 쪽이 훨씬 더 붐볐는데,

인사동 사거리를 기점으로 나들이객의 쏠림 현상이 심했다.

 

옷가게와 잡화상이 진을 친 거리에는 봄나들이 객들이 부산하게 오갔는데,

봄은 왔으나 나들이 나온 사람들의 차림은 여전히 겨울이었다.

 

나 역시 봄바람은 불어도 마음과 몸은 돌덩이처럼 무겁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듯 최선을 다 할 뿐이다.

 

사진, / 조문호

 

 

장애학생돕기 자선전인 함께 맞는 비가 지난 921, 오후4인사동 마루아트센터3층 그랜드관에서 개막되었다.

 

화가, 조각가, 만화가, 사진가, 도예가등 40여 명의 예술가가 참여하는 함비전

비장애인이 어려운 장애아의 눈이 되고 귀가 되어, 우산을 같이 쓰며 함께 비를 맞는 아름다운 행사다.

 

이날 개막식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두렵기까지 했다.

 

주홍수, 유준, 박성남, 강레아, 조풍류, 정영신, 조명환, 조신호, 임동은, 김수길, 박복신,

김발렌티노, 이한복, 공윤희, 전활철 씨 등 몇몇을 제외하고는 누군지도 모르겠더라.

 

운영위원과 출품작가를 비롯하여 관람객까지 더해 넓은 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발 디딜 틈이 없어 작품감상에 지장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함비전에 대한 일반인의 지대한 관심은 장애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청신호가 아니던가?

 

이 자선전은 많은 분의 참여를 이끌기 위해 작품가격도 기존 가격보다 대폭 낮추어 판매한다.

 

유명 작가의 작품을 저렴하게 소장할 좋은 기회다.

많은 분의 동참을 부탁드린다.

 

부디 첫 함비전이 오색 단풍처럼 아름답게 물들어, 그 소중한 마음을 모아 좋은 결실로 이어지길 바란다.

이 전시는 27일까지 계속된다.

 

공윤희, 정영신, 김수길씨와 전시장을 먼저 빠져나와

인사아트센터4층 부산갤러리에서 열리는 여성현대미술작가회원전에 갔다.

 

참여작가인 양계선씨를 축하해주기 위해서였다.

 

인사동 늘마중에서 막걸리로 목을 축인 후

식사를 예약해 두었다는 베이징 코아로 자리를 옮겼다.

 

베이징 코아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주 메뉴인 오리구이보다 마지막에 나온 짜장면이 압권이었다.

오리고기 맛을 몰라 그런지 모르지만, 잘 삶은 삼겹살보다 못했다.

 

촌놈에게는 비싼 중국요리보다 오로지 짜장면이다.

양파 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먹어 치웠다.

오리고기 가격이 만만치 않으나, 짜장면 먹으러 다시 가고 싶다.

 

사진, / 조문호

 

 

2021,9,22

지난 18일 오후는 정영신씨의 ‘어머니의 땅’ 전시 디피하는 날이었다.

 

사진 액자는 진즉 ‘나무아트’ 전시장에 올려놓은 터라 인사동 거리부터 돌아보았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이라 그런지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날따라 거리공연에 나선 뮤지션이 세 명이나 되었다.

다양한 음악으로 거리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유독 바이얼린을 연주하는 러시아 소녀를 경찰관이 제지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주변에 있는 가게 주인이 신고를 했단다.

 

"에라이~ 돈밖에 모르는 썩을 놈의 인간들..."

바이얼린 연주가 무슨 영업 방해가 되며,

비록 방해가 된다 해도 어떻게 자식 같은 외국 소녀에게 상처를 주는가?

 

연주하던 소녀가 다른 쪽으로 자리를 옮기는 걸 보고서야 ‘나무아트’에 올라가니,

이미 김진하관장이 액자를 배치하고 있었다.

전문가가 하는 일에 나설 수 없어 포장 해체하는 정도만 도왔다.

 

마침 거리미술가로 알려진 이태호 교수가 오셨다.

고 김수영시인 탄생 백 주년을 기념하는 전시에 판화 두 점을 출품하기로 했는데,

어디서 주최하는 행사인지 궁금해 했다.

 

정영신씨가 기획자 소개도 할 겸, 그 일을 추진하는 김발렌티노를 불렀는데,

김수영시인의 대형 시비도 만들어 둔 게 있다며, 전시 가능 여부를 타진했다.

 

그런데, 김진하관장께서 토론토 Tai Kim씨가 보내왔다는 예쁜 엽서를 전해 주었다.

페친으로서 정선에 불난 소식을 전해듣고 얼마나 정성스럽게 편지를 쓰고

행운의 크로바까지 붙여 보내 와 너무 감동적이었다.

이 글을 통해서나마 그 고마움을 전해 드린다.

 

김진하관장의 전시 디피 솜씨는 일사불란했다.

그 많은 액자를 짜임새 있게 배치했는데,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을 마무리한 후 이태호 선생과 함께 ‘툇마루’로 식사하러 갔지만,

차 때문에 술 한잔 제대로 마실 수가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노숙인, 길에서 살다’ 현수막을 설치할 ‘유목민’ 골목에도 잠시 들렸다.

골목 테이블에는 이인섭, 유근오, 노현덕씨가 술을 마시고 있었고,

‘유목민’ 안 쪽에는 김수길씨도 있었다.

 

반가운 분을 만났으나 술 한 잔 나누지 못하니 무슨 재미랴.

전시 기간 내내 짐 때문에 차를 끌고 다녀야 할 텐데,

참아야 할 술 고문은 어떻게 견뎌야 할지 모르겠다.

 

사진, 글 / 조문호

요즘 인사동 출입이 부쩍 잦아졌다.

인사동 이야기를 마무리하려니, 인사동과 관련된 분들이 너무 많이 빠져서다.

방동규선생을 비롯하여 화가 이종승, 금보성, 서정란, 이만주 시인 등

몇몇 분은 오래된 사진 파일에서 찾았지만, 다른 분들은 찍을 시간이 없었다.

 

찍은 사진만도 넘쳐나지만 가급적 많은 자료를 보내는 것이 좋은 책을 만드는 요건이었다.

책에 게재되거나 빠지는 문제는 사진의 완성도에 따라 편집자가 결정하도록 출판사에 위임했다.

 

그리고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기록하는 작업은 일회성으로 끝낼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사동에 대한 관심과 애착을 결집시켜 인사동 정체성이나

사라져가는 인사동 풍류를 되 찾을 수 있는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여지껏 책 만들기 직전에 집중적으로 일했으나 앞으로는 인사동과 관련된 분은 만나는대로

꾸준히 촬영하고 기록하며 몰랐던 이야기나 새로운 이야기들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이번에 게재되지 못한 분은 좋은 사진이 나올 때까지 다시 찍을 것이고,

미처 찍지 못한 분도 한 분 한 분 기록하여 인사동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한 것이다.

 

내년 초에 만들 인사동 사진집은 촬영해 둔 인사동 풍류를 조명할 수 있는 스냅사진으로 구성할 것이지만,

그 이후에 제작할 제2인사동 이야기는 추억하는 인사동이 아니라 앞 날을 제시할 책이 될것이다.

 

그동안 찍은 사진과 정리한 원고를 '눈빛출판사'에 넘기려고 보니, 인사동과 관련된 중요한 사람이 생각났다

바로 인사동 역술가로 알려진 신단수씨였다.

오래전 인사동 대일빌딩 자리의 역술인 아지트에서 비롯된 그의 행적은 인사동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그리고 인사동에서 태어나 자란 출판인 이나무씨의 인사동 이야기도 들어볼 겸,

지난 2일 오후 4시경 인사동으로 나갔다.

어차피 원고는 주말까지 보내기로 했으니, 하루의 여유가 있었다.

 

강원도에서 제사를 지내고 금방 왔다는 신단수씨를 만나 사진을 찍었다.

차 한 잔 나눌 시간도 없이 인사아트프라자전시장에 갔더니 편근희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인사동 사랑도 여간 아니기 때문이다.

장소를 정해 촬영하고 있으니 정영신씨와 김발렌티노가 나타났다.

 

김수영시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를 추진하는 김발렌티노를 돕기 위해 나온 것 같았다.

인사동 청소하는 김발렌티노도 찍고 싶었으나, 청소하는 날 맞추어 차후에 찍기로 했다.

거리에 낙엽이 흩어지는 늦가을 무렵의 청소 날에 연락해 달라고 부탁했다.

정영신씨는 판화가 류연복씨에게 부탁한 책 제호 글이 금방 도착했다며 보여주었다.

출판사도 만족한다지만, 나 역시 마음에 들었다.

 

추석이 끝난 다음 날부터 하게 될 정영신씨 어머니의 땅‘ 전시에 맞추어

노숙인, 길위에 살다' 현수막전을 '유목민' 골목 담벼락에 걸기 위해 현장답사를 했다.

책을 판매하기 위한 전시라 이숲 출판사이나무씨도 만나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이른 시간부터 전활철씨와 한 잔하고 있으니, 이나무씨가 나타났다.

 

노숙인 책을 출판하기로 약속했던 작년 2월의 첫 만남도 인사동 유목민에서 이루어졌다.

그 당시 인사동에서 태어나 고등학생 때까지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살았던 자리에 한 번 가 보자고 부탁했다.

가 보니 옛 모란미술관 자리였고 지금은 화봉갤러리가 있는 자리였다.

 그때의 기억을 담아달라는 원고청탁까지 했다.

그것도 다음 날까지 원고를 보내 달라고 부탁했으니 억지도 그런 억지가 없었다.

 

골목 담벼락에 걸 현수막 크기는 가로 8미터에 세로 1미터 50센티 정도인데, 그 속에 30여장의 사진을 배열하기로 했다.

현수막도 사진만 선정해 주면 출판사에서 제작해 주겠다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는가?

마침 사무실에 일보러 갔던 신단수씨와 정영신씨도 유목민에 나타났다.

작년 이나무씨와 첫 만남에도 신단수씨가 합석했는데, 우연치고는 특별했다.

두 분의 성함도 새로 지은 이름이었다. 이나무씨의 본명은 임왕준이고 신단수씨의 본명은 김효성이다.

 

그날 신단수씨를 만나 사진을 찍게되면 인사동의 미래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으나 참았다.

보나 마나 실망스러운 이야기가 나올 텐데, 일할 의욕을 잃을 것 같아서다.

 

기분좋게 마신 술자리였는데, 다음 날 해는 분명 서쪽에서 뜰 것이다.

사진을 편집하여 현수막까지 만들어 주겠다는 말이 고마워 술값을 냈기 때문이다.

현금카드를 처음 만들어 보았는데, 카드 긁는 재미가 솔솔했다.

이러다 나도 노숙자 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사진, / 조문호

 

 

김수영 시인 탄생 100주년을 100일 앞둔 지난 20일 정오, 보신각에서 열 두번의 종이 울렸다.

 

김발렌티노가 준비한 이 행사는 보신각 타종을 시작으로 100일 동안 김수영시인을 기리는 다양한 일을 벌인다고 한다.

 

인사동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 하는 김발렌티노의 문화사랑은 남다르다.

‘인생은 아름다와라’ 대표라는 직함을 내걸고 지구별청소부로 나선 것이다.

 

얼마 전 생계에 어려움에 처한 그가 종로구청 환경미화원 공채에 응했다고 한다.

면접시험에서 “종로구를 반질거리는 자기 머리처럼 깨끗하게 하겠다”고 말했다기에 한바탕 웃은 적도 있었다.

 

아무튼 그의 열성이 인정받아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는데,

그가 하는 일은 청소에 국한되지 않았다. 청소 업무 외에도 의미 있는 일들을 계속 찾아 나선다.

 

3ㆍ1운동 100주년기념 100일 순례를 비롯하여 윤동주탄생 100주년 기념 100일 시음악제도 열었고,

올해는 유네스코가 선정한 김대건 신부를 위해 그가 걸어간 스물다섯 짧은 생애를 묵상하며 여러 가지 일을 벌이고 있다.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 없어도 발렌티노의 문화 활동은 멈추지 않는다.

그의 남다른 시 사랑에 대한 글을 한 번 들어보라.

 

“나는 모든 시인을 사랑한다. 특히 윤동주 시인과 김수영 시인을 사랑한다.

윤동주를 읽으면 더러운 피가 맑아지고, 김수영을 읽으면 식은 피가 뜨거워진다.“

 

지난 20일은 김수영 시인(1921. 11.27~1968. 6.16)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100일 기도 첫 날이었다.

이 날 가까운 지인들을 모시고, 정오에 맞추어 보신각 타종 행사를 벌인 것이다.

 

시인 류미야, 사진 찍는 소설가 정영신, 문화기획자 김석준, 경제학자 백영현, 현대무용가 김남식, 배우 이윤정,

문화기획자 전은진, ‘인사아트플라자’ 대표 박복신, ‘르프랑’ 대표 강현숙, 김발렌티노 등 10명이 참가했다.

 

그리고 김수영시인 100주년을 알리는 홍보용 동영상은 김병천 감독이 찍었고, 스틸사진은 내가 찍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많은 분들에게 알릴 수 없어 조용히 치러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타종도 세 사람씩 세 차례에 나누어 열 두번을 쳐야 했다.

 

울려 퍼진 보신각 종소리는 분명 저승까지 날아가 김수영 시인께 전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김발렌티노가 김수영시인의 시 ‘푸른 하늘을’ 너무 좋아해 입버릇처럼 노래를 불렀다.

지난 8월1일 밤 10시경 청와대 앞을 지나갈 때, 김수영시인의 시가 빗속을 뚫고 노래로 완성되어 들려 왔다고 한다.

그 노래를 핸드폰으로 녹음하여 기타리스트 김광석씨에게 보내 악보로 옮겨 와 새로운 노래로 탄생시킨 것이다.

100일 동안 그 노래 가 담긴 엽서를 만나는 사람마다 전달하며 김수영 시인을 기리게 한다는 것이다.

 

문화전도사인 그를 도와주는 분도 여럿 있었다.

‘더숲’ 대표가 엽서 만장과 현수막 제작비를 부담해 주었고, 행사에 참가한 분들에게 식사를 제공한 인사동 ‘르프랑’ 강현숙대표 등

몸으로 마음으로 후원하는 분들이 있는 한 김발렌티노의 문화사랑은 계속될 것이다.

 

"지구별 청소부 김발렌티노의 문화활동을 응원한다!"

 

사진 글 / 조문호

 

푸른 하늘을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마임이라는 말만 들어도 생각나는 유진규씨는 우리나라 마임의 대표주자다.

또한 축제의 거장으로 그동안 다양한 축제를 성공시켜 왔다.

오래 전 자리 잡은 ‘춘천마임축제’도 그가 성공시킨 축제지만,

지난해에는 김장축제를 난장축제로 이끌어 주목받기도 했다,





다양한 시도로 신선한 변화를 일으키는 그의 몸짓에 독보적인 에너지가 솟는다.

긴 세월동안 마임에 온 몸과 마음을 불어넣었는데, 중요한 것은 예술 행위를 무대에

한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끌어들여 치열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입으로만 정의와 민주주의를 외치는 예술가들이 부지기수인 현실이라

그의 투쟁적 행보가 더 돋보이는 것이다.





2년 전, ‘주류 아닌 예술가들의 시국 퍼포먼스’라는 팀을 만들어

주말마다 촛불집회에서 행한 그의 투쟁사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철판을 등에 짊어지고 광화문광장을 행군하는 모습이 아직까지 눈에 선하다.

철판 끌리는 굉음으로 부도덕한 정권에 야유를 보내며, 그들의 퇴진을 촉구한 것이다.





손자까지 둔 적잖은 나이에도 강행군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존경감이 일었다.

촛불집회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춘천에서 왔는데, 그 것도 혼자가 아니라

팀을 이끌었기에, 마음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었다.





이번 삼일독립혁명 백주년을 맞은 시민 축제에도 그는 빠지지 않았다.

대표적 행사인 ‘민족평화신명천지축전’과 ‘만북울림문화제’ 모두 모습을 드러내었다.





지난 26일 오후5시 청계광장에서 열린 ‘민족평화신명천지축전’ 부대행사인 제주4,3사건의

한을 다룬 입체 시낭송에서 보여 준 퍼포먼스는 보는 이로 하여금 당시의 한을 절감케 했다.

문무병, 허영선, 김수열씨 등 제주 시인들이 읽어 내리는 시 낭송이 무색한 몸짓이었다.





지난 3월1일 오전9시부터 ‘탑골공원’에 모인 ‘만북울림문화제’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이 행사는 전국 팔도에서 약 만 명에 달하는 이들이 북과 장구 등 갖가지 악기를 갖고 모여

더 행복한 대한민국을 기원하며 만북을 울리는 축제였다.





예술가 55명으로 구성된 유진규씨의 ‘몸북’팀은 탑골공원을 출발하여 광화문까지 행진했다.

‘몸북’은 이름처럼 몸 자체가 북이었다.

개성 있는 다양한 분장으로 변화를 주며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 것이다.

마임이스트 유진규씨의 연출력을 볼 수 있는 흥미로운 퍼포먼스였다.





이에 앞서 김발렌티노는 100일동안 독립문에서 삼일독립 정신을 일깨우는 퍼포먼스를 했는데,

드디어 역사적인 날을 맞아 탑골공원으로 합류한 것이다.

서예가 김기상씨가 탑골공원에서 쓴 한반도기와 ‘몸북’, ‘우리는 하나다’의 현수막을 들고 행진했는데,

유진규씨와 전형근씨는 2년 전 촛불집회 때 사용한 붉은 도포에다 고깔모를 쓰고, 등에는 철판을 메고 나온 것이다.





“아! 그 때가 그립다.”

박근혜 퇴진을 외친 그 때는 눈에 보이는 대상이라도 있어 싸울 수 있었지만,

이젠 실체가 보이지 않는 돈과의 전쟁이라 암담할 뿐이다.

그리고 정권을 바꾸어 악의 무리를 구속시키는 등 가시적인 변화는 이끌었지만,

아직까지 적폐세력들이 기회를 엿보며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항상 북을 두드려 시민을 일 깨울 수 있는 유진규씨 같은 예술가들이 있기에

한 가닥 위안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유진규씨를 보며 생각나는 글귀는 신동엽시인의 ‘껍데기는 가라’다.



사진, 글 / 조문호





- ‘만북울림문화제’의 '몸북'에 참여한 사람들-

유진규(마임배우), 유홍영(극단사다리대표), 윤시중(극단하땅세연출), 김기상(서예가), 안재근(서커스), 전형근(그냥예술가), 강지수(마임배우), 양길호(현대무용), 김종학(마임배우), 황현성(다큐감독), 장성진(연극배우), 김선미(통미분장연구소), 하택후(타악프로젝트그룹사맛디),홍윤경(독립공연예술가), 서승아(부토), 서우림, 방관철(서승아일행), 한혜민(독립공연예술가),고명희(독립공연예술가), 한준휘, 홍성표, 최원석, 위다은, 신지은, 김초원, 이소라(남북강원도협력협회), 김동효, 양철해, 이창준, 이유현, 이채은, 김태영(교사), 하태웅(학생), 김상인(오케스트라 단무장), 이요한(시인), 김현신(디자이너), 이성희, 최정산 (인형극단봄), 김발렌티노(그냥예술가), Ian John(소리음악가), 권제인, 박광선, 손건우, 고은별, 이은주, 윤혜경, 윤지원, 이두원, 최수라, 최수현, 이재돈, 김국원, 안상현, 정기욱, 문숙경


'몸북' 단체사진(유진규페북에서 스크랩)


































































































강찬모씨의 “어린왕자를 만나다”전이 이노갤러리 특별초대전으로 열리고 있다.
동화책에서나 봄직한 제목에서 작가의 천진무구한 순수함이 느껴진다.


전시된 신비로운 설산의 작품들은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게 하는 한 줄기 빛 같았다.
선 굵은 산맥과 시퍼런 하늘이 세상살이에 찌든 나에게 물었다.






“제대로 살고 있는가? 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마음에 찬 욕심은 또 얼마나 되는가?”


작품을 돌아보는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아 스스로를 되돌아 보았다.
돈에 대한 욕심이야 일찍부터 버렸으나, 인연이나 일에 대한 속박에서는 아직 헤어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는 일도 남을 위한다지만, 엄밀히 말하면 자신을 위한 일이었다.
다 벗어나고 싶지만, 몸과 마음이 따로 논다. 어쩌면 이기적이라는 생각 때문에...
이런 저런 생각에 스스로를 다 잡으며, 반성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작가의 기도에 의해 탄생한 작품이라 보는 이에게 많은 깨우침을 주었다.


화가 강찬모씨는 남다른 작가이력을 갖고 있다.
중앙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으나, 7년 동안 일본미술대에서 채색화를 공부한 후
대구대학교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연구했다.






2004년도 무렵, 5,000미터 히할라야 설산에서 큰 깨달음을 받으며, 그의 작품세계에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설산의 자태가 눈물겨워, 별들이 수놓은 설산을 향해 큰 절을 몇 번이나 올렸다고 한다.
히말라야의 영적인 체험에 의해 근원으로 돌아가는 범신적 자연관을 가진 화가로 변신한 것이다.
한마디로 히말라야 설산의 기를 받아 승승장구한 작가이고, 뜨는 작가다.






요즘은 수시로 초대전이 열리고, 프랑스 루브르 국립살롱전을 비롯한 해외 전시회도 여러 차례 참가했다.
해외 아트페어 에서는 전 작품이 완판 되는 이변도 보였으며,
2013년에는 프랑스 보가드성 박물관 살롱전에서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강찬모의 작품을 살펴보면 마음으로 밀려오는 뭉클함이 있다.
억겁의 세월을 흘러온 신비로운 설산의 세계는 보면 볼수록 마음이 맑아진다.
바로 본질적인 근원의 세계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그의 명상이 물감으로 번지며 드러낸 설산은 차가운 한기가 아니라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다.
그래서 보는 이로 하여금 따뜻한 사랑의 빛에 휩싸이게 하는 것이다.

이제 강찬모의 작업은 노동에서 기도의 경지로 바뀌었다.
어느 경지에 달하면 어떤 형식이나 기술적인 것조차 거추장스러울 수밖에 없으니,
때로는 그림이 파격적이다. 통도사 수안스님처럼 기도의 한 방법으로 그림을 그린다.






한지에 전통 채색으로 그린 대작들은 대자연을 찬미하였다.
그는 채색화를 전공한 화가답게 색의 마술사다. 그가 그린 설산은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짙푸른 청색이 주는 신비로움은 작품의 자연 속으로 푹 빠져들게 하는 경이를 맛보게 한다.

부분 조명에 반사된 작품 사진이라 깊은 색채나 느낌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의 전통에 바탕을 둔 그의 작업들은 때로는 고요하게, 때로는 화려한 붓질로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고고한 산의 능선과 푸른 하늘, 은하세계의 아름다운 선율이 영적에너지로 변신해, 보는 이를 성찰하게 한다,






지난 16일 여섯시에 열린 개막식은 꾸물대다 늦어버렸다.
다들 자리를 떠났지만, 작가 강찬모씨를 비롯하여 조경석, 조준영, 김발렌티노, 노광래, 정영신씨 등

반가운 분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번잡스럽지 않아 찬찬히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오는 11월 11일까지 삼청동 'INNO 갤러리'에서 열리는 이 전시를 꼭 한 번 감상하시길...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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