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인 지난 17일의 인사동은 몰려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오죽하면, 사람에 걸려 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을 정도였다.

초 저녁부터 장경호씨를 만났으나 ‘유목민’ 문이 닫혔다고 했다.
거리에 사람은 많지만, 골목에 숨은 술집들은 오히려 손님이 없다.
인사동 술꾼들이 사람 많은 휴일은 인사동 출입을 삼가하기 때문이다.

인사동에 그렇게 술집이 많지만, 입맛에 맞는 술집이 별로 없었다.
비싸지 않고, 안주가 맛있으며, 분위기까지 있는 그런 술집 말이다.
술꾼들만 모이면 새로운 술집을 개발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술집도 돈 안 되는 작가들의 술타령 보다 매상 오르는 젊은 사람을 좋아하는 건 당연하다.
한 푼이라도 더 남는 것이 장사의 속성이 아니던가.

사람 많은 거리를 피해, 돌고 돌아 피맛골의 ‘불타는 소금구이’까지 갔다.
거리에서 김노암씨 가족을 만나기도 했고,

술집에 도착해서는 주인장 완기씨를 비롯하여, 김기영, 김대웅씨 등 여러 명을 만났다.
인사동의 술집을 골라 다니는 또 하나의 이유가 반가운 벗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옆 좌석의 노래소리 들으며, 주량만큼 딱 막걸리 네 병만 마시고 일어났다.
그 사이 인사동거리에 많았던 사람들은 사라지고 조용했다.
얼마나 거리를 밟았으면, 길이 빤질빤질했다.
버스킹 나선 젊은이들의 처량한 노래소리만, 길 위로 미끄러졌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토요일, 급히 만날 분들이 있었다.
술이 취해, ‘인사동사진축제’ 구상안을 이규상씨 페북 메시지로 보낸다는 게,
실수하여 전체공개가 된 것이다.

그 내용에는 이규상씨는 물론 엄상빈씨 이름까지 거명되어 있어,
당사자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자고 일어나니 많은 분들의 관심 속에 댓글이 이어지고 있었다.
잘못된 경위를 문자로 전한 후, 일단 만나 뵙기로 했다.

토요일 오후5시 무렵, 아내와 인사동 ‘허리우드’로 나갔다.
엄상빈씨와 이규상씨 두 분께, 전 후 사정을 설명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일단 운영위원 부터 구성하여 구체적인 기획안이 나올 때, 공개하기로 했다.
사진인들의 힘을 모아, 우리사진의 정체성을 찾는 축제에 공감했다.

‘나우갤러리’에서 박진호씨와의 약속으로 오래 지체할 수 없었다.
이규상씨가 달을 훔친 사나이 만나러 가자는 제안에 모두들 일어섰다.
‘나우갤러리’에는 박진호씨와 여친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분위기 깨며 자리까지 빼앗았지만, 어쩌겠는가.

모처럼 오붓한 자리에서 달과 함께 놀았다.
누구 말처럼, 훔친 달이지만 풍류가 그윽했다.
서예가의 힘찬 붓길 같기도 하고, 추상화 같기도 했다.
이 좋은 달밤에 어찌 술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이규상씨를 따라 청계천에 있는 국수집으로 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돼지수육을 안주로 소주 한 잔했다.
얼마나 맛있던지, 사진 찍는 일도 잊어버렸다.
얼큰하게 취해, 아쉽지만 헤어졌다.

아내를 앞세워, 다시 인사동 ‘유목민’으로 쳐들어갔다.
그 곳에도 반가운 분이 많았다.
멀리서는 김기영씨가 손을 흔들었고,
이호상씨의 노래소리가 골목을 매웠다.

신성준선생을 비롯하여 조해인시인, 노광래씨도 있었다.
이날은 주인장 전활철씨도 기타 치며 노래했다.
등달아 노광래씨 까지 기타들고 설쳤는데,
좌우지간, 실수로 시작된 하루였지만, 신나는 토요일이었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4일 화가 장경호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장안동서 신학철선생과 한 잔하고 무다헌에 넘어 왔으니 빨리 나오소~”

이미 술에 취해 목소리는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어제 마신 술로 주독도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내일도 마실일도 걱정인데, 가만 두질 않았다.

소 도살장에 끌려가듯 인사동에 나갔더니, 일찍부터 술집이 부산했다.

 

신학철선생은 반가워하셨으나, 장경호씨는 김정대씨와 입씨름하느라 아는 척도 안 했다.

금방 한 판 할 것 같은 기세였으나, 술 취하면 부르는 그의 행복한 노래쯤으로 생각하고 앉았다.

그다음엔 나한데 시비를 건다. “어찌 알고 왔어요?” 자기가 전화해놓고도 매사 이런 식이다.

술 취하면 부르는 그의 시비성 노래는 익히 알지만,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좌불안석이다.

나중엔 나죽으면 형이 가마니때기라도 한 장 덮어주소라기에 가마니는 구하기 힘들고

카시미롱 이불은 덮어 줄게라고 말했다.

 

신학철선생께서 처음보는 류제홍박사를 소개했다.

모내기그림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꽤 오랜 교분 같은데, 너무 젊어 보였다.

내가 여자라면, 한 번 꼬셔보고 싶을 정도로 핸섬했다.

명함을 주고 받았는데, 너무 다양하게 바쁜 사람이더라.

사회경제를 통솔한다는 뜻도 가진 ‘planner’라는 글자아래 공공공간연구소 공간력소장이란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바닥에 깨알같이 적힌 글을 보니 정신이 없었다.

문화학박사, 정책컨설턴트, 전통시장전략가, 도시마을계획가, 청년도시메이커, 세계대회기획사라 적혔는데,

사짜는 아닌 것 같았다. 점잖았고, 이야기도 진솔했다.

오죽하면 술 취한 장경호씨의 거친 말투가 류박사와 연결되면 곧 바로 공손해 지겠는가?

    















옆 자리에는 요즘 몸이 불편해 잘 나오지 않는 주임마담 강고운시인도 보였다.

언제 왔는지, ‘관객모독을 연출한 기국서씨도 있었다. 그도 한 가닥 하는 주당이다.

말은 별 없지만, 거슬리면 여지없다. 한 때 서정춘시인이 그의 헤딩 한 방에 날아가는 것도 보았고,

도예가 한봉림씨를 향해 늑대처럼 튀어 올라 얼굴을 활키는 것도 봤다.


작은 거인 기국서씨가 반가웠지만, 일행이 있어 인사만 나누었다.

뒤늦게는 미술평론하는 김준기씨가 등장해, 술자리 대화가 갈리기도 했다.

장경호씨의 십팔번 뒷동산 아지랑이~”를 뒤로하며 먼저 도망쳤다.
















돌아오다 습관적으로 유목민에 들렸다. 안국역 옆에 있으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주인장 전활철씨와 박혜영씨는 손님받느라 정신없고,

인사동에서 풍요로움이란 회사를 운영하는 조원희씨가 같은 일가라며 엄청 반가워했다.

김기영씨와 함께 앉았지만, 술을 더 마실 수 없었다.

퓨전피아니스트 윤강욱씨와 노래하는 신현수씨도 있었고, 나오는 길에 노광래씨를 만나기도 했으나

이로서 모두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인사동 술 방랑은 끝났다.

 

씰데없는 술주정 듣느라 고생했슴니더.”

 

사진,/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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