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식선생께서 고요의 선계에 편안히 잠드셨다.

 

부음 받은 지난 23일 장례식장을 찾아 선생의 명복을 빌었으나,

떠나시는 선생을 배웅하고 싶다는 정동지 채근에 25일 새벽을 서둘러야 했다.

장례식장 변두리를 뒤덮은 호박꽃이 선생님 가신 극락세계 연꽃인양 반기더라.

 

장례식장에는 유족들과 이일우씨만 발인을 서두르고 있었고,

조문객으로는 강용석, 곽명우씨 등 서너 명의 사진가만 보였다.

뒤이어 '사진예술' 발행인 이기명씨 등 제자 몇 명이 찾아와 운구에 힘을 실었지만,

한국 사진 교육계 거목이 떠나는 상여길 치고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타 예술단체에 비해 사진인들의 선배에 대한 존경심이나 예의가 소홀한 것은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수많은 제자를 배출한 선생의 장례식이 이럴진데,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먼 길 떠나는 원로사진가 영전에 잠시 모여 추모사로 위업을 되새기거나,

떠나시는 선생을 위해 살풀이라도 한 번 추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이번 장례식에는 제자 이일우씨가 시종 차고 앉아 사진인을 맞았지만, 가족들은 인사도 안 했다.

선생께서 그동안 말씀은 안 하셔도 마음고생 많이 했겠더라.

아들 셋보다 딸 하나가 더 좋은 세상을... 

 

요즘 사진판에 짚고 넘어가야 할 심각한  문제는 가족들의 사진에 대한 무관심이다.

돈 되지 않는 사진에 메 달려 온 선친에 대한 원망스러움은, 사진이란 말조차 듣기 싫은 것이다.

그러니 당사자가 돌아가시면 사진에 관한 모든 자료들이 쓰레기로 사라진다.

 

사진이고 뭐고 죽고 나면 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선생의 평소 말씀에 공감 하지만,

그래도 살아 남은자의 도리는 지켜야 하지 않겠나?

 

사진, / 조문호

 

이 사진은 홍순태선생 마지막 전시회에서 찍은 원로사진가들의 기념사진인데,

 이제 살아계신 분보다 돌아가신 분이 더 많군요, 

좌로부터 주명덕, 강운구. 이완교, 황규태, 홍순태, 김한용, 한정식선생

 

한정식선생의 ‘고요_존재는 고요하다'전이 후암동 'KP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가 열리는 지난 19일, 서초동 한정식선생 댁을 찾아갔다.

해가 바뀌어 인사차 들린다는 것이 차일피일 하다, 전시 소식을 듣고서야 부랴부랴 찾아 나선 것이다.

선생님을 모시고 전시장에 같이 갈 생각에서다.

 

모처럼 찾아 뵙게 되었는데, 이마에 반창고를 붙이고 계셨다.

며칠 전 침실에서 넘어져 이마를 다쳤다는 것이다.

피도 많이 흘리고 몇 바늘이나 꿰맸다며,

갤러리 지하 계단 오르내리기가 힘들어 전시장은 못 간다고 하셨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댁을 나왔으나, 눈길이 미끄러워 가까운 식당도 걷기는 무리였다.

선생님 시키는 데로 차로 이동하여 ‘늘봄 웰봄’이란 식당에 간 것이다.

 

오찬 자리에서 산문집과 시집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번 전시는 제자인 이일우씨가 기획한 전시로

그 동안의 ‘고요’ 전시에서 보여주지 않은 추상적 작품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한 번도 못 본 작품이라 더 궁금했다.

 

선생을 모시고 식당을 나섰으나,

간단한 계단에서도 머뭇거리시는 걸 보니 계단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것 같았다.

아무튼, 새해에는 건강도 회복하시고, 더 좋은 일 많이 만드시길 바랍니다.

 

선생님을 모셔다 드린 후, 전시가 열리는 'KP갤러리'로 갔다.

전시장 입구에 ‘고요’라는 제목이 붙었는데,

옆에 걸린 작품에서는 고요를 뛰어넘는 침잠 속 진동 같은 것이 느껴졌다.

 

선생께서 평생 추구해온 ‘고요’란 사진미학의 정수는 모르는 분이 없으나

이번 전시는 분명 한 수 위였다.

 

선명하게 흐르는 멈춤에는 봄버들 물오르는 그 파르르한 떨림같은 것이 감지되었는데,.

고요 속에 밀려 나오는 팽팽한 긴장감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추상이건 공상이건, 폭풍전야 같은 그 순간이 바로 고요의 경지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정적 속으로 한 없이 끌고 가는 블랙홀 같았다.

 

이 전시는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선생이 놓친 것을 제자가 찾아낸 것이었다.

무슨 전시든 기획자 능력에 따라 격이 달라진다는 것을 재차 확인했다.

 

한정식선생의 ‘고요_존재는 고요하다’전은 3월 3일까지 열리니,

틈나시면 꼭 한번 관람하시기 바랍니다.

 

KP갤러리 주소 / 서울 용산구 소월로2나길 12(후암동 435-1번지) B1

전화 / 02.706.6751

 

사진, 글 / 조문호

 

고요_존재는 고요하다

 

한정식展 / HANCHUNGSHIK / 韓靜湜 / photography 

2022_0119 ▶ 2022_0303 / 일,공휴일 휴관

 

한정식_고요 I016 연천 2012_114×114cm

 

초대일시 / 2022_0119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KP 갤러리

Korea Photographers Gallery

서울 용산구 소월로2나길 12(후암동 435-1번지) B1

Tel. +82.(0)2.706.6751

www.kpgallery.co.kr

 

 

KP Gallery에서 2022년 1월 19일부터 3월 3일까지 '고요_존재는 고요하다' 한정식 사진전을 개최한다. 한국 사진예술을 대표하는 한정식은 '고요'의 미학을 완성한 사진가이다. 그는 1960년대부터 한국 고유의 미와 동양 철학을 바탕으로 '한국적 사진예술'의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2015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현대미술작가로 선정되어 그의 평생에 걸친 작업들을 소개하는 『한정식_고요』 전시를 2017년 개최하였다.

 

한정식_고요 H034 양양 2011_114×114cm

한정식은 과거 대상의 형상에 얽매이지 않고 존재 본질에 대한 질문과 철학적 탐구를 "고요" 작품들을 통해 소개하였다. 이번에 새롭게 소개되는 작품들은 사진을 통해 드러나는 작가의 내면의식을 추상의 형식으로 표현한 작품들로 그가 평생에 걸쳐 추구해온 사진미학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한정식은 그의 관념 속에 있는 세계에 대한 본질을 사진적 추상이라는 형식을 통해 소개하며 "사진의 예술성을 향해 사진이 추구하는 것은 추상의 세계이다. 이는 사진이 가지고 있는 주제(theme)라는 것 자체가 추상적 관념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진이 사진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대상의 존재성을 사진 위에서 지워 사진 그 자체를 제시하여야 한다." 라고 그가 지닌 '고요'의 세계를 이야기한다. ● KP 갤러리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의 정신미학과 고유한 문화정체성 위에서 한국사진예술의 근간이자 토대로서 의미있는 역할들을 제시하는 한정식 작가의 '고요' 작품들을 소개하고 사진예술을 통해 사진 본연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 KP 갤러리

 

한정식_고요 H034 양양 2011_114×114cm

공상(空像, 空相), 한정식 작가의 세계-내-이미지 ● 한정식 작가는 사진 자체가 진리(본질)가 아니라, 사진이 진리를 드러나게 하고, 진리에 이르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진리를 드러내는 방편으로, 사진 교육자이자 작가로서 사진을 대할 때 엄중하고 엄격한 절차를 중시하고 사진이 담아야 할 의미를 충분히 끌어올려 형식과 내용이 다툼이 없는 조화로운 세계를 견지했다. 「고요」가 전시되고 사진집으로 묶여 세상에 나올 때마다, 세계-대상-피사체의 동일성을 지향한 작가의 정교하고 빈틈없는, 의미로 꽉 찬 사진 재현은 좀체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형식처럼 생각됐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작품들은 감각과 지성이 교차하고 선명하게 흔들린 멈춤, 혹은 구체적인 상 속의 떨림 같은 비의(秘意)적인 자유가 흐른다. 무엇일까. 이 내밀한 이미지는. 무엇이라 말할 수 없고, 아무것도 볼 수 없는데, 그 무엇도 아닌 '어떤 것'이 '있는' 사진. 한정식 작가의 미발표작에는 그러한 것들이 (고요 속에서) 소란스럽게 생성하고 있었다. 필자는 그것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했는데, 바로 공(空)이었다.

 

한정식_고요 H034 양양 2011_114×114cm

한정식 작가의 사진에 들어 있는, 보이지 않는 이것은 공(空)이다! 이 텅 빈 이미지는, 놀랍게도 작가가 그동안 발표했던 '고요' 시리즈를 촬영한 필름 곳곳에, 사이에, 끝에 아무렇지 않게 그냥 있었고, 어떤 연유에선지 세상에 전시될 선택권을 놓친(받지 못한) 사진이다. 이 사진 옆과 위와 아래…에 있던 사진들은 밖으로 나와 자신이 작품임을 입증하고 있었다면 이 사진들은 오랜 시간 빛을 머금고만 있었다. 자신의 몸에 닿은 그때 그곳의 빛을 기억하며, 사진의 시공 속에 고요히 머물렀다. 한정식 작가의 기발표작이 사진의 본질에 닿으려는 욕망에 충실했다면, 선택받지 못한 이 사진들은 '고요'의 의미도 모르고 다만 정적 속에서, 아무것도 아닌 어떤 것을 찍은 채 숨 쉬고 있었다는 것. 이번 전시는 한정식 작가의 세계-내-이미지, 공상(空像, 空相)이 드러나는 전시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명명한 '세계-내-이미지'와 '공상(空像, 空相)'은 한정식 작가의 작업 세계의 근간을 이룬 불교의 연기설에서 영향을 받은 말이다. 세계 내 모든 존재는 상호 관계에 의해 의미 지어지거나 의미가 지워지고, 존재는 세계 속의 인연(因緣)에 따라 계속 변화한다는 것이 연기설의 요지이다.

 

한정식_고요 F014 홍천 2008_114×114cm

다양한 존재가 다기하고 다채롭게 움직이다 인연이 되어 만나고 흩어지는 것.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바라보는 일은 중요해진다.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즉, 학습 받은 데로 보는 것이 아닌, 대상이 드러낸 본무자성(本無自性)을 이해하는 것이고, 이것을 부처는 공(空)으로, 노자는 도(道)라고 일컬었다. 텅 비어 있는 것 같은데 무언가 드러나는 상이 '공상(空像)'이고, 모든 상(像, image)은 상호 연결 속에서 일어나고 이루어지는 것이 '공상(空相, co-existence)이다. 모두 세계 속에서 인연에 따라 현현(顯顯)하는 것이다.

 

한정식_고요 H052 하선암 2011_114×114cm

아무것도 찍혀 있지 않지만, 무엇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는 이 사진들은 카메라의 광학적 작용과 그곳에 있었던 대상, 공간의 상호침투로 만들어낸 이미지다. 미술사적으로 접근하면 추상(抽象)이라 하겠지만, 단순히 상이 있고 없고(有無)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관계에 의해 새롭게 형성되는, 노자가 이 이미지를 본다면 유무상생(有無相生) 이미지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구상과 추상을, 단어 그대로 풀이하면, 구상(具象)은 상(象)을 갖추는(具) 것이고 추상(抽象)은 여러 부분 중에 하나를 뽑아낸(抽) 낸 상(象)이다. 구상은 추상을 포함하기도 하고 때로 추상이 구상이 될 수도 있는, 둘은 사실 한 몸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대개 구체적인 상이 보이지 않거나, 구상의 반대 항에 추상을 놓지만, 이항 대립적으로 둘을 해석하려고 할 때 언어 프레임에 갇히는 형국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인식론적인 측면에서 보면 별개일 수 있으나 존재론적으로 둘은 서로 의지, 보충, 보완하며 존재한다.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말과 침묵, 양달과 응달, 빛과 그림자, 흑과 백으로 팽팽한 긴장 관계에 놓여 있는 이미지. 한정식 작가의 텅 빈 이미지는 '모든 것의 이미지'로 관객과 함께 공상(空相)하고 공생(共生)하며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는 사진이다. ■ 최연하

 

한정식_G066 화엄사 2010_114×114cm

영혼에 닿도록 '고요'한 ● '고요'한 한낮이었다. 어느 '고요'에서는 나뭇잎 하나 물에 떴다. 물 속 그림자 한 점 물고기 되어, 물 바깥 햇살 우러르며 헤엄친다. 또 다른 '고요'에서는 물이 가득 찬 하늘로 돌이 떠오른다. 그 돌은 부석사로 날아가려는 걸까? 물보다 공기보다 가벼운 돌을 본다. 물이 돌알을 낳고 있다. 난생설화는 공기 속에도 있다. 물이 사랑으로 돌을 들어 올렸고, 또 돌은 물의 영혼으로 제 마음을 비워 차츰차츰 가벼워진다. 그런 초현실을 현실로 사고 있는 사물들의 세상이 한없이 고요하다. 사물들의 영혼이 그 고요를 징검다리 삼아 이웃으로 나들이 다닌다. ● 앙리 부르통은 초현실주의를 '외과 수술대 위에서의 우산과 재봉틀의 만남'이라 했다. 한정식의 '고요' 작품을 처음 본 날, 부르통은 내 머릿속으로 들어와 초현실주의 정의를 다시 썼다. 많은 '고요'들은 순수사진이어서 형태를 알아볼 수 있지만 묘하게도 초현실로 가는 추상이다. 그는 대상의 아름다움에 관심두지 않았다. 특별히 눈길을 끄는 존재들은 그의 사진 눈빛을 받지 않게 된다. 물과 공기처럼, 자연과 일상에서 늘 함께 살아가면서도 의식하지 않았던 온갖 시시콜콜한 것들을 불러내 새롭게 볼 수 있게 한다. 그는 모든 사물에 고정된 이미지를 벗겨 내려했다. 이름을 바꿔 불러주려 했다. '고요'는 존재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다. 무기물이라 하더라도 그 존재가 품고 있는 어떤 감정 상태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뭣보다 자신이 그것을 느낄 수 있어야 했다. (인간이 아닌) 사물들이 감정을 드러내고 또 작가 자신의 마음밭이 그 감정을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떤 조건 또는 어떤 상태가 '고요'였다. 그 고요는 오직 고요만으로 소통되고 교감되었다. 자신의 내면이 대상의 내면만큼 고요해질 때, 그는 대상과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나는 너다, 너는 나다, 라고 속삭이는 그때, 바로 그때, '고요'가 태어났다. ■ 박인식

 

 

Vol.20220119b | 한정식展 / HANCHUNGSHIK / 韓靜湜 / photography




‘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 사진부문 두 번째 사진가인 한정식선생의 ‘고요’전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제6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4월14일 개막되어 8월6일 막을 내리는 전시인데, 4개월에 가까운 긴 전시라 미루다보면 놓치기 십상이다.

나 역시 첫날 기자회견장에 참석하여 전시도 보고 취재를 했지만, 미루다 깜빡 잊어버린 것이다.

무더운 쪽방에서 멍 때리다, 우연히 눈에 띈 한정식선생의 사진집을 보고 화들짝 놀라버렸다.

“아이쿠! 전시 끝난 것 아이가?”싶었는데, 아직 10여일 남아 부랴부랴 서두르게 되었다.






한정식선생하면 사진가는 물론 문화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분이라면 다 아는 사진가라,

소개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행여 모르는 간첩이라도 있을까하여 몇 자 적는다.

한 선생은 70년대 ‘나무’에서부터 2000년대 이후의 ‘고요’ 연작에 이르기까지 오 십 여년을 사진의 추상성을 물고 늘어지신 분이다.

물론 초창기의 ‘북촌’이나 ‘흔적’등의 사실적인 기록 작업도 있으나 그건 선생이 가고자했던 명상의 세계를 향한 워밍업에 불과했다.

초창기에는 임응식선생이 주도한 생활주의 리얼리즘에 쏠려 다니기도 했지만, 마음은 콩밭에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왜냐하면 선생은 사진가 이전에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육자이고 이론가였기에, 한국사진의 예술적 가능성을 확장시켜야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었으리라 판단된다. 그래서 뜬 구름 잡는 것 같아 쉽사리 다가갈 수 없었던 순수사진에 집착하게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앞에 열거한 이유보다 작가의 인간적 심성이나 종교관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선생의 이름자에도 고요할 정“靜”자가 들어 있지만, 가히 스님 못지않게 불가와의 인연도 깊다.

시적 감수성과 불가의 초월적인 명상세계가 합일하여 그만의 독창적인 사진세계를 이룩한 것이다.

이게 한국적 사진의 전형이 아니겠는가.

오죽하면 일세기 전에 한국을 방문한 베버신부가 우리나라를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불렀겠는가.






오래전부터 미국의 형식주의 작가들인 ‘폴 스트렌드’, ‘아론 스시킨드’, ‘에드워드 웨스턴, ‘마이너 화이트’로 이어지는

추상사진의 계보가  이어져왔지만, 한정식 선생의 ‘고요’연작은 철학적인 작가의 사색이 집약된 형식주의라

가장 한국적이며 세계적이라 할 수 있다.

한정식선생의 작품세계는 무엇보다도 한국적 색깔을 찾아내어 한정식선생 고유의 시각언어로 정착시켰다는 점이다.

사물이 부유하는 느낌을 일으키거나, 때로는 무에서 시작되어 무로 돌아간다는 무위의 사상을 일 깨우게도 했다.

생성이 소멸을 부르고, 소멸은 또 다시 생성을 만들어내며 끊임없이 순환하는 과정 속에 살아가는 자연의 엄정한 법칙을 말이다.

욕망으로 뒤 덮인 세상을 치유하려면 ‘고요’ 즉 적정 적멸로 치닫는 명상뿐일 게다.






작가가 ‘풍경’ 사진집에 적은 서문 한 자락에서 선생의 속내를 읽어 보자.

‘나는 대상을 한 번도 대상 자체의 실체로 파악해 본 적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나무는 대나무가 아니었고,

발은 발이 아니었고, 풍경은 풍경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사물의 형상성이 아닌 묵언이며 진리라는 것이다.

또 ‘사진 산책’에서는 경주의 무덤을 두고 “스치던 바람결은 여기 묻힌 선인들의 숨결이 아닐까.

경주는 허무이자 초현실이다”고 적고 있다.

이번에 전시되는 사진들은 1980년대부터 작업해 온 ‘나무’, ‘발’, ‘풍경론’을 비롯하여

‘고요’에 이르기까지의 대표작 100여점이 전시된다.

한국 고유의 미와 동양철학에 기인한 ‘한국적 형식주의 사진의 기틀을 다진 작품들이다.

선생께서 본 사물과 풍경들은 사진의 특성인 구상에서 벗어나 온전히 느낌만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난, 이렇게 느꼈다. “아! 이게 선(禪)의 경지로구나”

아무런 말이 없는 사물에게서 받는 깨달음은 마치 스님의 죽비로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다.

시간도 빛도 소리도 멈춘 채 오로지 고요의 세계로 안내하는 한정식선생의 사진에서 진리를 깨우치고,

이 지긋지긋한 무더위를 말끔히 날리기 바란다.






그리고 같은 날 개막된 건축가 윤승중씨의 ’문장을 그리다‘전은 제5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데,
두 전시 모두 8월6일 막을 내린다. 관람료 2,000원으로 마음의 피서를 즐겨보자.


사진, 글 / 조문호


-아래 사진들은 4월14일 정오무렵 가진 기자회견장 모습이다-






















8월 6일까지 과천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려


“내 사진은 고요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말처럼 사진가 한정식 선생의 ‘고요’는 그가 추구하는 사진 작업의 지향점이자 존재의 모든 것이다.

사물의 가려진 부분을 읽어내며, 사물 안의 본질을 찾아 시(詩)를 쓰는 과정이 그가 추구하는 사진작업이다.




▲ 기자간담회를 마치고 전시실에서 작품을 설명하는 사진가 한정식 선생



그는 사물이 말을 걸어 올 때까지 기다리다, 소통이 빚어내는 언어를 통해 부처를 만난다.

그는 “내 모든 마음을 비우면 사물의 본질이 명료하게 보인다.


시를 통해 사진이라는 생경한 분야를 개척하다보니 나 자신도 모르게 작품으로 만들어졌고,

지금까지도 이 흐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평생 사물이 가진 미학을 추구해오며, 사물의 옷을 한 꺼풀씩 벗겨냈다.

그러다보니 완전한 무(無)의 경지에 달해, 그 안에서 부처를 만나게 된 것이다.



▲ 나무, 1980년대(2018), 젤라틴 실버 프린트 (사진제공-과천국립현대미술관)


어느 때가 사진을 찍는 ‘결정적인 순간’이냐는 물음에는 “사물과 작가 내면이 마주치며 존재의 리듬이 들리는 순간이

바로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했다.

사진이 시간과 빛의 예술임은 누구나 알고 있으나, 그에게는 선(禪)이란 또 한 가지가 더 존재한다.

빛과 사물에 더해 선이 만들어내는 생경한 ‘시각적 의미’를 들려주는 작가의 글을 한번 읽어보라.



▲ 나무, 1980년대(2017), 젤라틴 실버 프린트 (사진제공-과천국립현대미술관)


“언어만이 아니라 어떠한 매체로도 표현 불가능한 시각적 체험은, 아직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빛의 세계,

카메라와 사물이 빚어내는 시각적 ‘비가시체험(non-dejavue)’이라 할 일종의 육감적 체험을 뜻한다.

소위 ‘현대사진’으로의 길을 여기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 내목표의 하나로, ‘시각적 의미’에 매달리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 발, 1980년대(2017), 젤라틴 실버 프린트 (사진제공 - 과천국립현대미술관)


이 전시를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 장순강 큐레이터는 “한정식은 사진을 통한 추상이라는, 한국사진에서는 짧은 실험에 그친 영역을

40여년에 걸쳐 추구해왔고, 이는 한국사진의 다양성을 위한 참으로 귀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주변을 제외한 사물 본래의 모습만 담아내,

마치 물이 융합하는 것처럼 무취무색으로 존재를 드러내며 보는 이에게 묵시적으로 말을 걸어온다.

그리고 그 고요한 적막은 생성과 소멸을 벗어나, 어떤 언어로도 이룰 수 없는 무(無)의 경지에 도달하고 있다.



▲ 발, 1980년대(2018), 젤라틴 실버 프린트 (사진제공-과천국립현대미술관)


이것은 은유도 직유도 아니다. 사물 본래의 모습은 사라지고, 현실을 벗어난 궁극의 경지였다.

사르트르가 말한 ‘인생은 B와 D사이에 있다’는 명제처럼, 그 사이에는 사진의 알몸만이 오롯이 드러나 예술로 승화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서울대 사범대국어과를 졸업한 문학도였다.

청년시절엔 한국일보 신춘문예 가작으로 뽑힐 만큼 시인의 재능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시인의 눈으로 사물과 세상을 봤기에, 사진도 마음이 사물에 닿는 순간 시(詩)를 쓰듯 사진으로 담아낸 것이다.



▲ 강원도 홍천, 2012(2017), 디지털 프린트  (사진제공-과전국립현대미술관)



그의 초창기 사진으로 ‘북촌’ 같은 특정 지역을 기록한 작업도 있었지만, 점점 나무와 사람의 발 등 서정적인 피사체를 대상으로 형상화 해왔다. 그 주변의 풍경과 교감하면서 사물의 본래 형태를 벗어나 새로운 조형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하나의 예로 나무의 결에서 사람의 형상이 보이기도 하고, 발의 부분에서 아름다운 여인의 인체를 느끼게도 한다.

그처럼 모딜리아니의 여인의 모습은 형상에 얽매이지 않고 사물에 자유롭게 접근하기에 가능했다.



▲ 경기도 안성, 1985(2017), 젤라틴 실버 프린트 (사진제공-과천국립현대미술관)


작가는 영암월출산 도갑사에서 찍은 사진을 특히 좋아한다고 했다.

그 사진을 찍게 된 것은 우연한 인연이었지만,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 아닌가 생각한다.

보살이 그 방으로 안내했지만, 어쩌면 부처가 그 빈방으로 인도했을 것이라 했다.


당시 기와불사를 하던 도갑사에서 기와 한 개당 천원의 시주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주머니에 만원권 지폐뿐이라 거슬러 주겠거니 하며 건네줬는데,

보살이 활짝 웃으며 “웬 시주를 이렇게 많이 주세요?” 라며 웃어넘겨, 차마 거슬러 달라는 소리를 못해 물러났다고 한다.

절 경내를 돌아 본 후 일주문을 나서다 기와 불사를 했던 보살을 다시 만난 것이다.

점심때가 되었으니 점심공양이라도 하시라며 안내한 곳이 그 방이었다고 한다.



▲ 전라남도 영암 월출산 도갑사, 1986(2017), 디지털 프린트


빈방에는 밥상으로 쓰는 탁자 하나가 그를 기다리듯 반겼고, 천장에서 내려오는 전등불 하나가 밝혀 주는 소박하고 정갈한 방이었는데,

그 방으로 들어 간 순간이 바로 부처와 만나는 찰나였다.

그 방에 부처가 앉아있다는 느낌이 들어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다.




▲ 경기 가평, 2001(2017), 디지털 프린트 (사진제공-과전국립현대미술관)



사진도 하나의 말이라는 작가는 월출산 도갑사 빈방의 경험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다고 했다.

우연한 인연으로 사물과 만나, 사물의 계시를 기다리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이 바로 ‘결정적 순간’이라는 작가는

‘앙리 까르띠에-브레송’이 가장 좋아하는 사진가라고도 했다.


전시장에는 사물의 형태가 지니는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한 초창기 사진이었던 ‘나무’와 ‘발’ 그리고 ‘풍경’이

차례대로 전시되어 평생 화두로 잡고 있는 ‘고요’에 의미를 더해 주었다.



▲ 충청북도 단양, 1998(2017), 디지털 프린트 (사진제공-과천국립현대미술관)


추측컨대, 작가의 전생은 시인도 사진가도 아닌 스님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그러한 작가의 불심이 ‘고요’의 중요한 요체로 작용되었으리라.

말 걸어오는 생명체인 무(無)를 통해 그만의 부처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아카이브 공간에서는 사진을 전공하는 이들의 필독서로 꼽히는 한정식의 ‘사진예술개론’을 비롯한 이론서적과

서울을 찍은‘북촌’등 그동안 발행된 선생의 사진집들이 전시되어 한정식선생의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 아카이브에 사진을 전공하는 이들의 필독서로 꼽히는 한정식의‘사진예술개론’을 비롯한 이론서적과

서울을 찍은‘북촌’등 그동안 발행된 선생의 사진집들이 전시되어 있다.

한국현대미술작가 시리즈 두 번째 사진 전시로 추진된 한국 추상 사진의 선구자 한정식선생의

전시는 오는 8월6일까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


1980년대부터 최근작까지 보여주는 작품 99점이 전시되어 작가의 사진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자세한 내용은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www.mmca.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의: 02-2188-6000)


[서울문화투데이 / 정영신기자]




‘국립현대미술관’ 한국미술작가 시리즈인 한정식선생의 ‘고요’전이 오는 4월14일부터 8월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과천관에서 열린다.




한정식선생은 리얼리즘사진이 주를 이루던 1960년대부터 사진 자체의 방법론을 중시하는

‘사진의 형식주의’를 수용하여 한국 예술사진의 미학적 범주를 확장시켜 왔다.

한국이 지닌 고유의 미와 동양철학의 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한국적 형식주의’ 사진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번 전시는 한정식선생의 반세기에 가까운 작품세계를 한국현대사진의 발전과 더불어 살펴보고

한국사진이 가지는 고유의 사진미학에 대해 탐구해 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사진가이자 사진학자인 한정식선생의 작품집 "고요2"가 출판되었다.

 

 

 

양장본 24.5cmX31.5cm / 126면 / 가격 50,000원 / 출판, 한스그라픽

 

 

[사진예술 11월호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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