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년대 부터 한국의 사회상을 기록하여 왔던 사진가 구와바라 시새이(76세) 선생이
인사동에 왔습니다. 사진가 한정식, 조문호, 정영신, 눈빛출판사 대표 이규상씨와 함께
원서동의 중국집 '용정'에서 고랑주 한 잔 하며 옛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았습니다.
그는 전주 여인을 아내로 둔 탓인지는 모르지만 한국에 애정을 가진 지한파 사진가입니다.
비 오는날 서울대생들이 침묵시위를 하는 사진, 월남 파병을 앞둔 장병들과 가족들의 모습,
지금은 사라진 청계천 빈민들의 생활상 등 기억이 또렷한 이미지들이 머리에 여럿 떠 올랐습니다.
어눌한 한국말과 일본말을 섞어가며 그 때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주름진 노사진가의 웃음에서
노장의 여유가 엿보였습니다.

 

"나는 사라지겠지만 나의 사진들은 영원 할 것이라고.."

 

2011.9.25

 



 

 

 

 

 

 

 


 

 

 

부산식당에서 있었던 신년 단배식에 참석한 후, 2차로 작은 '여자만'으로 갔는데 좌석이 없었어요.

마침 구석자리에 사진작가협회 이사장 류경선씨가 있데요.

오랫만에 만나 반갑기도 하지만 자리가 없으니 끼어 앉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쾌쾌묵은 옛날 이야기하며 낄낄거린 것 까지는 좋았는데, 너무 과하게 마셔 본색을 드러내고 말았어요.

류선생이야 이해를 하겠지만 같이 자리한 이완희이사와 이상술씨께 미안했어요.

 

2012. 1. 6

 

 

 

 

그 때, 기억하시나요?…

"임응식 탄생 100주년 기념 사진전"

1953년작 사진 ‘나목(裸木)’에는 전쟁기 빈한한 삶의 상징처럼 앙상한 가지뿐인 겨울나무들이 우뚝 서 있다.

박완서 소설과 같은 제목에, 박수근 그림의 이미지를 빼닮은 사진이다.
‘한국 1세대 사진가’ 임응식(1912~2010)은 “사진의 본질은 사실성과 기록성에 있다”며 생전에 이 사진을 대표작으로 꼽았다.

대중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사진가 임응식의 명작은 군복차림의 청년이 가슴팍에 ‘구직(求職)’이라는 팻말을 달고

지친 듯 도심 건물에 몸을 기대고 있는 ‘구직’이다.

한국전쟁을 포함해 한국근현대사의 현장을 기록한 사진가 임응식은 ‘사진예술의 선각자’, ‘한국리얼리즘사진의 선구자’, ‘한국 사진의 대부’

등으로 불린다. 자신이 온몸으로 경험한 격동기 한국의 사회와 문화, 일상과 얼굴을 사진으로 기록한, 국내사진사의 전위였다.

2012년 임응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임응식-기록의 예술, 예술의 기록’전이 내년 2월12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다.

미술관 소장품 160점과 유족이 소장한 미공개필름을 새로 인화한 작품 40점을 한데 모은 대규모 회고전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선향토색이 강조된 1930년대 예술사진, 1950년 한국전쟁 종군기자로서 촬영한 보도사진을 비롯, 1970년대 옛건축물을 담은

문화재사진과 예술가 사진 및 1950년부터 작고 직전까지 50년간 촬영한 명동사진도 선보인다. 폭격을 받아 폐허로 변한 명동의 거리 풍경,

그 복구 과정과 도심 번화가에 몰리는 사람들 등 작가가 각별히 관심을 가졌던 명동 사진도 집중적으로 선보인다. ‘세월이 가면’의 시인 박인환,

‘명동백작’으로 불렸던 소설가 이봉구, 음악다방 ‘마돈나’를 차렸던 소설가 손소희 등 문화 예술인들이 면모를 드러낸다.

젊은 여성들의 의상에 초점을 맞춘 ‘명동의 패션’, 생전에 작가의 명동 나들이 코스를 지도와 사진으로 재구성해 보여준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사진가 임응식과 인연이 남다른 전시공간이다. 그는 1957년 뉴욕현대미술관(MOMA) 기획으로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던 ‘인간가족전’을

국내로 유치, 당시 경복궁의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를 성사시켰다. 1982년에는 한국사진가로는 처음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초대전을 열었다.

전시장에는 동료, 제자들이 촬영한 ‘임응식의 초상사진’전, 전쟁 직후 부산에서 함께 활동한 작가들의 작품을 모은 ‘작은 역사전:임응식의 초기부산사진’전

및 카메라 확대기 스크랩북 등 유물도 함께 전시된다.


 

 

 

 

 

세계적인 사진가협회인 '매그넘'의 세계순회사진전 '생명의기적(Access to life)'이
오는 23일부터 내년 3월4일까지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에서 열린다.
이 사진전은 매그넘과 에이즈.결핵.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국제기금인 글로벌펀드의
공동 프로젝트로 추진됐다.

스티브 맥커리, 알렉스 마졸리, 파올로 펠레그린, 짐 골드버그, 래리 타웰, 요나스 벤딕센,
일라이 리드, 질 페레스 등 매그넘 소속 사진작가 8명이 에이즈 환자 30여명을 만났다.
작가들은 인도, 베트남, 페루, 아이티, 말리, 르완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스와질란드,
러시아 등 9개국을 돌며 에이즈환자들의 치료 전 모습과 치료 후 4개월이 지난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전시는 사진 550점과 9개의 다큐멘터리 영상, 온라인 플랫폼 등으로 구성됐고 290쪽짜리
사진집도 출간됐다.
배우 전광렬 씨가 전시의 오디오 가이드에 목소리 기부로 참여했다.
전시회 시작에 앞서 22일 오후 4시에 열린 개막식에는 많은 언론계, 사진계 인사들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전시장에서 한정식, 한설희씨 등 반가운 분들을 만나 기념사진을 찍었다.

관람료 성인 1만원. 연락처 02-2277-2438.

사진가 김정식씨의 바다를 소재로 한 '숨쉬는 바다'사진전이
12월 7일부터 13일까지 인사프라자 4층 이형갤러리에서 열린다.

7일 오후6시 개막식장에는 많은 사진인들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전시장에는 사진협회 류경선 이사장을 비롯하여 원로 이용정, 정운봉씨, 백영환,
김응태, 조치호, 이우탁, 송정회, 이기윤, 은효진씨 등 많은 분들이 참석했다,

아마추어 단체의 한계를 느껴 한국사진작가협회와 작별한 후 만날 수 없었던,
그 당시의 사우들을 15년 만에 만난 것이다.

흐르는 세월은 막을 수 없었는지 모두들 늙어가고 있었다.
사람이 늙어가는 것 보다 더 서러운 것은, 사진들이 그 세월의 깊이를 따라가지 못함이었다.

김정식씨의 전시작들은 고급액자 디아섹에 사진을 담았으나,
주제인 바다의 리얼리티보다는 형상미에만 치중하여 실망감이 너무 컸다.
그래서 숨쉬는 바다가 아닌, 숨 막힌 바다가 되고 말았다.
시대적으로 디지털사진을 외면 할 수는 없으나 포토샵의 지나친 변형과 정리로
바다사진이 아니라 조형적인 광고 이미지를 만들었다.
작가가 내 세운 주제와는 전혀 동 떨어진...

결국은 외형적인 겉치레에 치중하다, 사진의 영혼을 잃은 셈이다.


 

 

 

 

 

 

 

 


사진작가 김영호(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 본부장)씨의 세번째 개인전'청해견문록'사진
전 개막식이 지난 10월 26일 오후 6시30분 사간동 '갤러리 아트사간'에서 열렸다.
개막 전야제 형식으로 열린 행사에는 사진가 이갑철, 이상엽, 조문호, 함재호, 임범택,
정영신, 신현림씨, 음악인 김상현, 하양수씨, 국악인 등 많은 분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근원의 지도를 그리다- 聖과 俗 사이의 기록'이라는 부제를 단 이번 전시는 작가가
중국 청해지역의 여행을 통해 근원에 대한 기록들을 펼쳐보인 것이다.
전시는 오는 11월 6일까지 계속된다.(갤러리 전화 : 02-720-4414)


 

 

 

 

 

 

 

 

 

 

 

 

 

 


사진가 육명심씨의 "예술가의 초상" 기획전이 2011년 10월 8일부터 12월 3일까지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 19층에서 개최된다.
전시에는 70-80년대에 촬영된 고 은, 박완서, 김기영, 이우환, 장욱진, 천상병, 서정주, 오규원, 신경림, 중광, 황병기, 서정춘씨 등
100여명의 예술가 초상사진을 선보이게 된다.
10월 8일 오후5시에 열린 개막식에는 한정식, 김한용, 주명덕, 강운구, 이완교, 박주석, 이갑철, 임양환, 조문호, 김녕만, 이기명,
김광수씨 등 많은 사진가들 외에 김호근, 서정춘씨도 참석하여 사진전을 축하했다.

전시장 가는길 : 지하철2호선 잠실역에서 9호선으로 갈아 타, 다음역인 몽촌 토성역에서 하차 (한미약품 건물 19층)
전화 :02-418-1315 / 입장 관람료 : 6,000원


 

 

 

 

 

 

 


인사동 콧수염으로 통하는 사진가 김영수씨가 지난 6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

그 와는 30년지기지만 생각이나 삶의 스타일이 너무 달랐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주고 받은 기억이 난다.
'강하면 부러진다'는 속담에 빗대어 그의 성격을 나무랐더니
'야 인간아! 니 처럼 살면 밟혀 죽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한 번 마음이 상하면 두번 다시 뒤돌아 보지 않는 성격이다.
괴팍한 그의 박치기에 나가 떨어지는 사람들도 여럿 보았는데, 결국 그는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
화를 다스리느라 술을 마시고, 술 때문에 큰 병을 얻어 결국 세상을 떠났다.
뒤늦게 깨우치고 외로워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기구한 그의 삶이 너무 가슴 아파 일찍이 영안실을 찿아 나섰다.
작업실에서 내려와 낙원동 쪽으로 가는 길에서 난데없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안경과 모자는 보이지 않고 구경꾼만 모여들고 있었다.
포터 옆에는 운전한 사람인 듯한 40대 남자가 물끄럼이 지켜보고 있었다.
'운전하는 사람이 앞도 않 보냐? 며 역정을 내자
미안하다는 말은 커녕 '보험처리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인간적인 면은 사라지고 물질만능주의로 치닺는 세태에 울화가 치밀어
'돈만 있어면 지 애비도 잡을 놈이네!'라며 그의 멱살을 움켜 잡았다.
문득 화를 잘 내던 김영수씨가 떠 올랐다.
경찰과 앰블란스가 나타나 그쯤에서 부끄러운 시간들을 모면할 수 있었다.

을지로 백병원으로 가겠다는 구급대원의 말에 친구가 있는 서울대병원으로 가자며 우겼다.

응급실에서 다리 깁스만 한채 영안실로 향하다 길목에서 사진가 강운구씨를 만났다.
병원복 차림으로 절뚝거리는 초라한 행색에 대한 사연을 듣고 그가 한마디 했다.
'그 친구, 저승길이 외로워 조형을 데리고 갈 작정을 했구먼'

영안실에서 영정사진을 올려보니 김영수씨가 웃고 있었다.
부디 영정사진 모습처럼 저승에서라도 웃고 지내시게나.

오랜동안 같이 사진을 해왔지만 그는 카메라를 무기처럼 사용한다는 생각을 가끔 해왔다.
그 무기로 인해 조그만 재물과 영예는 거두었을지 모르지만, 죽음 앞에 모두 잃어버렸다.
산다는 것 자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빠져 술이 취했다.
초상집에서 노래도 부르고 정인숙씨에게 "시원 섭섭하겠다"는 못 된 말도 했다.
어떻게 집으로 왔는지? 그 다음 부터는 필름이 끊겨 버렸다.
그 이틑날 몸은 아프고 속은 뒤집혔지만, 병문안 온 김명성, 전활철, 공윤희씨와 술로 속을 달랬다.

조경석선생의 도움으로 병원에 입원했으나 창살 없는 감옥살이였다.
그러나 스스로를 뒤돌아 보는 시간을 갖기로 작정했다.

'위기가 기회'라듯 스스로의 화를 다스리고 깨우치는 좋은 시간을 만들어 갈 작정이다.

오늘 아침 친구의 어머니가 죽은 자식을 위해 정릉에서 굿판을 벌린다는 연락이 왔다.
"영수씨! 잘 가시게, 같이 못가 미안하네"

 

-서부병원에서 조문호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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