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오후, 이대훈, 노인자씨 내외 분께서 '아트 온'사무실을 방문하셨어요.
오랫만의 만남이라 저녁식사 핑게대고 '여자만'에서 한 잔 하였습니다.
이명선, 노은두, 전활철씨 까지 합류하여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2012.3.19

 

 

 

 

 

 


지난 14일 마산의 이강용씨가 '에꼴 40인전'에 참가하려 상경하였습니다.
인사아트센터 6층 전시실에는 각양 각색의 작품들이 벽면을 장식하였는데,
진한 봄 냄새에 취했습니다.
이강용씨를 비롯하여 그 날 처음 만난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2012.3.19

 

 

 

 

 


오늘 인사동 거리를 지나다 장 춘씨를 만났어요.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찻집에서 장 춘씨가 불러요.
오랫만의 만남이라 무척 반가웠는데, 옆 자리엔 김동수선생님과 김호근선생도 계셨어요.
세상을 등진 적음의 슬픈 이야기가 주된 화제였는데, 장 춘의 마지막 말이 여운을 남겼어요.

"법명처럼 조용히 떠났구나!"

2012.3.19

 


 

사람들로 넘쳐나는 일요일의 인사동에서 탈북자 북송 중단을 촉구하는 퍼포먼스가 있었다.
무거운 십자가를 둘러매고 복잡한 인사동거리를 돌아다니는 그를 지켜보는 노숙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보게나 고생 그만하고 소주나 한 잔하자고... '


담배와 이별하기 위한 금연 퍼포먼서가 지난 13일 푸른별이야기에서 있었다.
김언경, 전활철, 최일순, 정영신, 김지호, 이주원씨를 증인으로, 마지막 담배에 불을 붙이는 장면을 촬영했다.

담배여 안녕..


이재선씨의 紙畵展(전통무속화)이 지난 12월 2일, 유카리화랑에서 열렸다.
오후6시경, 전시장에는 노광래씨를 비롯한 몇 명만 남아 뒷 정리를 하고 있었다.
뒷풀이 장소인 '낭만'에는 많은 분들이 있었지만, 술자리가 이미 파장이었다.
가까운 지인들이 어울려 '무다헌'으로 자리를 옮겼다.

먼저 도착한 구중관형이 비싼 위스키를 시켜 놓았다. 그것도 기초생활수급자가?
알고보니 이유가 있었다.
이계익선생께서 장호원에 있는 극동대학 석좌교수에 초빙돼,
첫 월급으로 한 턱 쏜다는 것이다.
이계익선생을 따라 구중관, 배평모, 전활철씨를 비롯한 싸나이들과
'무다헌'의 강고운 마담을 위시하여 처음 보는 걸들과 어울렸다.
어떻게 알았는지 서정춘, 송상욱, 김형구씨가 차례로 나타났다.

이계익선생께서 아코디언 연주에 이어 어린시절을 그립게하는
'오빠 생각'을 하모니카로 멋지게 불었고, 러시아민요 '광활한 들판'까지 열창했다.
이에 질세라 송상욱선생께서 새로이 만든 '인사동 부루스'를 불렀는데,
그 노래가 참 좋았다.
기회가 닿으면 노래 부르는 전모를 동영상으로 찍어 올릴 작정이다.

양주를 소주처럼 퍼 마셔, 일찍 맛이 가 버렸다.
술 취한 넘의 눈에 비친, 비 오는 서울 밤 풍경도 괜찮더라.

2011.12.7

 

 

 

 

 

 

 

 

 

 


서울신문 [김문기자가 만난 사람]

'아코디언으로 제2의 인생 즐기는 이계익 전 교통장관' 

# 취미:누드 크로키, 아코디언 연주
# 별명:도깨비
# 특이사항:매년 마라톤 풀코스 2∼3회 완주(최고 기록 3시간40분), 지난 4월 에베레스트 실버원정대 이끌고 해발 5400m까지 오름.
# 희망:실버 아코디언연주단 창단, 실버 마라톤클럽 조직. 그 외에도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음.

사회활동에서 떠난 후에는 과연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누구나 고민하는 매우 중요한 인생의 화두임에 틀림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이 잘 안 나오거든 다음을 주목해 보자.

#문제:현역 시절을 ‘국영수’로 살았다면, 나이 들어서는?
#답:‘예체능’이다.

맞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무수히 많은 철조망을 통과하기 위해 국어, 영어, 수학이 필요했겠지만
은퇴 후에는 예체능으로 재무장해야 인생을 90세까지 건강하게 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정서적으로 여유있고 괜찮게 늙어가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여기 한 사람을 소개한다.

주인공은 바로 이계익(72) 전 교통부장관.1993년 8월 우리나라 고속철 차량 선정 때 최종 도장을 찍은 장관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평소 만나는 사람에게 “장관될 때까지 정말이지 ‘국영수’로 많은 관문을 통과했다.”면서 “이제는 예체능이야.”를 항상 강조한다.
어느날 문득 그에게 준비하지 못한 ‘은퇴’가 찾아왔지만 곧바로 ‘국영수’를 버리고 ‘예체능’을 택했다.
적어도 비참하게 늙지는 않을 방법이라고 자신한다.그도 그럴 것이 아코디언 연주를 배우고 누드 그림을 열심히 그렸다.
시간이 날 때마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하는 노랫말을 중얼거리며 뛰었다.

또 일주일에 한번씩 젊은 여인의 누드를 보면서 스케치북에 정성껏 옮기다보니 개인전을 두어번은 열 수 있을 정도로
부끄럽지 않은 작품들이 쌓였다. 정신·신체가 10년 전보다 더 건강해질 수밖에 없다.
머리가 맑고, 가슴이 따뜻해지고 또 다리가 튼실하니 충분히 그럴만도 할 터. 지난주 서울 종로구 내수동에 위치한
이 전 장관의 자택을 찾았을 때에도 그는 아코디언으로 ‘눈물젖은 두만강’을 연주하고 있었다.
“악보도 없이….”라고 말을 건네자 “운전할 때 브레이크를 쳐다보고 밟느냐. 운전하다 보면 엔진도 보이고 하는 것이지….”라며 웃는다.

근황을 묻자, 소문대로 매주 화요일이면 서울 반포동 화실에 나가 아름다운 여인의 누드를 감상한다고 답했다.
회원이 15명으로 홍익대 미대 출신 전문가들과 자신처럼 아마추어도 몇명 포함돼 있단다.
또 매주 토요일 아침 9시에 친구들과 함께 인천 강화도나, 경기 양평·장호원 등으로 풍경화를 캔버스에 담으러 떠난다.

아울러 일주일에 2,3회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마련한 아코디언 연주공간에 가서 무료로 아코디언을 가르쳐 준다.
교통부장관을 그만둔 직후 독일로 배낭여행을 갔을 때 악기점에서 아코디언을 구입, 독학으로 배운 실력이 어느새 강사 수준까지 이르렀다.
실제로 강사 노릇도 했다. 아코디언 연주시범을 보이며 “혼자 할 수 있는 유일한 오케스트라가 바로 아코디언”이라는 예찬론을 폈다.

그는 은퇴하면서 몇 가지 생활신조를 정했다.
남한테 욕 안 하기, 일주일에 서점 세번 들르기, 지하철 타면 서서 가기, 외출할 때 수염 깎고 넥타이 매기, 걸어서 가기 등이다.

“양보하고 즐겁게 천천히 사는 방법을 터득했지요.나이들면 대개 자신이 살아온 지난날에 대해 알아주지 않는 것을 섭섭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면 새로운 변화에 저항하게 되지요. 다 허깨비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그는 현역시절 선생, 관료, 기자 등 안 해본 것이 없다면서 ‘그때’를 잊고 앞으로 90세까지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잘 살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 중요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지나온 시절이 문득 떠올랐을까.6·25때 아픈 기억을 회고한다. 그러니까 배재중학 1학년때 6·25를 만나 천안집에서 가족과 함께 피란을 준비 중이었다.
갑자기 군인들이 나타나 아버지를 보자 총을 겨눴다. 마침 비오는 날이어서 아버지는 군용 우의를 입고 있었다.
군인들은 이런 차림의 아버지를 인민군으로 오인, 어린 이계익 등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총을 두발 발사했다.
이를 본 여동생은 충격을 받아 실신했고, 시름시름 앓다가 끝내 숨지고 말았다.

1951년 3월 어머니는 동생 하나를 더 낳았는데 몇 개월 안돼 굶어 죽었다. 어머니는 충격을 받아서인지 집을 훌쩍 떠나버렸다.
중학 1년생인 이계익이 동생 둘의 생계를 떠맡아야 했다.
다행히 먼 친척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천안시내 한복판에 좌판을 깔고 달러장사로 생계를 꾸렸다.

그러던 중 어머니의 소식을 전해들었다. 수소문 끝에 경기도 의정부 25사단 위병소까지 갔다.
하지만 말도 안 통하고 미군들이 자꾸 쫓아내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정처없이 걷다가 소양강가에서 힘없이 풀썩 주저앉았다.
이때 강가에 떠 있는 배 한 척을 문득 봤다.20인승 전마선, 주인은 70대 노인이었다.

번쩍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뱃사공을 하다 보면 어머니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노인한테 통사정을 했다.
이후 하루 종일 강을 건너는 ‘노젓는 뱃사공’이 됐다. 뱃삯으로 미군한테는 왕복 1달러, 민간인은 담배 1갑을 받았다.
사공 이계익은 전쟁의 포화 속에 ‘백마강 달밤에∼’를 부르며 피곤을 달랬다. 그러기를 3개월여, 이번에는 어머니가 어느 산골에 산다는 얘기를 들었다.
수소문 끝에 어머니와 상봉했으나 새 살림을 차린 것을 알고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냥 돌아서야 했다.
그때가 1952년 겨울. 이후 천안집으로 돌아온 그는 다시 서울로 올라와 양정중학 3학년에 편입한 뒤 양정고를 졸업하면서 새로운 인생길을 걷게 됐다.

“우리 사회에서 실버가 짐이 될 수는 없습니다. 실버 아코디언 악단, 또 실버 마라톤클럽을 만들 생각입니다.인간의 DNA는 꾀가 많거든요.
열심히 하는 주인한테 그 DNA는 꼼짝 못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마라톤도 해보니까 되고, 그림과 아코디언도 해보니까 다 됩디다.
노인들이 방안에 죽치고 앉아 있는 것보다 라콤파르시타를 연주하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에 좋습니까.”


■ 그가 걸어온 길

▲1937년 경기도 평택 출생
▲56년 양정고 졸업
▲61년 서울대문리대 철학과 졸업
▲63∼75년 동아일보기자
▲78∼81년 럭키금성그룹 이사
▲81년 KBS해설주간
▲86∼89년 한국관광공사 사장
▲93년 교통부장관
▲99년 문화일보 부사장
▲2000년 디지털타임스 사장
▲현재 극동대 석좌교수

#주요 저서=소양강의 뱃사공(정우사,1978년), 이계익의 3분경제(한국방송공사,

김명성씨의 생일을 축하하는 모임이, 생일을 하루 앞 당긴 지난 26일 오후6시30분
인사동 '여자만'(사랑방)에서 가까운 지인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여자만에서 준비한 음식들로 잔치상을 차렸고, 만화가 박재동씨는 최근에 펴낸 책에

초상화를 그려 생일선물로 전달했다.
김명성씨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 토끼띠 형제들의 결연식도 함께 가졌는데,
박인식, 이영준, 최석규, 최효준씨가 나와 캐익도 자르고 기념품도 나누었다.

축하연에는 송상욱, 김상현, 신현수씨를 비롯한 음악인들의 노래는 물론, 인사동
'나 가수'가 총 출동해 신명나는 노래판을 벌였다. 가요 반세기가 망라된 생일잔치에는
최효준씨의 십팔번 '꺾어진 사랑탑'에서 부터 나의 '인천 성냥공장'까지 나왔으니
끝장 을 본 셈이다.
이날 눈길을 끈 사건 하나는 유카리화랑 전시실장 명함을 들고 새로이 등장한 여우의
미색에 인사동 늑대들이 침을 질질 흘렸다는 사실,

자정이 지날 즈음에는 대부분이 탈영했지만 술에 골아 떨어진 패잔병도 생겨났다.
김명성을 비롯한 10여명이 남아 고지를 사수하였으나, 생일을 장모와 함께 보내는
마누라가 마음에 걸려 도망쳤다.
안국동 택시승차장에는 한 시간 전에 나간 이청운씨가 그 때까지 차를 못잡아
헤메고 있었다. 술이 취해 찻길에 나와 설치니 어느 기사양반이 태워 주겠노?

뒤에 들은 소식으로는 김명성씨를 비롯하여 전활철, 조준영, 전인경씨 등 살아남은
몇 명이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겨 새벽녘까지 노래를 질렀다나요...

참석자(무순)
신성준, 박기정, 송상욱, 김신용, 정기범, 신상철, 조문호, 이청운, 박재동, 박인식,
공윤희, 최효준, 최석규, 이영준, 김명성, 전활철, 김상현, 노광래, 조준영, 최혁배,

김철기, 이 성, 전인경, 오치우, 김영재, 이미례, 박서연, 전인미, 현장스님, 신현수,

김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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