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라는 요상한 전염병 때문에 전 국민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특히 어려움을 겪는 대구 시민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우리 국민들의 저력으로 이겨낼 수야 있겠지만, 쉽게 물러날 것 같지 않다.



언제까지 갈지 모르는 상황이라 가난한 이들의 삶이 걱정스럽다.

나라에 재난이 생기면 제일 먼저 위기에 몰리는 사람이 걸인들이다.

부랑자에게 밥 주는 곳이 코로나 때문에 모두 문을 닫아 버린 것이다.

여유 있는 이는 버틸 수 있지만, 없는 사람은 바로 직격탄을 맞는다.

그래서 돈 벌려고 눈이 벌겋게 설치겠지만...




요즘은 전염병 핑계로 전화기를 멀리하고 일에만 파묻혀 산다.

20일 동안 어디 떠날 일이 생겨, 가기 전에 그동안의 작업을 정리하는 중이다.

쪽방에 혼자 있는 것이 편하기는 하나 끼니 잇는 게 제일 걱정이다.



이틀 동안 라면만 먹다보니, 밥 생각이 간절해 모처럼 밖에 나갔다.

급식소는 진즉 문을 닫았지만, 이젠 ‘식도락’마저 문을 닫아버렸다.

‘동자동 사랑방’을 비롯하여 푸드메켓 까지 모두 휴업에 들어갔다.

나야 어디서라도 먹을 수 있으나, 노숙인들은 굶기를 밥 먹듯 한다.

사람이 없어 구걸도 쉽지 않지만 구걸해도 술 마시지, 밥은 안 사 먹는다.



그런데, 거지들은 마스크도 없으며 소독은 커녕 손 한번 씻지 않는다.

아무도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 걸 보니, 전염병까지 없는 놈을 차별하는 것 같다.

무임승차해 좀 편하게 떠나는 것도 좋으련만, 그마저 용납하지 않는다.



식당도 손님이 없어 가게나 뜯어 고치고, 거리는 유령도시처럼 텅 비었다.

언론에서 지나치게 나팔 불어 지레 겁먹어 외출도 외식도 일체 하지 않는다.



마침, 이태선씨를 만나 자판기 커피 한 잔 얻어먹고, 사진 한 장 찍어주었다.

이제 오십대지만, 고생으로 겉늙어 일흔은 되어 보인다.



공원에도 사람이 없어 ‘동자희망나눔센터’로 마스크 구하러 갔는데,

열 검사를 하더니 마스크 한 장을 공짜로 주네.

여지 것 마스크 사러 줄 한번 서보지 않았는데, 이럴 땐 거지 덕도 보는구나,

그나저나 이놈의 코로나가 빨리 사라져야 할텐데, 죄 없는 사람 다 잡겠다.



조용한 아랫 길로 내려가니 맞바람 부는 찬 바닥에 누군가 자고 있었다.

이른 시간이라 취한 것 같지는 않은데, 힘이 없어 쓰러져 자는 것 같았다.

무슨 놈의 팔자가 그리도 기구한지 모르겠다.




병학이가 펼쳐놓은 자리에서 술 한잔 얻어 마시며 아픈 마음을 달랬다.

코로나야 제발 선량한 사람 힘들게 하지말고, 나쁜 놈들이나 잡아가 다오.

돈과 권력에 환장해 나쁜질을 밥 먹듯 하는 놈들, 눈깔 뒤집힌 국개의원들, 정신나간 떡검들,

그기에 부화뇌동하는 기레기까지 모조리 청소해 주고 떠나라.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30일 오후 5시 무렵, 매점을 찾아 나섰다.
저녁에 먹을 빵 사러 나갔는데, 골목 한구석에 남종호씨가 술판을 벌여 놓았더라.
막걸리 두 병과 종이컵 두 개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처음 만난 그의 친구인 셈인데, 대뜸 한 잔하라며 컵을 내밀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바닥에 퍼져 앉았으나
옆집 식당 아줌마 더러 땅콩 몇 조각만 달라고 졸라댔다.
식당 옆에 자리 잡은 것만도 눈에 거슬리는데, 땅콩을 줄 리 있겠는가?






얼른 일어나 구멍가게에서 땅콩 한 봉지를 사 왔더니,
‘몇 알만 있으면 되는데,,,.’라며 겸연쩍어 했다.
종호씨는 나보다 다섯 살 아래지만, 사람을 너무 그리워한다.
술을 좋아해도 많이는 못 마시고, 조금씩 마시는 술에 항상 취해있다.
“방에서 마시지 왜 길바닥에 술상 차렸나?‘고 했더니, 심심해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 만큼 외롭다는 말이다.
거리에 술상을 차리면 아는 술 친구들을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좀 있으니 잘 모르는 분이 끼어 앉았다.
난, 사진 찍는 조문호라며, 자기의 이름도 적어달라고 수첩을 내 밀었더니,
“不可無一杯酒”라 쓰고는 그 밑에 郭玉泰(57)라 적었다.
없어서는 안 될 한 잔 술을 강조하는 것을 보니, 자기도 술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어디 사느냐고 물었더니 ‘광주여인숙’에서 머무는데,
요즘 하루에 만원씩하는 여관비 대느라 정신없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얼마 전 사고를 쳐 감방에서 한두 달 썩고 나왔더니,
기초생활수급비가 반으로 줄었다며 투덜거렸다.
왜 적게 나오는지 영문은 모르지만, 참 세상 인심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유병철씨가 싱글벙글 나타나 새로 장만한 핸드폰 자랑에 신났다.
핸드폰에다 “구글 구글~, 보지 보지~”라고 말로 검색해 한참 웃었는데,
보여주는 이미지에 아연실색했다.
나도 성개방론자이지만, 그건 쪽팔리는 짓거리였다.
그만두라고 퇴박을 주었으나, “형 카메라보다 이게 더 좋다”며 자꾸 보란다.
아무리 혼자 살아 여자가 그립겠지만, 그건 아니다 싶었다.
세상 정보가 한 손에 들어 있어 좋은 세상인지 모르지만,
몰라도 될 폐해가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구멍가게에 일보러 가야겠다며 일어나니,
‘형 같이 놀아줘!“하고 불렀으나 모른척 가버렸다.
가게에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다 왔더니,
다들 사라지고 남종호씨만 바닥에 잠들어 있었다.
신발을 베개 삼아 웅크린 모습에 마음이 아렸으나,
겨울이 아니니 그대로 둬야 했다.
다들 술이 취하면 눈 좀 붙였다 들어가는 습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더니, 이준기씨와 황춘화씨가 만취해 있었다,
아들 용성이가 달려와, 더 있으려는 황춘화씨를 부축해 갔으나,
다리가 불구인 이준기씨는 내가 데려다 줘야 했다.
간신히 자기 방에 들어가서는 ‘형! 멋진 안경이 생겼으니,
안경 쓴 사진 한 판 찍어 달라“ 했다.






그러고는 술 한 잔 대접하고 싶으나 술이 없는데다 너무 취해 움직이기 힘들다며,
설합에서 오천원을 꺼내서는 내려가다 한 잔 하고 가란다.
걱정말라며 사양했으나 막무가내였다.
"그래, 이 돈으로 다음에 술 한 잔 사겠다"며 받아 나왔으나, 코 끝이 찡했다.

이게 사람 사는 정이다.






내방에 돌아와 폐북을 뒤적거리다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가 쓴
‘쪽방촌 사진족에 몸살’이란 기사에 분노가 치밀었다,
물론 생각 없이 쪽방촌을 기웃거리는 무례한 아마추어 사진인 부터 탓해야겠지만,
사진족이란 말에 부풀린 뉘앙스를 받았기 때문이다.

뚫어진 문살에 눈만 나오게 만든 사진이미지도 도둑촬영을 의미했는데,
뉴스를 만들기 위해 기사를 썼다는 생각이 앞섰다.



‘사진은 본 기사와 상관없음’이라며 실은 /뉴스1 사진


여지 것 동자동에 살면서 한 번도 아마추어 사진가들을 만나지 못해 그런지 모르지만,
두 부부의 이야기만 거론 한 것으로 보아, 사실보다 부풀린 내용인 것 같고,
문제점을 지적하는 포토그래퍼 윤모씨라는 분의 인터뷰 내용도 몇자 적었는데,
그렇다면 이름을 정확하게 밝혀야 했다.
자신의 이름 하나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나서지 말아야 했다.
사람 사는 게 구경거리냐?는 글도 구경거리를 만들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윤리적인 잣대를 앞세워,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울타리에 가두고 금기시하는 자체가
그 사람들을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소외된 약자로 만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진인들도 가시적인 풍경이 아니라, 사람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고 싶다면,

사진에 앞서 인간적인 접근이 우선되어야하고,
필요할 때는 본인의 양해 아래 연출 없이 찍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상을 당하거나 특별한 일이 생기면,
다들 이름 석 자 중 한자는 빼고 적었는데,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평소 본인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꺼릴 사정이 있다면, 이름을 바꾸면 되기 때문이다.
자신을 대표하는 이름을 숨기는 자체가 당사자나 망자를 모독하는 짓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평등의 말처럼,
제발 평범한 사람으로 봐 주길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오른 쪽부터 헬레나, 안애경, 박세연, 유아, 소피아 / 어린이아트캠프에서



정선 일을 마무리 못한 채, 급히 동자동으로 돌아와야 했다.
지난 번 어린이아트캠프에서 찍은 사진을 미처 전해주지 못하기도 했지만,
필란드로 떠나기 전에, 헬레나양이 쪽방에다 작은 목침대를 만들어주겠다는
안애경씨의 전갈을 받은 것이다.

허겁지겁 돌아와, 전해 주어야 할 캠프사진부터 정리하느라 허리께나 돌려 댔는데,
어떻게 작업 끝 날 시간을 그리 잘 맞추었는지,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 늦게 나타나 주었다.






목공예가 헬레나만이 아니라 미술감독 안애경씨와 미디어작가 유하, 소피아 등 네 사람이

지난 8일, 내가 사는 동자동 쪽방으로 몰려 온 것이다.
서로 나누어 짐을 올리기야 했지만, 그 몸집 큰 헬레나가 가조립된 목침대를 들고
좁은 4층 계단까지 땀 흘리며 낑낑대는 모습은 안 서러웠다

좋은 친구들의 연에 의한 도움이긴 했지만, 더 어려운 사람들이 눈에 밟혔다,
솔직히, 나 혼자만의 특혜 같은 미안 함에 몸둘 바를 몰랐다.
아무튼, 어려운 사람들에게 백배 천배로 돌려 도우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며, 
그 다짐으로 위안했다.




그런데 내가 사는 쪽방 건물 3-4층을 관리하는 정씨가 문제를 제기했다.
방에다 임의로 선반하나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방에 붙이는 선반이 아니라 독립된 침대라고 했더니, 장판에 자욱이 남는다는 억측을 펴기도 했다.

이런 개 씨나락 까먹는 소리 같으니라고...
이 건물이 사라지기 전에는 떠나지 않을 것이라며, 밀어붙였다.


전형적인 완장부대의 갑 질이었다.
보름 전에도 실수로 복도에 페인트를 쏟은 노인에게 우격다짐 하는 것을 보았는데,
어느 날 외출하고 돌아오니 쫓겨 나고 없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는 사람이 집 주인인데, 어찌 관리인이 주인을 내 쫓을 수 있나?

이 친구는 완장부대의 갑질이 몸에 베어 그렇지만, 계란 후라이를 나누어 주는 등 잔 정은 있다.
다른 입주자와는 달리 많은 신경을 써 주어, 큰 소리 칠 형편은 아니었으나,
못된 버르장머리는 기어이 고쳐놓고 말겠다는 다짐도 했다.


네 사람이 달려 붙어 좁은 복도에서 목재들을 이어 붙였는데,
순식간에 멋진 침대가 만들어졌고, 남은 공간에 맞는 책상과 의자까지 들여왔다..
갑자기 쪽방이 호텔방으로 격상한 기분이었다.


방바닥에 앉아 일하다 허리 다친 걸 아는 안애경씨의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편리함만이 아니라 쪽방의 공간 활용도까지 높아진 것이다.
침대 밑 공간이 생겼으니, 그 밑에 많은 물건을 집어넣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 공간이면 신혼살림 차려도 좋겠다는 야무진 꿈도 꾸었다.
수고하신 친구들에게 조그만 사례라도 하고 싶어 벽에 붙은 사진 중에 골라보라 했더니,
다들 내가 좋아하는 사진들만 골랐다. 이심전심이었다.
당장 프린트하여 선물할 순 없었지만, 안애경씨 편으로 보내드리겠다고 약속했다.

다들 수고 하셨는데, 따뜻한 밥 한 그릇 대접하지 못하고 보낸게 아쉬웠다.
이토록 아름다운 친구들이 있으니, 그래도 살만한 세상인 것 같다.
그들의 인정으로 엄청난 행복감을 느꼈으니, 그들은 분명 행복 전도사 임이 틀림없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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