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고 답답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우울한 일상을 보내는 즈음,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색다른 전시가 열리고 있다,

바로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열리는 김주호의 ‘태평천하’전이다.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사회현상의 체험을 바탕으로 형상화한 요지경 속 풍속도다.

태극기부대가 등장하는가 하면, 인간의 끝없는 욕망의 배설물들이 여기 저기 전시되어 있다.

아기자기하게 탁자에 놓였거나 벽에 걸린 작품들은 장식적 요소까지 더해 ‘나무화랑’ 전시장이 색달라 보였다.




그의 작품들은 사회 비판이며 진술이자 풍자다.

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하면서도 한편으로 슬프지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이 전시는 4월 6일까지 열린다.


사진, 글 / 조문호





“이번의 다양한 근작들엔 미술 이전에 ‘인간’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미술 이후의 '사람'을 말하고자 하는 김주호의 작업태도가 잘 드러난다. 질구이, ·버려진 폐품 오브제,·드로잉,·낙서,·메모,·기타 즉발적인 언어로 미술개념,·이즘,·형식,·활동방식…등 기존 미술의 틀과 형식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신과 이웃이 함께하는 작업의 원초적 의미를 반증하는 것이다. 최근 그는 과거보다도 더 미술판이나 미술을 둘러싼 제도로부터 확연하게 벗어난 듯 보인다. 스스로 '동네작가'로 만족하는 그의 미술 '이후'가 더 자유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다”     -미술평론가 김진하-































[스크랩 : 서울아트가이드 2020년 4월호]










회화적인, 너무도 회화적인


 

 
캔버스를 마주한 화가에게 그림이란 어떤 의미인가? 수 세기 동안 화가들이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았을 이 미술사적 과제는 작가 샌정에게도 오랜 탐구의 대상이자 작품의 주제 의식이었다. 특히 최근 그의 작업은 회화성, 회화‘의’ 세계, 회화‘와’ 세계에 대한 고뇌를 거듭한다. 지난 몇 년간 그의 개인전 제목인 ≪그림 연습/ 그림 그 자체/전시장의 그림/형태에서 세계로/우주를 형성하기/그림들≫1 만 살펴보더라도, 개념적이며 포괄적인 단어를 선택하여 그의 작업에서 구체적이고 감상적인 접근 대신 객관적인 이론화와 추상화가 꾸준히 가속되어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번 OCI미술관의 개인전 역시 <VERY ART>라는 묵직한 제목의 전시이다. 그만큼 작가가 소신껏 준비한 것으로 이 전시는 그의 사유가 어떻게 캔버스 안으로 수렴되고 있는지를, 그리고 회화 세계가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망라하여 보여주는 자리이다. 우선, 샌정 본인은 이 전시를 이렇게 규정한다.
 
 

VERY ART

회화의 심미적 영역과 관련해 미적 판단의 테두리 안에서 그려내지고

ART적인 너무도 ART적인 생각의 궤적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세계를,

흐릿하게 관조의 중심 축으로 자리하는 형상들을 추상적 노스텔지어와

멜랑콜리아로 표현한 전시


 
‘ART’라는 거대 담론의 전제 아래, 그가 추구하는 회화는 주관적 표현이나 감각적 쾌락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다’고 판단 내려지는 것이다. 칸트가 『판단력 비판』에서 천명한 무관심성, 일체의 관심 없이 대상을 판단하는 것이자 ‘상상력과 지성의 자유로운 유희에 있어서 나타나는 마음의 상태’로, 샌정의 회화에는 필연적으로 거리 두기, 즉 관조의 태도가 요구된다. 그림을 그리는 개성적인 창작자인 동시에 그림을 무관심적으로 바라보는 감상자의 입장이 되어야 하는 화가에게 캔버스란 주관성과 보편성이 마주하고 충돌하는 장(場)인 동시에 중립을 지키는 중성적 공간이다. 말 그대로 일종의 ‘회색지대’로서 캔버스는 펼쳐지는데, 샌정은 실제로도 캔버스 위에 밝은 회색 물감을 올려 배경을 그린다. 여기에는 옅은 듯, 혹은 짙은 듯,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대기감(大氣感)이 어려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실제에서는 어디에도 있을 법하지 않은, 이 가상의 세계는 감상자로 하여금 철학적 의미를 찾고 존재론적 가치를 부여하고픈 욕망을 불러일으키나, 회화는 그 자체로 침묵하며 섣부른 ‘자리매김’을 거부한다.
 
오히려 그의 회화에서 먼저 감지되는 것은 캔버스 표면의 붓질과 물감으로 이루어진 물질성이다. 붓을 든 작가의 제스처에 따라 표현되는 고유의 호흡은 화폭 위로 형상을 떠 오르게 하고, 또 깊숙이 가라앉게 한다. 샌정의 전작(前作)에서 이 형상들은 이국적인 여인상이나 들판 위의 백마처럼 몽환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면, 이 형상은 점차 반추상에서 기하학적 추상으로,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는 몇 가닥의 선으로까지 응축된다. 형상의 기화(氣化)라고도 할 수 있는 이 과정에서 작가의 회화-밖-경험은 회화-안-형태로 나타나기까지 무수한 정보의 생략과 함축, 감성의 증폭과 절제가 포개어지고 가다듬어진다. 그 결과, ‘이것은 OO을 뜻한다.’라는 정의 대신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는 무심한 바닥으로 작품을 이끈다.
 
원시적(primitive)이라고 여겨질 만큼 형상의 틀을 벗어나 내밀함을 강조하는 그의 회화는 얼핏 모노 톤의 화면으로 균질하게 정돈되어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물감의 두께감, 선의 갈라짐, 색의 충돌 등 회화적 요소로 인해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작업에서는 개별 작품마다 고유의 리듬을 가지고 있기도 하거니와 때때로 동일한 모티브가 여러 점의 작품을 통해 변주되고는 하는데, 그 속에서 색과 선은 뭉쳐지고, 흩어지고, 미끄러진다. 미세하지만 분명한 긴장과 균열은 그의 작품 속 대기감에 섬세하게 파문을 일으키는데, 이 잔잔한 운동 속에서 어느 쪽으로도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는 미묘함이야말로 샌정 작품에 주요한 분위기이다. 작가는 이를 ‘부유감’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달리 말하면, 창작 활동 중 끊임없이 감각과 사유의 상호 탐색과 침투가 벌어지며 그 지난한 과정이 마침내 가라앉을 때, 비물질적인 사유가 떠다니다가 캔버스 위에 침전하여, 그렇게 회화가 된다.
 
뻔한 얘기 같지만, 결국 회화는 물질과 정신의 상호 교환 속에서 그 책무를 이행한다. 샌정은 작가 노트에서 “세계는 회화라는 장르에 생각이 이르게 하고, 회화는 숙명처럼 그 세계를 열어 보인다.”2 라고 고백한다. 그에게 회화-밖-세상은 회화-안-세상으로 이동 가능한 동시에, 두 세계는 전체로서 동일하다. 은폐된 세계의 본질은 작가의 감성적 주관성이 가까스로 세계의 보편성과 마주하게 될 때 비로소 드러난다. 샌정의 회화에서 ‘추상적 노스텔지어와 멜랑콜리아로 표현되는’, 그 그리움과 아득함의 대상이야말로 예술의 근원일 것이다. 결코 도달할 수 없을 그 기원을 찾아 헤매는 행위 자체가 ‘VERY ART’한 것이 아닌가. 샌정의 작업은 이렇게 영원히 지속될 비완성의 노정을 걸으며, 화가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 오늘도 묵묵히 세상을 그린다.

 

 


 

1 Study Painting(nook gallery, Seoul 2015); Painting Itself(gallery EM, Seoul 2016); Pictures in a Gallery(nook gallery, Seoul 2015, 2018); A Form to the World(Choi & Lager, Cologne/Germany 2018); Formed the Universe(Choi & Lager, Seoul 2019); Paintings(Osterhaus Museum, Hagen/Germany 2020)
2 샌정, 회화론, 2019










"몸을 팔아도 사람거치 팔라“는 말은 청량리588의 맏 언니 격인 정숙이가 동생들이 잘못하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그는 윤락녀뿐 아니라, 국회의원에서 부터 밥벌이 하는 모든 직업을 몸파는 일로 본다.

몸을 팔아도 사람거치(같이), 사는 것도 사람거치, 하나같이 사람이 먼저다.

입이 거칠어 욕쟁이지만, 가치관이 분명하고 생각이 앞선 걸 보면 일찍 철든 것 같았다.


사창가에서 일하다 보면 시간은 돈이나 마찬가지라, 다투는 일의 대부분이 시간 싸움이다

'롱 타임'을 끊은 손님도 한번 일보고 나면, 그 다음은 강원도 포수다.

밤새로록  다른 손님받다 새벽녘에 얼굴이라도 삐끔 내밀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 만큼 시간이 돈이다 보니, 다들 손님이 시간 끄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오죽하면 상대방 이름이라도 물어보면 촌놈이라고 꼬겠나?


"혜련아! 밖에 손님 기다리는데, 왜 나올 생각 안 하냐? 영복이 오빠 기다린다

나까이 아지매가 찾는 소리에, 기다렸다는 듯이 앙칼진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야이! 씨발 새끼, 술이 취해 연애는 안하고 좆지랄로 시간끄내. 용팔이 오빠 있으면, 좀 끌고 나가라 해요"

이야기가 그쯤 나가면, 취객은 쫄아버린다. 보지도 못한 용팔이한데 겁먹어...

그런 소리 들리면 정숙이가  의례 한 마디 거들고 나선다.


야! 이년아~ 팔아도 제발 사람거치 팔아라



그러나 김정숙은 다르다. 사람이 먼저다. 아무리 손님이 추근대도 다독여준다.

기다려 주고, 장난도 받아주며 사람 사는 정을 느끼게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 다 들어주고 신세타령까지 하는 여자다.


자기 몸이 섹스머신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유독 정숙이만 단골이 많다.

아무리 풋사랑이지만, 연애는 계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보다 적게 벌지만, 다른 애들처럼 쓸데없는 사치하지 않으니,

시골 엄마한데 공장에서 받은 월급이라며 꼬박꼬박 송금도 했다.

모두 인간적으로 대하니 동생들도 따르고, 심지어 포주도 정숙이 말은 믿었다.


나 역시 정숙이로 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

여기 살며 제일 힘든 것이 사람 취급 안 한다는 것이다

모두 더럽다고 손가락질하며 구더기처럼 본다는 거다.

그래서 하나의 직업인으로 보는 세상을 만들자는데 동의한 것이다.



90년초,'588'전시 개막식에 다들 오기로 했으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한 가닥 희망마저 쪽 팔리게 된 것이다..

언론에서 하나같이 매춘에 무게 둔, 사람보다 가십거리로 나팔 분 것이다.

다들 마음 아파했다. 욕쟁이 정숙이의 걸죽한 욕설도 터져 나왔다.


"에이~씨발! 세상 좆 같다. ~ 기자들도 국개의원이나 똑 같은 씹새들이구나."



그 이후 정숙이는 그곳에서 사라졌다.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몰랐다.

4년전, '588'사진집을 내며 30여년만에 정숙에게 공개 편지를 띄웠다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는 걸 보니, 무소식이 희소식일게다.

정숙이는 어딜 가도 잘 살 거다. 언제나 사람이 먼저였으니...


그 당시  쫓겨 다니던 단속견이나 국개의원들에게 욕해대던 생각도 난다.

"사람 차별하지마라 씨발 놈들아. 우리한테 언제 사람대접 해봤냐?

위안부 할머니만 피해자가 아니라 우리도 피해자다. 몸 팔아 부모형제 먹여 살린 것도 죄냐?"


예전이나 지금이나 정치판은 수시로 말 바꾸는 쓰레기들이 우글거리니,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닌가!

"사람 취급하지 않았던 정숙이보다 못한 덜 떨어진 인간들아~ 부끄럽지도 않냐?"

 

지금 쯤 정숙이도 개판 된 연동형비례대표제에 열받아, 어디선가 욕을 퍼붓고 있을거다. 

야이~ 씨발년놈들아! 정치 좆거치 하지말고 사람거치 해라


사진, / 조문호


































 


 











고영민 시인

(사)천상병시인기념사업회와 천상병시상운영위원회는 3월초 천상병시상 심사위원회(위원장 고형렬·시인)를 열어 ‘제22회 천상병詩문학상’ 수상자로 시인 고영민(50)을 선정했다. 수상작은 시집 『봄의 정치』(창비2019)다.

천상병시상심사위원회는 2019년 2월부터 2020년 2월까지 출간된 시집 가운데 데뷔 10년 이상된 시인을 대상으로 역대 천상병시상 수상자를 비롯해 추천위원들의 추천을 통해 모두 20여 권의 시집을 추천하였다. 1차 예심을 통해 다수 추천을 받은 6권의 시집으로 압축하였고, 3월초 본상 심사위원회를 열어 객관적이고 공정한 심사 끝에 고영민 시인의 『봄의 정치』를 최종 선정하였다.

고영민 시인의 작품은 시인 특유의 사물에 대한 겸허하고 곡진한 마음으로 ‘온기(溫氣)’를 불어넣으며 평범한 일상을 비 일상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다고 의견을 모았다. 인간과 사물 그리고 자연에 대한 불경(不敬)의 태도가 미만한 시절에 고영민 시의 미덕이 여기에 있다고 보았다. 표제작 「봄의 정치」에서 “봄이 오는 걸 보면/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노래하고, “손을 빌려준다/ 따뜻한 피가 도는”(「조약돌」)라는 표현에서 시인의 시적 지향을 잘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시집에서 은유적 상상력의 만개(滿開)가 유감없이 발휘된다는 것도 중요한 시적 특징이다.

시인은 『봄의 정치』에서 ‘죽음’과 ‘상실’이라는 주제를 집요하게 다룬다. 특히 어머니(아버지)의 부재(不在)를 다루는 시의 행간에는 그리움의 정동과 더불어 자기 앞의 인생을 ‘산다는 것’에 대한 깊은 사유의 힘이 느껴진다. 어머니의 부재를 다룬 시들, 예를 들어 「망(望)」 「만두꽃」 「입속의 물고기」 「톱밥 꽃게」 같은 시들이 그러하다. 예를 들어 “톱밥 속의 꽃게”의 모습에서 “톱밥 속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배 속에 가득 차 있는 것은/ 암이 아닌/ 알일까”(「톱밥 꽃게」)라고 읊조리는 시의 행간을 보라. 이런 태도는 「철심」에서 “영영 타지 않고 남는 게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라고 자문하는 시적 태도와도 잘 통한다.

시의 언어가 절제되어 있고, 시행 또한 간소하다는 점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이러한 시적 특징은 언어를 최대한 ‘가난하게’ 구사했던 천상병 시의 시정신과도 잘 부합한다. 고영민 시인이 “가난은 나의 삶 자체”(「가난의 증명」)라는 시적 스탠스를 잊지 않으며, “구수한 불 냄새”(「불 냄새」)나는 “촌놈” 시인으로서 사물의 근본을 생각하게 하는 시를 쓰고 있다는 점에서 3명의 심의위원들은 전원일치로 천상병시상 수상자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고영민 시인은 1968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2002년 『문학사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악어』 『공손한 손』 『사슴공원에서』 『구구』가 있다. 지리산문학상, 박재삼문학상을 수상했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천상병예술제가 취소되어 제22회 천상병詩문학상 시상식은 따로 열리지 않으며 별도의 자리에서 상패를 전달할 예정이다.

데일리경제 / 최세영기자 (http://www.kdpress.co.kr)



손은영씨의 길에서 만난 사람들사진전이 오는 27일까지 충무로 갤러리브레송에서 열리고 있다.




요즘은 사진전에 아예 관심을 끊어 어디서 뭐가 열리는지 알려 하지도 않는다.

씨잘때기 없는 사진도 너무 많지만 뒷말은 또 얼마나 많은지, 사진전 소개 글은 일체 쓰지 않겠다고 작심했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오후, ‘갤러리 브레송김남진 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별 일 없으면 술이나 한 잔하자기에, 방구석에 처박혀 있어 온 몸이 근질근질하던 차에 저녁이나 먹을 생각으로 털고 일어났다,

멀다면 모르겠으나 동자동에서 충무로까지는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 아니던가?


요즘 사회적 거리두기로 다들 집에서 도를 닦아 산중에 계신 도사들 자리가 위태로울 지경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김남진씨 혼자 텅 빈 전시장을 지키며 일하고 있었는데, 사는 게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유럽으로 유학 간 딸과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집에 가고 싶다는 내용인 것 같았다.

비행기 삯이 걱정되어 사지에 있는 딸을 못 오게 하는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는가


 

전시장을 둘러보니, 손은영씨의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시골 사람들이 여기 저기 서 있는 정면 사진들인데, 돈 안 되는 사진 찍었구나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다른 사진이면 몰라도 사람 사진이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오로지 사람을 찍어 오기도 했지만, ‘두메산골 사람들을 비롯하여 인사동 사람들’, ‘장터 사람들에서는

손은영씨가 보여주는 정면사진을 채용했기 때문이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들의 모습이 집이나 일하던 자리에 담담하게 서 있었다.

한 인물의 정면사진이란 모든 걸 보여주는 것 같지만 사실 많은 것을 감추고 있다.

그러나 그의 사진은 모든 걸 받아들일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이러한 정면사진은 독일의 아구스트 잔더가 대표적이다. .

그의 사진은 찍힌 개인보다 사람을 직업군으로 보아 작가는 존경하지 않는다.

아무리 사진이 좋아도 사람을 대하는 근본 자세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국내 작가들도 작고하신 홍순태선생의 '농촌 사람들'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이 찍어왔으나,

모두가 시대적, 지역적 환경이 달라 백번이고 천 번이고 계속되어야 할 작업임이 틀림없다.

다들 찍는 스타일에 변별력을 가지려 애 쓰지만, 중요한 건 사람에 대한 정신이지 방법은 사족에 불과하다.



손은영씨의 사진은 여지 것 보아왔던 입상사진과는 사뭇 달랐다.

대개 보아 왔던 흑백사진과는 달리 컬러사진인데다, 색조도 강하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았다.

 

대개의 사진가들이 찍을 때, 장소와 화면을 이루는 구도, 그리고 사람의 자세나 표정에 신경쓰며 일관성을 유지한다.

그러한 의도적 개입보다 자연스러운 접근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졌다. 상황에 처한 그대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일터인 밭이나 살고 있는 집 또는 만난 장소에서 찍은 사진들인데, 사람과 환경은 물론이고 자세나 표정이 모두 달랐다.

인물보다 주변환경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 가운데, 이 땅을 지키며 한 시대를 살아가는 농민들의 담담한 모습이 자리했다.



대부분의 다큐 사진가들이 흑백으로 기록했지만, 사실은 컬러사진이 훨씬 사실적이다.

부쩍 그런 생각이 앞서는 것은 50년대 찍은 컬러사진들이 요즘 심심찮게 등장하는데,

이전에 보아왔던 흑백기록에 비해 더 진한 감명을 주었기 때문이다. 색이 더 해지니 당시의 분위기나 감성까지 읽혀졌다.

손은영씨의 사진 역시 세월이 한 참 지난 후에는, 오늘의 의상 감각까지 생생하게 보여주게 될 것이다

 

전시장을 장식한 사진들은 수레나 자건거를 끌고 가다 마주쳤거나, 텃밭에서나 제초잡업을 하다 멈춰 선 정지된 장면이었다.

급박하게 사라져가는 시간의 자취를 기억하려는 의도에 붙잡혀 있었다.

장소나 사람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찾아 볼 수 없었으나, 오로지 사람과 자연, 삶의 공간, 노동의 현장만 함께 했다.

 

급속한 근대화 속에서 빠르게 망각되어가는 우리네 삶과 문화에 대한 반성과 비판의 시선도 깔려있다.

민초들의 순박한 모습에서 인간적인 비애도 느껴졌다.



손은영씨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이 땅에 의지해 살아 온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강인한 정신력일 것이다.

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물은 그 시대에 대한 기록이며 표상이다.’작가의 한마디에 이 사진전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사람의 얼굴이란 세상의 시작이고 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를 만나지 못해 물어보지 못한 의문점도 몇 가지 있었다.

첫째, 기록이 우선인지 예술이 우선인지 묻고 싶었다. 기록이 먼저라면 찍힌 사람이나 찍은 곳의 이름과 지명은 밝혀야하기 때문이다.

둘째, 인화 작업할 때 인물을 강조하기 위해 주변을 흐리게 한 트릭을 발견했는데,

의도적 개입보다 자연스러운 접근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졌다.’처음의 내 말과 배치되는 유일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기록보다 말하기 좋은 예술을 원한다면 할 말 없지만, 예술도 기록에 충실해야 가능하지 않을까?

좌우지간, 손은영씨가 보여 준 민초들의 얼굴과 몸은 우리네 전통이며 역사임에 틀림없다.

다시 말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사유해 보는 일에 다름 아니다.

 

 / 조문호





태평천하

김주호展 / KIMJOOHO / 金周鎬 / sculpture
2020_0325 ▶︎ 2020_0406


김주호_보인다_테라코타_2020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81019f | 김주호展 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3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태평천하. 이번 김주호 개인전 타이틀이다. 구전되는 요순시절을 제외하면 역사적 서술에는 없는 서술이다. 그런 역설을 현실에 대입해서, 김주호는 지난 1년간 그의 일상적 체험들에 대한 주관적 바램과 객관적 현상들을 기록(이자 표현)으로 모았다. 그 1년 동안 우리사회는 시소처럼 높이 솟았다가 밑으로 꺼지는 걸 반복했다. 남북간 평화협정의 기대에 들떴다가 가라앉은 분위기와 함께, 세대간·진영간·남녀간·지역간·빈부간 계층갈등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게다가 최근엔 국회의원 선거와 겹친 코로나바이러스의 창궐로 사회분위기는 흉흉하기까지 하다. 만화경이자 요지경 속 풍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집단지성과 이성적인 삶의 태도로 지금의 이런 갈등과 위기를 잘 돌파하며 또 극복해나가고 있다. 불안보다는 희망이 여전히 크다는 것.


김주호_꽃을 든 남자_테라코타_2020


김주호_내 손끝에 은하수 1_테라코타_2020


김주호_내 손끝에 은하수 2_테라코타_2020


'태평천하'란 이율배반적이고도 진솔한 명제는 바로 이런 희비극 같은 현실을 지켜보는 작가 김주호의 시선으로부터 도출된 오소독스이자 패러독스, 비판이자 위로, 슬픔이자 여유가 겹쳐진 동시대성에 대한 진술이자 풍자다. 또 삶의 진득한 정서를 온몸으로 살아낸 작가의 일상적 커멘터리이기도 하다. 그가 바라본 '우리'와 그에게 바라다보이는 '우리'가 어떤 전형성으로 형상화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레토릭이기도 하고.


김주호_넉넉한 주머니_테라코타_2020


김주호_대박을 물다_테라코타_2019

김주호_행복한 남자_테라코타_2020


김주호_함께 소중한 우리-성모병원에서_종이에 드로잉_2020




김주호_환영풍물시장-강화 풍물시장에서_종이에 드로잉_2020



김주호_태평천하展_나무화랑_2020


한편, 이는 미술 이전에 '인간'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미술 이후의 '사람'을 말하고자 하는 김주호의 작업태도가 드러나는 기제다. 질구이·버려진 폐품 오브제·드로잉·낙서·메모·기타 즉발적인 언어로 미술개념·이즘·형식·활동방식…등 기존 미술의 틀과 형식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신과 이웃이 함께하는 작업의 원초적 의미를 반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최근 확실히 그는 과거보다도 더 미술판이나 미술을 둘러싼 제도로부터 확연하게 벗어난 듯 보인다. 스스로 '동네작가'로 만족하는 그의 미술 '이후'가 더 자유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다. ■ 김진하



Vol.20200325c | 김주호展 / KIMJOOHO / 金周鎬 / sculp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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