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오후6시, ‘리얼 포토’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준비모임이

인사동 ‘푸른별 이야기‘에서 있었다.

전시도 전시지만 옛 사우들이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라 일찍부터 마음이 들떴다.

더구나 대전에 은둔하는 이석필씨를 만날 수 있어서다.

 

그 날은 쪽방 관리인 정씨가 같이 갈 때가 있다며 저녁식사를 하지 말라고 했으나,

모처럼 오랜 친구들을 만나는 약속이 있어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되어 방문을 열어보니 파리똥이 미끄러질 정도로 내 구두를 빤짝 빤짝 닦아 놓았다.

정씨가 빙그레 웃으며 ‘옛 친구 만나는데 구두가 더러워서야 되겠냐“는 것이다.

난, 빤짝거리는 구두를 좋아하지 않아 여지 것 아무리 더러워도 구두 닦는 일은 없었는데,

닦아놓으니 그리 싫지는 않았다. 아마 정씨는 군대 내무반시절 선임들 구두깨나 닦아준 것 같았다.

 

초라한 행색에 구두만 반짝거렸으나, 서둘러 나갔다.

 인사동에서 약속 있을 때마다 늦었기 때문이다.

가까운 거리라 늦장부리다 매번 시간을 지키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10분이나 빨랐다.

그런데, 그때까지 아무도 없어 약속장소가 바뀐 줄 알고 술집에서 나와버렸다.

김문호씨에게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아 뭔가 잘 못된 것 같아 돌아서려는데,

좁은 벽치기 골목에서 김문호씨와 이석필씨가 등장했다.

 

김문호씨야 전시장에서 가끔 만나지만, 이석필씨는 만난 지가 몇 년은 된 것 같았다.

술집에 먼저 자리 잡았는데, 이석필씨는 비슷한 연배지만 아들처럼 젊어보였다.

이 친구의 건강비결은 술을 마시지 않고 밥을 잘 먹는데 있지만, 본래 야생의 체질이다.

야생화 찍으려 산을 숱하게 돌아다녔는데, 겨울에도 양말을 신지 않으며

물을 더럽힌다고 비누는 물론 세수도 잘하지 않는 특이한 체질을 가졌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각질이 생겨 그런지 비누를 사용한다고 했다.

 

막걸리와 소주에다 김치찌게를 시켜 한 잔하고 있으니 안해룡씨가 나타났다.

김봉규씨를 비롯한 다른 분들은 일이 있는지 아무도 오지 않았다.

네 사람이 만나 한 잔하는 자리가 오붓하기는 했으나, 왠지 씁쓸했다.

 

30년 전으로 돌아가는 추억의 시간이 되었는데,

기념전을 어떤 식으로 치룰 건지 의논하는 자리였으나, 별다른 결과를 얻지 못했다.

당시의 작업을 소환하느냐 아니면 지금 작업을 보여주는 것으로만 압축되었는데,

그야 당연히 지금의 작업이었다.

 

그 자리에서는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지만,

어떤 공동주제를 내세워 짧은 시일이지만 집중적으로 작업해보는 것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왜 중요한 모임에 다들 참석하지 않았을까?

어쩔 수 없는 사정이라면 모를까 별로 관심 없는 것은 아닐까?

확실한 결론도 얻지 못한 체 케케묵은 이야기나 근간의 사진계 이야기를 안주로 술만 마시다

대전까지 가야 할 이석필씨가 먼저 일어났다.

 

술값 품앗이로 돈을 냈더니, 안해룡씨가 슬쩍 돌려주었다. 고맙긴 하나 마음은 편치 않더라.

소주 한 병이면 주량보다 좀 과하게 마셨으나, 그냥 집에 가기는 싫었다.

지척에 있는 ‘유목민’에 들렸더니, 전활철씨가 반겨주더라.

술보다는 시원한 콜라 한 잔 얻어 마시고 녹번동 가는 3호선을 탔다.

언제나 술이 취하면 동자동으로 가지 않고 녹번동 가는 이유는 계단 오르기가 힘들어서다.

다만 마스크 쓰고 지하철 타는 시간이 길어 곤욕스럽기는 하나 정영신씨 만나는 기쁨도 크다.

 

난, 술이 취하면 간이 커지고, 쪽팔리는 것도 잘 모른다.

술 값 돌려받은 돈으로 꽃집에서 국화 한 다발을 산 것이다.

정영신씨에게 알랑방귀 뀌는 것이 아니라 보라색의 작은 꽃송이가 너무 섹시해서다.

초라한 늙은이가 꽃을 들고 지하철을 타는 꼴이 얼마나 우습겠는가?

문을 들어서니 세수하던 정영신씨 표정에 미소가 감도는 걸 보니, 쪽팔렸지만 잘 했다싶다.

 

오늘의 결론은 안 하고 입 닦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낫고,

하려면 의미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 글 / 조문호

 



'갤러리 브렛송'의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찍은 풍경사진'  열 일곱번째 기획전인

김문호씨의 ‘THE WASTELAND’사진전이 지난 12일 충무로 ‘브렛송갤러리’에서 열렸다.

그는 30여 년 동안 도시의 그늘진 곳을 찍어 온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문명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 본 그의 대상은 도시 공간 구석구석의 비루한 군상들이었다.

기존의 직설적인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뭔가 생각하게 하는 다큐멘터리다.

반대어법이 주는 은유성이 훨씬 큰 울림을 줄 수 밖에 없는데, 그 건 한 편의 시였다. 

그동안 발표되어 온 ‘On the Road’가 그랬고, ‘Shadow’가 그랬다.

그러나 이번 ‘THE WASTELAND’에서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황량하기 그지없는 풍경을 찍어 내놓았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사람의 흔적을 느낄 수 있고, 심지어 사람들의 울음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그 사진들을 보며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찍지는 못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사진이기 때문이다.
김문호씨는 나와 이름도 비슷하지만 20여 년 전 ‘사진집단 사실’이라는 동아리에서 함께 한 적이 있어,

더한 동료의식을 느껴왔던 터다.  그동안 서로의 일에 메 달려 만나보지 못했으나,

폐친이 되며 그의 근황을 엿보게 되었는데, 몸이 아파 병원신세도 졌다고 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한 잔 할 수 있다기에 술을 많이 마셔 위장에 탈이 난 줄만 알았다. 
오랜만에 만난 그의 모습이 너무 수척해 알아 보니, 위암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놀랐지만, 경과가 좋다기에 안도했다. 그 와중에 사진까지 보여주니 고맙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전시된 사진들이 한 점에 50만원에서 70만원 밖에 하지 않는다는데, 더 놀랐다.
정말 겸손한 친구였다.

21일까지 전시가 이어지니, 꼭 한 번 가보시기 바란다. (02)2269-2613.


그 날 개막식에는 김남진 관장을 비롯하여 ‘눈빛출판사’ 이규상씨, 엄상빈, 성남훈, 석재현, 이한구,

안해룡, 이상엽, 이재갑, 장 숙, 김지연, 이주영, 남 준, 김봉규, 노형석, 곽명우, 임계제, 타이거 백,

김상수씨 등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사진,글 / 조문호











































 

 

지난 24일 강원도 영월에서 제14회 동강국제사진제가 개막되었다.

비에 가리고 우산에 가려 행사 진행은 볼 수 없었지만, 군데군데 반가운 얼굴들은 만날 수 있어 좋았다.

빗속에서 마시는 막걸리 맛도 일품이었지만, 곧바로 숙소인 '동강시스타'로 들어가야 했다.

이규상씨와 동강사진제 운영위원 엄상빈씨의 안내를 받았는데, 숙소마다 사진가들 판이었다.

옆방에 들렸더니 그 자리에는 구자호, 김남진, 신동필, 이광수씨가 자리 잡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어떻게 알았는지 손흥주, 이규철, 김종진, 김상훈, 성남훈, 남 준씨 등 사진인 들의 발길이 줄줄이 이어졌다.

안주래야 24시 슈퍼에서 사 온 과자 부스러기가 전부이지만 모두들 잘도 마셨다.

그 날 술자리에서 1987년도에 사진기자들이 모여 창립했던 '투영'동인회 이야기를 구자호씨가 꺼냈다.

근 30여 년 전의 이야기라 젊은 사진가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 기억이 뚜렷했다.

'한국일보'의 고명진, '조선일보'의 구자호, '동아일보'의 김녕만, 'TV저널'의 조성휘, '중앙일보'의 채흥모씨 등 다섯 명의

사진기자들이 만든 모임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포토저널리스트 동인회가 결성되었던 것이다.

바쁘게 사건현장을 쫓아다니는 사진기자가 개인적인 작업을 하기가 쉽지 않기에 그들의 활동은 사진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 이듬해인 88년에 경향신문의 우종원씨가 합류하여 여섯 명으로 늘어났지만, 6-7년 정도 활동하다 아쉽게도 해체되어 버렸다.

80년도 후반에는 '투영'동인 뿐만 아니라 이기원씨가 주축이 된 사사연(사회사진연구소)과

최민식선생을 회장으로 모시고 김문호, 김봉규, 안해룡, 이석필, 조문호, 추연공씨 등 기자들과 다큐사진가들이 모인

'사진집단 사실'이 태동하는 등 다큐사진가들의 그룹 활동이 두드러진 시절이었다.

살롱사진들이 판치는 무렵이라 다큐 동인회의 태동과 활동은 우리나라 사진사의 중요한 기점으로 판단된다.

자정이 가까워 옆방으로 돌아 온 것은 술이 취하기도 했으나 김남진씨 일행과 어울리면 밤을 지새야한다는

소문이 돌아 지레 겁먹은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다슬기 해장국집에서 만나들은 바로는 술이 없어 아쉽게도 2시 정도에 마무리했단다.

 

"이젠 나이도 있는데 몸 좀 생각해야지"라며 혼자 구시렁거리자 뒷말이 들려온다.
"사돈 넘말 하네"

사진, 글 / 조문호

 

 

 

 

 

 

 

 

 

 

 

 

 

 

 

 

 

 

 

 

 

 

 

 

 

 

 

 



                                                     -동아일보 1985.3.14일자-(동아미술제 대상 발표 및 인터뷰기사)

 

 

 

 

 

                               -조선일보 1990.2.6일자- ("전농동"사진전에 대한 인터뷰기사)

 

 

 

----------------------------------------------------------------------------------------------------------------------------------------------------------

 

[매일경제 1989.6.8]

 

사진가모임 '사진집단 사실'창립

 

시대진실의 기록 고발인으로 의기투합

 

사실주의 사진만을 추구하는 사진가집단 사실 (대표 최민식)이 최근 창립모임을 갖고 정식 출범했다.

 

기존의 우리 사진계가 개인적이고 소극적인 형태로 현실을 외면한 창작행위에 머물고 있음을 비판하면서 출발한 이들은 사진은 사회현실의 진실된 기록이며 고발이어야 한다고 선언. 이 시대의 성실한 기록인이며 고발인으로서의 사진작가활동에 뜻을 같이 한 최민식 등 프리렌스 9명으로 구성되었다.

조문호, 이석필, 김문호, 안해룡, 추연공, 이용남, 김인우, 이재혁 등 3-40대 작가들이 주요맴버.

 

최민식은 인간을 주제로 26년간 작품활동을 펴 왔으며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널리 알려진 작가, 호주 '인생과 그의 감정전'에서 특별상을 수상했으며 미, 불, 일 초청 사진전 등 해외에서의 활동이 많은 사진작가다. 또 조문호는 '전농동588'라는 사창가를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이고, 추연공은 로이터통신의 프리랜서로, 이재혁은 농촌문제만 찍는 사진작가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일반적인 사회시각과 달리 소외계층의 생활상과 사회비판 고발적인 경향의 작품들을 발표하게 된다.

분기별 정기모임을 통해 회원간의 창작물을 발표, 평가하는 한편 매년 회원들의 공동작품집도 발간할 계획.

또 외국리얼리즘 사진작가 그룹과의 국제교류전도 추진할 예정이다.

 

회원들의 첫 작품발표회는 오는 10월경 가질 예정이다 (경)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