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노 피셔_동베를린의 사진가

Arno Fischer_A Photographer in East Berlin

아르노 피셔展 / Arno Fischer / photography 

 

2022_0623 ▶ 2022_0821 / 월요일 휴관

 

아르노 피셔_뉴욕 New York_27×40cm_1984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성곡미술관_독일국제교류처

기획 / 마티아스 플뤼게

협력 / 주한독일문화원

 

진행

성곡미술관 / 이수균(학예연구실장)

윤현정(학예연구사)_황수진_이시연(학예인턴)

행정운영 / 김윤지(팀장)

기술 / 김혁주(소장)

독일국제교류처 / 알렉산더 리제브스키

 

입장료 / 일반(만 18-64세) 10,000원

청소년(만 13-17세) 7,000원 / 어린이(만 4-12세) 5,000원

만 65세 이상, 장애인, 국가유공자 8,000원

 

도슨트 / 매일 02:00pm, 04:00pm(주말 포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입장마감_05:30pm / 월요일 휴관

 

성곡미술관

SUNGKOK ART MUSEUM

서울 종로구 경희궁길 42(신문로 2가 1-101번지) 1,2관

Tel. +82.(0)2.737.7650

www.sungkokmuseum.org

 

성곡미술관은 독일 사진사의 상징적 인물인 아르노 피셔(Arno Fischer, 1927~2011)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동독 출신인 피셔의 이번 전시는 베를린 장벽이 건설되기 직전인 1953년부터 장벽이 무너진 1989년을 거쳐, 피셔가 세상을 떠난 2011년까지 그의 전 생애를 아우르는 회고전으로, 젤라틴 실버프린트 117점과 폴라로이드 66점으로 구성된다. ● 베를린 베딩(Wedding)에서 태어난 피셔는 패턴 제작 목공 견습생으로 시작해 조각가가 되기 위해 1947년부터 6년간 동서 베를린에서 조각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사진을 접하고, 곧 조각 학교를 중퇴했다. 그는 카메라를 메고 자신의 고향인 베를린의 구석구석을 탐험하며 약 7년 동안 동서 베를린의 평범한 일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 습작 같은 사진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베를린의 생생한 모습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베를린의 동서 분단 이후 그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아르노 피셔는 1950년 본격적으로 사진가 일을 시작했고, 1966년부터 그의 동반자이자 사진가인 지빌레 베르게만(Sibylle Bergemann, 1941-2010)과 함께 28년간 거주한 그들의 12번지 쉬프바우어담 아파트는 새로운 예술의 토론장이 되었다. 그는 당시 가장 혁신적인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헬무트 뉴튼, 로버트 프랭크, 바바라 클렘, 엘렌 아우어바흐와 같은 국제적 사진가들을 초대해 진정한 인간의 자유에 관해 토론하며 그들을 선도했다. 또한 그는 라이프치히, 베를린, 도르트문트의 대학에서 교육자로서 사진과 디자인을 가르치며, 동서독의 3세대 사진 예술가들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아르노 피셔_서베를린, 5월 1일, 티어가르텐 West Berlin, 1 May, Tiergarten_27×40cm_1959

아르노 피셔의 사진은 대부분 처음부터 끝까지 독일민주공화국(GDR) 시기와 맞물려있다. 작가는 1950년대 '분단된 베를린의 사진'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는데, 특히 동서 베를린의 사회, 문화, 정치적 상황을 기록한 사진은 '베를린 상황'이라는 타이틀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GDR의 여성패션 잡지 '지빌레(Sibylle)'의 일원으로 일하며 패션 사진에도 큰 관심을 보였고, 여행 사진가로도 일하며 뉴욕, 아프리카, 인도에서 찍은 사진 시리즈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는 '베를린 상황', '패션', '뉴욕', '여행' 과 노년의 자신의 집 정원을 찍은 폴라로이드 연작인 '정원' 등 총 5개 파트로 구성된다. ● 이 전시는 독일국제교류처 주최로, 사진 역사학자이자 피셔와 절친한 사이였던 마티아스 플뤼게(Matthias Flügge)가 기획을 맡았다. 피셔의 사진은 독일의 전쟁, 분단과 통일을 모두 목격한 예술가의 눈에 비친 '독일인'과 '독일 문화'의 생생한 증언이자 굳건한 삶의 기록으로 지난 역사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역사적으로, 그리고 예술적으로도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예술가이자 교육자로서 자신의 삶과 예술을 굳건히 지켜온 피셔의 작품은 여전히 분단국으로 남아있는 우리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사회적, 정치적 이념을 뛰어넘은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보통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도 겹쳐 보이며, 그의 사진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사진예술이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리라. 디지털 프린트에 익숙한 우리 눈에 작가의 손으로 프린트한 '진짜 사진'의 맛을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기회이기도 하다. ■ 성곡미술관

 

아르노 피셔_뉴욕, 스태튼 아일랜드 선착장 New York, Staten Island Ferry_27×40cm_1978

아르노 피셔의 사진  "위대한 것은 많으나 인간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다." (소포클레스, 안티고네) ● 아르노 피셔는 종종 '가장 유명한 무명 사진가'로 묘사된다. 그런데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누군가에겐 알려지고, 다른 누군가에겐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 20세기 후반의 사진사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진가로서 아르노 피셔의 중요성을 알고 있으며, 그의 사진은 동독을 뛰어넘어 최고의 존경을 받는다. 그는 삶의 대부분을 동독에서 보냈고, 사진 작업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했다. 사진이 온전한 예술 매체로 인정받지 못했던 시절에 그는 사진 그 자체의 특성과 함께, 사진이 고유한 예술 장르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을 이어갔다. 그런데도 피셔는 늘 그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1985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는 동베를린에서 자신의 첫 회고전을 열었다. 그 무렵 그의 전 작품 세계가 완성되었고, 라이프치히 미술대학에서 영향력 있는 교수로서도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그는 지성인으로서 정치, 경제, 종교 등 모든 기성의 권력에 맞서는 아방가르디스트였다. 오늘날에는 드물지만, 비교적 늦게 대도시로 부상한 베를린에는 지난 2세기 동안 피셔와 같은 예술가들이 넘쳐났다. 피셔는 가식적이지 않고, 대의에 헌신적이며 역경에 쉽게 굴하지 않는, 지혜롭고 풍부한 공감 능력을 갖춘 예술가였다. 그의 사진에서 엿볼 수 있듯, 피셔의 유머에는 삶의 지혜가 배어 있다. 그러나 피셔의 유머 감각과 멜랑콜리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그의 사진은 항상 멜랑콜리한 분위기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작품은 순간을 포착하며, 동시에 삶의 덧없음을 환기시킨다. ■ 마티아스 플뤼게

 

아르노 피셔_마를레네 디트리히, 모스크바 Marlene Dietrich, Moscow_빈티지 프린트_37×25cm_1964

1. 베를린 상황 ● 아르노 피셔만큼 황폐한 대도시 베를린의 문화적·정치적 상황을 예리하게 관찰해 밀도 높은 사진으로 담아낸 작가는 찾아볼 수 없다. 피셔는 당시 절망과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희망 그리고 현실과 프로파간다 사이를 오가던 시대정신을 섬세하게 포착했으며, 특히 개인과 사회의 간극에 관심을 가졌다. 1953년부터 피셔는 '공화국 탄생일', 즉 동독 건국일 행사를 비롯한 서독의 추방자 모임과 같은 다양한 정치적 시위나 집회에 참석하며, 약 10년 동안 동서로 분단된 베를린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피사체를 놀이공원, 스탈린 거리를 따라 늘어선 공사장, 서독의 '경제 기적'으로 과시적 소비 행위를 즐기던 쿠어퓌르스텐담 거리에서 찾아냈다. 여기서 피셔는 치밀하게 짜인 화려한 장면보다는, 연출이 실패로 돌아가 그 실체가 있는 그대로 드러난 변두리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2. 뉴욕 ● 아르노 피셔는 1978년과 1984년 두 번에 걸쳐 뉴욕을 여행한다. 두 번째 뉴욕 여행에서 피셔는 방대한 양의 사진을 찍었으며, 당시 촬영한 사진들을 엮은 『뉴욕. 풍경』사진집은 1988년이 되어서야 출간되었다. 하이너 뮐러가 쓴 사진집의 서문은 '인류가 저지른 막대한 실수 중 하나인 뉴욕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장소이다. 세상에 위대한 것이 제아무리 많다 해도, 사람보다 위대한 것은 없다.'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피셔의 사진들은 종말론을 연상시키는 뮐러의 관점을 따르지 않았다. 피셔는 뉴욕이라는 대도시가 품고 있는 사회 상황을 사진에 고스란히 담고 있을 뿐, 그는 어떠한 편견에도 사로잡히지 않았다. 그는 시간을 들여 대상을 간결하면서도 정교하게 관찰했으며, 그렇기에 감탄과 열광이 사진에 묻어 있으나 그 감정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다. 또한 피셔는 다양한 인상 가운데 자신의 선택적 시선을 통해 작업을 선별해냈다. 이렇게 탄생한 사진은 피사체와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친밀감을 느끼게 만드는 '스트리트 포토그래피'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3. 여행 ● 『길가에서』는 아르노 피셔가 여행 중에 찍은 사진을 전시하기 위해 지은 제목이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이 길가의 여정은 동구권 국가들이 주를 이루었으나, 서유럽과 인도, 아프리카 등을 비롯한 여러 국가를 포함한다. 피셔는 이 보도 사진들을 잡지에 실을 뿐만 아니라 『폴란드의 수도』(1974), 『레닌그라드』(1981), 『뉴델리, 올드 델리』(1983)와 같은 도시의 인상적인 풍경을 담아 일련의 사진집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피셔는 여행 사진을 찍을 때도 마찬가지로 대상을 지각하는 창조적 매개체로서 사진을 활용한다는 자신의 원칙을 따랐으며. 이국적인 묘사나 그림 같은 풍경으로 비치는 것을 가급적 멀리했다. 그럴수록 피셔는 예리한 관찰자이자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그는 사람과 그들의 일상적인 삶과 경험을 무엇보다 우선시했기에, 이들이 촬영된 장소는 그에게 있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아르노 피셔_동베를린, 쇠네펠트 공항 East Berlin, Schönefeld Airport_빈티지 프린트_40×30cm (출처_지뷜레 1968, 1월)

4. 패션 ● 1962년 아르노 피셔는 동독 여성 패션잡지 '지빌레'를 통해 자신의 새로운 작품을 선보인다. '지빌레'는 당시 동독의 문화적인 열망에 부응하는 몇 안 되는 동독 잡지 중 하나로, 그는 패션 사진을 찍을 때도 여전히 자신의 작업 방식을 고수했다. 피셔는 사람들에게 친숙한 장소로 나가 멋진 옷을 걸친 여성 모델들을 세워두고 촬영을 진행했다. 주로 전쟁의 흉터가 남아 있는 잿빛 거리나 광활한 광장, 베를린의 공업 지대에서 촬영했으며, 심지어 재난 지역인 비터펠트 화학 공장을 배경으로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곳들은 이상적인 모습을 연출하기에 적합한 장소는 아니었다. 이상적이라고 하기에 피셔의 패션 사진 속 모델은 현실 속 모습보다 조금 더 우아하고, 그들의 옷차림은 평소 거리에서 보던 차림새보다 조금 더 아름다워 보일 뿐,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사진이었다.

 

5. 정원 ● 1978년 아르노 피셔와 그의 아내 지빌레 베르게만은 베를린에서 북쪽으로 약 70km 떨어진 곳에 소박한 농가를 구입한다. 둘은 그곳에서 정원을 가꾸었으며, 그 후로 이곳은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는 예술가의 정원으로 거듭났다. 피셔는 정원 한 모퉁이에서 언제나 SX 70 폴라로이드로 식물과 뿌리의 부분, 돌, 각종 공구와 가구 같은 평범한 것들을 담아냈다. 성장과 소멸의 영원한 순환이라는 주제는 피셔가 약 30년에 걸쳐 찍은, 날짜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무수히 많은 폴라로이드 사진에 반복해서 나타났다. 2007년 폴라로이드 필름 제작이 중단되어 정원 연작을 마쳐야 했을 때, 그는 이 사적인 사진들을 일부 선별하여 공개했다. 그는 촬영 시점이나 사진의 순서를 고려하지 않은 채 폴라로이드를 세 장씩 묶어 '삼면화'를 제작했으며, 이후 정원 사진은 많은 곳에서 전시되었고, 책으로도 출판되었다. ■  

 

 특별 강연회: 박상우(서울대학교 미학과 부교수)

 강연1: 스트레이트 포토그래피의 역사  

   7월 9일 (토) 2PM 성곡미술관 2관

 강연2: 독일 사진의 역사  

   7월 16일 (토) 2PM 성곡미술관 2관

Sungkok Art Museum presents a photography exhibition of Arno Fischer (1927-2011), an East German photographer and an iconic figure in the history of German photography. Covering his entire career as a photographer, from 1953, before the Berlin Wall was built, through 1989, the year of the Berlin Wall's fall, to 2011, the year of his death, the exhibition introduces over 180 photographs including several vintage prints and Polaroid pictures. ● Born in Wedding, Berlin, Fischer began as an apprentice carpenter training in skills such as wood patternmaking, and then studied sculpture at art schools in both East and West Berlin for six years from 1947 with the aim of becoming a sculptor, before he discovered photography and dropped out of art school. He then explored every corner of his hometown Berlin with his camera, capturing scenes of everyday life in East and West Berlin in his photographs over a period of around seven years. Later, when Berlin was divided into East and West, the pictures that he had taken for practice became recognized for their historical value, since they encapsulated vivid images of Berlin in the immediate aftermath of World War II. ● After earnestly starting his career as a photographer in the 1950s, he spent the next 28 years from 1966 with his partner, photographer Sibylle Bergemann, hosting gatherings of innovative artists to discuss new art in the couple's apartment at Schiffbauerdamm 12. Fischer was always the one to lead such discussions, which involved many photographers from the GDR and around the world, such as Henri Cartier-Bresson, Helmut Newton, Robert Frank, Barbara Klemm, and Ellen Auerbach. Furthermore, Fischer taught photography and design as a professor at universities in Leipzig, Berlin, and Dortmund, which greatly influenced three generations of photographers in both East and West Germany. ● Throughout most of his career, Fischer's photographs featured life in East Germany, or the German Democratic Republic (GDR). In the 1950s, he began to gain recognition with his photographs of a divided Berlin, which became well-known as a series of photographs titled Situation Berlin that documented the social, cultural, and political situation in both East and West Berlin. Fischer later showed an interest in fashion photography by working for Sibylle, a women's fashion magazine in the GDR, while also building a reputation as a travel photographer through works depicting faraway locations such as New York, Africa, and India. As such, this exhibition consists of five parts, each themed after Situation Berlin, fashion, New York, travel photography, and Polaroid photographs that captured the garden of his house in his later years. ● This exhibition is hosted by ifa(Institut für Auslandsbeziehungen), a representative organization for international cultural relations founded to promote German culture around the world, curated by Matthias Flügge, a historian of photography who was also a close friend of Arno Fischer, and in collaboration with the Goethe-Institut Korea. As a vivid testimony to the vibrance of the German people and German culture as witnessed by an artist who experienced both the division and reunification of Germany, Fischer's photographs certainly breathe life into the history of a bygone era. His works may also be particularly evocative for the Korean people, who continue to live under national division, finding parallels in Fischer's legacy of fighting for his life and artistry as a photographer and educator throughout Germany's turbulent history. His photographs subtly resonate with modern viewers and allow them to empathize with ordinary people captured in the photographs, who sought to live their ordinary lives beyond the boundaries of social and political ideologies. This is truly demonstrative of the close and inalienable connection between photography and our everyday lives. As we find ourselves inundated with digital images in the modern age, the exhibition also represents a special opportunity for us to experience and appreciate "real photographs" hand-printed by the artist himself. ■ Sungkok Art Museum

ARNO FISCHER'S IMAGES ● "Many are the wonders, and none more wondrous than man" (Sophocles, Antigone) Arno Fischer has occasionally been described as 'the best known unknown photographer'. But what does that mean? Known to whom? Unknown to whom? And why? Anyone reasonably familiar with the history of photography in the second half of the 20th century is aware of Arno Fischer's significance, and his work commands the utmost respect well beyond the confines of East Germany. Most of his life Fischer has worked and taught in the GDR. At a time when photography was seen as a medium of limited artistic value, he campaigned tirelessly for the recognition of photography as an artistic genre in its own right and with its own character. But for all this, he has always been strangely reluctant to exhibit his work. It was not until 1985 that he agreed to a first retrospective exhibition in East Berlin. By that time the bulk of his oeuvre was complete, and Fischer, a professor at the Leipzig Academy, was far more than just an influential teacher. Then as now he was an authority, an independent mind, intellectually on the left and therefore inclined to mistrust all powers, be they political, economic or religious. A rarity these days, Fischer is the kind of artist that used to crop up time and again in the belated metropolis Berlin over the last 200 years: unpretentious, completely devoted to his cause and not easily deterred by adversity, worldly wise and full of empathy for people. His sense of humour is tinged with wisdom, and every once in a while we catch a glimpse of it in his pictures. Yet, humour and melancholy are but two sides of the same coin, and Fischer's photographs always seem suffused with an aura of melancholy. They capture the moment, but they also evoke the transience of life. ■ Matthias Flügge

1. Situation Berlin ● More than any other photographer, Arno Fischer succeeded in finding highly atmospheric and acutely observed images for the cultural and political situation of the ravaged metropolis of Berlin. With great sensitivity he captured the spirit of the era, oscillating as it did between depression and hope for a new beginning, reality and propaganda. He was particularly intrigued by the rift between the individual and society. From 1953, for a period of almost ten years, he took pictures in the eastern and western sectors of the divided city. He attended political demonstrations and rallies such as those accompanying the 'Birthday of the Republic' in the East as well as a meeting of expellees in the West. He found his subjects on fairgrounds, on the building sites along the Stalin Boulevard and on the Kurfürstendamm, where the West German economic miracle began to flaunt the joys of consumerism. Fischer tended to steer clear of carefully orchestrated pomp and circumstance, focusing instead on the fringe of events, where the careful staging peters out and masks are dropped.

2. New York ● In 1978 and 1984 Arno Fischer travelled to New York. The second trip yielded a substantial body of work, which was eventually published in 1988 in the book New York. Ansichten ('New York. Views'). The introduction by Heiner Müller ends with the words: 'Before we die, we should see New York, one of the great errors of the human race. MANY ARE THE WONDERS, AND NONE MORE WONDROUS THAN MAN.' Müller's apocalyptic perspective finds no echo in Fischer's photographs. Inevitably the pictures capture the enormous social contrasts that characterise the city. But Fischer had no preconceived agenda; his unhurried, succinct and keenly observed pictures bear witness to his sense of wonder and his fascination, but never let it take centre stage. Fischer screened the wealth of impressions through the filter of his selective gaze. The resulting pictures are street photography in the best sense of the term – detached and familiar in equal measure.

3. By the Wayside ● 'By the Wayside' was the title of an exhibition of pictures taken during Arno Fischer's travels. From the 1960s, his journeys took him to many different countries, chief among them those of the Eastern Bloc, but also Western Europe, India and Africa. Fischer not only published reportages in magazines but also a series of striking illustrated books: Poland's Capitals (1974), Leningrad (1981) and New Delhi, Old Delhi (1983). Abroad, as at home, he stayed true to his principle of using photography as a creative medium of perception, largely eschewing the exotic and the picturesque in favour of subtle observation and narrative. Arno Fischer's overriding concern has always been for people, their everyday life and basic experiences, which renders the location of the shots almost irrelevant.

4. Fashion ● In 1962 the magazine 'Sibylle' began to offer Arno Fischer a new platform for his work. Sibylle was one of the few magazines in the GDR that lived up to its cultural aspirations. Arno Fischer remained true to his individual styles even when he worked on fashion shoots. He photographed women wearing clothes at locations that were familiar to the audience: the grey streets with their war-scarred facades, the vast squares and the industrial zones of Berlin, he even shot in the disaster area of the Bitterfeld chemical plant. These locations did not lend themselves to staging pictures of unattainable ideals; they were real, even if the women were a little bit more elegant, their clothes a little bit more beautiful than what met the eye in the street every day.

5. The Garden ● In 1978 Arno Fischer and Sibylle Bergemann acquired a modest farm house some seventy kilometres north of Berlin. They planted a garden which has since grown into a prolifically exuberant artist's garden. Here, in his corner of paradise, Fischer has always worked with a Polaroid SX 70 camera. The pictures focus on the unspectacular: details of plants and roots, stones, tools and furniture. The eternal cycle of growth and decay became the leitmotif of the countless undated pictures taken over a period of some thirty years. Not until 2007, when Polaroid film finally went out of production and the series had to come to an end, did Arno Fischer exhibit a selection of these highly private pictures. Ignoring their chronological context, Fischer arranged them into triptychs that have since been widely exhibited and published in a book. ■  

 Lecture Programs   PARK Sang Woo(Associate Professor of Aesthetics, Seoul National University) Lecture 1: Concerning: Straight Photography   On Saturday 9 July 2022 at 2PM / Sungkok Art Museum Building2 Lecture 2: A History of Photography in Germany   On Saturday 16 July 2022 at 2PM / Sungkok Art Museum Building2

 

Vol.20220623c | 아르노 피셔展 / Arno Fischer / photography

MMCA 연구 세미나: 한국 사진사의 쟁점들


세미나 일시 / 2018_1215_토요일_01:30pm~05:30pm




세미나 일시 / 2018_1215_토요일_01:30pm

신청기간 / 2018_1203 ▶︎ 선착순 마감▶︎ 신청 바로가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Contemporary Art, Seoul

서울 종로구 삼청로 30 디지털정보실 라운지(DAL)

Tel. +82.(0)2.3701.9500

www.mmca.go.kr



기록 사진과 사진관 사진으로부터 시작한 한국 사진의 매체적 특수성은 미술의 맥락에서 흥미로운 질문을 일으킨다. 사진관 사진의 미학성, 사진콘테스트와 사진가 그룹의 출현, 포토저널리즘 및 인쇄 매체의 위상 등 사진사 전개 과정에서 짚어야할 현상들은 다양하고 폭넓다. 한국미술사에서 사진사를 자리매김 시키기 위해 국립현대미술관이 1년 동안 지속적으로 논의해온 수많은 쟁점 중 우선적으로 추려진 핵심 주제를 공유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연구기획출판팀


개요

주제: 한국 사진사의 쟁점들

일시: 2018.12.15.(토), 13:30~17:30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디지털정보실 라운지(DAL)

패널 및 내용


발표 1. 한국 사진사 기술의 문제들  

최봉림(가현문화재단 한국사진문화연구소 소장)

1976년에 출간된 한국 최초의 사진통사인 강상규의『한국사진사』와 같은 해 출판된 육명심, 최인진 공저인 『한국현대미술사 (사진)』 그리고 1999년에 출판된 최인진의『한국사진사 1631-1945』의 역사기술 방법론과 한국사진사 범주에 관한 제 문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새로운 한국사진사 기술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발표 2. 무엇이 사진사에서 작가를 규정하는가?  

박평종(사진평론가, 중앙대학교 교수)

미술관은 작가의 작품을 컬렉션 대상으로 한다. 사진은 예술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저널리즘, 각종 자료, 기념사진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있으며, 시대에 따라 작가의 개념도 변해 왔다. 이 발표는 한국사진사에서 작가의 개념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미술관의 사진 컬렉션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목표다.


발표 3. 한국 현대사진 제도사: 1988-1999  

이경민(사진아카이브연구소 소장)

한국현대사진의 시작을 알린 『사진·새시좌』전이 열린 1988년부터 사진제도의 꽃인 『한국사진사』(최인진)가 발간된 1999년까지 전시, 단체, 공간, 출판, 저널, 이론, 비평, 학회, 학과 등 사진제도의 제 양상을 살펴본다.


토론. 한국 사진사의 쟁점들  

최봉림, 박평종, 이경민, 강홍구(고은사진미술관 관장),  

박상우(사진이론가, 서울대학교 교수),  

송수정(국립현대미술관 연구기획출판팀 팀장/ 사회)


대상 및 신청

대상: 문화 예술 전공자 및 관련 전문가

신청방법: 미술관 홈페이지 선착순 사전접수 ▶︎ 신청 바로가기

신청기간: 12월 3일 ~ 마감 시

참가비: 무료



Vol.20181215a | MMCA 연구 세미나: 한국 사진사의 쟁점들


앙드레 케르테츠展 / André Kertész / photography
2017_0609 ▶ 2017_0903 / 월요일 휴관



앙드레 케르테츠_몬드리안의 안경과 파이프 Mondrian's Glasses and Pipe_젤라틴 실버 프린트_1926

Ministère de la Culture et de la Communication-

Médiathè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Grand Palais / Donation André Kertész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주관 / 성곡미술관

협력 / 프랑스문화부_주드폼 국립미술관_디크로마 포토그라피


도슨트 / 02:00pm, 04:00pm / '문화가 있는 날'은 07:00pm 추가 진행


관람료

성인(만 19~64세) 10,000원 / 청소년(만 13~18세) 8,000원

어린이(만 4~12세),국가유공자,장애인,만 65세 이상 6,000원

단체 20인 이상 20% 할인 / 만 4세 미만 어린이 무료관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문화가 있는 날(매월 마지막주 수요일)_10:00am~08:00pm*

전시종료 30분전 매표 및 입장 마감



성곡미술관

SUNGKOK ART MUSEUM

서울 종로구 경희궁길 42(신문로 2가 1-101번지)

Tel. +82.(0)2.737.7650

www.sungkokmuseum.org



성곡미술관은 여름특별전으로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작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앙드레 케르테츠(André Kertész, 1894-1985)의 사진전을 개최한다. 케르테츠는 70여 년의 오랜 활동 기간 동안 부다페스트, 파리, 뉴욕을 옮겨다니며 작품 세계를 펼쳤다. 그는 사조나 유행에 얽매이지 않고 사진을 통해 일기를 쓰듯이 자신의 솔직한 감성을 자유롭게 담아냈다. ● 독학으로 사진을 익힌 케르테츠는 "내가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표현한다"는 자신의 작업원칙에 충실했으며, 나아가 사진매체의 잠재적 표현 가능성들에 대해 연구했다. 그는 새로운 과학 기술을 기반으로 한 신속, 정확한 카메라를 통해 일상의 풍경을 치밀한 화면 구성과 흑백의 농담으로 더 깊고, 세밀하게 담아내었다. 케르테츠는 어떤 사조나 그룹운동에도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다다, 초현실주의, 구성주의 같은 모더니즘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때로는 그들을 앞서나가는 혁신적인 작업을 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이 "우리가 해온 것들은 모두 그가 처음으로 했던 것"이라는 말로 칭송했던 케르테츠는 브라사이Brassaï, 로버트 카파Robert Capa 등 사진의 거장들을 리드하며, 향년 91세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작업을 이어갔다. ● 이번 전시는 그가 일생에 걸쳐 작업한 189점의 작품들을 헝가리(1912-1925), 파리(1925-1936), 뉴욕 시기(1936-1985)로 나누어 순차적으로 선보인다. 케르테츠는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84년 필생의 작품들을 보존하겠다는 열망으로 10만 점의 원판 필름과 1만5천 점의 컬러 슬라이드 소장본을 프랑스 문화부에 기증했다. 본 전시는 그 원판으로 프린트한 모던 프린트로 구성되었다. ● "나는 빛으로 글을 쓴다." / "나는 기록하지 않는다. 나는 해석할 따름이다." / "좋은 사진은 우리 눈에만 뭔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 깊은 곳을 건드린다. 두 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의 시각은 항상 이미지와 영혼 사이를 오간다." / "나는 오직 파리로 가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파리에 갔다. 그 이유는 모르겠다. 나는 한동안 생활할 수 있는 약간의 돈이 있었고, 그리고 내겐 창조적 힘과 꿈이 있었다." (앙드레 케르테츠)


시기별 작품세계 - Ⅰ. 헝가리 시기(1912-1925) ● 1894년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앙드레 케르테츠는 1912년 처음으로 카메라를 구입한 후 마치 일기를 쓰듯 전원의 목가적 생활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촬영했다. 특히 남동생 예뇌Jenö를 비롯한 가족들, 친구들은 작가의 모델로서 훌륭한 피사체가 되어 주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오스트리아-헝가리군으로 징집된 그는 전장에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았는데, 드마라틱한 전투 장면보다는 군인들의 소소한 삶의 모습에 더욱 관심을 보였다. ● 이 시기부터 케르테츠 사진에는 휴머니즘적 감수성과 아방가르드적 실험성의 전조가 동시에 드러난다. 사진작가로서 첫 발을 내디딘 그는 자유로운 사고와 감성에서부터 발원하는 영감을 기반으로, 자신이 애정을 두고 있는 사람들과 사물들, 풍경들을 시적이고, 서정적으로 표현하고자 다양한 방식을 모색했다.


앙드레 케르테츠_수영하는 사람 Swimmer Under Water_젤라틴 실버 프린트_1917

ⓒ Ministère de la Culture et de la Communication-

Médiathè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Grand Palais / Donation André Kertész



Ⅱ. 파리 시기(1925-1936) ● 1925년, 현대미술의 본거지인 파리의 몽파르나스 구역에 자리를 잡은 케르테츠는 다다, 초현실주의, 구성주의 등 모더니즘 예술운동의 선구자들과 활발하게 교류한다. 특히, 만 레이Man Ray, 몬드리안Mondrian, 브랑쿠시Brancusi, 샤갈Chagall, 그리고 콜레트Colette와 짜라Tzara와 같은 예술가들과 친밀하게 지내며, 파리에서 예술가로서 자리를 잡아갔다. ● 케르테츠는 파리의 수많은 신문과 잡지에 자신의 사진 작품을 출판하였고, 주요 전시에 작품을 출품하는 등 다방면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필름과 포토Film und Foto』(1929) 국제전에 만 레이와 함께 파리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작가로 참여한다. 1933년 여성의 누드를 뒤틀리게 표현한 「왜곡」 시리즈를 내놓아 보다 전위적인 시각적 실험을 전개했다. 이러한 왕성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케르테츠는 자신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특정 예술운동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대신 모더니즘의 실험적 조형 언어인 '거울 유희', '반사', '그림자와 복제', '전면 구성', 혹은 '야경과 명암의 대비' 등을 자신의 표현기법으로 소화하여 작업에 반영함으로써, 자유로운 정신과 새로운 비전을 추구하는 사진적 아방가르드의 주역이 된다.



앙드레 케르테츠_포크 The Fork_젤라틴 실버 프린트_1928

ⓒ Ministère de la Culture et de la Communication-

Médiathè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Grand Palais / Donation André Kertész


앙드레 케르테츠_깨진 원판 Broken Plate_젤라틴 실버 프린트_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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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t. RMN-Grand Palais / Donation André Kertész



「왜곡 Distortions」(1933) 시리즈 ● 1930년 『뷔VU』 잡지가 카를로 림Carlo Rim 신임 편집장의 초상화를 앙드레 케르테츠에게 주문하자, 그는 편집장을 놀이동산의 '뒤틀린 거울' 앞에서 포즈를 취하게 한 후 촬영하여 괴물처럼 변형된 놀라운 이미지를 제작한다. 이어서 케르테츠는 1933년 도색 잡지 『미소Le Sourire』의 주문을 받아 한층 더 왜곡된 여성 누드 사진을 제작함으로써 자신의 예술적 실험을 한발 더 전진시킨다. 이렇게 탄생한 「왜곡」 시리즈를 케르테츠는 '파리 시기'에 본격적으로 작업하였다. 하지만 이 실험적 작업은 이미 '헝가리 시기'부터 일종의 '광학적 변형' 또는 '그림자의 투영'에 관심을 두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기하학적 구도가 돋보이며 빛을 효과적으로 다룬 「수영하는 사람」(1917)과 「포크」(1928)는 「왜곡」시리즈의 전조를 알리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기이함과 기괴함을 통해 역설적으로 여성신체의 신비로움을 깊게 탐닉한 「왜곡」 시리즈는 이미지에 대한 케르테츠의 반 사실적, 반 묘사적 개념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축 쳐진 목과 늘어난 발, 기괴하게 뒤틀린 이미지들은 곡선으로 이뤄진 루벤스Rubens의 풍만한 여성의 몸이나 앵그르Ingres의 지나치게 긴 척추를 가진 여인의 메아리로 보이기도 하고, 또는 벨머Bellmer의 절단되고 불구가 된 인형의 이미지를 상기시킨다. 한편으로 이러한 시도는 초현실주의가 추적한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실험과도 맞닿아 있는데, 당시 케르테츠를 비롯해 만 레이, 브라사이, 카르티에 브레송과 같은 작가들 역시 인간의 무의식의 세계를 이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현실을 변형, 왜곡시키는 실험적 이미지들을 다수 제작했다. 이러한 「왜곡」 시리즈는 당시에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한참 뒤에 재조명되었는데, 뉴욕 시기의 후반부인 1976년에 이르러서야 12컷의 왜곡 이미지로 구성된 책이 출판되었다


앙드레 케르테츠_샹젤리제 Champs-Elysée_젤라틴 실버 프린트_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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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뉴욕 시기(1936-1985) ● 1936년 케르테츠는 사진 대행사 키스톤Keystone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고 아내 엘리자벳과 함께 뉴욕으로 떠났다. 하지만 계약은 1년 남짓 지속된 후 파기되었다. 『보그Vogue』, 『하퍼스 바자Harper's Bazzar』 등 다수의 잡지사들이 케르테츠의 작업에 관심을 보였지만, 그의 사진은 대중적 이미지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37년 뉴욕의 PM갤러리와 1946년 시카고미술관에서의 전시회에도 불구하고 뉴욕에서의 그의 생활은 심적으로 물질적으로 어려움에 봉착했다. 적은 수익, 연이은 실패, 「왜곡」 시리즈에 대한 몰이해와 외국인으로서의 장벽 등이 결국 그에게 우울증을 안겨주었다. 1944년 미국 시민권을 얻은 케르테츠는 1947년 『하우스 앤 가든House & Garden』지와의 작업을 위해 콘데 나스트Condé Nast 그룹사와 독점 계약을 체결했지만, 주로 인테리어 사진을 제공해주던 그는 안정된 수입원을 확보할 수는 있었으나 상업적 작업을 지속하기가 힘들었고 결국 1961년 은퇴를 한다. ● 아울러 워싱턴 스퀘어가 내려다보이는 5번가 12층 아파트에 정착한 1952년 이후 다시 작업의 열정을 되찾기 시작하는데, 아파트의 테라스에 머물며 망원렌즈의 줌을 이용하여 주변의 생활을 포착하는 작업에 매진하였다. 그러나 그는 '스트리트 포토그래퍼'처럼 거리와 장소를 옮겨 다니며 시대적, 사회적 장면에 몰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광장에 머무는 사람들의 특이한 행태와 풍경을 오랜 시간 기다림 끝에 마치 '발견된 오브제'처럼 찾아내었다. 케르테츠에게 뉴욕은 자신의 다양한 생각들의 공명상자와도 같아서, 그 생각들을 사진이라는 메아리로 돌려주는 것뿐이었다. 직관적이고 암시적인 그의 스타일은 뉴욕의 황폐한 벽돌 담, 그림자나 철근, 외부 계단의 얽힘 속에 자신의 멜랑콜리를 주입하기에 충분했다. ● 케르테츠의 예술성은 삶의 후반에 들어서며 높이 평가받기 시작했다. 1959년 『인피니티Infinity』지가 게재한 케르테츠에 관한 기사는 그의 명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고, 마침내 1964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하게 된다. 이 전시를 계기로 세계 주요 도시에서 그의 작품을 소개하는 순회전이 이어졌다. 또한 이즈음 그는 뉴욕으로 건너오기 전 파리에 남겨 두었던 원판 필름 상자를 찾아왔다. 헝가리와 파리 시기의 자신의 작품들을 다시 접하게 된 케르테츠는 생기를 회복할 수 있었다. 이어서 발행한 두 권의 책 『나는 파리를 사랑한다J'aime Paris』(1974)와 『뉴욕에 대하여Of New York』(1976)는 케르테츠가 파리와 뉴욕의 서로 다른 문화 환경 속에서 겪은 갈등을 보여준다. 1977년에는 파리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에서 케르테츠의 개인전이 열렸는데, 안타깝게도 부인 엘리자벳이 전시 개막 직전에 사망한다. 이후 케르테츠는 세상을 떠난 엘리자벳에 대한 사랑을 담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다수 제작한다. 그에 따르면 폴라로이드는 "작품의 내재적 요소를 보다 더 수월하게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었다. 케츠테츠는 1985년 9월 28일 뉴욕 자신의 집에서 세상을 떠났다.



앙드레 케르테츠_길 잃은 구름 Lost Cloud_젤라틴 실버 프린트_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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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édiathè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

Dist. RMN-Grand Palais / Donation André Kertész


앙드레 케르테츠_우울한 튤립 Melancholic Tulip_젤라틴 실버 프린트_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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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t. RMN-Grand Palais / Donation André Kertész



라이프Life』지 편집장은 1937년 케르테츠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 그의 작품을 게재하기를 거절했는데, 왜냐하면 그의 이미지들은 "너무나 많은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케르테츠의 사진들은 우리를 반성하게 만들고 문자 그대로의 뜻과는 다른, 어떤 의미를 암시했기 때문이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카메라 루시다Camera Lucida』 중)성곡미술관


전시연계 특별강연회 (장소 / 성곡미술관)

1. 앙드레 케르테츠와 모더니즘 예술운동 | 6월 24일 (토) 2-4PM   - 박상우 (중부대학교 사진영상학과 교수)

2. 앙드레 케르테츠의 헝가리와 파리 시기의 사진 | 7월 8일 (토) 2-4PM   - 진동선 (사진평론가, 현대사진연구소 소장)

3. 미국 현대사진에 대한 앙드레 케르테츠 | 7월 15일 (토) 2-4PM   - 박상우 (중부대학교 사진영상학과 교수)

4. 앙드레 케르테츠의 뉴욕시기의 사진 | 7월 29일 (토) 2-4PM   - 진동선 (사진평론가, 현대사진연구소 소장)

5. 포토저널리즘과 앙드레 케르테츠 | 8월 12일 (토) 2-4PM   - 이기명 (『사진예술』 발행인)

6. 스냅사진과 그 대가들 | 8월 19일 (토) 2-4PM   - 최연하 (사진평론가, 독립큐레이터)


* 당일 전시 입장권 소지자 강연회 무료 참석

* 이메일 info@sungkokmuseum.org 로 사전 신청가능

케르테츠 패스 30,000원 



Vol.20170610e | 앙드레 케르테츠展 / André Kertész / photography


 

박상우작가 계단풍경


[스포츠서울]

 

민족 전통의 도를 창조철학으로 하여 환경조각 분야에서 구도적 작품 활동을 펼쳐온 박상우 작가의 예술세계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외관상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를 미니멀한 형식논리로 풀어낸 듯한 것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는 모더니즘 패러다임을 수용하면서도 명상의 관념을 형상으로 옮기는 작업에 천착해왔다.

박상우 작가는 명상과 관련된 작업을 30여 년간 이어왔다. 그는 개인의 질병과 불행, 수많은 사회적 비리와 안전사고의 문제들은 우리道와 철학교육만이 해결 대안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전국토, 전도시를 조각공원화, 명상의공간화를 꿈꾼다. 국책사업으로 공공적 명상센터를 많이 건립해 나갈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사업들은 관광의료특구와도 연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상우 작가는 명상의 공간을 위한 오브제 조형으로 실내에서는 선방 같은 분위기 밖에 나가서는 공공적 명상체험이 가능한 명상의 조각정원, 명상의 아트파크를 만들어가는데 기여하기를 희망한다.

그의 작품 속에는 한국 전통사상과 동양사상이 결합된 도(道)를 주제로 한 것들이 많다. 道로서 세상을 구하려 했던 동학인들의 살신성인의 정신과 철학, 또한 깊은 통찰력과 철학을 바탕으로 기독신앙과 유불선 사상이 큰 사유 안에서 연결된 다석 유영모 선생의 다원주의적 종교관과도 맞물려 있다. 이 같은 동양적 정서가 담긴 그의 작품 가운데는 대구지하철 참사에 대한 추모와 명상이 가능한 공공조각 개념을 도입한 획기적인 작품이 팔공산에 설치되기도 했다.

1995년 일본의 나구리국제환경미술제 참가, 2005년에는 미국 씬시나티 세계조각가회의에서 공공조각을 발표하는 등 국내?외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박상우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목조형을 전공하였으며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환경조경학연구, 영남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한 바 있으며 오는 9월17일-30일 인사동 갤러리미술세계에서 공공조각전을 펼친다.

 

ussu@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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