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잊어버리고 싶어도 저질러 놓은 일에서 헤어나질 못한다.

정선은 물론 동자동과 인사동마저 물리치고 싶지만

무슨 악연이 있는지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여기가면 저기 생각, 저기가면 여기생각, 숨겨둔 첩 처럼 뒤가 밟힌다.

 

해가 서울역 머리 위로 기울며, 또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다.

요즘은 전시장이나 사람 모이는 곳을 잘 가지 않으니

정선과 녹번동, 그리고 동자동만 다람쥐 채 바퀴처럼 돈다.

하는 일도 없이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이러다 멍청이 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세상 만사가 귀찮아지는 걸 보니 아마 갈 때가 된것 같다.

 

내일 새벽일찍 정선 떠나려면 녹번동으로 가야했다.

가기 전에 인사동서 소주나 한 잔할까? 했으나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약속 없는 혼 술이 싫어서다.

 

지하도에는 요구르트로 허기 메우던 노숙자의 한숨 소리가 들리고,

휴게소에는 밥집 문 열기만 기다리는 부랑자들의 지루함이 엿 보인다.

나도 밥 얻어먹기 위해 녹번동 가는 지하철을 탔다.

 

그래도 반겨주는 사람이 있으니, 복은 많은 놈이다.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사랑방’ 공제 조합장 행방불명사건은 근 한 달 가까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열흘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혼자 전전긍긍해야 했다.

무슨 일 일까? 그가 없다면 '동자동 사랑방' 운영에 지장이 없을까?


퇴원하여 정선 오일장 박람회에 다녀와서 동자동에 복귀한 것은 27일이었다.

사흘 동안 동자동을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았으나 각기 추측에 의한 이야기들이 분분했다.

한 달 후 조합장이 돌아온다는 긍정적인 분도 있었으나, 부정적인 의견도 많았다.


같은 말도 어 다르고 아 다르듯이 상황에 따라 부풀리기도 하지만,

문제는 날개 없는 소문이 빠르게 번진다는 것이다.

빨리 조합장이 돌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그가 나타나야 모든 추측을 불식시킬 수 있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7일에는 ‘동자희망나눔 회원증’을 받았다.
지자체의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발급하는 이 회원증은 아주 요긴하게 쓰인다.
일단, 동자희망나눔센터의 샤워시설과 세탁시설을 활용할 수 있고, 각종 민간단체에서 지원하는 식료품을 받을 수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도 똑 같은 쪽방촌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로서는 동자동 주민기자증으로 느껴졌다.

내가 체험하고 느끼는 문제점은 물론,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가감 없이 알리고,

주민들이 살아가는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하며, 함께 권리를 주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른 시간에 시나리오작가 최근모씨와 사진가 김시우씨가 찾아왔다.
나를 도와주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는 고마운 친구들이다.

프린트기 지원내용을 알아 보러 왔다가, 동자동 사랑방에 들려, 내가 못한 부탁을 해 주기도 했다.



'동자동사랑방'의 박정아씨, 쪽방촌 사람들을 위해 많은 도움을 주는 고마운 사람이지만,

보수성향의 일부 주민들은 진보성향의 사람들이라며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봉사사업에 진보, 보수가 웬 말인가?

 

[동자동 사랑방 조합장]

 

그 친구들이 떠난 후, 상담소로 가다 김유례씨를 만난 것이다.

내가 찍은 사진을 보았다며 자기도 찍어 달라 부탁 했다.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에 올려놓은 사진을 강 호씨가 알아, 여기 저기 보여주며 소문 낸 것이다.

SNS의 위력을 또 한 번 실감했다.

덕분에 이기영씨의 안내로 몸이 아픈 김익윤씨를 찾아가 찍기도 하고, 이대영씨 등 여러 명의 영정사진도 찍었다.

프린트기만 들어오면, 찍은 모든 사진을 뽑아 주인에게 돌려 줄 작정이다.


김유례씨는 나와 동갑내기다.


강완우씨는 정이 많은 사람이다. 내가 늦게 나가 빵을 못 받고 돌아서니, 슬그머니 닥아와 자기가 받은 빵봉지를 내손에 쥐어 주었다.





오후 두시 쯤, 공원입구에 가보니, 일찍부터 정재헌씨가 술자리를 깔아 놓았다.

그 날은 강완우, 이기영, 김장수씨 등, 술 친구들이 차례차례 나타났다.

처음 보는 사내도 있었다. 용팔씨 이야기로는 오늘 교도소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한 턱 쏘았다. 벼룩도 낮 짝이 있다는데, 맨 날 얻어 마실 수만 없잖은가?

추교부, 나흥주, 장국태씨도 뒤늦게 나타나,  술과 담배 값으로 파랑새 석장을 날렸으나 기분 좋게 마셨다.

 

“니는 무슨 죄 짓고 교도소 갔노?” 라고 물었더니, 그 친구 대답이 걸작이다.

“안 만졌는데, 여자 엉덩이를 만졌다고 잡아가데요.”  용팔씨 설명으론 성추행범으로 잡혀 한 달 넘게 살다 나왔단다.

만졌는지 안 만졌는지는 내 알바 아니지만, 요즘 초상권 문제나 성추행 문제에 너무 예민하게 대응하는 것 같다.


[ 쪽 팔릴까봐 교도소에서 출소한 사내의 사진은 찍지도 않았고, 이름도 거명하지 않았다]

 

 

 

 

 

위에 있는 김장수씨는 부산 동성고등학교 출신으로 기계체조선수였는데, 고향은 경남 진영이라다.

나도 젊은 시절 '김해농협'에 근무할때, 진영에 자주 간 적이 있어 더욱 반가웠.




혼자서 얼마나 여자가 그리웠으면, 모르는 여자의 엉덩이를 만지고 싶었을까?

옛날 같았으면 빰 한 대로 끝낼 수도 있는 일을, 감방까지 보내야 하는 세상이 너무 야박한 것 같더라.

그래서 그 친구에게 부탁했다. “내가 멋진 여자 알몸사진 한 장 뽑아 줄테니, 생각나면 그걸 보며 딸딸이나 쳐라”


어떻게, 이런 저런 설움을 알았는지, 하늘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술에 눈물같은 빗방울이 섞이니, 술 맛이 달더라.


[주민 자치회의 장면]


 

 

 

 

난, 그만 일어서야 했다.


오후 다섯 시부터 ‘동자희망나눔 센터’에서 주민자치회의가 열리기 때문이다.
술은 취했지만, 어떠한 이야기가 오가는지도 궁금하고, 모르는 분들에게 신고하고 싶어서다.

가보았더니, 말은 자치회의라지만, 여러 가지 일을 알려주는 공지의 자리나 마찬가지였다.

진료, 예방접종, 무료급식 등의 날짜를 알려주기도 하고, 필요한 물품을 신청받기도 했다.

날씨가 쌀쌀해지니, 대개 일인용 전기장판이나 이불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분이 그 유명한 용팔씨랍니다.]



밖으로 나오니, 술마시던 친구들은 자리를 옮겨가며 마시고 있었다.
비를 맞아가며, 세상 설움을 술잔에 풀고 있었다.
마음이 편치않아, 십팔번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불렀다.

 

 


“목이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 돌아서서 피눈물을 흘려야 옳으냐?”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의 보안관 양반도 가족처럼 편안한 사람이다.

 


 

 

이 양반은 음악을 너무 좋아해 항상 레디오를 들고 다니며 춤을 춘답니다.

 

 

 

 

 

 

 

 

회의장에서 바라 본 바깥 풍경이 너무 쓸쓸하다.

 

 

 

족발안주를 보니 소주가 생각나네요.

 

쪽방 사람들보다 더 안타까운 사람들이 노숙자입니다. 그들도 쪽방촌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없을까요?

노숙자들이 기초수급생활자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것은 주민등록이나 가족관계가 정리되지 않아서인데,

더 추워지기 전에 정부의 적극적인 해결책이 나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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