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파리로 떠나기 전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인사동 길은 매우 고즈넉했었다. 화랑, 화방, 붓 가게, 한지파는 가게, 화가들의 작업실, 그리고 골동품 가게들…. 서울 한가운데 자리 잡았지만, 왠지 이곳은 시간이 오래 머물다 가는 거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시절 안국동과 수송동, 경복궁 앞에 화랑들이 몇 개 있었다. 그곳에서 누가 전시 오픈이라도 하는 날이면 지금의 쌈짓길에 위치한 유일한 한옥 고깃집에서 뒤풀이를 하며 정담을 나누곤 했던 기억이 난다. 골동품과 그림에 관계되는 사람들이 조용히 들렀다 가곤 했던 서울에선 덜 붐비는 곳이었다.물론 세월이 흐르고 여러모로 발전돼서 그렇겠지만, 지금의 인사동은 명동 뺨치듯 주말엔 사람들로 붐빈다.

얼마 전 화랑에 일이 있어 가는 도중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 이벤트들을 경험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인사동 입구에 마련된 야외무대에서 시끄러운 노랫소리를 들어야 했다. 노점상에서 파는 호떡을 하나씩 입에 물고 걸어가는 아베크족들과 천원, 이천 원 하는 삑삑이를 불어대는 애들, 화장품 가게에서 호객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을 스치며 가다 보니 어느새 꽹과리를 울리며 사물놀이 하는 패들이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가방가게나 옷가게 등 구경하는 인파와 꿀타래 만드는 장면을 구경하는 사람들 사이를 다시 요리조리 피해서 걷다 보니 ‘아~ 시끌벅적한 난장이 따로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주차금지 팻말에 적어놓은 낙서가 생각이 났다. “인사동 인사동 그래서 왔더니 볼 건 하나 없고”

어느 나라든 화가들이 모이고 화랑이 생겨나면 그 지역은 사람들이 많이 찾게 되는 명소가 되어버린다. 그런데 그림이 있고 골동품이 있고 문화의 향기가 배어 있을 때 그렇다는 말이다. 인사동 하면 그림과 골동품이 있는 미술, 문화의 거리라는 인식이 짙게 깔린 곳인데, 화랑, 골동품 작업실 대신 노점상, 화장품, 가방, 옷가게, 식당, 찻집, 싸구려 기념품 가게 등이 대신해 버렸다. 국악은 국악의 거리에서 하면 되고, 화장품이나 옷 등은 그런 상권이 잘 발달하는 곳에서 사면 된다. 호떡이나 아이스크림 사 먹으러 굳이 인사동까지 안 와도 된다. 자선 노래 부르는 걸 굳이 인사동에서 부르는 게 좋을까?

누구의 탓을 하는 게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자.

만약 인사동에 미술적인 특성이 사라진다면 인사동이라는 명소로 존재 가능할까? 우선은 갤러리나 아트 관련 가게가 아닌 일반 업종에 세를 좀 비싸게 받는다 쳐도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다른 상권들과 거의 비슷한데 큰 상권들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을까?

모 여대 앞거리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텅텅 빈 가게들을 다시 회복하려고 이제야 월세도내리고 노력들 한다. 그리고 누가 어디서 그런 아이디어를 냈는지 모르지만 왜 인사동에 무대 공연장이필요한지, 왜 옛적 고관대작들 행차 행사가 인사동을 거쳐 가야하는지 내 조그만 머리론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해서? 미술의 거리엔 미술의 거리답게 연극의 거리엔 연극의 거리답게 음악의 거리엔 그런 거리답게 내버려 두면 좋겠다.

제발 똑같은 싸구려 난장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뉴욕 소호에 있었던 화랑들이 다른 일반 가게들이 자꾸 들어오니 임대료가 비싸지고 그러니 첼시로 다 옮겨갔다. 소호는 예전처럼 명성을 얻을 수 있을까? 파리 6구 생제르망데프레에는 세느가(rue de seine)가 있다. 인사동처럼 길쭉한 거리다. 인사동의 30년 전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지금도 그곳은 그대로이다. 화랑들이 양쪽으로 쭈욱 있고 가운데쯤 오래전부터 화가들이 차 한 잔씩 했던 딱 한 군데의 카페 팔레트가 있을 뿐이다.

인사동은 너무 많은 변화로 설명 불가하다. 세느가나 근처엔 아트에 관련된 가게들 외엔 들어올 수가 없게끔 시에서 미술의 거리를 보호한다. 물론 세계적 명품회사들이 근처에 가게를 내고 침투해 들어오려고 하지만 핵심 미술의 거리엔 들어올 수가 없다. 그러니 오히려 더 멋진 세계적인 명소가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미술에 관심이 많은 내외국인이 차분하게 그림과 골동품을 감상하며 감동을 마음에 안고 가는 진짜 인사동을… 진짜 명소를 다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글 / 김정수 [서울아트가이드5월호]



세시간 정도면 둘러볼 수 있는 무료전시들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들이 가득한 요즘. 그 상처 위에 덧발라주는 약 같은 따뜻한 느낌의 전시들이 인사동 여러 곳에서 열리고 있다. 모두 무료 관람이다. 3시간 정도의 시간 여유를 가지고 인사동 거리를 걸어 다니며, 갤러리 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가 감상하고 나면,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질 것이다.

▲ 선 갤러리-진달래-축복-김정수 아마포 위에 그린 진달래 2015 작품

 

▲ 김정수 진달래-축복-부분그림 분홍색의 진달래꽃. 그림이 아니라 진짜를 담아 놓은 것 같다. 그림의 일부분을 확대하여 찍었다.
ⓒ 김정수

 


5호선 종로3가역 5번 출구로 나오면 낙원상가가 나온다. 낙원상가를 가로질러 직진해서 걸어가면 선 갤러리가 나오는데, 4월 14일까지 김정수의 진달래-축복이 열리고 있다. 봄이 오면 가장 보고 싶은 그림 중 하나가 김정수의 진달래다.

우리 식구들은 주로 양재에 위치한 갤러리 작에 가서 보곤 했는데, 올핸 여러 가지 사정으로 갈 수 없어 아쉬웠다. 그런데 마침 선 샐러리에서 하고 있어 기쁜 마음으로 들어갔다. 작품들의 크기가 162cm가 되는 것이 많고 2층까지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 신혜식-건봉사 소나무 '2015 한국 펜화전' 신혜식 작가

 

 

쌈지길 근처에 경인미술관이 있다. 일주일 단위로 전시내용이 달라진다. 여러 내용을 동시에 볼 수 있어 좋다. 제2전시실에서 4월 7일까지 '2015 한국 펜화전'을 하고 있는데, 65세에 데뷔한 올해 73세의 서호 신혜식의 작품은 감탄이 나온다. 건봉사 소나무를 그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여 일이라고 한다. 사진처럼 보이지만, 펜으로 그린 그림이다. 당당하게 서서 오랜 시간을 보낸 소나무의 기상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 벚꽃 엔딩-170cm*196cm-최지현 퀼트 작품-벚꽃 엔딩
ⓒ 최지현

 

 


 

 

 

펜화와 함께 7일까지 퀼트전도 열리고 있다. 세심함이 부족하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작품들. 바느질로 표현한 벚꽃에선 입이 벌어진다. 솜씨들이 무척 부러워서 한참을 구경하고 왔다.

 

▲ 갤러리_나우_박대조 개인전 조각과 회화 사진이 결합된 인물화 작업. 박대조.
ⓒ 박대조

 

 


 

 

온누리 약국 맞은 편 쪽에 있는 갤러리 나우는 사진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는 곳이다. 박대조 개인전이 4월 14일까지 열리고 있는데, 독특한 재료들로 완성한 작가의 작품들은 굉장히 세련돼 보인다. 그림과 사진이 혼용되어 있는 작품은 많은 내용을 담고 있어, 여러 번 다시 보게 된다.

 

 

▲ 조성제-천년의 전설 우포 우포 늪에서 찍은 조성제의 작품
ⓒ 조성제

 

 


쌈지길 맞은편에는 '도채비도 반한 찻집' 위에 갤러리 인덱스가 있다. 조성제의 개인전이 4월 13일까지 열리고 있다. '천년의 전설 우포' 우포늪의 갈대와 새와 안개가 가득한 사진들.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다.

사진을 보면 새의 날개 짓이 들리는 것 같다. 동양화 같은 사진들엔 아주 미세한 깃털의 움직임까지 포착되어있다. 우리가 늪을 살리고 자연환경을 왜 보호해야 하는지 사진을 보면 저절로 느껴진다. 의자에 앉아 마음에 드는 사진을 오래 보고 왔다.


 

▲ 하늘나라 우체통 아라아트 센터 4층에서 4월 7일까지 전시 중인 하늘나라 우체통과 편지들과 작품들
ⓒ 정민숙

 

 

▲ 허다윤에게 아직도 세월호에 승선 중인 다윤이에게 보내는 언니의 편지
ⓒ 정민숙

 


인사동에서 가장 넓은 공간인 아라아트 센터. 4층에서 4월 7일까지 '빛과 생명으로'라는 제목으로 팽목항의 편지들을 전시하고 있다. 우리 부부는 노란 리본을 한 시도 떼지 않고 달고 다닌다. 안내하시는 분이 유가족이냐고 물어서, 단원고 아이들과 동갑인 아이를 키우는 서울시민이라고 했다.

전시 규모는 크지 않지만, 하늘나라 우체통에 넣은 사람들의 편지는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인사동에 가면 잠시 들러 아직 배에서 내리지 못한 9명의 사람들과 295명의 희생자들의 넋을 추모했으면 좋겠다.

모든 갤러리에서는 전시 내용을 엽서 크기로 안내하고 있다. 나오는 길에 잊지 말고 챙겨 집에서 그 작품들을 생각하며 다시 보는 것도 좋다. 도록을 사거나 다른 작품들을 구입하는 것도 좋지만, 역시 작품은 원작을 눈으로 봐야만 그 감동이 온전하게 전해 온다.

3시간의 외출이었지만, 내 마음의 상처에 약을 바른 후 밴드를 붙인 느낌이다. 사월. 이 작품들을 권한다. 감상하면서 한숨 돌리면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작은 힘이라도 얻을 테니까.

 

[오마이뉴스 / 정민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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