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종근당 예술지상

이재훈_이해민선_정직성

2023_0921 2023_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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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종근당예술지상 콜로키움 : 회화를 말하다

2023_0923_토요일_02:00pm

장소 /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 1관 오픈갤러리

발제 / 이은주(미술평론)_이성휘(하이트문화재단 큐레이터)_조은정(미술평론)

 

주최 / ()세종문화회관_()한국메세나협회

주관 / 아트스페이스 휴

후원 / 종근당

 

관람시간 / 11:00am~07:00pm

21_01:00pm~07:00pm / 입장마감_06:30pm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SEJONG CENTER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175

(세종로 81-3번지) 1

Tel. +82.(0)2.399.1000

www.sejongpac.or.kr

@sejongmuseum

 

그 주변들 현대 회화는 너무나 감각적이지만 동시에 너무나 개념적인 예술이 되었다. 높은 수준의 회화는 깊은 사유와 섬세하고 예리한 감각과 모호하지만 풍부한 뉘앙스를 담고 있다. 시대와 지역을 넘어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무한히 많은 작가들의 세계가 회화 이미지로 수렴된다. 사람들은 회화 이미지에 개인과 세계, 몸과 마음, 생활과 비전을 비춰본다. 이번 기획전 초대 작가들의 회화적 성취도 이러한 현대 회화의 흐름 속에 있다. 이재훈, 이해민선, 정직성 세 작가의 세계는 완전히 다른 감각과 인식을 투영하고 있다. 그들에게서 회화적인 것과 회화적인 것에 확장된 또는 파생된 것들의 다양한 해석들로 가득차 있음을 보게된다. 회화 본령의 영역과 그 밖 또는 그 주변의 세계와 사물, 감정과 의식이 삼투하며 하나의 심미적 지평선에 녹아든다. 우리는 비밀스런 회화의 길을 따라 새로운 시각적 경험의 세계로 들어선다. 우리 자신이 회화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에 존재론적으로 우리는 그 밖에서 관계를 맺는다. 잠시 그 세계 안에 편입되어 동조하게 된다. 회화적인 것과 그 주변의 것들은 개인과 세계의 운명을 회화적인 것을 통해 표상하도록 한다. 셀 수 없이 많은 회화 작품들 가운데 가장 독창적이며 매력적인 작품의 등수를 매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작가들과 예술성의 객관적 비교 평가도 그 한계가 분명하다. 예술작품이란 시대와 장소, 관람자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지기에, 모든 예술적 활동과 현상은 같은 높이의 미적 지평 위에 놓여 있다. 가깝고 공감이 가는 예술과 멀고 낯선 예술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회화 작가들 가운데 자기 자신에 충실하며 독창적인 회화의 깊이를 보여주는 작가들이 우리의 관심과 공감의 중심에 있게 된다.

 

이재훈 화면은 조형 에너지와 힘이 치솟는다. 다양한 요소들이 뒤엉키며 거대한 카오스적 형상을 그려낸다. 어딘지 알 수 없는 시공간을 배경으로 단단하게 자리잡고 풍화되어가던 기념물들의 세계가 해체되고 있다. 구체적이었던 상징과 도상들은 모두 사라지고 짙은 음영과 채색과 붓질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사물과 에너지가 서로 감응하고 포용한다. 조형력을 통해 작가는 사물과 생명에너지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세계의 어둠과 불안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 필력과 화면 구성은 역동적이며 활력이 넘친다.

 

이재훈_펑펑펑_벽화기법(장지,석회,목탄, 목탄가루,아교,수간채색)_200X140cm_2023

작가에게는 현상을 포획하려는 동시에 표현이 생성되어야 한다. 조형적으로 대상은 생동하는 원형적 에너지의 현상으로 수렴한다. 작가는 그것을 바라보고 그리려고 모색한다. 작가에게 현상이란 몸과 마음, 의식과 대상, 운동과 변화가 모두 뒤섞인 카오스적 현상으로 뭉뚱그러져 있다. 모든 것이 하나의 전체가 되는 유기체적 세계관을 배경으로 물질과 정신이 유기적으로 공존하는 현상이다. 작가의 작업은 이러한 작가의 세계관이 바탕이 된 현상의 표현이다. 불일치의 세계에서 일치의 세계로 나아간다.

 

이재훈_와르르르르르_벽화기법(장지,석회,먹,목탄, 목탄가루;아교,수간채색)_200X540cm_2023

많은 화가들이 시대를 초월해 '()''기운생동氣運生動'의 미학에 매료되어 왔다. 북송시대 걸출한 철학자 장재(張載 1020~1077)'흩어져 형상화할 수 있는 것으로 기가 흩어지고 모이는 것은 변화의 일시적인 모습'이라고 기()를 설명했다. 이러한 세계 인식을 바탕으로 회화 이미지는 시간성과 연결되고, 형상은 끊임없이 변하는 것으로 고정된 실체가 없는 변화하는 현상으로 이해된다. 마치 기처럼 회화 이미지는 흩어지고 모이고 형태를 이루었다가도 안개처럼 사라져버린다. 시간 속에서 모든 사물은 변화하며 생성소멸한다. 우리의 감각과 감정과 의식과 꿈, 정념과 이념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운동하며 생성소멸한다.

 

이재훈_피고,지고,날리고_벽화기법(장지,석회,먹,목탄, 목탄가루,아교,수간채색)_183X230cm_2023

우리는 회화의 길 위에서 자유로운 조형 세계를 지향한다. 자유롭다는 것은 일상을 벗어나기도 하고 세속과 사물에 깊이 관여하기도 하는 마음의 경계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살고 죽는 것, 생사유무를 왕복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어느 것에도 집착하거나 중독되지 않는다. 자유롭다는 것은 마음이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자유롭게 왕래하는 것이다. 근래 확산되는 멀티버스라는 관념은 하나의 세계가 아니라 복수의 세계가 있다는 것으로 이는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과 복수성을 의미한다. 변화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변화란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하나의 현상에서 다른 현상으로 이동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의 생로병사는 변화가 아니라 성장과 소멸이다. 변화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작가는 오랫동안 사회가 개인에게 강제하며 훈육하는 이데올로기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표현해왔다. 근래에는 동양 회화의 방법론을 적용한 회화 연작을 통해 동양화의 세계관과 조형원리를 현재화하고 작가 개인의 조형언어로 번안하는 새로운 회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번 기획전에서 우리는 작가가 동양화의 추상성과 형상성, 표현의 방법을 본인만의 방식으로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해민선 어느날 작가의 눈에 병원에서 환자들을 치료하는데 사용되고 버려진 석고로 만든 깁스들이 들어왔다. 환자의 손과 발과 팔과 다리를 깁스했던 석고들을 수집하면서 사물과 인간의 신체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가는 몸이 빠져나간 깁스의 빈 공간을 석고로 다시 떠보기도 한다. 처음 깁스라는 사물에 포함되었던 환자의 흔적이 사라지고 작업을 하는 작가의 새로운 행위와 흔적이 그것을 대체한다. 심미적 의미가 부여된 오브제로서 치료용 깁스는 기이한 사물이 되어버렸다. 그것을 다시 드로잉이나 회화로 재현할 이유가 없다. 석고를 수집하고 가져오는 과정이 이미 작업에 포함되고 보니, 작가는 굳이 드로잉이나 회화를 해야할 이유가 없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약한 냄새가 난다. 환자의 몸에서 나온 각종 분비물들과 병원의 약품들이 뒤섞인 이상한 냄새들.

 

이해민선 _ 덜 굳은 사물 _ 종이에 아크릴채색 _152.5X149cm_2023

한편 작가는 인화용지에 새 그림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다. 깁스된 상태처럼 그림을 그리면 어떨까 생각도 해보았다. 버릴 수 없는, 다루기 어려운 사물들. 얼굴 없는 새를 그리다가 사물로서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했다. 매끄러운 사진 인화용 종이의 표면과 얼어붙은 강의 표면이 교차한다. 사물의 속성이 표면 이미지의 유사성에 녹아들어간다. 인화용지에 이미지를 새기고 녹이는 화학적 과정은 언 강이 녹는 과정으로 치환된다. 작가는 인화지 표면의 0에 수렴하는 마찰계수의 마법적 기능과 표면질감, 그 감각이 너무도 유혹적이라고 생각한다. 언 강의 표면과 그 밑에 흐르는 강의 관계처럼. 존재의 표면을 흐르는 얼어버린 사물의 쓰임과 그 생명력처럼 말이다.

 

이해민선 _ 고요한 삶-내장재 _ 종이에 아크릴채색 _152.5X188cm_2023

작가의 눈에 들어온 사물들은 사연이 많을 것 같은 것들이다. 할 말이 많은 사물들이다. 수집 후 작업을 하고 전시를 하는 과정에 작가는 자신이 수집한 사물과 사물의 이미지를 응시하고 사유하는 과정에 그것들이 주변화된 것들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다. 살아 있는 것과 살아 있지 않는 것 사이의 관계에 주목하며 새로운 의미를 생각하는 모습을 반복한다. 불과 얼마전까지도 북미대륙에서 오리 사냥에 쓰였던 오리 형태의 미끼인 디코이, 쓸모 없는 목재, 폐기된 공사장 천과 스티로폼 등 생활과 기능, 죽음과 생명의 경계에 있는 것들이 회화 이미지가 된다. 작가는 경계들 사이에서 사람도 아니고 사물이 아닌, 유기물과 무기물 사이, 애매한 경계에 있는 풍경들, 주변화된 사물들을 수집하고 물질성과 비물질성의 관계들을 사유한다. 작가는 회화에 표현과 재현의 도구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다. 우연한 사고사가 넘치는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자기 자신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지 주변부의 다양한 경계의 사물과 이미지로 사유한다. 작가는 자신을 동양 여성, 주변부 존재, 약자의 처지에 있는 힘의 관계 속에 위치시킨다. 시각현상과 인식의 문제와 함께 존재성의 문제를 결합한다.

 

이해민선 _ 살갗의 무게; 언 강과 강 _ 종이에 아크릴채색 _130X151cm_2023

이번 전시도 작가 특유의 예민하면서도 무료한 이미지들, 깊이 침잠하는 감정과 정서가 느껴지는 새, 거울, 언 강물의 이미지들로 채워졌다. 얼굴 없는 새 그림은 상징적이다. 새는 마치 신의 대리자 또는 신 그 자신처럼 우리에게 얼굴을 감춘다. 신과 세계와 새는 상호 은유적이다. 얼굴이 없거나 눈동자가 없어서 도저히 표정을 알 수 없는 모호한 인상의 얼굴처럼, 그렇게 변형되고 탈각되고 사라지는 것들이 세계의 망각된 얼굴이다. 인류는 전 존재를 언어 속에 우격다짐으로 구겨 넣은 채 문화를 구성해왔다. 우리는 여전히 세계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살아가고 있다.

 

정직성 정직성 작가는 오랫동안 이데올로기와 세속적 욕망이 충돌하고 뒤섞이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작업의 주제로 다루어 왔다. 평균적인 주거 현실과 노동의 현실을 기하학적 추상과 융합한 회화가 작가의 시그니처였다. 동시에 여성 작가로서의 자신의 삶과 정체성에 대해 깊이 사유하며 우리 사회의 현실을 부대끼며 여성으로서 독립적으로 살아내는 태도를 견지해 왔다. 미술사적으로 사회현실로부터 벗어나 미술 본래의 본질 또는 조형원리로 환원하는 기하학적 추상의 형식과 작가 개인과 사회의 여성성의 문제를 융합시키는 시도는 역설적이다. 이러한 이질적인 맥락들이 교차하면서 새로운 혼종의 형태와 낯선 감각을 제시하는 방식이 작가의 회화에 개성을 부여하고 있다. 일반적인 미술사적 맥락을 벗어나 작가 고유의 장소특정적 의미와 맥락을 부여하려는 치열한 태도는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업들과 연결된다. 작가는 그 소재와 형식에 있어서 현대 회화의 개별적 역동성과 전통적 도상의 집단적 상징성을 충돌시키며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려고 한다. 전통적 도상의 상징이 지닌 전승된 의미를 해체하고 현재 작가의 삶의 경험과 새롭게 형성된 관점을 융합하며 새로운 방식의 회화 이미지를 제시하려고 한다.

 

정직성 _ 용 Dragon 202301_ 종이에 아크릴채색 , 유채 _130.3X193.9cm_2023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전통 회화와 공예에서 다뤄져왔던 구름과 용과 꽃 등 상징성이 깊은 도상을 가져와 개인의 삶과 현실을 연결하는 회화를 시도하고 있다. 화면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확산되고 응축되는 추상표현주의적 방식을 보다 적극적으로 적용한 이미지를 보여주지만, 동양 전통의 다양한 화론을 살펴보고 그 사유 방식을 회화에 적용하면서 서구 미술사의 기하추상적 미술의 정신적 맥락에서 이탈한다.

 

정직성 _ 상서로운 꿈 202331_ 종이에 아크릴채색 , 유채 _259.1X193.9cm_2023

이러한 작업이 처음 시도된 것은 아니다. 이미 14년 이상 전통 옻칠과 자개장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전통가구에는 오래된 그러나 보편적인 한국 문화의 정서와 상징이 깊이 각인되어 있다. 사군자에서 가져온 대나무 이미지, 활짝 핀 목련, 매화를 장소특정적 상황에서 집중할 때의 달라지는 필법과 이미지, 동양의 신령스런 존재인 용의 이미지를 가져왔다. 동양에서 용은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이 고약한 현실의 문제를 간단히 해결하는 강력한 초월적 힘을 지닌 정령으로 특히 가뭄과 같은 농업사회의 천재지변을 해결하는 존재이다. 불이 난 후 새롭게 싹이 핀 숲의 이미지도 인상적이다. 작가는 이런 이미지들을 통해 조형적 상징에 멈추지 않고 작가의 과거 현재 미래를 가로지르는 개인사를 회고하고 미술사적 맥락을 교차시키고 그 과정에 작가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회화를 모색한다. 작가는 삶의 경험에 관련해 표현하는데 한국 전통 상징의 맥락을 가져오고 현대미술사조의 내용과 연결해서 장소특정적 관심 속에서 표현하려 하고 있다. 나아가 명리학적 관심과 연결해보려는 생각도 피력한다.

 

정직성 _ 불탄 후 다시 202335_ 종이에 아크릴채색 , 유채 _193.9X259.1cm_2023

삶이 고통이라면, 회화는 그것을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회화 이미지는 작가와 관객의 상호관계 속에서 대화를 한다. 대화와 공감, 소통의 장으로서 새로운 회화의 의미가 생성한다. 의미 있는 형식으로서 회화가 공감을 받고 평가받는 것은 창작자의 시각과 표현 방식의 다양성과 자유를 회화라는 장르가 제공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오랫동안 자신의 일상 현실에 철저하게 밀착해 사유하고 표현하는 과정을 견지하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관점과 창작 태도는 자연생태의 문제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생활을 꾸려가고 생명을 키우는 일들의 유의미한 균형을 회화 속에 용해시킨다. 그렇게 화면의 다양한 도상들이 어느 순간 하나의 회화 이미지로 직관적으로 종합된다. 작가는 회화를 통해 공감을 욕망한다.

 

회화의 숨은 길 현대미술의 스펙터클한 풍경을 보면 회화를 둘러싼 미학적 사유가 분명하게 제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형성된 추상미술과 그 이후 다다와 초현실주의, 개념미술 등으로 이어지는 혁명적 변화와 대중의 수용은 현재 우리의 시각예술의 토대가 되었다. 현대 회화작가들은 이러한 미학적 유산을 잘 선용하고 있다. 20세기 초 유럽과 일본을 통해 들어온 서구 미술과 우리 전통의 미술이 만나 충돌하고 융합하면서 새로운 사유와 미감이 표현된 미술이 만들어져 왔다. 그 시간은 우리 미술의 다양한 예술적 도전과 성찰을 거듭해온 시간이었다. 우리 미술문화에서 회화는 그 양과 질에 있어서 가장 한국적인 미감과 인생관과 세계관을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그리고 예술이 세계와 현실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에 현실적 이미지와 이념적 이미지 모두는 크게 보면 몽상적 사유에 기반한다. 독창적이면서도 매력적인 몽상적 감각과 비전을 우리는 이번 작가들의 회화 이미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창작은 생활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도 승패가 있는 경쟁도 아니다. 예술과 삶은 서로 균형을 잡고 상호 성장을 한다. 회화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세상의 관습과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아주 잠시 맛볼 수 있다. 회화는 지극하고 현묘하다. 우리는 회화 이미지 뒤에 숨겨진 수많은 길을 따라서 작가들의 치열한 감각과 조형의 힘을 경험한다. 김노암

 

 

회화 감각 - 고전적이고도 현대적인

허미자展 / HUHMIJA / 許美子 / painting 

2023_0217 ▶ 2023_0226 / 월요일 휴관

허미자_Untitled_혼합재료_79×109cm_2022

 

초대일시 / 2023_0217_금요일_05:00pm

후원 / 갤러리 내일_내일신문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내일

GALLERY NAEIL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3길 3(내일신문) B2

Tel. +82.(0)2.2287.2399

www.gallerynaeil.com@gallery_naeil

 

나는 풀이고 꽃이다.  1. 찬 바람이 불면 만물이 움츠러든다. 쏜살같이 날아가는 시간 속에서 풀과 꽃은 바닥에 몸을 바짝 누인다. 뜨거운 태양과 풍요로운 생의 환희 속에 빚어진 사건들, 감정들이 깜박거리며 망각의 세계로 돌아가면 남겨진 것들은 마치 겨울잠을 자듯 깊이 고개를 숙인다. 곤충이 찾지 않는 계절의 풍경이다. 살아 움직이는 거들이 모두 숨죽이고 어디론가 숨어들어 간 차갑고 무거운 계절을 견디는 생명들이다. ● 허미자 작가의 작업은 풀과 꽃의 이미지가 주를 이룬다. 풀과 꽃은 이름이 없다. 아무 나거나 무명씨다. 그냥 풀이고 그냥 꽃이다. 치열한 자연생태의 생존자들이다. 승리자들이다. 다만 인간의 관점에서 이름이 부여되지 않았을 뿐이다. 이 미미한 존재들은 자연의 숨결이기도 하다. 대지의 호흡이다. 작가의 이름 모를 풀과 꽃은 작가 자신의 초상이며 작가의 삶을 거울처럼 비춘다. 작가는 내가 누구인지 찬찬히 살펴본다. 생의 기쁨보다 생의 슬픔과 무거움을 느낀다. 납작 몸을 낮추고 있는 잡풀과 들꽃이 존재의 깊은 중력을 은유한다. 대지와 하나가 될 정도로 무거운 삶과 운명의 중력을 온몸으로 견디어낸다.

 

허미자_Untitled_혼합재료_79×109cm_2022
허미자_Untitled_혼합재료_79×109cm_2022
허미자_Untitled_혼합재료_24.2×40.9cm×3_2021

생각해보면 인류가 직립보행과 언어를 통해 사회를 형성한 이래 이름(짓기)란 존재에 대응하는 것으로 존재의 가장 분명한 증거이기도 하다.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있다는 제자의 글을 보고 세상에 이름 없는 꽃은 없다며 제자의 게으름을 혼냈던 늙은 선생의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 쇠드 기풀, 진드기 풀, 말똥가리 풀, 여우각시 풀, 쑥부쟁이, 구절초, 노루오줌, 엉겅퀴, 달개비, 개망초, 냉이 족두리 꽃, 도둑놈 각시 풀, 보리꽃, 감자꽃, 개망초꽃. 인류가 염원한 꿈과 소망을 담은 이름들이 있다. 그러나 자연을 잃어버린 도시생활자들은 이름과 이름이 지시하는 실제 대상을 연결하지도 구별하지도 못한다. 녹색의 푸른 것은 풀이고 알록달록한 것은 꽃이다. 풀과 꽃을 분간하지 못하는 시절이다. ● 그림 속 이름 모를 풀과 꽃들은 겨울밤 달빛을 품고 있는 것만 같다. 낮은 소리와 울림으로 자신이 살아내고 있다는 거대한 진실을 소박하게 뿜어내고 있는 것만 같다. 잡풀과 들꽃이 불러일으키는 상념들이 그림 밖에 마치 소박한 풀 내음처럼 퍼진다. 풀과 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와 뿌리가 얽히고 설켜 하나의 운명으로 거듭난다. 망각과 윤회의 강을 함께 건넌다. 이 이미지는 '존재의 식물성'을 사유한다. 식물적 감각과 감성이 화면 깊이 안개처럼 깔린다. 그렇게 길을 가다 눈을 돌리면 어디서나 눈에 밟히는 풀과 꽃들이 있다. 거기에 존재한다.

 

허미자_Untitled_혼합재료_30×30cm_2022

 

허미자_Untitled_혼합재료_30×30cm_2022
허미자_Untitled_혼합재료_40×40cm_2022

2. 허미자 작가의 이번 이미지들은 점점 더 깊은 사색의 바다를 모험하는 듯 보인다. 오랫동안 그림 그리기를 통해 아주 조금씩 미세하게 작가 자신과 그림을 보는 사람의 마음의 풍경에 가까이 다가간다. 작가는 전통적인 재현으로서 회화의 미덕을 따르면서도 보이지 않는 마음의 풍경을 담으려고 한다. 그렇게 화려하지도 다채롭지도 않은 소탈한 이미지들이다. 찬찬히 그리고 섬세하게 깊이 숨을 들이마시지 않으면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미비하지만 분명 생명의 활달함을 품었을 이름 모를 풀과 꽃을 표현하고 있다. ● 그러나 그 표현이란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안으로 말려들어 가며 자신의 온몸으로 품는 에너지의 표출이다. 작가의 이미지는 안으로 품는 표현이다. 자연은 깊은 침묵의 바다와 같다. 보이지 않는 무거운 '낮음'과 '이름 없음'이 허미자 작가의 그림 속에서 거대한 고래가 울음을 토하듯 거대한 저주파가 되어 떨린다. 물리적 시간의 경계 끝단까지 나아가 일시적인 순간과 그 순간의 시간 들이 통합된 원형적 시간(성)에 가 닿는다.

 

허미자_Untitled_혼합재료_45.5×53cm×2_2021
허미자_Untitled_혼합재료_50×50cm_2022
허미자_Untitled_혼합재료_50×50cm_2022

억 조의 생명을 품은 풀이고 예쁜 꽃이지만 이름이 없다. 구약의 만물이 음과 양의 짝을 이루고 신과 최초의 인간의 조상이 이름을 부여했다고 했는데, 그 이름은 어디로 갔을까? 여성의 시각과 말이 거세되어온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은 이름이 없거나 비루했다. 자매들, 우리의 누이들은 이름 없이 일생을 보냈다. 아름답지만 동시에 고통스러운 시간 들을 지나간다. 상처 받은 존재의 자의식이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망각된 자연의 자녀들은 인류 문명의 깊은 좌절과 실패를 상징한다. 하얀 눈에도 수십 개의 이름이 다르고 같은 풀과 꽃이 계절마다 이름이 달랐던 시대의 순수하고 소박했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회화가 자연과 만나는 것은 오랜 문화이다. 시원을 알 수 없는 시간을 거쳐 온 자연, 생명, 변화가 인류의 문화로 스며들어와 의미 있는 것이 되었다. 거듭 부활하는 활달한 생명 에너지는 회화 이미지를 생동하게 만든다. 나무와 풀과 꽃 등 온갖 생명체는 태어나고 소멸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회화 이미지의 가장 중요한 모태가 되어왔다. 작가가 꽃과 나무와 풀을 지치지 않고 그리는 이유이다. 허미자 작가의 그림에는 세상살이의 경험과 작가로서 겪어온 시간이 소탈한 이미지에 녹아 있다. 세상이 모두 잠든 계절, 지금 여기서 작가는 자기 자신이 풀이고 꽃이라는 화두를 떠올린다. ■ 김노암

 

Vol.20230217b | 허미자展 / HUHMIJA / 許美子 / painting

 

풍경으로부터 From the landscape

정승호展 / JUNGSEUNGHO / 鄭丞鎬 / painting 

 

2022_0812 ▶ 2022_0828 / 월요일 휴관

 

정승호_인왕산_캔버스에 유채_162.1×227cm_202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주말_11:00am~05:00pm / 월요일 휴관

 

 

이목화랑

YEEMOCK GALLERY

서울 종로구 북촌로 94(가회동 1-71번지)

Tel. +82.(0)2.514.8888

www.yeemockgallery.co.kr@yeemockgallery

 

회화와 자연이 하나가 되는 길  1. 정승호 작가에게 자연은 마음과 정신, 생각과 통찰이 펼쳐지는 생동하는 현실이다. 자연과 순수하게 만나 교감하고 몰입하는 경험을 통해 작가는 성장하고 또 성장한다. 섬세해지고 또 섬세해지며, 현명해지고 또 현명해진다. 사시사철 나무와 풀과 꽃이 작가를 반긴다. ● 청소년기 조울증을 앓은 이후 작가에게 예술이란 치유활동이고 영혼과 관련된 주제가 되었다. 예술이 치유와 동일한 것은 아니나, 분명 예술에 몸과 마음, 영혼을 어루만지고 평온을 부르는 치유의 기능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불자(佛子)인 작가에게 예술은 영성(靈性)과 연결된다. 꽃들과 나무와 가지들이 작가에게 말을 걸어 어루만지고 격려한다. 정승호 작가에게는 치유하는 예술이 특별히 중요한 미덕이다.

 

정승호_백매화-서운암 가는길_캔버스에 유채_53×65.1cm_2022
정승호_광양에서-홍매_캔버스에 유채_53×65.1cm_2022
정승호_복숭아꽃 Peach blossm_캔버스에 유채_33.4×45.5cm_2022

자연은 어떻게 우리를 위로하는가?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파장과 우리 몸과 마음의 파장이 같은 주파수를 맞추는 순간 평형과 조화를 이룬다. 우주적 차원에서는 티끌이 응집하고 다시 흩어지는 운동 또는 변화일 뿐이다. 우리는 잠시 현재의 몸에 의탁해 현상(現像)했을 뿐이다. 우리는 마치 특별한 존재라는 자의식으로 가득찬 채 지상을 활보하지만 결국은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아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가 된다. ● 자연을 회화에 담아 온 시간은 인류 문명의 시원과 만난다. 회화의 탄생 시기와도 닿아 있다. 자연과 자연의 모든 산물은 인간 생존과 관련되고 다른 무엇보다 우선된다. 원시 인류나 현대인이나 모두 자연에 뿌리를 두고 성장하고 존재한다. 자연은 회화의 가장 오래되고 앞으로도 쉼없이 다뤄질 주제이다. ● 작가는 오랫동안 전국을 돌며 다양한 자연과 생태환경을 경험했다. 방문하였던 곳을 반복해서 찾아간다. 매번 다른 얼굴로 맞아주는 자연은 작가에게는 평화로운 순간을 경험시켜준다. 그것은 너무도 강렬한 희열이고 감탄이다. 정승호작가는 자연을 떠나서는 회화를 이야기할 수 없다. 자연을 만나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정승호 작가의 일상이며 시간의 대부분을 채우는 활동이다. 작가는 자연에 중독된다.

 

정승호_들풀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21
정승호_뒷길 A back road_캔버스에 유채_2022

2. 남의 길을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의 길을 가는 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의도하든 그렇지않든 내 길을 가는 것이다. 모든 화가는 그렇게 자기 길을 간다. 남과 비교하는 것은 시간낭비다. 내게 주어진 시간에 조밀하고 충실하게 융합해 하나의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 그 길을 너무나 리얼하고 구체적이어서 선명하게 감각된다. 다른 길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그 하나의 길이 눈 앞에 그리고 내 뒤에 뚜렷한 선을 그린다. 화가는 그렇게 하나의 선을 만들며 그 선을 따라 간다. 정승호 작가가 만들어가는 그 선, 그 길은 자연과 만나고 교감하는 가운데 그려진다. ● 어쩌면 작가가 만나는 자연은 한편의 꿈이거나 환타지일지도 모른다. 요정과 정령들이 살아 숨쉬는 대자연을 느끼며 세상을 살아가는 순수한 인간은 더 이상 지상에서 멸종했을지도 모른다. 최후의 원주민들이 동남아의 작은 섬이나 남아메리카 아마존의 밀림에서 가끔 출현한다지만, 현대 인류가 더 이상 자연을 있는 그대로 만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한 비극적 사실이다.

 

정승호_홍백매도 紅白梅圖 red and white plum blossom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22
정승호_할미꽃 Pasque flower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22

정승호 작가의 회화가 재현하는 화려하지 않고 멋을 부리지 않은 표현들은 어쩌면 이러한 비극적 현실에 대한 한 화가가 어찌할 수 없는 가장 소박한 대응일지도 모른다. 이미지와 환영을 다루는 화가는 불가피하게 있는 그대로의 현실로부터 이탈해 해석하고 번역하고 변형해야 하는 임무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 정승호작가는 자연의 본래의 모습을 발견하고 회화를 통해 자연을 되살리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소박하지만 담담하고 동시에 확고하며 단호한 신념을 통해 공감하고 표현하는 자연은 어떤 자연일까? 개인의 사적 평화와 행복을 약속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인륜성의 문제에 어떤 희망을 던지는 그런 자연은 아닐까? 예술의 본질은 당장 눈 앞의 이득이나 효과를 또는 일시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 아니다. 세속적인 목적을 위한 예술은 결코 진정한 의미에서 자연의 본질과 만날 수 없다.

 

정승호_달그림자 Moon shadow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22
정승호_뜰보리수 Cherry elaeagus_캔버스에 유채, 오일파스텔_24.2×33.4cm_2022

3. 이번 전시의 대표작인 인왕산 풍경은 인왕산에서 작가를 위해 제를 올리고 기도하는 비구니와의 인연이 숨어 있다. 오랜 인연으로 작가가 오랜 시간 고민해온 문제를 함께 공감하며 기도해온 비구니의 존재는 작가에게는 인연의 숭고함으로 다가온다. 자연풍광을 담은 풍경이 아니라 영혼의 울림이 있다. ● 법정스님은 살아 있는 것은 모두 행복해야한다고 말했다. 모든 존재는 행복하기 위해 존재한다.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더 나은 상태, 행복을 지향한다. 우리가 본래의 자연을 지향하는 것은 행복하기 위한 타고난 우리의 본성일지 모른다. 자연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인류는 언제나 본래의 대자연으로 회귀하려 한다. 그러나 세상살이는 뜻대로 되기 어렵다. 인류문명은 그 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인류는 자연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나와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헛된 희망일지도 모를 지경이 되었다. 오존층은 남극 대륙 보다도 더 크게 구멍이 뚫리고 태평양 한가운데에는 왠만한 나라보다 거대한 쓰레기 섬이 떠다니고 있다. 아스팔트가 녹아 내리고 비가 오지 않아 뜨겁게 말라가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지역은 태풍과 집중호우로 침수를 반복한다. 기후와 생태 균형이 깨져버린 지구에서 인류는 더 이상 따듯하게 인류를 어루만지는 자연이 아니라 난폭한 자연을 마주하고 있다.

 

정승호_청매화 Green plum blossom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22
정승호_찔레 열매_캔버스에 유채_53×33.4cm_2021

다른 한편 세상이 첨단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하나의 생활권이 되었다고들 말하지만 세계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과 테러가 쉬지 않고 벌어지고 있으며 현대인이 그도록 신뢰하고 자랑해 온 첨단 네트워크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세계 지도자를 자임하는 대국의 지도자들도 허둥지둥 우왕좌왕하며 범인과 다르지 않은 미숙한 대처를 반복한다. 불안과 공포가 퍼지고 세계는 합리적이며 지혜로운 관리와 통제를 벗어나기 일쑤다. 예측불허의 우발적 사건이 쉼 없이 벌어지는 것이 오늘날 글로벌한 일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본래 인간이 타고난 본성(자연)을 회복할 수 있을까? ● 세계 곳곳에서 정승호 작가와 같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공감하고 연대하며 자연을 만나고 표현하는 화가들이 무수히 많다. 스스로 드러내려 애쓰지 않는 화가들은 어쩌면 세계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조용히 기도하듯 자연을 대하고 그림을 그린다. 그들은 창작에 헌신하는 사도들이 아닐까? 미래, 자신들이 결코 그 과실을 확인할 수 없을 만큼 아주 먼 미래를 위해 씨를 뿌리고 물을 주듯 그림을 그린다. 그들에게 자연과 함께 생동하는 회화는 예술이자 동시에 원형적인 기도(祈禱)일지도 모른다. ■ 김노암

 

정승호_만추 Late Atumn_캔버스에 유채_53×40.9cm_2021
정승호_홍매 향기 Red plum blossoms scent_캔버스에 유채_24.2×40.9cm_2022
정승호_인왕산 둘레길에서_캔버스에 유채_130.3×193.9cm_2022

Path of Juncture for Painting and Nature  1. For artist Seungho Jung, nature is a living reality where the mind and spirit, thoughts and insights unfold. Through exploring the subject of "nature," one can easily see the growth in both his professional capacity and personal development. With emphasis in detail and sharpness, he grows wiser by the day. Changing of the four seasons with the trees and leaves welcome our artists to another beginning. ● Following battles with bouts of bipolar disorder in his adolescent years, creative arts became intertwined with both the subject of therapy and soul searching. While arts cannot be prescribed as sole pathway for therapy, it is clear art has elements to aid in healing of one's souls and evoking peace in our minds. For an artist with Buddhist background, art is connected with spirituality. Flowers, trees, and branches speak to the artist, caressing him and encouraging him. For artist Seungho Jung, the art of healing is a particularly important virtue. ● How does nature comfort us? Because humans are part of nature. Equilibrium and harmony is reached when wavelengths of nature and wavelengths of our body match the same frequency.On the cosmic level, it is nothing more than a movement or change in which the dust condenses and disperses again. We only rely on our present body for our consciousness to develop. We lead our lives full of self-consciousness and pre-conceived notion as special beings, but in the end, we disappear as nothing more than a speck of dust. No, we do not disappear, rather we become a part of nature. ● Portrayal of nature in the arts is synonymous with inception of human civilizations. This period of time is also synonymous with birth of "painting" as we know it. Above all, Nature and all its products are concerned with human survival and take precedence over all others. Both primitive and modern humans are rooted in nature, growing and existing. Nature is the oldest and will continue to be a timeless subject of painting and the arts.

2. Jung has travelled throughout the country over the last several years to experience various forms of nature. Plethora of new emotions evoked by each visit is an overwhelming experience that can't be easily described. For Jung, creative arts cannot be discussed without Nature and vice versa. Depiction of nature through painting is Jung's routine and makes up majority of his time. Nature is an inseparable element for Jung. ● Its impossible to follow the path of others in fine arts. Its natural to forge one's own path. Conscious or not, Jung follows his own path as other artists do. To compare against others would be a waste of time. Its best to maximize the time one has been allotted to dedicate to one's path and craft that path to the best of one's ability. ● For Jung, this path is definitive and delicate. No other path is available. He leaves a firm line behind him and continues to forge his own path ahead. Artists are responsible creating such a path and following the 'line' he/she has created. For Jung's forged path, it meets at the intersection of nature and our senses. ● Incidentally, for Jung, nature may really just be a vivid dream or 'fantasy' as others call it. Innocent beings who can readily experience nature in its full form with spirits and fairies may no longer be present in today's world. Only in the far untouched corners of the world, such as islands and realms of Amazon, small indigenous tribes continue to meet 'nature' in its true form. However, it is a tragedy that this experience is out of reach for most of us. ● Jung's interpretation of nature without grandiose style may reflect this tragedy at its smallest form by a lone artist. This is because a painter who deals with images and illusions is inevitably tasked with interpreting, translating, and transforming away from reality as it is. ● Jung seems to have discovered Nature in its original form and is attempting to revive it through his work. How should one assess nature represented with small but resolute beliefs represented through painting? Would it be nature that doesn't stop at guarantees of personal freedom but rather questions topics of humanity and hope? The essence of art is not an effective means to achieve immediate benefits or effects or temporary ends. Art for secular purposes can never really meet the essence of nature.

3. Highlight of this exhibit, "Inwangsan landscape", portrays a small basket that has personal significance for Jung. This basket was used for religious ceremonies and prayers of personal significance. Inclusions of this personal memorabilia in the work reflects the depth of reflection and length of pondering committed by Jung. This work is not a simple portrayal of landscape, but a reverberation of the soul. ● Monk Beop-jung noted that all living things should be happy. All beings exist to be happy. Regardless of weather it is living or non-living, all things exist to aim for a better state and happiness. It may be our innate nature to be happy that causes our longing for nature. All humans try and chase their innate desire to be happy, to return to 'nature'. But life is arduous and doesn't not allow for an easy path to happiness. Humanity has strayed so far from nature that it may be a futile hope to return to nature again. The ozone layer has a hole larger than that of Antarctica, and in the middle of the Pacific Ocean there is an island of garbage, which is bigger than any other country. In some areas, the asphalt melts with the absence of rain while other areas have seen repeated flooding due to typhoons and torrential rains. On the earth where the climate and ecological balance have been disrupted, mankind is no longer facing nature that warmly caresses mankind, but a wild, ruthless nature. ● We often boast of a global community forged by high tech networks and instant messaging, however, across the world, countless episodes of terror and war are continuing to be waged and this "global community" forged by modern technology has been helpless and futile and stopping these events. Leaders of our societies key powers have been late and aloof in their response and actions that are no different from said perpetrators of war and crimes. In a world where fear and irrationality spreads, life of unpredictable and contingent terror events have become the norm. ● In such environment, can we return to 'nature' and can humanity be restored? There are countless artists from all over the world who quietly but clearly empathize with, connect with, and meet and express nature like Seung-ho Jung. Artists who do not try to reveal themselves may treat nature and paint as if they were silently praying for world peace and well-being. One can argue they are apostles devoted to creation. They paint as if they were planting seeds and watering them for the future, a future that is so far away that they will never be able to confirm its fruits. For them, painting that comes alive with nature may be both an art and an archetypal prayer in its most basic form. ■ Kim no-am

 

Vol.20220812a | 정승호展 / JUNGSEUNGHO / 鄭丞鎬 / painting




추석연휴인 지난 17일의 인사동은 몰려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오죽하면, 사람에 걸려 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을 정도였다.

초 저녁부터 장경호씨를 만났으나 ‘유목민’ 문이 닫혔다고 했다.
거리에 사람은 많지만, 골목에 숨은 술집들은 오히려 손님이 없다.
인사동 술꾼들이 사람 많은 휴일은 인사동 출입을 삼가하기 때문이다.

인사동에 그렇게 술집이 많지만, 입맛에 맞는 술집이 별로 없었다.
비싸지 않고, 안주가 맛있으며, 분위기까지 있는 그런 술집 말이다.
술꾼들만 모이면 새로운 술집을 개발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술집도 돈 안 되는 작가들의 술타령 보다 매상 오르는 젊은 사람을 좋아하는 건 당연하다.
한 푼이라도 더 남는 것이 장사의 속성이 아니던가.

사람 많은 거리를 피해, 돌고 돌아 피맛골의 ‘불타는 소금구이’까지 갔다.
거리에서 김노암씨 가족을 만나기도 했고,

술집에 도착해서는 주인장 완기씨를 비롯하여, 김기영, 김대웅씨 등 여러 명을 만났다.
인사동의 술집을 골라 다니는 또 하나의 이유가 반가운 벗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옆 좌석의 노래소리 들으며, 주량만큼 딱 막걸리 네 병만 마시고 일어났다.
그 사이 인사동거리에 많았던 사람들은 사라지고 조용했다.
얼마나 거리를 밟았으면, 길이 빤질빤질했다.
버스킹 나선 젊은이들의 처량한 노래소리만, 길 위로 미끄러졌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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