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국서 연출의 관객모독8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지난 71일부터 오는 1010일까지 대학로 아티스탄홀에서 100일 동안의 장기 공연에 들어간 것이다.

 

그것도 정부 지원금이나 자체 예산으로 마련한 무대가 아니라 기국서 연출의 팬이 기부한 후원금으로 올리는 작품이라 그 의미가 더 크다. 관객을 모독하는 연극이 관객의 후원으로 살아나 새로운 동력을 얻게 된 셈이다. 새로운 후원 문화를 기대할 수 있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관객모독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오스트리아 출생 페트 한트케가 1966년에 발표한 희곡이다. 1978년 기국서 연출의 극단76’에 의해 무대에 오른 후 꾸준히 재 공연되어 관객을 모아 온 대표적 레퍼토리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으며, 기국서를 일약 천재 연출가로 불리게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연출가 기국서

기국서 연출의 천재성은 주벽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기국서 연출만 생각하면 머리에 떠오르는 생생한 장면이 있다.  201010월 완주 종남산 자락에 있는 도예가 한봉림씨 작업실에서 열린 창예헌 예술기행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인사동 예술가들이 완주의 늦가을 정취에 취해 치룬 예술행사인데, 밤늦도록 이어진 뒤풀이에서 벌어진 갑작스러운 해프닝으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결정적인 것은 날이 밝은 새벽녘에 우연히 마주친 모습이다. 신발은 어디 갔는지 맨발로 터벅터벅 시골길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마치 연극의 마지막 장면 같았다. 어디론가 사라져가는 그의 뒷모습은 애잔한 여운을 남겨주었다. 이 밖에도 전설이 된 기국서씨의 수많은 이야기가 연극계 주변을 심심찮게 떠돈다.

 

연극 '관객모독’ 또한 관객에게 욕설과 물세례를 퍼붓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파격적인 연극으로, 공연 때마다 화제가 되어왔다. 띄어쓰기를 무시한 중복된 의미의 단어를 사용하거나 목사님 설교 같은 어조나 약장수 같은 상황을 설정하는 등 언어만을 매개로 한 독특한 연극이다. 공연을 처음 접하는 관객은 불편하고 당혹스럽지만, 사람들은 이 작품을 반극이라 불렀고 작가는 언어연극이라 한다.

 

 

이 작품은 관객이 연극에 대해 갖고 있는 기존의 연극적 형식이나 선입견을 완전히 무시하고 파괴한다. 플롯이나 서사는 물론,  무대 막이나 장을 구분하는 자체가 없다. 빈 의자 네개만 놓인 텅 빈 무대 위로 막이 올라가면  네 명의 배우가 걸어 나온다. 무대와 객석의 조명이 동시에 밝아지면서 배우와 관객은 동등한 관계에서 서로 바라보게 된다. 이어서 네 배우가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대사들, 특별한 순서도 연관성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대사는 무대 위에 어떤 '이야기'나 '환상'도 만들어내지 않는다. 이를 통해 배우들은 관객이 연극에 대해 갖고 있는 환상이나 관례적으로 반복해온 습관, 공연을 본다는 것의 의미 자체를 전복시켜버린다.

 

이 연극에서 무언가를 얻을 것이라는 기대는 마십시오. 다른 연극에서 볼 수 있는 것을 볼 수 없을 것이고,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도 없을 것입니다.”라는 대사처럼 관객모독은 관객이 기대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연극을 전개한다. 배우들이 쏟아내는 셀 수 없는 욕설말의 유회, 이런 일련의 행위가 관객들을 자극하며 그들이 자연스럽게 입을 열고 반응하도록 하는 것이다. 폭넓은 감정의 진폭으로 해방감을 맛보게 하는 것이 바로 관객모독이 선사하는 카타르시스다. 그 본심은 메너리즘에 빠진 연극들을 조롱하며, 수동적이고 나약한 관객들을 각성시키는 데 있다.

 

1978년의 초연에는 기주봉, 정재진, 주진모, 고수민을 내세웠으나, 젊은 배우들로 꾸린 2005년판 관객모독은 래퍼 양동근의 매력이 두드러진 무대였다. 대사의 진폭은 높아지고, 배우가 관객을 모독하는 방법도 더 잔인해진 자극적인 버전이었다.

 

공연장을 바꾸고 배우를 바꾸고 대본을 바꿔 새롭게 내놓은 이번 버전은 관객을 무대 위로 끌어올려 연기하게 하거나, 배우가 객석 통로에 들어가 관객과 호흡을 같이 하는 등 또 다른 시도를 보여준다. 극적인 사건은 없지만, 말을 맛 갈 나게 구사하는 캐릭터들이 인상적이다.

 

 / 조문호

 

장소 : 아티스탄홀 / 기간 : 20227 1일부터 1010일까지

공연시간 : 평일 730/ 토요일 3, 6/

           일요일, 공휴일 2, 5(화요일은 공연 없음)

           티켓 전석 5만 원

공연문의 : 팀플레이예술기획(주) 1661-6981

 

출연 : 리얼 김성태, 김주희, 임주영 

       현도 이주훈, 심성필, 민들샘 

       극만 강현택, 박세욱 

       현실 홍리나, 최유리, 기은수 

       무대감독 : 서민균

 

 




작은 거인 기국서씨가 새로운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올인 하고 있다.






75년 연극배우로 데뷔한 기국서씨는 이듬해 창단된 ‘극단 76’ 대표를 맡아 온 전설적인 연극인이다.
‘메이드 인 차이나’와 ‘아부의 왕’에서도 보여주었으나, 영화 ‘도둑들’의 인상 깊은 연기는 독보적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천재적인 연극연출가로 더 유명하다. 그가 연출한 ‘관객모독’은 아직까지 머리에 각인되어 있다.

그 외에도 '미친 리어' '햄릿 시리즈' '지피 족' 등을 연출하여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켜왔다.






새로운 작품에 몰입한다는 소식에, 지난 8일 오후6시 무렵 연습실이 있는 대학로를 찾았다.

좀 늦은 시간이라 다들 술집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었는데,

연출을 맡은 기국서씨와 연극배우 정재진, 정인겸, 하성광씨가 함께 있었다.






이름도 기억되지 않는 대학로 어느 건물 옥상으로 따라갔는데, 너무 시원하고 조용했다.
무대에 올릴 작품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원제가 ‘end game’인데, 아직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내용은 잘 모르지만, 일단 ‘종반전’이라는 느낌이 범상치 않았다.

뒤늦게 연출가인 박근형씨가 찾아 왔는데, 술자리 화제가 대마초로 옮겨 붙었다.






대마초로 피해 본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니지만, 정재진씨는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잘 나가던 방송출연 다 끊겨 살아가기가 막막했다고 한다.

나 또한 감옥살이는 차지하고라도 같이 피운 친구들 대라고, 고문 당한 것 생각하면 소름 끼친다.

세상에 친구간의 의를 끊으려는 이런 좆같은 법이 어디 있는가?

이젠 어쩔 수 없이 합법화 할 것인데, 죽을 때까지 손해배상 청구에 매진할 생각이다.






정재진씨는 한 때 대학로 윗 동네인 낙산동을 연극인 아지트로 만들기 위해 공을 들였다고 했다.

그런데 엉뚱한 사람이 나타나 죽도 밥도 아닌 말썽만 무성한 동네를 만들고 말았다는데,

어딜 가나 돈 냄새에 따라붙는 똥파리들이 문제다.





정재진씨의 천진난만한 웃음에, 찌든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다.
기국서씨 덕에 좋은 분들과 즐겁게 취했는데, 9월에 선보일 연극이 벌써 기다려진다.






부디 대박 나길 기원한다.



사진, 글 / 조문호
































ㆍ창단 40주년 맞은 ‘극단76’의 연출가 기국서

최근 들어 ‘극단76’이 언론 지면에 빈번히 오르내리고 있다. 진원지는 연출가 이윤택(64)이다. 그는 한 달 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창단 40주년을 맞은 극단76이 극장도 사무실도 연습실도 없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가?”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얼마 후 자신의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창단 30주년을 맞아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1970년대 전위연극을 이끌었던 기국서(극단76의 연출가)는 요즘 생계유지를 위해 비천한 노동을 하고 있다. 이게 제대로 된 사회인가?”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국 연극판에서 극단76이 새겨온 족적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뜻이다. 아울러 그런 의미 있는 극단이 자본의 위압에 쫓겨 변두리로 밀려나고 있는 상황에 대한 개탄이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극단76이 어느덧 창단 40주년을 맞았다. 1976년 신촌에서 문을 연 이후, 전위적이면서도 사회성이 농후한 연극 세계를 펼쳐왔던 극단76은 한국 연극판에서 보기 드문 ‘반골(反骨)의 극단’이다. 이제 우리 연극계의 주요 연출가로 손꼽히는 박근형(53), 김낙형(46) 등이 수업했던 ‘연극적 친정’이기도 하다. 흰 눈이 펑펑 쏟아지던 16일 오후, 창단 40주년을 맞아 새 작품을 준비 중인 기국서(64)를 대학로의 카페에서 만났다. 유독 ‘언어’를 고심하는 작가 겸 연출가인 그는 “처음 20년은 행복했고, 그 후 20년은 난파선의 심정”이라는 말로 40년의 소회를 내비쳤다.

그의 육성을 최대한 전하기 위해 1인칭 시점으로 옮긴다.

“40주년? 사실 내 동생 기주봉(배우)이 40주년의 산증인이겠지. 나는 창단 2년 뒤에 합류했으니까. 당시 극단76에는 10개 조의 강령이 있었는데, 나는 그중 마지막 조항이 참 마음에 들었어. ‘진정한 꿈을 꾸는 자는 결코 헛된 꿈을 꾸지 않는다’라는 거였지. 지금 돌이켜보면 처음 20년은 매우 행복했지. 연극은 사회를 거울처럼 반영한다는 신념, 사는 게 팍팍해도 그 신념이 흔들리지 않았거든. 한데 다음부터는 변화하는 현실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어. 풍랑의 바다에 표류하는 난파선 같았지. 아예 극단 이름을 난파선으로 할까, 그런 생각도 했어. 같이 탈 사람만 따라오라고. 경제적으로 어렵고 권력에 부딪히고….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햄릿과 오레스테스>를 공연할 때였는데, 극장 앞에 ‘닭장차’들이 3대나 서 있더라고. 그게 5시간짜리 공연이었어. 공연 1부를 극장 내부에서 하고 2부는 로비와 계단에서 하는 거였는데, 공연 직전에 ‘로비 사용 불가’ 통보를 하더라고. 요즘 후배들이 겪고 있는 ‘검열’을 그때 먼저 겪은 거지.




동생 기주봉? 아, 말썽꾸러기였어. 고등학교 때부터 패거리 지어 다니고 싸움하고, 그 어린 나이에 도박도 했어. 세 살 위의 내 친구들한테도 반말로 엉겼지. 한데 대학 들어가더니 사람이 180도 바뀌더라고. 나하고는 굉장히 달라. 그 친구는 정말 몽상가거든. 돈암동 살던 어린 시절에, 우리 집에서 산양 17마리를 키웠거든. 그걸로 생계를 유지했어. 나하고 주봉이하고 산등성이로 양을 몰고나가곤 했는데, 나는 언제나 손에 책을 들고 갔고 주봉이는 머리에 대야 같은 거 뒤집어쓰고 손에는 긴 막대기 하나 들고 ‘생쑈’를 했지. 자기가 김삿갓이라는 거야. 10살이 안됐을 때부터 그랬어. 중학교 들어가더니 연극반에서 배우를 하더라고. 걔는 애초부터 배우가 되려고 태어난 거 같아.

나? 나는 연극을 우습게 봤어. 초등학교 때 어머니하고 여성 국극이나, <자명고> 같은 신파조 연극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굳어진 같아. 좀 엉성하고 웃기잖아. 나한테는 언제나 문학이 최고였어. 그러다가 고3 때 임영웅 선생이 연출한 <고도를 기다리며>를 봤거든. 물론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을 먼저 읽었지. 그해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니까. 그런데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더라고. 연극도 마찬가지였어. 꾸벅꾸벅 졸았지. 그러다 갑자기, 에스트라공을 연기했던 배우 김성옥이 ‘고도를 기다려야지!’라고 외치는 장면에서 잠이 번쩍 깼어. 아, 천둥 같은 소리였어. 연극에 뭔가 있구나, 그런 생각을 처음 했지. 그 다음에는 드라마센터에서 유덕형 연출의 <생일파티>를 봤거든. 뼈다귀로 이뤄진 무대에 조명을 비추고, 배우가 벽 속으로 스르르 사라지는데, 그 시각적 충격이 오래 가더라고. 팸플릿을 보니까 등장인물 맥켄은 메커니즘을, 골드버그는 황금만능의 자본주의를 상징한다고 써 놨더라고. 심오해 보이잖아. 20대 때는 그런 것에 심취하지. 그리고 세번째 본 연극이 오태석의 <루브>였는데, 정말 너무 웃겨서 계단에서 구를 뻔했어. 그 세 편이 연극에 대한 내 생각을 완전히 바꿨지.

극단76의 대표작 <관객모독>? 아, 징그러워. 1979년 초연부터 30년 넘게 했으니까. 가장 마음에 드는 버전은 초연하고 10년쯤 뒤에 공간 사랑에서 했던 공연이지. 아주 단순하게 연출했어. 그 다음부터는 자꾸 교묘하게 손을 대게 되더라고. 앞의 공연하고 달라야 하니까. 그런데 즉흥성이 강조된 이 연극의 형식은 지금도 유효한 거 같아. 배우들도 관객들도 그 즉흥이 재밌는 거지. 제작사에서 요청이 들어오면 또 할 수는 있어. 솔직히 돈이 들어오니까. 하지만 일단 부담스러워. 아휴, 이걸 또 해야 하는구나! 그런데 막상 연습 시작하면 또 재미있어. 나도 배우들도.

40주년 기념작? 한 편 준비하고 있지. <리어의 역(役)>(가제)이라는 작품인데, 평생 리어왕 역할을 해온 노배우, 치매에 걸려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그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거든. 작년부터 대본을 쓰다가 멈추다가 그래 왔는데,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야. 4월에 선돌극장, 5월에 게릴라극장에 공연이 잡혀 있어. 쓰는 건 정말 힘들잖아. 오늘도 7~8줄 간신히 썼어. 그래도 가장 행복한 곳은 연습실이지. 배우들과 같이 작업을 하면 어느새 생기가 나거든.”

경향신문<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정복수화백, 11월4일까지 바닥화-벽화 현장 제작 전시회

갤러리 입구에 신발들이 벗겨져 있다. 그림을 발로 밟고 보는 전시회. 1979년 동숭동 청년작가회관에서 가졌던 첫 개인전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정복수의 바닥화가 35년 만에 다시 살아났다.

지난 15일 인사동 나무갤러리에 신발을 벗고 들어서는데,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림을 장판처럼 밟고 다니다 보니 마치 그림 속에 내가 들어온 느낌이다.

 

 

▲ 정복수 바닥화 제작현장



정복수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인간의 몸을 통해 보여주는 작가다. 인간의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이로 인해 모순된 삶의 고통과 비극은 역설적으로 그로데스크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정치 권력의 폭력성과 자본 권력의 비인간성도 결국 인간의 욕구를 넘어 욕망이 가져온 산물로 볼 수 있다.

정복수의 작품에서 눈은 네 개, 여덟 개가 되기도 하고, 입과 똥구멍이 연결된 내장의 얼개는 해부된 생물체와 같다. 노래 <가시나무 새>처럼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분열된 '나'가 붙어있거나 나열되어 그려져 있고, 당신이 쉴 곳은 없다는 식이다. 인간 관계는 건축 도면과 같이 얽히고설킨 족벌로 이어져 있거나, 뜻 없는 온갖 정서들로 싸움을 토해 내고 있다.

신분과 직위를 상징하는 옷은 벗겨지고 자지와 보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인다. 애써 감추고 위장한 모습들이 무장해제 되어 인간의 욕구와 욕망만을 본질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욕구와 욕망의 상관 관계를 냉소적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실상 작가의 마음은 연민과 사랑으로 가득하다. 작가의 묵시적 작업 행태와 회화적 관계도 그렇다. 삶과 그림, 존재와 표현의 문제를 원초적으로 되살려 일관되게 담으려는 진정성. 정복수 작가가 품은 매력이다.

이번 바닥화는 '시여 침을 뱉아라' 식으로 '온 몸으로 그림을 보라'다. 그것을 통해 현실을 성찰하고 삶을 통찰하기를 바란다. 그림만 보지 말고, 그림을 밟고 있는 자신을 보고, 삶을 보라고 흔들어 놓는다.

그러고 보면 그림을 밟는 나의 행위는 그림 속의 나이지만, 나를 둘러싼 그림 또한 현실이요, 삶이다. 이렇듯 정복수의 바닥화는 미술과 삶의 유기적 관계를 온 몸으로 일깨우고 있다는 점에서 통념을 깨고 흥미를 끈다.

 

▲ 바닥화 정복수 바닥화 제작 현장

 

이번 전시를 기획한 나무갤러리 김진하 관장을 만났다.

- 반갑고 독특한 전시다.
"작가의 작품전을 기획하고 싶었는 데, 작품을 팔 능력은 피차 없기도 하고 못하기도 하니, 아예 비상업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하고 예전에 했던 바닥화가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정복수 작가도 이왕 하는 거, 바닥화뿐만 아니라 벽화도 함께 하기로 하여 전시장 전체를 현장 작업으로 하고 작업 과정을 책으로 엮기로 한거다."

- 정복수 작가가 1979년 첫 개인전으로 바닥화를 선보이고, 35년 세월이 흘렀다.
"그 때는 (정 작가가) 20대였다.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비판적 시각이 작용했을 것이고, 지금은 60이 되었다. 작가는 그동안 삶과 회화의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천착해 왔다. 그 때와 지금의 시점에서 어떻게 변화했는지 바닥화와 벽화 현장 작업을 통해 이야기하고 기록하면서 보다 생생하게 검증해보려고 하는 데 뜻을 두려는 거다."

- 그 때는 그림을 밟으면서 통쾌한 느낌이 강했는데 지금은 안기는 느낌도 든다.
"표면적으로 고와진 것도 있다. 형태와 색감도 부드러워지고 포용적이다. 그 때에 비해 그림을 즐긴다는 의미가 강하고 어떻게 보면 유미적이기도 하다. 메시지가 강하다고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로데스크하더라도 진실을 진정성있게 드러내 보여주는 맛이 그런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관객모독

 

 

'정복수 전'을 보러 가기 전, 거리에 낯익은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관객모독>은 1980년대 관객들에게 물을 끼얹고 관객에게 욕설을 일삼던 페터 한트케 원작을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관객들이 어떤 수모를 기대하고 그 연극을 보러 갈 것인지 궁금하다.

정복수의 바닥화와 현장 제작 벽화도 우리를 둘러싼 현실이 그림이요, 그림이 삶이라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일깨워 주려는 의도가 강하다. 아무튼 젊은 세대들이 많이 보고 기성 세대와 소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15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나무화랑에서 기획전으로 열리는 '뼈 속 풍경 – 정복수의 회화 Process & Documentation'는 살아있는 '현장 회화'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를 위해 정복수 작가는 나무화랑의 바닥 전체에 천을 깔아 놓고 오늘도 바닥과 벽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정복수 화백 나무갤러리 현장에서 바닥화와 벽화를 직접 그리고 있다

 

오마이뉴스 / 박 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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