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별궁 행차하던 돈화문로
청계천까지 1㎞ 문화지구로
시작점 주유소 자리 국악원 건립
경복궁~동대문과 T자 연결
조선시대 역사적 거리 복원


 

 

세계문화유산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앞에는 2012년까지 대형 주유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조선시대 임금이 돈화문을 나와 이용하던 어도(御道, 현재 돈화문로)의 시작점을 수십년 간 주유소가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창덕궁과 창경궁, 종묘가 한데 모여 있는 역사적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서울시는 2008년 ‘돈화문지역 전통문화 보존 육성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예산이 잡힌 건 2012년에 이르러서였다. 시는 그곳을 전통문화예술 보호지역으로 지정하고 200억원을 들여 땅을 수용해 주유소를 철거했다. 그 자리엔 ‘국악예술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돈화문에서 청계천에 이르는 약 1㎞의 2차선 도로 ‘돈화문로’가 문화지구로 보존·육성된다. 돈화문로는 조선시대 대로(大路) 중 유일하게 옛 폭과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길이다. 종묘행차와 별궁행차는 물론 사신을 마중할 때 쓰던 ‘왕의 길’이다. 남북으로 뚫린 어도는 돈화문로와 세종대로, 두 길뿐이다.

 주유소 자리에 국악예술원을, 바로 옆엔 ‘전통문화전시관’을 짓는 건 이런 역사성을 살리기 위해서다. 서울시 관계자는 “두 시설은 돈화문 문화지구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악예술원은 현재 공사가 진행 중으로 2016년 완공된다. 전시관도 비슷한 시기에 문을 열 계획이다. 두 시설의 사업비는 총 456억원이다.

 

 

임금과 백성이 만나던 돈화문로는 시전행랑(시전상인들의 점포)이 번성했다. 임금은 이 길을 통해 백성의 삶을 들여다봤다. 그래서 서울시는 전통문화전시관에 왕과 백성의 삶을 담으려고 한다. 시 관계자는 “전시관이 단순한 전시뿐 아니라 조선왕조와 백성의 민속사까지 연구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 국악예술원이 들어서는 건 이 지역이 원래 ‘국악’과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돈화문로는 국립국악원의 전신인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왕립음악기관)가 있던 곳이다. 또한 조선성악연구소가 위치해 있었다. 일제강점기와 전쟁, 산업화를 거치면서도 국악의 명맥이 끊기지 않았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인사동을 포함한 종로 일대는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지만 국악을 들을 수 있는 장소가 없었다”며 "이곳에서 창덕궁과 어울리는 정악의 대표곡인 여민락(與民樂)과 영산회상(靈山會相) 등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종로구는 인사동처럼 차량 통행을 부분 통제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돈화문로의 잠재력은 대단히 크다. 창경궁과 종묘를 이을뿐 아니라 청계천과도 맞닿아 있다. ‘2층 보행로’로 리모델링될 세운상가와는 남북으로 연결된다. 동쪽으론 대학로와 동대문, 서쪽으로 경복궁과 인사동·삼청동·북촌이 연결된다. 명동과도 가깝다. 서울 도심 관광클러스터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셈이다. 경기대 이상구(건축학) 교수는 “21세기 서울 도심에 과거의 동선을 따라 역사적 풍경이 복원된다는 점에서 돈화문로의 가치는 매우 높다”고 말했다.

◆돈화문(敦化門)=창덕궁 정문. 1412년(태종 12년) 창건됐다.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1608년 창덕궁이 복구되면서 돈화문도 다시 세워졌다. 광화문 앞 세종대로에 나라를 다스리는 기반이 된 육조(六曹)가 있었다면 돈화문로엔 시전행랑이 있었다. 일제는 돈화문로의 의미를 없애기 위해 창덕궁·창경궁과 종묘를 동서로 가르는 율곡로를 뚫었다. 이로 인해 궁과 어도가 바로 연결되지 못하고 끊기게 됐다

 

중앙일보 / 강인식·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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