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이재갑은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역사의 현장을 기록해 온 정통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강제징용 ‘잔혹사’를 기록한 ‘일본 속 한국풍경’, 경산 코발트 광산사건의 진실을 기록한 ‘잃어버린 기억’, 베트남전의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현장을 찾아다닌 ‘하나의 전쟁, 두개의 기억‘ 등 사회가 기억하지 못하는 골 깊은 역사를 파헤쳐 왔다.

 

이번에 선보인 '어느 특별한 동행'전은 이 땅에서 태어났지만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배타적 차별을 감내하며 살아 온 혼혈인들과 함께한 전시다. 그들의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눈, 우리 이웃의 또 다른 초상이다.

주명덕 선생께서 기록한 혼혈아, ‘섞여진 이름’이 발표된 지가 1965년이었니, 어느듯 반세기가 지났다. 그 이후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아무도 되돌아보지 않았던 삶을 이재갑씨가 조명한 것이다.

 

지난 10일 오후5시 무렵, 모처럼 전시장을 찾아 나섰다.

여태 전시 보는 것 자체를 피해 온 것은 전시리뷰나 이런 저런 글을 쓰기 싫어서다. 글로 인해 많은 사람이 등을 돌렸는데, '씹 대주고 뺨 맞는' 격이었다. 개인적인 감상문에 불과한 글을 느낀 대로 쓸 수 없다면 쓸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궁여지책으로 다른 분이 쓴 전시리뷰나 서문으로 소개를 대신 하기는 했으나, 평론가의 고충을 알만했다.

작품만 보고 전시리뷰는 쓰지 않을 수도 있고, 싫은 소리는 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속에 넣어두고 배겨나지 못하는 성질머리를 어쩌겠는가? 차라리 안 보는 것이 더 속 편했다. 그런 일로 많은 사람을 잃어버린 ‘미운 오리 새끼’신세가 되었는데, 심지어 가까웠던 친구나 가족까지 등 돌렸다. 잘 못 쓴 글이 아니라면 절대 내리거나 수정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이재갑씨의 ‘동행’전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전시였다. 전시가 열리는 ‘KP갤러리’가 동자동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기도 하지만, 기대했던 전시라 통풍이 도져 아픈 다리를 끌고 찾아간 것이다. 예술지상주의의 허접한 사진들이 판치는 세상에, 이재갑씨 만한 사진이 드물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사진도 기록한다고 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아니다. 아무런 작가의식 없이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을 넝마주이 사진이라 한다. 작년에는 원로 사진가 두 분이 찍은 60년대 중반 무렵의 사회기록사진들이 서랍 속에 잠들다 반세기만에 빛을 본 적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두 분 다 학창시절에 찍은 사진이었고, 그 이후부터 상업사진이나 문화재사진으로 전향한 형태도 비슷했다.

 

그 당시는 임응식선생이 주창한 ‘생활주의 리얼리즘’에 영향을 받아 거리의 스냅사진이 성행할 무렵이었는데, 세월의 무게에 실려 작가의식과 상관없이 소중한 역사적 사료가 된 것이다. 요즘의 아마추어 사진인들처럼 아름다운 풍경만 쫓아다니는 것보다야 백배 낫지만, 작가라면 뚜렷한 주관을 갖고 찍어야 할 것 아니겠는가? 주명덕선생의 ‘혼혈아’나 최민식선생의 ‘인간’, 그리고 김기찬선생의 ‘골목안 풍경’처럼 사람 속으로 파고 든 작업과는 차원이 다른 기록이다.

 

또 한 가지 사진의 우열을 가릴 수 있는 문제는 한 분은 표준렌즈로 찍었고, 한 분은 망원렌즈로 찍은 사진이 많다는 점이다. 망원렌즈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나, 동작을 포착하는 스포츠사진에나 활용되는 렌즈라 다큐멘터리 사진에는 적절치 않은 렌즈다. 망원렌즈로 사람을 찍는다는 것은 사람 속으로 다가 가는 것이 아니라 몰래 찍는 도둑 사진이나 다름없다. 요즘은 초상권 침해에 걸려 마음대로 발표할 수가 없어 그런지, 거리스냅 하는 사진인도 사라져버렸다.

 

가끔 사진가들의 프로필 사진에 대포 같은 망원렌즈가 장착된 카메라를 자랑스럽게 목에 건 사진을 볼 수 있는데, '난 사진가가 아니라 사냥꾼’이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하기야! 요즘 렌즈들은 광각에서 망원까지 사용할 수 있는 줌렌즈가 장착되어 다목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니, 카메라로는 알 수 없게 되었다.

 

이재갑의 "어느 특별한 동행"이 열리는 전시장을 찾아 갔더니, 전시 작가 이재갑씨와 전시기획자 이일우씨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전시된 작품은 작가가 혼혈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사회에서 특별한 존재로 취급받는 이들의 평범한 시간을 포착하고 있었다. 전시장에 내걸린 초상사진과 단체기념사진들은 얼핏 보면 평범한 사진으로도 볼 수 있으나, 작가와 당사자와의 끈끈한 교감이 느껴졌다.

 

‘동행’이란 전시제목처럼, 그들의 소소한 일상 속에 지난 시간의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눈 흔적이 역역했다. 전시장에 찍힌 당사자의 모습도 보였는데, 이재갑씨가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니, 사진에 앞서 얼마나 가깝게 지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사람을 찍는 다는 것은 그 사람과 얼마나 소통하며, 상대의 마음을 얼마나 헤아릴 수 있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으니, 그냥 찍은 사진과는 격이 달랐다. 이것이 다큐멘터리 사진인 것이다. 

 

사진, 글 / 조문호

 

-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게, 함께 걷기 -

 

‘한 배를 타다(be in the same boat)’라는 표현은 한국어와 영어에서 똑같은 의미를 지닌다. 같은 운명이나 처지에 놓이다. 모든 이의 운명이 완전히 똑같이 일치할 수는 없겠지만, 서로의 처지가 비슷할 때, 우리는 이 말을 사용하고 의지하며 위안을 얻는다. 사진가 이재갑은 혼혈인들의 일상 속에 시선을 멈추어, 한국 사회에서 ‘특별한 존재’로 취급받는 이들의 평범한 시간을 포착한다. 같이 모여 음식을 나누고, 생일을 축하하며, 함께 야유회를 떠난다. 사진 속에 담긴 일상은 한국인들이 한국적인 것이라고 부르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아주 약간의, 외모적인 차이가 언뜻 엿보일 뿐이다. ‘아주 약간의 차이’, 그들이 탄 배의 이름이다.

 

미군정기(美軍政期)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외국인과의 교류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혼혈인이 생기고 그 수가 늘어났지만, 한국사회는 이들의 존재를 이질적인 존재로 규정하는 방식을 택해왔다. 국가의 발전이라는 기치 아래, 국가주도로 단일민족(Monoethnicity)이라는 신화를 기조로 삼아 민족의 우수성을 공교육에서 강조하고,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사회를 통합하는 동안, 외모가 다르거나 혈통이 다른 이들은 ‘소수자’라는 이름으로 묶여 한국사회의 주류에 끼지 못하고 주변부를 맴돌아야 했다.

 

한국사회가 이들을 ‘타자(the other)’로 규정하는 동안, 혼혈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그들만의 방법으로 한국 사회에 녹아들었다. 그들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이들과 교류하고 함께 시간을 나누면서 누군가와 함께 걸어가는 방식을 선택했다. 혼혈인들은 다른 혼혈인 가족과 기꺼이 시간을 나누고 가족끼리 교류하며 서로의 근황을 나눈다. 카메라는 이들의 일상과 행사에 드러난 얼굴을 기록한다. 타자로 규정된 얼굴들이 따로 또 같이 기념사진을 위해 활짝 미소를 지으며 모습을 드러낸다.

 

다채로운 인간 군상들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동질감을 강조하고 이질적인 존재들을 타자로 규정하고 거리를 두는 것은 가장 편리한 방법일지 모른다. 나와 같은 존재만 수용하고 그렇지 못한 것들을 외면하며 살아가는 일에는 많은 생각의 품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어느 정도는 같고, 어느 정도는 다르다. 제각기 다른 뿌리와 직업, 사고방식, 환경을 가지고 있는 혼혈인들은 자신들만이 가진 동질감으로 서로에게 기대어 느슨한 연대를 만듦과 동시에 이질적인 존재로 규정하는 한국사회에 기꺼이 ‘동일자(the same)’로 자신들의 자리를 만든다. 사회가 정해놓은 테두리와 선을 스스로의 존재로 지우고, 사회와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고자 한다.

 

철학자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는 『전체성과 무한』을 통해 타자를 집에 맞아들이는 ‘환대(hospitality)’가 우리 삶의 근본적인 자세라고 말한다. 내 테두리 밖의 ‘타자’는 익숙하지 않기에 낯선 자이지만, 그들의 존재는 지워질 수 없고 내 옆에 있으며, 함께 살아간다는 측면에서 ‘이웃’이기 때문이다. 환대. 이웃을 반갑게 맞아들이는 것, 이런 측면에서 이미 혼혈인들은 각자의 존재를 기꺼이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이라는 거대하고 불친절한 이웃을 환대하고, 더 나아가 그들의 세계로 또 다른 타자를 초대한다. 낯선 카메라에 반가운 미소를 짓고 자신들의 일상을 거리낌 없이 공개하는 ‘벌거벗은 얼굴들’은 바로 우리 이웃의 초상이다.

 

이재갑의 사진전 “어느 특별한 동행”은 한국이라는 배타적인 사회를 살아가는 혼혈인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사진에 담긴 이들의 시선은 사진을 보는 이들에게 ‘함께 걸어갈 것(동행)’을 제안한다. ‘아주 약간의 차이’를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그들이 탄 배에 동행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본다. 우리 모두는 조금씩은 같고, 조금씩은 모두 다르다.

 

글 / 레 나(LENA)

 

KP 갤러리가 2023년 새해 첫 전시로 선정한 “어느 특별한 동행(同行)” 이재갑 사진전은 3월 4일까지 열린다. 

 

사진가 김보섭의 한국의 화교사진집이 눈빛출판사에서 발간되었다.

 

김보섭 '한국의 화교' / 눈빛출판사 / 양장 288면 / 가격 60,000원

김보섭은 1980년대부터 40여 년간 한국 화교에 매달려 온 사진가다. 그동안 인천의 중국인 집단 거주지인 차이나타운을 기록한 청관한의사 강영재를 출판하는 등 화교에 깊은 관심과 애착을 가져왔다. 이번에 출판된 한국의 화교는 인천에 거주하는 화교에 머물지 않고 전국에 산재한 화교를 비롯하여 화교의 고향인 산동성 까지 찾아다니며, 그들의 삶과 흔적을 추적해왔다. 한국 화교의 역사가 담긴 유일한 사진집으로 평가된다.

 

한국 화교사진집에 실린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의 서문 일부를 옮긴다.

 

김보섭은 인천에서 태어나 자란 사진가이다. 그의 사진 주제는 인천이라는 지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김보섭은 성장하면서 중국인들이 살았던 청관(차이나타운)의 시대적 사회적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었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그의 사진 작업으로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1995년 첫 사진집 청관에 이어서 2000년 청관의 화교 한의사 강영재를 두 번째 사진집으로 상재하고, 첫 번째 개인전 (삼성포토갤러리,1995)인천 청관으로 할 정도로 화교와 인연이 깊다. ‘청관을 시발점으로 그는 바다사진관’, ‘수복호 사람들’, ‘신포동 사람들’, ‘자유공원등 인천의 여러 장소와 인천 사람들의 삶을 꾸준히 사진으로 기록해 왔다.

 

그가 인천 사람이고 인천만 찍어 온 사진가라는 사실은 명백하지만, 이번 한국의 화교작업을 위해 전국에 흩어져 있는 화교학교와 화교들을 찾아다녔고, 대부분의 한국 화교들의 고향인 산동성까지 다녀왔다. 한중수교 이후인 19951월에 인천에 사는 화교 유연서 할아버지의 고향 방문에 동행했다.

 

그는 귀국 후 그곳은 전형적인 농촌이었는데, 나는 그곳에서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그분들을 찍으면서 푸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 회상한 적이 있다. 카메라는 그가 세상으로 나가는 창구였던 것이다. 그는 찍어놓은 사진을 보면서 사진 속 사람들의 가족사를 줄줄이 꿸 수 있는 사진가다. 이렇듯 한국의 화교사진은 화교들 과의 끈끈하고 오래된 유대감을 배경으로 나올 수 있었다.

 

(화교들과 그 잔존문화)를 방관자적 입장에서 흥미롭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친구로서, 그들의 사람됨을 사랑하고,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참 이웃의 자리에서 그들의 쇠잔을 그러나 아무 과장 없이 침착하게 서술하고 있다. (사진가 한정식의 ‘청관’서문에서)

 

김보섭의 사진은 시간의 기록이라는 단순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해석하고 재현하는 특유의 감성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인물사진에서 그 인물이 살아 온 삶의 궤적이 묻어 나오듯이 건물 사진에서도 그 이력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방치되고 쇠락해 가는 중화 요릿집이나 화교학교는 화교 사회의 부침을 전해준다.

 

특히 작가의 감성이 잘 드러나는 오브제의 처리는 그것을 통하여 그들이 누렸던 삶을 반추하게 한다. 그는 화교 한의사 강영재를 촬영할 때 장롱 서랍을 열어보니 부모님의 물건들, 집주인의 물건들, 사진들, 거울 등...,청관의 과거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그곳에 그대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우리는 그 청관의 과거를 그가 찍어 온 중화 요릿집의 목재에서 알루미늄으로 변화해 온 배달통, 낡은 도마와 프라이팬 등의 주방 도구 그리고 경극 탈과 소도구 등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인물사진뿐만 아니라 오브제를 통한 우회적 접근법이다. 따라서 그의 사진집은 서사와 서정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맞물려 넘어간다.

 

한 작가가 한가지 테마에 몰두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다. 40여 년 동안 진행해 온 김보섭의 화교 사진 작업은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거나 피상적으로만 보아왔던 화교 사회의 변천사와 가족사를 보여줌으로써 그들도 우리가 어깨를 마주하고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의 가까운 이웃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는 외국인 이주자들에 대한 오해와 편견의 벽을 부수고 그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 마음을 열었고, 마침내 그들과 다정한 이웃이 되었다. 오래 기다리며 찍어 온 그의 사진은 역경 속에서도 한국 사회에 뿌리를 내려온 가까운 이웃인 화교들에게 바치는 뜨거운 사랑과 경의의 표현이다."

 

 (출판인 이규상의 ‘한국의 화교 서문에서)

 

 

 

 

난방비 지원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라

한파에 모든 것이 얼어붙은 쪽방촌 빈민들의 삶은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한다.

2년 전 공공개발 발표로 철거될 건물이라 손을 놓은 건물주와,

그들의 눈치만 보는 정부 사이에서 쪽방 빈민만 죽을 지경이다.

 

꽁꽁 얼어붙은 쪽방, 식수마저 얼어...

낡은 건물은 가스가 공급되지 않아 방안에 물이 얼어버리는 열악한 조건에서 전기장판 하나로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틴다. 수도는 얼어 터져 바닥과 계단은 빙판이 되어 버렸고, 벽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렸지만, 건물주들은 남의 일처럼 나 몰라라 한다.

 

건물주들은 대부분 다른 곳에 살며 관리인을 통해 방세만 꼬박꼬박 챙겨가는 돈에 환장한 인간들이다.

그런 비인간적인 건물주들의 눈치를 보며, 국토부에서 발표한 공공개발을 2년이 넘도록 깔아뭉개고 있는 정부를 어찌 정부라 할 수 있겠는가?

 

근본적인 대책은 세우지 않고 빈민을 위한 에너지 바우처를 인상한다는 생색을 내지만, 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건물에 무슨 에너지 바우처가 해당되며, 가스가 들어온다 해도 여러 장벽에 걸려 혜택을 보지 못한다. 건물주들이 도시가스 요금과 전기요금을 턱 없이 올린 상황이라 빈민들은 차라리 죽는게 낳겠다고 한다.

 

전기장판으로 버티며 난방비 착취 당하는 빈민들

건물 곳곳에 난방비 부담으로 월세를 인상한다는 안내문이 붙었는데, 월세 인상 폭은 3만 원부터 15만 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얼핏 보면 적게 인상한 것 같아 보이지만, 쪽방 월세가 20~30만 원 선인 걸 감안하면 인상 폭은 적은 액수가 아니다.

 

그리고 월세와 난방비를 현금으로만 내야 하는 대다수 쪽방주민의 입장에서 바우처 카드는 무용지물일 뿐 아니라, 이런 저런 절차에 걸려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쪽방주민들은 난방비 지불 영수증은커녕, 고지서조차 받아 볼 수 없다.

건물주가 내라면 낼 수밖에 없는데다 그것도 현금으로만 내야 하니,

난방비를 지출했다는 걸 증명할 방법이 없다.

 

1인 가구와 무연고자가 많은 쪽방주민은 수급자가 되어도 본인이 장애인이거나 65세 이상의 노인, 또는 임신 중이거나 분만한 여성이 아니면 에너지 바우처 지원 대상에 해당 되지도 않는다.

또한 신청 절차도 매우 까다롭다.

 

한국에너지공단에서는 난방비를 현금이 아니라 바우처 카드로 지급한다.

한국전력, 서울도시가스 등 에너지공급사가 요금이 감면된 고지서를 발급하고 나면 그 고지서 내용에 따라 바우처 카드로 결제 하는 식이다.

 

건물주들은 건물이 얼어붙어도 난방비를 현금으로만 착취하는 돈 벌레들이다.

한 번도 따뜻하게 지내지 못했지만, 난방비 폭탄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이런 구조에서 에너지바우처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난방비 지원으로 쪽방주민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한다는 것은 개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용산 대통령 청사 앞에서 쪽방 공공개발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열어..

지난 7일 오전 11,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에서 쪽방 공공개발을 촉구하 기자회견이 열렸다.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 동자동사랑방,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빈곤사회연대. 홈리스주거팀 등 16개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에너지 바우처를 반납하고, 동자동 쪽방 공공주택사업을 신속히 추진하라며 정부의 무능을 성토했다.

 

동자동사랑방’의 김호태씨 사회로 진행된 기자회견은 동자동주민협동회김정호이사장, ‘양동쪽방주민회박종만위원장,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백광현 부위원장, ‘민주노총서울본부이현미 수석부본부장, ‘민달팽이유니온지수위원장, ‘기후정의동맹서린 집행위원, 동자동 주민 최갑일씨 등 여러 명이 발언에 나섰다.

 

 ‘동자동주민협동회 김정호이사장은 정부와 서울시가 동자동 쪽방 공공주택사업을 발표한 지 2년이 지났건만, 지금까지 첫 단계인 지구지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난방비 지원보다 공공개발에 의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공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쪽방을 적정 주거로 변화시키는 것만이 난방비 문제를 포함한 쪽방 주민에 대한 대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에너지 바우처는 빛 좋은 개살구

동자동에서 11년 거주한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백광현씨는 바우처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고 했다. ”나는 작년까지 64세라 한 번도 못 받았어요. 올해 65세가 돼서 아 나도 이제 받을 수 있겠다싶어 동사무소에 갔더니 영수증 가져와라’, ‘계량기 확인해 와라 이래요. 바우처 이거 믿지 마세요. 주지도 않지만, 힘들게 얻는다고 해도 달라지는 거 없습니다. 끝까지 투쟁해서 공공개발이 이뤄져야 우리 삶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맨 날 뉴스에 우리 사는 거 나오고, 정부는 어려운 사람 도와준다는 헛소리만 하네요, 어렵게 사는 거야 하루 이틀도 아니지만, 윤석열 정부가 도대체 뭘 도와줬습니까? 쪽방주민들 도와주는 방법은 공공개발 뿐입니다

 

지난 1월 말, 여러 언론에서 꽁꽁 얼어붙은 동자동 쪽방촌 사진을 일제히 내보냈다.

일명 얼음 계단으로 쪽방촌 건물이 통째로 얼어 계단과 바닥 전체에 빙판이 깔렸고,

난간 곳곳에 고드름이 매달린 사진들을 게재하며 동자동 빈민들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보도했다.

 

이재임 빈곤사회연대활동가는 요즘 쪽방건물에 매일 기자들이 오는데, 언론은 한파 때만 쪽방의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보도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 사람이 사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적절한 난방은 생존권이다

기후정의동맹서린씨는 주거권 보장이 곧 기후정의라고 강조했다. “적절한 난방은 생존권이다. 적정한 가격에 난방을 땔 수 있어야 사람이 살 수 있다. 이제 에너지는 기본권이자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하는 공공재다. 난방비 지원으로는 결코 에너지빈곤을 해결할 수 없다. 적정한 주거공간을 제공해야만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 쪽방촌 에너지 문제의 근본 방안은 에너지 효율이 높은 공공주택을 쪽방주민에게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금만 난방을 때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좋은 품질의 주거공간 마련을 위해 공공개발 지구지정을 지금 당장 추진해야 한다. 쪽방주민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기후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동자동 쪽방 공공주택사업 계획 발표 2년, 신속한 사업 추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문도 낭독되었다.

적정 주거가 답이다! 난방비 말고 내놔라 공공임대!’ 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기자회견문은 지금까지 민간주도로 이뤄진 쪽방 개발은 쪽방주민 축출의 역사였다. 동자동 쪽방 공공주택사업은 이와 같은 폭력과의 단절이자 정책적 속죄라는 가치가 있다. 또 다시 제어되지 않는 소유주들의 불로소득의 탐욕에 쪽방 주민들의 주거권이 소멸하는 비극은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국토교통부가, 정부가,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임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마무리했다.

 

그리고 백광현씨를 비롯한 주민 네 명이 나와 에너지 바우처 난방비를 반납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동자동 주민으로는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김정호이사장을 비롯하여 김호태, 선동수, 백광현, 정대철, 최갑일, 조인형, 김장수, 박종근씨 등 20여명이 참여했다.

 

기자회견장 앞에는 '재난의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동자동 쪽방 사진전’도 열렸다. 

주민들이 찍은 사진에는 낡은 건물구조와 한파로 피해를 겪은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사진,  / 조문호


동자동 공공주택 지구지정, 지금 당장 추진하라!

난방비 말고 주거권 보장, 공공주택사업 시행하라!

 

서울특별시에서 작년 8월부터 쪽방주민들에게 실시한 ‘아름다운 동행’은 그 무엇보다 고마운 일이었다.

 12월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한 사업이었지만, 주민들의 호응으로

올 년 말까지 연장되었는데, 이제 굶어 죽을 사람은 없게 되었다.

 

서울특별시 자료사진

‘아름다운 동행’은 하루 한 끼 팔천 원 상당의 무료식권을 제공하는 복지사업이다.

쪽방살이에서 제일 힘든 것이 주방 없는 비좁은 방에서 밥해 먹는 일이다.

그게 싫어 줄선 노숙인 틈에 끼이거나 무료급식소를 찾아다녀야 했다.

더러는 ‘동자동사랑방’에서 실시하는 ‘식도락’에서 천원의 끼니로 해결하는 분도 많았다.

 

그마저 힘든 노약자들은 밥 굶기를 밥 먹듯 했는데, 이보다 더 고마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루 한 끼만 제대로 먹어도 목숨 연명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물론 밥 한 끼 사먹을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초생활수급비 받아 밥 사 먹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방에 들 앉아 꼼짝 하지 않고 먹는 것 마저 소홀 한 것은 스스로 명을 재촉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쪽방 촌에서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는 시신이 발견되는 것도 다 예견된 일이었다.

밥이 보약이라 듯 사람은 먹어야 산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는 속담처럼, 귀찮아 먹지 않던 힘없는 노약자들이

사라질 식권, 즉 돈이 아까워 식당을 찾는 것이다. 지정된 날짜가 지나면 식권은 무효가 되어버리니까...

그러니 ‘아름다운 동행’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동자동에서 먹을 수 있는 식당은 모두 열 곳이다.

'김밥천국'을 비롯하여, 한식뷔페인 ‘만냥의 행복’, ‘맛고마 대구탕’, ’백암순대국‘, ’송탄부대찌게’,

생선조림전문 ‘완도집’, 백반과 찌게전문 ‘전주식당과 ’우정식당‘, 중화요리로는 ’만리장성‘과 ’태향‘이 있다.

작년에는 ‘대우정’도 있었으나, 건물 벽에 민간개발을 원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던 건물주가

운영하는 업소라 그런지, 주민들의 이용률이 낮아 올해부터 다른 업소로 바뀌었다.

 

그리고 팔천 원을 초과하는 음식은 차액만 내면 되니,

하루 한 끼는 입맛에 맞는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지만, 대개 단골 식당을 이용한다.

특히 직장인들이 많이 출입하는 식당은 초라한 빈민들의 출입을 꺼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설거지도 줄일 수 있는 음식포장을 더 반긴다. 자재비 낭비보다 엄청난 쓰레기를 양산한다.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나누어 주는 식권 총액이 한 달에 일억육천팔백만원이나 되니,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그 금액을 지정된 열 곳 업소로 나누면,

한 달에 천 육백만원의 매상을 올릴 수 있으나, 돈은 탐나지만 사람은 싫은 것이다.

 

나 역시 직장인들이 찾는 업소는 가급적 들리지 않고, 가까운 ‘우정식당’을 이용한다.

그곳은 두 모녀가 19년 동안 운영해온 식당이라 애착은 가지만, 일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주인인 박정화(67세)씨는 주방을 맡고, 친정어머니인 심문숙(91세)가 서빙을 하는데,

늙은 노모의 느릿느릿한 서빙은 어쩔 수 없지만, 음식이 정갈하지 않아 식당을 옮기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사정이 그러니 직장인은 없고 주민들 뿐인데, 그러다 있는 손님마저 다 뺏긴다.

인정에 의한 동정심은 영업에 대한 경쟁력이 되지 못한다.

식당의 성패는 결국 음식 맛이 아니겠는가?

주방장 들여 음식 맛에 신경 좀 쓰고, 박씨가 손님 서빙을 맡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반가운 일이 생겼다.

식권이나 물품을 나누어 줄 때마다 줄을 세워 공개적으로 시정을 요구해 왔는데,

2월분 식권을 나누어 준 지난 1월26일의 나눔에는 긴 줄이 없었다.

 

지정한 시간까지 기다리지 않고, 오는 즉시 나누어 주니 주민들이 줄 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간단한 일을 왜 번번이 줄 세워 추위에 떨게 했는지 모르겠다.

거지 동냥하는 광고하려는 작태가 아니라면 진즉 바뀌어야 할 구태였다.

 

아무튼, 주민들의 입장을 헤아려 줘 고마울 뿐이다.

서울특별시의 ‘아름다운 동행’ 식권사업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사진, 글 / 조문호

 

 

사진파일을 정리하다 오래된 사진 몇 장을 찾았다.

그 중 한 장면은 윤락녀가 발로 적음을 가로막는 사진인데, 잠시 놀다 가라는 장난스러운 호객행위였다.

적음은 특유의 사람살려~”를 연발하며 오히려 즐거운 비명을 질러댔다.

돈 한 푼 없는 땡초스님이란 것이 뒤늦게 알려지며 적음을 향한 일체의 호객행위는 사라졌지만,

은근히 즐기던 적음은 한편으로 서운한 것 같았다.

 

적음 최영해시인

서울의 대표적 홍등가를 기록하기 위해 청량리588에 방을 얻어 살던

 85년도 사진을 보니 당시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항상 빵모자를 쓰고 다녔으니, 동내 사람들이 스님인줄 알 리가 없었다.

아가씨가 "당신 직업이 뭐냐?"고 물으면월간 빠주간으로 청량리 특집 취재로 잠입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적음과 한 방을 쓰게 된 것은 내가 전농동으로 짐을 옮긴지 며칠되지 않아서다.

함께 머물며 글을 쓰겠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동반자가 생겨 힘이 생겼는데, 그것도 잠깐일 뿐 허구한 날 글은 안 쓰고 민폐만 끼쳤다.

단골식당의 밥값이야 당연히 감당하지만, 내가 준다며 외상 진 술값이 한두 푼이 아니었다.

천만다행인 것은 화대는 외상이 되지 않는 점이다.

 

전농동588을 방문한 김용복, 유성준 사우와 한담을 나누고 있다.

적음 외에도 나의 작업에 관심을 가진 동료들이 가끔 방문하면, 술집으로도 활용하는 찻집에 안내했다.

그곳은 윤락업소에 바로 가기 민망한 남정내들이 잠시 들려 차 한 잔 마시며

탐색하는 장소로 활용되는데, 유일하게 적음만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돈이 없는 걸 알기도 하지만, 장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당시는 월간사진편집장으로 근무할 무렵이라 낮에는 없을 때가 많았다,

그 역시 인사동이나 다른 곳에서 술 마시며 떠돌다 밤 늦게 모습을 드러냈고,

때로는 술이 취해 새벽녘에 들어오기도 했다.

약 한 달 가까이 그런 생활을 반복하다 봉화 청량사로 훌쩍 떠나버렸다.

 

방에 모셔둔 원고지 뭉치는 그대로 두고 떠났는데, 글 한자 쓰지 않은 백지였다.

 좋은 글을 기대했으나, 연이 닫지 않는 것 같았다.

세상을 떠난 지금 생각하니, 그런 기행마저 그리움이 되어버렸다.

신촌이나 인사동에서 벌인 기행의 연장선인 셈이다.

 

85년 동아미술제 대상작품 / 조문호의 '홍등가'

내가 청량리를 찾게 된 것은 1983년 어느 날 동아일보에 실린 동아미술제공모 요강을 보면서다.

당시 '동아미술제'의 사진부문 공모는 2년 전에 주제를 공고해 합당한 작업의 시리즈로 출품하는 형식인데,

그 때 내걸었던 주제가 바로 직업인이었다.

당시는 직장 때문에 자유로이 찍을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아 퇴근 뒤 찍을 수 있는 대상을 찾다보니,

밤일하는 직업여성 청량리 윤락녀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찍은 사진을 출품해 대상을 받았으나, 난감했다.

실상도 제대로 모른 채, 당사자의 동의 없이 찍었기 때문이다.

마침 상금에다 대상 작품까지 팔아, 빈 집에 소 들어 온 격이었다.

그 돈으로 588에 방을 얻어 본격적으로 작업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588로 들어가 작업한 몇 년 동안 가족은 물론, 경제적 육체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들과 친해지고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과 관계를 맺는 방법 밖에 없었다.

성병으로 '청량리 보건소'를 드나들었고, 때로는 불량배들에게 얻어맞기도 했으나 포기할 수 없었다.

 

'전농동588'; 전시 팜프렛 표지

그렇게 작업한 사진을 모아 90년도에 전농동588번지전시를 열었으나 실망했다.

당사자들이 전시회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던 것은 벌떼처럼 달려든 언론의 폐해였다.

사회 멸시에서 벗어나 사람대접 받으려 작업에 동참했으나, 그들의 삶보다 선정적인 기사로 도배했다.

청량리 윤락가가 사라질 때까지 기록하려던 당초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요즘 동자동에 살며 철저하게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그 이후 30여 년 동안 서랍에 잠들던 필름을 꺼내 사진집으로 엮은 것이 눈빛에서 발행한 청량리588’이다.

적음스님은 열반에 들었고, 588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으나 사진만 남은 것이다.

 

지금쯤 중년이 되었을 그 시절 여인들의 안녕을 빈다.

 

사진, / 조문호

 

눈빛사진가선 시리즈 11호 '청량리588'사진집 표지 / 가격12,000

 

공영개발과 민간개발을 사이에 둔 쪽방 주민과 건물주의 갈등으로

 재개발이 지연되고 있으나 윤석렬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눈치만 보는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에 쪽방 주민들은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을 보낸다.

 

문제는 매서운 한파보다 언제 쫓겨날지 몰라 더 불안해 한다.

 

서울지역에 몇 남지 않은 쪽방촌인 동자동은 건물 63채에

한 평 남짓의 쪽방 1170칸이 벌집처럼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거주자 861명 중 기초생활수급자가 절반 이상이고, 장애인 등록자도 10%를 넘는다.

 

주민 대다수가 50대 이상의 남성으로, 65세 이상 독거노인 비율도 35%에 달한다.

 

이곳은 병들고 늙어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죽지 못해 사는 곳이다.

 

오래된 건물들은 웃풍이 심해 입을 열 때마다 입김이 나와 안경에 서리가 낀다. 

 

두꺼운 옷을 껴입어도 모자라 이불을 뒤집어 쓰고 전기장판에 의지해 사는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연료비마저 폭등했다.

 

한파가 휩쓸고 간 지난 30일은 기온이 영상으로 올랐으나 쪽방촌의 냉기는 여전했다.

 

다가구 주택을 쪼개기한 방들이 다닥다닥 붙은 쪽방문은 낡은 목재라 불안하기 짝이없다.

 

취사시설이 없는 좁은 방에서 불을 지펴, 항상 화재에 노출되어 있다.

 

좁은 방이라 조그만 여유도 없어 복도에 둔 신발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공용 화장실은 설거지까지 하느라 아침녘이면 줄을 서야한다.

 

대부분 수십 년 된 건물이라 제대로 된 곳은 하나도 없다.

 

방음은 물론 누수로 계단이 얼어붙어 얼음판을 지나 다녀야 하지만,

집주인에게 수리를 요구해도 불편하면 이사 가라는 말만 반복한다.

 

한겨레 / 강창광기자

아무리 돈에 눈이 뒤집혀도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조선일보/고은호기자

그럼에도 쪽방촌 주민들의 새해 소망은 소박하다.

 

언제 거리로 내몰릴지 모르지만, "서로 의지하며 살아 온 곳에서

마음 편히 발 뻗고 잘 수 있는 잠자리면 족하다빠른 재개발을 원한다.

 

2020년부터 국토교통부를 중심으로 논의된 동자동 재개발은 올해 본격화할 전망이다.

 

하지만 공공개발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할 재개발은 건물주의 강한 반발에 막혀 있다.

 

 건물주들은 큰 수익을 낼 수 없는 공공개발보다 민간개발을 요구하며,

공공개발은 사유재산 침해라는 주장이다.

 

언제라도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에 떨어야 하는 쪽방촌 주민들은

여기서 쫓겨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호소한다.

 

만약 서울시나 정부에서 억지로 철거하고 내쫓는다면

 여섯 명이나 사망한 용산참사 같은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노숙인들에 대한 대책도 시급하다.

 

그들은 찬 바람이 몰아치는 길바닥에서 위태로운 삶을 산다.

 

사람이 죽어가는 이러한 위중한 현실에 정부는 부자 감세 같은 가진 자들을 위한 정책에 매달리고 있다.

 

더 이상 방치하면 빈민들의 민란이 일어날 수도 있음을 명심하여 조속히 대책을 강구하라.

 

사진, / 조문호

 

 

 

26일은 서울 전역에 눈이 내린다는 일기예보에 밤잠을 설쳤다.

 

눈이 오면 지저분한 것들을 모두 덮어버리는 순백의 세계도 장관이지만,

뽀드득 뽀드득 소리를 내는 눈 밟는 소리가 정겨워서다.

 

눈 치울 일이나 길이 미끄러운 불편함이야 따르지만,

 눈이 오면 어린애처럼 마음 들 떠는 것은 늙어도 어쩔 수 없다.

 

어제 밤엔 늦잠이 들어 오전 열시 무렵에야 일어났다.

 

쪽방에 창문은 있지만 옆 건물과 붙어있어 햇볕은커녕 바깥 날씨조차 알 수 없다.

 오로지 담배연기 빠져 나가는 배출구 역할만 톡톡히 해 준다.

 

마음이 바빠 서둘러 나가보니, 솜털 같은 눈발이 휘날렸다.

 

골목엔 간간히 눈 치우는 주민이 보였으나, 공원은 텅 비어 있었다.

 

눈이 내려 나처럼 신이 난 사람도 있었다,

 정재은씨를 골목에서 만났는데, 기념사진 한 장 찍어 달라며 포즈를 취했다.

 

다들 추운 날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티브이 삼매경에 빠진다.

 

그러나 티브이는커녕, 길거리에서 떨고 있는 노숙인이 걱정이다.

 

서울역으로 가기 위해 지하도를 내려가니, 계단 구석에 웅크려 울고있는 여인이 있었다.

옆에 파지가 깔린 걸 보니 그 곳에서 밤을 지샌 것 같았다.

 

무슨 사연으로 가출했는지 모르지만, 추위보다 자신의 처지가 더 슬펐던 것 같다.

 

서울역광장에 머무는 노숙인들은 찬바람 피할 곳을 찾아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선교단체에서 여러 동의 천막을 세워, 오가는 행인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예배를 시작할 때는 몇 명 안 되던 인원이 40여명으로 불어났다.

 

한 아낙은 흡연구역에서 담배 피우는 젊은이들을 향해 목이 터져라 구원을 외쳐댔다.

 

예배를 마친 이들은 추위를 피해 '서울역희망지원센터'로 가거나, 지하 통로로 뿔뿔이 흩어졌다.

 

서울역 지하도에 앉은 노숙인은 “평소에는 저녁 6시가 지나야 내려오는데,

오늘은 너무 추워 어쩔 수 없이 일찍 내려왔다”고 한다.

 

일부는 광장에 설치된 텐트 안에서 추위를 버티기도 했다.

따뜻한 커피와 떡을 나누어 준다니까, 어디서 나왔는지 금방 긴 줄이 형성되었다.

 

잠잠하던 텐트 안에서도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다.

 

텐트 지프를 열려고 손이 슬그머니 나왔는데,

반지를 낀 고운 손을 보니 여성 노숙인 같았다.

 

요즘 들어 여성 노숙인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모든 생활이 남성에 비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여성 노숙인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요구된다.

 

노숙인의 삶을 개선할 수는 없을까?

별도의 보호시설은 있지만, 그 곳에 가지 않는 이유는 술과 담배를 피울 수 없기 때문이다.

 

추운 고통을 감수해 가며 자유를 원하는 노숙인의 삶은 살얼음판처럼 위태롭다.

 

서울역에서 인사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먼 거리가 아닌데다, 인사동의 눈 내린 풍경을 기록하고 싶어서다.

 

인사동 거리는 눈 치우는 상인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골목에 자리 잡은 술집들은 대부분 문이 잠겼고, 내린 눈은 그대로 쌓여 있었다.

 

더러 한복을 입은 중국관광객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지만, 다들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남인사마당 입구에는 눈을 뒤집어 쓴 노점상 리어카가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연출했다.

 

눈 덮인 설경을 찾아 가까운 탑골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곳 또한 서울역광장의 살풍경과 다를 바 없었다.

 

빵과 두유를 얻기 위해 선 줄이 탑골공원에서부터 담장을 끼고 길게 이어졌다.

 

그 곳은 노숙인보다 집에서 눈칫밥 먹는 노인들이 더 많다.

춥고 미끄러운 눈길을 헤쳐 나와 빵조각 하나 얻기 위해

긴 줄을 서야하는 노인들의 속울음이 귓전에 들리는 것 같았다.

 

곳곳에 오갈 곳 없는 가난한 자들의 서러움이 넘쳐 나는데,

아름다운 설경이나 찾아 나선 스스로의 작태가 부끄러웠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인가?

가난한 자의 눈물을 팔아먹는 장사꾼이 아니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문제였다.

 

가난의 서러움을 껴안아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만, 방법이 없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권력자들은 자신의 이권에 눈이 어두워 아무런 관심도 없다.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들을 위한 투사라기보다, 싸우다 죽겠다.

 

새해는 가난한 이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눈이 아니라

내일을 꿈 꿀 수 있는 흰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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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사진가 김인태, 갤러리인사1010서 개인전
대자연 협곡과 사막, 식물을 촬영한 사진 공개
깊고 숭고한 사진으로 명성, LACMA가 작품 소장

미국 서부를 무대로 활동해온 재미 사진작가 김인태(76)가 15년 만에 한국에서 사진전을 갖는다. 김인태는 오는 2월 22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인사1010(관장 김수진)에서 '선율'이라는 타이틀로 개인전을 개최한다. 이번 초대전에 작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천변만화하는 대자연과 그 변화 가운데 발생하는 찰나의 경이로운 순간을 포착한 사진들을 고국 팬들에게 선보인다.

 

김인태, '12 Coyote Buttes(코요테 버츠)'. 마치 추상화처럼 보이는 이 사진은 미국 아리조나 Paria캐년의 붉은 사막 언덕을 찍은 작품이다.

김인태는 지난 2006년과 2008년 서울 인사동에서 개인전을 열며 국내에도 적지 않은 팬을 확보했다. 이번에 오랜만에 갤러리인사1010 초대로 작품전을 갖는 작가는 미국 대자연의 풍광을 촬영한 장엄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 사진을 비롯해 고요하게 빛나는 식물사진 등을 출품한다.

 

김인태 작가는 경기도 문산에서 태어나 1967년 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학교)에서 사진을 전공한 후 월간지 기자 등으로 활동했다. 그리곤 1980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현지에서 사진작가로 활약해왔다. 광활한 미국의 협곡과 사막 등 대자연을 담은 사진으로 이름을 떨쳐온 작가는 목련, 튤립 등을 담은 꽃 사진으로도 알려져 있다. 또 2000년대 중반에는 금강산을 직접 찾아 금강산의 비경을 그만의 시각으로 담아내기도 했다.

 

작가는 한 사람의 구도자처럼 끝없이 기다리고, 갈망하며 대자연 속에서 빛과 그림자가 신비롭게 융합하는 순간을 포착해 이를 카메라에 담는다. 이 때문에 그의 작업은 절대적인 기다림과 섬세한 교감의 합작품으로 평가받곤 한다.

 

김인태, 'Lotus'. 활짝 핀 연꽃을 클로즈업해 찍은 작품. 김인태의 흑백사진은 '동양적 관조의 세계를 느끼게 한다'는 평을 받는다.

김인태의 작품은 미국의 사진 전문잡지 'B&W'의 2004년 6월호 표지를 장식한바 있다. 또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뮤지엄(LACMA)에 그의 사진 작품이 소장돼 있고, 영국 왕립사진가협회와 스위스의 그라피스연감에서도 인정하는 작가다.

 

김인태는 이번 작품전을 준비하면서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자연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대자연의 위용이 빛을 만나 더욱 찬란하게 빛나는 찰나의 순간과 그 안의 선율을 담아내기 위해 끝없이 인내하며 무수한 날을 지새워야 했다. 사막같은 곳의 장관을 표현하기에는 새벽녁이 최적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미국 내에서도 많은 곳이 폐쇄됐고, 특히 LA에서는 동양인을 향한 증오 범죄들이 발생하는 상황에도 김인태는 무거운 카메라장비를 품에 안고 끈질기게 작업에 매달렸다.

 

작가는 "내가 찾고자 하는 선율은 작은 꽃 한 송이에도 있고, 광대한 산맥 속에도 있다. 찰나에 발생하기도 하고 몇 년에 걸쳐서 발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인태는 모든 선율 가운데 존재하는 조화와 경이로움, 그리고 섬세함을 주목하고, 끊임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자연과 온전히 하나가 되는 그 순간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는 말한다. 대자연의 웅혼함을 접할 수록, 또 작고 연약한 꽃들 속에 깃든 빛나는 아름다움을 접하면 접할 수록 창조주의 작품임을 깨달을 수 있다고.

 

미국 서부 모하비 사막을 찍은 김인태의 흑백의 사진작품. [[사진= C김인태, 갤러리인사1010].

이번 전시는 한국 이민자로서 미국 사진예술계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김인태 작가를 초청해 그의 작품 속에 내재돼 있는 작가로서의 경험, 정신, 그리고 소명을 조명하는 자리다. 반세기 넘게 이어온 이민자로서의 삶과 예술가로서의 소명이 김인태의 작품마다 켜켜이 녹아들어 있다. 그의 사진을 접한 미국인들은 분명 미국의 대자연을, 미국의 꽃과 식물을 찍은 사진들이나 대단히 명상적이고 철학적이라 평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또한 이번 '선율' 전시에 나오는 작품들은 모두 고요하면서도 깊은 사색을 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어느새 작가로 활동한지 반세기를 맞는 김인태의 기나긴 사진가로서의 삶이 투영된 작품들은 초스피드로 급박하게 달려가는 지금의 세태 속에서 날로 희귀해지고 있는 구도와 기다림이라는 가치를 성찰하게 한다.

 

김승곤 국립순천대학교 석좌교수는 이번 전시와 관련해 "극적인 광선과 색채에 의해서 드러나는 대자연의 형상을 대형 카메라로 정치하게 빚어낸 사진 서사시다. 오랜 기간 풍경 사진의 원점을 추구해온 김인태 작가의 작업을 집대성한 기념비적인 전시가 될 것"이라고 평했다.

 

작가 김인태는 이번 개인전에 앞서 "대자연의 웅혼함과 섬세함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날을 들여 관찰하고 렌즈에 담으면서 인간 존재의 불완전함을 절감했다. 보잘 것 없는 한 인간으로서 자연의 선율 속 위대한 찰나를 담을 수 있음에 늘 가슴 벅찼고, 감사한 마음이다"며 "이번 전시는 삼라만상 모든 걸 창조한 조물주에게 바치는 나의 신앙고백이자 찬양"이라고 밝혔다.

 

김인태의 사진전시 '선율'은 3월 14일까지 인사동 갤러리인사1010의 1관과 B관에서 열린다. 화요일 휴관.


[서울 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 art29@newspim.com

 

사진가 김인태

대자연 속에 오롯이 혼자 있을 때 자신의 영혼을 만나게 된다는 작가 김인태. 묵직한 촬영장비를 들고 미국의 협곡과 사막을 밤낮없이 누벼왔다.

김인태 작가는 경기도 문산에서 태어나 1967년 서라벌 예술대학에서 사진학을 공부 한 후 1980년 미국으로 이민하였다. 그는 미국 엘에이 카운티 뮤지엄(LACMA)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몇 안되는 한국 작가 중 한 명으로, 영국 왕립사진사협회와 스위스의 그라피스 연감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과 그 변화 가운데 발생되는 찰나의 경이로움, 연속되는 선율을 담고있다. 그는 지금까지도 미국 전국을 다니며 자연 깊은 곳으로 들어가 그 찰나의 순간 또는 선율을 담기위해 밤을 지새운다. “그 선율은 꽃 한 송이에도 있고 광대한 산맥속에도 있습니다. 찰나에 발생하기도 하고 몇 년에 걸쳐서 발생하기도 하지요.”

 

김인태 작가는 그 모든 선율 가운데 존재하는 조화와 경의로운 세심함을 바라보며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코로나로 인해 지난 몇 년 간 모두에게 두렵고 힘든 상황들이 발생했다. 많은 곳들이 폐쇄되어 접근을 불허했고, 특히 엘에이에서는 동양인을 향한 증오범죄들이 발생했다.

 

사람으로서는생명의 위협, 이민자로서는 거주지에서 발생하는 차별, 작가로서는 제한되는 활동,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두려워하기보다. 자신과 자신의 작품을 되돌아보며 주어진 상황 가운데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탐구하였다.

 

“이번 전시회가 그러한 상황과 시간 가운데 재점검 된 작품들과 새롭게 만들게 된 작품들을 전시함으로 공의로우시고 신실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가 되길 원합니다.” 코로나 이후 다시 가게된 현장들은 지금도 변함없이 경외롭고 감사하다고 김인태 작가는 말한다.

 

변하는 사람과 환경, 그 끊임없는 흐름 속에 존재하는 완전하고 아름다운 선율, 이 전시를 통해 인간은 불완전하고 보잘것 없는 존재지만 그 위대함을 표현 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을 전달하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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