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말년에 동네 사람들 초상 사진 찍느라 걱정이 많다.

설득에 설득을 하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촬영하지만, 대개 반기지 않는데 있다.

인물의 정신이나 개성보다 오로지 멋지게 나오는 걸 원한다.

 

“개 같은 개성 보다 멋지게 찍어달라~“란 말도 여러 번 들었다.

하기야! 어느 누가 마지막 남을 사진, 멋지게 남기고 싶지 않겠는가?

그래서 외출 때처럼 모자를 쓰거나 수염을 깎아  찍기도 하고,

그 사람 개성과 정신이 드러난 내 꼴리는 사진도 찍는다.

 

며칠 전에는 충무로에 가서 초상사진을 몇 장 뽑았다.

전시할 때까지 빚쟁이처럼 쫓기기도 싫지만, 자기 사진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해서다.

그러나, 다들 받아 보는 표정이 신통찮았다.

말은 안 하지만, ”사진을 이 따위로 찍냐?“는 것 같았다.

내키지 않으면 다시 찍어 주겠다고 말은 했으나,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 다음 날은 정동지가 교보문고에 책 살 일이 있어 기사로 따라나섰는데,

마침 장흥의 마동욱씨가 인사동에 있으면 얼굴이나 보자는 연락을 받았다.

책 보따리를 챙겨 약속한 귀천으로 달려 갔더니, 아는 분 결혼식에 왔단.

 

동네 구장 같은 마동욱씨의 넉넉한 모습은 여전했다.

모처럼 시원텁텁한 '귀천'의 모과차 한 잔 맛보며, 마동욱씨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 드론으로 인근 지역의 땅을 찍고 있다는데, 한편으론 답답한 생각도 들었다.

 

살고 있는 장흥은 물론 강진, 영암, 고흥 등 인근 지역 곳곳을 촬영하여 사진집도 여러 권 냈는데,

그 사진들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더구나 촬영하면 찍힌 장소의 지번까지 나온다니, 사진으로 찍은 지적도나 마찬가지다.

 

나 역시 동자동에서 초상 사진 찍으며 열 받는 일들을 하소연 했더니,

자기도 마을 어르신들의 영정 사진을 많이 찍어 봐, 그 사정을 훤히 안단다.

요즘은 주름까지 안 나오게 깨끗하게 수정해 줘야 좋아하지, 그냥 주어서는 안 건다는 것이다.

아무리 말끔한 사진이 좋다지만, 사람이 사람 같지 않고 인형같은 사진을 만든다면,

사진에 쪽팔리는 일이 아니던가?

 

그것은 인간 개인의 자존감을 떠나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짓이다.

사진찍기에 앞서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자존감을 심어주는 게 더 시급할 것 같았다.

사람이 사람 대접 받으려면, 초상 사진부터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

 

귀천에서 일어 나려니, 기다렸다는 듯이 차 빼 달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요즘은 걷기가 힘들어 휠체어처럼 차를 끌고 나오지만, 매번 골목에 세워 민폐를 끼친다.

 

인사동 거리를 달려가다, 복잡한 거리에서 반가운 분도 만났다.

인사동을 자기머리처럼 반질반질하게 만들겠다는 김발렌티노 였다.

 

그가 인사동 청소부로 등장한 지도 벌써 일 년이 넘었는데,

이젠 인사동의 또 하나 명물 아닌 명사가 된 것이다.

 

정동지와 마동욱씨가 골목안 풍경전시가 열리는 인덱스갤러리에 올라간 틈에

차를 주차장에 집어 집어넣고, 모처럼 인사동 길을 걸어 보았다.

 

주말의 인사동 거리를 남인사마당에서 안국역 빙향으로 걸었는데,

남인사마당에서 인사동 사거리까지는 아직 문 닫은 업소가 많았다.

 

나들이객도 남인사마당 쪽보다 북인사마당 쪽이 훨씬 더 붐볐는데,

인사동 사거리를 기점으로 나들이객의 쏠림 현상이 심했다.

 

옷가게와 잡화상이 진을 친 거리에는 봄나들이 객들이 부산하게 오갔는데,

봄은 왔으나 나들이 나온 사람들의 차림은 여전히 겨울이었다.

 

나 역시 봄바람은 불어도 마음과 몸은 돌덩이처럼 무겁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듯 최선을 다 할 뿐이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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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PORTFOLIO  01

神堂

SPECIAL PORTFOLIO  02

동자동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의 제13차 정기총회가 지난 318일 오후2시 동자동 성민교회에서 140여명의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총회가 끝난 후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의 신속한 추진을 촉구하는 결의문이 아래와 같이 채택되었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의 신속한 추진을 촉구하는 결의문

지난 202125,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용산구는 전국 최대 쪽방 밀집지역인 동자동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공공이 주도하는 사업인 만큼 개발이 되더라도 우리 동자동 주민들은 쫓겨나지 않고 총 1,250호가 지어지는 공공임대주택에 재정착 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하여 우리는 이제 따뜻한 물이 나오고 화장실이 딸린 나만의 보금자리, 집다운 집에서 살 수 있겠구나 기대에 부풀어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을 적극 환영하였다.

 

하지만 공공개발 계획 발표2년을 넘긴 지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우리는 사람이 살아간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열악하기 짝이 없는 공간에서 무더위와 추위를 온몸으로 맞으며 살고 있거나, 한 해 30명 이상 죽어나가고 있다. 국토부는 공공개발한다고 했으면 해야지, 언제까지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아무런 결정을 하지않고 갈팡질팡 할 것인가? 주거권은 인권이며, 지연된 인권은 정의가 아니다. 공공주택사업을 반대하고 민간개발을 주장하고 있는 소유주들 눈치 보느라 2년의 세월을 허비하며, 한 없이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국토부를 규탄한다. 국토부는 하루속히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지구지정하고, 약속한 계획대로 사업을 추진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민간개발을 주장하는 소유주들은 공공개발 계획 발표 당시부터 보기에도 삭막한 붉은 깃발과 섬뜩한 구호들이 담긴 현수막을 온 동내에 걸어 놓더니, 지난 달 24일 열린 국토부 주민설명회 때는 너무 거세게 저항하고 훼방을 놓아 결국 설명회를 무산시켜 버렸다. 처음으로 열리는 국토부 주최 주명설명회라 우리는 나름 기대를 갖고 어떤 말을 하는지 들어보기 위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그 먼 곳까지 찾아간 것인데, 탐욕 앞에 인간이길 포기한 것 같은 소유주들과, 그 앞에서 준비해 온 말을 한마디도 꺼내지 못하는 국토부의 모습에 억울함과 화가 머리끝까지 치미는 걸 겨우 참으며 헛걸음으로 돌아왔다.

 

민간개발 주장 소유주들은 우리 주민을 비하하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고, 그들이 든 피켓 내용도 무시무시했다. "수급자 차상위 받지 말자, 다 쫓아내자, 나랏돈이나 받아먹고 있지 뭐 하러 나왔냐?, 금싸라기 땅, 서울 한 복판에 임대주택이 웬 말이냐?, 내 시체 위에 공공임대 지어라..." 이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말들이다. 화가 북 받친다. 땅과 건물 가진 자들만 사람인가? 우리도 사람이다. 설명회장에서 우리도 목소리 내고 외칠 수 있었다. 인신공격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이기에 화를 참고 억누르며 끝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공공주택사업을 못하게 방해하는 자들이 과연 누구인지, 또 공공주택사업을 빨리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자들이 과연 누구인지 생생히 지켜보면서 말이다.

 

우리는 오로지 민간개발만이 진리인 냥 부르짖는 소유주들의 태도에 같은 인간으로서 비애와 분노를 느끼는 한 편, 깊은 우려를 하고 있음도 밝힌다. 우리가 아니면 여기 집들은 비어 있을 것이다. 돈 있는 자들이 여기서 살겠는가? 우리 아니면 어찌 배가 불렀겠나? 주택문제는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모두에게 다 중요하다. 주거를 돈벌이로 생각하고 자기 욕심만 채우려고 공공임대주택을 못 짓게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공공임대주택은 우리에게 꼭 필요하며, 공공주택사업은 반드시 성사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난 2년간, 우리의 주거권을 보장받기 위해 엘에이치(LH) 특별본부, 서울시청, 광화문청사, 세종청사, 용산대통령집무실 등에도 갔으며, 서명, 기자회견, 사진전, 언론 인터뷰, 일인시위, 집회 등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해왔다. 그렇다고 지금은 멈추고 잠잠할 때가 아니다. 바로 이 곳 이 자리에 지어질 깨끗하고 쾌적한 공공임대주택에 들어 가 어깨춤 출 그날까지 우리는 힘을 더 모우고 목소리를 더 크게 낼 것이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단결하며 결집된 모습으로 굳건히 싸워나갈 것을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하나,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발표대로 추진하라!

하나, 사람들이 죽어간다. 사업지구 빨리 지정하라

하나, 사는 사람이 주인이다. 우리도 집다운 집에서 살아보자!

하나, 동자동 주민들이 똘똘 뭉쳐 주거권을 쟁취하자!

(동자동)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제13차 정기총회 참가자 일동

2023318

 

 

동자동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이사장: 김정호)의 제13차 정기총회가 지난 3월18일 오후2시 동자동 ‘성민교회’에서 140여명의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여태 코로나로 인해 서면 총회로 진행하다 모처럼 갖는 대면 총회라 그런지 평소보다 화기애애한 총회였다.

 

동자동주민들이 힘을 합쳐 공동체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창립된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가 탄생한지도 어언 13년이 되었는데, 조합원355명에 총자산이 5억이 넘는 등 괄목할만한 성장을 했다.

 

지난 년 말까지의 출자금이 4억6천8백7십만원에다 누적대출은 4732건에 총 11억1천만원을 상회하는 등 출자와 대출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타 협동회보다 모범이 되는 단체로 성장해 주변 단체들의 부러움을 샀다. 

 

최갑일 사업위원이 진행한 1부 기념식에는 유명을 달리한지 3주기를 맞은 유영기 전이사장의 추모영상이 상영되며, 고인을 기리는 묵념의 시간도 가졌다.

 

그리고 ‘돈의동주민협동회’ 홍석준이사장과 ‘한국주민운동교육원’ 한순미 대표, 박재천 초대대표 등 여러 내빈들의 축사에 이어 진행된 김정길 이사에 대한 감사패 수여는 본인 불참으로 정대철씨가 대신 받았다.

 

기념촬영 후 2부로 이어진 정기총회는 의장을 맡게 된 김정호이사장의 진행 아래 선동수간사가 총회 정족수를 채웠다는 성원보고로 시작되었다.

 

이명애감사의 감사보고 승인에 이어, 2022년 사업 결산보고에 따른 잉여금 728,630원은 각종 적립금으로 승인했다.

 

이어 김호태 위원의 진행으로 25년 3월까지 '사랑방마을협동조합'을 이끌어 갈 새 임원 선출이 진행되었다.

 

지난 2월 17일 전체 임원 연수에서 임원 후보를 추천하고, 3월2일 이사회에서 승인된 임원후보 10명은 총회에서 조합원 만장일치로 가결되었다.

 

후보로 추천되어 선임된 분은 고문에 김정길, 이사장에 김정호, 부이사장에 양정애, 이사에 김영자, 윤용주, 정대철, 차재설, 최갑일, 감사에 최순규, 한순미씨다.

 

2023년 사업계획안 27,000,000원에대한 예산안이 최종 승인된 후,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의 신속한 추진을 촉구하는 결의문이 채택되기도 했다.

 

총회가 끝난 후 기념품으로 트리오를 참석 조합원 전원에게 증정했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3일은 정동지와 아산으로 봄나들이 갔다.

요즘은 몸이 편치 않아 꼼짝하기 싫지만, 오래 전부터 한 약속이라 어쩔 수 없었다.

장터나 유적지로 떠나는 촬영 길이 아니라, 모처럼 김선우를 만나러간 것이다.

 

양햇살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전갈도 있었지만, 겨우 내 한 번도 가보지 못했으니, 어찌 궁금하지 않겠는가

선우와 만나기로 한 장소는 집터가 있는 곳이 아니라 한우로 유명한 염치면 식당이란다.

 

도착하니 김선우, 양햇살, 김창복씨가 먼저 와 있었다.

햇살은 폐차시킬 정도의 큰 사고였으나, 천만다행으로 턱만 조금 찍혔지 다른 곳은 멀쩡했다.

'하나님이 보호하사'였다. 아이쿠! 그 날 햇살이가 이름 바꾸었다고 알려주었으나 깜빡 잊어 버렸네.

육회비빔밥을 시켜 아침 겸 점심을 맛있게 먹으며, 이야기 듣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2년 전 아산 현충사 둘레 길 한적한 곳에, 어느 목수가 살던 오래된 헌집을 샀다기에 구경 간 적이 있는데,

그 집을 개보수하여 미술관으로 만든 것이다.

어떻게 변신했는지 보고 싶어 김창복씨 따라 현장으로 달려갔다.

 

입구에는 백암길185 미술관이란 조그만 현판이 붙어 있었고,

오래전 수박 먹던 마당에는 여러 명이 쉴 수 있는 휴식공간도 만들어 놓았더라.

폐가나 다름없는 허름한 시골집이 아담한 갤러리로 변신한 것이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이전과는 전혀 다른 구조의 갤러리가 되어 있었는데,

벽에는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전시했던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사진 26점이 걸려 있었다.

 

하잘 것 없는 자재도 버리지 않고 재활용한 알뜰함이야 말 할 것도 없고,

바닥에는 황토와 콩기름 먹인 장판지가 깔려 있었는데, 어릴 때 살던 고향집 방바닥을 떠올리게 했다.

선우의 추진력과 섬세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돈만 있다면 건축업체에 맡겨 그보다 더한 것도 만들 수 있으나, 돈 들이지 않고 힘 모아 만들어 더 애착이 갔다.

요즘은 건축자재비보다 인건비가 더 비싸 업자에게 맡겼으면 당연히 허물고 새로 지었을 것이다.

 

청년 공감문화 플랫폼을 끌어가는 김선우는 작은 여장부다.

공동체의 김창복씨가 다방면에 경험 있는 전문가이긴 하나,

남의 일손은 전혀 끌어들이지 않고, 연약한 햇살이 까지 달라붙어 함께 만들었다고 한다.

 

아산 온천동 상가의 공유공간 마인에 이어 두 번 째 만든 백암길185 미술관은 현충사 산책길이라,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는 아산의 명소가 될 것으로 짐작된다.

 

뒤늦게 김온도 나타났는데, 전시된 사진을 바라보며 따뜻한 방바닥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가족들이 둘러앉아 정담 나누던 아련한 추억까지 떠올랐다.

 

그런데, ‘백암길185 미술관으로 끝나지 않고, 다음 달부터 본거지에 내가 머물 집을 짓겠다는 말에 겁이 덜컹 났다.

정선 작업실이 불난 후 여러 지인이 후원금을 보내주어, 함께하는 공간을 만들어 초대하겠다는 약속은 했지만,

다 버려야 할 때 집은 지어 무엇 하겠는가?

 

화재 보험에서 나온 이천만원을 보태어 조그만 거처를 만든다지만,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다.

물질과는 거리 둔지 오래지만, 사진과 좋아하던 사람까지 싫어지는 판에...

 

요즘은 전시장 나들이는 물론 웬만한 모임에도 가지 않고 동자동에서 지내는데,

정동지 사는 녹번동보다 아무도 없는 쪽방이 더 편하다.

 

'버려진 사람의 초상' 사진 찍으며, 쉼 없이 죽어가는 사람처럼 눈 감고 싶다.

 

사진, / 조문호

 

 

 

김창길의 사진공책

픽셀 Pixel, 하트 Heart ⓒ황규태,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호모’로 시작되는 인간에 대한 작명은 다양하다. 생각하는 인간 ‘호모 사피엔스’, 도구를 사용하는 ‘호모 파베르’, 놀이하는 ‘호모 루덴스’ 등의 고전적 이름들은 지금도 인간에 대한 본질을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후죽순 생겨난 신조어들은 복잡한 현대사회의 일면들을 좀 더 세밀하게 반영하는 듯하다. 정보화 시대의 인간을 뜻하는 ‘호모 인포매티쿠스’, 디지털 시대의 ‘호모 디지쿠스’, 소비하는 인간 ‘호모 콘수머스’, 플라스틱 없이 살 수 없는 ‘호모 플라스티쿠스’, 스마트폰을 손에 든 ‘호모 모빌리스’, 그리고 사진을 찍는 인간 ‘호모 포토쿠스’.

 

한국을 대표하는 호모 포토쿠스 네 명의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이 있다. 1996년 강운구 작가가 서울 인사동 한 찻집에 있던 세 명의 호모 포토쿠스를 찍은 흑백 사진이다. 한정식, 김기찬, 그리고 황규태. 사진을 찍은 이는 찻집 유리에 반사된 실루엣으로 등장한다. 앞에 두 사람은 세상을 떠났다. 강운구 작가는 “시간은 시계 속에 그대로이고 사람들은 지나갔다”며 그의 사진집 <사람의 그때>에 아쉬움을 적었다. 황규태 작가는 2년 전 강 작가의 사진전이 열렸던 부산 고은미술관에서 회고전 <사진에 반-하다>를 열고 있다. 1960년대의 ‘흑백 스트레이트’ 사진에서 시작해 사진의 경계를 넘어서는 최근 작품들을 펼쳐 놓았다. 전시는 아쉽게도 내일(12일)이 마지막이다. 기사를 남겨서 황규태 작가의 작품들을 계속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놓자는 생각이 들었다. 황규태라는 호모 포토쿠스는 두고두고 곱씹어봐야 할 사진의 화두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에 반-하다>는 앞서 말했듯 사진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몸부림을 보여준다. 그래서 ‘반-하다’의 ‘반’은 사진이라는 매체에 반대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물론, 사진에 홀딱 반했다는 뜻도 품고 있다. ‘열화당’ 사진 문고에 적어놓은 황규태 작가의 표현은 이렇다. “사진의 모든 것이 사진이고 모든 것이 사진이 아니다. 복사기도 스캐너도 모두 카메라이다.” 첫 문장은 알쏭달쏭하다. 그러나 두 번째 문장은 그가 아무래도 우리가 생각하는 통념과 다른 사진을 추구한다는 점을 확실히 알 수 있게 한다.

 

사진에 대한 정의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우리는 대개 사진의 기원을 프랑스의 루이 다게르가 1939년에 발명했다고 선언한 사진술에서 찾는다. 요오드 용액을 이용한 은도금 동판에 상을 맺히게 하는 은판사진술로 ‘다게레오타이프’로 불린다. 하지만 당시의 사진술은 다게레오타이프 뿐만 아니라 다양한 타입이 존재했다. 그와 같은 나라에 살았던 이폴리트 바야르와 영국의 폭스 탤벗은 종이를 이용한 ‘칼로타이프’를 발명했다. 다게르의 사진술도 독자적인 발명은 아니었다. 그는 역청을 바른 백랍판을 이용해 1826년 경 창밖 풍경을 찍은 발명가 니에프스의 사진술을 참고했다. 이들 이외에도 감광성 표면 위에 이미지를 정착시키려는 사진술을 고민했던 사람들은 많았다. 1790년부터 1839년까지 24명에 달했는데, <사진의 고고학>을 쓴 미술사가 제프리 베첸은 이들을 ‘원시 사진가’로 부른다. 그의 조사에 따르면 사진술의 기원은 특정할 수 없다. 다만 비슷한 시기에 사진을 향한 욕망이 여기저기서 출현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사진의 기원은 물론 단일한 사진의 정체성도 없다. 빅터 버긴, 존 탁 등 포스트모던 비평가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의미는 맥락에 의해 결정되므로 사진 자체라고 할 만한 정체성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진은 미술관에 걸리면 예술이 되고, 과학자의 진리를 뒷받침하고, 범죄의 증거가 되며,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보도사진이 된다. 따라서 그들은 ‘사진이 아니라 사진들’을 거론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황규태 작가의 사진은 이러한 맥락에서 포스트모던하다고 할 수 있다. 황 작가는 “복사기도 스캐너도 모두 카메라”라고 말했다. 묵직한 독일 카메라로 찍어야만 작품 사진인 것은 아니다. 그는 빛에 반응하는 이미지를 움켜잡으려는 모든 장치들을 활용한다. 세기말에는 디지털 사진이 과연 사진인가라는 논란도 있었다. 하지만 디지털 사진 역시 사진의 맥락에 자리 잡을 수 있다. 필름 대신 센서에 닿은 빛에 대한 반응을 디지털 정보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인화된 사진조차도 디지털로 스캔하고 복원해 스마트 기기를 통해 바라보는 호모 디지쿠스가 아니던가.

 

흑백 Black and White ⓒ황규태,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호모 포토쿠스로서의 본격적인 삶은 1960년대에 시작됐다. 1963년 황규태는 경향신문사 사진기자가 된다. 이형록, 전몽각 등 걸출한 사진가들이 활동했던 현대사진연구회에도 몸담았다. 이 시절 남겨놓은 흑백 사진 중에는 초현실적인 장면들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사진이 검정 원피스를 입은 여인을 찍은 사진이다. 그녀의 허벅지와 오른손은 프레임 밖으로 잘려 나갔다. 구도가 역동적이다. 초점은 흐리다. 앵글은 다소 높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다. 무릎을 구부리며 수줍게 인사하는 장면이라고 상상해보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궁금증은 풀리지 않는다. 어떤 내용이었는지 떠오르지 않고 오로지 한 장면만 기억에 남아 있는 꿈속의 찰나 같은 느낌이랄까. 짝사랑에 빠진 사내의 개운치 않은 백일몽의 한 장면 말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나섰던 것일까? 1965년 황규태는 미국으로 건너간다. 호모 포토쿠스로서의 정체성은 타국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컬러사진 현상소에서 돈을 벌었다. 기술자로 안주하기에는 호기심이 너무 강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실험정신으로 가득 찬 테라(tera)급 바이오칩이 심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황규태는 사진과의 놀이를 시작했다. 필름을 태우고, 오리고, 붙이고, 겹치고, 합성하고, 확대하고…. 정통 사진을 고수하는 사람들 눈에는 불경스러운 짓이었지만,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전위적이라며 ‘아방가르드’라는 예술 용어를 헌사했다.

 

버노그라피 Burnography, 녹아 내리는 태양, Melting the Sun (왼쪽) / 포토몽타주 Photo Montage, 크리스티나의 세계 Christina&lsquo;s World - 앤드류 와이어스 이후 After Andrew Wyeth ⓒ황규태,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버노그라피(burnography). 필름을 태워(burn) 만든 사진(photography)이라고 작명한 황규태의 사진술이다. 그가 원조는 아니었다. 1930년대 초현실주의 화가 라울 위박이 처음으로 흑백 필름을 태웠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황규태의 필름은 컬러였다. 컬러에서는 그가 원조라지만, 이제 기원이나 원조에 관한 이야기는 그만하자. 앞서 말했듯이 사진의 의미는 맥락에 의해 결정된다. ‘녹아내리는 태양(Melting the Sun)’은 태양을 찍은 필름에 열을 가해 뒤틀린 이미지를 인화한 사진이다.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사진을 가능하게 하는 빛의 근원인 태양을 불태운다는 아티스트로서의 실험 정신, 그리고 지구 온난화에 대한 우려감이다. 이즈음 그는 맥락이 다른 사진들을 합성한 몽타주 작품들도 내놓았다. 핵무기의 위험성과 문명 비판적인 메시지가 담긴 포토몽타주였다.

블로우업 Blow up ⓒ황규태, 고은사진미술관

블로우 업(Blow Up). 이것은 사진술이라기보다는 극단적인 크로핑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초기 흑백 사진들의 세부를 2000년대에 확대(blow up)한 작품들이다. 부인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사진가는 자기가 찍는 장면을 완벽하게 파악하며 셔터를 누르는 것은 아니다. 화가는 장님이라고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이야기했다. 그려야 할 대상을 바라보던 화가는 캔버스 위에 실제로 그림을 그리는 그 순간만큼은 실재의 대상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진에도 해당한다. 뷰파인더를 통해 피사체를 바라보던 사진가는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 셔터막이 닫히기에 피사체를 볼 수 없게 된다. 아주 짧은 찰나이기에 사진가들은 이를 체감하지 못할 뿐이다. 황규태 작가는 자기가 찍어놓고 몰랐던 사진의 부분들을 극단적으로 확대한다. 결과물은 그의 초기 흑백 사진과 마찬가지로 초현실적이다. 상체가 잘려 나간 한 여인의 걷는 모습은 오싹한 느낌이다. 한마디로 악몽이다.

 

사진의 세부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려는 욕망은 오래됐다. 발터 벤야민과 함께 ‘원시 사진비평가’라 부를 수 있는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는 1927년 독일 신문에 실린 영화 스타의 사진을 보며 다음과 같이 썼다. “돋보기를 대고 들여다보면 그녀, 곡선, 호텔이 수백만 개의 작은 망점과 그리드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이미지는 망점들의 모자이크가 아닌 리도의 살아 있는 스타다.” 황규태 작가가 들여다본 것은 신문 사진이 아니라 TV 화면이었다. 루페(돋보기)를 통해 확대된 모니터의 세부는 반복되는 사각 무늬였다. 그는 모니터를 접사해 찍고, 그 결과물을 또 접사해 찍는 작업을 반복했다. 이렇게 확대를 반복한 끝에 목격한 픽셀의 어떤 이미지는 자기 머릿속에 심어진 바이오칩과 닮은꼴이었다.

픽셀 Pixel, 반복과 차이 Repetition and Difference - 질 들뢰즈 Gilles Deleuze. ⓒ황규태,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반복과 차이(Repetition and Difference)’. 철학자 들뢰즈의 말을 차용한 픽셀 사진의 제목이다. 차이는 반복을 통해 얻어지는 감각이라는 것인데, 기존의 사전적 단어 풀이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현대 철학의 논리이다. 반복되는데 어떻게 달라진단 말인가? 하지만 황규태의 픽셀 시리즈 사진을 본다면 들뢰즈의 사유를 짐작하게 한다. 힐끗 쳐다본다면 황 작가의 픽셀 사진은 반도체 형태가 동일하게 반복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반복되는 패턴에서 서로 다른 세부 형태들을 발견하게 된다. 단 한 번이라도 반복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단 하나의 이미지로서는 비교될 대상이 없기에 동일성이나 차이점도 따져볼 수 없다. 그래서 차이는 반복되어야 생성될 수 있는 것이다.

 

세부와 전체의 관계는 어떨까? 크라카우어는 ‘작은 망점들의 전체는 모자이크의 합이 아니라 살아있는 여배우의 얼굴’이라고 했다. 그에게 세부는 전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황규태가 발견한 사진의 세계는 다르다. 이미지의 기본 단위인 픽셀이 그 자체로 하나의 형태로 나타난다. 반복되는 픽셀의 집합은 우연히 ‘하트(Heart)’ 모양이 되고, ‘육각형 생삭코드 그라데이션(Hex Color code gradation)’이 되며, 셜록홈즈 머리 모양이 된다. 황 작가는 셜록홈즈의 실루엣으로 나타난 픽셀 사진을 ‘게슈탈트(Gestalt)’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부분과 전체의 형태에 대한 감각을 뜻하는 독일어다.

픽셀 Pixel, 게슈탈트 Gestalt - 형태심리학 Configurationism (왼쪽) / 픽셀 Pixel, 육각형 색상코드 그라데이션 Hex Color code gradation ⓒ황규태,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황규태 작가의 근황을 물었다. 허리가 고장이 나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온종일 컴퓨터를 들여다본 결과였다. 그의 작업실에는 컴퓨터는 있지만, 카메라는 없단다. 그래서 20여 년 전, 그가 그렇게 말했던 거였다. 복사기도 스캐너도 모두 카메라라고.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밤하늘의 별도 찍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니던가. 무엇을 어떻게 찍느냐도 중요하지만, 도처에 넘쳐나는 사진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더 중요할 수 있다. 누군가 무심히 찍은 단 한 장의 사진 속에 우주의 모든 것들이 담겨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황규태라는 이름의 호모 포토쿠스는 그렇게 사진의 우주를 탐사하고 있다.

 

경향신문 / 김창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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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남길 끼 있다고 초상사진을 찍어?”

이 말은 초상사진 찍자는 말에 아래 층 사는 오씨가 뱉은 말이다.

쪽방 사는 분이나 노숙인들은 대개 영정사진 찍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지긋지긋한 삶을 다 지우고 싶은데, 사진은 남겨 뭘 하냐?’는 것이다.

봉사단체에서 가끔 쪽방 주민들 영정사진 찍어주러 오지만, 대부분 허탕 치는 이유다.

 

그런 사정을 알면서도 ‘서울문화재단’에서 실시한 원로예술 지원 사업의 주제를 “버려진 사람들의 초상”으로 정해버렸다.

초상사진이 사진의 꽃이기도 하지만, 폐배 주의적 생각을 버리게 하고 싶어서다.

 

배경 막 앞에 앉아 찍는 판박이 사진이 아니라  그 사람 정신이 오롯히 담긴 작품으로 승화시키겠다는 야심찬 각오다.

그럴려면 사진 찍는 목적과 가치를 확실하게 밝혀 당사자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급선무였다.

 

동자동 살며 한 번도 개인적 신분이나 사진 찍는 목적을 밝힌 적이 없어, 대부분 쪽방으로 밀려난 늙은 사진사 정도로 알고 있다.

쪽팔려 스스로의 이야기도 못하지만, 안간적인 교류나 작업에 장애가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동자동 들어 와 제일 신경 쓴 문제가 언론에 노출되지 않는 일이었다.

오죽하면  '노숙인 길에서 살다' 책이 나와도 보도자료는 커녕 인터뷰 요청도 거절했겠는가?

 

유명세의 폐해를 너무 잘 알지만, 그들이 싫어하는 초상사진을 찍으려면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기존 영정사진과 다르다는 확신을 주지 않으면 찍지도 않지만,

충분히 공감하고 소통하지 않는데 무슨 좋은 초상사진이 나오겠는가?

그래서 모든 것을 까발리는 적극적인 자세로 바꾼 것이다.

 

지난 달 중순 ‘인사동사람들’ 블로그에 올린 ‘원로예술지원금’으로 버려진 사람 초상 사진 찍다.‘란

글과 사진을 동자동 사랑방에서 운영하는 카페 “쪽방타운”에도 복사해 올렸다.

그 아래 여태 해 왔던 작업과 약력까지 상세하게 소개하는 자랑도 마다하지 않았다.

 

‘쪽방타운’ 카페를 보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으나, 평소 접속보다 다섯 배나 많았다. 

소문은 금세 퍼지기 마련이라 찍자는 분이 생길 것 같았다.

 

열흘 전 초상사진을 찍기 위해 나서다 이발하는 서씨를 공원 입구에서 만났다.

모처럼 말쑥해진 모습에 초상사진을 부탁하여 찍었는데, 눈길을 카메라에 주지않았다.

눈빛에서 그 사람의 정신을 읽을 수 있는데, 무슨 죄지은 사람처럼 눈길을 자꾸 피했다.

카메라를 똑 바로 보라고 몇 번 말했더니, 안 찍는다면서 화를 벌컥 냈다.

 

아! 서둘지 말고 더 소통한 후 진정성 있게 접근하라는 계시였다.

촬영에 앞서 지켜야 할 원칙부터 몇 가지 정했다.

첫째, 아는 사람 위주로 찍되, 작업을 충분히 이해시킨 후 협력을 받아내기로 했다.

사진을 찍기 전에 사는 이야기도 들어보고, 어떻게 사는지 눈으로 확인해야 할 것 아닌가?

둘째, 사진 촬영하는 장소에 배경 막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사는 주변으로 한정해 초상사진을 찍는 장소성에도 의미를 두었다.

셋째, 아무리 가까워도 주제에 합당한 사람이 아니면 제외했다. 그리고 그 사람 정신이 온전할 수 없는 술 취한 상태에서 찍지 않는 등 몇 가지 원칙을 세운 것이다.

 

전시는 원래 계획대로 추진하지만, 사진 숫자에 연연하며 서둘지 않기로 했다.

얼굴에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담겼는데, 제대로 모르면 뭐가 보이겠나?

그 사람의 정신이 드러난 좋은 초상사진이 나올 때까지 찍기로 했다.

 

며칠 전에는 공원에서 이경기씨를 우연히 만나 그 분의 하루를 지켜보았다.

장기판을 구경하다 별 재미가 없는지, 따라오라며 '만나샘' 무료급식소로 끌고 갔다.

밥 주는 시간이 세 시간이나 남았지만, 식당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 있었다.

늦게 오면 줄서서 기다리는 것도 귀찮지만, 티브이 봐가며 시간 보내기 좋단다.

 

무료급식소 테이블에 마주 앉아 초상사진 작업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인쇄물을 보여드렸더니,

흔쾌히 수락했다.

 

이경기씨는 동자동 쪽방촌에 들어 온지는 20년이 넘었는데, 살아온 세월이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젊은 시절에는 ‘전매청’에 근무한 엘리트로 슬하에 삼남매를 둔 화목한 가정의 가장이었다고 한다.

직장을 나와 건축업에 뛰어들어 돈을 벌기도 했으나 욕심이 욕심을 불러

탄광업에 진출했다가 망 했다는 등 사기당한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속 상해하셨다.

그 충격으로 정신질환까지 생겨 가족과 생이별하게 되었다는 신세타령을 했는데, 다 돈이 원수였다.

 

그렇지만, 팔순을 넘긴 연세에 바깥나들이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만도 큰 복이다.

쪽방 생활을 오래하면 건강한 사람도 망가지기 십상인데, 타고난 건강이었다.

그런데, 급식할 시간이 가까워 사람들이 몰려오니 황급히 일어섰다.

여태 기다리다 밥 나올 때 왜 가시냐고 물었더니, 오늘 먹어 치워야 할 밥이 집에 있단다.

 

밥도 못 얻어먹고 따라붙어 영감님 사는 집 담벼락에서 정면사진 몇 장 찍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오겠다는 말을 했더니, 고맙게도 전화번호까지 적어 주셨다. 

 

좋은 초상사진이란 찍히는 자의 정신은 물론 삶의 결이 드러나야 한다.

서로의 경계를 허물 때 찍는 자와 찍히는 자가 하나가 되는데, 그게 말처럼 싶지 않다.

사는 동안은 초상사진에 최선을 다해 사람사진의 꽃을 피워보고 싶다.

사람의 탈을 쓰고 사는 이 비정한 세상에 사람의 정체성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진, 글 / 조문호

 

 

빈 터의 배우(actors in the empty lot)

전종대展 / JEONJONGDAE / 全鍾大 / photography 

2023_0309 ▶ 2023_0321 / 일요일 휴관

전종대_빈터의 배우_2023 ⓒ전종대

 

초대일시 / 2023_0309_목요일_06:00pm

기획 / 와이아트 갤러리

관람시간 / 11:00am~07:00pm / 토요일_12:00pm~06:00pm / 일요일 휴관

 

와이아트 갤러리

YART GALLERY

서울 중구 퇴계로27길 28 한영빌딩 B1 3호

Tel. +82.(0)2.579.6881

www.yartgallery.krblog.naver.com/gu5658@yart_gallery

 

낯선 이의 낯익은 초상 ● 사진의 침묵 속에서 타인의 초상은 메아리로 시선에 응답한다. 낯선 이의 얼굴과 손짓과 몸짓의 의미는 나에게서 출발해 초상 속 타인에게 부딪혀 돌아온다. 초상 속 타인의 진실보다 초상 밖 나의 진실이 드러나고, 내 안의 진실이 삶 바깥으로 출현한다. 그 손짓과 몸짓이 눈에 익을수록, 또 발가벗은 얼굴을 마주할수록 타인과 나의 경계는 무너진다. 그리고 무너진 혹은 무뎌진 경계에서 발가벗다 못해 무방비한 눈으로 서로를 응시할 때, 타인의 초상은 나의 초상이 된다. 삶에서 타인과의 대면이 나를 바라보게 하듯, 타인의 초상은 결국 나의 초상이다. ● 전종대의 『빈터의 배우』에서 '빈터'는 비어 있지 않고, 배우는 완벽한 연기를 다하지 못한다. 작가는 빈터의 '비어 있음'이 아닌 '있음'을 보여주고, 배우가 하는 연기의 '완전함'이 아닌 연기하는 삶의 '불완전함'을 비춘다. 마치 통제할 수 없는 세계와 그 세계에서 유한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불완전한 삶에 대한 은유와도 같다. 특별한 존재의 유무와 상관없이 세계의 시공간은 충만한 채로 변화하고, 모든 존재는 제 뜻대로 생을 영위하지 못한다. 사진만이 시공간을 제멋대로 조각내고, 찰나에 조각난 그 틈으로 그때 그곳의 모든 '있음'을 환영처럼 포착한다. ● 작가는 도로변에 맞닿은 어느 곳, 자동차를 타고 달리면 쉽게 지나쳐 알아채지도 못할 곳에 4×5" 대형 필름 카메라를 세워 무대로 삼았다. '빈터'라 불렸지만 흙이 있고, 수풀이 자라고, 새들이 오가는, 세계의 온갖 '있음'으로 충만한 '터'다. 인간만이 그곳을 '빈터'로 바라보는데, 인간이나 인공의 특별한 무엇으로 채워지지 않았다는 이유이다. 하지만 인간의 시선을 넘어 세계를 주의 깊게 살피면 세계의 '있음'과 존재하는 것들의 관계를 목도할 수 있다. 이에 『빈터의 배우』는 빈터를 본래 '있음'의 녹음의 터로 주시하고, 그 터에 잠시 머무른 배우들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푸른빛의 '빈터'는 충만한 생의 '터'를, 또 그곳에서 한때 하나의 포즈를 취한 인간은 아득한 시간 속에 섬광처럼 빛나다 사그라지는 우리의 짧은 생을 떠올리게 한다. ● 작가가 '빈터'라는 생의 '터'에, 곧 사진의 무대에 등장시킨 인물은 연극과 영화, 광고와 드라마에서 짧은 시간 상상을 연기하는 조연 또는 단역 배우와 초보 패션모델이다. 시나리오 없이, 인물들은 "웃는 얼굴을 찍지 않아요."라는 작가의 말에 나름의 몸짓과 손짓과 표정을 자기 삶에서 찾아 표현했다. 카메라의 셔터가 눌리기 전 인물은 작가와 '웃을 수 없었던 삶'의 여러 장면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작가는 그 이야기의 어느 순간, 상하좌우가 뒤바뀌어 보이는 카메라의 초점 스크린에서 보고 싶어 하던 얼굴과 모습을 찾아낸다. 환영 같은 장면에서 시선이 멈춘 곳에 초점을 맞춘 후 1/8~1/60초의 느린 셔터속도로 인물을 사진에 담는다. ● 거리를 두어 전신으로 담은 인물의 모습은 불안하고 무엇을 외면하거나 벗어나 구원 받고자 하는 손짓과 몸짓이며, 다가가 바라본 인물의 얼굴은 우울과 비애를 포함한 처연한 감정이 읽히는 표정으로 나타났다. 사진이 포착하는 인간의 얼굴은 사물의 표면과 달라서, 얼굴의 표면에는 생의 이력이 새겨져 있고 촬영된 순간의 감정이 달라붙는다. 그리하여 『빈터의 배우』 속 다양한 연령대의 인물들은 자기 삶과 감정의 지평에서 웃지 않는 '나'를 연기해 사진에 담겼다. 연약한 그래서 부서지기 쉬운 모습으로, 마치 삶에서 상처받기 쉬운 인간의 얼굴로 남았다. 그리고 그 얼굴은 오롯이 작가가 '빈터'에서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며 선택한 얼굴이다. ● 작가는 초상 속 인물로 배우와 모델을 섭외하되, 상상의 얼굴을 능숙하게 표현하는 오랜 연기 경력의 배우를 배제했다. 이전 전시 『빈터의 배우들』(2020)에서 숙련된 배우에게 웃을 수 없는 가상의 상황에 대한 자유연기를 요청했던 것과 다른 점이다. 웃음 없는 초상을, 배우들의 노련한 상상의 연기를 통해 표현하기보다 연기하는 '배우' 각각의 실제 얼굴과 모습을 통해 재현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래서 연기하는 상상과 자기 욕망의 경계가 흐릿한, 연기하기와 드러내기의 얇은 선상에서 오르내리는 배우들을 작가는 선정했다. 또 촬영 현장에서 배우와의 실제 삶에 관한 대화를 통해 실재와 허구의 경계를 무디게 만들었다. 이로써 『빈터의 배우』(2023)는 '배우'라는 특정 군상의 초상을 넘어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삶의 초상으로 확장됐다. 그리하여 우리는 『빈터의 배우』 속 배우처럼 '빈터'라는 '생의 터' 안 욕망과 상상의 경계에서 자기를 연기하다 타인에게 '터'를 내어주는 우리를 만나게 된다. ● 생애에서 웃음보다 눈물이, 기쁨보다 슬픔이 깊게 새겨지는 것은 불시에 맞닥트리는 이별, 슬픔, 고통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사건과 사고, 죽음에서 연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래 상처 입고 고통 받는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살아 있음'의 증거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작가는 다른 계절과 달리 겨울의 '빈터'에서 배우의 초상을 컬러가 아닌 흑백 사진으로 재현했다. 세계의 소멸과 죽음의 색을 지우고 사진의 빛을 인물에 비췄다. 상처 입은 존재의 빛남으로써, 녹음을 상실한 '빈터'의 풍경을 '생'의 풍경으로 전환했다. ●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사진과 함께 단편 영화 『빈터의 배우』(9분 9초)를 선보인다. 사진에서 배우 본연의 삶의 결이 드러나도록 노력한 것처럼, 영화에서는 작가로서 자기 삶의 결을 각본, 연기, 연출로 보여주고자 했다. 작가는 사진가로 분해 허구와 현실의 경계에서 『빈터의 배우』의 촬영을 연기하며, 사진으로 전하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를 영화에서 이야기한다. 사진이 현실을 '박제'하는 것이라는 대사에서 엿볼 수 있는 '사진과 죽음'에 대한 이해는 전종대 작가의 모든 작품에 걸쳐 왔다. 죽음은 현실에서의 부재로 죽음을 증명하고, 사진은 '존재했었음'을 증명함으로써 그것의 부재를 확인시킨다. 그리고 죽음과 사진에서 그 부재를 부활시키는 것은 기억을 환기하는 사랑임을 작가는 이제까지 작품으로 전했다. ● 삶에서 우리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리는 것들, 자의가 아니라 누구의 의도인지도 알지 못한 채 바수어져 상실하는 것들을 작가는 사진으로 선보였다. 소중한 가족과 일상을 주제로 한 『가족 이야기』(2006)부터 쇠락해 철거되기 전 낙원상가를 촬영한 『낙원』(2012), 나무에서 떨어져 나간 나뭇잎을 기념한 『낙엽』(2012), 어머니의 현재를 과거 사진첩의 사진으로 추억한 『엄마, 가족 그리고 사진』(2013), 1969년에 세워진 서울 최초의 시민 아파트인 금화아파트를 1990년대 재개발 전후에 촬영하고 그곳 사람들을 기록한 『금화아파트』(2015), 이 모두가 소멸하고 사라지는 것들에 사진으로 보내는 사랑이었다. ● 이후 작가는 자기 삶 안으로 카메라를 들여와 근로 현장에서 외국인노동자의 초상과 꿈을 사진과 영화로 『공장 일기』(2016)에 담았다. 그리고 이어진 『빈터의 배우들』(2020)과 『빈터의 배우』(2023)에서는 사랑하는 이들의 예기치 않은 죽음 앞 무력한 삶의 상황과 감정을 배우들을 통해 살피며 대면했다. '빈터'에서 배우를 촬영한 4년여 동안 그들의 초상은 배우 각자의 삶이 배어 있는 상흔의 초상이자, 카메라 렌즈 뒤 스크린에 서린 작가의 초상이었다. 그리고 전시장에서 우리가 그들을 마주함으로써 상처받기 쉬운 생의 존재를 담은 삶의 초상이 된다. ● 나와 타인, 삶과 죽음을 파악하고자 하는 생의 무단한 노력이 실패로 끝날 때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해와 해석 없이 이를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우리가 이 세계에 무작정 받아들여졌기에 우리 또한 받아들일 수 있다. 또 우리가 타인에게 사랑으로 받아들여지기에 우리 역시 타인을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나를 향하지 않고 세계와 타인을 향해 있는 인간의 얼굴은, 가장 연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존재들이 서로를 향하며 살아가야 하는 삶의 방향을 처음부터 가리키고 있었다. 그래서 얼굴의 비밀이 곧 삶의 비밀이다. ■ 정은정

전종대_빈터의 배우_2023 ⓒ전종대

 

빈터의 배우 ● "초기 사진에서 분위기가 마지막으로 스쳐 지나간 것은 사람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나타난 표정에서이다." (발터 벤야민의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 중에서) ● 지인이 SNS에 올린 사진을 우연히 본 것이 이 작업의 계기가 되었다. 그 사진에는 중년의 한 여인이 어느 숲속 벤치에 뒷모습을 보이며 앉아 있었다. 우울해 보이는 그녀의 뒷모습은 나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았다. 그 후 도시 외곽을 돌아다니며 풍경을 찍던 중에 우연히 지인의 그 사진과 비슷한 장소를 발견하게 되었다. 문득 그 사진이 떠올랐고 이후에 그 장소에서 배우를 대상으로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작업을 진행하며 나는 풀밭에 나무 벤치가 세 개 있는 그곳을 '빈터'라 이름 붙였다. 물리적으로 빈 공간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문학적인 비유 또는 연극적인 공간으로서 '빈터'라 이름 붙였다. 빈터에서 촬영은 주로 골든타임이라 불리는 오후 3시부터 5시 사이에 이뤄지는데 그 시간에 해가 산 너머로 기우며 인물의 배경이 어두운 톤으로 떨어지고 그 배경 앞에서 인물이 오롯이 드러난다. 나무에 잎이 무성한 오월부터 가을로 들어서는 시월까지가 촬영하기에 적합하다. 11월부터 다음 해 봄 사월까지는 색온도가 낮아져 주로 흑백으로 촬영을 진행한다. 빈터는 무대이다. 인공적인 장치나 소품 혹은 조명이 있는 무대 미술로 이뤄진 무대가 아니라 사계절의 변화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무대이다. 그 무대 위에서 나는 배우들을 만난다. 대구에서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왔던 2000년대 초반에는 계간 사진비평지가 나오고 일군의 젊은 사진가들이 일상을 다룬 연출사진이 유행하던 때이다. 그뿐 아니라 영미권의 제프 월(Jeff Wall) 이나 필립 로카 디코르시아 (Philip-Lorca dicorcia)와 같이 일상을 연출한 사진들이 소개되었고 나 또한 그 영향을 받으며 새로운 사진 실험에 매료되었다. 빈터의 배우 작업에도 그 영향이 드러난다. 나의 작업이 위에서 열거한 사진들과 변별점이 있다면 빈터의 배우는 숲이라는 미장센(Mise en scene) 위에 배우들을 위치시켜 그 속에서 일종의 무언극과 같은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다. 빈터라는 무대 위에서 배우의 순간적인 표정이나 몸짓에 깃든 분위기나 느낌을 사진으로 담아 관객에게 전달하는데 그 주안점을 둔다. 촬영은 주로 풀 샷(Full shot)으로 연극적인 제스처를 보여준다면 그다음에는 버스트 샷(Bust shot)이나 웨이스트 샷(Waist shot)으로 인물의 표정에 포커스를 맞춰 심리묘사에 중점을 둔다. ● 이 작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배우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 지나온 삶을 반추하며 늦게나마 자신이 원했던 배우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 또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촬영을 진행할 때 카메라 앞에서의 연기 모습과 셔터가 눌러지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그 차이가 큰 배우들이 있다. 그들은 모방과 현실 사이의 경계를 오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사진은 사실 같기도 혹은 연출 된 것 같기도 한 그사이를 오간다. 처음 촬영장에서 나는 배우들에게 나무 벤치를 객석으로 풀밭을 무대 삼아 배우들 각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모노드라마 형식으로 연기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 모습을 가만히 응시하고 경청하며 그 배우가 지닌 지나온 삶의 결이 어떠했을까 상상한다. 그래서 내게 좋은 사진은 그 배우의 삶의 결이 드러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다음은 배우들과 나눈 대화 중 기억에 남는 말들을 모아본 것이다.

전종대_빈터의 배우_2023 ⓒ전종대

배우님! 촬영할 때 어떤 생각 하셨어요? 엄마 생각이 났어요. 엄마 생각하면 슬프잖아요. (이경희) ● 아내 생각이 나네요. 여기 오니. 먼저 간 아내를 생각하는 연기를 해볼게요. (김지한) ● 학교 다닐 때 전 조용한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수업 시간에 교단 앞에서 어떤 행동을 해서 아이들을 까무러지게 웃긴 일이 있었어요. 그때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희극배우. (김범중) ● 결혼하고 싶어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대에 섰지만, 요즘 사람들은 무대 연기에 관심이 없어요. 그래서 매체 연기를 하려 해요. (김민성) ● 요즘은 모든 일에 감사한 마음이에요.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을 연기하는 게 재밌어요. 치매에 걸리는 일도 언젠가 닥칠 일이지만, 먼저 연기로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정혜자) ● 어렸을 때부터 TV에 나오고 싶었어요. 이순이 넘은 나이에 그 꿈에 다가가고 있어요. (김세미) ● 직장 생활을 23년 정도 했어요. 내 인생의 행복을 찾아 직장을 그만두고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문득 대학 다닐 때 연극반을 했던 기억이 났어요. 그때부터 연기 일을 시작했어요. (임동민) ● 집에 혼자 있을 때 한없이 무기력해지는 나를 봐요. 그런데 현장에서 카메라 앞에 서면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항상 다음 연기를 기대해요. (장순녀) ● 필름은 순수한 것이에요. 그것에 사람의 얼굴을 담는 것도. (윤혜란) ● 평생 착한 딸로, 내조 잘하는 아내로, 어진 엄마로 살았어요. 연기 할 땐 내연녀 같은 역할도 해보고 싶어요. (김지혜)

전종대_빈터의 배우_2023 ⓒ전종대

보아도 보이지 않는 사람 ● 배우 박 혜숙 씨와 차를 타고 가며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배우님! 최근에 출연한 작품이 뭔가요?" "영화 기생충이에요" "아! 저 그 영화 봤는데… 어디에?" "마지막에 아들 생일 파티에 초대받은 귀부인으로 나와요." "아…." 나는 그 영화를 봤지만, 그녀를 보지 못했다. 보아도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 내가 만난 배우들은 대부분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가끔 버스를 타거나 아파트 엘리베이터 광고판에서 익숙한 얼굴을 보게 된다. 예전 같았으면 보지 못했을 내가 만난 배우들이다. 사진은 그들을 보게 한다.

전종대_빈터의 배우_2023 ⓒ전종대

배우의 사진을 찍는 이유 촬영은 4/5인치 대형 필름 카메라로 진행된다. 대형 카메라로 촬영하기에 순간을 발 빠르게 포착하기보다 30초에서 1분 정도 배우는 가만히 멈춰있어야 한다. 그때 그 모습은 어떤 느낌이나 분위기를 전달한다. 나는 배우가 자기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는 순간을 기다린다. 그 후 필름에 맺힌 상은 인화지에 투사되어 정착된다. 사진을 보는 순간에는 일상의 의식이 멈추고 인화된 상을 바라보게 된다. 어떤 사람의 모습을 영상을 통해 바라본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그들은 배우이기에 영상으로 자기 모습이 보이길 원한다. 그것이 내가 배우들 사진을 찍는 이유이고 그들이 내 카메라 앞에 서는 이유이다. 너무도 당연한 것 같지만. 배우는 연기하는 사람들이다. 사진에는 소리가 녹음되지 않기에 자신의 표정과 몸짓으로 무언가를 전달한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그것을 인증하는 행위 혹은 그 혹은 그녀의 존재를 증명하는 행위이다. ● 마지막으로 몇 해 전에 써 놓은 짧은 이야기 한 편을 첨부한다. 이 이야기는 빈터의 배우 사진에 대한 짧은 우화이다.

전종대_빈터의 배우_2023 ⓒ전종대

 ● 한 여자가 카페 안으로 들어간다. 주문대로 가 커피를 주문한다. 점원이 그녀에게 "오늘 또 오셨네요?"라고 말한다. 그녀가 "네."라고 짧게 묵례하며 대답하고 자리에 앉는다. 그녀가 테이블 위에 편지지를 놓고 글을 쓴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진지해 보인다. 편지를 다 쓴 후 종이를 들어 천천히 읽어 나간다. 편지지를 봉투에 넣고 한동안 멍하니 거리를 바라본다. 그런 후 그녀가 일어나 카운터로 다가가 편지 봉투를 점원에게 건넨다. 점원이 봉투를 받고 그녀에게 "오시면 전해드릴게요"라고 말한다. 그녀가 짧게 묵례하고 카페를 나온다.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다. 둘은 주말이면 이 길을 걸었고, 공연을 보거나, 미술관 전시를 관람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남자는 소설을 쓰는 일을 했고, 그녀는 그림을 그렸다. 둘은 서로의 상상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젠가 그는 그녀에 대한 소설을 쓰겠다고 말했고, 얼마 후 그는 메일이 아닌 우편으로 원고지 20장 분량의 소설을 그녀의 집으로 보내왔다. 그 일이 있고 난 이후 그녀는 그에게 연락할 수 없었다. 그가 사라진 것이다. 소설의 내용은 사라진 연인을 찾기 위해 한 여자가 주말 오후 한 카페에서 편지를 쓰고, 그 편지를 사라진 연인이 그곳을 찾을 때 그 편지들을 받아본다는 내용이었다. 편지들을 그 연인이 다시 보게 되는지에 대한 결말은 소설 속에 물음표로 남아 있었다. ● 한 여자가 카페 안으로 들어간다. 주문대로 가 커피를 주문한다. 점원이 그녀에게 "오늘 또 오셨네요?"라고 말한다. 그녀가 "네."라고 짧게 묵례하며 대답하고 자리에 앉는다. 그녀가 테이블 위에 편지지를 놓고 글을 쓴다. ■ 전종대

 

Vol.20230309a | 전종대展 / JEONJONGDAE / 全鍾大 / 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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