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동 새꿈공원 지킴이, 황옥선(83)씨가 세상을 떠난지 얼마되지 않아

 사랑방마을협동회이사장인 김정호(62)씨도 운명하셨다.

두 분 다 약방의 감초처럼 동자동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분들인데,

약속이나 한 듯 연이어 세상을 떠나 너무 허망하다.

 

황옥선씨는 연세라도 많지만, 김정호씨는 할 일이 많은 분이라 더 답답하다.

고인은 한 달 전 '주거권 행진기자회견 직전에 만나지 않았던가?

주거권 행진 출발에 앞서 편치 않은 몸으로 새꿈공원까지 나와,

기자회견과 거리 행진을 잘하라며 주민들을 격려했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이 추진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떠나 더 안타깝다.

 

두 분의 지난 사진을 돌아보며,  고인을 추모하며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진, 글 / 조문호

 

황옥선씨는 사진찍기를 싫어하시어 사진이 몇 장 되지 않습니다.

 

 

 

 

2023 GRAPHOS(그라포스)

2023_0608 ▶ 2023_0622 / 일,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23_0610_토요일_04:00pm

 

참여작가

김승환_김정현_김지영_라인석

박경태_박세진_박정랑_엄효용_최수정

주최 / 충무로 갤러리

 

관람시간 / 11:00am~07:00pm / 토요일_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충무로갤러리

CHUNGMURO GALLERY

서울 중구 퇴계로2728 한영빌딩 B1

Tel. +82.(0)2.2261.5055

www.chungmurogallery.com

blog.naver.com/chungmurogallery

@chungmuro_gallery

 

1844년 탈보트에 의해 최초의 사진집인 자연의 연필 Pencil of nature이 발표되었다. 사진의 태동기에 만들어진 이 책은 탈보트가 촬영하고 인화하여 만든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자연의 연필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사진은 순수한 자연의 개입으로 인해 완성된 작품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사진을 향한 탈보트와 많은 발명가의 보이지 않는 고뇌와 실패의 흔적들이 보배처럼 담겨있으며, 지금도 그러한 탐구 정신을 이어가는 작가들에 의해 사진은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김승환_네모심장T_광택지에 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85×120cm_2023
김승환 네모심장F_광택지에 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96×135cm_2023
김정현_부활#052_카본 프린트_45×45cm_2019
김정현_부활#069_카본 프린트_45×45cm_2019
김지영_In the Beginning#31-Jeju_코튼지에 피그먼트 잉크젯 프_70×70cm_2017
김지영_In the Beginning#38-Haeundae_코튼지에 피그먼트 잉_70×70cm_2020
라인석_Pencil on paper_종이에 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110×73cm_2012
라인석_롯데월드타워로부터, 눈_touched paper에 피그먼트 잉크젯 _106×80cm_2018

그라포스는 사진 매체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듯 작품을 완성하는 작가들의 모임이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각기 다른 형식과 방법으로 하늘, 나무, 과일, 꽃 등 일상적인 소재를 그들 만의 언어로 재구성하고 있다. 그들에게 사진 매체는 사물을 재현하는 기능적 도구를 벗어나, 유희와 실험적 행위로 활용되고 있으며, 그 결과 완성된 작품들은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모호하게 넘나들고 있다. 또한 그들의 작품 속에는 작품을 위해 쏟은 여러 실험적 행위와 시간이 중첩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작품에 남겨진 작가의 호흡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박경태_Methuselah_green apple#01_코튼지에 피그먼트 잉크_55×55cm_2020
박경태_Methuselah_peach#02_코튼지에 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55×55cm_2020
박세진_사유되지 않는 것#1_광택지에 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80×60cm_2018

 

박세진_바라보게되다_매트지에 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80×60cm_2020
박정랑_고등어의 꽃단장_수채화지에 시아노타이프_20×20cm_2002
박정랑_어둠 속의 빛_수채화지에 시아노타이프_15×20cm_2015
엄효용_사려니숲 가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60×105cm_2018
엄효용_축령산 편백나무 여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90×120cm_2020
최수정_천년의 꽃-05용문사_수채화지에 검 바이크로메이트 프_70×50cm_2017
최수정_천년의 꽃-07용문사_수채화지에 검 바이크로메이트 프_70×50cm_2017

이번 전시는 매년 열리는 정기전으로 김승환 네모심장, 김정현 부활, 김지영 In the Beginning, 라인석 휘어진 세계로부터, 박경태 Methuselah, 박세진 내면의 표상, 박정랑 마음속의 우화, 엄효용 리틀 포레스트, 최수정 Millennium Flowers의 작품들이 전시된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빠르고 쉬운 것을 탐닉하는 시대에 반하여, 천천히 그리고 깊게 호흡하며 실험적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이것은 사진의 태동기처럼 새로운 변화를 원하는 작가들의 염원이며, 이것이 그들의 작업이 주목받는 이유이다. 그들은 행동하는 작가들이다. 김정현

 

현충일을 맞아 돌아본 동자동 쪽방촌의 살풍경이다.

곳곳에 술 취한 사람이 마치 총 맞은 병사처럼 쓰러져있었다.

먹은 것이 없어 그런지, 조금만 마셔도 몸을 가누지 못한다.

자신의 명을 술로 재촉하고 있으나, 아무도 탓하는 이가 없다.

 

이러한 알콜 중독자는 서울역보다 동자동이 더 많다.

한때는 노숙인들과 어울려 술 마시며 이야기도 들었으나,

그들의 중독 증세에 부채질하는 것 같아, 피해 다닌 지 오래다.

 

구멍가게에 담배 사러 갔다가, 우연히 유정희씨를 만났다.

이분은 오랜 노숙 생활 끝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쪽방에 입주했다.

유씨를 비롯하여 초상사진 찍기로 약속한 분이 여럿 있으나,

만날 때마다 술을 마셔 찍지 못했는데. 모처럼 정신이 또렷했다.

 

그 자리에서 초상사진부터 찍었는데, 만난 현장성에 의미를 두나,

 햇빛 때문에 건물 입구 그늘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햇빛을 비롯한 일체의 변화요인을 초상에 개입시키지 않으려는 원칙이다.

찍기 전에 항상 강조하는 것은 당당한 자긍심을 가지는 것이다.

사진은 일주일 뒤에 주기로 약속하고, 내키지 않으면 다시 찍기로 했다.

 

골목을 빠져나오니, 싸이렌 소리가 울려퍼졌다.

발걸음을 멈추어 나라를 위해 목숨 잃은 분들을 위해 묵념을 올렸다.

현충일이라 중령으로 퇴역한 이병호씨를 만나 군대 이야기나 듣고 싶었다.

 

그가 자주 머무는 공원 앞 담벼락으로 갔더니, 최정훈씨와 둘이 앉아 있었다.

그 역시 만날 때마다 술을 마셨으나, 그날따라 사진 찍기 위해 기다리는 것 같았다.

사실은 술 살 돈이 없어 물주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앉은 자리에서 자부심부터 인식시킨 후 찍었더니, 정훈이도 찍어라며 눈을 깜빡였다.

정훈씨는 잘 모르는 데다, 초상사진 찍는 목적에 공감하는지도 모르겠고,

더구나 스스로 원하지 않아, 안 찍는다고 손을 내저었다. 

 

처음에는 빨리 추진하고 싶은 욕심에 무리수를 두었지만, 하등의 서둘 이유가 없었다.

원로작가지원사업으로 시작된 ‘버려진 사람들의 초상전’은 그동안 찍은 사진으로도 충분히 치를 수 있으며,

이 일은 살고 있는 동안 꾸준히 해야할 내가 짊어 질 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상사진은 상대를 제대로 알고 찍어야 한다.

 

커피를 뽑아 와 이야기를 듣고 싶었으나, 딱 한 잔 만 하자는 권유를 차마 물리칠 수 없었다.

소주 두 병과 꽈베기 한 봉지를 사 왔더니, 잠자던 녀석도 일어나고,

보이지 않던 녀석까지 나타나, 술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하는 수 없어 만원을 꺼내 주었더니, 아예 소주 됫병을 사왔더라.

결국, 그들에게 약은 주지 못할망정 독을 주고 말았다.

 

그날은 이병호씨 군대 이야기보다 더 놀라운 최정훈씨 군대 이야기를 들었다.

이북에 넘어가 죽다 살아났다는 그는, 젊은 시절 이태원에서 두 사람이나 죽인 끔찍한 살인을 저질렀단다.

마침 군대 장교로 근무하던 아버지가 나서서 교도소 대신 북파공작을 수행하는

UDU로 들어가게 만들었는데, 인생의 쓴맛은 그때 다 보았다고 한다.

 

보급품을 주지 않아 뱀은 물론 표창으로 온갖 산짐승을 다 잡아먹고 살았는데,

제일 맛없는 고기가 고라니라며 고라니 고자도 듣기 싫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북파되어 옆구리와 허벅지에 맞은 총탄 자국까지 보여주었다.

 

군번 없는 군인으로 살아, 죽어도 이름조차 남지 않았겠지만,

죽는 것 보다 못한 짐승 같은 나날을 보내는 현실이 더 슬펐다.

 

다들 먹은 것이 없으니, 술도 많이 마시지 못했다.

목사님이 갖다준 빵 봉지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교회 단체 ‘이에수스 핸즈’에서 얻어 온

물김치 한 술 뜬것이 전부라, 한 사람 한 사람 드러눕기 시작했다.

 

동자동에서 오랫동안 노숙을 한 지경학, 유정희, 김상진 등 여러명이 수급자가 되어 쪽방에 들어갔지만,

쪽방보다 밖이 더 좋은지 허구한 날 길거리에 나 앉았거나, 노상에 쓰러져 자는 것을 더 자주 본다.

 

다들 술로 명을 재촉하고 있으나, 손 쓸 방법이 없다.

비참하게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편할지 모르겠으나, 산 목숨이다.

정부에서 알콜 중독자 치료에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촉구한다.

 

사진, 글 / 조문호

 

평평한 것들 Flatness of Things

김옥선/ KIMOKSUN / 金玉善 / photography 

2023_0609 2023_0813 / 월요일 휴관

김옥선_Adachi Portraits_acp_srw259_디지털 C 프린트_2023

김옥선 홈페이지_www.oksunkim.com  

 

기자간담회 / 2023_0612_월요일_11:00am

도슨트 / ~일요일 03: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입장마감_05:30pm / 월요일 휴관

 

주최,주관,기획 / 성곡미술관

 

입장료 / 일반(18~64) 5,000원단체,

65세 이상, 장애인, 국가유공자, 예술인패스 4,000

초등생 이하, ICOM 무료 인터파크 티켓예매

 

 

성곡미술관

SUNGKOK ART MUSEUM

서울 종로구 경희궁길 42(신문로 21-101번지) 1

Tel. +82.(0)2.737.7650

www.sungkokmuseum.org @sungkokartmuseum

 

김옥선(b.1967, 서울)은 사실성과 객관성에 충실한 사진으로 땅 위를 표류하는 우리 사회의 주변적 존재와 풍경을 새겨온 작가다. 떠남과 머묾, 차이의 공존, 경계에 선 이들에 주목하는 그의 시선은 결혼 이후 건너간 제주에서 30년 가까이 살며 겪은 이주의 경험과 가족을 비롯한 주변의 이방인들을 이해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한 것이다. 성곡미술관의 '한국중견작가초대전'으로 마련된 이번 개인전 평평한 것들 Flatness of Things은 주체와 객체, 문화와 자연의 대비 너머 차이를 딛고 존재하는 다양한 ''들의 초상을 평평한 시선으로 담아낸 김옥선의 지난 20여 년의 작업을 나란히 펼쳐 보인다.

 

김옥선_The Shining Things_untitled_jmd232_디지털 C 프린트_2023

언어, 사고, 문화 등 서로에게 이질적인 조건과 환경 속에서 함께 사는 커플들을 담은 초기작 해피 투게더(20022004/2023)를 시작으로, 김옥선은 결혼과 취업, 여행 등 각자의 이유로 경계를 횡단하고 모험하는 이들에 대한 관심을 이어 왔다. 특히, 베를린에 거주하는 한인 간호 여성들의 모습을 담은 베를린 초상(2018)을 계기로 근현대 역사 속에서 각자가 지닌 이산의 경험과 그로 인한 삶의 변화를 주체적으로 꾸려가는 여성들에 주목하고 있다. 그 연장선인 신작 신부들, 사라(2023)20세기 초 사진 교환만으로 성사된 결혼으로 낯선 미국 땅으로 건너간 최초의 사진신부 '최사라'와 이름 모를 신부들을 오마주하며, 베트남, 몽골, 중국 등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결혼이주여성들의 초상을 보여준다. 작가는 사진신부의 기록 자료를 재현하는 대신, 어느덧 7년에서 20년 가까이 한국에서 가정을 이루고 적응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며 지금 우리 시대의 얼굴을 마주하게 만든다. 이번 연작에서는 기존의 작업과 확연히 구분되는 극적인 조명 연출이 돋보인다. 세 방향에서 조명을 비춤으로써 빛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인물에 입체감을 부여하는 고전적인 인물 초상의 조명 방식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옛 사진관 사진을 떠올리게 하는 레트로한 배경과 더불어 이와 같은 시도는 황학동의 한 사진관을 섭외하며 구체화되었는데, 사진관을 거쳐 간 수많은 한국인의 얼굴과 마찬가지로 새겨진 결혼이주여성의 초상은 그 또한 오늘날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얼굴임을 환기하고 증명한다.

 

김옥선_Adachi Portraits_acp_rsj551_디지털 C 프린트_2023

김옥선의 사진에서 익명화된 이 이름 모를 얼굴들은 시공간을 넘어 서로를 비춘다.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민족의식에 기반한 독립운동에서의 활약'이나 '외화벌이'와 같은 거시적인 목적과 성과에 기대어 기록되거나, '가족을 위한 희생'과 같은 부풀려진 서사 속에서 소비되어 온 이 개별 주체들을 김옥선이 달리 그려내는 방식이다. 그는 이 미시적인 존재들이 이주와 정착, 꿈의 실현, 가족의 형성 등 개인적인 삶의 영역에서 내린 선택들에 주목하고, 그들이 살고 있는 현재를 가시화한다. 그런데도 경계 밖으로 늘 미끄러지는 이들의 존재를, 김옥선은 사진을 통해 움켜쥔다. 오랜 시간 대상을 바라보고 사실적으로 포착하는 김옥선의 다큐멘터리 초상은 우리로 하여금 사진 속의 대상을 직시하고 그 이면의 의미를 마주하게 한다. 대상이 그 장소에 실재함을 기억하고 증거하는 사진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며, 실물 크기로 확대된 사진 속 얼굴과 시선을 교환하게끔 하면서 말이다.

 

김옥선_Adachi Portraits_acp_kns324_디지털 C 프린트_2023

김옥선의 사진에서 인간, 자연, 사물은 평평한 세계에 놓여 서로를 가리켜 보인다. 이국적인 낙원의 땅을 욕망한 인간에 의해 이식된 야자수가 어느덧 제주를 상징하는 식물로 자리 잡았듯, 김옥선은 제주의 나무들에서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비롯해 그간 담아왔던 이방인들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고 말한다. 신작 영상에서 작가는 경계를 표류하며 새로운 터전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가는 이 존재들을 떠올리며 '야자수 인간'을 제시한다. 야자수의 외양을 하고 제주 곳곳의 풍경에 이질적으로 녹아드는 야자수 인간의 초상은 이들 각자를 연결하고 상징하며, 나아가 인간/자연, 유기체/비유기체 등의 구분을 교차-횡단하는 트랜스적 존재에 대한 작가의 상상적 산물이다.

 

김옥선_Brides_Sara_bsp_ahs130_디지털 C 프린트_2023

2023년 착수한 아다치 초상은 재일교포 2, 연변 등 중국에서 온 교직자, 일본인-미국인 부부와 그들의 자녀 등 재일외국인의 얼굴을 보여준다. 집과 근무지, 주변 동네와 자연, 신사 등 그들이 몸담은 다양한 장소를 배경으로 촬영한 이번 시리즈는, 각자 좋아하는 제주의 풍경 혹은 그들이 머무는 실내 공간을 배경으로 제주의 이방인을 담은 전작의 양식들이 종합된 듯 보인다. 베를린 초상에서 동일한 형식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열거하되 자유로운 포즈를 허용하는 등의 유연성을 견지했다면, 아다치 초상에서 그 유사성은 더욱 느슨해진다. 대상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삼각대와 시트 필름 대신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면서 보다 자유로운 카메라 워킹이 가능해졌기 때문인데, 그로 인해 인물의 자연스러운 모습과 그들의 일상적 삶에 더욱 가까워진다. 홀씨처럼 날아온 이 존재들은 어느새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으로 우리 곁에 자리한다. 김옥선은 빛나는 것들(20112014/2023)에서 뒤엉킨 잔가지와 넝쿨, 이끼가 잔뜩 낀 나무 둥치, 길 밭에 볼품없이 자란 야자수에 주목한다. 무분별한 개발이 휩쓸고 지나간 지금의 제주에서는 이 평범한 풍경마저도 찾아보기 어렵지만, 이 특별할 것 없는 주변적 존재들은 여전히 사진 밖으로 생명력과 존재감을 발산하는 듯하다. 순수박물관(2016)에서도 반핵 기호가 그려진 버려진 탁자, 손때 묻은 온도계, 지나간 계절을 뒤로 하고 우두커니 놓인 선풍기는 각자 그들이 놓인 장소의 흔적과 관계의 기억을 품은 채 잔존한다. 이처럼 초상사진의 방식을 빌어 담아낸 자연과 사물의 장면에는 이들을 독자적인 객체이자 존재로서 호명하고 존중하는 작가의 의도가 들어 있다. 김옥선은 우리의 세계가 인간과 자연 그리고 비유기체적인 사물들이 함께 얽히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만들어지는 것임을 사진을 통해 아로새긴다.

 

김옥선_Brides_Sara_bsp_sph796_디지털 C 프린트_2023

2차원 평면에 인화된 사진 매체의 고유한 평면성을 넘어서, 김옥선이 말하는 '평평함'은 무엇일까. 너와 내가 '평평하다'는 것은 각자가 딛고 있는 지면이 굴곡 없이 고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건 우리 각자가 동등한 선상에 서 있다는 것이며, 서로가 위치한 장소를 긍정하는 것은 곧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옥선의 카메라에 담긴 대상들은 인간, 자연, 사물의 구분과 인종과 젠더, 국경 등 각종 위계에서 자유로운 평평한 세계에 놓인다. 이처럼 각자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김옥선의 사진은 ''와 다른 존재를 이해하며 '우리'의 외연을 확장해 나가려는 노력이다. 그렇게 서로의 존재를 그러쥘 때, 서로가 정박해 있는 자리를 긍정할 때 우리 안에 자라날 환대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전지희

 

Through her photography, Oksun Kim has been recording people as peripheral beings who are constantly drifting in our society, as well as the landscapes that surround us, all the while remaining faithful to realism and objectivity. Kim's view to focus on departing and staying; the coexistence of differences; and people straddled on boundaries started with her own experience of migration, as she has been living on Jeju Island for nearly 30 years since her marriage, with constant attempts to better understand the lives of foreigners and strangers all around her, including her own family members. Flatness of Things, a solo exhibition of Oksun Kim at the Sungkok Art Museum, juxtaposes Kim's works over the past 20 years, in which she uses an egalitarian gaze to capture portraits of various things existing with differences, beyond the contrast between the subject and object and between culture and nature. Beginning with one of her early works, Happy Together (20022004/2023), which depicts couples living together in conditions and environments that are foreign to each other in terms of language, thought, and culture, Kim has continued to pursue her interest in people who cross boundaries and venture out for their own reasons, such as through marriage, work, and/or travel. In particular, with Berlin Portraits (2018), which looks at Korean nurses in Germany, Kim paid close attention to the experience of diaspora in modern history and the women who are actively managing the changes in their lives due to such experiences. As an extension of that, her newest work, Brides, Sara (2023), pays homage to Choi Sara, the woman who is believed to have been the first Korean picture bride, and other unnamed Korean brides who crossed over to the unfamiliar land of the United States in the early 20th century through arranged marriages carried out solely after exchanging photographs. At the same time, this artwork documents portraits of migrant women who came to Korea from Vietnam, Mongolia, China, and other countries. Instead of representing the archival materials of the picture brides, the artist capturesas they arethe lives of people who have been living in Korea for between seven and nearly 20 years. Some of them have started families, while others have become naturalized citizens. In this way, Brides, Sara also brings viewers face to face with the faces of our time. With its dramatic lighting, this series is distinctly different from her previous works. By illuminating her subjects from three different directions, she adopted the classic portrait lighting method of maximizing the effect of light and giving the portrait a three-dimensional look. Along with the retro backdrop reminiscent of old photo studio photographs, the project was realized by arranging the use of a local photo studio in Hwanghak-dong, Seoul. The portraits of married migrant women, which were captured like the faces of countless Koreans who have passed through the same photo studio, remind usand provethat they are also the same diverse faces that make up our society today. In Kim's photographs, these anonymized faces mirror each other across time and space. What is noteworthy is the way in which she portrays these individuals, all of whom have been recorded in terms of macro goals and achievements such as "playing an active role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based on national consciousness" or "earning foreign currency," or consumed in inflated narratives such as "sacrificing for family" in a different way than before. Instead, Kim focuses on the choices these people make as microscopic beings in their personal livesmigrating and settling, realizing dreams, starting familiesand visualizes the present situation in which they live. And yet, their existence, which is always slipping outside the boundaries, is captured by Kim through her photographs. By looking at her subjects for an extended period of time and capturing them realistically, her photographs force us to look directly at the subjects and face the meaning behind them. Ultimately, she stays true to the purpose of photography, which is to remember and testify to the existence of the subjects in each specific place, as she allows us to exchange gazes with the faces in the photographs that are enlarged to life size. In Oksun Kim's photographs, humans, nature, and objects point to one another. Just as the palm tree, transplanted by humans who desired an exotic paradise, has become a symbol of Jeju, Kim says she saw in the trees of Jeju the faces of the strangers she had been capturing, including the children of multicultural families. In her new video Home (2023), the artist presents "palm tree humans," recalling these beings who are drifting over boundaries and constantly making their places in new lands. The portrait of the palm tree human, which has the appearance of a palm tree and blends into the landscape of Jeju, is the product of the artist's imagination, which connects and symbolizes these people. Furthermore, it is also a symbol of a transitional being that crosses over and traverses the divisions of human/nature, organism/non-organic objects. Begun in 2023, the series Adachi Portraits shows the faces of expats in Japan, including second-generation overseas Koreans in Japan, lecturers from Yanbian and other cities in China, as well as a Japanese-American couple and their child. Photographed in various places where they stayed, including their homes, workplaces, and neighborhoods, the series seems to be a synthesis of styles from her previous works, which depicted Jeju's foreigners against the backdrop of their favorite Jeju landscapes or the interior spaces they occupy. If Berlin Portraits maintained flexibility by enumerating images in the same format but allowing for free poses, the similarities are even looser in Adachi Portraits. This is because the use of a digital camera, instead of tripods and sheet film that restrict the movement of the subjects, allows for free camera work. This brings the artist's work closer to the naturalness of the subjects and their everyday lives. These beings that flew here like spores became part of our everyday lives in the most ordinary and mundane ways. In The Shining Things (20112014/2023), Kim pays attention to the tangled branches and vines, the moss-covered base of a tree trunk, and the palm trees that grow unattractively in the roadside field. Even these ordinary scenes are hard to find on Jeju now that sprawling development has swept across the island, but these unremarkable peripheral beings still seem to radiate vitality and a sense of presence in the photographs. In Museum of Innocence (2016), an abandoned table with an anti-nuclear sign on it, a hand-stained thermometer, and a lonely electric fan are objects that remain, bearing the memories of the places they are placed, and perhaps more directly than the portraits, attest to the traces of existence. These scenes of nature and objects, captured in the manner of a portrait photograph, reflect the artist's intention to recognize and honor them as unique objects and beings. Through her photographs, Kim clearly conveys that our world is created as humans, nature, and non-organic objects intertwine with and influence one another. Beyond the inherent flatness of a photograph printed on a two-dimensional plane, what does Kim mean by "flatness"? For you and me to be "flat" means that the ground we stand on is even, without curvature. It means that each of us is on an equal footing, and to affirm each other's place is to acknowledge its existence. In this sense, the subjects of Kim's camera have the same degree of being-ness, free from all hierarchies, such as those based on factors related to humans, nature, objects, race, gender, or boundaries. Her photographs, which reveal their differences as they are, are an effort to expand the periphery of "us" by understanding beings who are different from "me." When we grasp each other's existence in such a way, when we affirm the place where each other is anchored, we are more likely to discover the possibility of hospitality that will grow within us.  Jihee JUN

 

 작가 도슨트- 진행자: 김옥선(참여작가)

- 일시: 1- 2023610() 오전 11         

           2- 2023723() 오후 2

- 장소: 성곡미술관 1

 아티스트 토크-박상우 &김옥선

- 진행자: 박상우(서울대학교 미학과 교수) &김옥선(참여작가)

- 일시: 2023624() 오후 2- 장소: 성곡미술관 1

 

 

윤석렬 정부 취임 1주년을 맞았지만, 동자동 공공개발은 한 치의 진전도 없이 아예 손을 놓고 있다.

 

지난 해  5월 대통령직인수위는 국정과제의 열 번째로 촘촘하고 든든한 주거복지 지원 안을 내 놓으며,

취약계층에 대한 안정적 주거환경 보장을 발표했다.

 

그리고 국토부는 연 초 보도자료를 통해 ’쪽방촌은 현재 추진 중인 사업 속도를 높이고,

쪽방촌 정비사업과 공공임대 이주지원은 조속히 추진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라 발표했으나.

모두 입에 발린 소리라 하나도 실행에 옮긴 것은 없다.

 

공공주택을 기다리다 지친 빈민들이 힘을 모았다.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동자동사랑방’ 등 여러 모임에서

반 빈곤 사회운동 시민단체가 모인 ‘홈리스행동’과 연대하여 거리로 몰려나왔다.

 

윤석렬 대통령 취임 1년을 맞은 지난 16일 오후2시, 용산 전쟁기념관 상징탑 앞에서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추진을 촉구하는 '주거권 행진’ 기자회견을 열어,

“약자 주거복지 빵점!”이라며 정부를 규탄하고,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의 신속한 추진을 촉구했다.

 

동자동 재개발을 발표한 후로 주민들의 주거 상태는 더욱 열악해져 사람 살 곳이 아니다.

죽어 나가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현실이라, 하루속히 주거권을 보장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자동 공공주택 사업추진 위원회’ 김영국 위원장은 “국토부는 2021년 2월 서울역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 및 도시재생사업 추진계획을 통해 공공주택 임대 1250호,

분양 200호와 민간분양주택 960호를 건설함과 동시에 임시 거주지를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사업 시행을 위한 첫 단계인 ‘공공주택지구의 지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동자동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최갑일 이사는 “동자동 쪽방 주민은 1년에 약 50명이 죽어 가고 있는데,

최근 일부 쪽방 건물주들이 보수공사를 이유로 주민에게 퇴거를 요구하는 일도 빈번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2021년 말 동자동 주민 수가 1063명에서 지난해 말 886명으로 약 17% 감소했다며,

서울시에서 조사한 실태조사를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공공주택사업이 ‘멈춰진 시간’은 쪽방에서 주민들을 하나 둘 내모는 ‘퇴거의 시간’이 되고 있다.

 

이들은 국토부가 3년 전 내건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 약속을 하나도 지킨 것이 없다며,

공공주택 사업 추진이 지연되는 사이 주민들은 보수도 해주지 않는 열악한 쪽방에서 ‘희망고문’을 당한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 후, 동자동 공공주택 사업의 ‘첫삽’을 뜨라는 ‘첫 삽’ 증정식 퍼포먼스를 열었다.

 

‘공공주택 첫 삽 떠라’는 문구가 적힌 모형 삽을 윤석렬 대통령에게 전달하기 위해 대통령실로 향했으나

경찰이 제지하며 대신 전달해 주기로 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후 지하철 삼각지역과 한강대교를 지나, 동작구 본동에 위치한

원희룡 국토부 장관 자택까지 향하는 ‘쪽방 주민 주거권 행진’이 시작되었다.

“헌집 새집 손수레”와 손 피켓이나 현수막을 펼쳐들고 거리 행진에 나선 것이다.

 

선두에는 종이로 만든 쪽방 모형을 앞 세웠는데, 국토부장관에게 쪽방을 전달하는 퍼포먼스였다.

 

그러나 연세가 많은 주민들이 많은데다, 그날따라 날씨마저 더워 사고라도 날까 걱정했으나,

악에 받쳐 그런지 쓰러지는 분은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다.

 

국토부장관 자택이 있는 노들역 주변의 아파트 앞에서 행진을 마무리하고,

결의대회를 열어 국토부의 공공주택지구 지정을 재차 촉구했다.

 

동자동 주민들이 차례대로 나와, 사람 살기 어려운 여건이나 연대발언과 투쟁 결의문도 낭독했다.

 

마지막으로 ‘헌집 새집 손수레’를 국토부장관에게 전달하는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를 바꾸어 ’희룡아 희룡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를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내 나이가 어때서’ 노래가사를 아래처럼 바꾸어 불렀다.

 

“야-야-야- 공공주택 어때서

발표하고 나몰라라 하-나-요

사람은 하나요. 우리도 국민인데

공공주택 약속 왜 안지키나요

눈물이 나네요, 나몰라라 하니까

공공주택사업 딱 좋은 계획인데

원희룡 장관님 집은 정말 좋군요

우리 집은 쪽방 단 한 칸, 건물주야 비켜라

우-리가 주민이다. 내 주거권 내가 지킨다“

 

아래는 그날 낭독한 투쟁결의문이다.

(투쟁결의문)

지난 5월10일, 윤석렬 정부는 취임 1년을 맞았다. 취임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110대 국정과제의 열 번째로 “촘촘하고 든든한 주거복지 지원”을 내세우며 “취약계층에 대한 안정적 주거환경 보장”을 공언하였다. 그러나 우리 동자동 쪽방 주민들의 주거 상태는 더욱 더 바닥으로 치닫고 있다. 오늘, 국토교통부 장관은 취임 1년을 맞는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초 보도 자료를 내 “쪽방촌은 현재 추진 중인 사업 속도를 높이고, 쪽방촌 정비사업, 공공 임대 이주지원 등은 조속히 추진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라 하였으나, 동자동 쪽방 공공주택사업은 단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

 

만 2년이 지난 2021년 2월5일, 국토교통부는 “서울역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 및 도시재생사업 추진계획”을 통해 동자동에 공공임대주택 1,250호를 건설함은 물론, 공사기간 중에 머물 임시 거주지를 제공하기로 했다. 당시 발표한 일정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공공주택 건설이 시작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소유주들의 반발을 핑계 삼을 뿐, 사업 시행의 첫 단계인 ‘공공주택지구의 지정’조차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일하기를 멈춘 사이, 동자동 주민들은 낡아만 가는 쪽방에서 위태로운 삶을 부여잡고 ‘희망고문’을 당하고 있다. 한 해에 수십 명의 주민들이 가난과 취약한 주거환경 속에서 세상을 등지고 있다. 서울시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1,083명, 2021년 1,063명이던 주민은 2022년 886명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최근에는 일부 쪽방 건물주들이 건물 공사 등을 빌미로 주민들에게 재계약 거부와 퇴거를 요구하고 있다. 주민들을 내몰고 부동산 개발이윤을 쌓는 일, 이것이 건물주들이 하겠다는 “아름다운 민간개발”의 본질이다.

 

우리는 오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취임1년을 맞아 장관의 집을 찾았다.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이 집이 보금자리이듯, 우리에게 동자동 쪽방과 그곳에서 일군 이웃들과의 관계들 역시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것임을 말하기 위해서다. 대통령과 국토교통부 장관 취임 1년, 우리 쪽방 주민들에게는 기념할 것 없는 배제와 설움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생명과도 같은 우리의 주거권을, 부동산 개발 이익을 위한 건물주들의 탐욕에 결코 헌납하지 않겠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약자 주거복지 빵점 1년을 속죄하고, 동자동 쪽방 주민의 주거권 보장을 위한 공공주택 사업에 당장 나서라.

 

쪽방 주민 주거권 보장, 공공주택사업으로 응답하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공공주택사업 시행하라!

2023년 5월16일

“쪽방주민 주거권 행진” 참가자 일동

사진, 글 / 조문호

 

[2023.5.23작성]

날이 갈수록 빈민들의 삶은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2020년만 해도 1,083명이던 동자동 주민이 2022년 말까지 886명으로 대폭 줄어 들었다.

건물주들의 압력에 내몰리는 사람도 있지만, 일 년에 평균 오십 여 명씩 목숨을 잃는 것이다.

 

2년 전 정부의 동자동 공공개발 발표에 마음이 들떠 죽기 전에 잠시나마 집 같은 집에서 한 번 살아 보겠다며

꿈에 부풀었으나, 아직까지 지구지정도 하지 않은 채 방치한 사이 빈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희망에서 절망감으로 변해가며, 점차 분노로 들끓기 시작했다.

 

사람답게 살아보겠다고 술을 끊었던 사람도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지병을 가진 사람은 병이 더 깊어져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 상태로 몇 년 만 더 간다면 화병으로 다 죽어 나갈 것만 같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걸 바라는 걸까?

 

며칠 전에도 쪽방촌에서 또 한사람 죽어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는 시신을 두고 경찰이 들락거리더니, 구급차에 실려나갔다.

그 건물은 지난겨울 수도관이 터져 온 계단이 빙판으로 변해 신문지면을 장식했던 건물인데,

마치 귀신 나올 것 같은 건물에서 진짜 귀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문제는 주변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외부와 전혀 소통하지 않았다고 한다.

올해 86세라니 살만큼 사셨지만, 죽어서도 저승으로 바로 떠나지 못한 채,

행여 가족이 나타날까 한 달 동안 냉동실에서 기다려야 한다.

아무도 슬퍼하는 이 없고, 남긴 것 하나 없이 바람처럼 떠나 버렸다.

 

요즘 들어 부쩍 술이 취해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동자동 주민들을 종종 본다.

술을 많이 마셨다기 보다 기력이 없어 조금만 마셔도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누워버린다.

하기야! 더운 쪽방보다 바깥이 시원한데다 죽어도 빨리 알것이니, 정신 줄을 놓는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에 동자동 주민들의 주거권 결의대회가 열렸다.

대통령실이 있는 용산에서 국토부장관 집이 있는 동작구 노들역까지 거리행진이 있다기에

집결지인 ‘새꿈공원’으로 나갔다.

 

“주민협동회” 김정호이사장이 행진 참여자들에게 협조사항을 알리고 있었는데,

공원 한 쪽에 있던 김상진씨가 반가워하며 내 손을 부여잡았다.

 

한 동안 보이지 않던 그 분은 변두리 임대 주택으로 옮겨 간지가 좀 되었다고 했다.

산전수전 다 겪다 동자동에 들어 와 살았으나, 집 같은 집에서 한 번 살아보고 싶어 떠난 것이다.

그가 뱉은 첫마디는 ‘방이 넓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일거리 없고 아는 사람하나 없는 그곳은 외딴 섬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동자동 쪽방 주민들을 내 보내려는 술수에 떠밀렸으나, 사람이 그리워 동자동을 찾은 것이다.

빈민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걱정한다면, 동자동 공공주택을 하루속히 건설하는 방법뿐이다.

 

더 이상 이야기 나눌 시간이 없어 주민들과 함께 기자회견 장소인 용산으로 가야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이 있는 용산에서 동작동 국토부장관 집까지 이어지는 거리행진이 걱정스러웠다.

 

난, 오래전 뺑소니차에 치어 다리가 부러진 적이 있는데, 수술을 잘 못하여 많이 걷지를 못한다.

조금만 걸어도 다리가 아파 차를 휠체어처럼 끌고 다녀야 하는데, 먼 거리라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 차라리 길에 쓰러져 죽는 한이 있더라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힘든 고행의 거리행진을 무사히 끝내기는 했으나, 돌아오자마자 뻗어 버렸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당장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을 시행하라!“

 

사진, 글 / 조문호

 

[2023.5.17작성]

어버이 날이 되면 쪽방촌 어르신을 위한 잔치가 동자동 '새꿈공원’에서 열린다.

 

해마다 ‘동자동 사랑방’에서 마련하는 잔치지만, 코로나에 발목잡혀 3년 만에 열려 더 반가웠다.

 

동자동 쪽방 촌에 사는 분은 대부분 가족과 연락이 끊겼거나,

있어도 찾아오지 않아 어버이날이 되면 외로움을 더 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텅빈 가슴에 꽃 한송이 달아드리며 술과 음식을 나누니, 이보다 좋은 날이 어디 있겠는가?

 

조화에 불과한 카네이션이지만, 삶에 찌든 어두운 그늘을 지우고 모처럼 활짝 웃는 모습을 보였다.

 

잔치도 자선단체에서 지원한 것이 아니라, 주민들 스스로 음식을 장만한 자리라 더 의미 있다.

 

‘서울역쪽방상담소’의 나눔과 또 다른 것은 줄 세우지 않는데 있다.

주민들에게 음식을 차려줄 뿐 아니라, 이날만은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술도 한 잔 마실 수 있다.

 

머릿 고기에다 각종 부침개, 떡과 소주, 음료수 등을 사랑방 식구들이 부지런히 날랐고,

동네 어르신들은 깔아놓은 자리에서 이웃과 정겹게 술잔을 주고 받았다.

이렇게 화기애애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도 어버이날과 추석뿐이다.

 

예전에는 잔칫날이 되면 그동안 찍은 사진을 빨랫줄에 걸어 나누어 주기도 했으나,

그마저 마땅찮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 그만 두었는데, 어딜 가나 시기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이후로는 찍힌 분을 언제 만날지 몰라 가방에 넣고 다녀야 하는 불편은 따르지만, 그 또한 내가 짊어져야 할 업이다.

 

잔칫날이 되면 평소 잘 보이지 않는 분도 더러 뵐 수 있는데,

이날은 한 때 동네 사발통문처럼 쏘다니며 도시락을 전해주던 원용희씨를 만났다.

 

얼굴이 반쪽이 되어, 그동안 어디 아팠냐고 물었더니 죽다 살아났단다.

멀지않은 해방촌으로 이사를 갔다는데, 어버이 잔칫날이라 찾아 왔으나 술은 끊었다고 한다.

 

공원에는 술에 취해 여기저기 드러눕는 사람도 생겨났으나, 아무도 탓하는 이가 없다.

기력이 없으니 조금만 마셔도 쓰러지는 것이다.

 

하기야! 답답한 쪽방에 눕는 것보다 시원한 공원에 드러눕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이날 잔치에는 ‘동자동사랑방’ 윤용주 회장과 김호태씨가 주민들께 인사드리며 어르신들의 건강을 기원했다.

 

잔치가 끝난 뒤, 교회 봉사단체에서 나와 도시락을 나누어 주었으나, 다른 때와 달리 남아 돌았다.

요즘은 도시락 인기가 무료식권에 밀려나 예전같지 않다.

 

뒤 따라 쪽방상담소에서도 마스크와 꽃을 나누어 준다며 줄을 세우기 시작했다.

오는 대로 주면 될 텐데, 시간을 정해놓고 기다리게 하니 줄을 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줄 세워 거지 취급하는 나눔은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아무리 희망 없는 나날을 보내지만, 하루를 살더라도 재미있게 즐기며 살자.

 

대개 기초생활 수급자라 술과 담배만 즐기지 않는다면, 살아가는데는 별 지장이 없다.

문제는 돈을 쓰지 않고 이불밑에 넣어 두다 남 좋은 일 시키는데 있다.

 

돈을 아끼고 저축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것도 가난한 독거노인은 해당되지 않는다.

평생 고생하다 죽을 날도 얼마 남지않았는데, 누굴 위해 저축한단 말인가?

 

문제는 수급비를 받는 대부분의 독거노인들이 돈 쓸 줄도 모르고 놀 줄도 모른다는데 있다.

돈도 쓰 본 사람이 잘 쓰지, 돈이 없어 쓰 보지를 못했으니 돈 쓸 줄을 모른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삶의 질을 개선하려면 돈 쓰는 방법부터 가르쳐야 할 것 같다.

정말 돈 쓸 곳이 없다면 수급비도 받지 못하는 노숙인에게 적선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죽고 나면 돈도 명예도 아무 소용없는 쓰레기나 마찬가지다.

 

부디 내년에도 건강하게 어버이날을 맞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사진, 글 / 조문호

 

[2023,5,10작성]

 

 

 

교통통제 중인 시민군. 이창성 사진 / 눈빛 제공

이창성씨의 ‘나는 시민군이다’사진전이 인사동 ’갤러리 인덱스‘에서 열리고 있다.

’5·18 기념재단‘과 ’눈빛출판사‘가 5,18, 43주년을 기념하여 선 보이는 생생한 기록 사진전이

지난 17일 오후4시 개막식을 가졌다.

 

금남로에서 교통 통제하는 시민군. 이창성 사진

슬픈 역사적 기록이 40년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광주 외는 한 번도 전시회를 가진 적이 없다는

사실도 믿기지 않지만, 그 첫 전시가 인사동에서 열려 더 반가웠다.

 

시민군들. 이창성 사진

사진전 개막 시간에 맞추어 갔으나 이미 전시장은 관람객으로 북적였다.

보도 사진가 이창성씨를 비롯하여 당시 시민군 방송 요원이었던 차명숙씨와

'금남로 광수 1호'로 지목되었던 화제의 인물 차복환씨도 와 계셨다.

 

교통통제 중인 시민군. 이창성 사진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와 '인덱스갤러리' 안미숙관장을 비롯하여 전민조, 장남원, 김문호, 김녕만,

윤세영, 정영신, 곽명우, 김 헌, 이명옥씨 외는 모르는 분이 더 많았다.

 

전시 작품은 중앙일보 사진 기자였던 이창성씨가 광주에 투입되어 찍은 흑백 30점과 컬러 10점이었다.

5·18 전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시민군’으로 압축되었다.

 

방석모와 총기로 무장한 시민군. 이창성 사진

관람객 틈 사이로 사진들을 들여다보니, 눈물이 나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처음 보는 사진들도 많은데, 누가 그들을 폭도라 할 수 있겠는가?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꽃다운 청춘이라 더 가슴이 미어졌다.

 

의사가 동승한 시민군 구호 지프가 광주 시내를 돌고 있다. 이창성 사진

시민군은 훈련된 군사 조직이 아니라 계엄군 과잉 진압에 맞선 자위 조직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사진들은 계엄군이 물러간 이후의 기록이었는데,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논란이 되어 온 북한군 투입설이나 불온 세력, 부랑 집단이라는 억지를 단숨에 불식시켰다.

 

취재 중인 이창성 기자, 광주 1980. 5

지금까지 외국 기자들의 활동은 영화 등을 통해 널리 알려졌지만, 정작 국내 기자들의 취재 활동에 대해서는 평가절하된 것도 사실이다.

특히 이창성씨가 찍은 사진이야말로 5·18에 머물지 않고, 시민군의 활동상을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더 높게 평가된다.

 

이창성씨는 개막식에서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야간 교전중이라 기자들이 숙소에서 나갈 수가 없었다며, 당시의 현장을 지키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고 했다.

새벽녘에야 시민군 지휘부를 찾아가 설득한 결과 어렵사리 취재 허락을 받아 냈다고 한다.

시민군 지휘부로부터 허가를 받아 현장에 뛰어든 공식 시민군 사진가가 되었는데,

역사적 현장을 기록해야겠다는 투철한 사명감이 그를 사지로 내몬 것이다.

 

“나는 역사의 기록자로서 현장에 있었을 뿐이다. 혼신의 노력을 쏟았던 것은 1980년 5월이 내게 부여한 의무였다.

마지막 모습이 되고 만 시민군 사진들은 대부분 젊은이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는 순전히 그들의 희생 덕분이다.”고 말했다.

15년 전 '눈빛출판사'에서 '28년만의 약속'이란 사진집을 펴낸 것도 전민조씨의 권유와 소개로 성사되었다며,

찍은 사진 2300컷 중 공개하지 못한 사진을 보완하여 다시 사진집을 출간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당시 동료였던 고래 사진가 장남원씨는 '전시된 사진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숨어 찍은 사진이 아니라 대부분 정면에서 찍은 사진'이라며, 이창성씨의 투철한 기자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당시 방송요원이었던 차명숙씨는 발표된 사진 대부분이 외국 기자가 찍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찍어도 내놓을 수 없는 엄격한 상황에서 당당히 발표한 용기가 대단하다고 했다.

 

한때 북한에서 남파된 '광수1호'로 지목되었던, 실제 인물 차복환씨도 나와 그날을 회고했다.

기관총으로 무장된 페퍼포그 차량에 올라탄 채 카메라를 째려보는 문제의 사진은,

당시 이창성 기자에게 사진을 찍지 말라며 화를 낸 장면이었다고 했다.

 

금남로 광수 1호로 지목되었던 시민군 차복환 씨 1980. 5. 22 광주. 이창성 사진

2008년 이창성 사진집 ‘28년 만의 약속’을 펴낸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는 인사말에서

“그동안 논란 되어온 북한군 투입설이나 불온세력이란 억지를 불식하는 전시가 될 것이다. 그리고 5,18은 광주만의 행사가 아니라 전 국민의 행사가 되어야 한다"며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듯 모든 진상은 사진 속에 다 있다고 했다.

 

한 장의 사진이 백 마디의 말보다 더 많은 진실을 알려 주었다.

 

전시는 5월 29일까지 열린다. 꼭 관람하시어 그 날의 아픔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이창성'28년 만의 약속' 사진집 표지/ 눈빛출판사/ 가격35,000원

 

5,18 영령을 추모하는 날이라 뒤풀이는 생략했지만, 전시관계자들은 '부산식당'에서 만찬의 시간을 가졌다.

 

 

[2023,5,19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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