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장날을 맞은 지난 7일 정오 무렵, 정선아리랑시장을 찾아 나섰다.
사진도 찍고 시장식당에 들려 곤드레 밥을 사먹을 작정이었다.
‘장에가자’ 사진전이 열리는 터미널에서 시장까지는 걷기엔 좀 먼 거리였다.

 
이 날처럼 무더운 날씨는 생전 처음이었다.
밀리는 자동차 사이로 어렵게 주차하였으나, 내려 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푹푹 찌는 열기에 숨이 탁탁 막혔다.

장터에는 사람 반 물건 반이란 말이 실감날 정도로 발 디딜 틈 없었다.
사람들을 헤집고 식당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아 주변을 돌며 사진만 찍었다.
난전에는 철이 철인지라 옥수수가 많았으나 그보다는 시원한 냉차가 눈에 들어왔다.

점심시간이라 장터공연은 중단되었지만 사람들은 모여 앉아 연신 부채를 흔들었고,

자신의 더위보다 데리고 나온 강아지에 열심히 부채질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더운 날씨에 사람들과 부딪히기 싫어 시원한 가게를 찾아 나섰다.

시장입구의 농협 ‘하나로마트’에 들어섰더니, 그 곳에도 사람들로 가득했다.
모두들 물건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아이스크림 하나 사 들고 더위를 식혔다.
시장 안의 매장들도 그 많은 사람에 비해 상품은 잘 팔리지 않았다.

요즘 정선에는 피서 온 관광객들로 연일 북새통을 이룬다.
하루 전에 들린 평일도 장은 열렸으나, 장날 보다는 한결 여유로웠다.
외곽에는 어린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었고, 시장조합의 이윤광 이사장은 손자를 업고 시장바닥을 돌아 다녔다.

질서정연하게 들어 선 매장이나 상인들의 익숙한 손놀림에서 정선시장만의 저력이 느껴졌다.

성공한 정선아리랑시장을 지켜보며, 재래시장의 밝은 내일을 점쳐본다.

사진, 글 / 조문호

 

 

 

 

 

 

 

 

 

 

 

 

 

 

 




 

 

정선아리랑시장이 지난 22일 개장행사를 가지며 본격적인 손님맞이에 나섰다.
개장행사에 앞서 이동식수세식 화장실을 새로 만들고, 기존 화장실의 대대적인 보수공사와 시장 물청소를 하는 등

완벽한 준비를 해 왔다.

‘풍물상인공연단’의 길트기 행사로 시작된 개장행사에는 번영기원제, 아리랑공연 등의 순서로 펼쳐졌는데,

전정환 군수를 비롯하여, 차주영 군의회의장 남조영, 전흥표 군의원, 김수복 정선군 문화과장, 이윤광 조합장

그리고 많은 관광객들이 참여하여 정선아리랑시장의 번영을 기원했다.

전정환 정선군수는 "맛, 멋, 흥에 취할 수 있는 전통시장을 만들기 위해 기존 상인들과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했다"며

"차별화된 콘텐츠 개발로 전통시장의 경쟁력을 확보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이 날 가진 번영기원제에서 많은 분들이 술을 따르며 절을 올렸으나, 이제 기원하는 식의 운에 맡길 시대는 지났다.

전통적인 제례의식으로 시장번영을 기원했지만, 정선군민과 상인 모두가 한 마음으로 각오를 다지는 자리였다.

우선 상인 모두가 개인적인 이득에 앞서 시장 전체를 먼저 생각할 수 있을지가 문제다.
특히 상인 조합원들은 정선시장에 온 모든 고객은 한 사람에서 시작됨을 명심해야 한다.
“한 사람 쯤은 바가지를 씌워도, 한 사람쯤은 불친절해도 괞찮겠지”하는 생각이 모두를 잃게 된다.

그리고 당장의 이득보다 장기적으로 이득을 높이려면 모든 손님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어 단골을 늘려나가야 한다.

사람들의 공중심리란 무섭다. 좋다하면 정신없이 몰려오다가도 아차하면 순식간에 빠져 나간다.

하잘 것 없는 조그만 일에 마음 다치지 않도록, 모든 고객을 가족처럼 친근하게 대해주길 부탁드린다.

나는 믿는다! 정선아리랑시장 조합원의 애향심에서 비롯된 그 각오와 다짐을...

사진,글 / 조문호

 

 

 

 

 

 

 

 

 

 

 

 

 

 

 

 

 

 

 

 

 

 

 

 

 

 

 

 

 

 

 

 

 

 

 

 

 

 

 

 

 

 

 

 

 

 

 

 

 

 


“눈 맞추며 칭찬하면 첫사랑 이야기도 듣게 돼요”

골목 둘러보기, 국밥 먹어보기 등 30년간 시골장터를 기록한

정영신씨가 말하는 장터에서 할 일

한겨례 21 제1051호

 

“이 물건 안 사가면 후회해유. 많이 줄게 들어가유.”(충남 예산장)

“맵고 달삭한 맛이 없고 너무 싱겁데이. 고치를 덜 말린나. 좀 꼬꼬부리하네.”(경남 합천장)

“아따 성님, 내가 언제 속입디여. 조까 믿으씨요.”(전남 함평장)

“물이 좋쑤과. 1킬로에 얼마우꽈.”(제주 모슬포장)

정영신(58·사진 오른쪽)씨는 30년간 시골장터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가이자 소설가다. 전국 522개 장터를 빠짐없이 훑고 다녔던 그는 지난 1월 포토에세이집 <전국 5일장 순례기>를 펴냈다. 사진집 <한국의 장터>(2012)의 후속편인 이 책에서 정씨는 장터를 중계하듯 생생하게 그려냈다. 책 출판에 맞춰 남편 조문호(69·사진 왼쪽)씨와 함께 사진전 ‘장에 가자’를 연 정씨를 2월9일 서울 중구 인사동 아리아트센터에서 만났다. 두메산골 주민을 찍던 남편은 9년 전부터 ‘운전기사’를 자처하며 정씨와 함께 장터를 돌아다니고 있다.

 

 

장보따리는 가방으로, 유모차로 바뀌고

 

장터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1987년. 1년간 장터에서 “할매들과 놀다”가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어릴 때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함평장이 열렸다. 엄마 따라 오일장에 가곤 했는데 그 추억이 아련했다. 신춘문예에 자꾸 떨어져서 사람을 더 알아야겠다, 깊이 소통해야겠다 싶어 장터로 향했다.” 그렇게 1년간 장터를 훑다보니 ‘변화상’이 눈에 들어왔다. 컬러텔레비전이 시골에까지 보급되면서 장꾼의 옷차림, 머리 모양이 바뀐 것이다. 그 모습을 정씨는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졌다. 인사동 암실(지금의 스튜디오) ‘꽃나라’와 동아리 ‘진우회’를 오가며 사진을 배운 터였다.


 

변화상은 30년간 이어지고 있다. 할머니들이 장보따리를 이고 다니다 점차 가방으로 바뀌더니 이제는 유모차에 싣고 다닌다. 장옥도 달라졌다. 난장이 줄어들고 번듯한 건물이 들어섰다. 그러나 장꾼은 반기질 않는다. “공무원들이 새 장옥으로 몰아넣어도 할머니들이 (시멘트가) 썰렁해 들어가질 않는다. 겨울에는 양지바른 곳에서 몸을 녹여야 하는데…. 오히려 역효과다.” 조씨가 말했다. 정씨는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장에 나오는 물건이 이 장이나 저 장이나 비슷해진 것을 아쉬워했다. 또 힘의 논리를 절감할 때는 엉엉 울기도 했단다. “20년간 장터의 명당 자리를 지키던 할아버지가 있었다. 바구니와 빗자루 등을 만들었는데 햇볕 잘 드는 곳이라 이웃 장꾼들이 어우러져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느 날 가보니 낯선 트럭이 그 자리를 차지했더라. 힘있는 자들이 할아버지를 내쫓아버린 거였다.”

안 돼요, 툭툭 건드리며 ‘이거 중국산이죠?’

 

그래도 전통과 인정을 맛볼 수 있는 장터가 아직은 남아 있다. 충남 예산장, 경남 합천장, 경북 경주 건천장, 전남 함평장, 전남 구례 산동장, 제주 모슬포장 등이 그렇다(상자 기사 참조). 장씨는 몇 곳은 10번도 더 가봤다고 했다. “석류를 맛있게 먹던 모습을 기억하고 할머니가 석류를 챙겨놓고 기다린다. 그 따뜻한 정이 그리워 발길이 자꾸 간다.”

 

가볼 만한 시골장터

주변 모든 좋은 것이 모여드는 곳

 

926년 개설된 충남 예산장은 쌍송백이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곳에 펼쳐진다. 평소엔 주차장으로 쓰다가 장날이면 할머니들이 보따리를 풀어 난장을 꾸민다. 보따리에선 가을에 수확한 콩과 말린 나물이 쏟아진다. 파라솔도 계절마다 설치가 달라진다. 겨울에는 파라솔이 누워 바람막이로 쓰였다가 여름에는 일어나 햇살을 가린다.

경남 합천장에는 없는 것이 없다. 보리, 콩, 참깨, 들깨 등의 곡식을 비롯해 무, 배추, 고추, 양파, 마늘, 수박, 우엉, 토란, 감자에서 백작약, 구기자, 질경이, 당귀 같은 약재까지. 이 모든 것이 인근 마을에서 재배돼 장터로 흘러 들어온다. 예전엔 인근 늪지대에 사는 여인네들이 모두 가물치, 메기, 뱀장어 등 민물고기를 이고 와 팔았다고 한다. 지금은 그 수가 줄어들어 몇몇 할머니들만 눈에 띈다.

 

경북 경주 건천장은 전통의 멋과 맛이 그대로 묻어난다. 장옥을 덮고 있는 슬레이트 지붕과 함석 미닫이문은 시간을 거슬러가는, 일부러 만들어놓은 풍경처럼 느껴진다. 장꾼들이 빙 둘러앉아 점심을 먹으며 고단한 사람살이를 부려놓는, 끈끈한 정도 변함없다.

 

전남 함평장은 100년이 넘었다. ‘두루 평평한 땅’이라는 이름 그대로 산지보다 평야가 많아 지역 특산물과 농산물이 넘쳐난다. 함평만에서 잡아온 수산물과 축산물도 거래된다. 함평장 뒤에는 육회비빔밥집이 즐비하다. 그날그날 들어오는 신선한 재료만을 이용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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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6년 7월에 개설된 전남 구례 산동장은 2일과 7일에 열린다. 구례장의 한 귀퉁이밖에 안 되는 조그만 장이지만 산수유를 수매하는 12월 초부터 1월까지는 성시를 이룬다. 산동면 58개 마을이 새벽부터 갖고 나온 산수유 때문이다. 산동은 전국 최대의 산수유 군락지로, 1천 년 된 산수유 나무도 있고 생산량도 전국의 74%를 차지한다. 장에 나온 사람들은 “어째, 산수유 많이 땄는가?”로 시작해 “많이 따이소”로 인사를 끝낸다. 산동장은 오전 10시가 넘으면 서서히 파하기에 ‘파싹장’이라고도 불린다.

 

제주 모슬포장의 공식 이름은 대정오일장이지만 모슬포장으로 더 유명하다. 제주답게 귤이 종류별로 나와 있고 자두며 복숭아, 참외, 수박 등 색색의 과일들이 화려하다. 어물전에선 갈치가 은빛을 뽐낸다. 장터 머리에선 바다가 보인다. “어디 감수꽈?”(어디 가십니까?)로 표현되는 구수한 제주도 사투리에서 토속적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장터에서 꼭 해야 할 것을 물었다. 장씨는 첫째, 할머니들과 눈을 맞추며 얘기하라고 권했다. “봄 장터에 가면 할머니가 캔 봄나물이 나와 있다. 3천원어치 쑥을 사면서 ‘참 예쁘게 다듬었어요’라고 칭찬해보라. 덤은 물론이고 첫사랑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다.” 둘째, 골목을 둘러보라. 장터에 가면 흔히 큰길만 훑어보는데 고유한 특색은 뒷골목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 골목을 둘러보며 그들만의 일상을 엿보는 것과 비슷하다. 셋째, 국밥 먹기. 그 지역에서 많이 나는 식재료로 장터에서는 국밥과 밑반찬을 만들어 값싸게 내놓는다. 국밥집은 보통 장날과 장이 열리기 전날만 연다. 약속을 하지 않아도 그날이 되면 장꾼들은 하나둘 모여들어 막걸리 잔을 부딪친다. 놓칠 수 없는 장터 현장이다.

 

정씨는 장터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설명했다. “툭툭 건드리면서 ‘이거 중국산이죠?’라고 묻지 마라. 그렇게 무례하게 굴면 자긍심이 강한 장꾼들이 크게 화낸다. 그들은 갖고 나온 물건이 얼굴이고, 장터가 살아온 역사라고 생각한다.” 그것에 이끌려 장씨는 30년간 장터를 들락거렸다. “장터는 사람과 물건이 만나는 곳이면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다. 세월과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며 느끼는 끈끈한 감정은 그대로다.”

 

글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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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북적이고 활기 돋는 장터 가운데 하나인 강원도 정선오일장.
ⓒ 정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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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전철을 타고 갈 수 있는 경기도 성남 모란역 앞 모란장, 일산역 앞 일산장, 파주 문산역 앞 문산장 등 수도권에 있는 오일장 장터들을 알게 된 건 정영신 작가의 사진집 <한국의 장터>를 읽고 나서다.

특히 아파트들이 빈틈없이 들어선 신도시 일산에선 능숙한 솜씨로 여러 모양의 칼을 다루는 칼갈이 할아버지, 각종 곡식이 담긴 양철통 옆에서 연신 쇠통을 돌리는 뻥튀기 부부, "꼬끼오~" 우렁찬 목소리로 우는 수탉 등의 모습들은 언뜻 비현실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이외에 강원도 양양장에서 제주도 모슬포장까지 책 속엔 500개가 넘는 오일장터 사진들이 담겨 있다. 사진들을 보며 아직도 전국 동네방네 곳곳에 저마다의 날짜에 맞춰 오일장들이 서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소읍은 물론 시골 마을까지 들어선 대형 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 편의점들의 세상에서 이런 오일장터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자생하고 있다는 게 고마웠다. 이후 여행 삼아 가까운 곳부터 찾아가보곤 했다.

내겐 좋은 여행 가이드이기도 했던 <한국의 장터>의 저자 정영신 작가가 남편인 조문호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와 함께 전국의 오일장 522곳을 약 30년에 걸쳐 기록한 사진들을 모은 사진 전시회 <장에 가자>를 열고 있다(오는 17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1987년부터 최근까지 전국의 전통 시장을 돌며 사진으로 담아낸 작품 80여 점을 볼 수 있다. 추억 속 장터와, 동네주민이자 장꾼들의 삶, 장터의 변두리 풍경 등이 정겨우면서도 애잔하게 펼쳐진다.

정겨움과 쓸쓸함이 공존하는 우리네 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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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이 보이는 흑백사진은 더욱 진하고 뭉클하게 다가온다.
ⓒ 정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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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반 이상이 모여 사는 아파트, 모든 것이 편리하지만 이웃 간 소통하고 사는 이는 드문 한국의 도시. 이렇게 팍팍하고 메마른 도시 생활에 도무지 정이 안 갈 때 찾은 오일장은 고향 같은 푸근함을 느끼게 해줬다. 유년 시절 방학 때마다 놀러 갔던 시골 외갓집에 대한 기억이 유일한 내게 오일장이 펼쳐지는 공간은 고향의 정감을 나눠주는 곳이다.

그런 정경을 기대하고 찾아간 사진전에서 의외의 풍경과 마주쳤다. 아내인 정영신 작가의 감성적이며 푸근한 인간미가 넘치는 사진들이 있는가 하면, 남편인 조문호 작가의 사진은 마트와 시대에 밀려나고 있는 장터에 드리운 그늘과 스산함을 담아냈다. 승자보다는 패자, 강자보다는 약자에 시선을 돌려 톺아보는 다큐멘터리 사진 앞에서 자꾸만 서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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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와 시대에 밀려 스러져가는 시골 오일장.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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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기록하고 증언하는 생생한 현장감 외에 그만의 내공과 미학이 느껴지는 조문호 작가의 '불편한' 사진들은 묘한 공감과 감동을 전해줬다. 타인의 어려움과 아픔에 동정심보단 혐오를 드러내는 삭막한 시대에 다큐멘터리 사진이 좋은 보루가 되겠구나 싶었다.

전시장은 정 작가의 '희망을 엮는 집어등'으로 시작해 조 작가의 '장날, 그 쓸쓸한 변두리 풍경'으로 끝난다. 잔돈을 거슬러주며 물건 파는 장꾼의 생동감 있는 얼굴이 있는가 하면, 짐을 짊어지고 어딘가로 가는 노인의 쓸쓸한 뒷모습 사진은 내 부모의 모습 같아 가슴 한구석이 뭉클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컬러 사진 외에 간간이 보이는 흑백 사진 또한 푸근한 장터를 색다르게 느끼게 했다. 화려한 색을 뺀 단순한 흑백 사진이지만, 사진을 보면 볼수록 이상하게 여러 감정이 배어 나왔다. 손님이 뜸한 늦은 오후 머리를 맞대고 단출하게 차린 밥을 먹고 있는 장꾼 부부. 사람이 그리워 채소 몇 단, 호박 몇 덩이 가지고 나와 장터 외진 곳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는 할머니. 하루 종일 바람과 햇볕에 고스란히 노출되면서도 오일장터를 지키는 사람들의 사진은, 누가 굳이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말해주지 않아도 정겨우면서도 아릿했다.

소중하게 지키고 보존해야 할 생활 문화 박물관, 오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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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장에서 관람객을 맞이해 주는 부부 다큐 사진가 정영신, 조문호 작가.
ⓒ 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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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1970, 1880년대 경제 성장기를 거치면서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 국민이 됐지만, 마을 공동체와 정다운 이웃 사촌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느 외국 작가의 말대로 기적을 이뤘지만, 기쁨을 잃고 말았다. 약자를 배려하고 슬픔과 고통을 함께하던 미풍양속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이렇게 경제적 부(富)와 바꾼 것들을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모여 아직도 이렇게 오일장터가 남아 있게 된 것일 게다.

오일장터라는 공간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다. 오일장은 서양의 대형 할인마트처럼 대량으로 상품이 거래되는 곳이 아니라 5일간의 일용할 양식과 물품을 장만하던 소박한 유통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의 강점은 서구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람 간의 교류와 정(情)이라는 무형의 물품이 함께 유통된다는 것. 장터는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거나 교환하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대처의 소식을 듣거나 인근 마을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는 광장이요 소통의 공간이었다. - 정영신 사진집 <전국 오일장 순례기> 가운데

동학 혁명이나 3·1운동도 장날을 참고해 전개됐다 하니, 오일장의 사회적 의미는 큰 것이었다. 두 작가 또한 "​장터라는 공간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그 지역의 생활 문화를 꽃피우는 무대요, 전국에 흩어진 장터들은 우리가 소중하게 지키고 보존해야 할 생활 문화 박물관"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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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장터 사진 앞에서 옛 추억을 나누는 어르신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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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에 가면 흔히 마주할 수 있는 장면이 오롯이 담긴 사진들은 언뜻 '이런 사진은 나도 찍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눈으로 보기는 쉬워도, 사진에 담아내기 어려운 게 장터 사진이다. 생계가 걸린 고된 장터 일을 하는데 낯모르는 타인이 와서 카메라를 들이미는 것을 좋아하는 이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마침 전시장에 정영신 작가가 나와 있길래 어떻게 장터 사진을 자연스럽게 찍을 수 있었는지 몇 가지 궁금했던 점을 물어보았다. 카메라보다는 먼저 인사를 건네고 물건도 사고, 조금씩 얘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오일장터에 구경 가서 사진을 찍게 될 때 참고해야겠다.

 

 

오마이뉴스/김종성 시민기자 

[인터뷰] 사진전 <장에 가자> 정영신·조문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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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에 가자'라는 주제로 전국 5일장의 모습을 담아 사진전을 진행하고 있는 주 문호, 정영신 사진가는 26일 서울 종로구 아라아트센터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맨손으로 칡을 캐서 진도장에서 내다파는 파는 정도단 할머니의 손은 수많은 장터의 풍경을 대표할 수 있는 사진이다"고 소개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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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장에서 칡을 파는 정도단(84)씨의 손마디는 늘 퉁퉁 부어있다. 검게 그을린 손등, 유독 하얗게 빛나는 손끝 한 마디, 정돈되지 않은 손톱은 하루의 고단한 노동이 묻어난다.


세월의 질곡을 보여주는 노인의 손을 담은 정영신(58) 작가는 "할머니는 남들처럼 삽과 곡괭이 대신 늘 맨손으로 칡을 캔다"고 말했다. 정씨는 칡 말고도 가시리와 전복도 판다. 젖어있는 걸 팔다보니 늘 불어 있게 마련인 손끝, 유독 하얗게 보이는 이유다.

"저는 이 손 하나가 장터를 다 말해준다고 생각해요. 아마도 할머니는 손으로 칡을 직접 캐면서 자기가 살아 있다고 느꼈을 거예요. 할머니가 '정선장에 있는 칡은 다 내 손에서 나왔다'고 말했거든요. 당신 물건이 다른 사람 좌판에 올라가 있는 게 뿌듯했던 거죠."

정영신 작가는 전국 552곳의 장터를 순례했다. 1984년 소설가 등단을 준비하던 정 작가는 "인간의 내면을 보기 위해 장터로 갔고 장터의 인문학적 의미를 깨닫고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30년 간 장터에 갔다. 10년 전 부부의 연을 맺은 조문호(68) 작가도 2006년부터 장터 순례에 합류했다. 그는 '전농동 588번지', '87 민주항쟁', '동강백성들' 등 사진집을 출간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다.

이들 부부의 '30년 기록'이 사진전 <장에 가자>로 탄생했다. 소설가 박인식은 "이 사진들은 천천히, 늙은 장꾼의 걸음걸이로 바라봐야 한다"고 권했다. 지난 26일, 사진전이 열리는 인사동 아라 아트센터에서 정영신·조문호 두 작가를 만났다.

"장터에서 '사람' 이야기를 빼면 섭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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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 영천장
ⓒ 정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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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장롱 속에서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곱게 단장하고서 장에 왔어요. 휴대폰도 없었으니깐 장에 가야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거예요. 지금으로 치면 장터가 복합문화공간이었죠. 구경하는 재미도 컸어요. 약장수들이 틀어놓는 노래에 맞춰 여자애들이 고무줄 놀이도 하고."


부부에게 장날은 '동네 잔칫날'이었다. 정영신 작가는 "장날은 농사꾼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던 날"이라고 회상했다.

부부가 담은 장날의 많은 풍경 중 눈에 띄는 것은 장터 사람들이다. 작가 노트에서 정 작가는 "물건이 곧 사람 얼굴이라 거짓말도 못하는 곳이 장터"라고 했다. 장터에서 오가는 물건들 대부분은 시골 일상 또는 노동의 결과물들이다. 각자 자신의 삶이 배어있는 물건들, 그렇기에 더욱 거짓말을 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정 작가는 시골 노인들은 지붕이 있고 바닥에 시멘트가 깔린 현대식 아케이드 대신 흙바닥의 난장을 더 좋아한다고 말한다. 양지 바른 곳을 찾아 봇짐을 내려놓고서 옆 할매와 수다를 떨며 사람 구경에 나서는 것이다. 조문호 작가는 '사람이 고팠던' 한 노인의 사연을 전했다.

"한 노인이 농산물을 파는데 누가 그 남은걸 다 사가려고 하니 '안 된다'고 말합디다. 다 팔리면 집에 가야하니 싫다는 거예요. 조금씩 팔면서 종일 장터에서 놀겠다는 거지. 이렇게 장터는 상행위를 하는 곳만이 아니라, 그냥 사람 구경하는 놀이터예요."

따뜻한 연정과 암울한 적막감이 공존하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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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신 사진가가 전시회장을 찾은 지인에게 자신이 찍은 사진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이날 전시회장을 찾은 지인은 구례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마음에 든다며 작품을 선뜻 구매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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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왼쪽부터 돌아보면 첫 작품은 정영신 작가의 '희망을 엮는 집어등'으로 시작해 조문호 작가의 '장날, 그 쓸쓸한 변두리 풍경'으로 끝난다.

조문호 작가는 작업노트에서 "정영신의 사진에서는 따뜻한 연정이 피어오르고 내가 찍은 사진에서는 암울한 적막감이 감돈다"고 했다. 물건 파는 노인의 생동감 있는 얼굴과 짐을 짊어진 노인의 쓸쓸한 뒷모습이 대비된다.

정 작가는 여전히 그 장터라는 존재에 희망을 품는 반면 조 작가는 '장터는 사라진다'는 현실적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에 대해 조 작가는 "가치관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시골장은 끝났다고 보는 것이다. 반면 정 작가는 "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땅에 농민들이 존재하는 한 장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장날이면 노인들이 '누가 버스에서 내릴까'를 기대하며 정류장에서 기다려요. 할머니들이 모여서 놀다가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잖아요. 그 순간 어떤 망설임 없이 돈을 꺼내서 모으고, 버스를 타고 병원에 가는데. 이런 삶이 어찌 사라지겠어요."

쇠락한 장터에서 노인들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삶의 현장을 지켜낸다. 정 작가가 말하는 "하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장을 찾던 노인들이 지팡이 대신 몸을 지탱하기 위해 빈 유모차를 밀고서 나타난다"는 풍경만 달라졌다.

부부는 장터에 나온 물건 하나, 파장 후 개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는 모습까지 빼놓지 않고 찍는다. 정 작가는 "나중에 귀중한 문화사적 사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장터 노인과 인사동 사람들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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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회를 통해 장날의 쓸쓸한 변두리 풍경을 담은 조문호 작가는 "지금의 시골장은 장사꾼들도 잘 오지 않는다. 읍내 하나쯤은 살아남겠으나 대부분은 사라질 것으로 본다"며 줄줄이 사라져가는 5일장의 모습을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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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장이 정영신 작가의 정신적 고향이라면 조문호 작가에게는 인사동이 있다. 인사동 사람들은 과거 조 작가의 "정신적 허기를 메워줬던 사람들"이다. 고 천상병, 고 민병산 선생 등 그때 그 사람들은 없지만 "당시 향수를 잊지 못해 인사동 실비집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고 했다. 2010년 출간한 사진집 <인사동 사람들>이 그 결과물이다.

인사동 사람들은 5일장 노인들과 닮았다. "약속 없이 장터에 왔다가 건넛마을 사돈과 친구를 만난다"는 조 작가의 말처럼, 부부에게 인사동은 "몇 안 되는 술집을 한 바퀴 돌면 친구들을 모두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이들과 만나면 조 작가는 취한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셔터를 누른다고 한다. "분명 취했는데도 사진은 멀쩡하게 나온다"는 아내의 말에 남편 조 작가는 "나보다 카메라가 막걸리를 더 많이 마셨다"며 농을 쳤다.

5일장 사람들 그리고 인사동 사람들은 과거, 현재, 미래 중 '과거'에 가깝다. "지금의 인사동은 돈 없으면 꼼짝 못 하는 공간이 됐다"는 조 작가의 말처럼 인사동은 관광객들이 좋아하는 화장품·기념품 가게가 생겨났다. 터줏대감이던 예술인과 화랑은 골목으로 밀려났다. 그는 "거리에서는 중국산 잡동사니만 팔릴 뿐 갤러리는 텅텅 비었다"고 한다. 그는 낯선 인사동의 모습을 토로하고 "술을 마시면서도 허전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는 글을 자주 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문호 작가는 "인사동은 서울에서 유일하게 문화가 남아있는 공간이다"고 말한다. 강남이니 평창동이니 경제 중심지는 계속해서 새로운 곳으로 넘어가지만 인사동만큼은 문화를 쥐고 있다는 얘기이다. 그는 "여전히 많은 예술인들이 애착을 가지고 인사동으로 온다"고 말한다. 이는 정영신 작가의 "노인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장터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가치관과 통한다.

<장에 가자> 전시장 입구 중앙에는 목을 빼고 뭔가를 기다리는 노인들의 사진이 있다. 목도리와 마스크로 무장한 이들은 저마다 장바구니와 비닐봉지를 쥐고 있다. 자세히 보면 영천장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영신 작가는 "이 사진을 본 소설가 박인식이 '메시아를 기다리는 느낌'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5일장과 인사동에 숨결을 불어넣는 메시아가 올 수 있을까. 정영신·조문호 작가의 답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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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호, 정영신 작가가 전국을 일주할때 함께 한 자신의 자동차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강원도 삼척 근덕장에서 제주도 모슬포장까지 모두 522개의 5일장을 돌며 기록했지만, 5일장이 열리고 있는 한 사진 작업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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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호 사진가가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아라아트센터에서 '장에 가자' 사진전을 찾은 <오마이뉴스> 취재기자의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조문호, 정영신 사진가는 매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전시회장을 찾은 관람객에게 무료로 인물사진을 찍어주는 행사도 진행한다.

ⓒ 유성호

 

[오마이 뉴스 : 박다영기자]

[사진마을] ‘전국 5일장 순례기’ 펴낸 정영신씨


 

30년간 장터 522곳 훑고 다녀


 

희망을 엮는 집어등 2010 영천장. 정영신

 

“와 이리 헐노” “아따메 징허요”
사진과 함께 현장감 넘치는 글
남편 조문호씨와 사진전도

 

“많이 변해도 추억 여전히 남아
부산 오시게장·예산장 볼만해”


30년 동안 전국의 522개 장터를 빠짐없이 훑고 다닌 정영신(58)씨의 포토에세이집 <전국 5일장 순례기>(표지)가 나왔다. ‘전국 5일장 순례기’는 2012년에 정씨가 펴낸 사진아카이브 ‘한국의 장터’의 연장선상에 있다. 경기 강화 풍물장의 “안녕하시까? 여기 세 그릇 주시겨” “오셨시까?”부터 경남 의령장의 “와 이리 헐노? 이 고추 때깔 좀 바라. 올메나 곱노”와 순천 아랫장의 “아따메 징허요, 여그 앉을 자리 없어라”를 거쳐 제주 모슬포장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좋쑤과. 일 킬로에 얼마우꽈”에 이르면 시장 냄새가 팍팍 난다. 책에 든 사진도 모두 정씨가 직접 찍었으므로 방방곡곡의 현장감이 100% 전해진다.

책이 나온 날에 맞춰 부부 다큐멘터리 사진가 정영신씨와 조문호(69)씨가 함께 만든 사진전 ‘장에 가자’가 서울 아라아트센터에서 개막되었다. 정영신씨는 사진가 이전에 소설가이며 조문호씨는 ‘전농동 588번지’, ‘87민주항쟁’, ‘인사동사람들’ 등 열다섯 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최근에는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천상시인 천상병 추모 사진집>을 낸 베테랑 사진가다. 두 사진가를 20일 눈빛출판사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서울 마포구 상암월드컵파트4단지 장터를 걷고 있는 정영신(오른쪽)·조문호씨 부부. 곽윤섭 선임기자

 

 

-5일장에 처음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언제인가? 사진과의 인연은 언제부터인가?

“소설을 쓰다 보니 사람에 대한 관심은 늘 있었는데 소설의 소재도 찾을 겸 장터를 찍기 시작했다. 어릴 때 우리 집에서 조금만 가면 장이었고 차 타고 조금만 가면 함평장이어서 장날에는 엄마 따라 장에 가곤 해서 익숙했다. 그 후로 힘들고 뭐가 잘 안되면 장터를 찾곤 했다. 1984년에 시작했고, 조세희 선생이 쓴 <침묵의 뿌리>를 보고 ‘사진이 이런 거구나’라고 첨 생각했다. 서울 낙원동에 있는 ‘한국사진학원’에서 인화하는 것까지 배웠다.”

-30년간 장터는 어떻게 변했는가?

“가장 큰 변화는, 장옥이 다 바뀌었다. 규격화한다면서 시멘트로 발라버려서 다 망쳤다. 겨울엔 (시멘트가) 썰렁해서 사람들이 안 들어간다. 옛날엔 장이란 게 장에 나오는 사람들이 자신의 최고 모습을 보여주는 무대 같은 곳이었는데 텔레비전이 시골 구석구석 들어온 이후론 변했다. 기업화된 장돌뱅이가 많아져서 장에 나온 물건이 평준화되어 이 장이나 저 장이나 비슷비슷해졌다. 요즘 시골장엔 할머니들이 거동이 불편하셔서 유모차나 카트를 밀고 다니시는 것도 장터 풍경의 변화다. 80년대에 처음 찍을 때는 장보따리 이고 다녔는데 점차 가방으로 바뀌다가 이젠….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갓을 쓰시고 장에 나오시는 멋쟁이 할아버지들도 찾아볼 수 없다.”

-장터는 어떤 곳인가?


장터 상인의 밑천 2013 순천아랫장. 정영신

 


“요즘 장터에서 많이 듣는 이야기가 있다. 할머니들이 콩 한두 되 가져와서 가용해서 쓸려고 나왔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발로 바구니를 툭 건드리면서 ‘이거 중국산이죠? 할머니’ 이러면서 지나간단다. 아니라고 해도 사람 말을 믿지 않고. 시장 할머니들이 자긍심이 강한 사람들인데 너무 속상해하신다. 그래서 차라리 물건끼리 바꿔가는 게 낫고 그렇게들 많이 하더라. 아는 사람하고 ‘너나 좋은 거 먹어라. 필요한 게 뭐냐?’ 이렇게 하는 게 속이 편하단다. 콩 한 되 가져와서 아는 신발 집에서 발에 맞는 구두 한 켤레 가져가는. 어떻게 보면 옛날 장터가 딱 그랬다. 오히려 좋은 현상인 것 같다. 장이란 게 꼭 판다기보다는 하루 생활이다. 구경도 하고 얘기도 하고 친구 만나 동네 소식도 듣고. 그런 역할을 하던 곳인데….”

-장터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 기억나는 사람도 참 많겠다.

“지난해 5월에 팽목항에서 십여분 거리인 진도 십일시장(임회장)에 갔다. 한 상인이 ‘시방 진도가 초상집이여. 영감이 잡아오는 생선 팔아 가용도 쓰고 병원 댕기고 하는디, 요샌 뭍에도 못 나가, 장이 쪼까 휑-하지라. 젊은 여자들은 모다 팽목항으로 봉사 갔어. 첨엔 장 바닥에 퍼져앉아 아까운 새끼들 어짜쓰까 함서 막 울고 그랬제. 어찌것는가 이렇게 꼼지락거리면서 이겨내야제. 슬픔이 이 늙은이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된다는 것을 이참에 배웠당께’라고 하시더라. 가슴에 와닿았다. 2013년에 북평장에서 만난 한국에 온 지 5년 된 베트남 출신 또티호완(30)씨는 한국말도 잘했다. 직접 밭에서 키운 오이, 가지, 고추 등을 팔았는데 오이를 사가는 할머니에게 두 개나 얹어주는 우리나라 덤문화까지 알고 있어 정겨워 보였다. 영동장엔 한 열 번 갔는데 곰방대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자주 갔다. 한 장만 빼먹으면 ‘왜 안 왔니…’ 하셨다.”



 

정영신의 포토에세이집 <전국 5일장 순례기>에는 이런 에피소드들이 가득 들어 있어 독자가 장에 직접 가 있는 기분이 들 정도로 글과 사진이 술술 읽힌다.

-21세기의 5일장에 예전의 느낌이 살아 있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5일장 작업을 계속할 것인가?

“꼭 누가 나를 기다리는 것 같다. 장에 가면 영동 할매가 나를 기다리고 사람이 아니라면 나물이 나를 방긋방긋 기다린다. 이달에, 어디에 가면 뭐가 나와 있을 것이고 나를 부른다. 나는 아직도 어딜 가든 옛날 장터의 모습을 본다. 머리와 옷과 가방의 스타일은 급속도로 변했지만 그래도 장이란 공간에선 어느 한구석에 반드시 그 지역이 보이는 곳이 있다. 우리 장의 정이 남아 있다. 앞으로도 계속 찍을 것이고 여유가 생기면 서울의 전통시장을 찍을까 한다.”

5일장을 찍고 싶어하는 초보자들을 위해 장터 추천을 부탁했더니 부부가 경쟁하듯 줄줄 불렀다.

“부산 노포역 맞은편 언덕에 오시게장(2, 7일장)이 규모 있게 펼쳐져서 볼만하다. 파라솔이 계절마다 다르다. 여름에는 햇볕 때문에 서 있다가 겨울에는 바람 들어오는 허리를 가려야 하니 누워 있다. 포항 송라장, 경주 건천장, 성주장도 좋았지. 12월 구례장엔 산수유가 나오고 청양장에 구기자가…. 제일 활기찬 장은 추운 겨울날 새벽이다. 추우니 활기가 차다. 여름은 햇볕도 강하지만 사람들도 늘어져서….”

2월17일일까지 열리는 전시장엔 간이 스튜디오를 만들어 정영신, 조문호 사진가가 매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관람객 모두에게 인물사진을 찍어주고 이메일로 전송해주는 행사도 준비되어 있다.

한겨레신문 /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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