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햇님이가 남지현에게 장가가고, 남지현이가 조햇님에게 시집왔다.

그 것도 자식까지 잉태하여 울리는 빵빠레인데, 내 복에 이런 날이 올 줄 어찌 알았겠나?




    


햇님아! 그동안 엄마와 병든 외할매 모시고 사느라 고생했다.

짐 떠 넘긴 죄로 마음 한 구석엔 말 못할 아픔이 항상 응어리졌다.

셋방에서 가난하게 살지만, 올 곧게 살아주어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가난이 욕이 아니라 덕이라는 변명 같은 말을 다시 한다.

만약 우리가 돈이 많았다면, 그 중독성에서 과연 헤어날 수 있었겠나?

돈이 인간성을 죽이는 원죄라는 걸 너도 잘 알잖아.



 


결혼식이 있던 25일은 마음이 들떠 일찍부터 설쳤다.

기념사진 찍는다기에, 오전 아홉시에 '하림각'으로 달려갔다.



 


사진 촬영하는 신부를 지켜보니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았다.

지난 번 선거유세장의 첫 만남에 그 사람 됨됨은 짐작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선녀였다니...



 


조씨 집안에 호박이 넝쿨 채 굴러들어 온 경사가 아니겠는가.

더욱 믿음직한 것은 험난한 현실에 뛰어들어 바르게 살았다는 점이다.

어찌 햇님이와 천생연분이란 생각이 들지 않겠나?.



 


햇님이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칠십 나이에 지팡이 짚은 초라한 모습에서 지난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 성질머리에 식구들마저 등진 채, 오로지 자식 하나 보고 살아온 비련의 여인이 아니던가?

호랑이 이빨같은 깡다구는 다 어쩌고, 이렇게 양처럼 온순해졌나?





오직 햇님이 만이 그 성질 다 받아주며 모셨는데,

이제 자식마저 떠나 보내게 되었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나?

그래도 신혼 방이 좁아 햇님이 짐을 가져갈 수 없다니 천만다행이다.

집에 들릴 때마다 따뜻하게 손잡아 줘라.



 


시간이 다가오니 하객이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들기 시작했다.

멀리 계시는 분들이 더 일찍 왔는데, 다시 만날 수 없는 분들 같았다.

그 사연 사연은 뒤로하고 부지런히 그들 모습을 카메라에 주워 담았다.



 


다들 고맙고, 고맙습니다.

가난한 처지라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살았건만, 잊지 않고 찾아 준 그 정에 가슴이 찡하다.

예식장을 가득 메운 친지들의 고마움이 한편으론 짐처럼 어깨를 짓누른다.

뒤늦게 알았지만, 하객이 400여명이 넘었다니, 이 어찌 부담이 아니겠는가?



 


한편으론 정의당 전당대회 같았다.

주례를 맡은 심상정의원을 비롯하여 천호선, 김재남, 박원석, 양경규, 김종민씨 등 알만한 분들은 다 보였다.

한 때는 당원이었으나. 지금은 쓴 소리를 거침없이 하는 논객 이광수교수까지 부산에서 올라 오셨다.

고향 친구를 비롯하여 인사동을 사랑하는 예술가들도 많이 참석하셨다.



 


햇님을 항상 도와주는 박재송씨의 사회로 심상정의원이 주례사를 했다.

이날 심상정의원의 주례사는 부부가 일심동체라는 말은 잘못되었다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심이체임을 인정하며 뜻이 다를 땐 서로 듣고, 같을 때는 합심하라고 했다. 

정의당과 사회를 위해 일하며 더불어 건강한 가정을 만들라고 말했다.





신부가 던진 부케는 유동호위원장이 받았으나, 거리가 멀어 사진을 찍지 못했다.

예식 장면을 기록할 수 없어 아쉬웠지만, 앉은 자리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 한 두컷 찍었다.





또 하나 귀 똥찬 이벤트는 정의당 합창단의 노래 노란샤스 입은 사나이였다.

노란 셔츠 입은 말없는 그 사내가 어쩐지 나는 좋아”로 시작되는 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졌다.

분명 정의당의 히트곡이 틀림없었다.





정치를 떠나 인간적인 만남의 자리이니, 이 얼마나 뜻 깊은 자리인가?

정으로 뭉쳐 정의로운 평등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의당의 존재이유지만,

정의당이 뜨지 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했다.



 


결혼식과 오찬이 끝난 후, 햇님이 엄마를 차에 태워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햇님이 없는 빈집이 얼마나 허전할까 걱정스러웠으나,

강아지 밥 챙겨 줄 걱정 하는 것 보니, 정 붙일 곳이라도 있어 다행이다 싶다,

옛날엔 짐승을 그토록 싫어하더니, 뒤늦게나마 마음을 돌렸구나.

좌우지간, 아들 키우느라 고생많았다.

지팡이 짚고 서서, 떠나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는 눈길이 왠지 측은해 보였다.





부디, 오래살아 정의로운 평등사회가 오는 날은 보고 떠나자


 

사진, / 조문호



















































 

 

 





사고는 사고인데, 분명 경사인 것 같습니다.
아들 햇님이가 지현이에게 장가도 가기 전에 애를 배게 했거던요.
속도위반으로 날아오는 딱지는 내가 다 해결 할 테니, 얼마든지 위반하라고 했습니다.
난, 법을 우습게 아는 범법자 아닙니까.






그래서 결혼을 서둘게 되었다는데, 나야 일타 쌍피라 좋지만 기분은 좀 그렇더라.
이젠 할아버지 소리를 피할 수 없으니, 내 청춘은 우짤고?


사정은 이야기 않고 느닷없이 결혼식 올리겠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부자지간에 돈 한 푼 없는 개털이니까..
아무런 대책도 없이 날짜만 다가오니, 이판사판 부딪혀 볼 수밖에 없다.
설마 산 사람 입에 거미줄 치겠냐마는, 문제는 천오백만원이나 되는 예식비용이다.
잘 못하면 신혼여행은 커녕 신랑신부가 예식장에 잡혀 일할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돈과는 인연이 없으니, 머슴살이를 하더라도 금실 좋게 살며 자식이나 잘 키워라.






지난주에는 한 달에 한번 가는 정선으로 떠났다.
한번 갔다 오는 비용이 오만원이나 들지만,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농작물도 살펴야 하지만, 무덤에 계신 울 엄마한데 자랑 질 할 일이 더 급했다.
머지않아 증손자 보게 되었다는 희소식을 어찌 전하지 않고 견딜소냐.






텃밭에는 고추와 방울도마도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실소를 머금케 하는 것은, 고추밭에서 다산과 번창하는 자손이 연상되는 건 또 뭔가?
능력만 있으면 자손들도 고추나 토마토처럼 주렁주렁 열렸으면 좋으련만,
돈 없이는 엄두도 내지 못할 세상이 아니던가?
세상에 빚지지 않을 만큼, 둘만 낳아 잘 키워주길 부탁한다.






소식 전하려 만지산 산소부터 올라갔다.
속도위반한 아들을 닮았는지, 무덤가엔 성급한 코스모스가 만발했다.
마치 경사를 축하하듯 너울거렸다.
아마 살아 계셨다면, 울 엄마가 제일 좋아하실 거다.

“햇님이가 장가도 가기 전에 애부터 가졌습니더! 벌써 다섯 달이 되었다네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으니, 엄마가 좀 보살펴 주이소!”라며 엎드려 빌었다.
“햇님이와 며느리 될 색시는 와 안 데려왔노?”라고 묻는 것 같아,
“똥 오줌 못 가릴 정도로 바빠 증손자 보면 함께 올 게요”라며 변명했다,






오후엔 고추와 방울토마토를 따고, 잡초 잡는 일에 시간을 다 보냈다.
끼니는 동자동에서 먹던 빵을 챙겨 갔으나, 좀처럼 먹을 틈을 주지 않는다.
옆집의 윤인숙씨가 밥 때 되기가 무섭게 불러대기 때문이다.






밥 얻어먹으러 갔더니, 앞마당 바닥 데크를 넓혀놓았는데, 춤을 추어도 되겠더라.
찾아 온 낯선 손님들에게 닭백숙을 대접하고 있기에 숱 가락 하나 걸친 것이다.
요즘 시골에서는 대마씨 효능을 알아차려 닭백숙에도 넣어 끓이는데, 그 맛이 아주 독특했다.

아마 귤암리 대마농사가 재개될 조짐까지 보였다.






서울은 언제 가냐고 묻길래, 내일 아침에 떠난다니, 아침도 같이 먹고 가란다.
어렵사리 틈내어 정선 갔으면, 넉넉하게 쉬었다 왔으면 좋으련만,
동자동에 꿀단지 숨겨 둔 것도 없는데, 가자마자 떠날 채비부터 한다.
그래도 이번엔 아들 결혼식이 눈앞에 다가 왔다는 핑계거리라도 있다.






그나저나 지인들에게 청첩장을 보내야 하는데, 마치 고시서 보내는 것 같아 망설여진다.
그래서 아주 가까운 몇몇 분만 청첩장을 보내고, 정보만 드린다.





“조햇님, 남지현의 결혼식이 8월25일 오전11시, 종로구 자하문로255(부암동) ‘하림각’에서 있습니다”
부디 잘 살도록 많이들 축하해 주길 바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경사는 분명 경산데, 걱정거리하나 생겼다.
아들 햇님이가 장가가겠다며 색시를 데리고 나타난 것이다.

지난 번 선거유세장에서 유세 돕는 처녀를 얼핏 보았지만,
막상 마주앉아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무 능력 없는 애비로서 그 뒷 감당을 어찌해야 할지 막막했다.
못 치는 사기지만, 사기 칠 여유도 없이 밀어붙이면 난 어쩌란 말이냐?






걱정은 다음 문제고, 갑자기 햇님이 엄마와 첫선 볼 때의 40여 년 전으로 필름이 돌아갔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눈도 제대로 마주 치지 못하던 그때의 심정이었다.
새로운 가족이 눈앞에 앉았으니, 어찌 마음 설레지 않겠는가?

일단은 생각지도 못한 복덩이가 굴러왔으니, 표정관리하기 힘들었다.
나이가 40이 넘도록 두 노인 뒤치다꺼리 하느라 장가도 못 갔는데,
그 오랜 소원을 이루게 해 주었으니 얼마나 고맙겠는가?
부모님 근황을 물어보며 찬찬히 살펴보니, 참 예쁘고 착해보였다.
둘 다 착해버리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도 걱정 되더라.






조햇님과 며느리가 될 남지현은 정의당 동지로서 만난 남다른 인연이다.
어떻게 착한 젊은이들이 정의당의 싸움꾼으로 나섰는지도 이해되지 않았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이 가상해 나까지 싸움꾼이 되지 않았던가?
생각이나 지향점이 같아 서로 큰 힘은 되겠으나,
살아가는데 필요한 돈과는 무관한 일이라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그런데, 아들의 구의원 출마에 따른 상흔이 채 가라앉지도 않은 즈음에,
밀어붙이는 결혼이라 미심쩍기까지 했다. 물론 둘 다 나이가 만만찮으니,
마음이야 급하겠지만, 사돈 상견례에 이어 8월25일 오전11시로 날짜까지 잡은 것이다.
혹시 속도위반으로 손자를 가지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7월14일 ‘하림각’에서 상견례가 있다기에, 내 딴엔 때 빼고 광내어 나갔다.
나에게도 드디어 돈이 아니라, 사돈이 생긴 것이다. 사돈!
‘사돈의 팔촌’이라거나 ‘사돈 남 나무란다’는 등 사돈과 관련된
여러 속담도 있듯이 사돈이란 가깝고도 먼 사이란 말일 것이다,
그러나 맺기에 따라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사돈을 만나보니 무척 낯이 익었는데, 오래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분이었다.
바깥사돈은 남선우씨, 안사돈은 김진희씨 였는데,
듣고 보니, 16년 전 영월에서의 천포문학 모임의 자리를 주선한 집 주인이었다.
그 때 단체사진 찍으며 거시기를 꺼내는 기상천외한 퍼포먼스를 했는데,
그 걸 여지 것 기억하고 있었다. 이 일을 어쩔거나..






사람의 인연이란 이렇게 연결될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 당시는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을 끝내고 영월로 이사했을 무렵이라는데,
그 이후부터 두 내외가 오손 도손 영월에서 살았다고 하셨다.

그런데, 또 한사람 반가운 이산가족을 만난 것이다.
바로 햇님이 엄마 고외수씨 였다. 이 또한 얼마만이던가?
그 곱던 모습은 다 어디가고 이제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그녀의 지난한 세월을 이야기하려면, 책 한권은 족히 될 것이다.






싸우기도 많이 싸웠으나, 미운 정이 더 무섭다는 것을 알게 한 여인이었다.
오직 자식하나 보고 악착같이 살았는데, 지금의 마음은 또 어떻겠는가?
처음으로 따뜻하게 손 한번 잡아주고 싶었으나, 쑥스러운지 피했다.
나를 만난 것이 죄가 되어, 그 동안 참 고생 많이 했다.
눈물 마를 날 없었던 비운의 여인이었다.
세상사 다 ‘새옹지마’란 옛말을 떠올리게 했다.






그 날 자하문의 ‘하림각’에서 한 상견례 덕에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었다.
이름도 모르는 음식이 즐비했으나, 단지 반주가 없어 아쉬웠다.
상견례가 끝나고, 다음 달 치룰 하림각 컨벤션센터 결혼식장도 둘러보았다.
너무 호화로운 결혼식장이라 마음에 걸렸다. 사돈만 없었다면 어림없었다.
식사비만 하객 일인당 5만원이라지 않는가?
그 자리에서 손잡고 입장하는 예행연습에다,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주례는 정치적 대모 심상정씨가 맡기로 했단다.






그나저나 자식이 장가간다지만 애비로서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었다.
내 사정을 훤히 알아 바라지도 않겠지만, 최소한의 도움은 주어야 할 것 아닌가?

죽으면 관 값 하려고 통장 바닥에 묻어 놓은 50만원이 전 재산이었다.
보다 못한 정영신씨도 비상금으로 꼬불쳐 둔 백만 원을 내놓았다.
살림은 커녕 요강단지도 못 살 돈이지만, 그 돈을 자식에게 내 밀었다.
안 받겠다고 밀쳤지만, 기어이 손에 쥐어주었다.
신혼여행가서 아름다운 추억 하나 사 오라고...

“부디 잘 살아라.”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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