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는 인사동에 볼만한 전시가 너무 많았다.

아르떼 숲에서 열리는 세계적 오염으로 말썽을 일으키는 후쿠시마 조삼모사전을 비롯하여

나무화랑의 구경숙전 마킹스’, 그리고 김경서의 스스로 살아 숨 쉬는 젖은 땅’,

정복수의 자궁으로 가는 지도등 보아야 할 전시가 한 둘이 아니었다.

 

연휴가 끝나는 지난 4일은 서둘러 인사동에 나갔다.

십여 년에 걸쳐 해왔던 일 중의 하나가 인사동 전시 안내하는 일인데,

월말에 나오던 서울아트가이드소식지가 나오지 않아 몇 번을 헛걸음친 것이다.

 

  연휴라 그런지 인사동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무슨 볼거리가 있는지, 북인사마당은 구경꾼들이 진을 쳤다.]

 

  '아르떼 숲'에서 열리는 '후쿠시마 조삼모사'전에도 관람객이 몰렸다.

방류하는 일본보다, 동조하는 윤정부 대응에 더 분노하는 분도 있었다.

 

  삼일이나 지나서야 서울아트가이드가 나왔는데,

인사동 간 김에 네오록에서 보았던 구경숙의 마킹스보러 나무화랑에 갔다.

 

  전시 보는데, 차 빼라는 전화가 걸려 와, 다 보지도 못하고 나왔다.

 

  정복수씨 전시가 열리는 6일에서야 다시 인사동에 나갈 수 있었는데,

마침 전시 작가인 구경숙씨도 만날 수 있었다.

 

  마킹스는 건강을 잃은 작가가 긴 치유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의 신체적 반응과 살아야 하는 절박함을 형상화한 작품이었다.

먼저 몸의 흔적을 판각하고 탁본 기법으로 찍은 뒤,

이를 한지로 릴리프 하여 육체와 정신의 이중성을 드러냈다.

복잡하고 힘든 과정을 거쳐 만들어 낸 노작이었다.

 

 전시장에서 내려와 정복수씨 전시가 열리는

조계사 아래 올미아트스페이스를 가기 위해 인사동 11길로 들어서다

토포하우우스앞에 붙은 김경서의 젖은 땅전시 포스터를 보게 된 것이다.

 

  아는 분이기도 하지만, 한때 몰입했던 늪에 관한 전시라 눈이 번쩍 뜨였다.

90년대 환경사진가회에서 일할 때, 전국 늪지를 찾아다니며 우포늪 사진집을 발간한 적도 있었다.

더구나 우포늪은 고향에서 가까워 어릴 때 자주 드나들던 곳이 아닌가.

 

  전시장에 올라가 보니 작가인 김경서씨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걸린 작품들은 사진인지 그림인지 헷갈릴 정도로 사실적이었다.

사진처럼 재현했지만,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늪의 웅성거림이 들리는 것 같았다.

현장 재현에 머물지 않고, 늪이 숨 쉬는 표현의 영역으로 끌어 올린 것이다.

그리고 전국에 산재한 늪지를 탐사해 낸, 늪에 대한 내공이 대단했다.

 

  문제는 매달 인사동 전시 소개에 공을 들여 온 내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정보지에 사진전문갤러리를 비롯한 많은 갤러리의 정보가 등제 되지 않아

레오록이나 페이스북 등 여기저기 뒤져 찾아내기도 하지만,

볼만한 전시를 추려 올리는 과정에서 '인사아트센터''경인미술관', '토포하우스'

대관 위주의 갤러리는 경력 작가들이 잘 찾지 않아 소홀했던 점이 문제였다.

 

  내가 인사동에 관한 기록을 하게 된 것도 어언 40여 년이 되었다.

변해가는 인사동이 안타까워 옛 풍류객을 찾아다니며,

인사동에 관한 전시나 행사를 추진하기도 했으나, 흐르는 물길은 되돌릴 수 없었다.

17년 전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창예헌이 창립되어,

창예헌카페를 개설한 것이 체계적으로 기록한 시작이었다.

 

  그 뒤 창예헌이 해체되어 이름을 유목민으로 바꾸었는데,

그마저 유목민이란 주점이 생기면서 유목민카페도 폐쇄되었다.

대신 인사동 사람들블로그를 개설하여 중요한 기록들은 옮겼으나,

그 과정에서 많은 자료를 잃어버린 안타까움도 남는다.

 

  다음블로그 인사동 사람들을 운영하기 시작한 십 년전 부터 '인사동과 서울강북지역 전시안내'를

매월 초 올려가며 인사동에 관한 이야기와 전시리뷰를 포스팅해 왔는데,

특정 전시 리뷰를 청소년 유해물로 판정해, 한 달 동안 로그인을 못 하게 하는 갑질에

네이브블로그인 인사동이야기를 새로 개설한 것이다.

 

  그러나 인사동을 비롯하여 사진에 관한 포스팅이 무려 6,300건이 넘어 옮길 재간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두 곳의 블로그를 같이 운영하게 되었는데,

두 블로그에 매일 한 꼭지씩 올린다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모든 자료를 블로그에서 찾을 수 있으니, 내에게는 족보나 마찬가지다.

김경서씨 작품 이야기하다 삼천포로 빠졌는데, 다시 전시 이야기를 하겠다.

 

  정복수씨 자궁으로 가는 지도를 보기 위해, 조계사 아래 '올미아트스페이스'로 발길을 옮겼다.

 

  정동지와 오후 5시경 전시장을 찾았는데, 이미 2층 전시실은 먼저 온 분들이 술판을 벌였다.

 

  주인공인 정복수씨를 비롯하여 장경호, 장석원, 임정희, 조준영, 한상진,

김수길, 전강호, 조해인, 이재민씨 등 많은 분이 모여 있었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은 인간 본능의 원초적 욕망이 이글거리는 투시도 같았다.

바로 병들어가는 현대인의 자화상이었다.

 

  이번 개인전 제목은 자궁으로 가는 지도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자궁으로 간다는 것은 돌아갈 수 없는 지도가 아니던가?

순간적으로 존덴버 노래 ’Take Me Home, Country Roads‘가 떠올랐다.

시골길이여 나를 집으로 데려가줘요. 나의 보금자리로...”가 아니라 어머니 뱃속으로...

 

  신비한 자궁의 세계에 온 것이 아니라, 사주 보는 점집에 온 기분이었다.

손금과 눈이 그려진 손바닥 그림 몇 점이 부각 되었는데,

마치 너 자신을 알라는 듯, 묵시적 가르침의 뉘앙스도 풍겼다.

 

  인간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출발했으나,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길이었다.

어찌 보면 길 잃은 인간을 안내하는 지도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처음 보는 작가의 자화상도 걸려 있었다.

 

  혼잡스러워 뒤풀이 집으로 정한 부산식당으로 옮겼더니,

전시장에서 뵌 분 외에도 최석태, 황준연, 구경숙씨도 와 있었다.

 

  그런데, 그 많은 손님의 술값이나 식사비를

뒤늦게 나타난 올미아트스페이스황순미대표가 계산해 버렸다.

 

  여지껏 수많은 전시 뒤풀이에 다녀 보았으나, 갤러리 주인이 뒤풀이 값 내는 곳은 흔치 않았다.

 

가난한 예술가들을 위해 돈을 쓰면 반드시 돌아갈 것으로 확신한다.

 

정영신사진

와인을 주는 대로 마신데다 소주까지 섞었으니, 버텨 낼 재간이 없었다.

간다는 말도 없이 바람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사진, / 조문호

 

미처 소개하지 못한 전시나 상세한 전시리뷰는 아래의 인사동사람들블로그를 참고하세요

인사동과 강북지역 갤러리, 202310월 전시 일정

https://mun6144.tistory.com/6866

33인이 불 지핀 후쿠시마 조삼모사핵 오염수 투기를 당장 중단하라!”

https://blog.naver.com/josun7662/223223369414

구경숙'마킹스 Markings'

https://blog.naver.com/josun7662/223225682853

김경서'스스로 살아 숨쉬는 젖은 땅

https://blog.naver.com/josun7662/223230335687

정복수의 자궁으로 가는 지도를 찾아가다.

https://mun6144.tistory.com/6868

 

정복수의 자궁으로 가는 지도-1’전이 106일부터 30일까지 인사동 올미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다.

 

화가 정복수는 반평생을 억눌린 인간의 본성이나 실존에 대한 문제를 인체 구조로 표현해 온 작가다.

 

그는 탐욕의 인간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육체라는 믿음으로 인간의 절단된 몸을 그려 왔다.

 

오래전 그의 작업실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하나의 충격이었다.

마치 종합병원 정형외과에 온 것 같았다.

작업실에는 사방에 해체되고 절단된 인체가 걸려 있었다.

팔다리가 잘려 나간 형체나 표정에서 사악해지는 인간의 실체를 보는 것 같았다.

 

한편으론 짐승 같은 인간 본능의 원초적 욕망이 이글거리는 생존을 그린 투시도 같았다.

바로 병들어가는 현대인의 자화상이었다.

 

이번 개인전은 자궁으로 가는 지도라는 제목이 붙었다.

이건 돌아갈 수 없는 지도가 아닌가?

갑자기 존덴버 노래 ’Take Me Home, Country Roads‘가 떠올랐다.

"시골길이여 나를 집으로 데려가줘요. 나의 보금자리로..."가 아니라 어머니 뱃속으로...

 

신비한 자궁의 세계를 엿 볼 기회라며 들어갔는데, 마치 사주 보는 점집에 들어 온 기분이었다.

손금과 눈이 그려진 손바닥 그림 몇 점이 다가왔는데,

마치 스스로를 알라는 듯 묘한 뉘앙스를 풍겼다.

 

인간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출발했으나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인간 회귀의 욕망을 부추겼다.

어찌보면 길 잃은 인간들을 안내하는 지도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처음 보는 작가의 자화상도 걸려 있었다.

작품에 대한 해설은 미술평론가 김진하씨 서문으로 대신한다.

 

영원한 청춘일듯하던 인생도 종국에 는 맞닥뜨리는 게 있다. 생명체라면 모두 피할 수 없는 운명, 생장해서 성숙해지 는 만큼 소멸이 가까워지는 게 세상 이치다. 생명의 끝 지점. 자궁으로부터 출발 했으나 결코 자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그런 회귀 불가능은 더욱 회귀에의 욕망을 증폭시킨다. 그 도저함의 사막에서 마지막 한 방울 생명수가 모래 사이로 스 며들어 버렸을 때, 마침내 우리의 모든 기억에서 자궁이 지워지는 암전 상태가 된 다. 페이드 아웃. 디 엔드. 이름하여 죽음.

 

정복수의 그림엔 항상 무엇인가 하는 인간들이 즐비했다. 50여 년의 화력을 돌이켜보면 초지일관 무엇인가 행위 하는 인간을 그렸다. 뱉고, 욕설하고, 먹고, 마시고, 싸고, 싸우고, 자위하고, 섹스하고, 거부하는 인간들. 그야말로 본능의 상태에서, 짐승과 같이 생존의 원초적인 욕망이 가득한, 생래적으로 죽음과는 거 리가 먼 듯한 살아있는 인간들의 생존경연장이자 투기장이었다.

 

그 숱한 공격적 동사형의 인간을 그리던 정복수도 이제는 그의 그림의 출발 지점인 10대 시절보다 좀 더 먼 과거를 유영해보려는 모양이다. 출생의 기표인 지문과 손금이라는 나침반을 꼼꼼히 분석하면서, 또 타고 난 눈빛과 얼굴과 성정을 참조하면서, 성장하면서 경험했던 사건들과 섭취했던 온갖 욕망을 하나 둘 해체 하며 자궁으로 가는 지도를 그리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인간의 생은 회갑을 기준으로 그 이전에는 미래에 의 욕망과 그에 비례하는 기억의 축적이 느리게 진행되고, 그 이후에는 과거로의 회귀 욕망의 증대와 추억을 망각하는 속도가 빨라지는 생태성으로 구성된 듯하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를 화 두로 삼았으되, 결국은 그 중간 지대인 현실에서의 번뇌와 고통과 헤맴으로 인해, 자궁으로 회귀하는 길을 찾지 못하는 것 일게다.

 

그래선가, 이번 근작들에선, 정복수 특유의 이빨, 성기 노출, 사정과 같은 이미지들은 많이 소거 됐다. 대 신에 자궁으로 가는 지도’, ‘깊은 인생’, ‘너무 깊은 생각’, ‘생각의 입’, ‘생각의 핏줄’, ‘을 찾는 방법’, ‘인간 은 무시무시한 벌레등과 같은 철학적 사유를 동반하는 제목들이 등장한다. 화가도 인간인 이상 그의 나이 에 비례해서 자기 존재성이나 내면을 반영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또 그만큼 삶에 대한 내밀한 관념 과 인식을 화면에 드러내게 된다. 정복수의 근작도 이런 경향을 여지없이 반영한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정 복수의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여전히 치열하다. 힘을 빼려는 자의, 힘을 빼는 과정에 집중하는 치열성이라고 해야 하나. 그림 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채굴하고, 다시 묻고, 또 그 옆의 구멍에 천착해서 관통하고 나간 뒤 근처에서 돌아오기 위한 구멍을 다시 판다. 그림 그리기에 대한 정복수의 기본적 태도다. 버리기 위해서 버 리는 것에 더 깊이 몰두하는 습관이나 체질과 같은 태도 말이다.

 

한편, 그 치열한 자궁으로의 회귀 욕망과 기억과 기록을 더듬는 정복수의 진술은 남은 삶에의 욕망이자, 더불어서 죽음의 길을 순연하게 찾기 위해 작성하는 지도다. 정복수에게 그림은 그 지도를 제작하는 것으로 부터 그 지도에 표기하는 메모와 주의사항들을 꼼꼼하게 형상으로 확인하는 절차이기도 하고. 자궁에서 나 왔을 때부터 그의 의식에 지문처럼 새겨진 죽음에 대한 메멘토 모리를 통해 끊임없이 의심-저항-확인-수 용해온 지난 50년의 작업적 변증이, 정복수에게는 자궁으로 돌아가고픈 그의 본능과 의지의 생산 과정이었 다고 하겠다. 기실, 그게 화가의 일이다. 그가 출발해서 떠나왔던 자궁 입구를 찾기 위해 그리는 삶과, 마침 내 그곳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그리기를 멈추는 것 말이다. 그 궤적을 그림으로 기록하고 표현하는 게 바로 작가적 삶과 죽음의 표지일지니, 여적 그리고픈 인간이 많다는 정복수에게 자궁으로 가는 지도는 또 새 로운 인간 유형을 탐색하는 길을 열어 줄 것이다. 67년을 걸어온 만큼 회귀하는 길 또한 만만치 않게 길 터 이니, 그가 그릴 인간들은 아직 많이 남았을 것이다. 다만, 이제는, 격렬한 본능보다는 존재를 사유하고 탐 색하는 깊은 인간형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유추해본다.“ 김진하(미술평론)

 

전시 개막 시간을 밝히지 않아 정동지와 오후 5시경 전시장을 찾았는데,

이미 2층 전시실은 먼저 온 분들이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주인공 정복수씨를 비롯하여 장경호, 장석원, 임정희, 조준영, 한상진,

김수길, 전강호, 조해인, 이재민씨 등 많은 분이 모여 있었는데,

혼잡스러워 뒤풀이 집으로 정한 '부산식당'으로 옮겨야 했다.

 

'부산식당'에는, 전시장에서 뵌 분 외에도 최석태, 황준연, 구경숙씨도 와 있었다.

그 많은 손님들 마신 술값이나 식사비가 만만 찮을텐데,

뒤늦게 나타난 올미아트스페이스 황순미씨가 계산해 버렸다.

 

여지 껏 수많은 전시 뒤풀이에 다녀 보았으나,

갤러리 주인이 화끈하게 뒤풀이 비용 내는 곳은 처음 보았다.

"돈은 이렇게 기분 좋게 쓰면 되돌아 가는 거야!"

 

정영신사진

와인을 주는 대로 마신데다 소주까지 섞었으니, 버텨 낼 수가 없었다.

정동지를 담보로 간다는 말도 없이 바람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사진, / 조문호

 

 

 

정영신의 혼자 가 본 장항선 장터 길이 지난 23일 인사동 갤러리인덱스에서 성황리에 막을 올렸다.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더니, 오후 무렵에는 장대비가 쏟아졌다.

찾아 주신 손님께는 죄송스럽지만, 술 마시긴 좋은 날이었다.

 

전시장에 올라갔더니, 안미숙관장과 이다 군이 전시 디피를 멋지게 해 놓았다.

 

마치 장터에 늘린 장돌뱅이 사진 난장 같았다.

 

 전시장에 올라가니, 화가 송창, 미술평론가 김진하, 사진가 하재은씨가 와 계셨다

 

많은 분의 성원에 힘입어 배당 받은 사진집 200부도 무난히 소진하였.

둘째 날에는 소품도 여섯 점 팔렸고, 몇몇 분의 후원도 따랐다.

 

그리고 정영신씨 조카 심지윤씨가 오프닝 음식을 준비해 왔는데, 너무 깔끔하고 맛있었다.

 

봄에실농장에서 따온 불루베리도 등장했고, 안원규씨가 옥수수까지 삶아왔다.

다들 도와 주셔서 큰 걱정은 덜었으나, 이 원수를 생전에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날 장대비를 뚫고 참석하신 분으로는 갤러리인덱스안미숙관장을 비롯하여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 공윤희, 김진하, 송 창, 김정업, 최유진, 하재은, 장종운, 박옥수,

신상덕, 박춘화, 김문호, 최연하, 곽명우, 김수길, 남 준, 정명식, 박순규, 김이하, 장경호, 윤범모,

조신호, 조경석, 김진열, 서인형, 김상현, 송일봉, 유진오, 안원규, 김 구, 김발렌티노, 임태종, 신단수,

정복수, 최석태, 노광래, 김정남, 조준영, 한상진, 양상용, 전인미, 이정선씨 등

많은 분이 오셔서 전시를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성함이 기억나지 않거나 미처 만나 뵙지 못한 분도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점 양해해 주시 길 바란다.

 

그날 준비한 술로는 와인 외에 몰래 숨겨 둔 대마불사주상황버섯주까지 꺼내 왔다.

술 고픈 축축한 날이라 개막 시간까지 기다릴 수 없어, 맛본다며 홀짝홀짝 마신 술에 일찍부터 취해버렸다.

 

뒤풀이는 유목민으로 정해 두었는데, 두 패로 나뉘어 일부는 인사동16번가에 진을 쳤다.

이쪽저쪽 옮겨 다니느라 혼자 바빴는데, 숨이 차서 차에 들어가 자버렸다.

 

그 다음 날은 늦게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있는데,

실버넷뉴스운현선기자가 갤러리에 왔다는 전화가 걸려 왔다.

아마 같이 식사하려고 일찍 온 것 같은데, 이미 늦어버렸다.

 

급히 전시장으로 달려갔더니, 운현선기자를 비롯하여 큰나무갤러리김문경대표,

실버넷뉴스앵커 김석출씨, 김유나씨 등 여러 명이 와 계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정영신씨 인터뷰하는 틈을 이용해 화장실부터 가야 했다.

전날 마신 술 때문인지, 식사에 문제가 있었는지, 연이어 물 대포를 쏟아 댔다.

'쌈지길'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락거리다 올라가니, 손님은 가버리고 안 계셨다.

 

결례가 걱정되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을 어쩌겠는가?

그런데, 첫날 찍은 사진도 이제 사 올리는데, 운기자가 취재한 영상물은 벌써 방송을 타버렸네.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를 클릭하면 볼 수 있다.

 

몸이 불편해 곧바로 동자동 쪽방에 가서 누워 버렸다, 완전 걸어 다니는 송장 수준이다.

 

그런데,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정동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인천 사는 사진가 김보섭씨가 아픈 몸을 이끌고 전시장에 왔다는데, 어찌 누워 있겠는가?

 

병문안도 못 가본 김보섭씨 내외를 전시장에서 어렵사리 만날 수 있었는데,

수술 결과가 좋다는 말에 다소 안도할 수 있었다.

 

김보섭씨 외에도 김정헌, 김진하, 오현경, 김정명, 양성은씨 등 반가운 분을 여러 명 만나 뵐 수 있었다.

 

손님을 보낸 후 전시장 있기가 불편해 차에 드러누워 전시 끝날 시간만 기다렸다.

전시장 문 닫은 후 정동지를 대동하여, 어제 정산하지 못한 뒤풀이 비용 때문에 유목민에 갔다.

 

뒤풀이 비용은 임태종, 김상현, 신상덕씨가 조금씩 부담해 남은 액수가 얼마 되지 않았다.

 

전시 오프닝 때 책을 전해주지 못한 신단수씨를 만나 소주 몇 잔 얻어 마셨다.

안쪽에서 마시던 장의균씨를 우연히 만났는데, 한 번 간첩은 영원한 간첩이었다.

 

내일은 누굴 만날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전시가 끝날 때까지 술 상무로 살아남기 위해 동자동에서 대기 중이다.

 

눈빛출판사이규상씨가 쓴 정영신 소개 글 일부로 정영신 전시소식 1탄을 마무리한다.

 

‘40년 가까이 장을 돌고 돌았으니 사진계 보다는 장터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그에게 장터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마트가 아니라 정이 있는 고향이다.

난전에 앉아 있는 이름 없는 할매와 아짐들의 말동무요 장꾼들의 누이요 동생이다.

사라지는 것을 사진 찍는 일은 함께 울어주는 일이다.

진심을 다해 사진을 찍으니 누구 하나 거부하는 사람이 없다.

이생에서의 복은 박하지만 아주아주 먼 훗날,

후생에 그가 무엇이 되어 세상을 도와 나갈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찾아 주신 분들, 고맙고 고맙습니다.

 

사진, / 조문호

 

 

지난 23일 늦은 오후, 모처럼 인사동을 사랑한 한량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조준영 시인이 비용의 많은 부분을 감당하며 두 달에 한 번씩 자리를 만들어 왔는데,

지난번 모임에는 인사동에 정나미가 떨어져 가지 않았다.

 

변해버린 인사동도 인사동이지만 싫은 사람이 생겨서다

그렇지만 재차 연락해 온 조준영씨의 전화를 깔아뭉갤 수는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미적대다 끝날 시간이 되어서야 약속 장소인 ‘바다슈퍼’로 갔는데,

양산에서 온 공윤희씨와 화가 장경호씨는 가버리고 없었다.

 

술자리엔 조준영씨를 비롯하여 전활철, 최석태, 전강호, 노광래,

정영신, 김이하, 김 구, 김수길씨 등 아홉 명이 남았는데, 고정 맴버에서 선수교체도 있었다.

 

‘바다수퍼’라는 술집은 처음 가보았는데, 손님이 제법 북적였다.

조개에 물려 조개탕은 싫어하지만, 우동사리를 안주로 소주 한잔했다.

전활철, 최석태씨 까지 일어 선 파장의 술자리라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최석태씨가 간다는 ‘흐린 세상 건너기’로 건너갔더니,

최석태씨는 물론 장경호씨와 김영진씨도 그곳에 있었다.

김영진씨는 ‘나무화랑’에서 전시 중이었으나, 가보지 못해 죄송스러웠다.

 

요즘은 인사동에 거리를 두기 시작하며 전시장 출입도 가급적 삼가한다.

‘ 인덱스’에서 열리는 중요 사진전 외에는 일체 가지 않았다.

 

전시만 보면 될 텐데, 메주 알 고주 알 올린 전시리뷰가 거슬린 모양인데,

고맙다는 인사는 커녕 욕까지 먹어, 뭐 대주고 뺨 맞는 격이었다.

 

이젠 나잇값도 해야 할 때라, 전시장 출입을 자제하니 일이 줄어 너무 편했다.

 밀쳐 둔 내 일에 전념하기 위한 고육지책이기도 했다.

 

긴 세월 찍어 둔 인사동 사진들을 정리해 책도 마무리해야 하고, 오래된 필름 정리에서부터

동자동 작업 등 죽기 전에 마무리할 일이 태산 같아, 남의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귀천’이 있는 인사동14길은 젊은 사람이 몰리지 않는 곳이라 그런지,

곳곳에 반가운 분들이 콩깍지처럼 끼어 있었다.

 

담배 피우러 나갔다가 옆집 ‘삼화령’ 안을 들여다보니 소리꾼 김민경씨와 배성일씨가 앉아 있었다.

너무 반가워 합류했는데, 이런 게 인사동의 매력 아니겠는가?

 

벽치기 골목 ‘유목민’을 아지트로 삼으며, 이 골목은 한동안 발길이 뜸해졌는데,

‘흐린 세상 건너기’나 ‘삼화령’은 수십 년 된 오래된 가게다.

 

정희성 시인을 비롯한 원로작가들이 가끔 들리는 곳으로, 그중 인사동의 풍류가 남은 곳이다.

 

소주를 마신데다 ‘흐린 세상 건너기’에서 내놓은 약주를 마셨더니, 속이 거북했다.

이젠 술도 아무 술이나 마시지 말라는 신호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참새방앗간 ‘유목민’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유목민’에서 운명철학가 신단수씨를 만나는 행운도 누렸다.

 

술을 깰 겸 콜라를 한 병 시켰는데, 콜라 값도 계산하지 않고 병 채로 들고 와 버렸네.

치매도 이런 치매는 곤란하다. 이 나이에 무전취식으로 종로경찰서 갈 수야 없잖은가?

 

사진, 글 / 조문호

 

강찬모 'Meditation' 초대전이 '인사아트프라자'에서 지난 31일 개막되었다.

 

전시된 히말라야 설산은 아름다움을 넘어 신비로운 생명의 숨결로 가득하다.

설산에서 영적 에너지가 솟는 것은 작가의 간절한 기도에 의한 것이다.

 

작가는 20여 년 전, 히말라야 설산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어 작품 세계에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예전에는 인사동 풍류객으로 살았으나, 그 이후부터 그의 기행은 전설이 되어버렸다.

스님처럼 술과 고기도 멀리하며 간절한 기도를 화폭에 옮긴다.

 

명상과 기도에 의한 설산은 차가운 한기가 아니라 따뜻한 온기가 번져

보는 이로 하여금 따뜻한 사랑의 빛에 휩싸이게 만든다.

 

이 전시는 612일까지 열린다.

 

또 다른 작품도 선보였다.

 

좀 늦게 간 개막식에서 강찬모화백을 비롯하여 장경호, 이두엽, 조준영, 최유진,

방기식, 정영신, 노광래, 덕원스님, 황경애씨 등의 반가운 분을 만났다.

 

 '인사아트프라자' 5층 레스트랑에 마련한 만찬장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

 

그 날 2차는 언론인 이두엽씨가 '흐린세상 건너기'에서 샀다.

조준영, 장경호, 정영신, 최유진씨가 함께 한 자리에서 인사동 추억몰이가 시작됐다.

"술 귀신 강찬모 오기 전에 도망가자"는 전설에서 부터,

인사동을 들락거리며 이야기거리를 만들었던 풍류객의 만행을 낱낱히 폭로했다.

이두엽씨가 인사동에 관한 추억몰이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니, 다들 기대하시라~

 

 

 

지난 17일 오후5시 무렵, 인사동 사람들의 정기모임이 인사동 유목민에서 열렸다.

 

두 달 만에 열린 이번 모임에는 조준영시인을 비롯하여 이명희, 정복수, 조해인, 유근오, 장경호, 정영신,

임태종, 공윤희, 안원규, 임헌갑, 최유진, 임경일, 김발렌티노 등 15명이 참석했다.

 

모처럼 만난 반가운 자리였으나 좌석이 여러 곳으로 나뉘어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분도 있었는데, 마침 최유진씨로 부터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년을 맞아 위령 종루를 보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는 27일 오후4시부터 인사동 서원빌딩 14‘615남측위원회회의실에서 종루 보수 모금 확산을 위한 이규수교수의 '관동대진재와 조선인 학살, 그 망각과 기억의 소환'이란 특강이 열리니 많은 참석을 바랍니.

 

이 일은 오래 전, 김의경, 심우성선생께서 성금을 모아 일본 관음사 경내에 종과 종루를 세웠으나, 지금은 훼손이 심해 보수해야 할 지경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돌아가신 심우성선생을 대신하여 연극연출가 최유진씨가 모금위원장을 맡아 발 벗고 나섰다고 한다.

 

2023년은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년이지만, 그 참혹한 역사를 기억하고 원혼들을 진혼하기 위한 시설이 아직 우리나라에는 없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959년 양심적인 일본 시민들이 그 학살 현장에서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는 위령제를 올리기 시작한 것이 발단이었단다.

 

1985년 그곳의 위령 팻말을 본 한국 문화예술인들이 나서서 대한민국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희생자 기림 시설인 보화종루를 일본 관음사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1999년에는 일본 시민들이 조선인 희생자들의 위령비를 종루 옆에 세우고, 한일 양국 시민들의 추모문화제도 계속 열었다고 한다. 이렇게 역사적 의미가 깊은 사적 가치를 지닌 보화종루가 오랜 세월과 잦은 지진으로 훼손과 파손이 심해져 붕괴 위험에 처한 것이다.

 

이에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년을 맞아 과거 이 종루를 건립하고 보수해왔던 원로 문화예술인들의 후배와 자녀 세대 문화예술인이 중심이 되어 다시 한 번 양국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개보수하여 시설을 보존하려 한다.

 

학살피해 100주년이 되는 오는 9 10일은 추도문화제도 함께 개최하여 상생의 뜻깊은 전통을 이어가고자 하오니, 뜻있는 분들의 많은 동참을 부탁드립니다.

 

 사진, / 조문호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마지막 송년회라 여긴지가 한 두 번이 아니건만 어김없이 봄은 돌아왔다.

 

올 해 따라 가까운 친구가 여럿 세상을 떠나, 더욱 슬픈 한 해를 보낸다.

모든 게 없을 땐 소중함을 깨닫지만, 있을 때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다.

살아있을 때 자주 만나지 못했음이 가슴을 후벼 파지만, 때늦은 후회였다.

지금부터라도 주변 분들과 자주 소통하며 작은 것에도 감사하기로 했다.

 

유래 없는 코로나 광풍은 아직도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로 인한 국가적 피해도 막대하지만, 개인의 삶 또한 만신창이가 되었다.

경제적 어려움은 차지하고, 행동이 자유롭지 않아 우울증 환자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소소한 일에 짜증을 내거나 싸울 일이 아닌데도 다투는 등, 다들 신경이 날카롭다.

 

이런 와중에도 스스로의 이권에만 전전 긍긍하는 정치인들 보면 울화가 치민다.

정당보다 정책과 인물을 보고 뽑는 그런 세상은 정말 요원한 것이던가?

이태원참사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은 49제 날,

크리스미스 트리 불을 밝히며 술잔을 치켜드는 대통령 모습에 분노를 느꼈다.

 

다들 책임 회피에 급급하며, 두 번 죽이는 망 말을 쏟아내는 정치인도 여럿 보았다.

이런 비인간적인 정치인들은 걸러내야 하지 않겠는가?

 

부자 표를 노려 부자감세를 추진하거나,

노인 표를 의식해 선심형 노인복지예산을 올리는 모순도 없어야 한다.

이것이 유권자에게 고무신 돌리던 자유당 시절이나 다를 게 무엇인가?

 

시급한 것은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노숙인과 쪽방에서 죽어가는 고독사 부터 없애야한다.

 

그리고 지금은 청년이 더 살기 어려운 시대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시대를 맞은 청년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젊은이들이 살아 갈 수 있는 정책과 행정력에 집중해야 한다.

 

지난 16일 오후5시 무렵, 인사동 사람들의 송년회가 ‘유목민’에서 있었다.

두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갖지만, 참석하는 분이 그리 많지 않다.

 

조준영시인이 비용일부를 부담해가며 어렵사리 주선하지만, 매번 그 얼굴에 그 얼굴이다.

 

이번 모임은 날씨가 추워 그런지 송년회 모임치고 저조했으나,

백남이 시인은 정읍에서 상경하는 열성도 보였다.

 

그러나 평소에 앉던 ‘유목민’ 좌석이 예약되어 떨어져 앉아야하는 이산가족 신세가 되고 말았다.

바깥 좌석에는 바람막이까지 설치해 두었으나, 날씨가 추워 앉는 사람이 없었다.

 

담배 피우러 나가는 골목이 대화의 자리고, 사진 찍는 장소였다.

불화가 이인섭씨와 연극배우 이명희씨가 야외의자에 정답게 앉기에

두 분 결혼사진 찍는다고 떠벌렸더니, 화들짝 놀라면서도 좋아한다.

결혼은 겁나지만 연애는 좋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화가 정복수씨는 지역문학총서인 ‘장소시학’ 2호 한권을 선물했다.

이번호의 특집 장소는 경남 의령인데, 의령은 정복수씨 고향이 아니던가.

문인들의 글만 아니라 화가와 미술평론가 글도 실려 있었다.

정복수씨의 회향기인 ‘내 존재의 비망록과 그림', 미술평론가 황인의  ‘병막의 주인들’이 그것이다.

 

그리고 '시네갤러리'를 운영하는 인사동 마당발 노광래씨가 떴다.

‘한겨레신문’ 짬에 ‘즐겁게 놀며 배우는 인사동 대학 다시 살리고 싶다’는

인터뷰기사가 실렸는데,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까지 다 털어 놓았다.

그 자리에서 인사동 풍류학교 교장선생으로 추천한다는 허풍도 떨어댔다.

 

이 날 ‘유목민’ 특선 안주로 사골건더기와 시루떡이 나왔다.

술만 홀짝이던 예전과 달리 푸짐한 안주 덕에 술이 덜 취했다.

 

이날 참석한 분으로는 조준영시인을 비롯하여 연극연출가 최유진, 이명희, 전강호, 조해인,

정복수, 이인섭, 김발렌티노, 노현덕, 안원규, 노광래, 백남이, 정영신, 임경일,씨가 참석했고,

끝날 무렵에는 김수길, 최석태씨도 나타났다.

 

엊저녁에는 장경호, 최석태, 김수길씨가 녹번동까지 쳐들어 와 술을 마셨는데,

술병 났는지 장경호씨는 나타나지 않고, 그 패잔병 둘이 뒤늦게 온 것이다.

 

요즘은 몸이 편치 않아 그런지, 모든 일에 소극적이다.

 

문제는 사람이 좋아 사람만 찍어 왔는데, 사람이 두려워진다.

 

그래서 전시장 돌아다니며 써 온 전시리뷰는 물론, 남의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

남의 작품에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우습지만, 적 만들기 싫어서다.

 

사람을 피해가며, 사람을 찍어야 하는 이런 모순이 어디 있는가?

 

하물며 가족이나 친구까지 싫은 소리에 등 돌리는 판에 남이야 오죽할까.

심지어 내가 있는 쪽방 주민들 까지 깊이 들여다보면 다 허물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어찌 사람을 포기할 수야 있겠는가?

 

새해에는 좋은 사람 많이 만나, 살 맛 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 해 동안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사진, 글 / 조문호

 

 

김수길의 다섯 번째 시간지우기 편린사진전이 인사동 무우수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이와 함께 조해인이 쓰고 김수길이 찍은 에세이 신화가 된 청소부출판기념회도 유목민에서 열렸다.

 

지난 주말 정동지와 김수길씨 사진전 보러 인사동에 갔더니,

전시작가와 조준영시인이 안국역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김수길의 편린사진전이 열리는 무우수갤러리로 가는 길에 봉화에서 올라 온 신동여 화백을 만나기도 했다.

 

올 일월에 개관한 무우수갤러리는 처음 갔는데,

인사동길 19-2에 신축한 와담빌딩 3-4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김수길의 편린전은 여러 장 필름이 겹쳐진 이미지로, 마치 세월의 흔적처럼 희미한 기억을 불러냈다.

 

10년이 넘도록 한가지 작업에 몰입해 온 김수길의 '시간 지우기'전은

사실적 기록성보다 내면적이고 미학적 관점에 주안점을 두었다.

 

김수길은 사진 이전에 음악, 영화,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작가였다.

미학적 관점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같은 장소를 시기별로 찾아다니며, 변해가는 공간의 잔상을 기록해 왔다.

 

그의 작업은 변해가는 도시의 단면이 켜켜이 쌓여, 암울한 시대적 잔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사진 형식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접근으로 사진 표현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색한다.

 

이번 전시에는 천에다 출력하여 깃발처럼 걸거나, 손수건으로 만들기도 했는데,

기존 천에 새겨진 무늬가, 프린트된 이미지와 어울리는 또 다른 시도를 감행했다.

장식성이나 실용성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다.

 

기억하기 위해 시간을 지운다는 김수길의 편린전은 113일부터 14일까지 '무우수갤러리'에서 열린다.

 

전시장에서 나와 신화가 된 청소부술판기념회가 열리는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겼다.

술집은 이른 시간부터 지인들이 모여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조준영 시인이 사 온 축하 떡에 촛불을 밝히기도 하고

연극배우 이명희씨의 에세이 낭독이 이어지는 등 출판기념회 면모도 갖추었다.

 

행복 에세이란 부제를 단 신화가 된 청소부장애를 안고 태어난 소녀 이야기였다.

청소라는 일상적이고도 사소한 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신화를 일구어내는 내용이었다.

 

작가는 사소한 일을 할 때도, 자신이 가진 100%를 아낌없이 밀어 넣으면,

그 하잖은 일은, 스스로 축복하는 에너지로 변환된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사막과 같이 메마른 우리의 내면 한가운데로

시냇물을 졸졸거리며 흘러가게 하는 동력이 된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버리커뮤니케이션에서 출판한 이 책은 136면에 1.5000원이다.

 

이날 술판기념회에 참석한 분으로는 주인공인 조해인 시인과 김수길 사진가를 비롯하여

조준영, 신동여, 이명희, 전강호, 김명성, 장경호, 송일봉, 정복수, 최석태, 김신용, 최유진

이만주, 김발렌티노, 노현덕, 안원규, 송상욱, 노광래, 이인섭씨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에서 김신용시인은 일 년만의 외출이었다.

두문불출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요즘은 사진찍어 시를 쓰는 디카 시에 집중한다고 했다.

사진 제판에 의한 제작비 부담으로 출판사에서 반기지 않는다는 고충도 털어놓았다.

비염이 있다며, 술 한잔 마시지 않고 외곽으로 떠도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작품과 명예나 돈도 좋지만, 건강이 최고다.

모든 것이 죽고 나면 아무런 쓸모없는 게 아니던가?

어떻게 하면 재미있고 즐겁게 살까?를 고민할 나이다.

작업도 일처럼 하지 말고 놀이로 즐기자.

다들 건강이나 잘 지키시길 바랍니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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