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풍정도 다 바뀐 삭막한 인사동을 아직도 미련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실 날 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인사동을 기록해 왔지만,

마지막 끈이었던 아지트마저 막혀, 더 이상 인사동에 대한 기록을 접기로 했다.

 

  간혹 봐야 할 전시가 있거나 볼 일이 있으면 들리기는 하지만,

이전처럼 인사동 거리를 스냅하여 포스팅 하는 일을 그만 둔지는 제법 되었다.

 

  그렇다고 인사동을 좋아했던 오랜 정마저 어찌 끊을 수가 있겠는가?

마치 마음 변한 연인을 못 잊듯, 습관적으로 카메라를 꺼내든다.

 

  며칠 전에는 갈 곳도 만날 이도 없는 인사동을 무작정 찾아 나섰다.

인사동 정취가 사라져 낯설기 그지없는 인사동 거리를 하릴없이 거닐었다.

 

  외국 관광객만 보일 뿐 반가운 사람은커녕 아는 사람조차 없었다.

궁녀가 꽃이 되었다는 쌈지 담벼락의 능소화가 그나마 눈 익은 풍경이었다.

 

  강민 시인을 비롯한 많은 풍류객들이 변해가는 인사동을 한탄했으나,

세월 따라가는 것을 누가 붙잡을 수 있겠나?

 

  또 다른 젊은이들이 새로운 인사동 문화를 만들어 갈 테지만,

인사동이 미술의 중심지인 이상 발길을 끊을 수는 없었다.

 

  전시개막식에서 반가운 인사동 풍류객을 만날 수도 있고,

다양한 전시를 볼 수 있는 것만도 인사동의 매력이 아니겠는가?

 

  그 날도 차마 그냥 갈 수 없어, 볼만한 전시를 찾아나섰다.

마침 갤러리밈에서 정정엽의 모욕을 당한 자이며 위대한이 열리고 있었다.

 

텅빈 전시장에 들어서니 천장에서 바닥으로 늘어뜨린 긴 설치작이 눈길을 끌었다.

광목천을 캔버스 삼은 그림에는 크기도 생김새도 제각각인 수많은 벌레가 그려져 있었다.

 

  여성·생태주의 대표작가인 정정엽의 모욕을 당한 자이며 위대한전에는

벌레외에도 그녀의 대표작인 팥과 콩 시리즈 등 23점이 전시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구상이자 추상이었다. 콩과 팥을 한 알 한 알 구상화처럼 그렸지만,

캔버스 전체를 바라보면 추상 또는 반추상이었다.

 

  콩과 팥은 때론 거대한 파도가 되기도 하고, 때론 빤짝이는 별이 되었다.

사소한 것에 담긴 생명력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었다.

 

  특별할 것 없는 콩이지만, 작은 한 알의 콩이 삶과 우주를 지탱하는 소중한 생명의 씨앗임을 말했다.

 

  그 한 알 한 알에 녹아든 농부의 땀은 노동의 가치를 말했고,

주변에 널린 평범한 것과 약한 존재의 의미를 일깨워 주었다.

 

  특히 새로 선보인 벌레에 대한 재발견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편견의 껍질을 벗은 벌레의 모습은 흉한 미물이 아니라 신비롭고 품위 있는 모습으로 승화되었다.

 

  미술평론가 심은록은 정정엽의 작품은 생명의 고귀함과 숭고함을 드러내며

우리의 편견을 한 꺼풀 벗겨낸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818일까지 열린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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