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눌님 책 심부름으로 '정독도서관'에 갔다.

무식한 나는 책 볼일이 별 없지만, 아내 때문에 가끔 들린다.

지난 11일 오후 여섯시의 도서관은 벚꽃에 뒤 덥혀 있었다.

화려한 꽃 천지가, 지는 햇살에 숨죽이고 있더라.

그렇게 놀다, 실없이들 가겠지!’

인사동의 봄은 오는 듯 가는 듯, 맥아리가 없다.

 

인사동 음유시인 송상욱 선생을 거리에서 만났다.

왜 그리 안 벼~ 심심해 미치것어! 봄 가기 전에 한판 놀아야제

퇴근 하시는 걸음에, 날 보고 반색하신 것이다.

요즘 사람들을 못 만나, 점심 드시며 툇마루서 막걸리 한 잔

걸치는 게, 유일한 위안 주란다. 다들 힘들어하는 김명성을 그리워했다.

그랬다. 그는 인사동 유목민에게 유일한 위안이었고, 한 가닥 희망이었다.

 

오늘 끝날 내숭작가전 본다는 아내 연락에, 그 앞을 서성거렸다.

얼마나 짐이 많은지, 차가 여러 대나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동에 돈을 뿌리고 가는 구나!'.  푸념에 전시장 나온 아내가 답했다.

돈이란 저렇게 쓰는 거야.부러운 듯, 들렸다.

간이 적어 도적질도 못하고, 아둔해 사기도 못 치니,

내 죽는 날까지, 저런 호강은 못 시켜줄 것 같았다.

 

모처럼 인사동서 만났으니, 저녁이나 같이 먹잖다.

아내 좋아하는 사동집만두전골 먹으러 갔다.

주인장 송점순 여사가 반갑다며 굴전까지 서비스하는데,

카메라 전지가 다 돼, 인증샷도 못 찍었네.

배 터지도록 먹고 남아, 도시락까지 싸야 했다.

이 정도 호사면, 인사동 봄도 결코 서럽지는 않더라.


사진, 글 / 조문호























책을 내게 되면 예상치 못한 경험을 할 때도 있다. 오랫만에 학회에서 만난 친구가 내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부동산 학과에서 일하는 그 친구에게 어떻게 읽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학생이 선물로 주었다는 것이다. 부동산 업체를 운영하며 학교를 다니는 자신의 늙은 학생이 내 책 100권을 사서 고객들에게 선물로 나누어주면서 자기도 한 권 주었다는 것이다. 그 인연으로 부동산학과 학생들과 함께 북촌을 가게 되었다.

 

 

한성부지도, 1901년경 제작
 

‘북촌(北村)’, 옛 서울의 북쪽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남쪽에 있는 마을은 남촌이 된다. 어디가 북쪽이고 어디가 남쪽인가? 조선시대 한양 도성 안에서 북쪽과 남쪽이란 말이다. 청계천과 종로가 도성 안을 반으로 나눈다. 종로 위쪽이 북촌, 청계천 아래쪽이 남촌이 된다.

인사동에서 점심을 함께 먹고 북촌 한옥마을로 향한다. 안동별궁이었던 풍문여고를 지나 감고당길로 접어들어 처음으로 멈추어 선 곳은 덕성여고 앞. ‘감고당 터’라는 표지석이 서 있다.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가 살 던 곳이다.

 

덕성여고 정문 앞에 있는 감고당터 표지석
 

드라마에서 보면 장희빈에게 밀려서 초라하게 유폐된 것으로 그려지지만 창덕궁 바로 옆이다. 이야기를 중심으로 장소를 묘사하게 되면 초라한 곳으로 그릴 수 밖에 없다. 장소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면 달라진다. 창덕궁 옆 넓은 집터에 살았던 것이다.

아기자기한 작은 가게들이 몰려 있는 감고당길을 빠져나와 작은 사거리에서 만나는 곳이 정독도서관. ‘성삼문 선생 살던 곳’, ‘중등교육 발상지’, ‘화기도감 터’, ‘동아일보 창간 사옥 터’ 표지석들이 세워져 있다.

 

정독도서관 앞.

 

한양에서 제일 좋은 곳에는 누가 살겠는가? 임금이 산다. 경복궁, 창덕궁 등의 궁궐이 제일 좋은 자리다. 그 다음 좋은 곳은 누가 살겠는가? 대군이 산다. 경희궁과 덕수궁이 대군이 살던 곳이다. 그 다음 좋은 곳에 대신이 산다. 성삼문의 집터는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위치한다

 

정독도서관이 있는 곳은 조선시대 성삼문 선생이 살았던 곳이라 한다.
 

북촌과 남촌의 입지 비교를 해 보자. 좋은 집터는 해가 잘 드는 곳이다. 아파트에서도 남향을 선호한다.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의 북촌은 남향이다. 이에 비해 남산 기슭에 자리한 남촌은 북향이다. 북촌에는 노론 지배층이 살았고, 남촌에는 조선후기 벼슬하기 힘들었던 남인들이 살았다. 성삼문의 집이었던 이곳은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의 집이기도 했다.

 

정독도서관 자리에는 많은 역사가 쌓여 있다. 이곳에는 경기고등학교가 강남으로 이사가기 전까지 있었다.

 

‘중등교육 발상지’라는 표지석이 선 것은 이곳에 경기고등학교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서울에서 강남의 8학군이 유명하지만 소위 명문고라고 불렸던 고등학교들은 강북에 있었다. 서울고등학교는 경희궁 자리에 있었다. 허허벌판이었던 강남이 서울에 편입되고 새로운 시가지로 개발되는데 학교가 없으면 곤란한 일, 그래서 정부에서 명문고들을 강남으로 보내게 된 것이다.


 

정독도서관이 있는 동네는 화동(花洞)이다. 그래서 경기고 출신들은 학교가 강남으로 이사가기 전 시대를 '화동 경기고 시절'이라고 부른다.

 

 

도시 개발 과정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은 흐름을 보는 것이다. 도시사의 이해도 중심지의 변화과정을 보는 것이다.

청계천과 종로의 북쪽, 북촌이 조선시대 중심지였다. 일제 강점기가 되면서 일본인들은 조선의 중심부 북촌이 아니라 남촌에 시가지를 조성하게 된다. 조선에서 일제강점기로 바뀌면서 시가지는 북촌에서 남촌으로 청계천을 넘어가게 된다. 1960년대, 1970년대 이후에 한강을 넘어 강북에서 강남으로 중심지가 이동하게 된다.

한옥마을을 구경하기 위해 북촌을 찾게 되는데 조선시대 한옥이 북촌에만 있었겠는가. 도성 안 전부에 한옥이 있었을 터. 종로에도 남촌에도 있었겠지만,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도시 개발 과정에 북촌이 소외된 결과가 아니겠는가. 지금이야 한옥의 가치를 이야기하지만 지금의 북촌은 보존하려고 하여 보존된 게 아닌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북촌한옥마을의 집들이 조선시대 한옥으로 생각하는 점이다. 큰 집들을 일제 강점기 무렵에 쪼개어 여러 집으로 나눠 지은 집들이다. 조선시대 집들은 지방답사 때 볼 수 있는 고택들이고 북촌과 전주의 한옥마을은 소위 집장사들이 지은 집들이다. 좁은 마당을 가진 도시형 한옥인 셈이다.

 

 코리아 목욕탕은 건물 자체의 역사적 의미는 크지 않지만 북촌의 주요 랜드마크다. 이곳 주변에서 도성 안쪽의 반을 조망할 수 있다.

 

정독도서관을 지나 골목을 지나면 내가 사랑하는 이정표 ‘코리아 목욕탕’이 나온다. 목욕탕 이름이 이 정도는 되어야지. 서울에서 목욕탕이 생기던 초창기의 목욕탕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한 때는 다이어트센터였다가 지금은 게스트하우스로 쓰인다.

코리아 목욕탕 아래쪽에서는 반드시 카메라를 꺼내시길 바란다. 한양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포인트이다. 가장 가까이 보이는 건물은 경복궁 안의 국립민속박물관이다. 북악산이 보이고 그 왼쪽으로 인왕산이 보인다. 남쪽을 보면 화신백화점 자리에 서 있는 구멍 뚫린 건물, 보신각 앞의 종로타워가 보인다. 그 뒤편으로는 남산의 서울타워가 보인다. 이 자리는 한양 도성의 절반이 보이는 장소이다. 북악산, 인왕산, 남산으로 연결되는 성곽 라인이 보이는 장소이다

 

코리아 목욕탕 주변에서 본 북악산(오른쪽산), 인왕산 전망. 사진 왼쪽 중간 기와지붕이 청와대 춘추관이다.

 

코리아 목욕탕 앞에 보이는 까만 기와집은 청와대 춘추관이다. 춘추관 뒤쪽에 보이는 낮은 능선 지점이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의 고개, 창의문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 68년 1.21 청와대 습격사건 때 순직한 최규식 경무관 동상과 청계천 발원지 표지석이 있다.

이 장소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은 여러 가지다. 북악산과 인왕산 라인을 보며 도성이 분지였음을 알 수 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데로 흐른다. 백악 기슭에서 청계천이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흐른다는 점, 인왕산의 아래가 명승지임을 알 수 있다.

하나 더. 인왕산 왼쪽으로 산이 하나 더 보인다. 무악(안산)이다. 인왕산과 무악 산줄기가 이 중으로 겹쳐 있다. 그 사이가 중국 사신이 다니는 통로인 의주대로이다. 이곳은 직접 꼭 가보아야 한다.

이 정도 보았으면 코리아목욕탕에서 북쪽으로 좀 더 가서 북한산에서 나온 맥이 팔각정과 북악산으로 연결되는 맥을 좀 더 보아도 좋고 가회동 31번지 일대의 한옥을 구경해도 좋다.

가회동 일대 한옥마을은 위에서 내려다 보아도 좋고 골목을 걸어다니며 보아도 좋다. 빨간 모자를 쓴 관광안내원이 있는 곳이 관전 포인트이다.

북촌 한옥마을 골목길에서 사진을 찍는 젊은 관광객들. 요즘은 셀카봉이 대세인것 같다.
 

춥고 불편한 집이라는 평가에서 오래된 마을과 옛 집이라는 관점으로 북촌한옥마을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 주말이 아니더라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온다. 우리말과 더불어 중국어, 일본어, 영어를 한꺼번에 들을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사진찍기 좋은 장소에는 셀카봉까지 팔고 있다.

한옥을 구경하고 골목을 빠져 나오면 돈미약국이 나온다. 남쪽으로 가서 헌법재판소의 백송 아래 잠시 쉬며 북촌 답사를 마무리한다. 이제 안국역으로 가서 전철을 타고 집으로 간다.

 

[Chosun Biz 스크랩]

 

                                                                                                              [조문호사진]

 

서울시교육청 산하 정독도서관은 오는 23일 초등학교 3~6학년 학생 20여명을 대상으로 '인사동 가는 길' 행사를 개최한다.

이번 행사는 독서 동아리 활성화 사업의 하나로 초등학생들이 인사동의 역사와 문화를 직접 체험함으로써 전통문화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획됐다.

참가 학생들은 지난 13~20일 선착순 전화 또는 방문 신청을 통해 선정됐다. 이들은 사서와 함께 책을 읽고, 체험활동 전문가의 안내를 받으며 인사동을 직접 돌아보면서 다양한 체험을 할 예정이다. 참가 학생들은 '2014 어린이 독서회'에 우선 참여할 수 있다.

정독도서관은 "이번 행사를 계기로 어린 학생들이 책을 가까이 하는 독서문화와 전통문화에 좀 더 익숙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머니투데이[서진욱 기자 트위터 계정 @shineway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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