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 복지법’ 2주년 무엇이 달라졌나… 서울문화재단 주최 국제심포지엄 27일 열려

‘예술가와 돈’은 드러내놓고 논의하기가 망설여지는 주제다. 여기엔 ‘지고지순한 예술’을 하면 가난은 으레 겪는 것이고, 예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이런 인식은 예술가들, 특히 젊은 예술가를 상대로 한 착취구조를 구축했다. 상당수 영리·비영리 예술기관은 전시·공연 시 예술가에게 지급해야 할 대가를 제대로 주지 않는 것은 물론 심지어 각종 비용을 아예 예술가에게 떠넘긴다. 미술관이 작가 사례비를 주지 않거나, 갤러리들이 해외 아트페어 참여 혹은 기획초대전 개최 시 작가에게 관련 비용을 부담시키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착취구조는 성공한 예술가나 예술기관들, 상업 갤러리들이 재생산한다. 심지어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도 ‘예술을 위하여’란 미명 아래 착취구조 정착에 일조하기도 한다.

예술인들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 보호 및 창작활동 증진 등을 목적으로 하는 ‘예술인 복지법’이 18일로 시행 2주년을 맞았다. 2011년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가 생활고로 사망한 것을 계기로 만들어져 ‘최고은법’으로 불리는 예술인 복지법은 그러나 엉성한 체계 탓에 예술인들의 호응이 적은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문화재단 금천예술공장이 오는 27일 서울시청 시민청 대회의실에서 ‘노동하는 예술가, 예술환경의 조건’이란 주제의 국제심포지엄을 마련, 주목된다. 국내외 전문가들이 발제·토론하는 심포지엄은 예술가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 예술인 복지법의 과제, 예술가들의 창작활동 실상, 프랑스·영국의 사례 등이 논의된다.

                                      지난 6월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대학로 인근)에 붙어 있는 예술인복지재단의 광고. | 경향신문 자료사진

 

‘구조적 빈곤: 왜 예술경제의 특수성은 계속되는가’란 기조발제를 하는 한스 애빙 암스테르담대 교수(예술사회학·<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 저자)는 미리 내놓은 발제문에서 ‘예술을 위한 모든 것을’이란 인식에 따른 각종 부작용을 낱낱이 지적한다. 예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인식의 탄생부터 확대 재생산, 예술계의 착취구조, 예술 관계자의 인식 부족 등을 분석하며 예술가들의 ‘저항’을 말한다. 그는 “착취에 저항코자 한다면 예술가들 사이에서 ‘문화적 기업가 정신’, 즉 예술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을 백안시하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며 “사고방식의 전환과 실천, 연대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 예술가들이 취할 구체적 행동으로 적절한 보수를 지불하는 예술기관을 인증함으로써 그렇지 않은 기관에 망신 주기, 낮은 대가에 대한 분명한 거부, 착취적 조건을 재생산하는 예술교육의 개선 등을 제안한다.

백남준아트센터 안소현 큐레이터는 ‘예술환경의 조건들: 전시환경, 임금 그리고 지원제도’란 발제를 통해 ‘예술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둘러싼 논란을 분석하며 “예술00가들이 작가사례비를 요구하는 것은 냉혹한 신자유주의의 상황에서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전략이자 가장 윤리적인 생존법”이라고 말한다. 그는 “예술작품은 작가의 ‘창조적 아이디어나 개념’과는 구분되는 재료비 등 경제적 가치로 환산이 가능한 부분, 즉 경제학적 의미의 ‘예술의 노동’이 있다”며 “예술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강조한다. 이어 “작가사례비는 작가의 창조력을 환산한 대가가 아니라 미술관 등이 그 창조력으로 얻는 효과에 대한 사례비로 이해해야 한다”며 “예술에서 경제적 가치를 따지는 것이 시장논리·정치권력에의 종속을 뜻할 만큼 예술계를 둘러싼 경제적 메커니즘은 단순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영정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은 ‘1980년대 이후 한국에서 예술인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실태’ 발제에서 예술인 복지법 등을 소개하며 한국의 예술인 복지정책을 진단한다. 박 연구위원은 예술인 복지정책의 주요 과제로 복지정책의 출발기인 향후 5년 이내에 정부의 집중적인 재정투입, 예술인 복지법에서 빠진 예술인 고용보험 도입, ‘예술인 연금’ 같은 노후생활 보장방안 도입 등을 제시했다.

심포지엄에서는 목수정씨(재프랑스 문화정책 연구자)와 수잔 존스 전 영국시각예술인연합 디렉터가 프랑스, 영국 시각예술인의 사회보장 사례를 발표한다. 또 권용주 작가는 본업인 창작활동을 위해 부업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을 다룬 비디오 작품 ‘만능벽, 2014’를 소개한다. (02)807-4422

 

[경향신문 / 도재기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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