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세월에 인사동 혼이 다 달아난다.

두 달 전에는 인사동 터줏대감이신 심우성선생께서 이승을 떠나셨다.

민병산, 박이엽, 천상병, 신봉승선생 등 먼저 가신 인사동 터줏대감 뒤 따라 가신 것이다.



 


인사동엔 여러 층의 예술가들이 드나들었지만, 무엇보다 문인들의 텃밭이었다.

70년대 관철동에서 인사동으로 건너와 인사동 문화를 꽃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젠 민 영, 신경림, 황명걸 시인을 비롯한 몇 몇 분들이 살아계시지만,

기력이 쇠진하여 인사동에 잘 나오시지도 않는다.



 


누구보다 인사동을 사랑하는 강 민시인의 외로움만 깊어져 간다.

틈만 나면 노구를 끌고 인사동을 기웃거리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 같다.

지팡이에 의지한 모습을 보니, 이년 전의 심우성선생 모습이 연상된다,



 


더 걱정인 것은 한 가닥 인사동 정서나마, 이어받을 후배가 없다는 점이다.

그렇게 그렇게 인사동 영혼은 빠져나가고, 인사동의 낭만도 사라지는 것이다.

흐르는 세월에는 장사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지난 24일에는 모처럼 강민선생님과 점심 약속을 했다.

페북에서 간간히 인사는 드리지만, 뵌 지가 오래되어, 인사동 나주곰탕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꾸물대는 습관으로 또 늦어버렸는데, 그 자리에는 강민선생을 비롯하여 소설가 김승환선생,

'답게출판사' 장소임 대표, 사진가 정영신씨가 먼저 와 식사하고 있었다.



 


강민 선생께선 눈도 침침, 귀도 가물가물하다는데,

곰탕에 든 고기를 끄집어내, 술 안주하라며 접시에 담아주었다.

김승환선생께선 벌주로 술병을 든 채, 잔 비우기만을 기다리시니, 안 마실 수가 없었다.

, 단숨에 마시는 원 샷은 한 잔에 맛이 가버려, 잘 마시지 않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밥상머리 화제는 강민선생과 장소임씨의 인연으로 옮겨졌다.

30년 전 강민선생께서 금성출판사상무로 재직할 무렵,

장소임씨가 강민선생의 자문을 구하러 간 적이 있다고 했다.



 


그 당시 출판사 차릴 의향을 말씀드렸는데, 강민선생께서 용기를 주었다고 한다.

그 덕에 출판사 차려 오늘에 이르렀음을 감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신 때마다 오찬을 베풀어 드리는 등, 강 민선생을 각별히 챙겨왔다.



 


장소임씨는 올 해로 답게 출판사창립이 30주년을 맞아 기념행사도 가질 것이라 했다.

출판사 이름도 사람답게로 바꿀 생각이라며,

답게 라는 여러 종류의 상호를 등록하여 다른 곳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등 출판사 사정을 말했다.

그리고는 볼일이 있어 먼저 일어난다며, 지갑에서 10만원을 꺼내 강 민선생께 드린 것이다.



 


물론, 가난한 시인의 용돈을 챙겨주는 일이 고마운 일이긴 하나, 이 건 도리가 아니다.

드리려면 봉투에 넣어 정중히 드리거나, 다른 사람이 모르게 드리는 게 선생에 대한 예의다.

나이가 젊은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걸 모를 분이 아니잖은가?

그걸 보니, ‘답게 출판사와의 오랜 악연이 되살아났다.



 


약 십 오년 쯤 된 일이다.

'답게 출판사'에서 천상병선생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출판하였는데,

내 사진을 사용하였지만, 원고료는 커녕 작가의 승인이나 사진 출처도 밝히지 않고 무단 전재한 것이다.





내가 찍은 천상병선생 사진은 8X10규격으로 뽑아 서명까지 하여 목여사께 드렸는데,

그 사진을 출판사 임의로 사용한 것이다.

물론 목여사는 저작권에 관한 관례를 몰라 주었겠지만, 출판사는 당연히 챙겨야 할 문제다.

더구나 사진에 서명까지 되어있는데도 무단 전재한 것은 상식을 넘어 양심 불량인 것이다.

그 당시는 '답게 출판사'나 장소임 대표를 전혀 모를 때였으나,

전해 준 천상병선생 사모님 얼굴보고 참았던 것이다.





바보같이 넘겼더니, 한참 후 또 문제를 만들었다.

일간신문에 책 광고를 내면서 내 사진을 그대로 게재한 것이다.

더 이상 모른 척 할 수 없어 출판사대표 앞으로 내용증명을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당사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목여사를 시켜 원고료 10만원으로 깔아 뭉갰다.

신문광고용 사진원고료가 얼마인지 모를리가 없었다.

지금 같았으면 목여사가 아니라그 누가 부탁해도 어림없는 이야기지만,

그 당시는 매사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살았으니, 어쩔 수 없었.



 


몇 년 뒤 인사동 마당발 노광래씨가 여러 사람의 글을 모아

천상병을 말한다는 책을 만든다며 글 쓰 달라는 원고 청탁을 해 왔다.

천상병선생 이야기라 흔쾌히 쓰 주었는데, 나중에 책을 받아보니 그것도 답게출판사에서 나온 것이었다.



 


노광래씨가 글 쓴 원고료라며 십 만원을 전해 주었으나, 그 책에도 출처를 밝히지 않은 사진이 두장이나 실려 있었다.

사진 원고료는 물론 한 마디 양해도 없었지만, 인사동 궂은 심부름 하는 노광래씨 안면으로 또 그냥 넘긴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니, 출판사의 사과를 받아내지 못한 것이 후회막급이었다.

스스로 저작권 침해를 방조한 셈이고, 잘못을 그냥 넘겨 대수롭지 않은 일로 생각하도록 만든 것이다.

이건 나 혼자만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 다른 사진가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는 일이었다.

요즘은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시비를 가리는 것도,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세상을 요 모양 요꼴로 만들었다는 뒤늦은 자책에서다.



 


그 이후 천상병기념사업회이사회에서 답게 출판사대표와의 첫 상면이 있었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해서는 사과는 커녕,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말이 저작권침해지 한마디로 도둑질인 것을 모를 리 없겠으나, 모른 채 하는 것이다.

가난한 다큐 사진가들의 유일한 수입원이지만, 돈이나 밝힌다는 소리는 듣기 싫었다.

다행히 인사동 터줏대감 강 민선생을 잘 모신다는, 고마움에 입 다물었던 것이다. 





나주곰탕에서 식사하며 천상병선생의 책은 8쇄에 이른 책도 있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자연스럽게 하는 것을 보니, 저작권을 침해한 잘 못도 잊은 것 같았다.

뒤늦게 나온 책에는 사진의 출처나 밝혔는지 모르겠다.

괜히 답게 출판사’ 일로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는데, 이제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나주곰탕에서 일어나 김진열씨 목판화전이 열리는 나무화랑으로 옮겼다.

군중들에 휩싸여 걷는 두 선생의 어깨가 유달리 무거워 보였다. 4층까지 오르기는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뒤 따라 갔더니, 김진하관장의 해설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하고 계셨고. 한 쪽엔 '문화연대' 임정희씨도 있었다.

오르느라 힘은 들어도 좋은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기회인데,

이 좋은 전시를 공짜로 보여 주는데도 안 오는 사람은 왜 그럴까?



 


그 다음엔 커피 한 잔하는 일만 남았는데, 선생님의 단골집이 그만 문을 닫아버렸다.

벽치기 골목의 유담커피숍으로 갔으나, 그 놈의 개는 왜 그리 짖어댈까?

내가 개처럼 생겨서일까? 아니면 개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있었을까?

낮 술에 주저리주저리 떠벌였는데, 선생님들께 실수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인사동 터줏대감들이시여! 제발 세월에 휩쓸려 가지는 마십시요.

부디 건강을 지켜 오래 오래 사시길 바랍니다.

 

사진, / 조문호































 



좌로부터 김승환, 박정희, 강민, 추은희, 심우성, 장소임, 채현국, 신경림, 김희연, 장경호씨, 앞엔 조문호



인사동 아리랑을 노래하는 시인 강민선생의 생신기념 오찬회가

지난 3일 인사동 가회에서 있었다.

 

끈질긴 감기로 어렵사리 나갔더니, 인사동은 완연한 봄 날씨였다.

옷을 너무 두텁게 입고나와 걱정스러웠는데, 뒤에서 누가 쿡 찔렀다.

돌아보니, 그림 그리는 장경호씨였다. ‘어쩐 일이냐?’고 물었더니,

주재환선생 전시 때문에 일찍 나왔다는 것이다.

나도 깜빡 잊어버린 일을 새겨 주었는데, 시간이 남아 함께 갔다.

 

가회오찬장에는 인사동 터줏대감들께서 여럿 나와 계셨다.

강 민선생을 비롯하여 신경림, 박정희, 추은희 시인, 소설가 김승환,

김희연선생, 민속학자 심우성선생과 요즘 유명세를 타는 채현국선생,

도서출판 답게장소임대표 등 아홉 분이 자리하고 계셨다.

본래 2월이 생신이었던 강 민선생께서 따뜻한 3월로 바꾸셨다는데,

답게출판사 장소임씨가 매년 생일 오찬회를 마련해 왔다는 것이다.

 

풍성한 음식에 배 두드려가며 정겨운 이야기들을 나누었는데, 뜻밖의 사실도 알았다.

한 때 탄광을 운영하신 채현국선생의 말씀으로는,

그 당시 회사 경리직원이 지금 출판사를 운영하는 장소임씨라는 것이다.

회사에 강도가 들어 와 금고에 있는 돈을 털어 달아나려는데,

죽을힘을 다해 돈 보따리를 잡고 늘어져 기어이 뺏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용감한 소녀로 알려진 일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옆자리에 앉으신 채현국선생과 신경림선생은 키가 엇비슷하다,

궁금증이 발동해 어느 분이 큰지 여쭈었더니, 신경림선생께서 좀 더 크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민 영시인도 키가 작은 분이나, 그중 나아 항상 어깨에 힘을 주셨다고 했다.

! 그런데, 두 선생님을 나란히 세워 확인하는 사진을 찍는다는 게 깜빡 잊었다.

 

가회입구에서 다같이 기념사진을 찍은 후, 강 민, 김승환, 신경림, 장경호씨만 예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주재환선생의 전시 개막식에 가려면 시간이 남아 예당에서 한 잔 더 하실 모양이었다. 

감기로 술을 마실 수 없으니 인사동 거리나 쏘다녔으면 좋으련만,

시간만 죽이다 학고제 가야 했다.

 

강 민선생님,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늘 건강하십시요.

 

사진,/ 조문호












































 


지난 3월5일 정오무렵, 시인 강 민선생의 생일을 축하하는 오찬회가 인사동 한정식식당 '가회'에서 열렸다.
도서출판 '답게' 대표 장소임씨가 마련한 이 자리에는 강 민선생을 비롯하여 민속학자 심우성씨, 소설가 김승환,

남정현, 김이연씨, 시인 이행자, 박정희, 정두리씨가 함께해 선생의 생일을 축하하며 정담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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